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고명섭은 ‘극장’을 철학자의 삶과 사유의 세계로 이해하며, 하이데거의 세계라는 극장에서는 존재의 드라마가 공연되었다고 본다. 또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존재와 진리의 드라마를 쉼 없이 써내 무대에 올리는 드라마투르기의 역사였다."(1권 73면) 따라서 하이데거는 평생 존재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존재론은 그의 인생과 분리되지 않는다

고명섭의 이 책은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국내에서 수행된 연구성과를 거의 모두 망라하였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향후 하이데거 철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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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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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과 해변 사이 중산간지대의 백삼십여개의 마을들이 불에 타 사라졌다. 불바다와 함께 대살육극이 시작되었으니, 주민들 절반은 산으로 달아나 폭도라는 누명 아래 사살의 대상이 되고 절반은 명령에 따라 해변으로 소개했으나, 그중의 많은 부로(父老), 아녀자들이 폭도 가족이라고 처형당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마소도 닥치는 대로 학살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물정을 잘 모르는 읍내 아이였다(p31)... (어른들은) 한라산을 적대시하도록 강요받고 있었다. 죽창을 들고 토벌대 뒤를 따라다녀야 했던 그들은 동족을 적으로 삼아야 하는 자신의 기막힌 운명에 치를 떨었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37/229

일부 해안가를 제외한 섬 내륙 전체를 적성지역으로 규정하고 초토화작전을 전개한 이승만 정부. 1948년부터 1954년까지 고립된 섬 제주는 지옥도가 되었고, 지옥을 만든 것은 외세가 아닌 자국정부에 의해서였다. 앞선 시기 1909년 남한대토벌작전과 1920년대 간도참변, 같은 시기 여순사건과 이후 5.18민주화항쟁에 이르는 국가에 의한 민간의 비극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우리의 의무라 생각한다.

이름난 명승지 모두가 과거에 학살터였던 아픔의 섬 제주. 제주4.3평화공원의 리플렛을 꺼내어 평화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그러한 아침에 의해 격려받고, 그러한 아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아침 빛으로부터 병든 자는 삶의 의욕을 얻고, 절망한 자는 용기를 얻고, 그리고 용기있는 자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더 밝고 더 아름다운 아침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결심을 하는 순간도 그러한 아침의 햇빛 속에서일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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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4-06 07:4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년전 4.3평화공원 다녀왔었습니다. 평화가 너무나 요원하다는것을 더욱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리플렛 잘 보관하고 계셨군요^^ 저도 갖고 오기는 잘하는데 관리는 잘 못하네요^^

겨울호랑이 2023-04-06 07:57   좋아요 5 | URL
네.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주로 해안 관광지를 방문하지만, 제주의 아픔이 묻어있는 내륙지역에는 잘 가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서, 4.3평화공원도, 아픈 역사도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합니다. 그나마 4.3사건에 대한 추모행사마저도 폄훼하는 이들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나와같다면 2023-04-06 14: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4월1일 프로야구 개막 시구하고 서문시장 갈 시간은 있어도
4.3 희생자 추념식에 불참할 수 있는가!

이제는 화도 안나고 슬프고 자괴감이 느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3-04-06 17:33   좋아요 2 | URL
열을 내서 화를 내는 것도 그 사람이 알아듣고 나아질 희망이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알아들을 능력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금치산자(지금은 폐지되었지만)에게 휘둘리는 것릉 여러모로 손해인 듯합니다. 차가운 분노로 작태를 하나하나 눈을 떼지않고 지켜본 후 끌어내려야겠다는 생각만 해봅니다...
 

울프가 보기에 소설은 여성들의 장르였다. 소설은 희곡이나 시에 비해 전문교육이 필요하지 않으며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기 수월했다. 다른 전통적인 장르들이 이미 굳어지고 결정된 형태였던 데 비해 소설은 유연하고 새로운 장르였기 때문에 여성은 소설을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여성 예술가들을 옹호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울프는 예술에서 남성도 여성적인 것을, 여성도 남성적인 것을 다루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의 광대함과 다양함을 고려하면 두개의 성(性)도 부족한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해나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이해가 편을 가르거나 제한되는 것은 그다지 유익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들 사이의 돌봄은 이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고 있다. 돌봄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요청된 중요한 과제다. 김유담의 『돌보는 마음』(민음사 2022)은 가족 안에서 여성과 돌봄노동의 조건들을 첨예하게 다룬다.

