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에서 1차 대전의 원인 또는 발생 배경을 두 가지 관점 또는 수준에서 논의하였다. 1차 대전 발발 당시까지의 국제 관계 속에서 배태한 기본적 갈등 구조, 즉 영국과 독일의 대결구조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본 것이 그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발발의 도화선이 된 발칸 지역의 정치 상황과 그것을 통해 표출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갈등 구조의 검토였다.(p149) <1차 세계대전의 기원> 中 


 <1차세계대전의 기원>에서 저자 박상섭 교수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영국-독일의 갈등과 함께 각각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로 대표되는 '범(凡)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의 충돌에서 찾고 있다. 이를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1차 세계대전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 사건이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당시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영국에 대한 독일의 도전이라는 점으로 요약된다. 즉 그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언급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두 최강국의 대결에서 비롯되었고 또한 단순히 두 국가의 충돌로 그치지 않고 그 두 국가에 의해 지탱되던 권력 배분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p55) <1차 세계대전의 기원> 中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1866),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1)을 통해 제국으로 도약한 독일은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새로운 유럽의 맹주로 영국을 위협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영국이 위협적으로 생각한 것은 늘어난 독일의 철강 생산량도, 아프리카의 카메룬, 나미비아 등으로 진출한 독일식민지도 아니었다. 그보다 영국이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독일 해군(海軍)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럽의 군비경쟁(軍備競爭)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것은 바로 건함(建艦) 경쟁이었는데, 그 중심에는 해군과 관련한 두 강대국의 대립이 놓여 있었다.


 영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인 독일의 위협은 식민지 갈등이라는 지엽적인 문제보다는 기본적으로는 영국이 그동안 3세기에 걸쳐,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는 거의 한 세기 가량 중단 없이 누려온 해상 패권에 대한 독일의 도전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p60)  <1차 세계대전의 기원> 中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1813 ~ 1907)으로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웠던 영국이었지만, 그들에게 중앙아시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국 유지를 위한 해양력(海洋力)이었기에, 영국은 러시아와도 기꺼이 손을 잡을 정도로 해군력은 영국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결전이   독일과 덴마크에 걸쳐 있는 유틀란트(Jutland) 반도에서 벌어졌다.


[사진] 유틀란트 해전(출처 : 위키백과) 


 이른바 유틀란트 해전(Battle of Jutland, 스카게라크 Skagerrakschlacht(독))은 해전사에서 최대의 해상 조우전이자 최후의 순수한 해상 조우전이 될 터였다. 두 나라 해군이 만들어낸 비참한 광경은  전투에 참여한 자들의 기억을 떠나지 않았다... 유틀란트 해전은 해전사에서 가장 많이 기록된 전투이며 학자들 간에 가장 큰 논쟁의 대상이었다. 공식, 비공식 역사가들은 두 함대 사이의 교전을 거의 분 단위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분석했지만, 무슨 일이 왜 벌어졌는지, 실로 그 결과가 영국의 승리였는지 독일의 승리였는지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p388) <1차 세계대전사> 中


 치열한 전투였지만, 전투에 대한 평가가 모호한 것은 유틀란트 해전만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성격 자체를 규정하는 것 역시 이전 전쟁과는 달리 어려움이 있는데, 이는 이 전쟁이 국가 총력전(總力戰)의 성격을 가진 최조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총력전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1차 대전의 다른 기원인 '범슬라브주의-범게르만주의'가 발칸 반도에서 충돌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이중왕국 체제 안에서 자치권을 누리던 헝가리의 영토 안에는 세르비아인이나 크로아티아인 같은 남슬라브계 소수민족과 루마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는데, 이들에 대한 헝가리의 차별 정책은 대단히 가혹하여 인접한 루마니아와 세르비아와의 첨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민족국가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의 국내 정치는 바로 국제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p108) <1차 세계대전의 기원> 中


 총력전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철도(鐵道 railroad)'가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세기 유럽의 도시가 농촌을 정복하는 도구로 활용되었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KTX를 통해 지방중소도시 경제권을 붕괴시키고 있을 정도로 (빨대 효과) 철도는 지금도 경제적으로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철도의 위력은 당시에는 현재보다 위력적이어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전투 인력의 공급(supply)을 담당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급된 인력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을 처리한 것은 맥심 기관총(Maxim gun)으로 대표되는 현대 무기였다. 막대한 인력의 공급과 수요의 접점에서 쌓여가는 것은 전사자와 부상자였으며, 전선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참호전(塹壕戰  trench warfare)의 모습이었다.


