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한국근현대사에 의미심장한 사건이자 계기로서 3·1운동은 줄곧 많은 이에게 주목받았고 수많은 논저가 나왔다. 그러나 3·1운동에 대한 기억과 역사 쓰기가 거족적인 항쟁‘, ‘민족해방운동사의 최고봉‘ 같은 수식어에 묻힌 채 고정관념으로 굳어지거나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과장되고, 때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 속에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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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료집>은 국제연맹 제출을, <혈사>는 중국인들과의 독립운동 제휴를, <사략 상편>은 <사료집>을 계승해 이후의 독립운동사 서술을 각각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사료집>과 <사략 상편>은 안창호와 김병조라는 인물을 통해 일정한 연속성을 강하게 지녔고, '외교독립론'적인 입장에 기반해 독립운동사를 서술했다. 그에 비해 박은식의 <혈사>는 비(非)미국중심주의를 표방하며 '무장투쟁론'적인 입장에서 쓰였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 역사서가 궁극적으로 대항했던 것은 일제가 생산해내고 있는 3.1운동상이었다... <사료집>과 <혈사>, <사략 상편>은 어느 한 저서가 압도적인 객관성을 지니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지닌 동시대성의 저작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53


  metahistory 메타역사. 역사에 관한 역사가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의 주제다. 우리는 <3.1운동 100년사>의 첫 번째 책에서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들을 만나게 된다.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사료(史料)도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는 것을 보면서 사관(史觀)에 따라 다르게 강조점이 찍히고, 왜곡된 역사상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역사에 대한 기억은 3.1항쟁을 마르크스(Marx) 사상 관점에서 해석한 관점 - 경제학자 안병직과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 - 이다. 역사를 계급투쟁의 산물로, 필연적 단계 이행으로 이해한 이들의 관점에서 3.1항쟁은 실패한 투쟁에 불과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제반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혁명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갖는 이들의 관점은 '정형화된 역사'와 '유물론 사관'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일제 시대에 본격적으로 갖추어진 SOC만이 근대화의 증거이고, 발전된 역사의 과정에 있다는 인식으로 흐르고, 결과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이 태어나게 된 것은 당연한 흐름이 아니었을까. 몇 년 전 논란의 베스트셀러 <반일종족주의>의 사상의 뿌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좌파'사상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경제학자 안병직은 남한에서 3.1운동의 원인을 계급론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했다. 안병직은 중국에서 개발된 민족자본론을 이용하여 3.1운동 참여 세력을 예속자본가 중 식민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손병희 등 소극적 친일파, 중소지주 및 상인 등 민족 자본가, 노동자/농민계층 등으로 분류하고 그들을 운동에 참여하게 된 지도 사상을 각각 '독립청원', '독립시위' , '독립쟁취'라고 규정했다. 이 중 '민족 대표'는 그 투항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3.1운동의 시작 단계에 운동을 포기했고, 그 이후는 각 지방의 지식인, 학생, 유력자에 의해 운동이 독자적으로 추진되었다고 서술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159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은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했다. 특히 전위조직의 부재와 토지개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점을 3.1운동이 실패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강조했다. 3.1운동은 반제투쟁 외에도 토지개혁이라는 반봉건투쟁이 병행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공산당(남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 3.1운동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전위당의 필요와 토지문제의 농민적 해결이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75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속에서 우리는 다른 하나의 왜곡된 기억을 발견하게 된다. 임시정부의 정통성 문제와 건국절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속에서 우리는 3.1혁명을 계승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한 것이 우파사상이며,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의 주장임을 확인하게 된다. 초대 대한민국 정부에서 '건국'이 아닌 '계승'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계승자'를 '건국자'로 만들고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좌파의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종북 좌파'로 매도하는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이것 또한 왜곡된 기억이 낳은 갈등이 아닐까... 


