1795년 이미 71세에 이른 칸트가 영원한 평화의 실현을 바라며 쓴 저작. 칸트에 의하면 국가 간에는 법적 질서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 쉽고, 일어난 경우에는 서로 자기의 정의를 주장하여 언제까지나 전쟁이 계속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 쉽고, 일어난 경우에는 서로 자기의 정의를 주장하여 언제까지나 전쟁이 계속되기 때문에 섬멸전으로 되기 쉽다. 그러므로 우선 전쟁을 방지하고 영원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지반을 구축해야 한다. 칸트는 이를 위한 구체적 조건으로서 제 1장에서 여섯 가지 예비조항을 제시한다... 이어서 칸트는 제2장에서 이와 같이 하여 준비된 지반 위에서 영원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 세 가지 확정 조항을 제시한다... 칸트의 평화론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영원한 평화가 이성에 기초한 "도덕적 목적"이며 그 실현이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에 접근해야만 한다는 것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자각을 접근해야만 한다는 것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자각을 촉구한 데 놓여 있다.(p278) <칸트 사전> 中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그의 저서 <영구 평화론 Zum  ewigen Frieden. Ein philosophischer Entwurf>를 통해서 국가 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조항들을 제시하고 있다.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위해 6개의 예비 조항과 3개의 확정 조항을 제시하는데, 이들 조항은 도덕과 정치간의 관계에서 기초한다.

 

 도덕은 우리가 그것에 따라야만 하는 무조건적인 명령적 법칙의 총체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이미 실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의무의 개념에 권위를 부여하고 난 후, 우리가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는 것은 명백하게 불합리하다.(p63)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 中


 칸트는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에 기반하여 도덕이 정치보다 우선했을 때 영원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적인 정치가는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적인 도덕가는 생각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칸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도덕가는 도덕적 정치가가 당연하게 중단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며, 이로 인해 원칙을 목적에 종속시키기 때문에 정치를 도덕과 일치시키려는 그 자신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 버리는 데서, 모든 악이 생겨나는 것이다...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게 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고 하는 원리에서 출발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p73)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 中


 인간의 권리는, 비록 그것이 지배 세력에게 아무리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신성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여기에 타협해서 실용적으로 제약된 법이라는 중간 노선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모든 정치는 도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정치는 비록 완만하기는 해도 영원히 빛나게 될 단계에 도달할 것을 희망할 수 있다.(p79)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 中  


 이러한 칸트의 사상은 루소의 사상과 더불어 유럽 정치사에서 이상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이상주의에서는 특히 '여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이상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근거하여 '이익의 조화'라는 명제를 도출하였으며, 이는 경제학에 있어서 '자유무역'과도 통하는 주장이었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 ~ 1778)와 칸트 모두 전쟁이란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국민들의 이익은 돌보지 않는 군주들이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공화정(共和政)에서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여론이 제 효과를 발휘하면 그것으로도 전쟁을 막기에 충분하다고 믿었다.(p48) <20년의 위기> 中 


 4년 후 윌슨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이었던 브라이언(William Bryan, 1860 ~ 1925)이 새로운 조약안을 제안했다. 이 조약안은 사람들이 흥분한 상태에서는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일단 냉각기를 거치면 이성이 국제여론이란 모습으로 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p56) <20년의 위기> 中


 18, 19세기의 이상주의자들의 가장 큰 장점은 이상과 같은 불만을 동시에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최대 다수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합리적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상충되는 두 입장을 이처럼 종합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에게 최고의 이익과 사회의 최고 이익은 자연 발생적으로 같다는 주장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이익의 조화 (harmony of interest)]라는 명제이다.(p69)...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무의식적으로 전체 사회의 이익을 이루듯이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국가들도 인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믿었다. 세계자유무역론의 근거는 바로 개별 국가의 경제적 이익이 극대화될 때 전체 세계의 경제이익도 극대화된다는 믿음에 있었다.(p72) <20년의 위기> 中 


 20세기 초반 세계 정치외교을 중심에 있었던 이상주의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1929년 세계경제대공황으로부터 고전학파 경제학이 붕괴하고 케인즈 경제학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이익의 조화'에 대한 이상주의 사상 역시 도전을 받게 되었다.


 1930년대의 붕괴는 특정 개인의 작위나 부작위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압도적이고 엄청난 사건이다. 그것의 붕괴는 그것이 기반한 모든 명제의 파산을 의미한다. 19세기 신념의 기반이 의심받고 있다. 사람들이 어리석거나 사악하여 옳은 원칙을 따르지 못하거나 안 한 때문이 아니라 원칙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국제정치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한다고 올바르게 행동한다는 보장이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혹은 자국의 이익을 올바르게 추론한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의 낙원을 보장하지 못한다.(p65) <20년의 위기> 中


 경제적으로 자국의 산업이 상대국에 대해 절대 또는 비교우위에 있을 때 이들은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상주의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상대국에 비해 절대 또는 비교우위에 놓여 있는 이들은 보호무역주의 또는 산업보호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헤겔로부터 출발하는 현실주의 사상을 주장하였다.