[사진] 프랑스 협궤철도(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346917977523721498/)


 특히 독특한 것은 기차 기계인데, 이것은 선로와 차량을 결합해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독립체를 형한다. 그 기계는 사람들이 가득 찬 객차를 이끌고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도시와 마을을 통과해 사람들을 빠른 속도로 이동시킨다. 여객 철도 시스템은 일상생활 외부에 국한되지 않고, 공업, 노역, 보안의 장소로부터 벗어나 있다. 철도  기계는 농촌을 일정한 속도로 통과하면서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일상의 사회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변형시킨다. 처음으로 기계가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 경험의 전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비록 북미보다는 유럽과 일본에서 훨씬 특징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농촌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철도는 자연, 시간, 공간의 기존 관계를 재구조화한다.(p179) <모빌리티> 中


 1830년대에 시작된 유럽 철도망의 건설은 도보와 말을 이용했을 때보다 부대의 이동과 보충을 어쩌면 열 배까지도 더 빠르게 함으로써 전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철도가 등장하기 이전의 병참은 언제나 무계획적이었다. 또한 동시에 융통성을 허용하기도 했다... 철도는 평시와 마찬가지로 전시에도 엄격한 운행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아니 평시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p44) <1차 세계대전사> 中


 기관총, 독가스, 철조망으로 대표되는 제1차 세계대전의 비참한 전투 현장에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전반을 관통하는 인간 이성(reason)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무너지게 되었고, 이러한 절망감 속에 전쟁에 대한 짙은 회의는 빠르게 번져나가게 된다. 이미 1917년 즈음에는 거의 모든 나라의 군대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같은 해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은 급속하게 종결을 맞이 하게 된다. 

 

 이제 전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선이 교착되어 적군과 아군이 마구 뒤섞였고, 아군의 거점들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병사들은 굶주림, 갈증, 추위, 눈과 비, 수면 부족, 배설물과 부패한 시체에서 풍귀는 악취 등 온갖 고통을 다 겪었다.(p283) <사생활의 역사 5> 中

 

 병사들은 어떻게 4년 이상을 '버틸 수' 있었을까?... 마지막 가설은 모든 병사들이 민족주의 윤리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인데, 당시의 민족주의는 알사스와 로렌의 상실로 한층 더 격화되어 있었다. 진짜 '애국교'라고 할 만한 것이 생겨났다. 민족주의는 우파와 좌파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였다. 오로지 극소수 좌파만이 이러한 가치에 이의를 제기했다. 1914년 국제 협력 체제의 완전한 붕괴는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로 설명된다.(p287) <사생활의 역사 5> 中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은 컸고, 전승국들은 승리에 대한 배당을 나누어야 했다. 영국의 경우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견제를 위해 중동 지역에는 독립에 대한 약속을, 유럽에서의 전쟁 수행을 위해 인도에서의 자치 약속을 했지만 이들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민족자결주의(self-determination)는 패전국의 지배지에서만 적용되는 원칙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었다는 사실은 민족자결주의가 한국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1916년 초에는 아랍 비밀결사 지도자인 아지즈 알 미스리가 외교언어인 프랑스어로 쓴 서신을 키치너에게 보냈다. 그가 개진한 내용은 이랬다.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완전하고 참된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지 않는 한 아랍어권 중동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영국의 지배도, 보호령도 아니다(non pas une domination ou un protectorat)... 키치너와 그의 부하들이 아랍의 지지를 절박하게 원하면서도, 후세인이 원하는 대가는 지불하려 하지 않고 위조화폐만 남발하는 속임수를 쓴다는 것이었다.(p281)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저(간디)는 이미 자치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자치는 무기의 힘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폭력은 인도의 땅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영혼의 힘에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P168)... 어떤 영국 성직자의 생각을 제가 다시 표현하자면, 자치 아래 무정부 상태가 질서 잡힌 식민 통치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 고상한 성직자가 생각하는 자치의 의미와 제가 생각하는 인도의 자치는 다릅니다. 우리는 배우고 가르쳐서 영국의 통치든, 인도의 통치든 폭정을 몰아내야 합니다.(P169) <힌두 스와라지> 中


