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정치적 폭발의 요소들은 그 얼마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1870년에서 1871년 사이 독일로 인한 국가적 자존심의 곪아터진 상처, 그로 인해 프랑스 군대가 겪은 치욕, 공화파와 왕정파 사이의 오랜 적대감, 그리고 공화국과 교회 간의 그 못지 않은 적대감, 계속되는 경제적 불만, 특히 농업 분야의 부진,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길한 것은 맹렬한 반유대주의의 부상이었다. _ 메리 매콜리프,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1871 ~ 1900>, p405


 메리 매콜리프 (Mary Mcauliffe)는 1871년부터 1929년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얽히는 과정을 3권의 책에서 담아냈다. 프로이센 - 프랑스 전쟁(Deutsch-Franzosischer Krieg, 1870 ~ 1871)의 패전과 파리 코뮌(La Commune de Paris, 1871)의 상처를 안은 프랑스는 50억 프랑이라는 막대한 전쟁 부채와 알사스-로렌 지방을 넘겨주면서 큰 위기에 봉착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프랑스는 국가 차원의 노력을 기울인다.


 정부의 공공사업들이 경제에 미친 부양 효과는 실제적이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것으로 1882년 초까지밖에 가지 않았다. 연초가 되자 고공 행진을 하던 상업은행 위니옹 제네랄의 도산과 함께 경제가 극적으로 주저앉았다.(p192)... 주가 폭락의 여파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특히 노동자 계층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현 사태와 뒤따르는 재정적 재난에 대해 정부를 비난했는데, 그 불만에는 좀 더 깊고 악의적인 감정도 섞여 있었으니, 사태의 책임을 유대인 은행가들에게 돌리려는 것이었다... 사실 로트실트가(로스차일드가)와 다른 은행들은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자금을 빌려준 터였지만, 프랑스 전역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_ 메리 매콜리프,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1871 ~ 1900>, p193 


 프랑스는 공공사업을 통한 재정부양책을 사용하면서 전후 위기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지만, 어느 사회나 이러한 경제부양정책으로부터 소외받은 이들과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는 이들은 있기 마련. 프랑스 내에 경제불평등 문제와 반(反)유대주의는 드레퓌스 사건( L'affaire Dreyfus, 1894 ~ 1906)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 바닥에 남아 있었다. 극심한 경제불평등은 문화를 가난한 이들로부터 분리했고, 결국 이 시기의 예술은 '가진 자'들의 것으로 될 수 밖에 없었고, 반유대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프랑스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벨 에포크 시기의 그림자는 짙었다. 


 졸라가 본 대로, 파리는 이전 해의 재앙들로부터 급속히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시의회에 들어간 클레망소도 그 점을 확실히 깨달았다. 몽마르트르의 빈민들을 위해 그의 일은 파리의 광범한 하층계급을 부단한 의제로부터 부각시켰다. 그가 특히 경각심을 느낀 것은 파리 극빈 지역 아동들이 처한 난국이었다. 그런 아동들, 특히 사생아들에 대한 최소한의 국가 보호도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체제하에 번창하는 파리 사람들은 불운한 자들을 위해 시간을 낼 여유가 없었다. _ 메리 매콜리프,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1871 ~ 1900>, p74


 이 시기 프랑스는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고, 다시 한 번 세계의 중심지로 영광을 누리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프랑스의 현실은 과거와 달랐다. 프로이센과의 전쟁 뿐 아니라 파쇼다 사건(Fashoda Incident, 1898)에서 보듯 해외식민지 확보 경쟁에서는 영국에게 뒤쳐졌던 것이 프랑스가 처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지도층은 당시 일어난 민족주의 감정을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 등을 통해 고취하길 원했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 에펠 탑등을 만들어지며 파리의 모습은 적어도 외적으로는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와 함께, 경제적 부흥 노력과 국제 행사 개최를 계기로 유럽 여러지역의 예술가들이 프랑스로 몰려들면서, 프랑스 예술계는 본격적인 부흥을 시작하는데,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1900 ~ 1918>는 이 시기를 잘 묘사한다. 


 1900년 10월 중순, 파블로 피카소는 바르셀로나를 떠나 파리의 붐비는 새 철도역인 오르세역에 도착했다. 며칠 후 만 열아홉 살이 되는 그는 의기충천해 있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에 그의 그림이 한 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파리에 입장하는 얼마나 근사한 방식인가! (p15)... 이사도라에게 힘을 주는 것은 춤의 근본원리를 발견하겠다는 목표였다. 그녀는 진리가 기술보다 먼저임을 강조했다. "삶이 뿌리이고 예술은 꽃이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는 10년 후 모스크바에서 나타나게 될 메소드 연기와도 다소 비슷한 것으로, 그녀는 고전발레의 인위성을 거부하고 정서적 관념들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동작들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녀는 무용의 역사를 바꾸어놓을 발견을 하려는 참이었다._ 메리 매콜리프,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1900 ~ 1918>, p86

