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제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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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거대 국가가 오랫동안 존속하면 존속할수록 그만큼 더 기술적으로 관료제적 기초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는 것, 게다가 근대적인 거대 국가가 크면 클수록 또 특히 더욱더 강대국이면 강대국일수록 또는 강대국이 되면 될수록 더 무조건 관료제적 기초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행정 업무 범위의 외연적인 양적 확대보다는 그 집중적인 질적 확대와 내적인 발전이 관료제화의 원인이다. _ 막스 베버, <관료제>, p35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 1864 ~ 1920)는 <관료제 Wesen, Voraussetzungen und Entfaltung der burokratischen Herrschaft>에서 사회가 복잡해 질수록 '관료'에 의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막스의 분석에 따르면 생산 양식 중 하나인 분업(分業)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보다 전문적인 집단 - 관료제-의 출현, 확대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이를 따른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분야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쥐게 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무엇보다 관료제화는 전문가 훈련을 받았으며, 또 끊임없는 실습을 통해 더욱더 자신을 훈련시키는 직원들에게 개별적인 일을 할당해, 순전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행정 작업 분할의 원리를 실행할 수 있는 최적 조건을 제공한다. 이 경우 "객관적인" 처리란 무엇보다도 계산 가능한 규칙에 따라 "인물을 고려하지 않는"처리를 의미한다(p40)... "객관성 Sachlichkeit"과 "전문성"이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규범의 지배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_ 막스 베버, <관료제>, p47


 관료제 기구는 권력을 잡은 혁명을 위해서도 점령하고 있는 적을 위해서도 보통은 종래의 합법적인 정부를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그저 계속해서 기능한다. 언제나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현존하는 관료제 기구를 지배한다는 것은 언제나 비전문가에게는 제한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p102)... 관료제 행정은 지식에 의거한 지배를 의미한다. 이것은 관료제 행정을 특별히 합리적이게 하는 기본적인 성격이다._ 막스 베버, <관료제>, p103


 막스는 위와 같은 자신의 주장을 19세기 프랑스 역사를 통해 입증한다. 가깝게는  우리 나라 현대사에서 친일 청산을 못한 실질적인 이유 중 하나가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지배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막스의 설명에 대해 공감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는 제1제정 시대[나폴레옹 치하 : 1804~1814] 이래로 지배자가 많이 바뀌었지만, 지배 기구는 본질적으로 똑같았다. 이 기구는 근대적인 정보 수단이나 통신 수단(전신)을 지배하는 한 폭력으로 전혀 새로운 지배 조직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에서의 "혁명"을 점점 더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구는 "혁명"을 "쿠데타"로 대체하였다. 왜냐하면, 프랑스에서는 성공한 변혁이 모두 그러한 것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_ 막스 베버, <관료제>, p64


 또한, 막스는 <관료제>에서 민주주의 체제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도입한 관료제가 도리어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근대화의 산물로 여겨지는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도입한 관료제의 충돌. 이것은 효율적인 근대 사회 조직인 관료제가 구성원들의 자기 보존 욕구로 인해 일종의 카르텔(Kartell) 또는 조합(組合)화 되는 것은 중세 질서로의 회귀는 아닐까. 일종의 도제 집단화되어 세습화되는 모습 안에서 '근대화 안의 반근대적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가 관료제의 부정적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관료제 조직은 보통 다음과 같이 해서 지배력을 갖는다. 즉, 조직은 경제적 및 사회적 차이의 중요성이 적어도 상대적으로는 평준화된 것에 기초해서 행정 기능을 담당한다. 관료제 조직은 동질적인 작은 단위의 민주주의적 자치 행정과는 달리, 특히 근대 대중민주주의의 불가피한 수반 현상이다.(p55)...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매우 확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즉, 민주주의라는 정치 개념은 피지배자들의 "권리 평등"에서 가능하다면 전문 자격에 구애되지 않고 나중에 무효화도 가능한 선거를 통해 관직의 단기 임용을 추구한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는 -명망가 지배와 싸워 얻어 낸 결과로서 - 그 자신이 낳은 관료제화 경향과 불가피하게 충돌한다._ 막스 베버, <관료제>, p58


