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미국의 국내 문제가 어떻게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뒤흔들고 전 세계적인 위기를 불로올 수 있었을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부동산은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이며 중산층을 위한 일반 주택들은 그다지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의 시장성 높은 재산 중에서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부동산이 전 세계 부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 현상이 공황상태를 불러온 은행 파산, 그리고 전 세계의 신용경색과 함께 어덯게 금융위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는지 설명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부동산은 단순히 재산을 구성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융자를 위한 가장 중요한 형태의 담보물이라는 사실이다. 경기순환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는 동시에 주택 가격 동향을 금융위기와 결부한 건 다름 아닌 모기지 관련 채무였다. _ 애덤 투즈, <붕괴> , p42/522

애덤 투즈(Adam Tooze, 1967 ~ )의 <붕괴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 >는 미국의 주택금융회사인 파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의 부실화로부터 시작된 사건이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를 강타하고, 이의 여파로 유럽연합(EU)의 흔들림과 브렉시트(Brexit), 트럼프(Trump)의 등장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부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계화(globalization)가 자리한다.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의 수석 경제학자이자 "거시금융론(macrofinance)"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들 중 한 사람인 한국 출신의 신현송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세계 경제를 국가경제 대 국가경제, 즉 국제경제의 상호작용이라는 "섬 모형(island model)"의 관점이 아니라 은행 대 은행, 즉 기업의 대차대조표들 간의 "서로 맞물리는 매트릭스(interlocking matris)"를 통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0/522

"민간의 신용창조(private credit creation)" 시의 절대 다수는 견고하게 엮인 일부 거대 기업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들이 바로 신현송이 이야기하는 "서로 맞물리는 구조" 안의 핵심 구성 요소이며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20~30여 개의 은행이 여기에 해당한다. 각 국가의 주요 은행들까지 포함한다면 이런 거대 금융기관이나 업체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대략 100여 개에 이를 것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9/522


미국에서 최초의 위기는 모기지 상품의 증권화와 이에 대한 적절한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주택금융회사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들 증권을 인수한 대형은행들에게로 불꽃이 튀었고, 자산부실화로 인해 자금순환이 막히면서 미국경제는 하루 아침에 얼어붙고 말았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모기지 차입자들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들로부터 위험을 바깥으로 분산하고 모기지 상품을 다양한 단계의 이익과 위험을 제공할 수 있는 증권으로 바꿔 투자자들을 끌어모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리고 이 방식은 실제로도 효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저축과 대출의 사업 모델과 비교하면 이런 증권화는 위험을 분산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위험이 분산되었다는 이유로 제일 처음 진행되는 대출 업무를 주의 깊게 심사해야 한다는 것을 자칫 망각하게 한 것은 아닐까? _ 애덤 투즈, <붕괴> , p48/522

2007년 회계연도 말에 리먼브라더스의 6,910억 달러에 달하는 대차대초표 중 40퍼센트는 Rep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이었으며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그리고 모건스탠리의 경우 약 40퍼센트였다. 만일 이런 투자은행 중 한 곳이라도 Repo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면 사업모델은 단번에 무너질 것이며 단지 MBS 사업뿐만 아니라 파생상품과 금리 및 통화 스와프를 포함한 대차대초표 전체가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42/522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미 연준은 과감하게 개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다. 1971년 미 달러의 금태환정지 조치 이후 본격화된 자유주의 시대에 거의 잊혀졌던 케인즈주의는 금융위기상황에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고, 연준의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 1953 ~ )는 마치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리듯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미국의 위기를 막아섰다.

국가와 정부가 개입한 주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1) 은행에 대출 형태로 자금 지원 (2) 자본재 구성(recapitalization) (3) 자산매입 (4) 은행예금, 채무 혹은 심지어 은행의 대차대조표 전체에 대한 정보의 보증. 위기가 발생한 모든 곳에 대해 각국 정부는 이 네 가지 방식을 몇 가지로 결합해 적용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관계된 기관은 중앙은행과 재무부, 그리고 금융 규제 감독청 등이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33/522

기축통화인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어낼 수 있었고, NO1. 채권인 미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은 이렇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른 국가들은 미국처럼 할 수 없었다. 이제 다음 위기의 파도는 유럽을 강타한다.