 

 20세기 초에는 예술 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유럽은 끝없는 발전을 이루는 듯 보였다. 독일에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1905)하고, 마리 퀴리(Maria Skłodowska-Curie, 1867 ~ 1934)와 피에르 퀴리가 라듐을 발견(1898)하던 시기, 인간 이성(理性)에 대한 낙관을 가지고 벨 에포크(Belle Epoque)시대의 즐거움을 프랑스는 누렸다. 그렇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이 빛나는 황금시대는 막을 내린다. 3부작의 마지막 <파리는 언제나 축제, 1918 ~ 1929>에서는 전후(戰後) 프랑스가 떠오른 신흥 대국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면서 상처를 복구했는가가 그려진다. 프랑스 프랑화(貨)의 약세, 미국 금주법 시대(禁酒法時代, Prohibition era, 1919 ~ 1933) 등을 통해 많은 미국 예술가들이 프랑스에 건너오면서 프랑스는 새로운 부흥을 꿈꾼다는 이야기로 책은 마무리된다.  마지막은 마치 동화책의 결말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안다. 1929년 불어닥친 대공황이 유럽을 다시 한 번 잿더미로 초대했다는 사실과 유럽 사회에 팽배했던 반유대주의가 인간 이성에 대한 낙관을 어떻게 끝냈는지를.


 1920년대 파리는 모든 방면에서 혁신의 온상이었다. 그 시절 이 빛의 도시는 문학, 미술, 건축, 음악, 패션 등 모든 분야에서 전 세계의 문화적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창조성과 함께 관용의 태도가 널리 번졌고, 적어도 어던 집단에서는 그러했다.(p111)... 프랑스라는 나라는 제1차 세계대전을 완전히 극복했고, 비록 값비싼 - 특히 인명에서는 - 대가를 치른 승리였으나 1929년에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번영을 즐기며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_ 메리 매콜리프, <파리는 언제나 축제, 1918 ~ 1929>, p421


 이처럼 메리 매콜리프의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의 벨 에포크 시대를 여러 인물들의 교차 편집을 통해 잘 묘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술가들의 삶과 함께 그들과 분리할 수 없는 시대상을 볼 수 있다. 비록, 작품, 작가를 깊이있게 묘사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은 이 시리즈가 가진 장점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는 결코 분리해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0-12-15 2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페이퍼를 읽으니 프랑스의 역사를 다룬 박물관을 관람한 기분이에요. 벨 에포크 시대에 대해서는 막연히 낭만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마냥 좋은 시절은 아니었군요…

겨울호랑이 2020-12-15 20:54   좋아요 1 | URL
파이버님의 말씀처럼 많은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크게 발전한 시기, 산업화의 혜택으로 문화가 부흥한 시기로 인식된 벨 에포크 시대가 누군가에겐 깊은 고난의 행군시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어쩌면 소수가 행복한 시기보다 다수가 평온한 시기가 더 좋은 시절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파이버님 감사합니다.^^:)

prothoevero 2020-12-16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은 책에 추가했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12-16 13:56   좋아요 0 | URL
즐거운 독서 되세요, prothoevero님 감사합니다.^^:)

2020-12-22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3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12-25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불전쟁에서 참담한 패전...
그리고 이은 파리 코뮌의 실패

그런 시절을 뒤로 하고 벨에포크
시절이 왔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겨울호랑이 2020-12-25 19:17   좋아요 0 | URL
예나 지금이나 어려움은 힘 없는 이들에게서 행복과 경제력을 빼앗아 가진 자에게 나누어주는 불평등의 기폭제가 되는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벨에포크 시대는 말 그대로 그들만의 빛나는 시대였겠지요... 다만, 그런 불안정한 시대는 사상누각에 불과함을 역사는 잘 보여주지 않나 여겨집니다...
 

 <공간이 만든 공간>의 저자 유현준은 책에서 '빈 공간'을 말한다. '빈 공간'을 인정한 동양(東洋)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서양(西洋). 거의 같은 시기 발전해 온 문화권들은 어떻게 다른 사상을 발전시켜 왔을까. 저자는 이에 대한 질문으로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두 문화권의 기후와 농작물 재배방식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적은 강수량 지대인 서양에서는 개인주의적인 밀 재배 문화가 발전해온 반면, 많은 강수량 지대인 동양에서는 보다 공동체주의적인 벼 농사 문화가 발전해왔으며, 그 결과 사회 성격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래로 '빈 공간'에 대한 문화권의 태도가 갈리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서양의 문화는 단절적인 선(線)의 문화다. 저자는 이를 위해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1937 ~ )의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에서 논지를 끌어오는데, 우리는 막스 야머(Max Jammer, 1915 ~ 2010)의 <공간 개념  Concepts of Space>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막스 야머의 논지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허공'은 '채우기 위한 공간'에 불과하다. 때문에, 무(無)에서 유(有)가 낳는다는 노자(老子, ? ~ ?)사상과는 달리 이들(무와 유)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다. 이러한 인식에서 신(神)과 인간(人間),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선(線)으로 구획되는 공간이 나왔다는 저자 유현준의 주장에 한층 공감할 수 있다.


