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어디로 가나? - 12.3 계엄 이후
권수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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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의 이름이 다 쟁쟁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로 이름을 올린 여섯 명 중 다섯 명의 책을 이미 최소한 한두 권씩은 읽어봤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책으로 엮었다. 제목의 맨 앞에 붙어있는 수식어처럼, 이 책은 12.3 계엄을 전후로 한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점들을 모았다.


첫 글에서는 권수경이 권력과 재물, 이념을 우상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고, 역사신학을 전공한 배덕만은 트럼프로 실체화된 미국 교회의 근본주의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진단한다. 옥성득은 한국교회 내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는지를, 박성철은 이른바 ‘기독교 극우’의 출현을, 백소영은 한국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한 비판을 각각 제시한다. 마지막 글에서는 장동민이 영성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한 제언을 한다.





각각의 글들이 모두 읽어볼 만하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돌아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거의 모든 일에는 전사(前史)가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여러 부분에서 미덥지 못하게 된 건 어느 특정한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에서만 그 연유를 찾아서는 안 된다.


예컨대 국가조찬기도회(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라는 모임만 해도 그렇다. 국가조찬기도회라니, 우리나라는 국교가 헌법으로 인정되지 않는 나라다.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붙어 있는 ‘국가’라는 단어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다양한 정부측 요인들이 참여하거나 주최한다는 의미이고, 여기에 소위 재벌로 불리는 경제인들까지 잔뜩 참여하는 정경유착의 장으로 전락해버렸다.


박정희 시절 교회 길들이기와 정권 정당성 홍보를 위해 시작된 이 모임은 불과 얼마 전 이 모임의 회장이었던 한 건설사 회장이 1억의 뇌물을 김건희에게 바친 대가로 자신의 사위를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올린 것이 발각되었고, 부회장인 이배용 역시 마찬가지로 김건희에게 금거북이를 바치고 국가교육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임명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비위에만 집중하지만 애초에 이런 모임 자체가 문제였던 것.


여전히 어지간한 규모의 교회 목사들은 여기에 초대되고, 기도나 설교를 하는 것을 무슨 명예인 양 착각하지만, 서울 시내의 비싼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면서 하는 기도가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 자리에 참석한 정치인, 경제인들을 만나고 온 게 자랑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드럽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왕궁으로 가는 것이(눅 7:25) 과연 그리스도의 길이겠는가.





다만 이런 짧은 발제글의 모음집이라는 특성상,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깊은 분석과 정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흥미로운 주제들이 있어서 더 아쉽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흐르는 글이 없고, 현실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면서 분석과 해법을 제안하려고 애쓰는 부분이 좋다. 여성문제와 관련된 챕터는 12.3 계엄이라는 큰 주제와 어느 정도 밀접한 지는 살짝 의문이지만.


책의 구성상, 그리고 내용상 마지막에 결론처럼 실려 있는 건 “한국교회 공적 영성의 재구성”이라는 글이다. 다른 글들이 주로 비판점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느낌인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성령에 대한 관심 환기, 영성의 회복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이 글 자체도 내용이 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긴 한데(더 잘, 더 많이 담으려는 욕심이 많았다), “성령이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지 못하고 체제에 밀착하거나 종속될 때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는 지적에 핵심이 담겨 있다.


결국 교회의 정치(권력) 종속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그건 교회가 속세를 지배했다고 알려진 중세에도 마찬가지였고,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바람처럼, 세상을 만드시고 뒤집으시는 성령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에는 좀처럼 반전, 혹은 부흥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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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태양을 먹어치우는 아스트로파지라는 미생물로 인해 위기를 맞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12광년이나 떨어진 타우 세티로 보내진 주인공 그레이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그레이스는 홀로 이 미지의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로키라는(물론 이 이름은 나중에 붙여준 것) 외계인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흥미진진해진다.


로키 역시 자신의 별에서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와 있었고, 두 과학자들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급조한 통역기로 서로의 말을 이해하게 되고, 특수한 재질로 된 장벽과 우주복으로 함께 다닐 수도 있게 된 그들. 마침내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았지만, 또 하나의 문제, 그레이스에게는 돌아갈 연료가 없었다. 이 임무는 처음부터 이른바 자살임무였던 것.





외계인과의 협력.


영화의 대부분은 그레이스와 로키의 합동 작전에 할애된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른 존재와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영화 속에서는 종(種, species)마저 다른 상황이었으니 어려움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 낸다. 대개 외계인 하면 지구를 침략하고, 싸우고 하는 이야기들이 주가 되는 영화계에서 꽤 신선한 전개다.


