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자 쿠엔틴 스미스Quentin Smith는 쿤에게 ‘무’를 마치 ‘무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고 지적했다. 즉 "무가 있을지도 모른다There might have been nothing"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 존재가 가능함"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쿤은 스미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있음There is’은 ‘무언가가 있음something is’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가 있다there is nothing’는 것은 ‘무언가가 무다something is nothing’라는 의미가 되어 논리적 모순이 된다. 그는 ‘무’라는 용어를 제거하고 ‘무언가가 아님not something’ 또는 ‘아무것도 아님not anything’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신의 존재에 관한 모든 논증은 설명이 필요한 무언가의 존재를 가정한다. 무nothing가 아니라 무언가something가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 논거는 다른 모든 논증의 기저를 이루는, 인지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존재자는 자기자신(내세에 대한 믿음의 인지적 토대가 되는)뿐만 아니라 애당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not existing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에는 진정한 진보가 존재한다. 과학의 진보를 팽창하는 지식의 구sphere라고 생각해보라. 알려진 지식의 구가 미지의 영역에서 팽창할 때면 지식의 구를 덮고 있는 무지ignorance의 면적도 늘어난다.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구의 비유로 돌아가, 구의 반경이 증가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생각해보라. 표면적의 증가는 반경의 제곱에 비례하는 것에 비하여 부피의 증가는 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즉, 과학적 지식의 구가 팽창하면 무지의 면적은 제곱의 속도로 증가하는 것에 비해 알려진 지식의 부피는 세제곱의 속도로 늘어난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넓은 무지의 영역이 앎의 영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의 역사에서 진정한 진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지식과 무지 사이의 경계 지역에서 일어난다.

달리 말해 순유전학의 핵심 과제가 DNA라는 블랙박스 안에 들어 있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데에 있었다면, 포스트 게놈 시대의 주요 과제는 DNA의 서열이 밝혀지면서 등장하게 된 기능과 역할이 불분명한 수많은 유전자에 대한 주석달기annotation가 되었다. 이러한 역유전학을 수행하려면 표적 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보존에는 돈이 든다. 물리적으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구상 생명체는 양성자(H+) 농도 차로 ATP를 생산하여 에너지로 사용한다. 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 양성자를 농축시켜 두었다가 댐이 수문을 열 듯 양성자 흐름의 물꼬를 터서 그 동력으로 ATP를 합성한다

21억 년 전 어느 날 원핵생물 하나가 또 다른 원핵생물인 미토콘드리아d를 집어삼켰다. 이유는 모르지만 미토콘드리아는 소화되지 않고 원핵생물 내에 살아남았다. 미토콘드리아 입장에서 보면 원핵생물 내부에 있는 것이 안전했다. 원핵생물 입장에서도 내부의 미토콘드리아는 유용했다. 당시 산소 농도가 증가하고 있었는데 산소는 반응성이 강한 원자다. 쉽게 말해 독毒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호흡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내부의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도 제거해주고 에너지도 만들어주니 일석이조라 할 만하다.

공생설의 중요한 증거 중 하나는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 모두 고유의 DNA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한때는 자체적으로 복제를 했던 존재라는 증거다. 진핵세포 내부에서 공생하는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가 죽었을 때, 그 DNA가 진핵세포 내에 흩어졌을 것이다. 이런 쓰레기 DNA와 숙주의 DNA가 한동안 뒤섞였다는 증거가 진핵세포의 DNA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결국 숙주가 자신의 DNA를 지키기 위해 핵막을 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핵막으로 둘러싸인 핵은 진핵세포와 원핵세포를 구분 짓는 특성으로 세포 내에서 DNA를 격리해 보관하는 특별창고다.

대기 중 산소의 농도가 높아졌을 때 다세포생물이 나타난 것은 당연하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산소는 독이다. 산소의 독성을 피해 단세포생물들이 떼 지어 뭉치는 바람에 다세포생물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집단을 이루면 표면의 세포들만 산소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산소를 상대하는 것은 허파다. 몸 안으로 들어온 산소는 적혈구라는 특별 호송 열차에 실려 몸의 각 부분으로 조심스럽게 이동된다. 이래저래 산소가 핵심이다.

"이 세계관에는 뭔가 장엄한 것이 있다. 생명의 힘은 애초에 단 하나의 생물에 불어넣어졌을 것이다. 지구가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지질학적 순환을 하는 동안, 생명의 세계에서는 단순한 최초의 생명체로부터 아름답고 놀라운 생명체들이 무수히 진화했고 또 진화해가고 있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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