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평점 :
이런 미국의 국내 문제가 어떻게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뒤흔들고 전 세계적인 위기를 불로올 수 있었을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부동산은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이며 중산층을 위한 일반 주택들은 그다지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의 시장성 높은 재산 중에서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부동산이 전 세계 부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 현상이 공황상태를 불러온 은행 파산, 그리고 전 세계의 신용경색과 함께 어덯게 금융위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는지 설명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부동산은 단순히 재산을 구성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융자를 위한 가장 중요한 형태의 담보물이라는 사실이다. 경기순환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는 동시에 주택 가격 동향을 금융위기와 결부한 건 다름 아닌 모기지 관련 채무였다. _ 애덤 투즈, <붕괴> , p42/522
애덤 투즈(Adam Tooze, 1967 ~ )의 <붕괴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 >는 미국의 주택금융회사인 파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의 부실화로부터 시작된 사건이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를 강타하고, 이의 여파로 유럽연합(EU)의 흔들림과 브렉시트(Brexit), 트럼프(Trump)의 등장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부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계화(globalization)가 자리한다.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의 수석 경제학자이자 "거시금융론(macrofinance)"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들 중 한 사람인 한국 출신의 신현송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세계 경제를 국가경제 대 국가경제, 즉 국제경제의 상호작용이라는 "섬 모형(island model)"의 관점이 아니라 은행 대 은행, 즉 기업의 대차대조표들 간의 "서로 맞물리는 매트릭스(interlocking matris)"를 통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0/522
"민간의 신용창조(private credit creation)" 시의 절대 다수는 견고하게 엮인 일부 거대 기업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들이 바로 신현송이 이야기하는 "서로 맞물리는 구조" 안의 핵심 구성 요소이며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20~30여 개의 은행이 여기에 해당한다. 각 국가의 주요 은행들까지 포함한다면 이런 거대 금융기관이나 업체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대략 100여 개에 이를 것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9/522
미국에서 최초의 위기는 모기지 상품의 증권화와 이에 대한 적절한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주택금융회사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들 증권을 인수한 대형은행들에게로 불꽃이 튀었고, 자산부실화로 인해 자금순환이 막히면서 미국경제는 하루 아침에 얼어붙고 말았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모기지 차입자들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들로부터 위험을 바깥으로 분산하고 모기지 상품을 다양한 단계의 이익과 위험을 제공할 수 있는 증권으로 바꿔 투자자들을 끌어모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리고 이 방식은 실제로도 효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저축과 대출의 사업 모델과 비교하면 이런 증권화는 위험을 분산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위험이 분산되었다는 이유로 제일 처음 진행되는 대출 업무를 주의 깊게 심사해야 한다는 것을 자칫 망각하게 한 것은 아닐까? _ 애덤 투즈, <붕괴> , p48/522
2007년 회계연도 말에 리먼브라더스의 6,910억 달러에 달하는 대차대초표 중 40퍼센트는 Rep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이었으며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그리고 모건스탠리의 경우 약 40퍼센트였다. 만일 이런 투자은행 중 한 곳이라도 Repo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면 사업모델은 단번에 무너질 것이며 단지 MBS 사업뿐만 아니라 파생상품과 금리 및 통화 스와프를 포함한 대차대초표 전체가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42/522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미 연준은 과감하게 개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다. 1971년 미 달러의 금태환정지 조치 이후 본격화된 자유주의 시대에 거의 잊혀졌던 케인즈주의는 금융위기상황에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고, 연준의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 1953 ~ )는 마치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리듯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미국의 위기를 막아섰다.