 '3.1운동에 의해 건립된 임시정부'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임정 법통성은 임시정부 시절부터 우파의 논리로 작동했다. 좌파가 임시정부 해체를 주장할 때마다 우파는 임정 법통성을 방어논리로 구사했다... 이후 군사정부에 의해 삭제되었던 임정 법통성은 1987년 개헌을 통해 다시 헌법 전문에 들어갔다. 북한과 체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임정 법통성에서 찾고자 했던 정치세력은 별다른 갈등 없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헌법 전문에 부활시켰다. 이처럼 임정 법통성이 우파와 반공주의의 합작이라는 점은 해방 정국부터 일관된 것이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108


 이승만 정부는 정부 수립 후 1949년 첫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으로 발휘된 독립의 정신이 임시정부로 계승되어 마침내 '대한민국주국(大韓民國主國)'이 탄생했다고 했다. 정부 수립의 정통성과 임시정부 계승의 정신을 표방한 것은 그 후 역대 정부에서도 공통적으로 이어졌다... 이승만은 집권 후 첫 번째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정신이 '반공의 3.1정신'으로 부활할 것을 주장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121


 

책을 읽다보면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읽어야 할 책들이 쏟아짐을 느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 식민지 근대화론과 관련하여 이영훈의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 vs 강만길의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을 담아둔다. 이에 더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에 실린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vs  고은광순외 <제국의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도 함께 담아둔다... 서로 다른 역사의 기억은  어떻게 우리를 바꾸어 왔는가. 역사의 힘에 대해 생각하면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기억이 구체화되어 있는 모든 장소들은 종교적, 정치적, 상징적 성격과 아울러 역사 및 족보 편찬의 성격을 띠기 마련이다. 그 기억의 주요한 측면들이 '유산(heritage)' 이라는 기호(記號) 아래 재편되어 나타나는 것은, 그런 기억이 펼쳐지는 바로 그 시대에 그것 자체가 스스로 시대를 초월한 하나의 의례처럼 표현되는 것에 관심을 쏟으며, 시간적으로 유한한 자신의 흔적을 초시간성 또는 초자연성의 낙인으로써 확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 속에는 아직 민족은 없지만 민족적 신성성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은 이후에 나타난 민족적 기억의 온갖 형태들에 그러한 성격을 물려줄 것이며, 또 그런 신성성이 그 기억에 영속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2 : 민족>,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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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1-03-22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와 기억이라면, 쑨꺼 선생의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중 ‘중일전쟁- 감정과 기억의 구도‘, 쑹녠선의 <동아시아를 발견하다>, 정두희 등이 참여한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김시덕 <일본의 대외 전쟁>도 추천합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21-03-23 06:12   좋아요 0 | URL
^^:) 김민우님 감사합니다. 평소 역사와 관련해서 많은 책을 읽으시는 김민우님께서 추천하시는 도서라 믿고 읽을 수 있겠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캄브리아기 폭발은 전적으로 몸의 바깥부분에만 한정된다. 따라서 캄브리아기 폭발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그림 맞추기 퍼즐을 풀려면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동물 몸에서 내부설계에 얽힌 이야기는 멀리 선캄브리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_ 앤드루 파커, <눈의 탄생>, p33


 만약 지구의 역사를 눈 이전과 눈 이후로 나누고, 시각의 힘 - 일반적으로 현생 동물들에게 작용하는 가장 막강한 선택 압력 -을 생각한다면, 눈의 탄생이야말로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_ 앤드루 파커, <눈의 탄생>, p380


  앤드루 파커(Andrew Parker)가 <눈의 탄생 In the blink of an Eye>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지구 생명체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으로 이루어진 캄브리아기 폭발의 추진력은 선캄브리아기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중심은 눈(目 eye)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등장한 눈이 진화(進化 evolution)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눈의 탄생>에서 선캄브리아기 말에 일어난 급격한 환경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태양방사의 증가, 초신성 접근 등 아직 검증되지 않은 여러 가설들을 통해 선캄브리아기 말기에 갑작스럽게 늘어난 일조량(日照量)은 초기 생명체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일부 기상학자에 따르면, 선캄브리아 시대에는 담요안개(이것의 원인은 화산활동을 비롯해 여러 자기였을 수 있다)가 지구를 뒤덮고 있어서, 거대한 우산처럼 햇빛을 상당량 차단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선캄브리아 시대 말에 이 안개가 걷힌 것이 지표면의 빛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을 것이다. 그 안개가 어떻게 걷혔는가에 대한 설명은 임계치에 이르는 태양방사의 증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_ 앤드루 파커, <눈의 탄생>, p386