 1919년 3.1운동 100주년을 한 달 정도 앞두고, 간략하게나마 제1차 세계대전을 정리하는 페이퍼를 작성해본다. 계몽주의(啓蒙主義)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인간 이성(理性)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붕괴되는 계기가 되었던 제1차 세계대전 The first World war). 이 전쟁이 큰 전쟁(大戰)으로 역사에 남지 않고, '제1치' 라는 수식어를 달게 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류가 이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국제 정세와 이를 알지 못한 1919년 우리 조상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 2019년 3.1 100주년을 맞는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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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30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2-01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필 사진을 보니, 그 사이 귀요미가 아주 많이 컸네요.
그 때보다 훨씬 예뻐진 것 같기도 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설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9-02-02 00:34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처음 봤을 때보다 몇 배 커진 것 같아요. 다만, 머리 크기는 거의 변화가 없이 몸만 커져서 귀여운 맛은 사라지고 조금 예뻐진 것 같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설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카알벨루치 2019-02-01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연의와 온 가족과 함께 멋진 시간들 연휴에 보내시고 재충전하시고 오소서 ^^

겨울호랑이 2019-02-02 00:34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연휴 되세요. 감사합니다!^^:)

雨香 2019-02-04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차 대전에 대해서 공부하듯 읽었습니다. ^^ (꾸벅)
역사를 그냥 파편화하여 접하다 보니 1차대전과 3.1운동이 비슷한 시대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아챘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4 20:12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1차 세계대전을 정리하다보니 세계사 흐름안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읽어야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든북스 Wooden Books는 자연의 질서와 패턴에 관해 서술한 작은 책 10권으로 구성된 전집이다. 작지만 알찬 내용이 담긴 이 전집에서 필립 볼 박사의 형태학 3부작과 관련된 내용이 이번 페이퍼의 주제다. 우든 북스 전체 10권 중 직간접적으로 3부작과 연관된 내용은 <대칭성, 질서의 원리 Symmetry : The Ordering Principle>, <황금분할 The Golden Section>, <이 理, 자연의 역동적 형태 Li : Dynacmic Form in nature>, <하모노그래프 Harmonograph>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대칭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대칭성은 항상 분류, 범주화 그리고 관찰되는 규칙성과 관련이 있다. 대칭성은 제약이다. 그러나 대칭성 자체는 제약되어 있지 않다. 즉 대칭성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 게다가 대칭성 원리는 평온, 즉 시끌벅적한 세상을 초월한 고요함의 특성이 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항상 변화, 소란,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p7) <대칭성, 질서의 원리> 中


 <대칭성, 질서의 원리>에서는 대칭성을 설명할 때, 회전과 반사를 통한 합동성과 주기성의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360도의 각도 내에서 몇 번의 회전을 통해 동일한 모양이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패턴이 나타나는데 일정한 규칙성이 존재하는가가 대칭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대칭성을 보이는 수많은 다양한 대상들이 가진 공통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합동성과 주기성의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대칭적 대상은 어떤 형태로든 이런 성질이 있으며 이런 성질이 빠지면 대칭성이 축소되거나 사라진다.(p8)... 대칭성을 표현하는 또 다른 두 가지 기본적인 방식이 있다. 회전과 반사가 그것이다. 이런 대칭성의 방식들은 합동이라는 개념을 이용한다.(p10) <대칭성, 질서의 원리> 中