국가와 정부가 개입한 주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1) 은행에 대출 형태로 자금 지원 (2) 자본재 구성(recapitalization) (3) 자산매입 (4) 은행예금, 채무 혹은 심지어 은행의 대차대조표 전체에 대한 정보의 보증. 위기가 발생한 모든 곳에 대해 각국 정부는 이 네 가지 방식을 몇 가지로 결합해 적용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관계된 기관은 중앙은행과 재무부, 그리고 금융 규제 감독청 등이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33/522
기축통화인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어낼 수 있었고, NO1. 채권인 미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은 이렇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른 국가들은 미국처럼 할 수 없었다. 이제 다음 위기의 파도는 유럽을 강타한다.
무역수지 흑자와 1994~1998년에 발생한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것을 스스로 막아내겠다는 의지 때문에 이런 신흥시장국가들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정리해 사용할 수 있는 준비 자산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자산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장단기 채권이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53/522
금융위기로 국제금융에 대한 달러화의 영향력이 약해지기는 커녕 실제로는 더 강해졌던 것이다. 통화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서의 미국 재무부 채권에 대한 수요 덕분에 달러화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연준은 통화스와프 협정을 통해 모든 글로벌 은행시스템의 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206/522
런던의 시티는 유로달러를 활용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를 연결시키고 있었고, 서로 다른 체력의 국가들이 유럽은행과 유럽연합(EU)의 울타리에서 동일한 재정정책/금융정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의 입장 차이 속에서 적절한 조치는 미뤄졌고 그 과저에서 이른바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유럽연합은 붕괴의 위기에 처하고 결과적으로 브렉시트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흔들림은 동유럽에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갔다.
달러 헤게모니는 일종의 연결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바로 런던을 통해 달러는 세계의 통화가 되었다(p70)... 금융업과 관련하여 전 세계적인 대격변 중 상당수가 월스트리트가 아닌 런던에서 일어났고 그건 지역의 선택과 관련한 문제였다. 2007년, 전 세계 외환거래 총액의 35퍼센트, 규모로 치면 하루에 1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시티의 전산망을 통해 거래되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71/522
유럽의 금융 중심지들은 아시아와 아라비아반도에서 흘러 들어오는 자금이 미국의 투기성 강한 투자 상품으로 몰려가는 데 안전한 경로를 제공했다. 또한 중국에서 미국으로 흘러 들어간 자금 중 상당수가 벨기에를 경유했다는 사실 역시 의미가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금융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연준 분석가의 말을 빌리면 단기로 자금을 빌려와 장기로 빌려주는 "글로벌 헤지펀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64/522
1990년대 냉전 이후 서유럽에 의한 경제의존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서유럽의 위기와 이로 인한 자본회수는 동유럽에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그나마 러시아는 자신이 보유한 막대한 규모의 외환보유고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다른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유럽연합(EU)과 러시아의 틈사이에서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로 옮아가게 되고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2014년 크림전쟁의 형태로 폭발하고 만다.
1989년에서 1994년 사이 평균 생산량은 30퍼센트 이상 떨어졌고 물가와 실업률,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이 급등했으며 실질임금은 폭락했고 공산주의 시절의 사회복지제도는 붕괴했다. 발트 3국의 경우 임금에 대한 타격은 그야말로 엄청나서 에스토니아는 60퍼센트, 리투아니아는 70퍼센트나 임금이 줄어들었다. 수백만 국민이 이민을 택했고 필요한 경우 불법 이민도 마다하지 않았다. NATO와 유럽연합이 동쪽으로 그 세력을 확대하고 눈앞의 위기를 우선 진정시키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정학적 지도를 영구히 다시 그리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사정들이 있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00/522
냉전 이후 유일한 대안으로 보였던 자유주의체제가 금융위기 속에서 무참하게 좌절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거의 유일한 승자처럼 보였다. 막대한 양적완화와 재정정책이라는 양날의 칼을 효과적으로 휘두르면서 중국이 새롭게 G2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러시아가 경제제재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나가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외부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분명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정책들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문제는 이를 위한 예산이 어떻게 조달되었나 하는 것이다. 예산 조달은 모든 "경기부양책"의 핵심이다. 만일 세금을 올려 필요한 재원을 조달했다면 일반 국민들의 구매력은 전혀 올라가지 않는다. 채권 발행을 했다면 민간 부문의 저축을 흡수했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일반 국민들이 다른 투자를 멀리할 우려가 있다. 만일 경기부양의 목적이 침체된 경제를 빠르게 다시 살려내는 것이라면 신용창조야말로 경기 부양 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중국 당국의 경기부양책이 특별히 효과가 있었던 건 엄청난 규모의 정부 지출과 대규모 통화완화 정책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92/522
러시아는 축적해놓은 외환보유고 덕분에 서방측 제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중극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어떠면 중국은 미국의 연준과 중국인민은행사이의 밀접한 협조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이 그렇게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자랑한 건 결국 서방측이 그토록 오랜 세월 비판을 가해온 금융 규제와 외환관리 시스템의 결과였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133/1312
그리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내부적인 도전은 트럼프의 대통령당선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낸다. 막대한 구제금융이 소수의 기업들에 집중되면서 기득권에 대한 일반의 분노는 극우집단의 부상이라는 부정적인 정치결과를 낳고 말았음을 <붕괴>는 보여준다.
