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연애할 때 나는 참 예뻤다.

그렇지 않을 때보다 거울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웃었다.

그건 어렸기 때문이라기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비로소 내 자신과 더 가까워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이솜, 『취향은 없지만 욕구는 가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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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타일러 스테이턴 지음, 홍종락 옮김 / 복있는사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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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기도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직접 경험한 기도의 중요성을 고백해 왔고, 많은 교회의 훈련 프로그램들도 바로 이 기도를 더 익숙하고 잘 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반복되는 강조는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란 얼마나 익히기 부담스러운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신앙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느냐와 상관없이, 그리고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아는 것과도 무관하게, 기도는 어렵다. 기도에 관한 책은 그래서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기도를 그렇게 쉽게 잘 할 수 있을까.


작년 말 갔던 한 모임에서, 일면식도 없었던 어떤 분이 이 책을 추천했다. 얼마 후 구입을 했고, 그분이 왜 이 책을 추천했는지를 살짝은 알 것 같다. 저자는 기도에 관한 깊은 통찰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관한 좋은 조언을 해 준다.





저자는 우선 기도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도록 요청한다. 단번에 몇 시간, 몇 날에 걸쳐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우선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그것이 하루 1분에 불과하더라도 기도를 하라, 그것이 중요하다. 기도를 할 때 무슨 유려한 말로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머무는 일이다. 앞서 말한 1분의 기도 동안 그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고 난 뒤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도 충분한 기도다.


하지만 일단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했다고 해도, 계속 그 자리에만 머무는 것은 무리다. 우리의 기도는 점점 더 풍성해져야 하고, 더 깊은 데로 나아가야 한다. 책 중반은 우리의 기도에 채워져야 할 “내용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배, 고백, 중보, 청원 등이다.


책 후반부는 기도를 하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다. 기도에 관한 신약성경의 동사 시제가 중간태라는 점에서 착안해 기도는 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통찰로 시작해, 침묵과 끈질김으로, 쉼 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살짝 아쉬운 것은 각 장의 구성이 논리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글들이라기보다는, 그 장의 큰 주제에 관한 이런저런 짧은 글들이 연속적으로 실려 있는 식이라는 점이다. 한두 페이지의 글과 그 다음에 나오는 글 사이에 별 관련이 없으니, 책을 읽어나가면서 흐름이라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짧은 칼럼들을 모은 느낌?)


하지만 그런 구성의 아쉬움을 넘어서는 내용의 충실함이 있다. 좋은 번역자의 도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문장들도 깊이가 있으면서 분명하게 전달되고, 그 안에 담긴 내용 역시 훌륭한 통찰과 작가로서의 훌륭한 능력을 보여준다.


예컨대 책 초반 저자는 서구 교회와 영적 호기심이 살아 있는 서구 세계 사이의 많은 관계가 끊어졌지만, “기도가 그 둘 사이의 접점”으로 남아 있다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우리의 기도가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가상의 무기력한 신에게 소극적으로 말을 거는 일에 불과”하다는 표현은 생동감이 있고,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멘” 사이에서만 들을 수 있는 (그러나 일상에서는 쓰지 않는) 상투적인 용어들로 가득 찬 기도를 한다고 위트를 섞어 비판하기도 한다. 이 정도의 글솜씨는 읽는 재미를 준다.


무엇보다 책은 기도에 관해 다시 한 번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늘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미뤄두었던 주제를 다시 우리의 우선순위 상위로 밀어 넣도록 만들어주는 셈이다. 당장 책 제목처럼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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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저는 이를 본다고 불쾌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신적 절름발이를 대하노라면 짜증이 인다.

다리가 불편한 이들은

나머지 다른 이들이 바르게 걷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마음을 저는 이들은 상대가 절뚝인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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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로레인 대스턴 지음, 홍성욱.황정하 옮김 / 까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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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영국의 과학철학자이자 후에 대법관까지 역임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새로 재무부 남작에 임명된 존 데넘 경에게 다음과 같은 임무를 지시했다. “그대는 무엇보다도 국왕의 특권을 지켜야 하는데, 국왕의 특권과 법은 서로 다르지 않고 국왕의 특권이 바로 법이고 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법에서 가장 우선하는 것이므로, 그대는 대권행위를 지키고 유지함으로써 곧 법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오.”(334) 베이컨의 이 지시는 당시 법에 관한 한 가지 인식을 잘 보여준다. 소위 국왕의 “대권행위”는 법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이 17세기의 이상을 21세기에 온몸으로 구현하는 반역자들을 목격했다.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은 통치 행위로서 그것이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제한사항들을 얼마든 어기더라도 정당하다는 대통령 변호인들과 여당의 궤변, 그리고 자기의 임무는 대통령을 경호하는 것이기에 사법부에서 발부한 영장도 얼마든지 무력을 동원해 거부할 수 있다는 왕조시대 호위무사에게나 걸맞은 의식을 가진 대통령 경호처(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기관)의 책임자들.(+ 그 외 온갖 모지리들)


