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단순히 물질이라고 보는 관점을 넘어, 그 너머에 내재한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그런 마음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생태적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미학적 감수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땅이 밟히는 것을 자신의 신체적 아픔으로 느끼는 이 감각, ‘네가 곧 나’이며,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라는 감각의 회복이야말로 우리가 이 천박한 시대를 건널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닌가 한다.

각자의 좋음과 각자의 아름다움이 교향악처럼 어우러지는 세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세상이며, 수운이 말한 동귀일체가 아닐까 한다. 수운의 무극대도(無極大道)는 상대주의와 허무주의를 넘어 ‘영원한 진리’를 말했다.

이제 우주의식이 이성의 단계를 넘어 본래적 신성을 온전히 드러낼 때가 되었다. 우주의식을 하느님이라고 한다면 하느님은 우주 위에서 인간을 심판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이 우주에 가득 찬 신성한 에너지이며, 그 자체로 무한한 사랑이자 평화이며, 모든 어둠과 무지를 깨뜨리는 광명이며 영원한 지혜인 것이다.

항몽전쟁 이후를 오직 굴종으로만 파악하는 것 또한 편향이다. 임형택은 고려 지식인들이 굴욕 속에 열린 한줄기 통로를 통해 세계와 호흡하며 고려를 개혁하는 일방, 조선을 개국하는 혁명으로 역동했다고 파악함으로써 침략과 저항의 이분법을 침통히 넘어서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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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건대, 이 시대의 자본주의는 부드러운 권력 장치(agencement)이다. 수직적 착취나 수탈을 노골화하지 않고, 인권과 노동권을 배려하는 인간의 얼굴을 지니고 있으며, 더 많은 존재의 필요와 욕망을 연루시키며 자가발전한다. 이러한 자본주의를 계속 질문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 세계 존재들의 삶과 상상력 자체를 제약하고 포획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일의 현장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노동 유연화와 포스트-포드주의의 테크놀로지가 결합한 공간을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을까. 이곳에서 노동자/자본가(사업자)/소비자 식의 구획된 정체성은 이전보다 쉽게 무화된다.

플랫폼 배달노동자가 법적으로는 자기사업자(사장님)이지만 실제로는 고된 작업현장의 노동자라는 이중구속적 상황은 사람들끼리의 연결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당사자 자신마저 분열시킨다.

오늘날 통치술은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 오지 않은 시간을 현재의 비관에 접합해 ‘현재의 것’으로 선취하고 전유하고자 한다. 자주 사용되는 ‘선제(先制, pre-emption)’와 같은 말도 그와 관련된다. 통치술의 의도는 분명하다. 아득한 목적지로서의 희망을 맹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미래를 암흑으로 선취하려는 힘의 속임수는 정확히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믿음’의 체계다. 압도적인 것, 바깥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일수록 맹목적 믿음에 의해 지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믿음 혹은 오인의 구조를 질문하지 않는 상상력이 오히려 질문되어야 한다.
즉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행한 것을 묻는 대신에, 거꾸로 우리가 자본주의를 위해 무엇을 해왔고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질문해보면 어떨까

생태 담론은 "잃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세계와 환경이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적 토대와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풍부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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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의 생명과 안전을 돌보는 일을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지점에 와 있다. 거시적인 시야로 참사 이후 떠오른 과제 및 질문을 차분히 추리고 벼려보는 동시에 이웃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에 공명하여 서로의 마음을 돌보는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사실상 연속적인 현상이라 말할 근거도 여기서 재차 확인된다. 둘 다 ‘전체’의 쇠락을 불가피하다고 보되 다만 그것을 향수 어린 비애감으로 돌아보느냐 아니면 긴 억압에서의 해방으로 경축하느냐 사이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총체성 개념이 결국은 자본주의를 빈틈없이 완결된 전체로 물신화하지 않느냐는 우려에 관해서는, "맑스에게 자본주의의 ‘총체성’은 위기를 불가결한 계기로서 포함하고 (…) 여기에 깔린 전제는 전체란 결코 진짜 전체가 아니라는 것, 전체에 대한 모든 개념은 무언가를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라 강조한 지젝의 설명이 적실하다.

