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드리는 기도, 숨 쉬는 모든 순간 - 불안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집중하며, 영을 새롭게 하라
제니퍼 터커 지음, 전의우 옮김 / 아바서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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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숨을 불어넣으셨다고 기록한다(창 2:7). 그 호흡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은 흙뭉치에서 생명으로 바뀔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셨고(요 20:22), 제자들은 성령을 받게 되었다.


성경에서 숨, 호흡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자율신경계에 의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호흡이긴 하지만, 물에 빠졌다든지 하는 급박한 상황이 되면 숨을 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다.


그런데 특별한 방식으로 호흡을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그리도 몸에도!) 안정감을 주고, 특별한 집중을 하도록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출산 과정의 산모는 통증을 줄여주고, 안정감을 갖는데 도움이 되는 라마즈 호흡법이라는 것을 하도록 교육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적절한 호흡법은 우리의 기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실 기독교 전통 가운데는 이런 호흡이 단순히 육체적 생명유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던 이들이 있었다. 다분히 이지적 신학 탐구에 집중하는 서방교회 전통을 따르는 우리는 이런 것들을 낯설게 느끼겠지만,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보는 정교회 전통 가운데서 호흡은 확실히 좀 다른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은 호흡과 기도를 조합시키는 흥미로운 시도를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말씀”, 즉 특정한 성구를 뽑아서 그 짧은 성구를 반복하는 방식의 기도를 제안하는데, 이 때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들숨과 날숨에 성구를 얹어서 하는 독특한 방식을 소개한다. 책에는 80여 개의 기도 주제(관련 성구)가 소개되어 있는데, 페이지의 좌측에는 기도의 상황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우측에는 들숨과 날숨에 담을 성구가 짧게(대개는 한두 문장으로) 배열되어 있다.


다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 염려가 되었던 것인지, 책머리의 몇 페이지를 이 책에 담긴 이른바 “호흡 기도”라는 것이 단순한 명상이나 뉴에이지적 무엇과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요컨대 저자가 소개하는 건, 우리의 호흡을 기초로, 잘 선택된 성경구절을 반복적으로 읽고 묵상함으로써, 하나님께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자는 것.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기도에 관한 책을 읽거나 가르칠 때 자주 빠지는 함정 가운데 하나는,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가르쳐 주면 기도를 하게 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실제로 기도란 이론도 이론이지만 아주 짧고, 사소하고, 작은 것부터 하나님께 아뢰며 그분을 의지해 나가는 경험의 축적으로 배워가는 것이니까.


여기 나오는 기도는 쉽고, 꽤나 효과적이다.(다만 특성상 대표기도 자리에는 쓰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책을 읽다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것만으로도 기도의 문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은 말을 하려고 애쓰느라 정작 제대로 기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꼭 여기 발췌해 둔 성경구절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많은 성구를 가지고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기도법을 소개받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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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번트와 페이지메이커에서 새 일을 벌인답니다! ​ 


일시 :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1~6시

장소 : 채그로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4다길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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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영이

다치거나 파괴된 생명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제공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가 이 땅에서 병자들을 치유하였듯이,

부활한 예수도 이 땅에서

생명의 고통과 죽음을 가져오는 질병을 치유할 것이다.

폭력적으로 파괴된 생명이 온전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예수는 생명을 일으킬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너지고 다치고 파괴된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공간과 시간과 힘을 부여할 것이며,

그래서 타고날 때부터 그에게 부여된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정의 때문이다.

나는 정의가 하나님의 본질과 열정이라고 믿는다.


위르겐 몰트만, 『나는 영생을 믿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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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신학 - 당신의 소명을 재구성하라
폴 스티븐스 지음, 박일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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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바탕의 표지에 흐릿하게 처리된 두 남녀가 팔짝을 끼고 있는 뒷모습이 박혀 있다. 왠지 등이 살짝 굽어 있는 듯한 느낌으로 보아(그리고 제목으로 보아) 두 사람은 노인 부부가 아닐까 짐작된다. 그리고 여기에 붙어 있는 제목, 나이듦의 신학. “나이듦”이라는 한글 표현이 왠지 귓전에 계속 울리는 듯하다.


다만 여기에 “신학”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찾아보니 원제는 “Aging Matters”이다. 그냥 나이듦이라는 문제, 나이듦이라는 현상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텐데 “문제”나 “현상” 같은 단어가 우리말로는 좀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는 듯도 해서 고민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책이 신학적인 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중심은 하나님보다는 노화를 경험하는 우리들에 대한 조언 쪽이라 신학이라는 말이 최선일까 싶었던 건데, 나름의 고민의 결과물인 듯. 그리고 먼저 나왔던 같은 저자의 책 “일의 신학”(원제는 Work Matters)과 연속성을 준다는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인생 후반기’에도 여전히 소명이 필요하며, 소명을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고, 2부에서는 나이듦에 관한 성경적 검토(영적 의미, 악덕과 미덕)를, 3부에서는 이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관한 실제적인 조언들이 담겨 있다.