무역수지 흑자와 1994~1998년에 발생한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것을 스스로 막아내겠다는 의지 때문에 이런 신흥시장국가들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정리해 사용할 수 있는 준비 자산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자산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장단기 채권이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53/522

금융위기로 국제금융에 대한 달러화의 영향력이 약해지기는 커녕 실제로는 더 강해졌던 것이다. 통화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서의 미국 재무부 채권에 대한 수요 덕분에 달러화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연준은 통화스와프 협정을 통해 모든 글로벌 은행시스템의 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206/522


런던의 시티는 유로달러를 활용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를 연결시키고 있었고, 서로 다른 체력의 국가들이 유럽은행과 유럽연합(EU)의 울타리에서 동일한 재정정책/금융정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의 입장 차이 속에서 적절한 조치는 미뤄졌고 그 과저에서 이른바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유럽연합은 붕괴의 위기에 처하고 결과적으로 브렉시트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흔들림은 동유럽에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갔다.

달러 헤게모니는 일종의 연결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바로 런던을 통해 달러는 세계의 통화가 되었다(p70)... 금융업과 관련하여 전 세계적인 대격변 중 상당수가 월스트리트가 아닌 런던에서 일어났고 그건 지역의 선택과 관련한 문제였다. 2007년, 전 세계 외환거래 총액의 35퍼센트, 규모로 치면 하루에 1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시티의 전산망을 통해 거래되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71/522

유럽의 금융 중심지들은 아시아와 아라비아반도에서 흘러 들어오는 자금이 미국의 투기성 강한 투자 상품으로 몰려가는 데 안전한 경로를 제공했다. 또한 중국에서 미국으로 흘러 들어간 자금 중 상당수가 벨기에를 경유했다는 사실 역시 의미가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금융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연준 분석가의 말을 빌리면 단기로 자금을 빌려와 장기로 빌려주는 "글로벌 헤지펀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64/522


1990년대 냉전 이후 서유럽에 의한 경제의존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서유럽의 위기와 이로 인한 자본회수는 동유럽에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그나마 러시아는 자신이 보유한 막대한 규모의 외환보유고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다른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유럽연합(EU)과 러시아의 틈사이에서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로 옮아가게 되고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2014년 크림전쟁의 형태로 폭발하고 만다.

1989년에서 1994년 사이 평균 생산량은 30퍼센트 이상 떨어졌고 물가와 실업률,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이 급등했으며 실질임금은 폭락했고 공산주의 시절의 사회복지제도는 붕괴했다. 발트 3국의 경우 임금에 대한 타격은 그야말로 엄청나서 에스토니아는 60퍼센트, 리투아니아는 70퍼센트나 임금이 줄어들었다. 수백만 국민이 이민을 택했고 필요한 경우 불법 이민도 마다하지 않았다. NATO와 유럽연합이 동쪽으로 그 세력을 확대하고 눈앞의 위기를 우선 진정시키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정학적 지도를 영구히 다시 그리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사정들이 있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00/522

냉전 이후 유일한 대안으로 보였던 자유주의체제가 금융위기 속에서 무참하게 좌절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거의 유일한 승자처럼 보였다. 막대한 양적완화와 재정정책이라는 양날의 칼을 효과적으로 휘두르면서 중국이 새롭게 G2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러시아가 경제제재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나가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외부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분명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정책들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문제는 이를 위한 예산이 어떻게 조달되었나 하는 것이다. 예산 조달은 모든 "경기부양책"의 핵심이다. 만일 세금을 올려 필요한 재원을 조달했다면 일반 국민들의 구매력은 전혀 올라가지 않는다. 채권 발행을 했다면 민간 부문의 저축을 흡수했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일반 국민들이 다른 투자를 멀리할 우려가 있다. 만일 경기부양의 목적이 침체된 경제를 빠르게 다시 살려내는 것이라면 신용창조야말로 경기 부양 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중국 당국의 경기부양책이 특별히 효과가 있었던 건 엄청난 규모의 정부 지출과 대규모 통화완화 정책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92/522

