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유튜브에서 종종 보이던 광고다.

일제 불매운동으로 우리나라에선 한참 곤경을 겪던 유니클로에서 만든 새 광고.

MBC SPORTS를 비롯한 케이블 채널에서도 자주 보인다.

 

뭐 사실 옷을 그리 많이 사 입지도 않지만...

이 광고가 유니클로 홍보라는 게 꺼림직 했다.

하지만 가만 보면 내용이 더 신경쓰이는 게 있었다.

 

오늘 우연히 이런저런 뉴스를 보다보니

이 광고의 내용이 일제강점기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요구에 대한

노골적인 빈정거림, 조롱이 담겨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단다.

 

노인과 소녀가 등장해서,

자기 나이 때는 어떻게  입었었는지 기억하느냐는 소녀의 질문에

80년도 더 된 일을 누가 기억하느냐고 대답하는 노인.

문제의 그 '80년'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가 전국적으로 약탈되던 시기다. 사람도 물자도.

 

 

제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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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0-18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유니클로는 날씨가 쌀쌀해 지면서 한국상품중에 대체품이 없는 히트텍등을 위주로 일부 상품이 품절이 됬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그러다보니 일부 혐한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냄비근성이 다시 나왔다고 비웃고 있단 기사도 본 기억이 납니다.이런 와중에 유니클로 본사에서 저런 광고를 내 놓았다니 일본 유니클로 어떤 의도로 저런 광고를 방영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입장에선 무척 불쾌하고 분노를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군요.유니클로 불매 운동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려야 될것 같네요.

노란가방 2019-10-18 13:22   좋아요 0 | URL
정말 대체제가 없는 걸까요...
참 그렇네요... 에휴..
 

 

 

재미나게도 신앙에서는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

신을 믿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하든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신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에서는,

가령 약간의 좌절은 있더라도 그런 좌절에서조차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찾아낸 의미가 인생의 빛이 된다.

이 빛은 세상에 널리 흔한 빛이 아니다.

세상이라는 어둔 그림자 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나만의 기쁨이다.

 

-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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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쓰레기가 넘쳐나고, 십대의 불량 청소년들은 이유 없이 사람을 패고, 전철 안에서는 겨우 어린 티를 벗은 술 취한 금융가 회사원들이 여성들을 희롱하는 고담시. 망상에 빠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하는 일은, 작은 이벤트 업체에 소속되어 광대 분장을 하고 온갖 행사에 출연해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었다.

 

이런 하 수상한 시절, 최악의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란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코미디언이 되기를 원하지만, 사람들을 웃기는 일에 영 재주가 없어 보이는 플렉의 삶 또한 순탄치 않았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총으로 사고를 쳐버린 플렉. 그런데 사고의 여파가 이상하게 확산되었고, 여기에 어머니의 망상이 가득한 편지로 인한 희망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마침내 위태롭게 유지해 오던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조커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그렇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이 살아왔던 주인공이 어떻게 조커가 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그려낸다. 처음부터 불안 불안해 보이던 그의 삶에서 조금씩 희망이 사라져버리고 막다른 길에 몰려가는 과정이 호아킨 피닉스의 명품 연기로 묵직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처음부터 바닥에 붙어 있는 사람은 떨어질 데가 없는 법이다. 플렉이 조커가 되기 위해서는 조금은 높은 데로 올라설 (그리고 거기서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영화 속 플렉의 삶은 소위 루저의 전형이다.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 그러면서도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생각조차 해 보지 못하는 그였다. 그런 그가 어머니의 편지 속 내용을 보면서 순간적이나마 희망을 품었고, 그 희망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전에 있던 자리보다 훨씬 더 아래쪽으로 떨어져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긍정의 힘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의 강요가 수반된다. 현실은 어렵지만, 막연히 앞으로는 잘 되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그러나 고담시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희망이 더 큰 절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정작 그가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하나씩 치워지는데도, 아니 이제 사다리로 오르기에는 너무 높이 올라가고 있는데도, 20, 30년 전 3층집일 때의 이야기만 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희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어설픈 희망의 강요는 도리어 수많은 조커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만약 그처럼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진료소가 문을 닫는 대신 좀 더 체계적인 지원을 했더라면, 그저 남을 웃기고 싶지만 재능이 조금 부족한 이들에게 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더라면, 챨리 채플린의 영화 속 슬랩스틱을 보고 웃기만 하는 대신 그것이 풍자하고 있는 현실 속 문제들에 대해 좀 더 공감하는 사람들이 극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있었다면, 조커는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한 명의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 작품의 구성과 배우의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배경에 깔리는 음악이 멋있었지만, 내용은 조금 씁쓸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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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0-15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커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더군요.어떤분들은 너무 음울한 분위기의 영화로 본뒤 오히려 약간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하더군요.