이행은 예시와 다르게 지금-여기에서 출발하여 심연 같은 간극을 한걸음씩 채워야 하고, 이 과정이 참된 이행이기 위해서는 또한 ‘전체’를 시야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가갈 ‘도래하기 어려운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세상의 종말’에 대한 예언만큼이나 다양하게 제출되어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소설에 이르러 돌봄활동 속 젠더 역학이 뚜렷이 폭로되었다. 동시에 돌봄이 여성이나 주변인의 일로 간주된 채 급격히 시장화하고 공공 시스템이 부재하는 오늘날의 상황도 조밀하게 드러났다.인물, 계층, 세대 간 갈등이나 시장 안의 수요자와 제공자 사이의 갈등이 전경화하는 가운데, 돌봄을 둘러싼 ‘가부장×자본’의 문제가 일상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음도 환기시켰다. 그런데 이런 폭로는 돌봄이 시장의 교환체계 속에 고착해 있다는 착시를 만들거나 고된 노동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돌봄활동의 특수성과 정동을 망각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돌봄 혹은 소외된 노동은 시민권을 얻는 동시에 여전히 폄훼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갇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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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드러진 것은 개인정보 활용 등 프라이버시 문제다. 한국은 봉쇄나 재택명령 대신 확진자와 접촉자의 이동경로를 추적하여 잠재적 감염자들을 선제적으로 검사하는 3T 방식을 택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기본권 제한이 약하지만, 사생활의 보호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측면에서는 기본권을 크게 제약한다. 서구에서는 이 방식이 불가능했다. 추적을 위한 정보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도 있었지만,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요구 정도가 매우 높아서 실행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바이러스는 모두에게 재난이었지만 그 영향은 불평등했다. 특히 장애인·홈리스·이주노동자·요양원 수용자·기저질환자 등 차별받던 의료 취약계층에게는 더한 차별이 닥쳤다. 이들은 정부가 지정한 고위험군·집중관리군에 포함되지 못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정부 관리와 사망자 통계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된 죽음’이었다.

질병의 원인을 도덕화하는 오랜 습속과 혐오를 조장하는 현대 한국사회의 토양이 접속하자 혐오는 마치 증식숙주 속의 바이러스처럼 폭발적으로 창궐했다. 경기도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2020년부터 2022년 1월까지 4회에 걸쳐 경기도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경기도 코로나19 심리방역을 위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초기에는 확진 자체와 관련이 있는 중국인, 신천지 교도, 성소수자 등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후에는 방역수칙 위반자, 백신 미접종자 등 특정 행위 관련자들에게 혐오가 가해졌다.

혐오와 비난을 줄인 것은 결국 유행의 장기화였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 코로나19를 둘러싼 방역정치는 정당 간 대립의 맥락 속에서 과잉정치화되었다. 한쪽에서 "세계가 감탄한 K-방역"을 자찬할 때,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 최악 ‘허망한 K방역’"이라는 비난으로 맞섰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수정당 지지자에 비해 권력의 억압을 훨씬 더 촉구하는 역설은 ‘방역정치의 정당정치화’라는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이들에게 K-방역의 성공은 세월호참사와 메르스사태 때 국민의 생명을 방기한 보수정권에 대한 심판임과 동시에 진보정권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증거였다. 훼손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급격한 기후위기는 채굴 분야에 투자한 이들에게 경제적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세계관에 투자한 이들에게는 우주론적 위협이 된다. 기후변화는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로, 공짜는 없다는 것, 인간이 (특히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 한쪽만 이득을 취하는 일방적인 관계 같은 건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행동에는 반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수세기에 걸친 굴착과 추출은 이제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튼튼한 구조물?해안도시, 고속도로, 석유굴착기 등?조차 취약하고 허약해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추출주의적 사고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뿌찐, 트럼프, ‘자유호송대’의 공통된 우주관을 감안하면, 이들이 저마다 다른 지역에 살고 다른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서로 일맥상통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독성이 덜한 향수(鄕愁)를 되찾는다고 해서 독성이 강한 향수의 힘을 물리칠 수는 없다.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는 제국주의적 침략, 우익 사이비 포퓰리즘, 그리고 기후붕괴를 동시에 야기하는 세력과 싸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싸움과 매우 흡사한 것이 그린뉴딜이다. 그린뉴딜은 현 체제에서 가장 조직적으로 버려지고 오염된 지역사회를 돌보는 일부터 시작해 저렴한 친환경주택과 좋은 학교를 짓는 등 의미있는 일을 하는, 가족을 지원하고 노조가 결성되어 있는 사업장에 투자함으로써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정책이자 운동이다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 위기는 북미와 서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대체할 화석연료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다. 그 위기는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등 우리 모두가 여전히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요동치는 시대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은 많다. 핵무기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도록 내버려둘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한때 강대국이었던 나라들을 비난하는 근시안적 사고에 대해. 어떤 땅과 목숨은 침범하고 버려도 되고, 다른 어떤 땅과 목숨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서구 언론의 기괴한 이중잣대에 대해. 어떤 강제이주는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위기가 되고, 또 어떤 강제이주는 이주 대상국에 위기로 작용하는가에 대해.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의지에 대해. 그리고 자기 결정과 영토 보전을 위한 어떤 싸움은 영웅적인 것으로 칭송받고, 또 어떤 싸움은 테러로 치부되는 현실에 대해. 벌거벗은 역사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국내 연안 양식장이 직면하고 있는 또다른 과제는 해양 쓰레기다. 어민들이 살고 있는 어촌 주변 바닷가에는 파도에 밀려온 플라스틱이나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어구인 흰색 부표가 많다. 어쩌다 치운다고 하더라도 조류에 밀려온 다양한 해양 쓰레기가 금세 해안에 수북이 쌓인다. 도시에서 살다가 귀어한 어민들의 경우 처음에는 작업 중 나오는 쓰레기를 되가져오려고 노력하곤 한다. 그러나 바닷일의 고됨이 누적되고 시간에 쫓기게 되면 결국 바다에 그냥 버리는 쪽을 택하게 된다. 다른 어민들은 자연스럽게 버리는데 자신만 쓰레기를 되가져오는 게 혼자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쓰레기를 버리거나 방치하는 문제는 귀어 초기 어민들이 이전 세대와 갈등을 겪는 주제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출산은 죽음을 환기할 만큼 어머니와 자녀 모두의 취약성이 극대화되는 시간이고,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생명의 취약성에서 오는 불안까지 동반하는 복합적 노동일 수밖에 없다.