러시아는 축적해놓은 외환보유고 덕분에 서방측 제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중극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어떠면 중국은 미국의 연준과 중국인민은행사이의 밀접한 협조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이 그렇게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자랑한 건 결국 서방측이 그토록 오랜 세월 비판을 가해온 금융 규제와 외환관리 시스템의 결과였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133/1312


그리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내부적인 도전은 트럼프의 대통령당선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낸다. 막대한 구제금융이 소수의 기업들에 집중되면서 기득권에 대한 일반의 분노는 극우집단의 부상이라는 부정적인 정치결과를 낳고 말았음을 <붕괴>는 보여준다.

유럽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훗날 있었던 유로존 파산 사태가 아닌 2008년의 위기가 바로 투자와 소비의 심각한 위축과 실업 사태를 만들어냈다. 2007년 하반기부터 독일과 프랑스, 영국, 스위스, 그리고 베네룩스 3국의 크고 작은 은행은 자신이 입은 손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대출 부문이 주저앉았다. 금융 분야가 맨 먼저 타격을 받은 건 그들이 매일 일어나는 방대한 규모의 신용 거래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기업과 가계로 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24/522

애덤 투즈의 <붕괴>는 세계경제의 동기화라는 연환계(連環計)로 미국에 불붙은 불이 세계로 옮겨붙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자는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더불어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한 국가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키코(KIKO)사태로 수많은 기업들이 연쇄부도를 맞았던 사례는 한국의 취약한 금융구조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실례였다.

2008년에 가장 위기에 몰린 나라는 한국이다. 지금의 한국을 일으켜 세운 유명한 수출전문 기업집단, 즉 대우나 현대, 삼성 같은 "재벌"들과 거대한 규모의 제철소, 조선소, 자동차 공장들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별나게 동유럽이나 러시아처럼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전세계와 하나로 엮어 있었기 때문이다(p198)...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려 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통화와 자본의 흐름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한국 금융업의 상당 부분을 해외 투자자들이 소유했으며 한국의 은행들은 도매금융 자금조달 방식이라는 새롭지만 불안정한 방식으로 전 세계 달러시장에서 단기로 자금을 빌려와 한국 내에서 고금리로 장기간 투자를 했다._ 애덤 투즈, <붕괴> , p199/522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4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제2의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역수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외화의 유입이 줄어드는 반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환율방어를 위해 막대한 외화가 소모되는 안 좋은 상황에 부족한 대통령의 리더십까지. 만약 이러한 위기 상황이 재현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리뷰의 마지막은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 1947 ~ ) 전(前) 유럽은행 총재의 일화를 옮기는 것으로 마친다. '슈퍼 마리오'로 불렸던 그는 말 한마디로 유럽의 위기를 극복했건만, 우리의 강원도지사는 말 한마디로 '레고랜드'로 채권시장의 위기를 불러오고 말았다는 점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와 우리나라 금융책임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보다 진중한 대처를 희망한다...

마리오 드라기는 투자자들이 들어주었으면 하는 또 다른 내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의 지원 아래 유럽중앙은행은 유로화를 존속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잠시 말을 멈춘 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를 믿어달라. 오직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마리오 드라기가 "어떤 노력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을 때가 유로존 위기의 전환점이었다. 그의 발언 이후 시장은 급속도로 안정되었고 취약한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 대부분은 시장금리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로존 붕괴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깊은 호소력을 지닌 설명이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336/53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2-11-17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붕괴」 이 책 제가 기억하는 책이 맞다면 엄청난 벽돌책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완독하시고 정리까지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겨울호랑이님 말씀대로 제2의 금융위기가 걱정되는 이 시기에 필요한 책이네요... 저는 우리나라 금융책임자도 아닌 일개 개미이지만 겨울에호랑이님의 리뷰를 표지판 삼아 읽고싶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2-11-18 09:2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파이버님. 현재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발생 원인은 10년 전의 위기 때와는 분명 다르지만, 과거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그때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들이 코로나19위기가 조금 잦아들면서 재발되었다는 면에서 많은 연관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붕괴>에서 금융위기로 가장 힘들었던 나라로 지목된 우리가 교훈을 얻어내 이번 위기를 현명하게 넘어섰으면 하는 바랍을 가져봅니다... 파이버님, 좋은 주말 그리고 유익한 독서 되세요! ^^:)

