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이전 해(기원전 217년)에 집정관과 그의 병력을 트라시메네 호수에서 잃었고, 이젠 그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그 강도는 훨씬 더 큰 참사를 당했다. 두 집정관의 군대가 전멸했고, 두 집정관도 전사했다. 로마는 전장에 내보낼 병력이 없었다. 지휘관은 물론 병사 한 사람도 없었다. 아풀리아와 삼니움은 한니발의 손에 떨어졌다. 이제 거의 모든 이탈리아가 그의 소유가 될 것이었다. 그런 엄청난 참사를 연달아 겪으며 압도당한 나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그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311/1584
칸나이의 대패가 이전 패배들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건 이후 로마의 동맹이 보인 행동에서 드러났다. 운명의 날 전만 해도 그들의 충성은 확고했다. 하지만 이젠 그 충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은 로마의 권력이 앞으로 존속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335/1584
그런 상황에서 등장했던 젊은 청년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BC235~BC183)였다. 절망과 비탄에 빠진 고국에서 젊은 청년 스키피오는 체제를 정비하는데 앞장서고, 히스파니아(Hospania, 현재 에스파니아)에서 전사한 아버지를 대신해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Hasdrubal Barca, ? ~ BC207)을 견제하고, 훗날 자마 전투(Battle of Zama, BC202)에서 한니발을 패퇴시키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마무리한다.
만장일치로 지휘권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와 무척 젊은 청년인 스키피오에게 돌아갔다. 네 명의 천인대장은 친구 몇 사람과 함께 어떤 조처를 해야 할지 논의했는데, 이때 전직 집정관의 아들 필루스가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그는 많은 귀족이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툴루스를 따라 바다로 눈을 돌려 이탈리아를 버리고 타국 군주에게 도망칠 계획이라는 말을 전하면서, 모든 걸 잃었기에 희망을 간직하는 일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는 장차 고통과 절망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307/1584
그때까지 시민들은 막중한 지휘권을 충분히 맡을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입후보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되자 전사한 두 장군의 공백이 새롭게 다가왔고, 그들이 겪었던 패배의 고통이 되살아났다(p797)... 그런 분위기가 팽배할 즈음에 갑자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즉 스페인에서 전사한 푸르리우스 스키피오의 아들이자 24세 가량의 젊은이가 자신이 사령관에 입후보하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고, 평민은 함성을 지르며 만장일치로 입후보를 허락하며 행운이 함께할 것이며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성원했다... 하지만 일이 끝나서 갑작스러운 충동이 사라지고 머리를 식힐 여유가 생기자 어색함 침묵이 흘렀고, 사람들은 건전한 상식보다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려 일을 저지른 게 아닌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스키피오의 나이가 시민들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798/1584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2030의 표심이 모처럼 정치권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들의 표심에 따라 대선의 결과가 크게 요동친 것을 보면서 젊은 세대들을 배제한 정치는 이제 자리잡기 힘들다는 인식이 점차 퍼져나가는 듯하여 반갑다. 일찌감치 젊은 당대표를 선출하여 선거에 임한 국민의 힘과 선거 패배 이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에 '불꽃' 박지현을 비롯한 청년들의 참여가 대거 이뤄졌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정치 역량 등에 대해 정치전문가들의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 관점에서 대선패배가 선거 후폭풍으로 당권을 장악하려는 내부싸움 대신 새로운 인재 영입과 청년정치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면, 보다 더 의미있는 사건이 되지 않을까. 한가지 우려되는 지점은 대선으로부터 불과 2개월 남짓 후에 치뤄질 선거의 패배를 이들에게 지우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 비대위의 청년 정치인들이 스키피오처럼 극적인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은 분명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번 지방선거에서 숨지 않고 전면에 나선 젊은 청년들에게 다음 선거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자리가 되고,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정치전문가가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기원하고 그들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스키피오의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무모했던 것이, 당시 스키피오도 잘 알고 있던 바, 하스드루발 바르카스는 정부로부터 갈리아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스키피오의 귀환이 지체된다면 이베르강에 남았던 군대로는 카르타고 공세를 제대로 막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사령관이 기습 공격을 위해 긴급한 임무를 방기한 채 뛰어들었던 위험한 장난은, 스키피오와 넵투누스 신이 합작하여 거둔 전설적 성공 덕분에 가려졌다. 기적에 가까운 페니키아인의 주요 도시 함락은 비범한 청년에게 걸었던 기대 전체를 정당화했거니와 다른 말은 있을 수 없었다. _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3> , p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