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대 사채는 지자체나 금감원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 대부업체의 영업 방식이다. 박씨의 경우 일주일(7일) 이자는20만원, 연 이자로 따지면 약 1043만원이다. 원금이 3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연이율 3476%에 달한다. 당연히 불법이다. 법정최고이율은 연 20%다. 하지만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렵거나 급히 돈을빌리려는 사람들, 혹은 대부업계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고리대 사채의 늪에쉽게 빠져든다. 핀테크(FinTech)의 시대에도 이런 피해는 여전하다. - P11

그러나 대부중개 사이트의 핵심 기능은 따로 있다. 바로 ‘실시간 대출 문의‘라는 이름을 붙인 일종의 게시판이다. 대부중개 사이트 업계 1위인 대출나라는 ‘이용 안내‘ 페이지에서 이 게시판이 ‘역경매‘
시스템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한다. - P12

문제는 더 근원적인 곳에 있다. 어째서 대출나라가 게시판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업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다. 대출나라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면 휴대전화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가짜 연락처를적는 걸 차단한다. 게다가 글을 올릴 때에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과 ‘개인정보제3자 제공‘에 반드시 동의해야만 한다.
대출나라를 운영하는 임 아무개 대표는<시사IN>과의 통화에서 "개인정보 제3자 제공에 글 올리는 사용자들이 동의하기 때문에 업체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거라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 제22조 5항에 따르면 제3자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 P13

대출나라 같은 대부중개 사이트는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대다수 사람들은 대출나라 같은 대부중개 사이트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간다. 은행에서 신용대출이 어렵다 하더라도 저축은행·캐피털 회사같은 제2금융권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극화된 세상의 끄트머리에는 대부 금융을 통해서만 돈을 융통할 수 있는사람들이 존재하고, 이처럼 취약한 이들을 노리는 불법 사금융업체들은 대부중개 사이트에서 새로운 대출 수요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처럼 전단을 돌리거나 공중화장실 벽면에 광고 스티커를 붙이는대신, 모니터 앞에서 전화기를 들고 대기하면 된다. - P18

윤 대통령의 ‘기능적인 정부론‘은 평소 언행과 이어져 있다. 윤 대통령이 가장즐겨 쓰는 말은 "법과 원칙에 따라서"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 세계에서 정부란성문화된 규정과 매뉴얼에 따라 작동하면 되는 기구이다.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화된 기계에 가깝다.  - P24

수도권 침수와 코로나19. 두 개의 재난이 드러내는 윤석열 통치의 실체는 경험 부족이나 어설픔에 그치지 않는다. 일각의 옹호처럼 전문가 의견에 힘을 싣는합리주의도 아니다. 정치철학의 부재다.
박원호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시절 ‘직권남용‘이라는 죄목의 칼날을 여러번 휘두르는 검사였다는 사실을 특히 위태롭게 보고 있다.  - P24

기후과학자 김백민 교수(부경대 대기환경과학)는 이렇게 말한다. 다가올 기후변화의 피해를 기후과학자들로 하여금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비가 많이내리던 지역에는 비가 더 많이 오고, 가물었던 지역은 가뭄이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라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아열대화가 진행되면서 강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2020년의 역대 최장 장마는 그상징적인 사례였다. - P27

이천·청주공장 화물기사들은 2022년1월부터 운송료 30% 인상‘을 요구했지만 수양물류는 ‘5% 인상‘으로 선을 그었다. 맥주를 만드는 공장에서는 5% 인상안에 동의했지만 소주를 만드는 이천·청주공장에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맥주공장은 애초에 운송료가 더 높으니까 5%만올려도 괜찮을지 몰라도 소주공장은 기본 운송료 자체가 낮다. 5% 올려서는 오른 물가를 감당할 수 없다." 박수동 지회장 역시 소주를 만드는 청주공장에서 12년 동안 일해온, 21t 트럭 화물차주다.
2022년 2월 하이트진로는 맥주 출고가를 7.7%, 소주 출고가를 7.9% 각각 인상했다. 하지만 이천·청주공장 화물기사들의 운송료 인상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 P35

