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착각
어빙 피셔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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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갖고 있는 달러는 당신이 전쟁 전에 알고 있던 그 달러가 아니다. 달러는 언제나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변화하고 있다.(p13)

그렇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화폐의 불안정성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화폐 착각(Money Illusion)˝ 때문이다. 말하자면, 달러를 비롯한 모든 화폐 단위의 가치가 늘 커졌다가 줄어졌다가 하기를 반복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같은 사실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p14)

미국인은 달러의 가치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달러는 정해진 양의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측면에서만 고정되어 있다. 달러로 살 수 있는 재화나 혜택의 크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달러는 절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p22)

화폐의 유통량이 재화의 유통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하면, 물가는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화폐 유통량이 재화의 유통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하면, 물가는 떨어질 것이다.(p51)

개인의 뜻과 관계없이 벌어지는 강탈의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말하자면 인플레이션을 통해서 채권자로부터 채무자에게로, 그리고 디플레이션을 통해서 채무자로부터 채권자에게로 넘어가는 가치의 이전이 대단히 크다는 뜻이다.(p107)

노동자는 인플레이션 때에도 피해를 보고 디플레이션 때에도 피해를 본다. 하나의 계급으로서 전체를 보면, 노동자들의 전체 실질 임금은 임금이 생활비 인상폭을 따라 잡지 못해서 떨어지거나(인플레이션 시기),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떨어지게 된다.(디플레이션 시기)(p123)

불안정한 화폐는 사회적 불공평과 기업과 산업, 고용에 일으키는 불규칙성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제적 악으로부터 또 다른 악이 파생되어 나온다. 사회 불만이라는 악이다.(p124)

변동하는 달러는 우리 모두를 무지 속에 살도록 만든다. 반면 안정된 달러는 사실들을 우리 눈 앞에 고스란히 드러내게 될 것이다... 화폐 안정화보다 더 중요한 개혁이 몇 가지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순수하게 경제적인 개혁에 대해 말하자면, 나의 의견엔 화폐 안정화가 가장 중요한 개혁이다.(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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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1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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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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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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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9 0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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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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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4 16: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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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4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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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국검법 本國劍法>은 신라시대의 검법이며 현존하는 것으로는 세계 최고의 것이다. 이 검법은 우리의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기(技) 중의 하나이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는 칼춤의 희(戱)라 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황창(黃昌)은 신라사람이다. 속설에 전하기를 나이 일곱에 백제의 시중(市中)에 들어가 칼춤을 추니 구경하는 사람이  담처럼 둘러쌌다. 백제왕이 이 소문을 듣고 황창을 불러서 칼춤을 추라고 하였다. 황창은 기회를 보아 왕을 찔렀다. 이에 백제인들이 그를 죽였다. 신라인들이 이를 슬퍼하여 그의 얼굴 모습을 본떠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전한다.'(p160) <정통 검도 교본> 中


 위에서 보듯 '본국검법 本國劍法'은 오랜 역사를 통해 전승된 세계 최고(最古)의 검법으로, 우리나라에서 검을 수련하는 도장에서는 반드시 배우는 검법이기도 하다. 비록, '본국검법'은 전체 33세(勢)가 후대에 전해졌지만, 검법의 전체 모습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그 중에서도 <본국검예 本國劍藝> 안의 본국검법이 기존의 본국검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번 페이퍼에서는 살펴보고자 한다. <본국검예> 1권은 조선세법(朝鮮勢法)이며, 2권은 본국검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본국검예>의 저자는 기본적으로 대한검도회의 복원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에 있어 여러 면에서 대립한다. <본국검예>의 저자는 대한 검도가 일본을 영향을 짙게 받았기 때문에, 일본 검도로 우리 검법을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 <본국검법>, <조선세법>의 전면적인 재해석을 요구한다. 

