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패배한 이후 급격한 변화를 가로막은 주된 장애물은 반동주의자나 파시스트가 아니었다. 그들은 독재자에 운명을 걸었고독재자와 함께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주된 장애물은 대부분 전쟁에서 벗어나 런던에서 귀국을 준비했던 합법적인 망명 정부였다. 망명정부들은 본국의 저항 조직들을 동맹자가 아니라 골칫거리로 여겼다. 망명 정부는 이 부주의한 젊은이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민간 생활로 돌려보낼 필요가 있었고, 부역자와 반역자가 적절히 제거된 정치권에 공적 업무를 맡겨야 했다. 그보다 못하다면 무정부 상태 아니면 연합군의 무기한 점령을 의미했다.
- P1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매천야록 (천줄읽기)
황현 지음, 조준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12,000원 → 11,400원(5%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3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2년 01월 08일에 저장

매천야록 -하
이장희 지음 / 명문당 / 2020년 8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2년 01월 08일에 저장

매천야록 -중
이장희 지음 / 명문당 / 2020년 8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2년 01월 08일에 저장

매천야록 -상
이장희 지음 / 명문당 / 2008년 9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2년 01월 08일에 저장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병장의 목을 쳤을 때 흐르는 그 끈끈적한 피를 당신들 벚꽃이나 하라키리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한일합병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결하였소. 특히 늙은 유생들은 목매어 죽고 절식해 죽고 우물에 빠져 죽고 당신들이 볼 적에 결코 아름다운 죽음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그것에는, 네, 죽음의 참뜻이 있다고 나는 보는 거요. 죽움이란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것, 끔찍하고 추악한 것, 당신은 영혼 속의 신성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리얼리스트라는 말을 했었소. 그러나 재차 말하거니와 죽음은 꽃이 아니며 아름다운 것도 아니며 바로 현실, 주어진 현실을 넘어가는 일이오. _ 박경리, <토지 13> , p264/714


 <토지 13>에서 조찬하는 일본과 조선의 문화 차이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보여준다. 조찬하가 바라본 양국의 문화 차이는 그 지리적 거리보다 멀었다. 낭만주의적인 일본문화와 현실적인 조선문화. 서로 다른  양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조찬하는 여러 예를 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일본과 조선의 관점 차이는 정신세계의 차이를 대표한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1933)는 공통적으로 할복(割腹)으로 표현되는 죽음의 모습에서 일본인들의 특징을 발견하는데, 특히 이나조의 <무사도>에서는 할복을 통해 명예를 지키려는 사무라이들의 낭만주의적인 죽음이 그려진다. 죽음의 미학이다.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 시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자살이 이름에 대한 기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 방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p317)... 무사에게 하라키리(服切)가 허락되는 것은, 죄를 추궁당하여 명예가 떨어진 프로이센 장교에게 때때로 비밀리에 권총 자살이 허락되는 것과 같다. 일본의 사무라이도 마찬가지로, 그런 사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단지 수단의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_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 p319/590


 독자 여러분은 이제 할복이 단순히 목숨을 끊는 행위가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할복은 법률과 예법상의 제도였다. 중세 시대부터 시작된 그것은 무사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잘못을 바로잡고, 수치심을 벗고, 친구에게 사죄하고, 자신의 성실함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이 법률 상의 처벌로서 명령되었을 때는 장중한 의식 속에서 집행되었다. 할복은 세련된 자살 방식이어서 냉정한 감정과 침착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실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복은 특히 무사에게만 어울리는 법도였다. _ 니토베 이나조, <일본의 무사도> , p141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자신의 더럽혀진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할복을 사용했고,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의 힘이 떨어져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자결(自決)을 선택했다. 때문에, 아름다움보다는 안타까움을 주위에 남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주변을 일깨우려는 마음이 찬하가 말한 리얼리스트의 죽음이 아닐까.


 전자의 죽음이 주변으로부터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기위한 죽음이라면, 후자의 죽음은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닌 현실을 넘으려는 마지막 노력일 것이다. 이러한 선비 정신은 <매천야록 梅泉野錄>의 저자 황현(黃玹, 1855~1910)이 남긴 절명시(絶命詩)에 잘 드러난다.


융희 4년 8월 3일에 군청에서 마을로 합방령이 반포되자 진사 황현은 그날 밤 아편을 먹고 이튿날 운명했다. 시 네 수를 남겼다. 