 최종적으로, 사법부는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의 합법성과 합헌성을 인정했다. 2015년 11월대법원 판결, 2018년 6월 헌법재판소(헌재) 결정이 나왔다.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판단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입법 취지와 헌법적 정당성을 우선으로 여겼다.
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말했다.
"양측의 경제효과 분석 등 자료만으로 규제에 따른 전통시장과 중소상인들의 매출 증대 등 효과나 대형마트 개설자와 납품업자 등의 매출 감소 등 효과의 경중을정확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 규제의 취지 등에 비추어 단순히 경제효과 분석 등에 나타난 수치 자료만으로 규제 수단의실효성 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 (2015년11월19일 2015두295 전원합의체)."
결국, 다시 ‘규제의 취지‘로 돌아간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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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심은 우리의 본성적이고 본원적인 병이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상처 입기 쉽고 취약한 것이 인간이요, 동시에 가장 오만한 것도 인간이다. 인간은 자기가 세상의 진창과 똥 가운데 살며, 우주에서 가장 활기 없고 무기력한 가장 나쁜 부분에 매여 못 박혀 있고, 하늘의 궁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지막 계단에서 세 가지 조건) 중 가장 나쁜 조건을 가진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지각하고 안다. 그러면서도 상상으로 자기를 달의 궤도에 올려놓고, 하늘을 자기 발밑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우리가 자의(自意)와 재주로 하는 일을 짐승들은 부득이한 선천적 성향으로 한다고 볼 명백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나는 말한다. 같은 결과는 동일한 능력에 기인한다고 결론지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가 행동할 때 쓰는 바로 그 사고력과 방법이 동물들의 것이기도 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전혀 본성적 제약을 못 느끼면서 왜 그들에게만 그런 선천적 제약이 있다고 상상하는가?

우리는 평범한 일보다 기이한 일에 더 감탄하며 높이 평가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시간을 끌며 길게 늘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생각엔, 누구라도 우리와 함께 사는 동물들에게서 일상적으로 보는 것을 가까이서 관찰하면 다른 나라 다른 세기에서 수집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많은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운행은 언제 어디서나 여일하다. 그것의 현 상태를 충분히 이해한 사람은 모든 미래, 모든 과거에 어떠할지도 적확하게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즉 소망, 믿음, 놀라운 사건들, 의식(儀式), 회개, 순교는 어느 종교에나 있다. 우리 진리만이 갖는 특별한 표지는 우리의 덕성이어야 할 것이다. 덕이야말로 가장 얻기 어려운 천상의 표지요, 진리가 만들어 내는 가장 값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성의 충고 없이 우리 마음에서 생겨나는 어떤 감정의 움직임이 있다. 어떤 이들은 공감이라고 부르는, 이유 없는 애정이다. 짐승들도 우리처럼 그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말들이 서로 친해져서 결국 따로 키우거나 따로 여행시키기가 괴로울 지경이 되는 것을 본다.

죽기 마련이고 허약해 빠진 것들이나마 우리가 가진 기능들이 우리의 거룩하고 신성한 신앙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어서, 천성적으로 죽기 마련이요 허약한 대상에 그것들을 사용하면 더없이 적합하다는 점은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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洋)The Economist 2022年 8月 19日號
日販IP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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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The Economist 중 한국 관련 기사 제목이 참담하다...

지난 시간 동안 국격이 높아진 부작용 때문일까. 방역선진국으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높은 관심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에도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외신들. 이들이 우리나라를 걱정해서 이런 기사를 싣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작 이런 비판을 해야 할 국내 언론은 거의 모두가 1990년대 스포츠 신문처럼 되버린 현실이 뼈아프다...



South Korea’s president needs to learn the basics - South Korea’s president needs to learn the basics from The Economist

https://www.economist.com/asia/2022/08/25/south-koreas-president-needs-to-learn-the-ba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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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8-27 00: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머저리와 미저리들 전성시대죠 뭐 ㅜㅜ

겨울호랑이 2022-08-27 04:52   좋아요 4 | URL
왜 부끄러움은 수치를 아는 이들만의 몫이어야만 하나 싶습니다...