 

 현재의 대한 검도는 일본에서 유래되어 내려온 죽도 술이며, 죽도문화의 특징을 가진 타법위주의 검도다. 그리고, 일본 검도는 검선 일치와 일족일도가 기본체계인 반면 고려시대까지의 검도는 회전중심의 특징을 가졌다.(p84) <본국검예 2> 中 


 먼저, 대한검도회의 <정통 검도 교본>을 살펴보자. 책에서는 본국검법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무예도보통지>의 한계에 대해 말한다. 본문의 그림과 설명이 실전에 적합하지 않다는 가정 위에 본국검법에 대한 설명이 진행된다.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의 검보나 총도를 보면 검법의 운용만을 순서에 따라 대충 그려져 있을 뿐이고 세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그 전체의 묘를 터득하기는 어렵다. 이 검법이 실린 <무예도보통지>의 편자가 <본국검법>에 관해 아는 것이 적었고 또한 병법을 알고 있었던 실문자 역시 조예가 깊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도보를 그린 화공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p163) <정통 검도 교본> 中


 반면, <본국검예>는 이러한 가정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정조 14년 왕명에 의해 편찬된 <무예도보통지>가 과연 허술하게 만들어졌을까라는 반증을 통해, 최대한 <무예도보통지>의 기반 위에서 논의를 진행해간다.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신뢰 문제는 이후 해석 문제로 이어지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 여겨진다.


 <무예도보통지>의 병기총서에 의하면 "이덕무가 편집책임자로서 궁중의 병가류 전전 20여부를 내어다가 고증을 검토하는데 참고하고, 관련된 명물과 역사기록에 관해서 열고, 관의 비서를 참고하는 등 수많은 책과 자료로서 고증하려 밝혔다. 이 책을 펴내기 위해서 이들이 들인 노력이 대단한 것이었는데, 한/중/일 세 나라의 서적을 망라한 주요 참고 서적만도 148종이나 된다. 박제가는 편집을 돕는 틈틈이, 판각의 대본을 그의 뛰어난 필체로 옮겨 쓰고, 백동수는 무예와 병법에 뒤어난 장용영 장교들과 더불어, 고증한 기예를 실지로 연무하고 시험 관찰하여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을 하였다... 윗글은 무예도보통지의 병기총서에 나와 있는 글을 논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가 대충 비전문가들이 만들었을까? (p89) <본국검예 2> 中


 두 책의 해석차이는 전체 33세(勢) 중 '좌요격(左腰擊)'에서 가장 크기에 여기에 옮겨본다. <정통 검도 교본>에서는 좌요격세가 허리를 치는 자세로 이름이 지어졌지만, 실제 그림은 머리를 치는 모습으로 그려졌기에 그림과 설명이 불일치함을 지적한다.


[그림] 좌요격(출처 : <정통 검도 교본>) 


 좌요격세(左腰擊勢) 왼쪽 허리를 치는 자세이다. 그러나 <본국검법>에서는 세법(洗法)으로 목을 베라 하였으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목덜미를 후려치듯 베라는 뜻인 것같다.(p171)... 현대 검도는 스포츠화 되어 요격이라 하면 허리를 치는 것이지만, 실전에서는 갑옷을 입은 자의 허리를 치는 것보다는 취약한 목을 공격하는 편이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본국검법>에서도 요격세(腰擊勢)라 기록하고 실제는 세항(洗項)이라 했음에 유의한다.(p[177) <정통 검도 교본> 中


 반면, <본국검예>에서는 좌요격의 뜻을 '허리를 베다'가 아닌 '허리 힘을 활용하다'라는 것으로 풀이한다. 허리 힘을 활용해서 상대의 머리를 베는 것이기에 그림과 글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반론(反論)이다.


 세법(洗法)의 특징은 발이 먼저 움직이고 손이 그 뒤를 따르기에, 칼에 몸의 힘이 축적되어 힘과 파괴력이 강하다. 자연히 칼의 원심력이 커서 몸이 회전하게 된다... 좌/우요격세는 세법으로 그 기법의 특징은 허리에 있다. 허리의 힘과 회전력을 이용하여 칼을 사용한다. 이 기법은 당연히 허리가 중요하다. 여기서 좌/우는 방향을 나타낸다. 즉 좌측과 우측에서 목을 친다는 말이다... 본국검법의 좌요격세/우요격세의 검법은 허리를 꼬아 비틀고 회전하면서 타격을 하기 때문에 검결을 요격세라 한 것이다.(p100) <본국검예 2> 中


 <본국검예>의 비판은 자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작의 연결에서도 이어진다. 33세의 동작은 회(廻)를 통해 방향 전환이 되는데, 대한검도회의 본국검법에는 일본의 '중단(中段)' 세가 들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불필요한 동작으로 인해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워야 할 연결이 단절된다는 것이다.