유럽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훗날 있었던 유로존 파산 사태가 아닌 2008년의 위기가 바로 투자와 소비의 심각한 위축과 실업 사태를 만들어냈다. 2007년 하반기부터 독일과 프랑스, 영국, 스위스, 그리고 베네룩스 3국의 크고 작은 은행은 자신이 입은 손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대출 부문이 주저앉았다. 금융 분야가 맨 먼저 타격을 받은 건 그들이 매일 일어나는 방대한 규모의 신용 거래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기업과 가계로 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24/522
애덤 투즈의 <붕괴>는 세계경제의 동기화라는 연환계(連環計)로 미국에 불붙은 불이 세계로 옮겨붙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자는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더불어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한 국가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키코(KIKO)사태로 수많은 기업들이 연쇄부도를 맞았던 사례는 한국의 취약한 금융구조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실례였다.
2008년에 가장 위기에 몰린 나라는 한국이다. 지금의 한국을 일으켜 세운 유명한 수출전문 기업집단, 즉 대우나 현대, 삼성 같은 "재벌"들과 거대한 규모의 제철소, 조선소, 자동차 공장들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별나게 동유럽이나 러시아처럼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전세계와 하나로 엮어 있었기 때문이다(p198)...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려 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통화와 자본의 흐름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한국 금융업의 상당 부분을 해외 투자자들이 소유했으며 한국의 은행들은 도매금융 자금조달 방식이라는 새롭지만 불안정한 방식으로 전 세계 달러시장에서 단기로 자금을 빌려와 한국 내에서 고금리로 장기간 투자를 했다._ 애덤 투즈, <붕괴> , p199/522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4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제2의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역수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외화의 유입이 줄어드는 반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환율방어를 위해 막대한 외화가 소모되는 안 좋은 상황에 부족한 대통령의 리더십까지. 만약 이러한 위기 상황이 재현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리뷰의 마지막은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 1947 ~ ) 전(前) 유럽은행 총재의 일화를 옮기는 것으로 마친다. '슈퍼 마리오'로 불렸던 그는 말 한마디로 유럽의 위기를 극복했건만, 우리의 강원도지사는 말 한마디로 '레고랜드'로 채권시장의 위기를 불러오고 말았다는 점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와 우리나라 금융책임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보다 진중한 대처를 희망한다...
마리오 드라기는 투자자들이 들어주었으면 하는 또 다른 내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의 지원 아래 유럽중앙은행은 유로화를 존속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잠시 말을 멈춘 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를 믿어달라. 오직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마리오 드라기가 "어떤 노력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을 때가 유로존 위기의 전환점이었다. 그의 발언 이후 시장은 급속도로 안정되었고 취약한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 대부분은 시장금리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로존 붕괴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깊은 호소력을 지닌 설명이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336/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