 [사진] 대칭성(출처 : <대칭성, 질서의 원리> 中)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규칙성을 것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힘(강한 핵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중력) 중에서 가장 약한 힘인 중력(gravity)이다. 비록 약한 힘이지만, 중력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에 적용되는 법칙은 엔트로피(entropie) 최소화 법칙이고, 이로 인해 생명체는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생명체들을 모두 가이아(Gaia)에게 빚을 지고 있는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대칭적인 규칙성은 한 가지 주된 힘에 의해 만들어졌다. 즉 표면장력에 의해 만들어진 물방울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모두 중력(중력 역시 구형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에 의해 모양이 만들어졌다.... 실질적으로 구(球)는 주어진 부피당 표면적이 가장 작으며, 이 때문에 많은 과일들이 구형을 하고 있다. 또 구는 어느 쪽에서 봐도 동일한 모양이기 때문에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가장 자연스런 형태이다.(p18) <대칭성, 질서의 원리> 中


 구형 물체를 쌓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들을 삼각형 또는 사각형으로 배열하는 것이다. 이런 배치는 분명 공간을 규칙적으로 분할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과일을 이 가운데 어떤 패턴으로 배열하든지 두 번째 층을 첫 번째 층에 생긴 틈 이외의 곳에 쌓기는 쉽지 않다. 글자 그대로 최소 에너지를 가진 패턴만이 남게 된다.(p22) <대칭성, 질서의 원리> 中


 그렇다면, 삼각형 또는 사각형으로 배열된 물체들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칭성은 제약이 없다'는 말처럼 이들이 서로간 관계를 맺는 구조 자체는 차라리 무질서에 가깝지만, 이러한 '무질서'가 반복되면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 진다. 프랙털(fractal)이라 부르는 기하학 구조에서 우리는 부분과 전체 사이의 '자기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많은 자연적인 형성물들은 이들이 고도로 복잡하고 불규칙하게 보일지라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통계적인 자기유사성을 지고 있다. 이것은 광범위한 스케일에 걸쳐,또는 프랙털의 정도를 정확히 측정했을 때 이들이 같게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에서 많은 종류의 프랙털들은 크기에 제약을 받지 않으며 이론적으로 무한대의 크기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특히 환경 적응이 목적인 생물들에 있어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p40) <대칭성, 질서의 원리> 中


 [사진] 매력적인 프랙털(출처:  <대칭성, 질서의 원리> 中)


 모든 종류의 형태는 구성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이루어지며, 이것들이 해체되면 궁극적으로 형태는 스러진다.(p10)... 관련 없는 형태들 사이의 유사성은 거시에서 미시에 이르는 모든 크기 규모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유사성이라는 특성이 자연이 가진 근본적 속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p12) <이 理, 자연의 역동적 형태> 中


 이러한 프랙털 구조를 우리는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구조를 동양(東洋)에서는 '이 理'라 부른다. 반(反) 엔트로피의 결과로 나타난 '이'는 '자연 自然 스스로 그러하다'으로 해석되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를 확인할 수도 있다.


 '이 理'는 지형을 창조하는 힘처럼, 창조와 파괴의 과정에 깊이 연루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 창조적이거나 파괴적이지는 않다. 다만 그러한 뿐이다.(p24) <이 理, 자연의 역동적 형태> 中


[사진] 잔금(출처 : <이 理, 자연의 역동적 형태> 中)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도자기 표면에 생긴 잔금에 미적 가치를 두었으나 서구에서는 그것을 잘못된 결함, 즉 문제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두 세계의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 말해준다... 모든 잔금은 축적되어 있던 스트레스가 분출되어 나가는 통로, 곧 힘이 가는 선이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인식하는 동양문화에서 잔금을 매력적으로 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p26) <이 理, 자연의 역동적 형태> 中 


 또한, <도덕경 道德經>40장 에서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만물은 유에서 살고 유는 무에서 산다)는 구절을 연상시키는 다음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질서와 무질서가 만들어내는 균형을 '경계'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무질서라는 질서' 또는 '질서 라는 무질서'가 만들어 내는 세계는 일정 비율로 반복되기에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이른바 황금 비율이라 불리는 미(美)의 공식을 통해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을 표현해 왔다.