亂離滾到白頭年(난리곤도백두년)

幾合捐生却末然(기합연생각말연)

今日眞成無可奈(금일진성무가내)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어지러운 세상 부대끼면서 흰머리가 되기까지

몇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 했지만 여태 그러지 못했구나

오늘은 참으로 어찌할 수 없게 되어

가물거리는 촛불만 푸른 하늘을 비추네


妖氣掩翳帝星移(요기엄예제성이)

九闕沈沈晝漏遲(구궐침침주루지)

詔勅從今無復有(조칙종금무부유)

琳琅一紙淚千絲(임랑일지루천사)


요사스런 기운이 가려 임금별 자리를 옮기니

구중궁궐 침침해져 햇살도 더디 드네

조칙도 이제는 다시 있을 수 없어

구슬 같은 눈물이 종이 가닥을 모두 적시네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 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會無支廈半椽功(회무지하반연공)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부시충)

止竟僅能追尹穀(지경근능추윤곡)

當時愧不躡陳東(당시괴불섭진동)


내 일찍이 나라를 버티는 데 서까래 하나 놓은 공도 없으니

겨우 인(仁)을 이루었을 뿐 충(忠)을 이루진 못했구나

겨우 윤곡(尹穀)을 따른 데서 그칠 뿐

진동(陳東을 못 넘어선 게 부끄럽기만 하구나 _ 황 현, <매천야록> , p458


<토지 13>에서 조찬하는 일본문화와 조선문화의 차이를 계속 설명해 나간다. 직선의 일본문화와 곡선의 조선문화. 이러한 정신이 표현된 건물들의 차이 등. 조찬하가 내린 일본에 대한 평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瓷器)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게 남는 것은 찬하의 대화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선의 피조물, 사람 손에 의한 피조물엔 생명감이 넘쳐 있고 생명체를 보다 많이 수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이 완벽하다는 것은 살아 있다, 즉 생명이 있다는 얘깁니다. 청자나 백자 특히 백자 항아리는 빛깔과 선의 융합에서 생동하기도 하고 정밀(靜謐)을 느끼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든 살아 있다는 것, 생명력 그것을 자로 재어보고 가루를 내어 분석하고 해보았자, 사람을 놓고 해부해보아도 사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결론과 마찬가지, 결국 생명은 무엇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런 창조의 능력은 조물주에 접근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보아야겠습니다. _ 박경리, <토지 13> , p248/596


 정동주의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은 조선 막사발이 일본에서 이도차완(井戶茶碗))으로 다이묘(大名)들의 최고급 사치품으로 받아들여졌는가를 잘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조선 서민이 사용했던 그릇으로 알려진 막사발이 사실은 절에서 사용되던 식기였으며, 그 안에는 깊은 신앙심이 자리하고 있음을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은 알려준다. 깊은 신앙심과 경건한 마음을 담은 그릇인 조선 막사발과 이를 자신들의 허영과 권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일본영주들의 이도차완. 막사발과 이도차완이라는 같은 자기의 다른 용도는 조선과 일본의 문화 차이를 현실에서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일본 무사들에게 16세기는 권력과 조직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 번영의 세기였다. 새로운 힘의 원천은 차문화(茶文化)에서 비롯되었다. 시대적 조류로서 일본 사회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던 차문화를 바라보던 무사들은 차문화가 지닌 새롭고 놀라운 많은 가능성들을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p35)... 이도차완(井戶茶碗)과 농차(濃茶)가 무사계급의 차문화를 이끄는 두 축으로 자리잡은 것은 센노 리큐에 의해 집대성된 와비차의 영향이었다. 와비차는 외면의 겉치레와 탐욕적인 광채, 권위적인 넓고 큰 공간보다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내면화와 고용한 정신세계를 중시했다. 화려한 것을 억제하고 물질적, 향락적으로 변질되려는 일본 차도를 혁신시켰다. 부족함과 진중함, 청순함과 질박함을 존중하는 차도였다. _ 정동주,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 p39