[사진] 대한검도회의 본국검법 순서(출처 : <본국검예>)


 검에 대한 공부나 수련(修鍊)이 많이 부족하여 어느 주장이 본국검법 본래의 모습에 가까운지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다음의 천동설(天動說 Geocentrism)과 지동설(地動設 heliocentrism)이야기로 개인 생각을 대신한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us, AD 83 ~ AD 168)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BC 384 ~ BC 322)가 제시한 초기 지구중심모형을 수정했다. 수정된 지구중심모형에서는 행성이 중심은 같지만 직경은 서로 다른 천구가 아니라 천구를 도는 작은 원에 붙어 있다고 설명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작은 원을 가리켜 "주전원'이라고 불렀고, 모형은 대단히 복잡하게 바뀌었다.(p35)... 코페르니쿠스(Mikołaj Kopernik, AD 1473 ~ AD 1543)의 모형은 프톨레마이오스가 내놓은 복잡한 해결책에 의존하지 않고도 어째서 행성의 움직임이 변칙적이고 밝기가 바뀌는지를 설명하기 때문에 우아한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 모형에서 프톨레마이오스가 고안한 복잡한 주전원을 없애는 대신 지구와 다른 행성이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행성 간 거리가 바뀌기 때문에 역행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p37) <천문학의 책> 中



 창고를 정리하던 중 오랜 기간 쉬었던 호구(검도 보호 장비)가 눈에 띄어 잠시 꺼내본다. 조만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고 창고로 들어간 지 10년이 넘었다. 기회가 되면 연의와 함께 하고 싶은데, 여자 검사(劍士)를 별로 반기지 않는 연의 엄마의 반대로 조금 더 기다려야할 듯 싶다... 검사(檢士)는 좋아하려나...


 PS. 본국검법과 조선세법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본국검법이 격법이라면 조선세법은 세법의 검법이다. 본국검법의 주 타격목표는 상위이다. 자연히 격법으로 검법이 발전되었다... 조선세법은 타격목표가 하위와 중위(허리)가 많다. 칼이 빗갓으로 흐르고 몸의 중심이동 변화가 많다... 본국검법과 조선세법은 이처럼 다른 성격의 검법이다. 본국검법이 이러한 격법의 검법으로 신라에서 수련하여 일본에 전래되고 이 본국검법보다 더 단순화 시킨 것이 오늘날의 일본의 격법이다. 본국검법에서는 그래도 좌우의 이동과 회전을 통한 격법의 연결을 수련하도록 하였지만 일본의 격법은 이러한 요소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우수우각의 전후진보법으로 더 단순화시켰다.(p212) <본국검예 1> 中


 '본국검법'과는 달리 직접 '조선세법'을 해보진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꼭 배우고 싶다. 검도 도장에 다닐 때 매주 하루는 '본국검법'과 '일본의 본(本)'을 수련했었는데, 현대 스포츠로 정착한 검도에는 본국검법 보다 검도의 본(本)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시 수련을 하면 생각이 바뀔지는 잘 모르겠다...


 검도의 본은 1886년 일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격검형(擊劍形)이라 하였다. 1912년에 검도형(劍道形)이라 하여 대도(大刀) 7본과 소도(小刀) 3본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현재 세계적으로 보급된 검도의 본이다.(p180) <정통 검도 교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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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06 1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좌요격 쟤 은근 귀여운데요?
으이쌰~ 이러고 있는 뒤통수.....

겨울호랑이 2019-07-06 16:14   좋아요 2 | URL
^^:) syo님 말씀을 듣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동작인지에만 관심을 가지다 보니.ㅋ Syo님 덕분에 좌요격이 재조명 받게 되는 듯합니다.

붕붕툐툐 2019-07-06 21:15   좋아요 1 | URL
ㅋㅋ진짜 귀엽네요~ㅎㅎ

2019-07-06 1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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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16: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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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1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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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1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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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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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21: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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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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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0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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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2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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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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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2 14: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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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2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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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3 0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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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Seo 2019-07-13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한 15년 넘은 것 같은데... 창고에 넣어둔 검도 호구, 호면 등 다시 꺼내봐야겠네요.