 초신성은 이산화질소를 형성함으로써 가시광선을 흡수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것이 지표면의 빛 수준을 감소시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나선형 팔을 지나는 동안 우리 태양계는 먼지와 얼음이 결집된 두꺼운 '오르트 구름'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태양계는 더욱 밝아지지만 동시에 지구 대기는 더욱 불투명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 태양계가 초신성이나 오르트 구름에서 멀어질수록, 지구는 더 밝아지게 된다._ 앤드루 파커, <눈의 탄생>, p387

 

 시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더 먼 거리에서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주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보다 빠르게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감각들보다 우수하다. 인류 전쟁사에서 냉병기(cold weapon)에서 열병기(hot weapon)으로 발전되어 왔듯이, 자극을 활용하는 기관 역시 발전하게 되었고, '눈'을 갖도록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감각은 동물이 자극을 일으키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따라서 동물이 그 자극을 만들지 않으면 그것은 감지될 수 없다... 그러나 시각에 적응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눈은 대개 환경 내에서 자극범위, 곧 스펙트럼의 대부분을 감지하기 때문이다._ 앤드루 파커, <눈의 탄생>, p378


 저자는 진화생물학자로서 <눈의 탄생>을 통해 '눈'이 등장한 캄브리아기의 폭발보다 '눈'이 등장할 수 있게한 내부 설계 쪽에 더 중심을 두고 설명하지만, 책을 통해서  생명의 진화라고 하는 것은 결국 환경과 생명체의 교환의 결과물임을 깨닫는다. 박테리아 또는 시아노 박테리아의 단순한 구조의 생물이 보다 복잡한 구조의 생물로 발전하는 것에는 이들의 유전자 변화 뿐 아니라 이들이 필요로 하는 황화수소, 수소 또는 부산물이 만든 환경 또한 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진화사에서 한 획을 그은 '눈의 탄생'은 오랜 기간 준비되어 오다가 들어맞는 조건에서 활짝 핀 일대 사건으로 여겨진다.


 동물의 내부체제는 그 동물이 호흡을 하고 영양분을 얻고 번식하는 방식을 전반적으로 제약한다.(p27)... 동물의 외부란 외피의 재료, 색, 모양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내부구조보다는 사실 환경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 환경에는 기온과 빛 조건 같은 물리적 요인과 동물 이웃들 같은 생물학적 용인이 포함된다... 내부구조는 이와 다르다. 내부구조는 훨씬 더 많은 유전자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새로운 내부 설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유전자가 동시에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한다._ 앤드루 파커, <눈의 탄생>, p28


 비록, 저자는 <눈의 탄생>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지구의 대기 변화에는 태양 방사선, 초신성등 외계(外界) 요인이외에 지구 내 요인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의 등장으로 인한 산소호흡의 보편화 또한 선캄브리아 시기에 일어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당연한 가정이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오파비니아의 다른 시리즈 <미토콘드리아> <산소> <진화의 키, 산소 농도>에서 다루도록 하자. 원래 오파비니아 시리즈의 다음 책은 페름기 멸종을 다룬 <대멸종>이지만, 이에 앞서 캄브리아기를 자신의 시대로 만든 위대한 생명 <삼엽충>을 먼저 정리해보도록 하자...

 

눈을 가진 최초의 동물은 삼엽충 - 최초의 삼엽충이었다. 최초의 진정한 삼엽충은 포식자이기도 했다. 팔로타스피스, 네오코볼디아, 시주디스쿠스 같은 눈을 가진 모든 삼엽충들은 캄브리아기 초, 캄브리아기 폭발이 시작될 무렵의 대표주자이기도 했다. 부속지 모양을 보면 이 삼엽충들은 영락없는 포식자였다. 그러나 가시가 돋은 방패는 이들이 먹이가 되는 일도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들은 아마 서로를 공격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구상에서 벌어진 공격의 원형이었다.(p342)... 최초의 눈을 추적한 결과, 그 눈은 최초의 삼엽충, 또는 '최후의' 원시 삼엽충의 눈이었으며, 그 시기는 캄브리아기 폭발의 벽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_ 앤드루 파커, <눈의 탄생>, p350