「돌보는 마음」은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페미니즘의 ‘돌봄의 윤리’가 처한 곤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돌봄은 인간이 서로를 의존하는 토대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었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데 매진하느라 돌봄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주장하지 못했으며 돌봄은 일 주위에 알아서 욱여넣어야 하는 것이 되는 한편 돌봄을 분담하려는 남성도 늘어나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자기만의 방』 이후 약 십년의 시간이 지나 울프는 『3기니』(Three Guineas, 1938)에서도 기득권을 쥔 남성들이 보지 못한 세계와 전쟁의 참상들을 말한다. 울프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매우 중요한 연결이 존재함을 알리며 무너진 집과 부서진 담장에서 처참하게 깨진 연결의 파편들을 응시한다. 그는 분노의 정념을 넘어, 다른 성에 대한 적대감을 넘어 공동의 삶을 위한 협력을 먼저 제안한다. 지금 가족 이야기를 다시 쓰는 여성서사는 공동의 삶을 위한 돌봄을 모색하고 소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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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이름과 사연을 전하려는 시도는 모두 ‘2차가해’로 몰아붙여졌고, 상주도 영정도 위패도 없이 애먼 국화꽃만 잔뜩 놓인 국가 공식 조문소를 혼자 반복해서 방문하는 대통령의 기이한 모습만 계속 보도되었다. 그렇게 죽음과 고통은 비가시화되었고, 피해자와 우리의 공통됨은 희석되었으며, 그런 만큼 그들의 아픔과 죽음에 정서적으로 다가가기는 어려웠다. 이런 과정은 보수정부 그리고 보수언론이 세월호참사로부터 ‘배운’ 것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태원참사는 국가능력의 퇴화를 세월호참사 때보다 더 순수하게 드러낸다. 세월호참사나 그 이전 용산참사가 보여주듯이, 커다란 참사는 항용 국가와 자본의 잘못이 겹쳐서 일어난다. 그러나 이태원참사는 자본의 탐욕과 무관하고, 오롯이 국가가 마땅히 기울여야 했던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일어난 사건이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평가는 여러 국정 지지율 조사가 보여주듯이 싸늘하다. 그런 윤석열정부를 현재 지탱하는 것은 아직 그에게 임기가 많이 남았다는 사실, 검찰의 선별적인 고강도 수사와 기소가 그 대상자는 물론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모두에게 불러일으키는 두려움, 그리고 여느 정부 시기보다 더 대자적(對自的) 의식을 획득한 엘리트 카르텔(이 카르텔을 구성하는 주축은 두말할 나위 없이 집권세력, 재벌, 보수언론이다)과 무모한 일부 극우단체의 연합 정도이다.

좀더 넓게 조망해보면, 윤석열정부의 등장과 그것에 이어지는 혼란은 촛불혁명이 담고 있는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비전을 구현할 ‘대전환’을 감행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현 상황은 더 높은 봉우리로 나아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단기적으로는 어려움과 고통을 불러올 수도 있는) 계곡 앞에서 더듬거리며 소극적이었던 문재인정부와 그들을 제대로 견인하지 못한 민주진보진영이 초래한 정치적 퇴행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3) 그러므로 윤석열정부의 수립에 반대해온 이들 또한 반대했다는 사실만으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는 없다.

타인의 품성에 대한 분노 같은 감정이나 판단은 일단 형성되면 반박하는 사실이 제시되어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 최초 형성은 사회적 교류 속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이뤄지고 확산도 쉽게 된다. 정직하게 돌이켜보면 비난에 동참한 이들 대부분이 품행을 의심받은 이들에 대해 직접 확실하게 아는 정보가 없었다는 것,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점검할 만큼 사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의견과 주장이 실은 부정적 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 자신보다 확신에 차서 언성을 높이던 주변 사람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이따금 말을 거들어주기도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과정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며 그러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잘못 판단하지 않았다는 나르시시즘의 회로를 따라 발언을 주장으로 그리고 신념으로 굳혀가곤 한다.

그러나 현 대통령의 품행에 문제가 많다고 해도 품행 비판의 화살이 지금처럼 대통령만을 향하리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품행 논란은 지난 정치 과정이 입증하듯이 언제든 윤대통령의 반대파를 향해서 더 날카로운 형태로 되돌아올 수 있다. 더구나 품행을 공격함으로써 정적을 무너뜨리는 데 있어서 더 큰 자원을 보유한 쪽은 집권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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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과정에서 드러난 최초의, 그리고 막중한 오류 발견의 사건은 간행된 『동경대전』의 모든 판본이 ‘목판본’이 아니라 ‘목활자본’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며, 여태까지 전제해왔던 많은 상념(常念)이나 논리적 전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서지학 전문가들의 눈에는 인쇄과정을 캐 들어가지 않아도, 인쇄된 책만 가지고도 그것이 목판본인지 목활자본인지를 쉽고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 이것은 ‘주장’의 테마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scientific fact)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동학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학식이나 정보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인간 수준’의 문제이다. 수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수운과 해월의 소박한 진실을 몸으로 느껴볼 수 없는 자들이, 학설이라는 것을 만들어 우겨대는 조잡하고 초라한 현실로부터 우리는 하루속히 탈피하여 동학의 본래정신을 웅혼하게 재건해야 한다.

서양의 종교는 대체로 ‘초월적 절대자의 존재성’을 전제하고 그 존재에게 나의 운명을 맡기는 절대적 복속을 ‘신앙’(belief)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동학은 ‘무위이화(無爲而化)’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하느님 자체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조작적인 개입〔爲〕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은 세계생성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인격적인 존재(Being)인 동시에 철저히 비인격적인 생성(Becoming)이다.

수운에게 있어서 ‘도통의 전수’라는 것은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추상적이고도 상징적인 의발의 전수가 아니고, 매우 구체적인 물리적 사명이다: "내 원고를 한 글자 오석(誤釋)이나 변형이 없이, 있는 그대로 인쇄하여 세상에 유통시켜라." 이 사명을 받은 자가 경주 동촌 황오리(皇吾里)에서 태어난 해월(海月) 최경상(崔慶翔, 1827~98.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을 당해 72세의 나이로 사망함. 최시형時亨은 1875년부터 쓴 이름)이다

그런데 동학 경전은 타 종교 경전과 견주어 말할 수 없는 유니크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케리그마’(Kerygma)의 필터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운과 해월의 만남은 무극대도의 필연이었고, 조선민족의 행운이었고, 전인류의 서광이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 언약은, 순결한 동학의 언어와 정신을 어떠한 케리그마의 왜곡도 침투할 수 없도록 그 원모습을 후세에 전하는 사업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수운은 죽으면서도 해월에게 ‘고비원주(高飛遠走)’를 명했다. 그의 저작원고를 등보따리에 지고 빨리 멀리멀리 도망가라는 훈시였다. 추상적인 메시지가 아니었다. 해월은 수운의 수형(受刑)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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