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이전 해(기원전 217년)에 집정관과 그의 병력을 트라시메네 호수에서 잃었고, 이젠 그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그 강도는 훨씬 더 큰 참사를 당했다. 두 집정관의 군대가 전멸했고, 두 집정관도 전사했다. 로마는 전장에 내보낼 병력이 없었다. 지휘관은 물론 병사 한 사람도 없었다. 아풀리아와 삼니움은 한니발의 손에 떨어졌다. 이제 거의 모든 이탈리아가 그의 소유가 될 것이었다. 그런 엄청난 참사를 연달아 겪으며 압도당한 나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그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311/1584


 칸나이의 대패가 이전 패배들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건 이후 로마의 동맹이 보인 행동에서 드러났다. 운명의 날 전만 해도 그들의 충성은 확고했다. 하지만 이젠 그 충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은 로마의 권력이 앞으로 존속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335/1584


 그런 상황에서 등장했던 젊은 청년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BC235~BC183)였다. 절망과 비탄에 빠진 고국에서 젊은 청년 스키피오는 체제를 정비하는데 앞장서고, 히스파니아(Hospania, 현재 에스파니아)에서 전사한 아버지를 대신해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Hasdrubal Barca, ? ~ BC207)을 견제하고, 훗날 자마 전투(Battle of Zama, BC202)에서 한니발을 패퇴시키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마무리한다.


 만장일치로 지휘권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와 무척 젊은 청년인 스키피오에게 돌아갔다. 네 명의 천인대장은 친구 몇 사람과 함께 어떤 조처를 해야 할지 논의했는데, 이때 전직 집정관의 아들 필루스가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그는 많은 귀족이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툴루스를 따라 바다로 눈을 돌려 이탈리아를 버리고 타국 군주에게 도망칠 계획이라는 말을 전하면서, 모든 걸 잃었기에 희망을 간직하는 일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는 장차 고통과 절망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307/1584


 그때까지 시민들은 막중한 지휘권을 충분히 맡을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입후보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되자 전사한 두 장군의 공백이 새롭게 다가왔고, 그들이 겪었던 패배의 고통이 되살아났다(p797)... 그런 분위기가 팽배할 즈음에 갑자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즉 스페인에서 전사한 푸르리우스 스키피오의 아들이자 24세 가량의 젊은이가 자신이 사령관에 입후보하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고, 평민은 함성을 지르며 만장일치로 입후보를 허락하며 행운이 함께할 것이며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성원했다... 하지만 일이 끝나서 갑작스러운 충동이 사라지고 머리를 식힐 여유가 생기자 어색함 침묵이 흘렀고, 사람들은 건전한 상식보다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려 일을 저지른 게 아닌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스키피오의 나이가 시민들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798/1584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2030의 표심이 모처럼 정치권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들의 표심에 따라 대선의 결과가 크게 요동친 것을 보면서 젊은 세대들을 배제한 정치는 이제 자리잡기 힘들다는 인식이 점차 퍼져나가는 듯하여 반갑다. 일찌감치 젊은 당대표를 선출하여 선거에 임한 국민의 힘과 선거 패배 이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에 '불꽃' 박지현을 비롯한 청년들의 참여가 대거 이뤄졌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정치 역량 등에 대해 정치전문가들의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 관점에서 대선패배가 선거 후폭풍으로 당권을 장악하려는 내부싸움 대신 새로운 인재 영입과 청년정치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면, 보다 더 의미있는 사건이 되지 않을까. 한가지 우려되는 지점은 대선으로부터 불과 2개월 남짓 후에 치뤄질 선거의 패배를 이들에게 지우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 비대위의 청년 정치인들이 스키피오처럼 극적인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은 분명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번 지방선거에서 숨지 않고 전면에 나선 젊은 청년들에게 다음 선거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자리가 되고,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정치전문가가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기원하고 그들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스키피오의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무모했던 것이, 당시 스키피오도 잘 알고 있던 바, 하스드루발 바르카스는 정부로부터 갈리아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스키피오의 귀환이 지체된다면 이베르강에 남았던 군대로는 카르타고 공세를 제대로 막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사령관이 기습 공격을 위해 긴급한 임무를 방기한 채 뛰어들었던 위험한 장난은, 스키피오와 넵투누스 신이 합작하여 거둔 전설적 성공 덕분에 가려졌다. 기적에 가까운 페니키아인의 주요 도시 함락은 비범한 청년에게 걸었던 기대 전체를 정당화했거니와 다른 말은 있을 수 없었다. _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3>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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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2-03-14 16: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침에 했던 걱정을 정말 깊이 풀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거의 승패여부를 떠나서 이번 대선을 계기로 유능한 청년들이 기성정치속에서 선거용이 아니라 진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자리 잡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ㅎ