한편으로 외계인과도 가능한 협력이 정작 인간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안 되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툭하면 혐중을 일삼는 머저리들이 널렸고, 온갖 음모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상대를 저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공당의 대표라는 인간이 나와서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향해 욕설에 가까운 언사를 내뱉을 정도니 말 다했다. 나라 밖 사정도 마찬가지고. 헐리우드에서 떠들어대는 것과 달리, 우리는 외계인이 아닌 지구인들끼리 싸우다 멸망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자기희생.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후반부에 나온다. 마침내 아스트로파지의 해결책을 갖고 지구로 돌아가려던 그레이스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갈 연료를 날려버리고 만다. 자신만 돌아가거나 아니면 해결책만을 담아 보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부를 보면 그레이스는 남기로 했나 보다.


사실 그레이스는 이 임무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우주선을 발사하기에 적합한 시간이 곧 다가왔고,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고(사실 우주인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미심쩍다), 결국 그를 강제로 잠을 재워 보냈던 것. 심지어 애초에 돌아올 수 없는 임무에 말이다. 영화 제목에 나오는 헤일메리란, 미식축구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때 상대편 진영을 향해 있는 힘껏 멀리 공을 던지는 작전을 말한다. 말 그대로 도 아니면 모라는 작전.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계획이다.


그렇게 지구로 돌아갈 연료 없이 보내진 그레이스. 어떻게 보면 지구는 그를 버렸고, 그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지구를 위해 어렵게 얻은(로키가 자신의 연료를 주어서) 돌아갈 기회를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독서모임에서 이 주제를 놓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보았는데, 의외로 전쟁과 같은 극한적 상황이라면 자기희생을 충분히 할 수도 있다는 대답들이 많았다. 아직 세상은 살만 한 건가.





그가 돌아온 이유.


영화의 결말이 꽤 인상적이다. 결국 지구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그레이스는 로키에게로 돌아왔고, 그레이스에게 연료를 주어서 6년은 더 연료가 만들어질 때까지(아스트로파지가 분열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던 로키와 감격의 재회를 한다. 어쩌면 그는 지구에 있는 인간들보다 바위 덩어리처럼 생긴 로키에게서 좀 더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또 그게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결국 지구인들이라는 건 가기 싫다는 사람에게 약까지 먹여 잠재워서 돌아올 수도 없는 임무에 보내버린 것들이니까. 그 뒤에 아무리 인류의 운명 같은 묵직한 무엇인가가 얹혀 있어도, 본인이 싫다는 데 억지로 강요하는 게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을 터. 그에 비해 로키는 처음 만났음에도 (심지어 종도 다른데도) 그레이스를 위해 6년이라는 시간을 추가로 더 기다리기로 했으니까.


가끔 ‘동물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하는 류의 말들을 한다.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어지간히 컸기 때문이겠지만, 그리고 실제로는 동물들 사이에서도 (사람 입장에서 보면) 배신이 자주 일어나긴 하지만, 그만큼 신뢰를 주고 또 받는 일을 우리가 갈구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아주 깜찍한 꼬마 외계인들이 잔뜩 등장해 시끌벅적한 학교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편안하게 나올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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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영상과 AI가 쏟아지는 시대 속에서, 묵묵히 '문서 사역'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
큰 돈은 못 벌어도 이 사역을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고 말하는 '3세대 막내' 출판인의 고민부터, 단순히 종이책을 넘어 릴스, 쇼츠, 웹툰으로 확장되어야 할 기독교 콘텐츠의 미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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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푸는 식사에서 힘을 북돋는 식사로 바꾸기 위해서는

몸이 설탕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한다.

갈망을 억제하는 미네랄,

지방 연소 모드로 전환해서 탄수화물 욕구를 줄이는 건강한 지방,

지속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적절한 단백질,

그리고 만족감, 보상, 편안함을 계속 느낄 수 있도록

대체 수단을 마련하는 생환 습관 개선 등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스위치를 끄고 켜는 식이 아니다.

좋은 음식을 더 많이 섭취하여

이제까지 먹었던 나쁜 음식을 자연스럽게 줄여 나가는

점진적 과정이다.


- 대릴 지오프리, 『설탕 중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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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 6장을 함께 읽으며, 인간이 왜 끝까지 움켜쥐려 하는지, 왜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것을 더 챙기려 하는지를 살펴봅니다.
천국은 누리는 곳인데 우리는 왜 늘 소유하려 할까요? 루이스가 그려낸 한 욕심 많은 유령의 모습 속에서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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