 이도차완은 오랜 연원을 지닌 승려들의 법물(法物)로서 만다라의 법에 따라 제작된 불교미술품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속의 생활잡기가 아니다. 이도차완은 조선시대 어느 수행자의 기도로 빚어진 만다라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리운 스승, 위대한 스승 석가모니의 마음에 닿고자 하는 불멸의 존경심이 빚어낸 작품이다. 가마의 불 속에서 그려진 흙의 마음이자 흙 속에서 걸어나온 부처의 미소다. 연원과 외양, 색깔과 그 분위기.....  이도차완을 둘러싼 모든 정황은 그것이 절간의 발우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_ 정동주,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 p267 


 조찬하의 분석처럼 오랜 정신세계의 풍요로움이 조선의 근대화를 늦췄고, 결핍이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겨 물질세계에서 일본이 조선을 앞섰다면, 이후 전개되는 역사에서 조찬하는 물질문명의 역전된 결핍과 잉여의 관계는 다시 뒤집을 수 있다고 보았을까. 아쉽게도 <토지13>에서는 더 이상의 논의는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정신문명의 결핍이 가져온 물질문명의 한계가 얼마나 명확한 것인가를 일본의 사례 속에서 발견하기에, 조찬하의 말이 더 깊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일본 민족의 단순성은 그 단순함 때문에 색채에 있어서나 선에 있어서 선이라기보다 선이 행방불명된 개칠의 상태인데 단순함에서 오는 욕구일까요? 조선 민족의 복잡성 그것 때문에 반대로 색채나 선에 있어서 대담한 생략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생략이란 근원을 찾아서 불필요한 것을 쳐내버린다 그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생명을 찾는다는 것이지요.(p250)... 복잡하면 쳐내고 단순하면 덧붙인다는, ...... 바꾸어서 말하자면 결핍과 잉여상태, 저는 얘기의 결론을 지어야겠습니다. 결핍이 오늘 일본을 강국으로 만들었고 잉여상태로 하여 조선은 망했다. _ 박경리, <토지 13> , p251/596


 당신네 군국주의는 로맨티시즘으로 무장돼 있소. 로맨티시즘은 허윕니다. 당신의 천황이 현인신(現人神)인 것처럼. _ 박경리, <토지 13> , p265/7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카일 하퍼 / 더봄 / 2021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로마인들은 홀로세라 불리는 역사적 기후 시대의 특정한 순간, 지중해 지역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급격한 기후 변화가 지연되고 있던 시기였다. 더 중요한 것은, 로마인들이 이미 알려져 있던 세계를 가로질러 열대의 변두리까지 덩굴손처럼 뻗어나가 도시화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예측하지 못한 자연의 음모 속에서, 로마인들은 병원체가 진화의 잠재력을 분출하기 쉬운 질병 생태계를 창조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신종 전염병이라고 부르는 압도적 힘에 포위되었다. 로마 제국의 종말을 이야기할 때 인류와 환경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_ 카일 하퍼,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 p19/521


 카일 하퍼(Kyle Harper, 1979 ~ )는<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THE FATE OF ROME: Climate, Disease & the End of an Empire>에서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을 제국 내부의 쇠퇴가 아닌 기후와 질병에서 찾는다. 홀로세의 온난한 기후가 로마에게 지중해를 호수로 선물했다면, 이후 화산폭발 등으로 촉발된 기온 저하는 제국에게 페스트를 비롯한 각종 질병을 선사하며, 제국의 안정을 위협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제국을 하나로 연결해주던 도로와 도로로 연결된 도시는 질병이 뻗어나갈 수 있는 숙주로서 기능하며 제국의 죽음을 재촉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영토 확장의 배경이 되었던 홀로세 기후다. 기원전의 마지막 세기와 기원후 첫 세기에 로마는 이른바 '로마 기후 최적기'로 알려진 온난다습한 안정적 기후 체제의 혜택을 받았다. 로마 제국과 한 漢 왕조 치하의 중국이 동시에 개화한 것은 역사 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기이한 평행'들 중 하나이며, 전 지구적 규모로 성장과 수축이 동시에 발생하는 진동에 의한 것이다. _ 카일 하퍼,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 p75/521


 5세기 후반부터 기후가 결정적으로 재편성되는 소용돌이가 시작되었고, 고대 후기 소빙하기에 접어들면서 절정에 이른다. 530년대와 540년대의 화산활동으로 후기 홀로세는 전반적으로 냉랭한 날씨가 지속되었다. 그와 동시에 태양에서 지구로 도달하는 에너지의 수준은 수천 년 만에 가장 낮은 지점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물리적 기후 조건이 악회되면서 미약하나마 남아 있던 로마 제국을 휩쓸어버리는 전례 없는 생물학적 재앙이 함께 일어났다... 로마 제국이 야심차게 사회를 발전시킨 결과는, 역설적으로 치명적인 미생물이 번성할 환경을 여러 방식으로 배양한 것이었다. 로마인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들의 인구 체계에 영향을 끼칠 질병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연루되었다. _ 카일 하퍼,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 p22/521