책 초반 저자는 은퇴라는 개념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나 처음 등장했다고 언급하면서, 인류는 대개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일을 그만두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즉, 일정 나이가 되면 일에서 물러나 연금을 받으며 이제껏 미뤄두었던 여행이나 다니며 편하게 산다는 이미지가 현대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그리고 다른 많은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다분히 상업적 동기가 끼어있는 것 같다.)


대신 저자는 우리가 은퇴 이후에도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일은 젊은 시절 했던 것과는 형태도, 목적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우리가 받은 소명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요새는 경제적인 이유로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기에는 신학적 이유도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 유명한 목사가 은퇴한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설교를 하고, 매년 1억이 넘는 사례비를 받으면서도, 그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는 아들이 개척을 해야겠으니 개척자금으로 40억을 요구했다는 뉴스가 교계에 떠들썩하다.


개인적으로 그분의 책을 읽어보거나 설교를 찾아 들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서 훌륭한 목회자라는 칭찬이 있었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말년이 참 추레해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어디 이 분만 문제였을까. 유명하지 않아서 눈에만 안 띄었다 뿐이지, 여기저기 분별력이 흐려진 늙은 목사들이 많다. 얼마 전엔 탤런트 출신으로 뒤늦게 목사가 되었다는 어떤 양반이 극우집회에 나가 막말을 쏟아내는 영상도 돌아다니는 걸 봤다. 그 벌을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그러는 걸까.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좋은 ‘어른’이 없는 사회가 안타깝다는 것이다. 책에는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꼭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나이는 먹었지만 성화도, 지혜로움도 얻지 못한 늙은이들이 곳곳에 박혀서, 잠언에 나오는 거머리처럼 족한 줄을 모르며 한없이 주변의 양분을 빨아들이고 있는(잠 30:15) 세상이다.





나이는 그저 숨만 쉬고 있어도 먹을 수 있지만, “어른”이 되는 건 다른 모든 일들처럼 분명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노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특별히 우리 안에 있는 악덕들을 제거하기 위해 애쓰면서 미덕에 물을 주어야 한다. 우리는 평생 그래야 한다.


우리의 앞날을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죽음이 그것을 끝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고작 60년, 70년만 사는 존재인 것처럼 나이를 먹어가며 배움을 그치고, 아무 소망 없는 사람처럼 소비적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만 할까.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좋은 늙음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중년이 되었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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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을 짓는 지역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댐을 짓는 과정에서 방출된 메탄을 고려하면

50년에서 최대 100년까지

댐이 석탄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방출하는 셈이다.


- 빌 게이츠,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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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2-0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수력발전을 하기 위해 댐을 짓지 않는다면 결국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지울수 밖에 없기에 온실가스는 더 많이 배출되지요.그 해결적으로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열발전이나 풍력발전을 하지는 주장이 있지만 결국 유럽의 예에서 알수 있듯이 한계가 있지요.
그러다보니 친환경 발전을 하자면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했던 유럽이 슬그머니 다시 핵 발전소를 짓자는 촌극을 벌이고 있지요.

노란가방 2026-02-05 12:26   좋아요 0 | URL
아, 본문을 잘못 읽으신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화력발전소가 100년씩 운영되지도 않는 못하는 상황에서(설계수명은 30년), 수력발전이 화력발전보다50년에서 100년간 온실가스를 더 배출한다면 (그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유리) 애초에 환경 문제, 특히 온실가스를 이유로 수력을 주장하는 논리 자체가 허황되다는 내용이지요. 수력이 ˝더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게 진실이니까요.

인공지능의 발달과 그걸 돌리기 위한 데이터센터, 전세계적인 경제성장을 감안한다면 전력수요는 앞으로도 급격하게 늘어나게 될 겁니다. 어디선가 전기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엄밀히 말하면 친환경적이지도 않은 풍력이나 조력, 태양열 등등으로는 한계가 있고요... 결국 핵발전으로 가는 게 현실적인 대안인데 폐기물 문제가 좀처럼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니 답답한 상황이죠.

물론 인류 전체가 지금보다 딱 50년 전의 생활수준으로 돌아가서 만족하고 산다면 깔끔하게 해결될 문제긴 할 겁니다. 석기시대로 돌아가면 더 좋고요.. ㅎㅎ

카스피 2026-02-05 14:5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은 현실적으로 지금의 전력량과 앞으로 필요한 전력량을 계산해보면 화력이나 수력 혹은 친환경발전으로 수요가 부족하니 결국은 원자력 발전으로 가는 수 밖에 없는데 환경론자들이 이를 극렬하게 반대하다 보니 유럽에서 선도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폐지하다 결국 전력 대란을 맞이했던 것이죠.
결국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처리 방밥을 개발하고 한편으로 지속적으로 친환경 발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연구에 비용을 쏟아 부여야 할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