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연방은 "자기 본래의 목적이나 정치적 본질로 볼 때에 실질적인 국가연합이다.... 하지만 자신의 내적, 외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특정한.... 관계 속에서 전체와 상황 속에 개입되었고, 이 상황 속에서 하나의 연방국가가 되었다." 즉 연방국가와 국가연합은 서로에게 수단과 목적의 관계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36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8번째 주제는 동맹(Bund)다. 본문에서는 '동맹'이 역사 안에서 '연맹(Bundnis)', '연방주의(Foderalismus)', '연방국가(Bundesstaat)'라는 변주로 나타났는가를 다룬다.  


 이 시기의 역사를 거칠게나마 '동맹'을 중심으로 요약해 보자.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800~1806)이라는 이름뿐인 제국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 크고 작은 영주들의 '동맹'이었다는 사실과 30년 전쟁을 마무리하는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 1648)의 결과 독일 영주들의 자치권이 강화되었고, 프로이센이 등장하였으며, '라인 동맹'을 통해서 독일 서부가 프랑스의 위성국으로 전락했고, 이후 '관세 동맹'으로 독일 제2제국으로 나아가는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것이 큰 흐름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서 '동맹'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변화되었다.


 같은 신분 계급 내에서 형성된 동맹 관계가 점차적으로 계급 간 동맹으로 확대되는 시기가 중세 이전의 '동맹'의 의미였다면, 종교 개혁과 30년 전쟁은 '종교'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이 보다 강화되었다. 이후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에 의한 라인동맹의 결성(1806), 프로이센 중심의 관세동맹(1834) 체결, 소(小)독일주의를 기초로 한 독일제국의 성립의 긴박한 역사 흐름 속에서 '동맹'이라는 의미는 다르게 받아들여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바라봤을 때, 우리는 다른 개념어들과는 달리 '동맹 bund'이라는 단어는 독일의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가 독일어 'bund'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과 연계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계획했던 동맹 제도들이 마련되지 않았고, 따라서 조약에서 약속한 것보다 라인동맹국들의 통치권이 더 강력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나폴레옹이 라인동맹을 이용해서 제멋대로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체제의 법과 현실 사이에는 구舊 제국에서 관습법을 통해 통제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모순이 발생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28


 결정적인 사실은 이제(라인동맹 성립 이후)부터는 공동의 상위 권력이 소멸되고(강대국의 보호를 받는 동맹 foedus clientelare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독일은 더 이상 국가들의 국가 Staatenstaat가 아니라 국가들의 동맹(국가연합) Staatenbund라는 사실이었다... "라인동맹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영토를 갖고 있지 않고, 동맹 제후들만 통치 지역을 보유하고 있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29


  강한 이웃을 두고 싶어하지 않았던 재상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duc de Richelieu et de Fronsac, 1585~1642) 이래의 프랑스 외교정책에 좌우되며 끝없이 분열을 거듭하던 독일 제후국들. 나폴레옹에 의해 '라인연방' 강제 가입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지 불과 30년 뒤에 관세동맹으로부터 시작되어 성취한 독일 통일은 분단 체제에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독일 통일이 프로이센의 군사력에 의존한 바가 컸다는 사실은 우리가 걸러서 받아들여야겠지만, 관세동맹이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평화 통일 이전에 자유로운 경제 교류가 선행되어야한다는 좋은 교훈을 안겨준다. 이에 대해서는 독일 역사와 관련된 <30년 전쟁> <강철왕국 프로이센> <몽유병자들>의 리뷰로 넘기기로 하고, '동맹'의 개념어에 대한 페이퍼는 이만 줄이자...


 프로이센의 주도권에 거는 희망(그리고 우려)은 더 큰 경제 단위가 형성되고서야 비로소 실용적인 기반을 획득했다. 1833년에 북독일과 남독일이 관세동맹 Zollverein을 통합하면서 스스로를 "총연맹 Gesamtverein"이라고 칭했다... 새로운 관세동맹은 구성 국가들의 연방제적 평등을 엄격하게 지켰는데 - 결정은 만장일치로만 내려졌고, 그 기간은 8년으로 연장 기간이 12년으로만 제한되었다 - 그 뒤에는 프로이센의 사실상 패권이 독일연방에서 메테르니히 Metternich의 패권보다 더 효율적으로 숨겨져 있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40


 관세동맹은 이제 그야말로 실제로 통일 사상의 고향이 되었고, 그 가운데에서 이 사상은 점점 큰 힘으로 발전할 것이다. 정치 산업 국가로서 최적의 통일을 이루라는 경제적 요청이 프로이센의 지휘 아래에서 충족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만한 일이었다... 언제부터 독일에서 통일에 대한 요구와 인식이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는가? 공동체적 국가 이익이 독일의 상당 부분을 하나로 묶고 이렇게 결합된 국가에서 개별 정치를 행하는 가능성을 배제시켰을 때부터, 관세동맹이 시작되고 발전할 때부터였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41


새로운 정당성으로서 국가적이고 민주주의적인 토대가 1815년에 형성된 독일연방에 침투해 1848년에는 국가연합을 잠정적으로 폭파시켰고, 1867/71년에는 최종적으로 (협의의) 연방국가로 전환시켰다. 모든 기준에 공통된 사항은 연방이 점점 더 국가화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연방국가 Bundes-Staat라는 개념으로 표현되었다. 프로이센이 패권을 잡는 "군주제 연방국가 monarchischer Bundesstaat"가 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이원주의가 해체되는 방법을 통해서만 이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단 한번뿐이었던(그래서 독일어로도 한 가지 용어로만 불리는) 국가회 Nationalisierung와 산업화 Industrialisierung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준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동맹>,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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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5-11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분트, 분데스리가...

겨울호랑이 2021-05-11 16:12   좋아요 3 | URL
^^:) 그레이스님께서 말씀하신 단어의 어원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