 레우키포스(Leucippus, BC 470 ? ~ ?)와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BC 460 ~ ?)는 허공 (虛空)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실재의 원자론적 구조를 가정할 때 나오는 논리적 결론이다. 그러나 분명히 여기서 비어 있는 것은 점유되지 앟은 공간을 뜻한다. 우주는 채워진 것(원자 atom)과 빈 것(허공)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간은 물질에게 상보적이며 물질에 의해 둘러싸인다. 물질과 공간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비어있는 것(Kenon)"이라는 용어는 분명히 점유되지 않은 공간만을 뜻한다._막스 야머, <공간개념>, p47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에 따르면, 제1신은 하늘의 경계이다. 그렇다면 신은 하늘의 경계와 다른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바로 그 경계이다. 그런데 신이 하늘의 경계와 다르다면, 하늘 밖에 다른 것이 있을 것이며, 그것의 경계는 하늘의 경계일 것이다._막스 야머, <공간개념>, p76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저자는 이러한 인식 차이가 19세기 이후 일본, 중국 문화가 서양에 널리 알려지면서 점차 좁혀지고, 최근에는 공간의 이종교배가 이루어지면서 하나로 융합되는 모습을 소개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책을 통해 거장들이 건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이 <공간이 만든 공간>이 교양 인문서적으로 갖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반면,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느껴지는 아쉬움도 분명 있다. 책에서는 서양에 미친 동양의 영향이 언급되지만, 동양에 미친 서양의 영향은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서양의 유명한 건축가들에게 동양사상이 영향을 미쳤다면, 서양의 생활 양식은 '도시화'를 통해 대중들의 삶 전반을 바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상적 융합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듯하여 부분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 전작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를 통해 충분히 다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짧게나마 소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른 한 편으로, 동양을 받아들인 서양 문화와 서양을 받아들인 동양 문화를 보면서 일종의 '자리바꿈'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최근 미국 대선의 정치 지형도를 생각하게 된다. 저학력 백인들과 미국 남부 농촌지역의 폭넓은 지지를 미국 공화당이 받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부의 지지를 받던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1809 ~ 1865)이 공화당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한 이러한 급격한 정치 지형의 변화처럼 동서양의 사상 교체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물론, 남로당 출신 공산주의자가 반공(反共)을 국시로 하는 정권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린다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전통적으로 '노동자당'으로 불리는 민주당은 서민층의 지지율이 급감한지 오래다. 특히 '백인'을 자처하는 지지다들의 이탈이 심각하다. 이런 경향은 2020 대선에서도 여실히 확인됐다. 초기 대선 출구조사에서, 트럼프는 저학력 백인 유권자로부터 무려 64%(바이든은은 34%)의 표를 득표했다.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인(81%)과 농촌 주민(65%)의 지지가 두터웠다. 정각 2000년에 이르러서야 보수 세력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가장 빈곤한 선거구는 오늘날 공화당 표밭으로 바뀌었다. 반면 가장 부유한 50대 선거구 중 무려 44곳이 민주당에게 표를 던졌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의 득세, p6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으면서 들었던 두서없는 생각을 담은 페이퍼는 이것으로 정리하자. 그 전에, 데모크리토스가 언급된 김에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가 에피쿠로스(Epicurus, BC 341 ~ BC 270)와 데모크리토스 철학에 대해 정리한 논문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페이퍼를 마무짓는다.


 에피쿠로스에게 원자론은 그 모든 모순을 품으면서 자기의식의 자연과학으로서 철저하게 수행되었고 완성되었다. 추상적 개별성의 형식 아래서 이 자기의식은 절대적 원칙이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원자론을 그 최종 결론으로 밀고갔는데, 그 최종 결론은 바로 원자론의 해체이며, 보편적인 것에 대한 의식적 반대다. 반대로 데모크리토스에게 원자는 단지 경험적인 자연 탐구 일반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그에게 원자는 순수하고 추상적인 범주, 경험의 역동적인 원리가 되지 못하고 그것의 결과인 하나의 가설로 남았을 뿐이다._ 칼 마르크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르소 자연철학의 차이>, p117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쿼크 2020-12-13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공간에 관심이 많은데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12-13 17: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쿼크님 좋은 하루 되세요!^^:)

2020-12-14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4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1-09 2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공간이 만든 공간
읽을지 말지 망설였는데
일단 장바구니속으로 ~@@