겨울호랑이 2022-03-14 16:36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께서 같은 생각을 해주시니 더없이 반갑습니다. 어쩌면 이번 선거에서 0.8% 차이로 이겼다고 하더라도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그들만의 논공행상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이 더 큰 비극이 아니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아쉬운 선거결과지만, 결과가 가져온 영향이 긍정적일 때 훗날 정치사에서 의미있는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시무스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 ^^:)

레삭매냐 2022-03-14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를 통해 386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시절이 지나갔음을
받아 들이고, 말 그대로 쿨하게
용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청년들에게 문호
를 개방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를
외친 그들이 신예 정치인들을 양
성하지 않은 후과에 대해서도 반
성하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2-03-14 16:42   좋아요 3 | URL
그렇지요... 386의 결집이 노무현을 만들었고, 그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 이제는 586이 된 세대들의 공과라 생각됩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분명 있지만,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과제를 넘겨주고 역사의 주역이 아닌 조연의 자리로 내려가야 할 시기임을 이번 선거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정치인 뿐 아니라 저를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 여겨집니다...
 

"여러 왕들은 마땅히 스스로 혐의(嫌疑)를 피해야지, 가볍게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폐하께서 만약 우애를 가지고 용납하고 있다면, 청컨대 옛 제도에 의거하여 16택(宅)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사부(師傅)를 절묘하게 선발하여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가지고 가르쳐서, 군대를 다루거나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한건이 주문을 올렸다. "폐하께서 즉위한 이래로부터 근보(近輔)와 서로 나빴던 것은 모두가 여러 왕들이 군대를 다루고 흉악한 무리들이 화란을 좋아하여 난여(?輿)가 불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최근에 신(臣)이 주문을 올려서 병권을 철회하라고 한 것은 사실상 예측하지 못할 변란을 염려해서입니다. 지금 듣건대 연왕(延王)과 담왕(覃王)이 오히려 흉한 계획을 끌어안고 있다 하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성스런 판단을 내리어 의심하지 말며, 아직 변란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통제하신다면 사직(社稷)의 복일 것입니다."

한건이 또 주문을 올렸다. "폐하께서 현명한 사람을 선발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임용한다면 재앙과 어지러움을 청산하기에 충분한데, 왜 반드시 전후사군(殿後四軍)을 별도로 설치하셔야 했습니까! 두터움과 엷은 은혜와는 차이가 두드러지게 있으니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하는 도리를 어겼습니다. 또 모아놓은 사람들은 모두 시장거리에서 무뢰하고 간악하며 교활한 무리들로 평안하게 거처할 때에도 여전히 재앙과 변고가 나기를 생각하였으니, 환난에 직면하여서는 반드시 쓰임이 되지 않을 것인데, 그들에게 활을 당기고 칼을 잡게 하여 황상의 수레에 밀착시켜 가까이하게 하니 신은 가만히 마음이 오싹합니다. 빌건대 모두 해산하시기 바랍니다."

유인공이 또 사신을 보내어 이극용에게 사죄(謝罪)를 하고, 거취(去就)와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속마음을 설명하였다. 이극용이 회답하였는데, 그 대략이다. "지금 공(公)은 부월(斧鉞)에 기대고 군사를 장악하였으니, 백성을 다스리고 법규를 세우고, 인사들을 발탁하고서 그들이 덕에 보답하기를 바라고, 장수들을 선발하고서 저들이 은혜에 보답하기를 희망하겠지만, 이미 아직 그렇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이 어찌 충분히 신뢰하겠소!
내가 헤아리건대, 의심과 방비는 골육으로부터 나올 것이고, 미움과 질투는 병유(屛?, 병풍 쳐진 휘장 안, 막사) 안에서 발생할 것이며, 간장(干將)을 가지고 있어도 감히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을 것이니, 맹세하는 접시52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해도 무슨 말로 맹세를 드러낸다는 것이오!"

우습유(右拾遺) 장도고(張道古)가 소문을 올려 말하였다. "국가에는 다섯 가지의 위기와 두 가지의 재난이 있습니다. 옛날 한 문제(漢 文帝)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국가의 사무를 명백히 익혔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등극한 지가 이미 10년이나 일찍이 임금 됨과 신하를 부리는 방도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종(太宗)은 안으로 중원을 안정시키고 밖으로는 사방의 이족(夷族)들을 개척하며 바다 밖의 나라도 들어와 신하가 되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 먼저 있었던 조정이 물려준 영역은 날로 오그라들어서 거의 없어졌습니다. 신은 비록 미천하나 가만히 폐하의 조정과 사직이 처음에는 간신들에 의해 농간을 당하다가 끝내는 역신(逆臣)들의 소유가 될 것을 마음아파 합니다!"