 

 자연은 증가하고 감퇴하는 주기와 리듬에 따라 고동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상승하는 길과 하강하는 길은 같다"고 말했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별은 내파할 때가 많고, 생명의 질서정연한 조직이 만들어 내는 음의 엔트로피는 무질서와 죽음이 만들어내는 양의 엔트로피로 상쇄된다. 카오스(Chaos 혼돈) 이론에서는 황금분할이 카오스 경계를 설정한다고 한다. 질서가 무질서로 옮아가고, 무질서에서 질서가 나오는 경계이다.(p28) <황금분할> 中


 전체와 부분의 결합은 비례적 대칭을 통해 우아하게 결합된다. 특히 황금분할을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이 단순한 분할은 자연을 움직이는 추동력인 듯하다. 자연으로 하여금 프랙털화를 통해 자기 닮음성을 지닌 부분들을 만들어내고 황금각과 피보나치 수로 이뤄진 나선을 그리며 성장하게 한다.(p32) <황금분할> 中


[사진] 황금대칭(출처 : <황금분할> 中)


 형태학 3부작에서는 대칭과 패턴 그리고 이들이 빚어낸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공간 space'으로 한정되지만, 우든 북스에서는 한걸음 더 들어간다. 우든 북스 중의 <하모노그래프>에서는 음악(music)의 화음(和音)-불협화음(不協和音)의 관계 안에서 시간(time) 속에서의 엔트로피 법칙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더 깊은 이야기를 넓은 범위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음계는 어떻게 구성될까? 현을 튕길 때 나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으뜸음뿐만 아니라 여러 음이 복합된 배음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음악가들은 한 옥타브 안에서 조화음을 만들기 위해 배음보다 조금 가까이 있는 음정들이 필요하다. 알렉산더 포프는 "이해할 수 없는 온갖 불협화음"이라고 했다.... 불협화음이 증가함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악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줄어든다.(p14) <하모노그래프> 中


 영국의 과학자인 아서 에딩턴(1882 ~ 1944)은 변할 수 없는 변화의 방향을 시간의 비대칭성(과거-현재-미래)과 연계하여 '시간의 화살'이라는 그림으로 생생하게 나타냈다... 변하지 않는 물리법칙과 시간의 화살이 연계되면 세상은 놀랍도록 복잡하고, 다양하고, 아름답게 변한다.... '고립계'인 우주는 최대의 비평형상태로부터 빅뱅을 통해 어둡고 차가운 평형상태를 향해 나가고 있다. 시작과 끝 사이에서는 구조를 만들어낵 사건을 유발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쓸모없는' 에너지로 변환되는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난다.(p27) <하모노그래프> 中


[사진] 시간의 화살(출처 : <하모노그래프>中)


 시간(Time) 예술인 음악 속에서 대칭성을 찾으면서 우리는 최종적으로 시공간(時空間 space-time) 속에서 대칭성을 논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우든북스에서 다루는 내용이 짧지만, 대칭성의 적용 범위에 대해서는 더 깊게 들어간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theory of relativity) 역시 크게는 대칭성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대칭성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의 중심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4가지 힘을 하나로 설명하기 위한 통일장이론((grand unified theory)을 도출하기 위해 그처럼 애쓰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물리법칙들은 정상적인 공간의 모든 부분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평행이동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또 평행이동 대칭성은 근원적으로 운동량보존법칙의 결과로 나타난다. 또한 물리법칙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다. 이것은 시간의 평행이동에 대해 대칭적임을 의미한다. 이 경우 또 다른 보존법칙인 에너지 보존법칙을 얻을 수 있다.(p50) <대칭성, 질서의 원리> 中


