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도주 - 벼랑 끝으로 내몰린 루이 16세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5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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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6월 21일 밤 1시경 루이 16세는 가족과 함께 변장한 뒤 튈르리 궁을 몰래 빠져나가 뤽상부르(룰셈부르크)쪽 국경을 향해 달려갔다가, 결국 밤 11시에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바렌에서 붙잡혔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10/380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5권 <왕의 도주 - 벼랑 끝으로 내몰린 루이 16세 Liberte>는 불과 하루 남짓한 루이 16세의 도주 배경을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절대군주에서 입법(入法)권을 국회에 넘겨주고 프랑스를 위해 절대군주에서 입헌군주로 내려오겠다고 선언했던 루이 16세. 그러나, 파리에서 몰래 빠져나가고 남겨놓은 <왕이 파리를 떠나면서 모든 프랑스인에게 보내는 성명서>는 그간 입헌군주로서 자신이 행한 행위가 강박에 의한 것으로 무효임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정치적 유서가 되버렸다.

루이 16세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형편없게 되었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겉으로는 혁명에 동조했지만, 절대군주제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글로 남겼다. 2년 동안 자신이 받아들이고 승인했던 수많은 법을 한순간에 부정했다. 게다가 그는 국회가 전보다 더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1791년의 현실을, 1,400년간 번영했던 군주제가 아니라 온갖 정치 클럽의 전제정 또는 무정부상태라고 진단했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305/380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입헌군주로서 자신을 부정하고 사실상 혁명을 부정했던 것이었을까. 혁명 이후 루이 16세의 몸은 튈트리(Tuileries)에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베르사유(Versailles)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정신은 궁정사회의 질서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절대군주인 자신을 정점으로 형성된 커뮤니케이션의 장, 사교계에 익숙한 그에게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 ~ 1990)가 <궁정사회 Die ho"fische Gesellschaft>에서 강조했던 '결합태(Figuration)의 중심'에서 '국회의 배경'으로 전락한 상황은 마치 중세인들이 '지동설'을 받아들여야 했던 충격처럼 다가가지 않았을까. 루이 16세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도주라는 길을 택한다.

국회는 세습적 군주제와 대의정부를 합친 형태의 헌법을 채택했고, 입법부는 상설기구이고 종교인, 행정관, 판사들을 인민이 선출하는 체제를 만들면서 입법권을 구고히가 가지며, 법의 승인권을 왕이 가지도록 했다. 국내외의 공권력도 똑같은 원리 위에 조직했고 삼권분립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 새 헌법이라고 하면서, 왕은 이 헌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사실을 각국 대사가 외교활동에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혁명이란 수세기 동안 쌓인 수많은 폐단을 척결하는 일이며, 그 같은 폐단은 인민의 잘못이나 대신들의 권한남용 때문에 쌓인 것이지 왕들의 권한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p243)... 무모랭이 대변했듯이, 왕이 생각하는 프랑스 혁명은 혁명세력이 생각하는 것과 원칙적으로 같았다. 그러나 과연 왕은 진심으로 그 사실을 인정했던 것일까? _ 주명철, <왕의 도주> , p244/380

그렇지만, 혁명에 대해 위선적이었던 것은 루이 16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혁명에 대한 (좌파)의원들의 태도다. 이들은 국왕을 이용해 왕당파를 무마하고, 적대적이었던 외국(특히 오스트리아 제국)과 국내의 반혁명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위선적이었다. 그들이 외치는 '국왕 만세'는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인질을 안도하게 하려는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면에서 본다면, 루이 16세 도주사건 직전까지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은 '궁정사회의 무도장'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자신의 진의를 가면으로 애써 감추고, 설사 알더라도 미소로 적당히 무마하며 넘어가는 사교장과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그들의 정치적 기만속에서 여러 법률들이 제정되어 나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루이 16세 뿐 아니라 프랑스 혁명 자체가 '궁정예법'의 패러다임에서 움직이는 앙시앵 레짐의 유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앙시앙 레짐의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한계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혁명의 완성은 과거에 대한 완전한 기억의 소멸로 끝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루이 16세의 도주 사건 후 분명해진 것은 가면 속에 진의를 숨겼던 왕이 본모습을 드러내면서, 국회 역시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는 없어졌다는 점이다. 혁명의 파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이처럼 4월 하순에 왕이 진심을 드러내기보다는 혁명에 동조하는 듯한 말로 쓴 편지는 좌파 의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좌파 의원들은 그것이 왕의 진심인 줄 알았을까? 비록 진심이 아닌 줄 알았더라도, 그들은 왕이 혁명에 동조한다는 편지를 전국에 알려 왕의 행동을 더욱 제약하고, 왕당파에게도 훌륭한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속내가 다르더라도 마지못해 맹세하는 행위는 장래의 행동을 규제하기 마련이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247/380