포스트잇 2022-08-27 1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언론이 만든 정권이죠. 언론, 포털까지 포함해서, 개혁되지 않는 한 늘 거기서 거기일 겁니다.
적어도 조선일보 기자들의 책, 거기서 글로 밥 벌어 먹는 사람들의 책은 사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음 좋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8-27 13:30   좋아요 3 | URL
그렇습니다... 포스트잇님 말씀처럼 언론+검찰+종교 권력이 모두 뭉쳐서 반개혁전선에 뛰어들었던 결과가 지난 대선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투자를 잘 하는 이들은 모두 경제신문을 읽는다고 합니다. 다만, 읽는 목적이 투자 종목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천 종목을 피해가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단기적으로는 포스트잇님의 제안처럼 그들의 글의 권위를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조중동을 비롯한 이익집단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홍보물에 대한 맹신이 사라지도록 한 걸음씩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죽음은 당사자의 삶에 부합해야 한다. 우리는 죽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나는 항상 삶에 비추어 죽음을 해석한다. 그리고 누가 내게 물러 빠진 생애에 강렬해 보이는 죽음이 잇따른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는 그 죽음이 그의 인생에 어울리는 유약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덕이란 우리 안에서 생기는 선(善)의 경향과는 다른, 더 고상한 무엇인 것 같다. 저절로 잘 조절되고 천성이 훌륭한 사람들은 유덕한 사람들과 같은 길을 따르고 행동에서도 같은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덕에는 축복받은 천성으로 인해 온화하고 평온하게 이성이 이끄는 대로 자기를 맡기는 것보다 뭔가 더 위대하고 더 능동적인 울림이 있는 것 같다.

덕은 수월함을 친구로 삼기를 거절하며, 좋은 천성에 의해 조절된 발걸음이 저절로 향하게 되는 쉽고 순한 경사로는 진정한 덕의 길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진정한 덕은 쓰라린 가시밭길을 요구한다. 덕은 메텔루스101)가 겪은 것 같은, 그 꿋꿋한 행로를 좌절시키려고 운명이 즐겨 사용하는 외적 난관이나, 아니면 우리 본성의 무질서한 갈망과 불완전성이 야기하는 내적 시련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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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세운 공화국 - 9월 학살에서 왕의 처형까지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8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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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는 재판을 받았다. 왕권은 죽었다. 공화국이 태어났다 자유는 이 세계에 은혜를 베푸는 요소가 되었다. 인류의 원대한 희망은 완성의 길로 나아갔다. 모든 나라가 프랑스를 관찰하려고 본받으려고 경쟁했다. 모든 것이 이 세계를 해방시키려고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인류의 친구에게는 고통이요, 절망이다. 도덕은 오랫동안 후퇴했고, 인민의 해방은 반세기나 늦어지고, 인간의 행복은 가엾은 왕을 재판한 사실 때문에 유럽에 몰아닥친 끔찍한 폭풍우를 모두 몰아낼 때까지 뒷전으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329/342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8권 <피로 세운 공화국 - 9월 학살에서 왕의 처형까지 Liberte>는 공화정의 수립 후 루이 16세의 처형까지를 다룬다. 전제군주정을 무너뜨리고 입헌군주정을 정착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 16세는 도주 사건 후 불과 1여년 만에 기요틴의 제물로 사라지게 되었다. 루이 16세에 대한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진 것은 물론 도주사건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죄가 있음'을 인정한 항목 - 프랑스 국민을 반도로 규정한 일, 외국 군대를 불러들인 일 등 - 등에 대한 죄로 인해 그는 왕에서 일개 시민의 자리로 내려와야 했다. 이제 시민의 자리에 서게 된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사형을 시킬 수 있었다면, 어떤 근거에 기대서일까.

어느 나라나 조국을 배반하면 중형을 내린다. 루이가 가족을 데리고 국경 쪽으로 도망치다 잡혔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당시로서는 죽을죄였다. 그때는 제헌의회가 어떻게든 도주가 아니라 납치라고 사건을 무마해주었고, 헌법을 지키겠다고 멩세한 뒤 자격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1년 뒤에는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공화국이 섰으니 이제 왕좌를 되찾을 희망은 프랑스가 대외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는 데 있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61/342

<피로 세운 공화국>에서는 루이의 사형을 둘러싼 치열한 논의가 일어난다. 자신이 지은 죄로 폐위당한 왕을 재판할 권리가 없다는 의견과 프랑스 국민으로서 국민들에게 피를 강요한 잔혹한 죄는 피로써 갚아야 한다는 반대 의견. 지롱드파와 몽타뉴파의 치열한 대립은 '파리 코뮌'의 주도권 다툼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순한 권력욕이 아니라 민중의 분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기도 했다.