만약 지구의 역사를 눈 이전과 눈 이후로 나누고, 시각의 힘 - 일반적으로 현생 동물들에게 작용하는 가장 막강한 선택 압력 -을 생각한다면, 눈의 탄생이야말로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_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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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3-18 1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기 전엔....눈깜박할 사이...아녀? 그렇게 오해를 ^^,,,,

겨울호랑이 2021-03-18 15:56   좋아요 1 | URL
ㅋㅋ 정말 빠르게 훑어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네요.ㅋㅋ 제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제목을 썼네요.^^:)

얄라알라 2021-03-18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제 영어실력이.짧아서 그래용. 비스무레한 영어 표현이 있었던거같은데 요것도 검색하지 않고서는 기억도 안나는 ㅋ

겨울호랑이 2021-03-18 16:39   좋아요 1 | URL
^^:) 겸손의 말씀을... 얄라얄라북사랑님 덕분에 활짝 웃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scott 2021-04-09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 전 삼엽충만 읽었는데 겨울 호랑이님의 페이퍼에 담긴 눈에 탄생, 대 멸종 꼭 읽기로 ~
장바구니로 담아갑니다.
이달의 당선작 축하해요 ^.^

겨울호랑이 2021-04-09 17:11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scott 님께서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 봅니다 ^^:)
 

 

 국가는 벌써 민족정신으로 구성된 유기체이다. 단순한 혈족(血族)으로 전해 내려온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혼잡한 각 종족으로 결집된 국가일지라도 반드시 그 가운데 항상 주동력을 가진 특별한 종족이 있어야만 이에 그 국가가 국가답게 될 것이다... 역사를 쓰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의 주인되는 한 종족을 먼저 드러내어, 이것으로 주제를 삼은 후에 그 정치는 어떻게 흥하고 쇠하였으며, 그 산업은 어떻게 번창하고 몰락하였으며, 그 무공(武功)은 어떻게 나아가고 물러났으며, 그 생활관습과 풍속은 어떻게 별하여 왔으며, 그 밖으로부터 들어온 각각의 종족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그 다른 지역의 나라들과 어떻게 교섭하였는가를 서술하여야 이것을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_ 신채호, <독사신론> 中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 ~ 1936)의 <독사신론 讀史新論>은 단재의 역사관(歷史觀)이 잘 표현된, 잘 요약된 역사서다. 오랜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어지럽게 남겨진 공간 속에서 역사가는 어떻게 사건을 의미를 부여하는 가를 우리 고대사를 소재로 잘 보여주는 책이 <독사신론>이다. 저자는 <독사신론>에서 역사가는 먼저 오늘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기원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인이 되는 종족을 먼저 드러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아(我)'를 찾는 작업이다.


 역사(歷史)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 활동(活動)의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세계사(世界史)란 세계의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朝鮮史)란 조선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을 '아(我)'라 하고 무엇을 '비아(非我)'라 하는가? 한마디로 쉽게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主觀的) 위치에 선 자를 '아(我)'라 하고 그 외에는 모두 '비아(非我)'라 한다._신채호, <조선상고사>, p24 


 역사 속에서 '아'를 규명한다면, '아'를 제외한 외부가 '비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이들의 투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역사 속에서 '아'가 '비아'를 물리치고 주체(主體)가 되어 오늘날 우리 자신으로 올바르게 선다는 의미라 생각된다. <환단고기>에서처럼 중원(中原)을 놓고 일대 격전을 벌이는 동이(東夷)-화하(華夏)의 대립 구도가 아닌, 우리 자신/민족의 주류(主流)가 되기 위해 벌이는 아(我)-비아(非我)의 투쟁. 이것이 바로 <조선상고사>가 <환단고기 桓檀古記>와 갈리는 결정적인 지점이라 생각되며, 유명한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단재 역사관의 참뜻은 이러한 의미라 여겨진다. 이러한 면에서 <독사신론>과 <조선상고사>는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보검 간장-막야(干將-莫耶)와 같은 단재 사상의 음양검(陰陽劍)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섯 종족(부여족, 선비족, 지나족, 말갈족, 여진족, 토족) 가운데 모습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른 다섯 종족을 정복하고 흡수하여 우리 민족의 역대 주인이 된 종족은 실로 부여족 한 종족에 지나지 않으니, 대개 4천년 우리 역사는 부여족의 흥망성쇠의 역사다... 나는 우리 부여족이 발달한 실제 자취로 우리나라 역사의 주요 골자로 삼고 기타 각 민족은 비록 우리나라 땅을 차지하고 주권을 다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적국의 외침의 한 예로서 보겠다.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부여족의 나라가 되는 것은 정신적으로 볼 때는 단군시대에 이미 시작되었고 실질적으로 얘기한다면 삼국 초기에 비로소 명백히 되었다고 할 수 있다... _ 신채호, <독사신론> 中


