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듣기로는 승리한 국가에서는 현명한 사람들을 예우하는 것은 옛날부터 내려온 도(道)라고 합니다. 지금 영도(?都, 호북성 강릉현)가 엎어져 없어졌으니 그들의 군주는 죄가 있음을 믿겠지만 진신(搢紳)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모두를 조예(?隸)로 삼았습니까?

성 안에는 식량이 다 떨어져서 풀과 나무뿌리 그리고 잎사귀와 가죽신발과 허리띠에 달린 뿔을 삶아서 이를 먹으면서 사졸들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고 고통을 함께하여 견고하게 지키기를 반년이나 되었는데도 사람들 가운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다.

후안도가 그의 부장 소마가(蕭摩訶)에게 말하였다. "경은 날쌔고 용맹으로 명성이 있으니, 천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오." 소마가가 대답하였다.
"오늘 공으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겠습니다."
싸우게 되자, 후안도가 말에서 떨어지고 제인(齊人)들이 그를 포위하자, 소마가가 홀로 말을 타고 큰 소리를 지르며 곧바로 제의 군사들에게 부딪쳐나가니 제의 군사가 쪼개져 쓰러졌으므로 후안도는 마침내 죽음을 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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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요정 '쉬'와 유령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저승의 지도가 있다는 것이다... 요정과 유령의 중요한 차이는 망자는 땅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이전의 존재인 유령이 되는 반면에 쉬는 근원적이어서 인간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령들은 인간에 근원이 있고, 산 사람의 영혼이나 영으로 죽음을 통해 정화되어 이승 근처를 떠돈다. 한편 요정들은 초자연적 근원을 지니고 있다. 요정과 유령은 구별되지만 망자는 요정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을 가장 주목해야 한다. 망자들이 거처하는 곳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고, 요정의 나라 역시 영혼들의 일시적 거처이다. 영혼들이 죽은 뒤에 가는 장소로서 요정의 나라는 사후의 나라로 조금씩 변해 간다. _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켈트의 여명> , p346/356


 해신 마난난은 인간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난족은 인간 세상과 자기네 영역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다난족의 일원인 모리간은 전사들 - 특히 쿠쿨린 - 의 운명을 내려다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신의 '시'를 떠났다. 삼하인 축제(10월 31일 ~ 11월 1일) 때는 저승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고, 저승 주민들은 자신의 '시'를 떠나 인간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마법으로 혼란을 일으킬 때가 많았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삼하인 축제 때는 집 안에 틀어박혀 문과 창을 꽁꽁 닫아 걸었지만, 그래도 항상 말썽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저승의 남신과 여신들은 민간신앙에 등장하는 요정이 되었고, 켈트족의 삼하인 축제는 할로윈으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_ <여명기의 영웅들 : 켙트신화> , p29


 켈트족 신화에 따르면 저승의 문이 열린다는 10월 31일. 이로 인해 저승의 망자(亡者)들이 세상으로 쏟아져나온다는 이 때, 망자들에게 육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유령 복장을 하며 밤을 지샜다는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할로윈(Halloween).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명절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 새 할로윈 복장으로 돌아다니며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서양에서는 켈트 문화권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11월을 위령성월로 보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10월 31일은 사순시기 직전의 사육제(謝肉祭)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서구 문화권과 다른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할로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 면에서 낯선 할로윈보다 액운을 쫓기 위해 팥죽을 먹거나 부럼을 깨는 행위, 처용(處容)과 관련된 여러 풍속들이 있음에도 이들은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할로윈'이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잡는 모습은 유령의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유령이 마케팅(marketing)의 이라는 이름으로 행해는 장난.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장난과 이어지는 'trick or treat'이라는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것은 아닐런지.