 우든북스 각 권의 책들은 매우 얇고 절반이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쉽게 보이지만, 이처럼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각각 별개의 주제로 이루어진 듯한 각 권들을 형태학 3부작의 내용과 연계시켰을 때 보다 선명하게 주제가 들어옴을 느꼈는데, 아마도 이런 경우를 두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전체와 공명할 방법을 제공하고, 자기 청제성을 차근차근 더 넓게 펼쳐나가서 마침내 '하나'로 귀환하는 길을 밟게 해준다. 이 심오한 자연의 암호와 우리 자신을 연결하여 공명하는 것, 그리하여 세상을, 그리고 균형 잡힌 형상과 최고의 황금 표준들과 우리의 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인류의 의무다.(p56) <황금분할> 中


 조금 뜬금없지만, 개인적으로 위의 구절을 읽으며 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1632 ~ 1677)의 범신론(凡神論)과 영원의 상하 sub specie aeternitatis가 연상되었는데, 아마도, 어제 <스피노자 선집>을 읽어서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구체적으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스피노자 선집>리뷰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읽기 지루한 이 페이퍼는 이만 줄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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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7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7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1-27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재미있는데요. 이 책에는 이런 사진들이 나오는 거군요.
잘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9-01-27 22:53   좋아요 1 | URL
우든북스 책이 시각적인 내용이 많아 굳이 글을 읽지 않더라도 시각적으로도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19-01-28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공 냄새가 풀풀 납니당~~

겨울호랑이 2019-01-28 13:23   좋아요 1 | URL
전공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읽는 희은수네 2019-03-27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구입 전 리뷰를 보는 편인데 독서력이나 필력이 부럽습니다.전 자꾸 잊어버리고 글쓰기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듯.잘 읽었어요^^

겨울호랑이 2019-03-27 10:31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읽는 희은수네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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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강영계 옮김 / 서광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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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개선론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강영계 옮김 / 서광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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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과 인간의 행복에 대한 짧은 논문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강영계 옮김 / 서광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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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정치론 정치학논고 (반양장)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최형익 옮김 / 비르투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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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서간집」저자 강의가 오후에 있어 미리 훑어본 자료를 올려 봅니다. 강의 후 내용 정리와 함께 본문에 대한 리뷰를 올릴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이해가 되어야할텐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운 주말이지만, 이웃분들 모두 건강한 하루 되세요!






스피노자의 사상은 요컨대 철학적 논의에 막대한 양분을 제공 하는 유신론과 무신론의 논쟁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 논쟁은 형이상학과 더불어 윤리학, 즉 삶의 구체적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p428)

 스피노자가 인정하는 신의 개념은 어떠한 것인가? 그의 신은 인격신이 아니다. 목적성을 가진 창조, 혹은 무로부터의창조(creatio ex nihilo)는 인격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지성을 통해 창조할 세계를 구상하고 의지와 힘을 통해 세계를 현존케 하는 신 개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창조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인격신 개념에서 신 안에서의 간극과 결여 및 불완전성을 보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지성에 의해 미리 구상되고 의지나 힘에 의해 나중에 실현되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p439)

이 세계는 여러 세계들 가운데 선택된 세계가 아니라 유일한 전체일 뿐이다. 이 세계는 어떤 지성에 의해 미리 생각되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계획과 실현 간의 그 어떠한 간극도 없이 그 자체로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신이 바로 이 세계이다.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을 표현하는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자연이라는 자연주의적 존재론을 확립하고 인간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이 존재론의 토대 위에 그리는 것이 스피노자 윤리학의 골자이다.

