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은 우리의 본성적이고 본원적인 병이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상처 입기 쉽고 취약한 것이 인간이요, 동시에 가장 오만한 것도 인간이다. 인간은 자기가 세상의 진창과 똥 가운데 살며, 우주에서 가장 활기 없고 무기력한 가장 나쁜 부분에 매여 못 박혀 있고, 하늘의 궁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지막 계단에서 세 가지 조건) 중 가장 나쁜 조건을 가진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지각하고 안다. 그러면서도 상상으로 자기를 달의 궤도에 올려놓고, 하늘을 자기 발밑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우리가 자의(自意)와 재주로 하는 일을 짐승들은 부득이한 선천적 성향으로 한다고 볼 명백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나는 말한다. 같은 결과는 동일한 능력에 기인한다고 결론지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가 행동할 때 쓰는 바로 그 사고력과 방법이 동물들의 것이기도 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전혀 본성적 제약을 못 느끼면서 왜 그들에게만 그런 선천적 제약이 있다고 상상하는가?

우리는 평범한 일보다 기이한 일에 더 감탄하며 높이 평가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시간을 끌며 길게 늘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생각엔, 누구라도 우리와 함께 사는 동물들에게서 일상적으로 보는 것을 가까이서 관찰하면 다른 나라 다른 세기에서 수집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많은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운행은 언제 어디서나 여일하다. 그것의 현 상태를 충분히 이해한 사람은 모든 미래, 모든 과거에 어떠할지도 적확하게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즉 소망, 믿음, 놀라운 사건들, 의식(儀式), 회개, 순교는 어느 종교에나 있다. 우리 진리만이 갖는 특별한 표지는 우리의 덕성이어야 할 것이다. 덕이야말로 가장 얻기 어려운 천상의 표지요, 진리가 만들어 내는 가장 값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성의 충고 없이 우리 마음에서 생겨나는 어떤 감정의 움직임이 있다. 어떤 이들은 공감이라고 부르는, 이유 없는 애정이다. 짐승들도 우리처럼 그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말들이 서로 친해져서 결국 따로 키우거나 따로 여행시키기가 괴로울 지경이 되는 것을 본다.

죽기 마련이고 허약해 빠진 것들이나마 우리가 가진 기능들이 우리의 거룩하고 신성한 신앙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어서, 천성적으로 죽기 마련이요 허약한 대상에 그것들을 사용하면 더없이 적합하다는 점은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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