오늘날 국민만큼 권한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러나 국민이 모든 권한을 가질 수 있다 해도, 정당하지 않은 권한만은 가질 수 없다. 루이에게 적용할 법이 없음에도 국민이 루이를 처벌하기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루소의 말로써 대답한다. " 우리가 따를 만한 법이 없을 때, 또 판결을 내릴 재판관이 없을 때, 일반의지를 따를 수 없다. 일반의지는 보편적인 의지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 또는 어떤 사실에 대해 판결을 할 수 없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221/342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파리 코뮌은 8월 11일에는 과거의 상급기관인 파리 도 지도부의 권한을 정지시켰다. 구의 위원회, 치안판사, 치안관들과 법원 서기들의 권한도 정지시키고, 구 의회에 그 권한을 맡겼다. 이제부터 모든 구는 상시활동 체제로 들어갔다(p55)... 이처럼 '혁명코뮌'은 8월 10일 이후의 실세임을 국회가 인정했다. 국회는 파리 코뮌의 활동비로 10만 리브르를 책정해주었다. 파리 코뮌은 위원들이 3일에 하루씩 숙직을 하면서 중요 현안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그들은 파리에 남아 있는 봉건적 잔재를 모두 없애기로 결정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56/342

파리 코뮌이 처한 어려움은 민중들의 실망감에 근거한다. 파리 코뮌이 들어선 직후 실시된 인민재판과 '9월 학살'은 민중들의 삶을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했고, '빵'을 요구하며 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대는 실망감으로, 실망감은 분노로 바뀌었고, 이를 달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희생양으로서 앙시앵 레짐의 상징, 폐위된 왕 루이 카페(루이 16세)는 매우 상징적이었고, 적절했다. 국민을 향해 발포를 명령하고, 조국을 등진 최고책임자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는 '반혁명의 수괴'지만, 그를 사형시키는 과정에서 형식적 하자는 없었는가?

종합해서 보면, 9월 2일부터 6일까지 '인민재판'을 실시한 감옥에는 모두 2,500여 명이 갇혀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모두 1,090~1.395명이 학살당했다. 파리에서는 학살이 끝났지만, 인근의 베르사유/오를레앙/모/랭스에서도 학살사건이 일어나 모두 150명 정도가 희생되었다. 그 후 9월의 학살자를 뜻하는 명사 '세탕브리죄르 septembriseur', 동사형 '세탕브리제 septembriser'라는 새로운 낱말이 등장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12/342

의원들이 위기의식을 부추기면서 민중을 속이려 해도, 민중은 바보가 아니다. 농산물을 풍부하게 수확했음에도, 아직까지 외국에서 밀을 수입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외국에서 돈을 빌려와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민중을 우습게 보지 말라! 생필품이 부족한 것은 투기꾼 때문이다. 그들은 노르망디에 가까운 영국의 저지 Jersey 섬이나 다른 곳에 창고를 두고 공급을 조절한다. 국내의 창고에도 곡식을 쌓아놓고 풀지 않는 재산가, 대농장주들에게 밀을 시장에 내놓으라고 명령해야 한다. 감시를 강화하고 최고 가격제를 실기하고. 물론 그것은 자유주의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유와 평등을 고양시키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슨 할 말이 남아 있는가?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73/342

상퀼로트는 국민공회가 모인 지 두 달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느냐고 따졌다. 물론 그동안 왕의 자격을 정지시켰고, 군주정을 공화정으로 바꾸면서 민중의 염원에 보답했다. 그래서 민중은 평화와 질서를 기대했고, 올바른 선택을 했음을 확신하고 감사했지만, 행복한 시간을 더는 누리지 못했다. 모든 프랑스인이 루이를 벌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심판하지 않았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73/342

불과 다섯 표의 차이로 갈린 생(生)과 사(死)의 결정. 적은 표 차이도 문제지만, 국민공회 의원들의 대표성에 대해서도 의문들이 제기된다. 프랑스의 일부인 파리 시민들의 의견이, 그 중에서도 상당수의 결원이 발생한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이 프랑스 공화국의 향후 방향을 결정짓는다면, 이에 대한 정당성에 물음이 내려질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절차적 하자를 보완하기에 국민공회 의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국민공회 의원을 뽑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유와 평등에 충실하겠다고 맹세한 사람만 투표할 수 있었으며, 파리는 그 어느 곳보다 이 기준을 엄격하게 지켰다. 왕당파를 억압하는 도 departement가 많았고, 이렇게 해서 투표율은 아주 낮았다. 전국에서 유권자 700만 명 가운데 60만 명만 투표에 참여했고, 파리에서는 자코뱅파 5,000여 명이 파리 주민 60만 명의 의견을 지배했다. 아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한 시대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뽑힌 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파리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의가 열렸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29/342