 PS. 개인적으로 <환단고기>가 비판을 받아야 하는 주된 이유는 그 안에 깊이 자리한 내선일체(內鮮一體)사상때문이라 생각한다. 1930년대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에서 몽골, 만주, 조선, 일본은 대동이(大東夷) 로 같은 민족으로서 '화하'족과 전쟁에 단결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어넣는데 한 몫한다. 결국 일본의 대륙 침략의 명분을 준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와는 반대로,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푸쓰넨(傅斯年)의 <이하동서설 夷夏東西說>은 정반대의 입장에서 같은 목적으로 씌여진 책이라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기에 이만 줄이도록 하자...  



역사를 쓰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의 주인되는 한 종족을 먼저 드러내어, 이것으로 주제를 삼은 후에 그 정치는 어떻게 흥하고 쇠하였으며, 그 산업은 어떻게 번창하고 몰락하였으며, 그 무공(武功)은 어떻게 나아가고 물러났으며, 그 생활관습과 풍속은 어떻게 별하여 왔으며, 그 밖으로부터 들어온 각각의 종족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그 다른 지역의 나라들과 어떻게 교섭하였는가를 서술하여야 이것을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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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21-03-16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사를 배울 때 단순히 신채호가 얘기한 이 부분,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진아라는 제 아이디(?)가 참나를 찾겠다는 뜻이거든요.) 지금 보니 신채호는 우주의 본질, 참나의 본질을 얘기하고 있네요.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원래도 멋졌던 신채호가 새삼 달리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3-16 23:13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조선상고사>만을 읽었을 때는 그 의미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독사신론>을 함께 놓고 보이니 다르게 보이네요. 다만, samadhi님께서 말씀하신 우주의 본질, 참나의 본질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저 역시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samadhi(眞我) 2021-03-16 23:15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제가 제맘대로 해석하는 거지요. 수행과 요가로 꽉 채운 삶을 살겠다고(?) 부끄럽게도 다짐만 하는 제 눈에 모든 게 그렇게 보여서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1-03-16 23:22   좋아요 1 | URL
^^:) 각자의 주관이 바로 각자의 신념이나 역사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덕분에 저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samadhi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3-16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채호가 아를 강조해서 그런지 신채호 하면 아집이 강한 분으란 인상을 받습니다.
지나친 민족주의에 눈 먼, 편견이 강한 분이란 느낌입니다. 제 선입견이겠죠?^^

겨울호랑이 2021-03-16 23:20   좋아요 1 | URL
저 개인적으로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지점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듯 합니다. 사실, 저 역시 어느 정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페이퍼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단재 역사학 역시 일제 하에서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에, 이 역시 목적지향적인 사관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 여겨집니다. 이것은 단재 역사관의 한계이자, 시대의 한계라 여겨지네요. 이 부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후대의 몫인 듯 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3-16 23:31   좋아요 1 | URL
그런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시대를 벋어나기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벗어난 분들을 대단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3-16 23:44   좋아요 0 | URL
정말 시대를 초월한 안목을 가진 분들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연구자가 자신과구분된 공간을 만들어 자연 법칙을 발견하는 자연과학에서는 최소한 이론을 통해서라도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연구자가 주변과 독립되기 힘든 사회과학에서는 선구적인 안목을 갖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들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1번째 주제는 위기(krisis)다. 한자로 위기(危機)가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합쳐진 의미라면, krisis 역시 이 안에 위험과 기회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다만, 이것은  krisis의 세 가지 해석 중 하나인 신학적 해석에 따른 것이다. 신학적 해석에 따르면 '위기'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위험'을 통해서 얻어진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이 된다.