 베버가 살던 시기보다 더 복잡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관료제는 국가 뿐 아니라 민간 영역에도 보편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관료제가 엔트로피(entropy) 증가하듯 뻗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의 불평등은 더 깊어지고, 더 굳어져가는 것이 현재의 어두운 면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본다면, '관료제'는 단순한 제도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에서 접근할 필요가 생긴다. 다만, 관료제가 자리잡고 있는 현상(現象, phenomenon)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관료제의 부정적 측면을 고치기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베버가 분석한 '교육(敎育 education) '으로 지탱되는 관료제의 속성에 주목하게 된다. 관료제를 유지하고 있는 뿌리가 '교육'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관료제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서는 더 깊고 오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교육' 문제가 결코 수험생과 학부모만의 문제는 아닐 것임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발전은 무엇보다도 전문 시험을 통해 획득한 교육 증서가 지닌 사회적 위세로 인해 강력하게 촉진된다. 그리고 이 사회적 위세 자체가 다시 경제적인 이익으로 전환될수록 그 발전은 한층 더 족친된다... 종합 대학, 공과 대학, 상과 대학의 졸업장 발부, 일반적으로 모든 분야에서의 교육 증서 발급 요구는 관청이나 사무실에서의 특권층 형성을 조장한다.(p83)... 교육 제도의 기초에 관한 현대의 모든 논의의 배후에는 옛 "교양인" 형 型 대 "전문인" 형의 투쟁이 어떤 결정적인 장소에 숨어 있다._ 막스 베버, <관료제>, p86


순전히 관료제적인 행정, 다시 말해서 서류에 의한 관료제적 - 단일 지도 행정은 모든 경험에 따르면 순전히 기술적으로 최고도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형태의 지배 행사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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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1-04-08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버의 관료제론은 지금 읽어도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4-08 13:50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관료제>는 베버의 통찰력이 빛나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테레사 2021-04-08 13: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어떻게 이리도 ˝현재적˝일까요?

겨울호랑이 2021-04-08 13:53   좋아요 2 | URL
네. <관료제>를 통해 베버가 지적한 ‘관료제화‘가 지금도 지속된다는 것은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증이라 여겨집니다...
 

스피노자가 생각한 문제는, 그보다 훨씬 뒤의 시대에 등장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와  공공의 선을 적절하게 결합시키는 문제였다... 정부의 일반 원리는 자유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신장시키는 것이어야만 하며 이러한 자유는 진정한 문화적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스피노자의 주장은, 그가 이를 처음 언급하였을 때와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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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익은 남아 있는 의병들을 해산시키고 있었다. 공허의 대원 여섯까지 합해 모두 서른넷이었다. "여러분,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슬프고도 서운한 날입니다. 여러 가지고 사정이 여의치 못해 우리 의병대는 해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치도 슬퍼하거나 서운해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병을 해산하고 헤어진다고 해서 의병활동을 영영 끝내고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한번 의병으로 나선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때까지 의병정신으로 싸워야 하고, 우리는 기필코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송수익의 어조에는 비장감이 서렸고, 대원들의 얼굴에도 비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여러분, 이제 그만 일어들 나시오." 송수익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슬픈 빛이 역연했고, 침통한 목소리에는 물기가 스며 있었다. "우리 그냥 작별허기 서럽고 지랄 같은디 속 풀고 맘 다지게 다함께 노래나 한 자락 허고 뜨는 것이 어쩌겄소!" "아리랑이 딱 좋네. 한 사람씩 돌아감스로 가락얼 먹어기로 허는 것이여. 모다 얼렁얼렁 일어나드라고."_조정래, <아리랑2> 中