서니데이 2022-12-08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2-09 04:51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슈퍼 인텔리전스 - 경로, 위험, 전략
닉 보스트롬 지음, 조성진 옮김 / 까치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서 "초지능"은 다양하고 보편적인 인지 영역에서 현시대의 가장 뛰어난 인간보다 훨씬 더 우수한 지능체를 일컫는다. 이 정의는 여전히 꽤 모호하다. 단지 이 정의만을 따른다면 각기 다른 수행능력을 가진 여러 가지의 시스템들이 초지능으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37/189

닉 보스트롬 (Nick Bostrom, 1973 ~ )의 <슈퍼 인텔리전스 - 경로, 위험, 전략 Superintelligence: paths, dangers, strategies>는 책 제목 그대로 '초지능(超知能)'에 대한 책이다.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I)의 시대는 우리 곁에 와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저자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예상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지금 현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난관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이 생각보다 쉽게 돌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문제외에도, 인공지능의 확산과 인간의 완전대체까지는 개발단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에 인공지능의 시대가 조만간 도래한다고 선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인공지능 개발이 예상보다 느린 이유는 이러한 인공지능형 기계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기술들이 여러 선구자들의 예측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사실로부터 이러한 기술적인 난제들이 정확히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 얼마나 더 걸릴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간혹 처음에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매우 복잡한 문제가 놀라울 정도로 간단히 해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10/1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에 의해 통제받는 디스토피아(dystopia)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지성'과 ' 이성'이 인류의 본성이라는 근본적인 사상의 기반이 위협받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유한한 육체의 제약을 도구를 통해 극복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적은 반면, 서구 사회의 역사에서 인간 본연의 것으로 여겨지는 '이성'( reason 理性)을 다른 존재와 공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의 실체가 아닐까.

기계와 기술이 많은 특정 유형의 인간 노동을 대체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과학기술은 대체로 노동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런 보완성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특정 노동에 대한 보완 수단으로 시작된 기술이 나중에는 노동을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98/189

이같은 면에서 향후 인공지능 개발에 대한 닉 보스트롬의 전망은 인간 이성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선사한다. 인간의 지능체계를 모사한 '또 하나의 인간'이 아닌 이와 별도로 '도구적 지능'으로서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우리는 조금은 여유롭게 대답할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며, 인간존엄에 대한 위기감도 낮춰준다.

한 가지 강조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체계와 완전히 똑같을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우리와는 완전히 이질적일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이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생물학적 지능과는 아주 다른 인지구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특히 개발 초기 단계에는 인지능력에서 우리와 아주 다른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지향하는 목표 시스템(goal system)은 인간의 목표 시스템과 아주 큰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인공 일반 지능이 사람이나 증오, 또는 자존심 같은 인간의 감정을 행동의 동기로 삼으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인공지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25/189

그렇다면, 보스트롬이 전망하는 인공지능에 사용되는 이성은 도구적 이성(道具的理性, instrumentellen Vernunft)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찍이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 ~ 1973)가 비판했던 이성의 도구적 사용이 인공지능의 목표라면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각각 선악(善惡)을 나눠가지듯, 인간 이성과 인공지능 이성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각각 점유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인공지능이 별도의 체계를 갖는다면 그것은 코딩의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지향이 '행복의 목적'이 '행복의 수단'이라면 인공지능의 위협이 조금은 감수되고,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신하듯 인공지능은 지식노동을 행하는 기계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인류의 미래가 아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다만 여기에는 한 자기 전제가 따를 것이다. 도구적 이성의 효과적인 통제가 그것이다.