인간의 본질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욕망이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욕망의 윤리학이다. 존재를 보존하고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현존자의 유일한 규범이고 목표이다. 원초적 힘과 욕망이 인간의 근본을 이룬다. 이런 근원적 존재 보존 노력이, 스피노자가 코나투스(conatus)라 명명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힘의 증진, 더 큰 완전성의 획득, 즉 기쁨으로 향한다.(p441)

스피노자의 욕망의 윤리학은 실존적이고 행복주의이다. 욕망의 윤리학은 인식이고 여정이며, 구조이고 지혜이며, 엄격함이고 기쁨이다. 욕망의 완성은 완전한 기쁨이며 극도의 존재 의식이다. 이런 욕망의 여정은 지극히 험준하지만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문 만큼 어려운 것이다. (Sed omnia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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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6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7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스트잇 2019-01-26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간집이라해서 한번 읽어볼까 하다가.. 당시는 편지에 논문 수준의 글을 써서 보냈다니,
포기했습니다. 입문서부터 봐야 할 처지라..
나중에 좋은 글 올려주세요.

겨울호랑이 2019-01-26 13:48   좋아요 1 | URL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에티카」보다는 읽기 편한 것 같습니다. 다른 입문서는 못 읽어봤지만, 스피노자 철학 분위기를 익히기에는 좋은 책이라 여겨집니다. 제 생각으로는 포스트잇님께서 지금 바로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지 - 형태들을 연결하는 관계 필립 볼 형태학 3부작
필립 볼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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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랙탈 차원(fractal dimension)은 가지들이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찼는지 측정하는 척도다.(p59)... 확대 수준이 달라도, 즉 척도가 변해도 같은 형태가 계속 등장하는 성질을 가리켜 척도 불변성(scale invariance)이라고 한다. 더 느슨한 표현으로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라고 한다. 척도 불변성 때문에 프랙탈 형태에는 경계가 없다.(p68) <가지> 中


[사진] 시에르핀스키 삼각형( 출처 : 위키백과)


 필립 볼(Philip Ball)의 형태학 3부작의 마지막은 <가지 Branches>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프랙탈 차원을 만나게 된다. 일부 작은 조각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 구조를 갖는다는 의미의 프랙탈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유사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기 유사성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지>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엔트로피(Entropie)에서 찾는다. 


 확산을 통한 응집(DLA, diffusion-limited aggregation)모형에서 성장 불안정성 때문에 가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응집체 표면에서 돋아난 작은 돌기는 주변의 평평한 지점들보다 새로운 입자를 더빨리 끌어들이므로, 점점 더 높게 자라난다. 또한 돌기 자체에도 무작위적으로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을 테니, 그곳에서 또 손가락이 돋는다. 결국 덩어리는 가지들이 뻑뻑하게 뻗은 모양이 된다.(p57) <가지> 中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법칙은 형태학 3부작에서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인데, <가지>에서도 엔트로피를 통해 프랙탈 구조를 갖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본문에서는 강(江) 지류의 프랙탈 구조를 통해 강(물의 흐름)이 에너지 확산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프랙탈 구조를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1960년대에 레오폴드(Runa Bergere Leopold, 1915 ~ 2006)와 동료들도 유역 패턴을 분석해, 하천망의 구조는 물의 흐름으로 인한 함의 지출을 가급적 줄이려는 경향성과 흐름을 계 전반에 비교적 균일하게 분포시키려는 경향성이라는 두 상반된 성질 사이에서 최적의 타협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주장했던 것이다.(p154)... 로드리게스이투르베(Ignacio Rodriguez-Iturbe, 1942 ~ )의 최소화 원칙에 따르면, 망은 에너지의 확산 속도가 가급적 작아지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로드리게스이투르베와 동료들은 이렇듯 실현 가능한 여러 해법들의 집합에 '최적 수로망(optimal channel network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결과는 흐름과 침식으로 인한 에너지 확산을 가급적 줄이려 한다는 규칙이 실제 망의 형태를 좌우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p155) <가지> 中


[사진] 나일강 삼각주(출처 : 위키백과)


 일부 학자들은 강의 흐름에서 발견되는 프랙탈 구조를 수학 법칙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학 법칙은 강과 같은 자연 현상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강의 지류 수를 추정할 때 활용되는 멱함수는 동시에, 생명체의 심장 박동 수와 체질량의 크기를 설명하는 함수이기도 하다. 이후 <가지>에서는 프랙탈에 대한 논의를 자연에서 인간으로 확장시키게 된다.