 구한 말을 배경으로 하는 조정래의 장편 소설 <아리랑>. 아리랑은 의병을 해산하는 순간에도, 하와이에서 국민군단을 창설할 때에도 인물들과 함께 한다. 슬플 때에도, 그리울 때에도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아리랑이었다. 오늘은 의병을 해산하는 송수익이 어떤 심정으로 노래를 불렀을 지 조금은 더 깊게 공감하게 된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아닌데, 소설 속 인물에 이렇듯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보다 내 자신의 감수성이 풍부함을 느끼는 밤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그리움이 사무쳐 몸부림이 일어나는 것처럼 아리랑을 목놓아 구성지고 서럽게 불러댔다. 술에 취하면 누구나 아리랑을 불렀다. 불러도 목놓아 불렀다. 목놓아 부르다 보니 가락은 제멋에 겨워 더 늘어지며 넌출져 휘감기며 처연해지고, 술에 젖은 가슴은 그 가락을 못 이겨 허물어지며 더 서러워지고 녹아내리며 한스러워져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가락에는 끝내 물기가 묻어나고는 했다._조정래, <아리랑4>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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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08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런 장면은 볼 때마다 마음이 찡! 아 저는 민족주의자 안하고 싶은데도 어쩔 수 없이 찡...
조정래작가님이 그만큼 글을 잘 쓰시도 하고요. (요즘은 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글 읽으면서도 찡 하잖아요. ^^

겨울호랑이 2021-04-08 12:30   좋아요 0 | URL
네... 민족에 흐르는 보편적인 감정이 있음을 문학작품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그러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집단이고 역사가 이들의 공통된 경험이라면, 감정을 느끼는 경험은 온전하게 개인의 것임도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洋)The Economist 2021年 3月 26日號
日販IP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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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부산에서 보궐 선거가 있는 날. 매일 아침 세계의 주요 뉴스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제공하는 The Economist Espresso에서도 중요한 비중으로 우리나라 보궐선거가 다뤄지는 것을 보면, COVID-19동안 우리나라의 국제 위상이 많이 올라갔음을 새삼 실감한다. 동시에, 국내 정치도 언론을 못 믿어 외신으로 봐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이번 선거에 유권자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선거에 쏠려있음을 실감하는 오전이다...

South Koreans go to the polls today to elect new mayors for Seoul and Busan, the country‘s biggest cities...The by-elections are widely seen as a referendum on Moon Jae-in, the president, in the final year of his term. It looks unlikely to be favourable. Mr Moon‘s approval rating is the lowest since he took office; opposition candidates lead both races by wide margins... But a scandal over profitable land deals involving employees of the state housing agency hasn‘t helped. Nor has the fall of the two mayors. The opposition, though expected to win, isn‘t terribly popular; its main selling-point is the contrast with Mr Moon and Min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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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4-07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내의 유사 언론행세를 하는 미디어들과
달리 이코노미스트의 정세 분석이 정확
한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4-07 10:50   좋아요 3 | URL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국내 유력 일간지들을 보면서 항암 유발 물질이 포함된 광고지/전단지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이 드네요... 참 슬픈 일 입니다.... ㅜㅜ

단발머리 2021-04-07 1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국내 유력 일간지 보는 사람 얼마 없는듯 한데 포탈을 통해서인지 아직 힘이 막강하네요. 참 씁쓸합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1-04-07 12:05   좋아요 1 | URL
네... 아직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계속 구독을 하시고, 종편에 노출되어서 계속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계시니 참 갈 길이 먼 듯합니다..ㅜㅜ

2021-04-07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7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7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7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뿐호빵 2021-04-07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씁쓸합니다..ㅜㅜ

세상을 바꾸는 모든 일은 손으로...
아직도 그 손이 어떤 손인지 모르는 듯 하네요

겨울호랑이 2021-04-07 23:47   좋아요 1 | URL
저도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에 매우 놀랐습니다.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르지만, 이번 결과를 통해 더 나은 내일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씁쓸하긴 합니다만, 이번 제 평생에 있을 수많은 선거 중에서 하나일 뿐이니까요. ^^:)
 

자신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각 인간은 다른 사람의 선을 위해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인간 사회의 공동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리 40」 본문). 인간이 혼자 사는 것보다 함께 살면 훨씬 유익하고 이로움을 주는 것이 선이다. 반대로 국가에 공동체 사회나, 국가에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당연히 악이기 때문에 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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