 이성이 신의 소명을 대체함에 따라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은 합리적인 역사과정의 인식에 기반한 철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반복되는 과정을 전제한 헤겔은 역사를 이끌어 가는 힘을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로 추상화하는 정도에 만족했다. 그러나 일단 현실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자리를 잡은 이상 추상적인 시대정신을 모종의 물리적 힘으로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p96) <20년의 위기> 中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치학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또 가장 이상한 교훈이다. 철저한 현실주의는 모든 정치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를 배제한다. : (1) 확고한 목표, (2) 정서적 호소, (3) 도덕적 판단, 그리고 (4) 행동의 기준이 그것이다.(p123) <20년의 위기> 中


 정치, 경제적으로 이처럼 대립되는 듯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각각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한계는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고려하기 위해서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극단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인 E.H 카(Edward Hallett Ted Carr,1892 ~ 1982)의 주장이다. 


 우리는 모든 건전한 정치사상은 이상과 현실 모두에 기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상주의가 공허하고 특권층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참을 수 없는 겉치레가 되면 현실주의는 그 가면을 벗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순수한 현실주의는 적나라한 권력투쟁 외에는 대안적인 모습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사회란 불가능해진다.(p128)... 정치란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판에 떨어져 존재하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목표와 제도, 즉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정치적 사고에 장애가 되는 것은 없다.(p129) <20년의 위기> 中


 세계질서를 논의하면서 국력의 요소를 무시하는 것이 이상론이라면 도덕의 요소를 무시하는 것은 현실주의의 현실주의답지 않은 비현실적 성격이다... 국제질서도 권력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 국제질서도 상당한 정도의 일반적 동의를 필요로 한다. 도덕과 권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숙명적 이중성이다.(p295)... 국제적 조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궁극적인 길은 경제회복의 길에 있는 것 같다... 미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윤의 창출이라는 경제적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창출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위해 커다란 자본투자가 있었다.(p297) <20년의 위기> 中


 칸트에 따르면, 영원한 국제 평화는 도덕이 정치에 우선한다는 사상적 기반에서 여러 국가들이 조약을 맺어 유지할 수 있다. 반면, E.H.카에 따르면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도덕과 권력을 모두 고려해서 정치를 해야 하며, 국제 정치의 방향은 고용을 통한 사회 전체의 번영을 향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국제관계를 전적으로 지배하는 한 다른 모든 이들을 군사적 필요에 종속시키는 것은 위기를 악화시키고 전쟁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강화시킬 것이다. 반면 일단 권력문제가 해결되면 도덕이 그 역할을 재개하여 상황은 절망적이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경제적 이익이 사회적 목적에 종속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경제적으로 좋은 것이 항상 도덕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이제 국내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p298) <20년의 위기> 中


 정언명령에 근거한 칸트의 평화사상은 냉정한 국제 정치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말한 E.H.카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칸트의 이상주의가 없었다면, E.H카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균형 주장 역시 없었을 것이다. 칸트 사상의 의의는 세계 평화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않던 시절 처음으로 인류평화를 주장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E.H.카의 주장은 이러한 평화주의 사상과 경제적 현실을 고려한 구체적인 국제 평화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에서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인가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이 동북아 지역 평화를 넘어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영구 평화론> 과 <20년의 위기>는 우리가 가야할 평화의 방향에 대해 여러 생각할 거리를 주는 고전(古典)들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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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0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8 0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30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성과 감정은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죠. 직관과 합리가 종합적 사고로 작용하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판단이 작용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뫼비우스의 띠같기도 하고요. 그의 주저 진행을 보면 칸트도 이 딜레마를 모르진 않았다고 봅니다.
근친상간만 해도 진화적 문제(유전적 변형)에서 발생한 터부에서 사회 구조로 섞여 들면서 도덕 관념으로 굳건해져 있죠. 몰랐는데 피터 싱어 <더 나은 세상> 보니 한국에서는 친족이더라도 성인 간 합의에 의한 성 관계는 죄가 아니더라는? 그렇더라도 사회적 혐오를 피할 수 있을까요. 동성동본 결혼도 최근까지 그러했는데. 이런 복잡한 이해 관계에 따른 도덕, 윤리의 혼란을 생각할 때 칸트가 제시한 초국가적 보편 도덕 성립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공리이긴 합니다. 늘 그렇듯이 인간의 문제는 공통의 합의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 삐끗하면 전체주의가 될 수도 있고.
환경 보존, 고기를 먹지 말고 모두가 채식으로 바꾸자 등등의 뛰어난 문제 해결을 제시해도 자국의 이익,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인권 내세우면 또 공염불... 국제합의기구의 이해타산적 모습과 결과를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세상 참 지지고 볶고죠ㅡㅜ

겨울호랑이 2018-05-30 20:37   좋아요 1 | URL
칸트가 <영구 평화론>에서 말한 평화를 이루어 내는 힘의 기원은 <실천이성비판>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 인간 진보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합리적 이성을 칸트는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도덕 법칙의 요구라는 측면에서 칸트는 평화를 바라봤기에,칸트에게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장애는 아니었을까 여겨지네요. 이성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칸트였기에 감정은 고려허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만,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조금 더 공부를 해서 정리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