 기후가 제국의 경제를 쇠퇴시켰다면, 질병은 제국의 국방에 치명상을 안겼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당시 5세기부터 시작된 이상 기온은 제국의 농업생산량을 급격하게 감소시켰고, 이로 인해 제국의 경제상황은 치명상을 안게 된다. 다른 한편, 질병은 인구를 감소키는데, 이로 인해 제국의 변방을 유지할 병력 공급에 차질을 빚으며 제국의 안보 역시 위협받게 된다. 이후 역사에서 로마제국은 게르만 민족의 이동 속에 몰락해 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염병이 도는 해와 홍수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단기적 환경 교란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토착 질병들이 기후 변동으로 증폭되어 사망률을 치솟게 만든 주범임을 뜻한다. 로마 세계는 들끓는 미생물 수프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체에게 습격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_ 카일 하퍼,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 p159/521


 유스티아누스 역병보다 앞서 나타난 기후 교란은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는 섬광 같았다. 우리는 곧 뒤따라올 충돌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페스트의 유행은 적어도 다섯 종을 포괄하는 연쇄 반응이다. 박테리아와 야생 동물 숙주(마못),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숙주(검은 쥐), 절지동물 매개체(동양의 쥐벼룩) 그리고 우리 인간을 둘러싼 엄청난 생물학적 도미노 사태이다. _ 카일 하퍼,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 p382/521


 카일 하퍼의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이 다른 역사책들과 구분되는 지점은 기후와 질병에 의해 이미 역사의 흐름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로마의 마지막을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외부 환경의 영향에서 찾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지만, 이러한 저자의 관점에 대해 다른 한 편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과연 기후와 질병이 제국의 종말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을까? 본문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관점은 '로마의 멸망'이라는 결과에 대해 기후와 질병을 '제1윈인'을 지적하는 느낌을 받는다. 원인의 원인을 찾아들어가는 원인론과 같은 저자의 주장이지만, 로마의 멸망을 가져온 여러 원인들 상호간의 영향관계를 고려한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아래 [그림]은 저자가 본문에서 제시한 여러 요인들과 상호 관계를 거칠게나마 정리한 것이지만, 이들만으로도 상당한 영향관계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국의 멸망 원인을 특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을까.  



[그림] 로마 제국의 멸망원인은? (by 겨울호랑이)


 본문 안에 표현된 제국의 멸망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다분히 감상적이다. 제국의 문제가 아닌 불가항력에 의한 몰락. 그것이 저자가 바라보는 제국의 종말이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로마의 몰락은 시대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로마가 전성기로 향했을 때의 기후는 카르타고와 갈리아가 멸망했을 때의 기후였으며, 로마가 쇠퇴할 때의 기후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번영할 때의 기후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기후와 질병이 가져온 결과보다 이에 대한 대처가 가져온 결과가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이 부분에서 저자와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로마 제국은 언제나 허약함과 회복 탄력성 사이에서 불안정한 상태였고, 마침내 해체의 힘이 우세해졌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 요동치는 기후 변동과 질병이라는 요소는 로마의 종말을 부른 숨겨진 발톱이나 치명적 선택을 찾고자 하는 유혹을 조금이나마 제거해준다. 로마 제국의 몰락은 시간이 되면 저절로 드러나는 본질적 결함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었다. 혹은 더 현명한 조취를 취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경로로 잘못 들어선 불필요한 결과도 아니었다... 어쨌든 제국은 끊이지 않는 역경과 마주하면서 굳건히 버텼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제국의 사람들은 견뎌냈다. 마침내 제국의 뼈대는 더는 견뎌낼 수 없는 필멸의 운명을 맞이할 때까지, 그리고 잿더미 속에 남은 풍요로운 토양 속에서 자랑스러운 새 문명이 자랄 때까지. _ 카일 하퍼,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 p494/521