여기서 우리는 법의 지위, 성격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읽어낼 수 있다. 법(조문에 쓰여 있는 글씨의 내용)은 어떤 경우에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일까, 법은 모든 상황을 충분히 다 고려하고 있는가(또는 그럴 수 있는가), 나아가 이런 법을 포함한 규칙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그 내용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들과 함께 규칙의 역사에 관한 연대기적 연구를 담고 있다.





사실 책 제목 때문에 정작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한참 헤맸다. 알고리즘과 패러다임, 그리고 법은 규칙이 갖는 서로 다른 양상들을 가리킨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는 “규칙”하면, 사람의 개입이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따르면 되는 무엇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애초의 규칙은 그런 식으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장 이른 시기 규칙은 어떤 사람이 따라야 할 ‘모델’을 가리켰다. 모든 면에서 그것을 닮을 것을 요구받지만, 대상을 완전히 모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초기 규칙서 중 하나인 베네딕투스 수도원 규칙서에는 수도사들이 따라야 하는 수십 가지의 규정과 그 이상의 세부사항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규칙서로도 수도사들의 모든 행동을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수도원장들에게 굉장히 높은 수준의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는 상황을 살펴서 규칙서의 예외적 상황들을 분별하고 허용해야만 했다. 그 당시의 규칙이란 규칙서라는 규정만이 아니라 수도원장의 재량까지도 포함하는 것, 일종의 패러다임이었다.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도 원래 의미와는 많이 달라졌다. 알 콰리즈미라는 이름의 아랍 수학자의 이름에서 온 이 단어는, 오늘날에는 어떤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명확한 명령어들의 기계적 집합 정도로 여겨지지만, 애초에 이 단어는 그 계산은 물론, 그 계산을 수행하는 인간들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이건 20세기까지 “컴퓨터”라는 단어가 계산을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가리켰던 것을 떠올리게도 한다.(영화 “히든 피겨스”를 참고하라. 명작이다.)





저자는 언뜻 기계적이고, 완벽할 것만 같은 “규칙”이라는 것에, 실은 얼마나 많은 예외적 상황과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지를 오랜 역사적 추적을 통해 잘 보여준다. 하나의 규칙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지난한 시행착오와 반발, 그리고 전국가적인 교육과 계몽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현대국가에 법치주의라는 이상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는지.


그런 차원에서 최근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과 폭동까지 저지르면서 그런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반란 옹위세력들의 움직임은 굉장히 우려스럽다. 우리는 법치주의가 꽤나 안정적이라고 착각하지만, 그건 그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가 그 체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을 때만 작동할 수 있는 섬세한 체제다. 대통령부터 나서서 사법부의 영장조차 거부하는 식으로 법을 무시하고, 나아가 메뚜기 같은 폭도들이 날뛰기 시작하면 그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던 체제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지난 20세기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일들은 수도 없이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때로 상식에 맞지 않은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보면서, 차라리 판사들을 AI로 바꾸는 게 낫겠다는 식의 말을 할 때가 있다. 판결을 온전히 기계적 결정의 영역으로, 그러니까 알고리즘으로 치환하고 싶다는 의미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은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법과 규정은 그런 식으로 구성되거나 작동되는 게 아니니까.


뭐든 깊이 들어가 보면 애매하고 모호한 영역이 잔뜩 나타난다. 그건 물리학에서 양자라는 별종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과정인 것 같다. 덕분에 책을 읽어나가는 게 쉽지는 않다. 특히나 제목 탓(?)도 좀 있는 것 같은데, 제목만 보고서는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짐작도 안 갈 뿐더러, 책의 구성 자체도 각 장의 내용은 이해가 되는데 장별로 어떤 연계를 지니고 있는지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다 읽고 나면 이게 규칙의 역사에 관한, 하지만 크게 보면 연대기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장별 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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