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레이디가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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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기획의 소설이다.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가 취미삼아 지인들과 일본식 짧은 시인 ‘하이쿠’를 짓는 모임을 만들었고, 그 모임에서 나온 하이쿠를 가지고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애초에 채 스무 자가 안 되는 짧은 시구 안에 심상을 담아야 하는지라, 상상력을 동원하도록 만드는 게 관건인데, 작가는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물론 각 하이쿠를 지은 사람들의 동의를 받았다는데, 재미있는 건 하이쿠를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원래의 시를 지은 사람들의 의도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는 점.


장르도 굉장히 다양하다. 모든 이야기는 현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한 이야기에서는 가까운 미래의 새로운 의학기술이 보이기도 하고(SF), 심령현상이 있는 이야기도 있다. 조금은 동화 같은 신기한 열매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한 명의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쓰기도 하는구나 싶은 느낌이 확 든다. 물론 단편들이긴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에 나름의 매력도 있고, 짜임새도 결코 단순하지 않아서 금새 빠져 들어간다.





서로 독립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일관된 흐름이 있다면(모든 이야기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쓰레기 같은 남자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부인의 등골을 빼먹으며 허송세월하다가 이젠 바람까지 피우는 모습을 장모에게 들킨다거나, 의심병이 도져 새로 사귄 애인에게 집착과 스토킹, 학대까지 일삼는 사이코,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애인을 납치해 강제로 업소에서 일하도록 만들려는 악질 등등.


책 후반에 실려 있는 작가의 이야기를 보니, 보통은 역사물을 쓰던 작가가 현대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자연히 매일 뉴스에서 보던 이야기들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런 뉴스들이 매일처럼 보이는 일본이라는 사회는 얼마나 지옥 같은 곳인가 싶은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는 일이기도 하니 피장파장이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책은 이전에 겨우 한 권 읽어봤을 뿐이지만,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가끔씩 쉬어가는 독서를 위해 선택해 보기에 충분한 작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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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자유의 브로맨스 - J.R.R. 톨킨과 C.S. 루이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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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와 J. R. R. 톨킨에 관한 책이 새로 나왔으니 안 읽어볼 방도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자의 이름이 좀 낯설다. 소개를 보면 꾸준히 책을 냈던 것 같은데, 내 독서 레이더망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제목들이다. 뭐 그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아무튼 루이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한 명은 더 늘어났다는 거니까.


이 책은 루이스만이 아니라 그의 친구였던 톨킨의 이야기까지 함께 다룬다. 여기에 제목에 ‘브로맨스’라는 단어까지 들어있으면, 이 두 사람의 우정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런데 사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미 비슷한 책이 나와 있다. 홍성사에서 나온 “루이스와 톨킨”이 그 책이고, 최근에는 같은 저자가 쓴 또 한 권의 비슷한 책 “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 문학클럽”도 나왔다. 이 책은 주로 두 사람이 함께 활동했던 잉클링스라는 모임에 좀 더 집중했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와는 좀 다른 방향에서 주제에 접근했어야 했는데, 결과는 어땠을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먼저 저자가 루이스와 톨킨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부터가 확신이 들지 않는다. 톨킨 쪽은 몰라도, 책에서 인용된 루이스에 관한 책들은(다섯 권, 잘 쳐줘서 여섯 권이다) 다 읽어본 상황에서. 책에 소개된 정도의 루이스에 관한 정보는 충분하지 못하다. 확실한 건 저자는 루이스의 팬은 아니라는 느낌. 루이스에 대한 저자의 언급은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관찰자적 입장일 뿐이다.


물론 무조건 팬이 될 필요까지는 없다. 인물을 잘 분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 예를 들면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쓴 루이스 평전의 경우 이런 서술적 거리감을 부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맥그래스의 책의 경우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정보와 통찰을 나름의 탄탄한 조사를 통해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일부 내용이 지나친 감이 있기는 했으나 읽을 만한 책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그런 유인점도 부족하다. 저자가 언급한 루이스의 책은 몇 권 되지도 않을뿐더러, 이 안에서 새로운 부분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물론 이건 내가 루이스 관련 책들을 너무 많이 읽었기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무신론자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루이스와 톨킨의 인생과 작품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점이었던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다. 아예 일부러 그런 요인들을 배제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려는 경향도 보인다.





그리고 책의 제목에도 있는 ‘브로맨스’라는 단어는 이 두 명성 있는 작가들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겠다는 말로 들렸는데, 정작 내용에서는 그런 부분이 매우 적다. 대부분의 내용은 두 작가에 대한 개별적인 고찰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물론 두 사람이 옥스퍼드에서 함께 지냈던 시간이 꽤 길었으니, 이 시기에 관한 서술에서는 함께 언급도 되지만 단순한 스케치에 불과하다.


책 후반부는 두 작가의 작품 속에서 저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들을 뽑아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는데, 저자가 골라낸 주제들이 아주 틀린 주장들은 아니긴 하지만 충분히 종합적인 이해였을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나 저자는 아나키즘에 대한 애착을 자주 보이는데, 그 때문에 이 두 작가들에게서 그런 요소들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루이스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대는 분명히 표했지만, 아나키즘에 대한 호의를 품은 적은 없다.


결국 책은 루이스와 톨킨에 대해서도, 그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썩 좋은 요약이나 정리를 하지 못했다. 브로맨스라는 용어는 거의 의미가 없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서 다룰 것으로 예상되었던 주제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콜린 듀리에즈의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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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2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홍규님 인문학 분야에서는 나름 유명한데 가방님 잘 모르시는가 봅니다. 근데 크리스찬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냥 영문학적 관점에서 다룬건 아닐까요? 평점은 높은 편인 것 같습니다만...

노란가방 2024-07-25 11:17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이렇게 또 저의 짧은 견문이 밑천을 드려내는...
본문에도 썼지만 저의 독서레이더망에는 안 걸리는 저자였던 것 같습니다.
평점 3점이면... 그냥 기본점수입니다. ^^;

stella.K 2024-07-25 11:27   좋아요 0 | URL
아니 다른 리뷰어들 평점을 보니깐요. 남들이 예스 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거죠. ㅋㅋ

노란가방 2024-07-25 19:54   좋아요 1 | URL
아하 다른 사람들이 준 평점 말씀이셨군요...
알라딘 평점 분포를 보니... 저 3점의 11.1%가 제가 준 평점을 반영한 거라면, 4점이 1명, 5점이 7명이네요.
저도 더 잘 소개된 책들이 이미 있다는, 그래서 이 책의 설명이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지 책이 나쁘단 건 아니었으니까요..ㅋ
 


창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위임인 것 같네.

하나님은 피조물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분 혼자서 처리해 버리지 않으시네.

그건 하나님이 주시는 분이기 때문 아닐까.

하나님은 오직 그분 자신을 주시네.

친히 창조하신 것들을 통해 그분의 일을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그분 자신을 주시는 걸세.


- C. S. 루이스, 『개인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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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범주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존재할 뿐

그 목적이 다하면 바로 버려야 한다는 사실은 잊은 채,

사람을 고정된 범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 차이가 있지만,

세상에서 근본적 차이란 그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

나이는 성차만큼 근본적입니다. 국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범주는 그것이 필요한 직접적 목적을 넘어서까지 강조되면

그룹들 사이의 반목을 형성하고 국가의 분열을 가져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도로시 세이어즈, 『여성은 인간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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