 로버트 엘머 호턴(Robert Elmer Horton, 1875 ~ 1945)은 하천 차수에 수학적 규칭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호턴은 수학적으로 차수가 n인 하천의 수는 상수 C의 n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2차 하천의 수는 C의 2승(昇)분의 1에 비례하고, 3차 하천의 수는 C의 3승분의 1에 비례한다. 이것은 멱함수 법칙, 다른 말로 축척 법칙(scaling law)에 해당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느 차수의 하천 수는 다음 차수의 하천 수에 일정 상수를 곱한 값이다.(p144)... 이런 축척 법칙들은 유역망에 프랙탈적 자기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p145) <가지> 中


 작은 생물은 큰 생물보다 심장 박동이 빠르다. 아기의 심장은 어른보다 빨리 뛰고, 새처럼 작은 생물은 그보다 더 빨리 뛴다. 심장 박동과 체질량의 이런 관계는 정확한 수학 공식으로 표현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멱함수 법칙, 즉 축척 법칙이었다. 아주 다양한 종류의 생물에서 심장 박동은 체질량의 4분의 1제곱에 반비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p189)... 생물의 대사 속도, 즉 에너지 소비 속도는 체질량의 4분의 3제곱에 비례한다. 작은 생물일수록 무게당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p190) <가지> 中


 <가지>에서는 강에서 시작된 프랙탈에 대한 논의를 생명체로 옮기고, 한 단계 나아가 인간과 문명에 대한 설명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최종적으로 인터넷(Internet) 망 구조에까지 이어지는 프랙탈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면, 프랙탈은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버린다. 


 호수 바닥에서 진흙이 말라붙을 때, 캔버스나 나무에 칠해진 페인트와 광택제가 마를 때, 도자기에 칠해진 유약이 딱딱하게 낡아갈 때를 생각해보자. 이때 갈라지는 층은 한쪽 면은 고정되어 있지만 반대쪽 면은 공기에 자유롭게 노출되어 있다.(p130)... 이 과정은 도시에서 기존 도로들 사이에 새 도로가 나는 과정과도 얼추 비슷하다. 이 균열 패턴이 도로망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 계획가의 고차원적 전망 없이 자발적으로 도로가 놓인 오래된 도시에서 이런 패턴이 확연하다.(p132)<가지> 中


 자연발생적인 도시(都市 city)의 형태가 프랙탈 구조를 띄고 있음을 설명하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 도시계획(都市計劃 urban planning)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깨닫게 된다. 부분과 전체가 자기유사성을 갖는다는 프랙탈 구조를 통해,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인간(人間)에 대한 고려가 없는 도시는 결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문명은 이처럼 중앙의 계획 없이 시간에 따라 진화하는 복잡한 망을 다양하게 만들어 냈다. 도로망과 도시의 거리들이 그렇고, 전 세계의 공항과 항구를 연결하는 통상과 여행의 그물망이 그러다. 기술적 인공물 중에서 복잡한 망으로 인식된 첫 사례는 전화망이었지만, 통신의 상호 연결성을 진정으로 부각시킨 망은 인터넷이었다.(p205)<가지> 中


 이와 같이, <가지>는 엔트로피 법칙과 프랙탈 구조를 자연과 문명 전반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가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에너지 확산을 막기 위한 반작용으로 생명체(또는 생태계)는 이를 최소화하는 구조로 진화해왔으며,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프랙탈 구조가 그 결과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數學)을 사용하지 않고 형태학을 설명한 <가지>는 형태학 입문서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느낌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서울의 변천사(출처 : ww.epoc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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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5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雨香 2019-02-04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립 볼 형태학3부작을 사두고는 읽지 않았습니다만, 겨울호랑이님 글을 통해서 책의 훌륭함을 맛보고 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2-04 20:10   좋아요 1 | URL
우향님 감사합니다. 시간 되실 때 직접 읽으신다면 더 즐거운 독서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우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雨香 2019-02-05 20: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