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검법 本國劍法>은 신라시대의 검법이며 현존하는 것으로는 세계 최고의 것이다. 이 검법은 우리의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기(技) 중의 하나이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는 칼춤의 희(戱)라 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황창(黃昌)은 신라사람이다. 속설에 전하기를 나이 일곱에 백제의 시중(市中)에 들어가 칼춤을 추니 구경하는 사람이 담처럼 둘러쌌다. 백제왕이 이 소문을 듣고 황창을 불러서 칼춤을 추라고 하였다. 황창은 기회를 보아 왕을 찔렀다. 이에 백제인들이 그를 죽였다. 신라인들이 이를 슬퍼하여 그의 얼굴 모습을 본떠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전한다.'(p160) <정통 검도 교본> 中
위에서 보듯 '본국검법 本國劍法'은 오랜 역사를 통해 전승된 세계 최고(最古)의 검법으로, 우리나라에서 검을 수련하는 도장에서는 반드시 배우는 검법이기도 하다. 비록, '본국검법'은 전체 33세(勢)가 후대에 전해졌지만, 검법의 전체 모습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그 중에서도 <본국검예 本國劍藝> 안의 본국검법이 기존의 본국검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번 페이퍼에서는 살펴보고자 한다. <본국검예> 1권은 조선세법(朝鮮勢法)이며, 2권은 본국검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본국검예>의 저자는 기본적으로 대한검도회의 복원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에 있어 여러 면에서 대립한다. <본국검예>의 저자는 대한 검도가 일본을 영향을 짙게 받았기 때문에, 일본 검도로 우리 검법을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 <본국검법>, <조선세법>의 전면적인 재해석을 요구한다.
현재의 대한 검도는 일본에서 유래되어 내려온 죽도 술이며, 죽도문화의 특징을 가진 타법위주의 검도다. 그리고, 일본 검도는 검선 일치와 일족일도가 기본체계인 반면 고려시대까지의 검도는 회전중심의 특징을 가졌다.(p84) <본국검예 2> 中
먼저, 대한검도회의 <정통 검도 교본>을 살펴보자. 책에서는 본국검법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무예도보통지>의 한계에 대해 말한다. 본문의 그림과 설명이 실전에 적합하지 않다는 가정 위에 본국검법에 대한 설명이 진행된다.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의 검보나 총도를 보면 검법의 운용만을 순서에 따라 대충 그려져 있을 뿐이고 세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그 전체의 묘를 터득하기는 어렵다. 이 검법이 실린 <무예도보통지>의 편자가 <본국검법>에 관해 아는 것이 적었고 또한 병법을 알고 있었던 실문자 역시 조예가 깊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도보를 그린 화공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p163) <정통 검도 교본> 中
반면, <본국검예>는 이러한 가정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정조 14년 왕명에 의해 편찬된 <무예도보통지>가 과연 허술하게 만들어졌을까라는 반증을 통해, 최대한 <무예도보통지>의 기반 위에서 논의를 진행해간다.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신뢰 문제는 이후 해석 문제로 이어지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 여겨진다.
<무예도보통지>의 병기총서에 의하면 "이덕무가 편집책임자로서 궁중의 병가류 전전 20여부를 내어다가 고증을 검토하는데 참고하고, 관련된 명물과 역사기록에 관해서 열고, 관의 비서를 참고하는 등 수많은 책과 자료로서 고증하려 밝혔다. 이 책을 펴내기 위해서 이들이 들인 노력이 대단한 것이었는데, 한/중/일 세 나라의 서적을 망라한 주요 참고 서적만도 148종이나 된다. 박제가는 편집을 돕는 틈틈이, 판각의 대본을 그의 뛰어난 필체로 옮겨 쓰고, 백동수는 무예와 병법에 뒤어난 장용영 장교들과 더불어, 고증한 기예를 실지로 연무하고 시험 관찰하여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을 하였다... 윗글은 무예도보통지의 병기총서에 나와 있는 글을 논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가 대충 비전문가들이 만들었을까? (p89) <본국검예 2> 中
두 책의 해석차이는 전체 33세(勢) 중 '좌요격(左腰擊)'에서 가장 크기에 여기에 옮겨본다. <정통 검도 교본>에서는 좌요격세가 허리를 치는 자세로 이름이 지어졌지만, 실제 그림은 머리를 치는 모습으로 그려졌기에 그림과 설명이 불일치함을 지적한다.