 근대 소비사회에서는 인간의 행위나 존립이 물질처럼 취급되는 '물화 物化, Rification'를 겪게 되며, 인간은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로 전화 轉化하게 된다.(p637)...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 1903~1969와 막스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 1895~1973는 소비자 비평에 관한 한 가장 염세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그 자체를 재생산하기 위한 소비 문화를 만들어내며, 그 결과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그것을 주입받는 수동적인 시민이 양산된다고 주장했다. 장 보드리야르 또한 "소비자란 결국 19세기 초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이고 비조직적인 개인들로, 칭찬받으며 아첨에 속아 넘어가는 얼갈이 같은 존재"라고 조소했다. _ 설혜심, <소비의 역사> , p639/798


 소비는 하나의 신화이다. 현대사회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parole),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말하는 방식, 그것이 소비이다. 말하자면 소비에 관한 유일한 객관적 현실은 소비라고 하는 관념 뿐이다. 이 반성적, 언설적 배치구조가 일상적 언설과 지적 언설에 의해 무한히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상식으로서의 힘을 갖게 되었다. 우리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소비사회로 간주하며, 또 그러한 것으로서 말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들의 사회가 소비를 행하는 경우에는 소비사회로서의 자기규정에 기초를 두고 자신을 그만큼 관념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광고는 이 소비의 관념에 바쳐진 승리의 노래인 것이다. _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p301


 이미 우리가 대량소비의 시대에 살기에 별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시기적으로 한정해 본다면, 최근 몇 년 전부터 자본주의 유령이 10월말부터 출몰하기 시작해서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를 지나 11월 26일 블랙 프라이데이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마스 직전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활개치고 다닌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함께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 뭐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죽음을 생각하는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의미를 찾거나, 할로윈과 함께 우리 풍속도 생각하고 지키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홍석모는 섣달그믐에 밤을 새는 수세의 풍속이 수경신(守庚申)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았다. 수경신은 경신일에 밤을 새는 풍속으로, 도교에서 유래하였다. 사람의 몸에 있는 삼시충(三尸蟲)이 경신일에 하늘에 올라가 그 사람의 잘잘못을 일러바치므로, 이날 잠을 자지 않으면 하늘로 올라깆 못해 액운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경신은 <고려사>에 보이며, 조선 초기에도 유행하였다. _ 홍석모, <동국세시기> , p236  해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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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0-31 06: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으 정말 할로윈을 왜 챙겨야 하나 싶은데, 애들이 초콜릿사탕 먹는 날이라고 좋아라 하니 점점 일반화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에서도 할로윈파티를 하더라구요;;

겨울호랑이 2021-10-31 08:44   좋아요 4 | URL
그렇습니다... 어린이집, 학원, 놀이공원, 제과점 등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마케팅 열풍에 어린이들이 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아이들의 요구를 부모들이 거절하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구요...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의미를 알고, 한계를 정할 수 있다면 생각없는 소비가 아닌 삶의 풍성함을 더하는 소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거서 2021-10-31 1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 최근 유행처럼 즐긴다는 할로윈을 죽음과 관련해서 생각하는 것 같지 않고 10대 20대가 기괴한 복장과 함께 흥청망청 무분별한 행동이 용납되는 날처럼 여기는 같아요. 의미를 되새기지 않는 향락과 소비만 부추기는 것 같아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요.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지식이 (plus)1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0-31 11:14   좋아요 3 | URL
네 저 역시 오거서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외국의 문화라고 무조건 배척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우리 것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뜻을 새길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가진 뜻을 생각하고 가치가 있을 때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오거서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

페크pek0501 2021-10-31 1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비의 사회는 필독서라고 생각해요.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책에서 많이 소개된 걸 봤어요. 그래서 읽은 책 같죠. ㅋ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제가 완독한 책이에요. 완독한 책을 보면 기뻐요.

겨울호랑이 2021-10-31 12:58   좋아요 3 | URL
<소비와 사회>는 보드리야르의 다소 냉소적인 비판이 날카롭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예리한 분석이 빛나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죽음을 소재로 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노교수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책으로 오래 기억에 남네요. 페크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

얄라알라 2021-11-17 00:24   좋아요 1 | URL
페크님말씀처럼, 마치 ˝읽은 책 같은˝ <소비의 사회>!