.그 뒤(루이16세의 도주사건과 귀환) 여론은 왕을 폐위하라고 난리였다. 그러나 국회는 여론을 외면했다. 정치가들은 왕이 순진하게 꾐에 빠져 납치당했다고 하면서 도주의 혐의를 벗겨주었다. 대중은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압박했고, 파리 시장은 계엄령을 내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해 여남은 명이나 학살했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이나 옛 프랑스의 왕을 모두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세력이 있고, 대중은 거기에 속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을 쥔 사람들은 대중의 의견을 존중하고 타협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국을 이끌려고 노력한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10/380

루이 16세가 감행한 30시간의 모험은 완전히 실패했다. 루이 16세가 다스리던 왕국은 이제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음을 오지 마을인 바렌이 증명했다. 그것은 프랑스 왕국이 이제 국민국가로 거듭 태어났음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1790년 7월 14일의 전국연맹제가 상징적으로 보여준 연대감을 읽을 수 있다. 신분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왕의 군대가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연맹의 정신을 구현하는 국민방위군 앞에서 맥을 못 추는 현실에서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사건이 끝난 뒤에도 왕이 자리를 유지하긴 해도, 그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고, 수동시민들의 정치무대에 뛰어드는 일이 잦아지면서 혁명이 급진화하게 된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337/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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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and Japan court disaster 한국과 일본 법원의 참사


Yoon Suk-yeol has historic ambitions for his country’s relationship with its neighbour Japan. On August 17th South Korea’s president said that the two countries’ enmity, stemming from Japan’s colonial rule over Korea from 1910 to 1945, could be swept aside “amicably and promptly”. His enthusiasm is understandable - a bit of bonhomie could make both countries richer and more secure, especially in the face of rising tensions in the region.


 윤석열은 이웃 일본과의 외교관계에 대한 역사적 야망이 있다. 8월 17일 한국  대통령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통치에 기인한 양국의 적대감을 "우호적이고 신속하게" 해소될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열정은 이해할 만하다. 특히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이는 현상황에서 작은 친밀감이라도 이들 나라를 더 부유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His optimism makes less sense. The path to rapprochement is long and treacherous, and the journey could end almost before it has begun. In 2018 South Korea’s courts approved the seizure of assets from certain Japanese companies, on the basis that Koreans had been forced to toil on their behalf during the second world war. The liquidated assets would be given to the victims. The companies refused to pay, but the court’s final decision may come as early as Friday. Forcing the firms to pay up will enrage Japan, and will probably put pay to Mr. Yoon’s aspirations.


 (그렇지만) 그의 낙관주의는 타당하지 않다. 관계 회복의 길은 멀고 험난하며, 그 여정은 채 시작되기도 전에 끝날 수 있다. 2018년 한국 법원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국인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이유로 일부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를 승인했다. 청산된 자산은 피해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회사는 지불을 거부했지만 법원의 최종 결정은 빠르면 금요일에 나올 예정이다. (일본)기업들에 대한 배상 강제는 일본을 화나게 할 것이며 아마도 윤 대통령의 열망을 잠잠하게 만들 것이다.


 아침에 본 <The Economist>의 오전 briefing 기사. 빠르면 오늘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예정인 가운데 국내 언론들은 사안의 엄중함보다는 한일관계 개선과 일본의 우려를 집중조명하며 법원에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광복절에 일본과 관계회복을 경축사로 내보내는 대통령과 일본정부의 입을 자처하는 언론들 속에 우리들의 사법주권은 지켜질 수 있을까. 어설프고 역사의식 없는, 외신보다도 사안에 대한 파악이 안되는 대통령과 정부의 행태에 피해자들의 권리와 마음이 짓밟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지는 금요일 아침이다... 


 공탁이란 채권자가 채무금 수령을 거부할 때, 수령이 불가능할 때, 채무자가 채권자를 확정할 수 없을 때 이루어지는 민법상의 행위이다. 공탁되는 순간 채무자는 해당 채무와 관련하여 법적 의무에서 해방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일본 민법 제494조, 정령 제22호에 의해 공탁하도록 일본 정부가 지시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_ 허광무 외, <전시 한인 노동력 동원> , p578/734


 미불금 공탁은 일본 기업의 채무 책임을 면해 주는 데 기여했을지언정 조선인 노무자의 권리 구제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조선인 미불금은 공탁하지 않더라도 제도적으로 이를 규제할 수 없었는데, 오히려 조선인 미불금을 축소/은폐하여 적립금에 포함시킴으로써 기업이 전쟁손실에 보전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공톽되지 않은 수많은 조선인 노무자의 권리 구제는 어떡할 것인가. 한/일 양국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이자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이다. _ 허광무 외, <전시 한인 노동력 동원> , p59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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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9 08: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사의식 없는...어설픈데,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ㅠ