 카일 하퍼의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은 이처럼 로마 멸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기후와 질병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안이지만, 과거 역사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닥친 기후, 질병 등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일독할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발밑을 받쳐주던 기반이 약해지고, 쾌적하지 못한 기후가 시작되면서 로마인들이 한 번도 마주해본 적이 없는 훙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의 적이 도래했다(p111)... 로마 제국은 살아 남았다. 그러나 팬데믹의 시대가 도래했고, 새로운 세균과 만나게 되는 미래에서 제국은 자연이 예비하고 있던 도전을 결코 감당할 수 없음이 드러난다. _ p123/521 - P123

인도양 체제의 진정한 생물학적 의의는 ‘유라시아의 문명화된 질병 집단들‘을 융합시킨 것이 아니라, 장애물 없이 신종 전염병을 통과시킬 수 있는 통로를 형성했다는 데 있었다. 중앙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척추동물과 다양한 미생물이 서식하는 곳이다. 결과적으로 그곳은 인간에게 유해할 정도로 불균형한 숫자로 득실거리는 병원균의 요람이기도 한, 진화 실험의 위험한 생산지였고, 지금도 그런 상태로 남아 있다. _ p173/521 - P173

감염된 쥐가 일단 상륙하면, 질병은 로마의 운송망을 따라 확산이 가속화되었다. 로마의 도로 위로 수레와 마차들이 밀항한 설치류를 실어 날랐다...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는 인간과 독립적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확산이 은밀하게 진행된다. 쥐들이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퍼질 수 있다. _ p392/521 - P392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1-08 00: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 그림 겨울호랑이님이 작업하신거예요? 저는 가끔 수업자료 만들때 저런 거 만들긴 하는데 아 진짜 귀찮고 시간 많이 걸리던데말이죠. 그래도 한눈에 쏙 들어오네요. ^^
어떤 한 지역의 몰락을 외부요인만으로 돌리는건 납득하기 힘들죠. 크레타처럼 작은 단위의 도시국가가 화산폭발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했다 같은건 가능하다 생각되지만 로마는 제국이잖아요. 어떤 시대든 환경의 문제는 있을테고 결국 어떤 사회가 유지되는가 몰락하는가는 그런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그 사회 내부가 가지고 있었나의 문제라는 겨울호랑이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1-08 08:18   좋아요 4 | URL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저 역시 만들면서 복습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한, 선생님들이 학생들보다 과정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이유가 수업 준비를 통해 끊임없이 복습하기 때문임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기후와 질병이 하나의 문명을 소멸시키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을 받아들이고, 오늘날 기후 문제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지는 정도로 책을 이해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바람돌이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1-08 10:55   좋아요 2 | URL
저도 본문의 그림 덕분에 겨울호랑이님 리뷰 읽기가 훨씬 수월해졌는데
직접 만드셨다는 걸, 출처 표기 부분에서 보고 깜놀했어요. 안해봐서 모르지만 시간 많이 투자하셨을 것 같은데 열정과 능력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덕분에 로마사 전혀 모르는 독자로서 고마운 가이드가 되었습니다

얄라알라 2022-01-08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사는 물론, 로마사도 모르지만 겨울호랑이님 리뷰 읽으니 카일 하퍼의 시각도 흥미롭네요. 그동안 로마의 몰락은 인간적 요소(도덕성 타락...등)가 주요인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카일 하퍼식 해석은 인간의 개입 여지가 적어지는 건가요? 하지만 겨울호랑이님 말씀처럼 기후와 질병이라는 위기에 대처하는 인간 방식이 몰락과 더 관련많을 것 같네요. 카일 하퍼는 이 주장을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해온 것인지, 팬데믹 겪으로 새롭게 접근해본 것인지 궁금하네요. 2021년 출판된 것을 보면 원출판년도도 최근일 것 같은데^^

겨울호랑이 2022-01-08 11:30   좋아요 2 | URL
제가 이해하기로는 카일 하퍼는 로마 제국의 멸망을 일종의 ‘자연사‘로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의 인위적인 노력은 멸망의 시기를 조금 늦추는 정도에 불과하겠지요. 국가를 생명체로 바라본다면, 이런 관점이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국가를 시스템으로 바라본다면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북사랑님 말씀을 듣고 찾아보니 영문판은 코로나 이전인 2017년에 출판되었네요.
그림이 북사랑님께 도움이 되어 다행입니다. 동시에, 텍스트보다는 그림 이미지가, 그림보다는 동영상이 정보 전달에 더 유용하기에, 유튜브가 대세가 된 것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임을 생각해봅니다. 북사랑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1-08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홀로세 기후의 영향.
새로운데요!
읽어봐야겠어요