[그림] 좌요격(출처 : <정통 검도 교본>)
좌요격세(左腰擊勢) 왼쪽 허리를 치는 자세이다. 그러나 <본국검법>에서는 세법(洗法)으로 목을 베라 하였으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목덜미를 후려치듯 베라는 뜻인 것같다.(p171)... 현대 검도는 스포츠화 되어 요격이라 하면 허리를 치는 것이지만, 실전에서는 갑옷을 입은 자의 허리를 치는 것보다는 취약한 목을 공격하는 편이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본국검법>에서도 요격세(腰擊勢)라 기록하고 실제는 세항(洗項)이라 했음에 유의한다.(p[177) <정통 검도 교본> 中
반면, <본국검예>에서는 좌요격의 뜻을 '허리를 베다'가 아닌 '허리 힘을 활용하다'라는 것으로 풀이한다. 허리 힘을 활용해서 상대의 머리를 베는 것이기에 그림과 글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반론(反論)이다.
세법(洗法)의 특징은 발이 먼저 움직이고 손이 그 뒤를 따르기에, 칼에 몸의 힘이 축적되어 힘과 파괴력이 강하다. 자연히 칼의 원심력이 커서 몸이 회전하게 된다... 좌/우요격세는 세법으로 그 기법의 특징은 허리에 있다. 허리의 힘과 회전력을 이용하여 칼을 사용한다. 이 기법은 당연히 허리가 중요하다. 여기서 좌/우는 방향을 나타낸다. 즉 좌측과 우측에서 목을 친다는 말이다... 본국검법의 좌요격세/우요격세의 검법은 허리를 꼬아 비틀고 회전하면서 타격을 하기 때문에 검결을 요격세라 한 것이다.(p100) <본국검예 2> 中
<본국검예>의 비판은 자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작의 연결에서도 이어진다. 33세의 동작은 회(廻)를 통해 방향 전환이 되는데, 대한검도회의 본국검법에는 일본의 '중단(中段)' 세가 들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불필요한 동작으로 인해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워야 할 연결이 단절된다는 것이다.
[사진] 대한검도회의 본국검법 순서(출처 : <본국검예>)
검에 대한 공부나 수련(修鍊)이 많이 부족하여 어느 주장이 본국검법 본래의 모습에 가까운지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다음의 천동설(天動說 Geocentrism)과 지동설(地動設 heliocentrism)이야기로 개인 생각을 대신한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us, AD 83 ~ AD 168)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BC 384 ~ BC 322)가 제시한 초기 지구중심모형을 수정했다. 수정된 지구중심모형에서는 행성이 중심은 같지만 직경은 서로 다른 천구가 아니라 천구를 도는 작은 원에 붙어 있다고 설명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작은 원을 가리켜 "주전원'이라고 불렀고, 모형은 대단히 복잡하게 바뀌었다.(p35)... 코페르니쿠스(Mikołaj Kopernik, AD 1473 ~ AD 1543)의 모형은 프톨레마이오스가 내놓은 복잡한 해결책에 의존하지 않고도 어째서 행성의 움직임이 변칙적이고 밝기가 바뀌는지를 설명하기 때문에 우아한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 모형에서 프톨레마이오스가 고안한 복잡한 주전원을 없애는 대신 지구와 다른 행성이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행성 간 거리가 바뀌기 때문에 역행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p37) <천문학의 책> 中
창고를 정리하던 중 오랜 기간 쉬었던 호구(검도 보호 장비)가 눈에 띄어 잠시 꺼내본다. 조만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고 창고로 들어간 지 10년이 넘었다. 기회가 되면 연의와 함께 하고 싶은데, 여자 검사(劍士)를 별로 반기지 않는 연의 엄마의 반대로 조금 더 기다려야할 듯 싶다... 검사(檢士)는 좋아하려나...
PS. 본국검법과 조선세법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본국검법이 격법이라면 조선세법은 세법의 검법이다. 본국검법의 주 타격목표는 상위이다. 자연히 격법으로 검법이 발전되었다... 조선세법은 타격목표가 하위와 중위(허리)가 많다. 칼이 빗갓으로 흐르고 몸의 중심이동 변화가 많다... 본국검법과 조선세법은 이처럼 다른 성격의 검법이다. 본국검법이 이러한 격법의 검법으로 신라에서 수련하여 일본에 전래되고 이 본국검법보다 더 단순화 시킨 것이 오늘날의 일본의 격법이다. 본국검법에서는 그래도 좌우의 이동과 회전을 통한 격법의 연결을 수련하도록 하였지만 일본의 격법은 이러한 요소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우수우각의 전후진보법으로 더 단순화시켰다.(p212) <본국검예 1> 中
'본국검법'과는 달리 직접 '조선세법'을 해보진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꼭 배우고 싶다. 검도 도장에 다닐 때 매주 하루는 '본국검법'과 '일본의 본(本)'을 수련했었는데, 현대 스포츠로 정착한 검도에는 본국검법 보다 검도의 본(本)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시 수련을 하면 생각이 바뀔지는 잘 모르겠다...
검도의 본은 1886년 일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격검형(擊劍形)이라 하였다. 1912년에 검도형(劍道形)이라 하여 대도(大刀) 7본과 소도(小刀) 3본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현재 세계적으로 보급된 검도의 본이다.(p180) <정통 검도 교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