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의 목을 쳤을 때 흐르는 그 끈끈적한 피를 당신들 벚꽃이나 하라키리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한일합병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결하였소. 특히 늙은 유생들은 목매어 죽고 절식해 죽고 우물에 빠져 죽고 당신들이 볼 적에 결코 아름다운 죽음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그것에는, 네, 죽음의 참뜻이 있다고 나는 보는 거요. 죽움이란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것, 끔찍하고 추악한 것, 당신은 영혼 속의 신성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리얼리스트라는 말을 했었소. 그러나 재차 말하거니와 죽음은 꽃이 아니며 아름다운 것도 아니며 바로 현실, 주어진 현실을 넘어가는 일이오. _ 박경리, <토지 13> , p264/714


 <토지 13>에서 조찬하는 일본과 조선의 문화 차이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보여준다. 조찬하가 바라본 양국의 문화 차이는 그 지리적 거리보다 멀었다. 낭만주의적인 일본문화와 현실적인 조선문화. 서로 다른  양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조찬하는 여러 예를 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일본과 조선의 관점 차이는 정신세계의 차이를 대표한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1933)는 공통적으로 할복(割腹)으로 표현되는 죽음의 모습에서 일본인들의 특징을 발견하는데, 특히 이나조의 <무사도>에서는 할복을 통해 명예를 지키려는 사무라이들의 낭만주의적인 죽음이 그려진다. 죽음의 미학이다.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 시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자살이 이름에 대한 기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 방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p317)... 무사에게 하라키리(服切)가 허락되는 것은, 죄를 추궁당하여 명예가 떨어진 프로이센 장교에게 때때로 비밀리에 권총 자살이 허락되는 것과 같다. 일본의 사무라이도 마찬가지로, 그런 사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단지 수단의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_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 p319/590


 독자 여러분은 이제 할복이 단순히 목숨을 끊는 행위가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할복은 법률과 예법상의 제도였다. 중세 시대부터 시작된 그것은 무사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잘못을 바로잡고, 수치심을 벗고, 친구에게 사죄하고, 자신의 성실함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이 법률 상의 처벌로서 명령되었을 때는 장중한 의식 속에서 집행되었다. 할복은 세련된 자살 방식이어서 냉정한 감정과 침착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실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복은 특히 무사에게만 어울리는 법도였다. _ 니토베 이나조, <일본의 무사도> , p141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자신의 더럽혀진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할복을 사용했고,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의 힘이 떨어져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자결(自決)을 선택했다. 때문에, 아름다움보다는 안타까움을 주위에 남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주변을 일깨우려는 마음이 찬하가 말한 리얼리스트의 죽음이 아닐까.


 전자의 죽음이 주변으로부터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기위한 죽음이라면, 후자의 죽음은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닌 현실을 넘으려는 마지막 노력일 것이다. 이러한 선비 정신은 <매천야록 梅泉野錄>의 저자 황현(黃玹, 1855~1910)이 남긴 절명시(絶命詩)에 잘 드러난다.


융희 4년 8월 3일에 군청에서 마을로 합방령이 반포되자 진사 황현은 그날 밤 아편을 먹고 이튿날 운명했다. 시 네 수를 남겼다. 


亂離滾到白頭年(난리곤도백두년)

幾合捐生却末然(기합연생각말연)

今日眞成無可奈(금일진성무가내)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어지러운 세상 부대끼면서 흰머리가 되기까지

몇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 했지만 여태 그러지 못했구나

오늘은 참으로 어찌할 수 없게 되어

가물거리는 촛불만 푸른 하늘을 비추네


妖氣掩翳帝星移(요기엄예제성이)

九闕沈沈晝漏遲(구궐침침주루지)

詔勅從今無復有(조칙종금무부유)

琳琅一紙淚千絲(임랑일지루천사)


요사스런 기운이 가려 임금별 자리를 옮기니

구중궁궐 침침해져 햇살도 더디 드네

조칙도 이제는 다시 있을 수 없어

구슬 같은 눈물이 종이 가닥을 모두 적시네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 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會無支廈半椽功(회무지하반연공)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부시충)

止竟僅能追尹穀(지경근능추윤곡)

當時愧不躡陳東(당시괴불섭진동)