저는 설혜심 교수님 책들은 많이 읽진 않았지만 한국 학계에서 소비사 위상 높이시는 데 큰 기여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미국이 타이완을 원조한 배경에는 타이완을 반공反共 동맹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타이완이 문화, 교육, 일상생활에서 미국식 삶의 가치를 받아들여 모든 영역에서 미국을 추종하고 미국이 제공하는 자원에 의존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 전쟁은 당시 동아시아의 상황을 변화시켰다. 미국은 원래 중국의 국공 분쟁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지만, 한국전쟁이 벌어진 틈을 타 중화인민공화국이 타이완을 공격할 것을 우려하여 제7함대로 타이완해협을 봉쇄했다. 미국이 중화민국(타이완)에 대한 원조를 재개함으로써 국민당은 오늘날까지 정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요컨대 타이완 경제 발전의 핵심 요인은 미국, 일본, 타이완의 트라이앵글 무역 순환 네트워크를 통해 외자를 유치하고 세계 시장을 개방한 것입니다. 사실 타이완 내의 수많은 중소 수출기업은 정부로부터 충분한 지원과 보호를 얻기 힘들었기 때문에 공기업이나 대기업보다 유연한 경쟁력과 조직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수출 위주의 대외 무역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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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K68A1)

 [데모크리토스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것들은 필연(ananke)에 따라 생겨난다. 회오리가 모든것들의 생성의 원인(aitia)이기 때문인데, 그는 그것을 필연(必然)이라고 부른다.(p555)...  심플리키오스(DK68B167) 데모크리토스가 온갖 형태(원자)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왔다(apokrithenai)고 말할 때, 그는 저절로(t'automaton)와 우연(偶然)(tyche)으로부터 그것을 산출해 내는 것 같다. _ 김인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 p559


 우연과 필연은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BC 460 ? ~ 380 ? ) 원자론의 두 주제다. 그리고, <토지>에서도 우연과 필연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토지 2>와 <토지 3>에서는 최치수와 윤씨 부인의 잇달은 죽음이 서희를 낯선 간도로 몰았다면, <토지 8>에서는 '간도댁' 월선의 죽음 이후 서희는 진주로 이주한다. 다만, 앞선 사건이 서희의 간도 이주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면, 후자는 우연적 사건일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에게 모든 물리적 변화는 '필연'이다. 그렇다면, '우연'은 무엇일까.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에 의하면 '우연'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虛狀)에 불과하다. 인간에 의해 우연으로 간주되는 모든 일 안에는 법칙성이 있다는 마르크스의 해석을 따라간다면, 월선의 죽음 역시 단순히 우연적 사태로만은 볼 수 없지 않을까.


 데모크리토스는 현실에 대한 반성 형식으로 필연성을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가 모든 것을 필연성에 돌렸다고 말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는 원자의 소용돌이(Wirbel)를 데모크리토스적 필연성이라고 적고 있다.(p42)... 인간은 스스로 우연이라는 허상(Scheinbild)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 이것은 그들 자신의 혼돈(Ratlosigkeit)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연(Zufall)은 건강한 사유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_ 칼 마르크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 p43 


 월선의 죽음은 이 용과 이 홍, 두 부자(父子)와 홍이 어머니 임이네를 갈라놓는 직접인 계기가 된다. 그리고, 월선 아지매의 죽음으로 상실감에 빠져 있던 길상은 구천(김환)과의 만남을 통해 서희와 이별하고 간도에 남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길상의 결정이 결국 <토지> 완결에 이르기까지 차갑게 식어버린 부부 사이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월선의 죽음은 단순한 한 인물의 퇴장이 아니라, <토지>에서 '간도 시대'의 종결이라 생각된다. (연장성산에서 '평산리 시대'의 종결은 최치수의 죽음이 아닌 윤씨 부인의 죽음이라 여겨진다. 서희는 '최치수의 딸'이기보다는 '윤씨 부인의 손녀'이기에.). 그런 점에서 '월선의 죽음'은 <토지>에 있어 하나의 필연이 아닐까.