비록 투표 결과가 내 생각과 다르게 나왔습니다만, 나는 그 결과를 존중합니다. 그리고 어떤 벌을 내려야할 지 결정하는 투표를 할 때, 나는 그가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집행유예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분명히 설명했습니다. 마침내 집행유예 문제를 투표하기에 앞서, 내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내 이익만 생각한다면, 나는 반대에 투표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기 때문에, 나는 살해당할지 모르지만 집행유예를 찬성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집행유예에 찬성하는 이유는 이처럼 중대한 재판에서 형식적인 결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재판은 단지 다섯 표 차이로 갈렸습니다. 이처럼 큰 차이도 없이 난 결정을 24시간 안에 집행한다니, 말도 안 됩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285/342

<피로 세운 공화국>에서는 국민공회의 왕정(王政) 지우기와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민심 이반과 외부와의 전쟁으로 어려움에 빠진 공화정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 결과 국민공회는 루이 카페를 사형시킴으로써 9월 학살은 정점에 이르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이 자신들의 나라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한 외국과의 대립은 더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1791년 10월 1일 입법의회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의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바뀌었으며, 외국 군대의 침략과 파리 코뮌의 정치적 간섭이 심해지고, 여전히 경제생활에서 중요한 빵과 생활필수품의 값이 치솟는 현실은 왕에게 느끼던 친밀감이나 존경심을 실망, 좌절, 배신감, 증오로 바꾸어놓았다. 이처럼 앞날을 제대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 가지만은 더욱 분명해졌다. 왕은 날이 갈수록 점점 불리한 상황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227/342

그는 만일 루이를 처형하면, 곧바로 영국, 네덜란드/에스파냐, 그리고 유럽의 모든 폭군과 전쟁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폭군들은 루이의 죽음을 개인의 죽음으로 보기 때문에 거기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자기 나라에 자유의 바람이 불까봐 두려워서 프랑스 공화국의 자유를 짓밟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29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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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26 1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
벌써 8권
며칠 못본사이에 이렇게나 진도를 나가셨군요.

겨울호랑이 2022-08-26 12:21   좋아요 3 | URL
네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이 우리의 현실과 생각하도록 만든 책이라 외국 역사임에도 참 가깝게 느끼고 읽게 되네요...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2-08-26 13: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본 책에선 혹시 ‘프랑스 혁명은 가난한 시민들의 혁명이 아닌 부자들인 부르주아 혁명이었다’란 취지의 설명이 있는지요?

겨울호랑이 2022-08-26 14:05   좋아요 3 | URL
사실, 직접적으로 저자가 직접 언급했는가는 잘 기억이... ㅜㅜ 다만,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프랑스 혁명사>는 수치로 보여준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1권에서 삼부회의 구성에서 대표가 되는 이들이 제3신분 중에서도 일부 계층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들의 거주지가 파리에 국한되었다는 사실 등이 구체적 수치로 제시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과 특징이 제헌의회, 국민공회 등에서도 이어졌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본문 전체에 걸쳐 담겨있다고 여겨집니다. 이와 함께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특정계층의 남성에 대해 주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기에 저자의 논조를 생각해본다면, 간단하게나마 (본문 어딘가에서는, 그렇지만 제가 기억못하는 지점...) 해당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

노란가방 2022-08-27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책이 있었군요.. 역시 책 잘 읽으시는 주변분들이 있어야 시야가 넓어지나 봅니다. 꽤 흥미로운 책일 듯하니 챙겨놔야겠습니다. 우선 지금 읽고 있는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를 끝내고....ㅠㅠ

겨울호랑이 2022-08-27 14:35   좋아요 0 | URL
앙시앵 레짐의 대가인 저자가 일반인들을 위해 프랑스 혁명사를 알기 쉽게 잘 정리한 시리즈라 생각합니다. 노란가방님 좋은 독서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