어려운 부분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도를 어떻게 이해하도록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초지능은 이런 이해 정도는 쉽게 획득할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의도한 대로 묘사된 가치를 추구하도록 인공지능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115/189

기대효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프로그래머는 행복의 양에 비례하여 효용 가치를 특정 세계에 배치해주는 효용함수를 찾는다. 그런데 이런 효용함수를 어떻게 컴퓨터 코드로 표현할 수 있을까? 컴퓨터 언어는 "행복" 같은 개념을 어근(語根, primitives)으로 삼지 않는다. 이런 개념을 사용하려면 먼저 정의를 내려주어야 한다. "행복은 인간 본성의 가능성을 즐기는 것"이라든가, 또는 어떤 철학적 주해(註解)처럼 인간의 대란 개념을 이용해서 정의해주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110/189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공지능의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통제 가능성일 것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한 인공지능이라는 도구적 이성의 합리적 사용. 인공지능이 궁긍적으로 인류 행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면, 통제 없는 인공지능의 도입이 마치 파에톤이 모는 태양마차처럼 우리 삶을 파국으로 몰고갈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발걸음은 다시 인문학으로 향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는 과학문명의 시대에 인문학과 통섭(統攝,Consilience)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초개체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하나의 조상이 낳은 복제품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개인의 에이전트가 공동의 목표에 온전히 헌신적이라는 것이다. 초개체를 만들려면, 따라서 통제 문제의 부분적 해결이 필요하다. 통제 문제의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 누군가에게 임의의 최종 목표를 가진 에이전트(대리인)를 만들 권한을 주는 것이라면, 초개체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부분적 해결책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임의적이지 않은) 하나의 최종 목표를 가진 여러 개의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107/189

인공지능의 최종 목표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지, 프로그래머들이 이 목표를 입력했을 때에 의도했던 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우리가 무엇을 의도했는지에 대해서는 단지 도구적 관심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은 프로그래머들이 의도한 것을 알아내는 일에는 그저 도구적 가치만을 부여할 수 도 있을 것이다(p77)... 이 왜곡된 사례들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처음에는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보였던 최종 목표들이 좀더 깊이 검토해보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들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이 확실한 전략적 우위를 획득하는 경우, 인류에게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는 게임 끝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78/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석철학자 쿠엔틴 스미스Quentin Smith는 쿤에게 ‘무’를 마치 ‘무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고 지적했다. 즉 "무가 있을지도 모른다There might have been nothing"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 존재가 가능함"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쿤은 스미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있음There is’은 ‘무언가가 있음something is’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가 있다there is nothing’는 것은 ‘무언가가 무다something is nothing’라는 의미가 되어 논리적 모순이 된다. 그는 ‘무’라는 용어를 제거하고 ‘무언가가 아님not something’ 또는 ‘아무것도 아님not anything’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신의 존재에 관한 모든 논증은 설명이 필요한 무언가의 존재를 가정한다. 무nothing가 아니라 무언가something가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 논거는 다른 모든 논증의 기저를 이루는, 인지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존재자는 자기자신(내세에 대한 믿음의 인지적 토대가 되는)뿐만 아니라 애당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not existing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에는 진정한 진보가 존재한다. 과학의 진보를 팽창하는 지식의 구sphere라고 생각해보라. 알려진 지식의 구가 미지의 영역에서 팽창할 때면 지식의 구를 덮고 있는 무지ignorance의 면적도 늘어난다.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구의 비유로 돌아가, 구의 반경이 증가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생각해보라. 표면적의 증가는 반경의 제곱에 비례하는 것에 비하여 부피의 증가는 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즉, 과학적 지식의 구가 팽창하면 무지의 면적은 제곱의 속도로 증가하는 것에 비해 알려진 지식의 부피는 세제곱의 속도로 늘어난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넓은 무지의 영역이 앎의 영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의 역사에서 진정한 진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지식과 무지 사이의 경계 지역에서 일어난다.