 길상은 김환의 외침으로 오히려 자신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는 그 자신을. 그것은 생명의 유한(有限)이다. 죄(罪)에 얽매인 것 아닌 삼라만상, 모든 것은 생명이 있고 또 생명이 없는 유한, 역설이라면 기막힌 역설이겠으나. 어느 시기까지 유지될 안정(安定)일지는 모르지만 길상은 서희와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담백한 상태로 자리잡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이 죽 끓듯 하는 환의 그 반역의 피조차 돌연 잠들어버린 느낌이다. 왜 이리 고요한가. 고요하게 고요하게 네 개의 발은 내디뎌지고 있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8> , p454/510


 "전 여기 있을 테예요! 아버지 오시면 함께 간단 말입니다."

 "아버진 볼일 보시고 뒤따라 오신다 하지 않았느냐?"

 "거짓말인 것 저는 알아요, 아버지만 내버려두고 가는 거 아닙니까!"

 서희의 눈알이 시뻘겋게 충혈된다.

  '오냐! 나 당신 용서하지 않을 테요! 저 어린 것 가슴을 멍들인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테요! 결코, 결코!' _ 박경리, <토지 8> , p492/510


 간도 시대의 종결은 한 인물의 죽음과 함께 한 가족의 헤어짐으로 성징된다. 서희와 길상의 이별이 그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만들었고, 다시 둘로 돌려놓았는가. 그 전에 먼저 <토지인물사전>을 통해 길상과 서희의 삶을 다시 바라본다. 


 

김길상(金吉祥)... 서희의 절대적인 조력자가 된 후, 하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 윤씨부인이 준 정에 대한 보답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 철저하게 물들어가는 서희에 대한 안타까움과 회의를 가지게 된다... 젋은이로서의 욕정에 시달리면서는 서희에 대한 연민과 애정, 주종관계에 의한 갈등, 봉순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에 괴로워한다... 마차사고를 계기로 결국 서희의 결혼 제의를 수락하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둔다. 그러나 살을 저미듯 짙은 애정을 가졌던 서희가 길상에게는 쓸쓸한 아내로만 느껴질 정도로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결국 서희의 귀향에 동행하지 않고 간도에 남아 그곳의 독립운동 조직에 합류하여 신분적 이질감을 극복하려 애쓴다.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명분보다는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선택하려는 그의 의지는 계속적인 갈등으로 남는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p40/214


 최서희(崔西姬)... 조준구에게 복수하고 평사리의 땅을 되찾기 위해, 윤씨부인에게 비밀리에 받은 금괴와 은괴를 자본으로 토지 매입과 장사를 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은다. 이 과정에서 매점매석과 친일도 서슴지 않으며, 이상현의 연모를 거절하고 길상과 신분을 넘어선 결혼을 하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얻어 대를 잇는다. 공노인과 임역관의 중개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진주에 정착하지만 복수의 허무함에 빠진다... 만주에 남은 남편의 길상의 뜻을 받아들여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등 은밀하게 항일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이를 엄폐하기 위해 최씨 일문의 기반을 다지며 진주지역의 유지로서 일본인들과는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막대한 재력과 미모, 천성적인 위엄, 능란한 일본어 실력과 독서로 다져진 지식, 더욱이 근화방직의 사장 황태수와 사돈이 됨으로써 이런 관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놓는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p188 /214