겨울호랑이 2019-07-13 23:24   좋아요 0 | URL
^^:) 프리랜Seo님께서도 오랜만에 호구를 보시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다시 검을 잡고 싶은 마음이 드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반달검 2021-12-14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ttps://blog.naver.com/slip72a

2021-12-14 17: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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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트럼프, '깜짝 월경' 북한 땅 밟다(출처 : KBS)


2019년 6월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판문점에서 남 - 북 - 미 3국 정상이 모였던 판문점 만남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모두 언급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트럼프의 방북(訪北)이 미국 유권자들에게는 마치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 ~ 1964)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 공항에 착륙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지 않았을까. 아직 무장해제가 되지 않은 일본군 사이에 유유히 착륙한 맥아더의 모습처럼 보이기를 트럼프는 희망하고, 그의 지지자들은 그의 강인한 모습에 환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후일 맥아더는 ˝참모들은 최고사령관이 한 줌의 소규모의 선발대만 거느리고 무장이나 호위도 없이 수천 대 1의 압도적인 열세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년에 걸친 해외 근무 덕분에 나는 동양의 교육에 대해 잘 배워 알고 있었으며, 아마도 더욱 중요한 점은 극동 지역의 사람들에게 내가 자신들의 친구라는 점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라고 썼다.(p141) <맥아더 2> 中


 다수의 해병대원들이 중무장을 갖추고 함포의 보호를 받으며 포획작전을 벌이는 것과, 5성 장군이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불쑥 하늘에서 떨어져 2주전까지만 해도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7천만 명이 살고 있는 나라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문제이다. 후일 윈스턴 처칠은 ˝전쟁 중에 있었던 모든 놀라운 행위들 가운데에서 맥아더 장군이 아쓰기 기지에 직접 착륙한 것을 나는 가장 용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밀했다.(p141) <맥아더 2> 中


PS. 책에 대해서 평가를 하자면, 맥아더를 군신(軍神)처럼 서술하였기에 맥아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썩 잘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사진] MacArthur arrived at Atsugi Air Base near Yokohama on Aug. 30, 1945, ready to put his imprint on postwar Japan. (U.S. Army Photo) (사진 출처 :https://www.historynet.com/american-proconsul-how-douglas-macarthur-shaped-postwar-japa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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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9-07-04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다 읽으셨나요? 전 페북에서 어떤 태극기 수꿜이 이 책 칭찬하는거 보니 읽기가 싫어지더라고요.ㅋㅋㅋㅋㅋㅋ

겨울호랑이 2019-07-04 22:53   좋아요 1 | URL
네,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장점과 단점, 명암이 있다 생각합니다만, 맥아더 평전은 위인전에 가까워 인간 맥아더를 조명하지 못했다 생각됩니다...

NamGiKim 2019-07-04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맥아더는 수꼴의 상징이라 봐도 무리는 아닐겁니다.

겨울호랑이 2019-07-04 22:51   좋아요 2 | URL
우리에게 맥아더는 신격화된 존재라 가까이 하기에는 어렵게 느껴집니다. 마치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관우를 모신 무당이 늘었다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현대판 관운장의 이미지로 제게는 다가옵니다...

NamGiKim 2019-07-04 23:19   좋아요 1 | URL
맥아더라는 인물이 그렇게 찬양받는거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50년대 반공주의적 친미에서 못벗어난게 분명하다 봅니다. 따지고 보면 맥아더와 미국이 분단에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얘기하면 빨갱이로 매장당하는게 사회현실이죠.

겨울호랑이 2019-07-05 09:38   좋아요 2 | URL
인간 맥아더는 뛰어난 정치군인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제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군인으로서 뛰어난 면을 보여준 부분은 평가받아야겠지만, 군정 시기에 보여준 모습은 가히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에서 태프트와 같은 역할을 했다 생각합니다... 때문에, 그런 인물을 신격화하는 모습은 선뜻 동의하기 힘듭니다. 다만, 이해도 가는 부분이 있는 것이 1950년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에게는 영웅 또는 구세주의 모습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BTS 팬들에게 BTS는 여느 아이돌 그룹이 아닌 것처럼요...