 다가오는 위기 Krisis가 우주적인 사건으로 남아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삶으로의 해방을 보장하는 은혜의 확신 속에서 선취된다. 신의 심판이 예수의 고지 告知를 통해 이미 저기에 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긴장 속에서 기대 지평이, 즉 다가올 역사적인 순간을 신학적으로 특징짓는 기대지평이 그려진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18


 이러한 신학적 해석 외에도 위기 krisis를 상황에 따라 내려지는 올바름과 통치질서를 조율하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법률적 해석, 환자의 완치에 따라 위기 krisis의 성격을 규정하는 의학적 해석등이 역사 안에서 교차하고 있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병의 진행에서 규칙성을 진단하려면, 발병일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위기 Krise가 완치로 귀결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람들은 완전한 위기와 재발을 배제할 수 없는 불완전한 위기를 구분했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19 


 이처럼 '위기'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 중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단연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1729 ~ 1797)과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논쟁이다. 각각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과 <상식, 인권 Common Sense, Rights of Man>을 통해 혁명에 대한 논쟁의 전형을 코젤렉은 '위기 crisis'에서 찾는다.


 '위기' 개념의 사용에 있어서, 진단과 예측적 기능은 페인과 버크에 있어서 동일하다. 그러나 진단 내용과 기대와 관련해서 그 둘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버크는 의학적 기원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페인은 신학적 기원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세계사적인 대안들을 해석 내지 제시할 수 있는 '위기'의 새로운 의미론적 특성을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그 개념은 공통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그러나 서로 대립적으로 적용된 투쟁 개념 Kampfbegriff이 된다.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46


 최후의 심판 이후 얻어질 구원에 대한 희망이 '신학적 해석'이라고 했을 때, 혁명(革命) 이후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의 붕괴와 새질서의 도래를 전망한 것이 페인의 예측이라면, 혁명 이후 정립되는 새로운 질서가 안정궤도에 들어선 후 혁명을 평가하는 '의학적 해석'은 버크의 것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페인은 진보적 입장에, 버크는 보수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코젤렉은 '위기'라는 단어를 통해 이들의 사상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토마스 페인 Thomas Paine은 '위기 The Crisis'라는 표현을 자신의 잡지의 제목으로 선택했다. 그는 이 잡지에서 1776년부터 1783년에 일어난 사건들에 도덕을 강제하는 도덕을, 즉 덕과 부덕, 자연법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부패한 전제정치 사이에 필요한 도전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평했다. "이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추세들이다."... 식민지의 붕괴는 그에게 있어서 단순히 정치/군사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심판이 실현된 것이었다. 독재의 몰락, 생지옥에 대한 승리... 위기는 더 이상 혁명의 전조가 아니다. 페인에 있어서 그것은 미국혁명을 통해 실현됐으며, 미국혁명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전무후무한 특징을 획득한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43


 버크 역시 같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페인이 주문 呪文한 동일한 현상들을 분석적으로 기술하는 데 사용했다... 간단히 말해서 버크는 종교의례처럼 물려받은 모든 사회 조건들과 정치 규칙들을 파괴하는 유럽 내전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45


 코젤렉의 개념사에서 '위기'라는 단어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비로소 자리잡혔음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12권은 <혁명 Revolution>이다. 코젤렉의 개념사를 읽다보면, 개념어가 의미를 확장하면서 최초의 의미 뿐 아니라 이와 반대되는 의미마저도 흡수하며 의미를 확장시켜 나가는 경우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상충되는 의미가 한 단어 안에 담여 있는 모순된 상황. 마치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언어 안에 녹아든 것과 같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근대사의 극심한 혼란을 간접적으로 나마 실감하게 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12권에서 논의되는 '혁명'은 '반혁명'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서, 11권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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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3-10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위기는 선택 (받는)을 통해 기회이군요
상평형에서 상전이의 그 때로도 볼 수 있고요

겨울호랑이 2021-03-10 00:25   좋아요 1 | URL
이번에 개념어 사전을 통해 crisis를 위기로 번역한 것에 몇 번을 감탄했습니다. 정말 의미를 잘 살린 것 같아요.^^:)

초딩 2021-03-10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또한, 신 중심에서 인본으로 가면서 그 선택당함이 선택함으로 태가 바뀌어 해석해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3-10 00:26   좋아요 1 | URL
^^:) 초딩님 말씀처럼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