임대병영’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는 독일제국의 주택정책은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던 임대인 단체나 임대차제도를 넘어 생산과 관리 영역에도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요구하는 사회개혁가 등의 출현과 쟁명 속에서 전개된다.

주택공익성 개념과 소유권이 계속 충돌했던 서독에서는 규제와 해제가 긴장 속에 반복된다. 전후 복구시기 과거의 주택강제경제를 철폐하면서도 사회주택의 공급과 주거보조비의 확대를 통해 국가 개입의 끈을 튼튼히 잡았던 것이 보수진영의 입장이었다는 점은 ‘사회국가’ 독일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후 서독에서는 1960년대의 규제완화로 임대료가 폭등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 때처럼 민간부문의 건설 활성화도 이룩하지 못했고 결국 1971년에 다시 임차인보호강화법을 제정하게 된다. 동독과 서독의 이러한 사례를 보면, 좌든 우든 현실의 복잡함 앞에서 자만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헤겔은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믿음의 과정을 보편성과 특수성이 통일되어 개별성으로 지향되는 과정으로 개념화하는데, 이는 부처나 그리스도라는 씨앗이 중생 즉 인간에 내재한 채 전개해서 개별적인 그 나름의 인격이 되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남기호의 책에는 이백년도 더 전인 그 옛날 헤겔이 이러한 개념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은 일, 즉 왕권과 그 밑에 활동하는 종교성의 감시와 의혹의 눈초리를 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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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주도세력의 유교적 엘리트의식과 촛불대항쟁의 수평적 연대의식을 대비할 수 있다면, 전자가 유교 전통의 비민주적 잔재에 해당하고 후자는 동학으로 매개된 유교적 요소의 긍정적 위력으로 보는 시각도 가능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란 꾸준히 투쟁해서 획득해야 하는 가치였다는 점, 그런 투쟁의 역사가 낳은 강렬한 주체성 등이 개벽의 사상사와 연결되는 지점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한편으로 촛불대항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꼭 언급해야하는 것이 뉴미디어입니다. 촛불혁명은 미디어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나라 전체가 식민화되고 제국주의 침탈을 심각하게 겪었던 일제강점기 당시 사람들의 상실감은 엄청났을 겁니다. 중국 역시 국권에 대한 위협을 받기는 했지만 나라 전체가 넘어가지는 않았거든요. 한국인의 국권과 자아정체성이 파괴된 경험이 더 심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주적 자아, 대동(大同)의 ‘나’에 대한 갈망이 강해졌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는 민주화라는 정치체제의 전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민주적 삶의 양식’을 향한 일반 시민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 속에서 발견되고 경험되는데, 이때 개벽이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시민적 화두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죠.

김지하의 삶에 대해 우리가 던지는 첫번째 질문은 어쩌다 그가 투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나 하는 것인데, 그는 자기 ‘행동’이 어떤 조직이나 이념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의 필연성에 따른 개인적 열정의 산물이었다고 대답한다.(『회고록 2』 341면) 즉, "언제나 조직 밖의 활동가"(같은 책 42면)라는 자의식이 그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그는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에 서 있는 순간에도 "역사와는 반대되면서, 그럼에도 역사로 돌아가는 (…) 내면적 카오스의 생성의 시간"을 막연하지만 생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중요한 사실은 김지하 시의 출발점에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땅’이자 ‘반란과 형벌의 고장’으로서의 고향 전라도에 대한 운명적인 연대가 깊게 깔려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목격했던 좌우대립의 참혹함뿐만 아니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일본제국 군대에 의한 동학군 학살과 남한대토벌의 역사도 그에게는 무심할 수 없는 인연이 있었다. "나의 영적 혈통의 핵심에 있는 동학의 기억은 단순히 어렸을 때의 집안의 전설이 아니라 스무살이 넘은 나에게 하나의 살아 있는 현실"(같은 책 387면)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근본적인 것은 양자의 생생하고도 유기적인 결합, 즉 박제품 상태의 판소리 형식을 현실비판의 살아 있는 무기로 힘차게 살려낸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김지하 고유의 진정한 성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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