2019-07-05 0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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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0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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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1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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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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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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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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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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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06: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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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05 1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태평양 전쟁 당시 필리핀 총독이었던
맥아더는 수치스럽게도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던 일본군에게 당한 패배를 휘하
장군 웨인라이트(?)에게 떠넘기고
잠수함을 타고 호주로 도주했습니다.

승리의 영광은 자신의 것이지만, 책임
지지 않는 모습은 한국 전쟁에서도 그대
로 재연이 되었죠.

중국 인민해방군의 참전이 절대 없을
거라는 그의 예언 때문에 숱한 젊은 후배
장교들이 장진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훗날 자신의 몰락에 일조했다고 하더군요.

승리는 모두 내가 잘해서 얻은 것이지만,
패배에는 나의 책임이 조금도 없다라는
비겁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귀감이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7-05 10:15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부하들은 필리핀에 버려두고 자신은 급하게 빠져나갔습니다. 이러한 실패는 1801년 참담한 실패로 끝난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망치면서 말로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고, 1944년 레이테 전투를 통해 다시 필리핀으로 겨우 돌아가면서 연출한 모습을 보면 프로파간다에 능한 정치군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군복바지 차림으로 해변가로 건너들어가는 모습은 전후 사정을 모르는 대중들에게 아마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금,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다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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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 속에서 금은 두 가지 역할, 즉 장식품의 역할과 화폐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 두 가지 역할은 서로를 강화시키고 지지해주었다. 금은 드러나는 광채 때문에 권력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었지만, 금이 권력을 더욱 큰 소리로 대변하게 된 것은 화폐로서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였다.(p509)

그러나 화폐로서 금의 궁극적인 몰락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아주 옛날이었다. 9세기에 중국의 헌종이 우연히 지폐라는 혁신적인 물건을 만들어낸 것이 그 첫 걸음이었던 것이다.(p509)

금이 삶의 불확실성을 막아주는 울타리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영원한 것을 얻으려는 욕망이 금이나 달러, 유로 등에 의해 충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금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금을 비축해두는 행위는 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금과 금의 대용품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p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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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15: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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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21: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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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1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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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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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 한정판 세트 - 전4권
리처드 웨스트폴 지음, 김한영.김희봉 옮김, 이무현 감수 / 알마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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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년대 아리우스 주의자이자 연금술사 뉴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데카르트 수학(기하학에 대수학 접목)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한 뉴턴은 당대 정통으로 받아들여지던 유클리드 수학자로부터 이단아로 취급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뉴턴은 여러 면에서 비주류였음을 알게 된다.여기에 가톨릭교회의 철학이 기하학인 유클리드 수학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연금술을 통해 금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뉴턴의 모습에서 후대 남해(South Sea)주식과 연관되어 많은 자산을 잃을 기질이 있었음도 짐작해본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과학자 뉴턴의 모습 이면에 숨겨진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기 뉴턴의 삶은 기본적으로 신학과 연금술 연구로 이루어졌다.(p323)... 뉴턴이 보기에 그리스도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이고, 근본적인 죄악이었다.(p226)... 1675년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뉴턴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아리우스파가 되어 있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신과 인간의 중보자이고, 그를 창조하신 아버지에게 종속된 자였다.(p227)「제2권」중

화학 노트는 전개 순서가 중요하다. 그는 화학을 우연히 만나 그 불합리를 발견하고 나서도, 진지하고 ˝합리적인˝화학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아니, 출발은 진지한 화학이었지만 연금술이더 심오하다고 느끼고 상당히 일찍 화학을 포기했다.(p180)「제2권」중

ps. 미적분, 무한급수와 관련된 라이프니츠와의 논쟁 부분은 뉴턴 전기 작가의 국적이 영국임을 잘 나타내준다. 기회가 되면 독일인이 쓴 라이프니츠 전기도 읽고 싶어진다.

라이프니츠의 새로운 질문들은 「후서」를 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뉴턴이 편지를 쓰기도 전에 라이프니츠가 직접 10월에 런던으로 건너와 10일간 머물렀다.(p145)... 라이프니츠는 「역사 Historiola」에 대해서는 메모를 했고, 메모는 라이프니츠가 영국 수학에서 배울 수 있는 주제라고 본 무한급수에 집중되었다.(p146)「제2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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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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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2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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