겨울호랑이 2022-01-08 11:59   좋아요 2 | URL
^^:) 로마 멸망의 원인을 기후에서 찾는 신선한 관점이 인상적인 책이라 여겨집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독서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22-01-08 16: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독교가 로마를 멸망시켰다는 얘기도 많지만, 전 전염병과 기후변화 등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단 말씀에 공감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1-08 17:16   좋아요 4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제국 말기에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었기에, 제국의 국교인 기독교가 로마를 멸망시켰다는 분석은 무리한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신약성경이 다루고 있는 네로 시대의 로마 제국과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로마 제국은 분명 다르기에, 멸망의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애초에, 무혜비(武惠妃)가 사망하자 황상이 슬퍼하며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후궁이 수천이었으나 뜻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수왕(壽王, 무혜비의 소생 李瑁)의 비(妃)인 양(楊)씨의 아름다움은 세상에 둘도 없다고 하였다. 황상이 그를 보고서 기뻐하며 이내 비(妃)로 하여금 자신의 뜻으로 여관(女官)이 되게 해달라고 청하도록 하였고, 이름을 태진(太眞)으로 하도록 하였다. 다시 수왕을 위하여 좌위(左衛)랑장 위소훈(韋昭訓)의 딸을 맞게 하였다.

몰래 태진을 궁 안으로 들였다. 태진은 피부가 살이 찌고 자태가 요염하였으며, 음율(音律)을 알고 품성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빼어나 황상의 뜻을 잘 받들며 맞아들였으므로 한 해가 지나지 않아 총애하여 대우하기를 무혜비와 같이 하니, 궁 안에서 부르기를, ‘낭자(娘子)’라고 하며 모든 의례는 모두 황후처럼 하였다.

황상이 조용히 고력사(高力士)에게 말하였다. "짐이 장안(長安)을 나가지 않은 지가 10년이 되는데도 천하에 아무 일이 없으니, 짐은 높은 곳에 머물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이림보에게 맡기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대답하였다."천자가 순수(巡狩)하시는 것은 예부터 있어 온 제도 입니다. 또 천하의 대권(大權)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의 위세가 이미 이루어지고 나면 누가 감히 다시 그를 논의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황상이 기뻐하지 않았다. 고력사는 머리를 조아리며 스스로 말하였다. "신(臣)이 정신병이 들어 망령된 말을 하였으니 마땅히 죽을죄를 졌습니다."

황상이 이내 고력사를 위하여 술자리를 베풀자 좌우(左右)에서 모두 만세를 불렀다. 고력사는 이로부터 감히 천하의 일을 깊이 말하지 아니하였다.

옛날의 제도에 의하면 변경을 지키는 사람은 그의 조용(租庸)을 면제해 주고, 6년이 지나면 바꾸었다. 당시 변방의 장군들은 패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사졸 가운데 죽은 사람들을 모두 보고를 하지 않고 관적(貫籍)에서 없애지 않았다.

왕홍의 뜻은 거두어들이는데 있었으므로 호적에는 있으나 실제 사람이 없는 경우에 모두 과세를 피하였지만 호적을 조사하여 변방에서 수자리 선 6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조용(租庸)을 징수하니 합쳐서 30년분의 세금을 낸 사람이 있었지만 백성들은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양귀비가 바야흐로 총애를 받아 매번 말을 타게 되면 고력사(高力士)가 말고삐를 잡고 말채찍을 주었는데, 수(繡)를 놓는 공인(工人)으로 오로지 귀비원(貴妃院)에게 이바지 하는 사람만 700명이었고 안팎에서 다투어 그릇과 의복과 진귀한 노리개를 올렸다.

애초에, 장군 고선지(高仙芝)는 본래 고려(高麗, 고구려) 사람으로 안서(安西, 신강성 고차현)에서 군대에 복무하였다. 고선지는 날래고 용감하고 말 위에서 활을 잘 쏘아 절도사 부몽령찰(夫蒙靈?)이 누차 천거하여 안서(安西) 부도호·도지병마사(都知兵馬使)에 이르렀고, 4진(鎭)절도부사(節度副使)로 충임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