노란가방 2019-10-15 23:04   좋아요 0 | URL
연기를 워낙에 잘 해놔서 인물에 너무 깊이 몰입하셨던 분들인가봐요.
저는 좀 거리를 두고 감상했던지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살짝 엿들은 주변 사람들의 평들도 갈리더라구요.
 

 

한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이 교회를 떠나는 시기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몰려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교회의 청년부는 변증을 가르치지 않고

게임이나 유쾌한 프로그램에 집중한다.

정서적 헌신의 수준을 높이는 각종 이벤트를 계획하고 운영하는 것이

청년부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체험의 강도를 높이면 지적 의문이 다 상쇄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서적 헌신의 강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오늘날 청소년들의 의문을 차단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런 체험이 무언가 이루는 것이 있다면

기독교 신앙을 순전히 정서적 관점에서 재정의하게 만든다는 것뿐이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지적 의문에 봉착할 때

더더욱 그 위기에 취약한 상태가 될 뿐이다.

 

- 낸시 피어시, 완전한 확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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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케일 -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탈규모의 경제학
헤먼트 타네자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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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경제와 사회동향에 대한 민감도가 보통 사람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다. 저자는 이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 비용을 줄이고 이익률을 높이는 과거의 패러다임은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점점 빠르게 발달하는 인공지능기술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규모에 의지해서 이전과 같은 식의 이윤을 얻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저자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지 않는 기업에는 아예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2부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탈규모가 이루어질지를 예측하는 부분인데, 이 중 몇몇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예컨대 발전분야에서는 대형 발전소가 아니라 각 가정 등의 소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해 사용하고 남은 것들을 되파는 형식의 양방향 전력이동이 가속화될 것이다. 의료분야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균적인 수준의 효과를 내는 약 대신, 개별 환자들에게 맞는 약이 활발하게 시장에 나올 것이다

 

     20년을 배워 남은 평생 써 먹는 식의 교육이 해체되고, 평생 배우고 평생 일하는 모델이 일반화되면 각자에 필요한 내용을 각자의 수준에 따라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이 널리 보급될 것이다. 개인의 상황에 맞는 금융거래와 운용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일반화될 것이고, 개인을 위한 뉴스와 오락거리들이 만들어지고, 대중이 아닌 개인을 위한 제품들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미래에는 확실히 이런저런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미 대중이 중심이었던 지난 세기와는 다른 새로운 움직임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니까. 물론 이런 변화들이 모두에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던 이들만이 아니라 이전 시대에 익숙해져 새로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뒤쳐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기술적 도약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도 있다. 광범위한 정보의 공개와 가공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개인에게 맞춘 약은 충분한 검증을 거치기 어렵고 부작용의 위험도 있다. 여기에 개인 맞춤형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늘어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소비를 초래해 환경에 위협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저자도 책 말미에 몇 가지 우려들을 제시하면서, 간단히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그게 뭐 어디 누가 규칙을 제안한다고 해서 잘 지켜지는 것일까. 어차피 탈규모화된 산업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를 것이고,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규제하기도 훨씬 더 어려워질 텐데 말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우리가 우려하고 저항한다고 해서 미뤄질 일이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으니까. 어떤 이들에게 이런 변화는 확실히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비단 이건 사업의 영역에만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듯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기술을 제대로 접목하지 못한다면, 힘은 힘대로 들고 결과를 결과대로 시원찮게 나오게 될 것이다

 

     ​탈규모화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갖출 필요가 없다. 어지간한 것은 모두 빌려서 사용할 수 있고, 중요한 건 그것을 잘 구축해 낼 수 있는 기능이다. 물론 탁월한 원천기술의 가치는 여전하겠지만, 그것도 적절한 수단을 동원해 사용할 수 있을 때에야 제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관련 내용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다가올 변화에 관해 꽤나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는 책.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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