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바흐는 개별적인 성서적 사건을 생생한 드라마가 주입된 방식으로 다루며 더 큰 화폭으로 확장시키는데, 이는 슐츠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연대순으로 다뤄지는 이 사건들은 최고로 생생한 음악적 비유를 동반하는데, 그러면서도 훗날 에마누엘이 언급했듯이 ‘조화는 가장 순수한 그대로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뒤에 그의 칸타타와 수난곡들을 논하면서 살펴보겠지만, 그는 항상 책에서 발견한 뻔한 관능적 이미지를 가사로 선택해서 교회 예배에 우의적으로 사용했다. 이 전통은 오리게네스(기원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의 저술에서는 교회가 남녀 간의 사랑을 예수와 개인의 기독교 영혼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황홀경에 빠져 쓰러질 것 같은 새색시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합일을 절실히 갈망하는 영혼을 나타낸다.
크리스토프의 음악은 폴리포니와 화성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는지, 음악적 단락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그리고 우선권을 다투는 가사와 음악 사이에서 어떻게 신중하게 접근할 것인지 바흐에게 표본을 제시했다. 이는 풍성한 재능의 씨앗들을 비옥하게 발아시켜 하나로 합치는, 본성과 양육의 완벽한 사례로 보인다.
루터교가 잔뜩 스며든 인생관부터 기본적인 음악 교육에 이르기까지 헨델은 동갑내기 바흐와 많은 부분을 공유했지만, 그가 이 단계에서 지닌 더욱 코스모폴리탄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은 바흐보다 한 수 위였다.
이 시점에 바흐가 받은 아주 특별한 훈련은 루터교가 강조하는 바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전망과 집착, 기대는 동시대 작곡가들과 어긋나 있었으며, 그는 가는 길마다 엄청난 괴리와 마주쳤을 것이다.
1600년 분열된 교회 양쪽 모두는 세속적인 연극의 옷을 빌려 종교에 입히는 데 불안감을 느꼈다. 이 불안감의 근원은 그 성직자들이 자신들이 느끼던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서로 충돌함을 무의식중에 눈치챈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과 예배 안으로 ‘오페라’ 테크닉이 침입해오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당대 음악가들은 늘 그래왔듯 이처럼 고지식하고 기능적인 카테고리를 회피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틀과 디자인, 표현 양식과 관련해서 그들은 적절하다 싶을 만큼 얄팍하고 형식적인 겉치레만 유지한 채 마음에 드는 것들만 까마귀처럼 골라서 취했다.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으로 향하는 길목을 제공하는 모차르트 오페라는 바흐 칸타타나 수난곡보다 확실히 더 부드럽고 골치 아픈 문제가 덜하다. 모차르트 오페라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볼만한 장면, 희극과 드라마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비록 도덕적으로 모호한 일부 등장인물들은 즐거운 딜레마를 제기하긴 하지만). 이 모든 요소는 마찬가지로 바흐의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은밀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의 대본은 부드럽게 통합된 극적 양식을 구현하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피날레 장면처럼 늘 하나로 통합되지만은 않는다. 후기 칸타타 중 상당수는 나병에 걸린 죄인과 고름, 종기와 같은 충격적인 이미지를 잔뜩 싣고 있다. 복잡하게 신학과 함께 뭉쳐 있는 이 이미지들은 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상대로, 바흐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바로 그 지점에서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남는다.
바흐 교회음악의 인간적인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서, 복음주의 루터 신자들은 20세기 내내 음악을 (푹신한 극장 의자 대신 차가운 교회의 신도석을 선택하며) 고유의 전례적 맥락에서만 접근해왔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견해다. 다만 예배 중 그 음악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그 작품을 작곡한 작곡가와 그 음악을 위촉한 교회 성직자의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그 둘의 목적이 늘 일치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바흐가 음악과 가사 사이에 구축한 독특한 변증법적 관계(이 점은 12장에서 심도 있게 논할 것이다)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루터가 정의하였듯이 음악의 구체적 의무는 성경 텍스트를 표현하고 거기에 감동을 더하는 것이었다. 음표는 언어에 생명을 부여한다(Die Noten machen den Text lebendig).*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강력한 두 가지 선물인 언어와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분의 힘을 구축하며, 텍스트가 주로 지성(뿐 아니라 열정)에 호소하는 반면 음악은 주로 열정(뿐 아니라 지력)에 말을 건다.)* 루터는 음악이 없다면 사람은 돌덩어리와 다름없지만, 음악이 있다면 악마를 물리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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