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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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심술 사나운 늙은 선장이 나에게 빗자루를 들고 갑판을 쓸라고 명령한다 해서,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신약성서』라는 저울에 달아보았을 때 그런 굴욕쯤 무슨 대수겠는가? 그 늙은 선장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른다고 해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를 조금이라도 업신여길까?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늙은 선장이 아무리 나를 부려먹고 괴롭혀도 괜찮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떤 식으로든-다시 말해서육체적인 면에서든 정신적인 면에서든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때리고 맞는다는 것, 그리고 서로 어깨뼈를 부딪치면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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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우리는 오랜 고생 끝에 이 세상에서 가장 덩치 큰 동물에게서 비록 적지만 매우 귀중한 경뇌유를 뽑아낸 뒤, 녹초가 되었지만 참을성 있게 몸에 묻은 오물을 씻어내고, 영혼의 임시 거처인 육신을 깨끗이 유지하면서 사는 법을 배우자마자, "고래가 물을 뿜는다!" 하는 외침소리에 영혼은 용솟음치고, 우리는 또 다른 세계와 싸우러달려가, 젊은 인생의 판에 박힌 일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다. - P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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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어짜고, 쥐어짜고, 또 쥐어짜고! 아침 내내 경뇌유를 쥐어졌다. 나는 나 자신이 향유 속에 녹아들 때까지 그 경뇌유를 쥐어짰다. 이상한 광기에 사로잡힐 때까지 그 경뇌유를 쥐어짰다. 나도 모르게 동료들의 손을 부드러운 기름 알갱이로 착각하고 쥐어짜기도 했다. 그러면 풍요롭고 애정이 넘치고 친근하고 다정한 감정이 생겨났기 때문에, 마침내 나는 끊임없이 동료들의 손을 쥐어짜며 그들의 눈을 감상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오오, 사랑하는 친구들아, 우리는 어째서 언제까지나 신랄한 감정을 품어야 하고, 사소한 일에도 기분이 상하거나 불쾌해하거나 질투해야 하는가? 자, 우리 모두 서로의 손을 쥐어짜자. 아니, 우리 모두 자신을 쥐어짜서 서로에게 녹아들자. 경뇌유 같은 우애 속에 우리 자신을 통째로 쥐어짜 넣자. - P566

인간들이여! 불을 정면에서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마라. 절대로 키를 잡은 채 꿈꾸지 마라! 나침함에 등을 돌리지 마라. 왈칵 움직이는 키 손잡이의 첫 암시를 무시하지 마라. 인공적인 불의 붉은빛을 받으면 모든 것이 무시무시하게 보이니까, 인공적인 불을 믿지 마라. 내일, 자연의 햇빛속에서 보면 하늘은 밝을 것이다. 갈라진 불꽃 속에서 악마처럼 보이던 자들도 아침이 되면 딴사람처럼, 적어도 훨씬 온화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금빛 찬란한 황금빛 태양, 그것만이 유일한 진짜 등불이고 나머지는모두 거짓이다. - P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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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폭풍이 오기 전에 그것을 예고하는 깊은 정적이 폭풍 자체보다 더 무섭다고 한다. 이 정적은 사실 폭풍을 싸고 있는 포장지일 뿐이고, 겉으로는 아무런 해도 없어 보이는 라이플총 속에 치명적인 화약과 탄알과 폭발력이 들어 있듯이 그 정적 속에는 폭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살줄이 실제로 풀려나가기 전, 노잡이 주위를 조용히 굽이치고 있을 때의 그 우아한 평안, 이것이야말로 다른 양상의 어떤 위험물보다도 더 진정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작살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어도 작살이 아니라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포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 P403

다만 대부분의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샴쌍둥이처럼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당신의 돈을 관리해주는 은행이 파산하면 당신은 권총으로 자살한다. 당신의 약제사가 실수로 당신 알약에 독약을 넣으면 당신은 죽는다. 물론 극도로 조심하면 인생에서 이런 숱한 불운을 피할 수 있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퀴퀘그와 연결된 원숭이 밧줄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지만, 때로는 퀴퀘그가 밧줄을 홱 잡아당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미끄러져 바다에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밧줄의 한쪽 끝뿐이라는 사실이다. - P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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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반백의 노인, 증오심에 가득 차서 욥의 고래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는 노인이 있었고, 그의 선원들은 주로 더러운 배신자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그리고 식인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계다가 스타벅은 미덕과 상식을 가졌으나 동조자가 없어서 별 영향력이 없었고, 스터브는 태평한 성품이어서 매사에 무관심했으며, 플래스크는 모든 면에서 평범한 위인이어서, 이들 중에는 정신적인 지주가 될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런 항해사들의 지휘를 받는 선원들은 처음부터 에이해브의 편집광적 복수를 돕게 하려는 목적에서 어떤 악마적 운명에 의해 특별 - P282

히 차출된 일당인 것 같았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노인의 분노에 그토록 열광적으로 응했던 것일까. 그들의 영혼은 도대체 어떤 사악한 마력에 사로잡혔기에 때로는 노인의 증오를 자신의 증오로 여기게 되었을까. 어떻게 흰 고래를 노인의 원수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참을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게 되었을까. 도대체 이 모든 게 어떻게 일어났던것일까. 흰 고래는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그들의 무의식적인 인식 속에서 흰 고래는 인생의 바다를 헤엄치는 거대한 악마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흰 고래를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면 이슈메일이 내려갈 수 있는 깊이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잠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서 광부가 일하고 있다면, 쉴 새 없이 달라지는 광부의 희미한 곡괭이 소리를 듣고는 그가 어느 쪽으로 무엇을 향해가고 있는지 알수 없다. 누구든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74문의 대포를 장착한 군함이 끌어당기는데 조각배 신세로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시간과 장소를 탐닉하는 데 전념했지만, 그 고래를 만나려고 돌진하는 동안은 그 짐승 속에서 지독한 악밖에는 볼 수 없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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