내 일찍이 나라를 버티는 데 서까래 하나 놓은 공도 없으니

겨우 인(仁)을 이루었을 뿐 충(忠)을 이루진 못했구나

겨우 윤곡(尹穀)을 따른 데서 그칠 뿐

진동(陳東을 못 넘어선 게 부끄럽기만 하구나 _ 황 현, <매천야록> , p458


<토지 13>에서 조찬하는 일본문화와 조선문화의 차이를 계속 설명해 나간다. 직선의 일본문화와 곡선의 조선문화. 이러한 정신이 표현된 건물들의 차이 등. 조찬하가 내린 일본에 대한 평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瓷器)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게 남는 것은 찬하의 대화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선의 피조물, 사람 손에 의한 피조물엔 생명감이 넘쳐 있고 생명체를 보다 많이 수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이 완벽하다는 것은 살아 있다, 즉 생명이 있다는 얘깁니다. 청자나 백자 특히 백자 항아리는 빛깔과 선의 융합에서 생동하기도 하고 정밀(靜謐)을 느끼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든 살아 있다는 것, 생명력 그것을 자로 재어보고 가루를 내어 분석하고 해보았자, 사람을 놓고 해부해보아도 사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결론과 마찬가지, 결국 생명은 무엇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런 창조의 능력은 조물주에 접근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보아야겠습니다. _ 박경리, <토지 13> , p248/596


 정동주의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은 조선 막사발이 일본에서 이도차완(井戶茶碗))으로 다이묘(大名)들의 최고급 사치품으로 받아들여졌는가를 잘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조선 서민이 사용했던 그릇으로 알려진 막사발이 사실은 절에서 사용되던 식기였으며, 그 안에는 깊은 신앙심이 자리하고 있음을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은 알려준다. 깊은 신앙심과 경건한 마음을 담은 그릇인 조선 막사발과 이를 자신들의 허영과 권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일본영주들의 이도차완. 막사발과 이도차완이라는 같은 자기의 다른 용도는 조선과 일본의 문화 차이를 현실에서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일본 무사들에게 16세기는 권력과 조직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 번영의 세기였다. 새로운 힘의 원천은 차문화(茶文化)에서 비롯되었다. 시대적 조류로서 일본 사회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던 차문화를 바라보던 무사들은 차문화가 지닌 새롭고 놀라운 많은 가능성들을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p35)... 이도차완(井戶茶碗)과 농차(濃茶)가 무사계급의 차문화를 이끄는 두 축으로 자리잡은 것은 센노 리큐에 의해 집대성된 와비차의 영향이었다. 와비차는 외면의 겉치레와 탐욕적인 광채, 권위적인 넓고 큰 공간보다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내면화와 고용한 정신세계를 중시했다. 화려한 것을 억제하고 물질적, 향락적으로 변질되려는 일본 차도를 혁신시켰다. 부족함과 진중함, 청순함과 질박함을 존중하는 차도였다. _ 정동주,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 p39


 이도차완은 오랜 연원을 지닌 승려들의 법물(法物)로서 만다라의 법에 따라 제작된 불교미술품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속의 생활잡기가 아니다. 이도차완은 조선시대 어느 수행자의 기도로 빚어진 만다라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리운 스승, 위대한 스승 석가모니의 마음에 닿고자 하는 불멸의 존경심이 빚어낸 작품이다. 가마의 불 속에서 그려진 흙의 마음이자 흙 속에서 걸어나온 부처의 미소다. 연원과 외양, 색깔과 그 분위기.....  이도차완을 둘러싼 모든 정황은 그것이 절간의 발우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_ 정동주,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 p267 


 조찬하의 분석처럼 오랜 정신세계의 풍요로움이 조선의 근대화를 늦췄고, 결핍이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겨 물질세계에서 일본이 조선을 앞섰다면, 이후 전개되는 역사에서 조찬하는 물질문명의 역전된 결핍과 잉여의 관계는 다시 뒤집을 수 있다고 보았을까. 아쉽게도 <토지13>에서는 더 이상의 논의는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정신문명의 결핍이 가져온 물질문명의 한계가 얼마나 명확한 것인가를 일본의 사례 속에서 발견하기에, 조찬하의 말이 더 깊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일본 민족의 단순성은 그 단순함 때문에 색채에 있어서나 선에 있어서 선이라기보다 선이 행방불명된 개칠의 상태인데 단순함에서 오는 욕구일까요? 조선 민족의 복잡성 그것 때문에 반대로 색채나 선에 있어서 대담한 생략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생략이란 근원을 찾아서 불필요한 것을 쳐내버린다 그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생명을 찾는다는 것이지요.(p250)... 복잡하면 쳐내고 단순하면 덧붙인다는, ...... 바꾸어서 말하자면 결핍과 잉여상태, 저는 얘기의 결론을 지어야겠습니다. 결핍이 오늘 일본을 강국으로 만들었고 잉여상태로 하여 조선은 망했다. _ 박경리, <토지 13> , p251/596


 당신네 군국주의는 로맨티시즘으로 무장돼 있소. 로맨티시즘은 허윕니다. 당신의 천황이 현인신(現人神)인 것처럼. _ 박경리, <토지 13> , p26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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