겨울호랑이 2022-08-19 09:14   좋아요 4 | URL
네... 앞만 바라보고 정신승리하면서 검찰까지는 그럭저럭 갈 수 있었습니다만, 보다 폭넓은 식견과 투명함이 요구되는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서는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생각됩니다. 대통령으로서 능력의 한계는 대기업 사장 출신 전직 대통령의 사례에서도 짐작못할 바는 아니없습니다만... 패거리 정치의 전례는 과거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공신 숙청에서 유사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나마 한고조는 생전에 공신을 숙청하고 사후에 여태후가 실권을 휘둘렀습니다만, 취임 100일도 안 되는 시점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참담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9 09: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 강제징용 판결 참 걱정입니다...ㅠㅠ 우리는 꿇릴 것이 없는데 정부가 저자세로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없이는 온전한 해결법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9 09:17   좋아요 3 | URL
네 그렇습니다.... 스포츠 한일전의 결과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도, 대리인의 친일성향에 대해서는 아파트 가격만큼의 중요성으로 판단하지 않은 대가를 우리가 지불하는 것이겠지요... 정말 우리가 무엇에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 하는가를 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만, 그러기에는 피해자분들의 희생이 너무 컸다는 점이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마음 아프게 하네요...
 

굴드는 캄브리아기의 바다에 살았던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그렇게도 많은 생명체가 사라지고 우리의 혈통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유전자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쁘게 말하면 우연성은 결정론의 대안이라기보다는 부정직한 결정론이라 할 수 있다. 진화적 발달의 한 혈통을 전멸시켜버린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 거의 대부분의 혈통은 사라지고 오직 한 종류의 혈통만이 엄격하게 결정된 경로를 따르게 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점진적이고 훨씬 많은 적응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진화보다는 자신의 이론인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에 부합할 수 있도록 갑작스럽게 도약적으로 일어나는 진화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화evolution보다는 혁명revolution을 원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진화를 ‘존재의 대사슬’로 바라보는 개념을 영구히 지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존재의 대사슬이라는 관점에서는 진화를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단계적으로 밟아 올라가는 결정론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으로 바라본다

역사는 고정된 선로의 기차보다는 러시아워에 추월차선과 출구차선을 이리저리 오가며 주행하는 차들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전반적인 교통 흐름은 도로 위에서 발생한 접촉 사고나 충돌 사고의 영향을 받는다. 여러 차선의 운전자들이 거기에 맞춰 적응할 테지만 모든 차선 운전자들이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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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에서는 문화적 동질성이 한 나라의 우방과 적국을 규정하는 본질적 요인이다. 냉전 구조에 편입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국가가 문화 정체성 없이 존재할 수는 없게 되었다.

지역은 지리와 문화가 일치하는 경우에만 국가들 사이의 협조를 낳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문화적 이질성이 크면 지리적 근접성은 동질성을 낳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갈등을 증폭시킨다. 군사 동맹과 경제 협력은 회원국 사이의 협조를 요구하는데, 이 협조는 상호 신뢰에 기초하며, 신뢰는 다시 공통의 가치관과 문화로부터 가장 쉽게 얻어진다.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과 아무리 무역량을 늘리고 투자를 강화한다 해도 일본은 이들 나라와의 문화적 차이, 특히 이 지역의 경제를 주도하는 화교 경제 엘리트들의 견제로 NAFTA나 EU에 견줄 만한 경제 블록을 일본의 주도로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서구와의 문화적 차이는 일본과 미국, 유럽과의 경제적 관계에서 오해와 적대감을 악화시킨다. 경제 통합이 문화적 동질성에 달려 있다면 문화적으로 고립된 나라 일본의 미래는 경제적으로도 암울하다.

거의 모든 나라는 성격이 판이한 둘 이상의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집단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질적이다. 많은 나라들은 이 집단들의 차이점이나 갈등이 그 나라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분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문명 단층선의 분열 효과가 두드러지는 지역은 냉전 시대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내건 권위주의적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강제로 통합된 단절국이다.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결속과 배척을 낳는 원동력은 이념이 아니라 문화가 되었다.

케말주의가 내건 기본적 원칙, 곧 ‘6개의 화살’은 인민주의, 공화주의, 민족주의, 세속주의, 국가 사회주의, 개혁주의였다. 케말은 다민족 제국의 이상을 거부하고 동질적 민족국가를 건설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을 축출하고 학살했다. 그는 술탄을 폐위하고 서구식 공화정을 정치 체제로 도입했다.

터키가 NATO의 회원국 지위를 고수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발판으로 서구와 긴밀한 구조적 연대를 맺을 수 있고 그리스와의 긴장 완화에도 긴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NATO 가입으로 구체화된 터키와 서구의 긴밀한 관계는 냉전의 산물이었다.

터키는 왜 냉대를 받으며 번번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가? 공식적으로는 EU 관리들이 터키의 낙후된 경제발전 수준과 북구 여러 나라에 한참 못 미치는 인권 보장 수준을 거론한다. 그러나 사석에서 유럽인과 터키인은 그리스가 격렬하게 반대하고 더 중요하게는 터키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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