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감당해야 위기를 극복할 힘도 나온다. 성차별, 노동, 농업, 교육, 복지, 저출생, 초고령화, 인구감소, 연금, 지역격차, 불평등, 부동산, 돌봄, 높은 대외 의존도와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 대처하면서, 그것과 함께 전환의 길을 찾아야 한다.1 경제사회 현안 해결, 기후재난 대응, 온실가스의 획기적 감축, 장기적 사회생태 전환은 개념적으로 구분되지만 현실적으로, 특히 이행기에는, 다 같이 추진할 수밖에 없는 과제들이다.

생물권 내의 경제사회계와 생태계가 전체 ‘사회생태계’를 구성한다. 사회계와 생태계는 각각의 내부에서, 그리고 서로 간에 밀접하게 상호작용-상호의존하면서 변화에 적응하고, 회복력을 유지하고, 함께 진화(共進化)한다. 사회계와 생태계는 하나의 꾸러미로 작동한다. 환경이 악화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탈성장을 추구하는 견해에서는 서구의 복지국가·복지사회를 가능하게 한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대량생산·대량소비는 글로벌 남반구의 노동과 자연을 착취하고 수탈하면서 이루어져왔고, 이는 결국 제국적 삶의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복지사회를 꿈꾸면서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모두 제국적이라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복지사회에서 누리는 풍요롭고 안정된 삶은 자칫 제국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 수 있고, 현재 인류세(人類世)를 초래한 화석연료 기반 문명의 연장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들이 지적하는 바이다.

현행 한국의 돌봄 관련 수당들은 개별 수당의 충분성을 평가하기에 앞서, 돌봄을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만 보고 있다는 점에서 돌봄소득의 목표와 배치된다. 돌봄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가족에게 부여함으로써 가족 위주 돌봄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며, 그 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기보다 타인을 돌보는 노동에 비해서도 낮게 보상함으로써 돌봄의 상품화를 부추긴다.12 돌봄소득과 유사하지만 사회전환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계가 뚜렷한 정책인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돌봄에 대한 소극적 태도 못지않게 장시간 노동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 임금노동 종사자들 대부분은 돌봄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한국에서 돌봄이 더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방도를 찾고자 한다면 돌볼 수 있는 시간의 확보, 이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시간의 감축이 핵심적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 감축을 돌봄문제로부터 사유하여 돌봄소득과 연결짓는 방식은 더욱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본주의체제가 지속 불가능하며 이제 그 말기국면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차츰 실감으로 자리 잡을 때 자본주의의 서사는 그 지속 불가능성 자체를 서사화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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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재하던 1970년대에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적 통념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의식하고 그것을 재정의하고자 했다. 자본주의란 것은 역사에서 늘 존재해온 시장경제와는 다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해방과 개방 그리고 다른 세계로의 접근"을 뜻하는 시장의 세계와 거대한 독점세력이 판치는 근대의 반(反)시장적 자본주의를 구별하고, 후자가 전자 위에 얹혀 동행해온 근대의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착각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맑스(K. Marx, 1818~83)와 월러스틴(I. Wallerstein, 1930~2019)은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자본주의를 천착하면서 자본주의의 탄생과 소멸의 역사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실천적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다. 두 사람은 각기 자기 시대의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작동원리에 따라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면서 문명의 대전환을 꿈꾸었던 점에서 일치한다. 다만 월러스틴은 그것이 역사적 체제이기에 소멸만 확실할 뿐 그다음에 무엇이 올지는 그 과정의 혼돈의 분기점에서 인간의 집단적 실천에 달렸음을 강조한다.

결국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경제나 임노동제 같은 특징들로 환원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체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월러스틴은 만물의 궁극적인 상품화를 통한 자본의 끝없는 축적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사실 외에 자본주의는 구체적 역사를 통해 전개되는 양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인종과 성의 차별주의, 그리고 비자유노동과 결합된 형태가 늘 구조적 조건이 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탄생과 종말이 있는 역사적 체제이기에 다른 체제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데, 생산비용의 장기적 상승으로 오늘날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월러스틴의 진단이다. 그는 오늘날 자본주의체제가 민중과 자본가 계급 모두에게 부담이 되기에 21세기 중반경에 종언을 고할 것이라 예측한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 이전의 역사적 체제들과 구분되는 두드러진 차이는 그 체제의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은 극소수 집단을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분리해온 것이 아니라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혹은 7분의 1)를 나머지로부터 분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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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후문제가 자본주의체제로부터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저희 역시 그런 맥락에서 석탄화력발전소 수출사업에 제동을 걸고자 했어요. 특히 두산중공업이 발전소를 수출하기로 결정한 2020년은 한국이 ‘2050 탄소중립 선언’을 하고 탄소중립 비전을 선포한 해이기도 하잖아요. 이게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인가요. 기업은 저마다 자기들도 에너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친환경기업이다 하는데 그게 이미지 포장을 위한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점을 비판하려고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린 거예요.

언론의 권력 편향성 문제를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건 ‘기사형 광고’예요. 특정 기업이나 단체에서 댓가를 받는 글이지만 얼핏 보기엔 객관적인 기사 같기 때문에 독자를 속이는 행태죠. 2021년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따르면, 이런 기사형 광고를 가장 많이 낸 언론사는 조선일보였고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경제 매체들이 그 뒤를 이었는데요. 진보언론도 이 부분에선 완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대다수 언론사가 기사형 광고를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과연 없어질 수 있을지 부정적인 예상도 들어요.