달리 말해 순유전학의 핵심 과제가 DNA라는 블랙박스 안에 들어 있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데에 있었다면, 포스트 게놈 시대의 주요 과제는 DNA의 서열이 밝혀지면서 등장하게 된 기능과 역할이 불분명한 수많은 유전자에 대한 주석달기annotation가 되었다. 이러한 역유전학을 수행하려면 표적 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보존에는 돈이 든다. 물리적으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구상 생명체는 양성자(H+) 농도 차로 ATP를 생산하여 에너지로 사용한다. 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 양성자를 농축시켜 두었다가 댐이 수문을 열 듯 양성자 흐름의 물꼬를 터서 그 동력으로 ATP를 합성한다

21억 년 전 어느 날 원핵생물 하나가 또 다른 원핵생물인 미토콘드리아d를 집어삼켰다. 이유는 모르지만 미토콘드리아는 소화되지 않고 원핵생물 내에 살아남았다. 미토콘드리아 입장에서 보면 원핵생물 내부에 있는 것이 안전했다. 원핵생물 입장에서도 내부의 미토콘드리아는 유용했다. 당시 산소 농도가 증가하고 있었는데 산소는 반응성이 강한 원자다. 쉽게 말해 독毒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호흡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내부의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도 제거해주고 에너지도 만들어주니 일석이조라 할 만하다.

공생설의 중요한 증거 중 하나는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 모두 고유의 DNA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한때는 자체적으로 복제를 했던 존재라는 증거다. 진핵세포 내부에서 공생하는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가 죽었을 때, 그 DNA가 진핵세포 내에 흩어졌을 것이다. 이런 쓰레기 DNA와 숙주의 DNA가 한동안 뒤섞였다는 증거가 진핵세포의 DNA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결국 숙주가 자신의 DNA를 지키기 위해 핵막을 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핵막으로 둘러싸인 핵은 진핵세포와 원핵세포를 구분 짓는 특성으로 세포 내에서 DNA를 격리해 보관하는 특별창고다.

대기 중 산소의 농도가 높아졌을 때 다세포생물이 나타난 것은 당연하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산소는 독이다. 산소의 독성을 피해 단세포생물들이 떼 지어 뭉치는 바람에 다세포생물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집단을 이루면 표면의 세포들만 산소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산소를 상대하는 것은 허파다. 몸 안으로 들어온 산소는 적혈구라는 특별 호송 열차에 실려 몸의 각 부분으로 조심스럽게 이동된다. 이래저래 산소가 핵심이다.

"이 세계관에는 뭔가 장엄한 것이 있다. 생명의 힘은 애초에 단 하나의 생물에 불어넣어졌을 것이다. 지구가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지질학적 순환을 하는 동안, 생명의 세계에서는 단순한 최초의 생명체로부터 아름답고 놀라운 생명체들이 무수히 진화했고 또 진화해가고 있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리스토프 바흐는 개별적인 성서적 사건을 생생한 드라마가 주입된 방식으로 다루며 더
큰 화폭으로 확장시키는데, 이는 슐츠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연대순으로 다뤄지는 이 사건들은 최고로 생생한 음악적 비유를 동반하는데, 그러면서도 훗날 에마누엘이 언급했듯이 ‘조화는 가장 순수한 그대로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뒤에 그의 칸타타와 수난곡들을 논하면서 살펴보겠지만, 그는 항상 책에서 발견한 뻔한 관능적 이미지를 가사로 선택해서 교회 예배에 우의적으로 사용했다. 이 전통은 오리게네스(기원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의 저술에서는 교회가 남녀 간의 사랑을 예수와 개인의 기독교 영혼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황홀경에 빠져 쓰러질 것 같은 새색시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합일을 절실히 갈망하는 영혼을 나타낸다.