"여러 방사(方士)들이 궁정을 출입하며 성청(聖聽, 천자가 들음)을 현혹시키니 의당 모두 금지하여 궁에 들어올 수 없게 하십시오." 조서를 내려 모두 그의 말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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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개정판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박설호 옮김 / 울력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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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손주경 옮김 / 비(도서출판b)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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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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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b판고전 19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손주경 옮김 / 비(도서출판b)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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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악덕, 이 불행한 악덕은 무엇이란 말이냐?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들, 부모들, 아이들, 심지어는 자기만의 삶을 버리고 학대당하게 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이냐? 군인들에 의해서도 아니고, 자기 피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맞서야 할 야만의 군대에 의해서도 아니고, 헤라클레스나 솔로몬 같은 자도 아닌 단 한 사람에 의해서, 많은 경우 그 나라에서 가장 비열하고 가장 유익하며, 전쟁의 화약을 결코 마셔보지도 않고, 결투의 모래바닥을 조금도 밟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휘하는 데 뿐만 아니라 가장 가냘픈 여인네마저도 만족시킬 능력이 없는 인간 같지도 않은 한 사람에 의해서 탈취와 방탕과 잔혹함을 겪에 되는 이것은 무엇이란 말이냐?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8

에티엔 드 라 보에시(Etienne de La Boetie, 1530~1563)는 <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에서 물음을 제기한다. 왜 민중들은 폭군(暴君)에게 복종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가진 단 한 사람에게 복종하는 상황이 다수에게 불행이라면, 왜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일까? 보에시는 이러한 상황이 가능한 이유를 '자발적 복종'에서 찾는다.

우선 당장은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마을들이, 많은 도시들이, 많은 국가들이 단 한 사람의 폭군을 때때로 지지하게 되는지 만을 생각해보자. 이 자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준 권력 말고는 다른 권력을 갖지 않는다. 이 자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준 권력 말고는 다른 권력을 갖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견뎌내기를 원하는 만큼 그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하기보다는 스스로 참고 견디는 것을 더 바라지 않는다면 그는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칠 수 없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4

한 명에 의해 많은 이들이 구속되어 있는 상황은 자발적 복종이 아니라면 설명되기 어렵다. 힘이 부족해서 일시적인 복종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힘의 크기가 현저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가 가능한 것은 자발적 복종이 일어나기 위한 전제가 충족될 때 가능하다. 그것은 '자유(自由)망각' 때문이며, 자유망각은 '관습'에 의해 복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 보에시의 분석이다.

사람들이 복종을 당하자마자 자유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 자유를 다시 얻기 위해 깨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보는 일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나서서 섬기고, 그것도 기꺼이 섬기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단지 단지 자유를 잃은 것이 아니라 복종을 얻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이다. 처음에는 힘에 의해 억압을 당해 굴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후에 사람들은 후회도 하지 않고 복종하며, 자기네 선조들이 강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일을 자진해서 해낸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47

모든 영역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관습은 무엇보다도 복종을 배우게 만드는 관습이며, 독약에 길들여진 끝에 목숨을 잃었던 미트리다테스 Mithridates가 전해주고 있는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복종의 독이 쓰디쓰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자진해서 들이키도록 가르쳐주는 것보다 더 힘이 센 것은 없다.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48

보에시에 따르면 관습은 우리에게 사회를 살아가는 덕목들을 가르쳐 주지만, 관습이 지향하는 수많은 덕(德 vertu)에는 '자유'가 포함되지 않는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찬양받는 미덕(美德)에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되지 않기에, 전승되는 관습에 무비판적으로 따를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깨닫지 못하고 소수의 다수 지배라는 시스템에 자발적인 복종을 하게 된다.

용감한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려 깊은 자들은 어떠한 고통도 물리치지 않는다(p26)...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들이 욕망하지 않는 단 하나의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극히 위대하고 감미로운 자유이다. 그것이 상실되면 모든 악덕이 이어지고, 자유 뒤에 놓여 있던 다른 모든 행복들은 굴종으로 인해 썩어버려서 맛과 풍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오직 이 자유, 그것을 인간들만이 유일하게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27

이러한 상황에서 결론은 자연스럽게 '계몽(啓蒙)'으로 흘러간다. 자기 스스로 관습을 깨치고 관습을 벗어날 수 있도록 잘 배우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구체제(Ancien Regime)의 모순을 극복하자는 결론이 <자발적 복종>의 구조이며 결론이다. 보에시가 말한 자유는 단순한 개인의 의지를 말하지 않는다. 보에시가 말한 자유는 '상호 보조'를 위한 것이며, 지배를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 사이의 연대(slidarite)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인간 이성(理性)에 기반한 자유를 통해 깨닫고, 연대를 통해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 현재의 '자발적 복종'을 넘어선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저자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

<자발적 복종>의 마지막 주장은 계몽시대의 교과서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자칫 식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수로부터 권력을 받은 1인 혹은 소수에 의한 지배라는 상황을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관점에서 합리화하지 않고, 개선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현실에서 <자발적 복종>이라는 모순된 제목의 책은 씁쓸함과 유용함을 현대의 독자들에게 함께 전달한다...