 마차 전복 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어갈 뻔 했던 이들은 이를 계기로 결혼한다. 다만, 길상이 꾼 귀마동(歸馬洞) 꿈은 이들의 결혼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토지 6> 꿈속의 귀마동) 미루어 생각해 보면, 길상은 어려 고아가 된 서희에 대한 연민을 '마차 사고' 를 통해 죽음(死)과 삶(生)'을 겪으면서, 서희와의 결혼을 운명(運命)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는지. 길상은 '우연'적 상황'을 '인생의 정해진 길/법칙'으로 생각하고 결혼했지만, 자신 안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부로 걸어들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본다면, '길상-서희' 결혼을 순간적인 감정이 가져온 우연의 비극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적어도 길상에게 서희라는 인물과의 결혼은 안정된 지위와 부를 가져다 주긴 했지만, 그가 감당하기 무거운 짐이었음을 생각해본다면, 크게 무리는 없으리라 여겨진다. 반면, 서희에게 길상과의 결혼도 같은 의미였을까.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신의 하인과 결혼할 정도로 기존 질서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가문(家)을 위해 나라(國)에 대한 마음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 서희임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잘 드러나지 않는 속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결혼은 여성에게 안정된 지위와 남편의 보호를 보장해 줄 것이다. 최상의 경우라면 재정적인 후원자 겸 다정한 동반자를 얻을 것이다. 한 신심 깊은 목사의 표현에 따르면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동료"가 될 것이다.(p189)... 이 시기(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인들의 결혼관이 유럽 다른 나라들의 결혼관과 달랐던 점은 최선의 결혼이란 동반자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_ 매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 p190


 1880년대와 1890년대의 영국에서 여성 문제는 정점에 도달했다. 신문과 잡지의 기사들, 소설과 희곡들, 공적인 연설과 사적인 대화들은 신여성(New Woman)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었다. 신여성의 특징은 높은 교육 수준과 독립성, 가족의 전통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남성과 여성이 지켜야 할 관습적인 영역의 경계들을 무너뜨리려는 성향이다. _ 매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 p403


 여지까지 읽으면서 길상과 서희 모두 전형적인 인물이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문장에 담긴 신(身), 가(家), 국(國)에 대한 길상과 서희의 생각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자신의 길을 결정한 길상이 '신(身)'을 선택했다면, 서희는 '가(家)'를 더 중시한다. 이런 점에서 길상은 개인주의자, 서희는 공동체주의자의 면을 보인다. 반면, 독립운동을 하는 길상과 가문을 위해 친일도 서슴지 않지만, 독립운동도 후원하는 서희를 통해 애국지사와 무정부주의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그들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달랐기에 그들의 삶은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면에서 그들의 별거는 필연적인 결과로 생각된다.


 길상은 담배를 붙여 서희를 바라본다. 강한 눈길이었다. 서희는 이같이 강한 길상의 눈을 본 일이 없다. 아니 강한 사나이의 그러한 눈길을 본 일이 없다.

 '나는 너를 소유했지만 넌 나를 소유하지 못할 게야.'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눈 같기도 했었다. 그 강한 눈을 서희는 강하게 받는다. 미동하지 않고 받는다. 그러자 길상의 눈에는 말할 수 없는 비애의 그림자가 밀려왔고, 희미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비로소 서희는 그 눈에서 자신의 시선을 떨어뜨렸다. 서희는 싸움이라 생각했었지만 그쪽은 그것이 아니었다. _ 박경리, <토지 8> , p475/510


 '월선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가져온 크고 작은 여파는 간도에서 자리잡던 이들의 삶에 크고 작은 풍파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풍파 속에서 <토지>안의 또다른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생각하며 '우연과 필연'으로 한 주간의 <토지>독서를 갈무리한다...


PS. '우연'과 '필연'에 대한 해석은 에피쿠로스 해석은 데모크리토스와 정확하게 대척점에 있다. 즉, 필연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것은 우연적으로 생겨나고, 자의에 의존한다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을 들여다 보면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길상과 서희는 서로 사랑했기에, 이러한 '애증(愛憎)'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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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30 14: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옮겨주신 토지의 문장, 역시 정말 좋으네요.
전집 읽기 내년엔 시도할까 합니다 ^^
아내의 역사, 는 전부터 담아 두곤 미뤘는데 호랑이님 페이퍼로 다시 보네요. 찜!

겨울호랑이 2021-10-30 14:38   좋아요 3 | URL
대가의 작품이라, 때로는 굵은 붓으로 시대를 담아내는 호방함도, 때로는 가는 붓으로 인물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묘사하는 섬세함도 <토지> 안에 함께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프레이야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