크리스토프의 음악은 폴리포니와 화성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는지, 음악적 단락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그리고 우선권을 다투는 가사와 음악 사이에서 어떻게 신중하게 접근할 것인지 바흐에게 표본을 제시했다. 이는 풍성한 재능의 씨앗들을
비옥하게 발아시켜 하나로 합치는, 본성과 양육의 완벽한 사례로 보인다.

루터교가 잔뜩 스며든 인생관부터 기본적인 음악 교육에 이르기까지 헨델은 동갑내기 바흐와 많은 부분을 공유했지만, 그가 이 단계에서 지닌 더욱 코스모폴리탄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은 바흐보다 한 수 위였다.

이 시점에 바흐가 받은 아주 특별한 훈련은 루터교가 강조하는 바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전망과 집착, 기대는 동시대 작곡가들과 어긋나 있었으며, 그는 가는 길마다 엄청난 괴리와 마주쳤을 것이다.

1600년 분열된 교회 양쪽 모두는 세속적인 연극의 옷을 빌려 종교에 입히는 데 불안감을 느꼈다. 이 불안감의 근원은 그 성직자들이 자신들이 느끼던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서로 충돌함을 무의식중에 눈치챈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과 예배 안으로 ‘오페라’ 테크닉이 침입해오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당대 음악가들은 늘 그래왔듯 이처럼 고지식하고 기능적인 카테고리를 회피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틀과 디자인, 표현 양식과 관련해서 그들은 적절하다 싶을 만큼 얄팍하고 형식적인 겉치레만 유지한 채 마음에 드는
것들만 까마귀처럼 골라서 취했다.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으로 향하는 길목을 제공하는 모차르트
오페라는 바흐 칸타타나 수난곡보다 확실히 더 부드럽고 골치 아픈 문제가 덜하다. 모차르트 오페라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볼만한 장면, 희극과 드라마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비록 도덕적으로 모호한 일부 등장인물들은 즐거운 딜레마를 제기하긴 하지만). 이 모든 요소는 마찬가지로 바흐의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은밀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의 대본은 부드럽게 통합된 극적 양식을 구현하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피날레 장면처럼 늘 하나로 통합되지만은 않는다. 후기 칸타타
중 상당수는 나병에 걸린 죄인과 고름, 종기와 같은 충격적인 이미지를 잔뜩 싣고 있다. 복잡하게 신학과 함께 뭉쳐 있는 이 이미지들은 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상대로, 바흐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바로 그 지점에서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남는다.

바흐 교회음악의 인간적인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서, 복음주의 루터 신자들은 20세기 내내 음악을 (푹신한 극장 의자 대신 차가운 교회의 신도석을 선택하며) 고유의 전례적 맥락에서만 접근해왔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견해다. 다만 예배 중 그 음악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그 작품을 작곡한 작곡가와 그 음악을 위촉한 교회 성직자의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그 둘의 목적이 늘 일치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바흐가 음악과 가사 사이에 구축한 독특한 변증법적 관계(이 점은 12장에서 심도 있게 논할 것이다)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루터가 정의하였듯이 음악의 구체적 의무는 성경 텍스트를 표현하고 거기에 감동을 더하는 것이었다. 음표는 언어에 생명을 부여한다(Die Noten machen den Text lebendig).*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강력한 두 가지 선물인 언어와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분의 힘을 구축하며, 텍스트가 주로 지성(뿐 아니라 열정)에 호소하는 반면 음악은 주로 열정(뿐
아니라 지력)에 말을 건다.)* 루터는 음악이 없다면 사람은 돌덩어리와 다름없지만, 음악이 있다면 악마를 물리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인물들은 내적 욕망이 만드는 논리에 따라서 행동하고,
<왕좌의 게임> 외에 어떤 쇼도 포착하지 못하는 묘한 현실감을 띤다. 판타지이면서도 인간사회의 정치학을 가장 극명하게 묘사하고, 숭고하든 비천하는 인물의 특성은 인간성격의 단면을 보여준다. 여기에 삶의 시시한 희극과 거대한 비극이 동시에 공존한다. 대표적으로 8화 "조수의 영주" 편에서 이제 늙고 쇠잔하여 죽음을 앞둔 비세리스가 사랑하는 딸 라에니라를 지지하기 위해 힘겹게 철왕좌로 걸음을 떼는 장면이 그렇다. 그의행진은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거기에는 비극적 엄숙함이 있다. 이런 장면들이 모여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을 만든다.
- P16