그러니 배우도록 하자. 잘 행동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우리의 명예 혹은 우리의 미덕에 대한 사랑을 위해, 아니 더 나아가 우리의 행동을 충실히 증명해주시고 우리의 잘못을 심판하시는 전지전능한 신의 명예와 사랑을 위해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폭정보다 선량하고 자유로운 신에게 대항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 신은 폭군들과 그들의 공모자들을 위해 몸소 이 땅에 어떤 특별한 몫을 남겨두었다는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03

우정 l'amitie이라는 공동의 의무가 우리 인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 때문이다. 미덕(vertu)을 사랑하고 훌륭한 행동을 높이 평가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들의 명예와 이득을 더하기 위해 때때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줄이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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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14 01: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네요.
다만 이러한 자발적 복종이 계몽에 의해서 바뀌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이라서요. 어렵네요.
주말이 끝났는데 다음주도 힘내서 화이팅하세요. ^^

겨울호랑이 2022-03-14 07:43   좋아요 2 | URL
<자발적 복종>을 읽으며 보에시가 말한 ‘자발적 복종‘과 이에 대한 계몽은 ‘상태에 대한 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자신이 자발적 복종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몽은 영화 <Matrix>에서 진실을 알게 하는 ‘빨간 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수단을 통해 현실을 파악한 뒤 사람들은 또 저마다의 선택을 하겠지요.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인가... 행동 이전에 무엇이 진실인가를 끊임없는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어쩌면 1회성 숙제가 아닌 평생에 걸쳐 해내야 할 과제라고도 생각되네요... 바람돌이님께서도 한 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 2022-03-14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사람은 복종하도록 길러진다.
2. 자신과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을 위한 행위
3. 그냥 관심이 없다.
4. 두려움
5. 복종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다.
6. 그것이 법과 질서라고 믿는다.
7. 독재를 찬양한다.

사람들이 독재에 저항하지 못 하는 이유이겠죠..

겨울호랑이 2022-03-14 07:51   좋아요 3 | URL
현실에서 독재에 저항하는 행동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 다른만큼 다양하게 나타나거나, 혼합되어 나타나겠지요. 논리야놀자님께서 구체적으로 나열해 주신 이유들도 이들 안에 포함되리라 여겨집니다. 보에시는 <자발적 복종>에서 말씀하신 독재에 저항하지 못하는 구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자유‘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자유가 ‘방종‘이 아닌 ‘이성‘의 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구조적 모순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읽힙니다. ‘독재‘라는 문제를 낳는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처하는 모습도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구조에 대한 고민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보에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논리야놀자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4-09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4-09 08:18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이하라 2022-04-09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04-09 08:19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꼬마요정 2022-04-09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04-09 08:19   좋아요 0 | URL
꼬마요점인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따라서 우정은 인간들이 서로 형제임을 밝혀주는 힘이고, 형제로 만드는 힘이며, 모두가 자연스럽게 자유로운  존재라는 증거이다. 우정은 인간의 자유를 지켜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서로 사회적 관계를 맺도록 허용하는  정당성도 부여해준다.
탐욕에 의해 복종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개인은 고립된, 즉 파편화된 존재일 뿐이며, 인간들이 상호 관계를  통해 만들수 있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자이다. 각자의 개인적 가치를완전하게 존중하는 우정은 공동체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정치적 형태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우정이 파괴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자연성이 파괴된 것과 다르지 않다. 바로 여기에서  폭군의  등장이 가능해지고, 복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오류가 발생한다. 우정이 파괴된 자리에 폭군을정의하는 요소인 탐욕이 언제나 개입하는 법이다.
이런 이유로 복종한 인간에게는 자연에 의해 각자가 우정으로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 P153

이것이 민중의 복종에 내재된 신비이다. 라 보에시는 폭군의 등장은 민중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면에서는 민중이 폭군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지적한다. 이 점에서 그는 민중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 군주가 폭군이 되기 위해서는 다수의권한과 힘을 자신의 권한과 힘으로 몰수해야 한다. 달리 말해 폭군은 민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민중은 자발적으로 복종을 선택하는 자연적  성향을  띠고 있다. 폭군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근거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폭정은  인민정부(gouvernement populaire)와 구분될 수 없다. 즉 민주주의와 폭정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기능을 지닐 수 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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