겨울호랑이 2021-01-10 07:59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공간이 만든 공간>은 공간에 대한 동/서양 사상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지네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라요~^^:)
 

 이 책에서 연구한 모든 역사적 궤적은, 불평등구조가 얼마나 기존 정치제체 형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구래의 삼기능사회든 19세기에 개화했던 소유자사회든, 심지어 노예제사회나 식민사회라 하더라도, 일정한 유형의 불평등주의체제를 지속시켜온 것은  바로 정치권력의 조직화 양식이다.(p1067)... 정치체제의 또다른 측면, 즉 정치활동과 선거민주주의의 자금 측면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시급하다.(p1068)... 요약하자면 시민 각자에게 동일한 가치의 연간 바우처를 주자는 것으로,.. 민주적 평등 바우처의 핵심 목표는 평등주의적인 참여민주주의를 고무하려는 것이다.(p1070) _토마 피게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전작 <21세기 자본>에서 심화되는 경제의 불평등 문제를 지적한 피게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정치를 통한 해결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저작을 통해 비로소 <21세기 자본> - <자본과 이데올로기>로 이어지는 피게티의 정치경제사상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독일 이데올로기>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조합이, 경제학계에 어느날 혜성처럼 등장한 그에게 아킬레우스가 그토록 원했던, 그리고 마르크스가 죽은 후에야 누릴 수 있었던 불멸의 명성을 보장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독점자본과 부의 불평등이라는 공통된 시대의 과제를 다룬 두 경제학자들의 서로 다른 처방전을 대조해 보는 것은 분명 독서를 즐겁게 하는 또다른 방법이라 생각한다.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2-11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1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2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2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해주고 싶은 것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충분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인간의 마음에는 의지력 말고도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반복적인 행동 패턴, 우리의 습관 말이다._웬디 우드, 「해빗」, p42

「해빗」의 저자 웬디 우드는 책에서 인간의 의식적인 의지는 한계가 있으니, 바뀌기 위해선 비의식적인 습관을 활용할 것을 강조한다. 구체적인 계획으로 저자는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고 상환을 재배열하며 적절한 보상을 통해 습관을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끝. 자기계발서의 다수가 그러하듯 나머지 부분은 ‘습관 예찬‘이기에 책의 핵심은 이 정도가 될 듯하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독자 각자의 실천뿐이다. 자기계발서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심한 비판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몇 가지 의문을 지우기는 힘들다.

개인적으로「해빗」의 저자 주장에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습관화 과정이다. 저자는 인위적인 인간 의지의 한계를 지적하지만, 이를 대신한 습관화에서는 ‘보상‘이라는또다른 인위적인 개입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모순은 습관화의 주체를 폐쇄적인 ‘뇌‘로 한정시켜 바라보는 저자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저자는 인간 행동의 주체로서 ‘뇌‘를 설정하지만, 행동의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뇌‘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마치 뇌를 기독교의 ‘신‘과 같은 절대적인 위치에 놓고 폐쇄계로서 시스템을 가정했기에 결국 ‘동기 부여를 통한 습관형성‘이라는 스키너의 주장에서 크게 나가지 못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전화번호를 누를 때 자주 사용하는 번호는 ‘손가락이 기억‘하는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반응은 의식적인 인간 기관인 뇌가 아닌 몸에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서구적인 사고와 뇌과학에 기반한 습관화 연구가 선뜻 동의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습관화와 관련해서는 「해빗」보다 노자의 「도덕경」이 더 바람직한 길을 제시해 준다 생각된다.

인위적으로 행하려 하지 않고, 내버려 둔 상태(let it be)에서 별다른 감정의 기복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면 그것이 습관화가 아닐런지... 「해빗」을 통해 「도덕경」의 무위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2-09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9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농경이 일으킨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농경을 통해  (수렵·채집에 비해 훨씬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훨씬 많은 식량을, 즉 농부를 비롯해 그의 가까운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충분히 생산해 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잉여분의 식량이 이후 일어나는 그 모든 사회적·정치적 변화의 토대였다. 그 덕에 일부는 농사를 짓지 않고도 생계를 부양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여기서 핵심 질문은 농부가 가지고 있던 그 잉여분을 어떤 방식으로 누가 가져갔는가 하는 점이다._클라이브 폰팅,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 p128

굳이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진보해오지 않았음을, 그리고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주장하는 바처럼 우리의 기술은 발전되었다기보다 ‘차선‘을 이용하기 위해 변용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신석기 혁명‘을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수렵 경제에 비해 필요노동량은 증대된 상황에서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해 생겨난 형이상학적 설명이 종교,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이래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 인류는 우리가 길들인 가축과 곡물들의 존속을 위해 이들에게 이용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쉽게 떨치지 못하게 만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2-09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9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