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단순히 물질이라고 보는 관점을 넘어, 그 너머에 내재한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그런 마음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생태적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미학적 감수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땅이 밟히는 것을 자신의 신체적 아픔으로 느끼는 이 감각, ‘네가 곧 나’이며,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라는 감각의 회복이야말로 우리가 이 천박한 시대를 건널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닌가 한다.
각자의 좋음과 각자의 아름다움이 교향악처럼 어우러지는 세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세상이며, 수운이 말한 동귀일체가 아닐까 한다. 수운의 무극대도(無極大道)는 상대주의와 허무주의를 넘어 ‘영원한 진리’를 말했다.
이제 우주의식이 이성의 단계를 넘어 본래적 신성을 온전히 드러낼 때가 되었다. 우주의식을 하느님이라고 한다면 하느님은 우주 위에서 인간을 심판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이 우주에 가득 찬 신성한 에너지이며, 그 자체로 무한한 사랑이자 평화이며, 모든 어둠과 무지를 깨뜨리는 광명이며 영원한 지혜인 것이다.
항몽전쟁 이후를 오직 굴종으로만 파악하는 것 또한 편향이다. 임형택은 고려 지식인들이 굴욕 속에 열린 한줄기 통로를 통해 세계와 호흡하며 고려를 개혁하는 일방, 조선을 개국하는 혁명으로 역동했다고 파악함으로써 침략과 저항의 이분법을 침통히 넘어서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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