광고주를 겨냥하는 기사는 발제를 할 때부터 차단당하거나 데스크에서 걸러지는 일들이 생기고,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면 기자 스스로 위축되고 지레 포기하게 되니까요. 레거시 언론 내부의 ‘윗분’들이 맺어온 인맥과 이해관계가 누적되고 복잡해지면서 일선 기자들한테 영향을 주게 되는 거예요. 실제로 조선일보 송희영 전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측의 청탁을 받고 그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빼거나 축소하라고 편집부에 지시한 사실을 뉴스타파가 보도하기도 했었죠.

저는 선을 넘는 윤석열정부의 퇴행성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야권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정부에 맞서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 연대해야죠. 그런 점에서 최근 민주당의 행보는 좀 우려스럽습니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여야 지지율 역전에 안주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그런 낡은 관성에 기대는 순간 다음 총선은 필패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은 기득권 거대 양당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보장하는 지금의 선거제도가 야권의 연대·연합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걸 분명히 직시해야 합니다.

대화 중 용혜인 의원은 최근 진보정당을 포함한 한국정치가 굉장히 미시적인 것만을 이야기한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거대담론은 끝났다’는 이야기에 자신은 동의할 수 없으며, 오히려 거대담론의 부재가 한국정치의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과 혼인과 출산이 맞물린 사회에서 불평등과 불안정에 대응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가 가족을 구조조정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사회 전반의 불평등과 불안정을 축소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저출생 문제의 해법입니다. 또한 출생률이 높은 국가들의 공통점은 GDP 대비 가족 지원 투자가 높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은 GDP 대비 1% 미만으로 매우 낮습니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장하고 공공이 돌봄과 재생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출생률을 반등시키기 어려울 겁니다.

‘일본해’와 ‘동해’라는 지명을 둘러싼 다툼은 일본, 한국, 그리고 북한 세 나라 국민 사이에서 대립의 씨앗이었습니다. 동해(일본해)를 진정한 평화의 바다로 만들 수 있다면 그때는 ‘블루 씨(?海)’라고 부르도록 합의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일의 연대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습니다.

낮은 임금과 건별 보수 책정이 배달노동자를 고강도·장시간 노동으로 몰아넣어 산업재해와 질병 위험을 증대시킨다는 점을 생각하면, 최저임금과 산업재해는 서로 분리된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이 가장 강하게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은 ‘데이터의 공공적 소유와 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민간이 정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기 시작했는데, 이를 보험이나 교통 등 공적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죠. 데이터를 시민적으로 통제하고 사회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관련 기업에 정보를 내놓도록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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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는 오히려 87년체제 이전으로 퇴행하는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는 이 정부를 어떻게 퇴진시킬 것인가에 많은 것이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석열정부의 집권 자체가 촛불혁명이 야기한 ‘변칙적 사건’이라면 이 ‘변칙’을 바로잡는 것도 촛불혁명일 수밖에 없다 싶어요. 대전환의 중장기적인 과제는 무엇보다 막바지로 갈수록 포악해지는 자본주의체제에 적응하면서 극복하는 일입니다

저는 대전환의 뒷면은 대환란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전쟁 위협과 전쟁·분쟁은 전부터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생태 위기 같은 더 큰 위기들에 맞닥뜨려 있잖아요. 정치가 엉망인데 기후위기까지 가중되면 사람들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나라가 되고, 이주와 난민이 대거 발생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수단이나 예멘 등 아프리카와 중동 사람들의 유럽행 난민은 물론이고 라틴아메리카에도 미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죠. 저는 우리 사회로 들어오는 이주민도 늘어날 거라고 봐요. 이미 많은 이들이 노동자로 오고 있고, 출생률 저하를 고려하면 이주민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고요. 그래서 돌봄·생태·젠더 등 기존의 여러 의제와 더불어 이주와 난민 문제도 관심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장애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UN 장애인권리협약을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복지’(social welfare)라는 단어가 한번도 안 들어가더라고요. 반면 우리는 장애인 관련 정책을 펼친다고 하면 아직도 ‘약자’ 운운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의에서 출발한다 해도 장애인을 약자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에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는 무의식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장애인권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미(未)장애인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는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도 예기치 않은 사고나 질병, 노화 등으로 장애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누기보다는 장애인과 미장애인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주장에서 나온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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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그 말을 절반은 믿었습니다. 죽을 수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겠지만, 어쩌면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뿐 아니라 조원들 대부분이, 특히 어린 친구들은 더 강한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도부를 이끌었던 대변인이 전날 외신기자들을 만나 했다는 말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패배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지요. 반드시 죽을 것이며,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지요. 고백하건대 나에게 그런 초연한 확신은 없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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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18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애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해서 저도 이 책을 모셔 놓고 있는데 아직 펼쳐보지 못했어요.
꼭 읽어야겠어요.

겨울호랑이 2023-05-18 17:35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죽음에 대한 담담한 독백같은 서술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페크님, 좋은 독서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