여름철 과일은 폭우에 대비해 수확 시기를 당겨 맛이 들지 않고, 바람과구름만 봐도 날씨를 예측해온 어르신들의 지혜도 기후 패턴이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타격이 큰 이들은 바로 무가온 비닐하우스 하나 없이 노지에서 농사짓는 이들 기후의 영향은비단 기온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날씨가 바뀐다는 건작물의 생리가 바뀌는 일이고, 벌레가 달라지는 일이며,
공기와 땅이 바뀌는 일이다. 30년 넘게 노지 농사를 지어온 한 농민은 "기후가 바뀌는 동안 노지에서 기르던 콩마늘, 양파 농사를 접어야 했는데, 올해 폭우를 겪으며 고추마저 접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라고 했다.  - P21

심지어는 ‘흙 없이 깨끗한 농산물‘이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워 판매하고 있다.
언제부터 흙이 더러운 존재가 된 걸까. 일부 엽채류는 흙없이 키울 수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작물은 토양에 뿌리를 뻗고 살아간다. 흙은 농산물을 키워내는 동시에 곤충과 미생물이 사는 터전이다. 그들은 생태계의 분해자와 작물의 매개자가 되어 다시 작물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내고 작물의 생장과 수정을 돕는다. 모든 자연을 차단한 채 물과 필수영양소만 공급하면 작물을 키워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오만이다.  - P22

기록의 과정을 지켜보니 그들에게 동네에 대한 애정을 넘어선 또 다른 의미가 생겼을지 궁금해졌다. 둔촌주공아파트를 기록한 분이 말했듯, 반포주공아파트라는 곳이단순히 어린 시절을 보낸 살았던 공간이 아니라 ‘고향의로 인식되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은 또다른 정의를 내렸을까? 분명 아파트 단지인데 ‘동네‘라고표현된 문장을 보면서, 중요한 건 물리적 형태가 아니라는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기록의 대상은 아파트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파트를 통해 느낀 사계절의 변화, 주변 환경, 사람들, 풍경, 자연과 같이 다양한요소들이 전하는 기억과 감정을 함께 포함한 것이었다. 주택의 기록, 아파트의 기록이라고 별도로 구분하는 행위가무의미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사라지는 무언가를기록하는 일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P48

이에 대해서는 마블과 DC의 상황이 묘하게 같으면서도 다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쉽게 망가지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존재하는 것들의절반을 날려버리려 시도했던 타노스가 굳건하게 버티고있었기 때문이다. 꺾어야 할 절대적 존재야말로 히어로의존재 이유니까. 타노스가 부재한 지금의 MCU 상황을 보자, 히어로들이 멀티버스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게 모두 반드시 꺾어야 할 절대적 존재, 매력적인 빌런이없어서다. - P55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블랙 아담>은 <조커>의 리얼리티 전략을 취하고 있는 영화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장르적으로 한데 섞이기 어려워 보이는 DCEU의 여러 캐릭터들, 즉 ‘저스티스 리그‘와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다소 이질적인 팀의 접목을 꾀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 P56

돈의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생각하는가?
부유층은 개인 소유 자산으로 사회를 장악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부유한 개인이 존재하려면, 교통 네트워크와 교육체계, 의료복지시설, 법치주의 등을 포함한 사회기반시설이 필요하다. 법이 없다면재산도 존재할 수 없다. 재산은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는것이 아니다. 법의 통치에 따라 존재한다. 부의 축적에 필요한 기반 시설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책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