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전쟁 개념의 이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사실은, 라틴어에서 기존에 사용되던 'bellum'이라는 단어가 게르만어에서 차용된 'guerra'라는 단어에게 자리를 비켜 줘야 했다는 것이다. 'guerra'의 원래 의미는 "침해된 (권리)질서"로 가정할 수 있다... 결국 'kriec'는 이런 식의 해석 보조수단에 이끌려 최정적인 의미가 '전쟁'="무력에 의한 권리중재"로 축소되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 p16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4번째 주제는 전쟁(krieg)이다. 개념사 사전은 원래 '분쟁'을 뜻하던 독일어 '전쟁 krieg'이 '무력으로 인한 권리 중재'로 의미가 축소되었고, 전쟁의 목적이 '평화'에서 '무조건적인 자기 주장'으로 바뀌었으며, 군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추상적인 전쟁'에서 국민 단위의 '총력전'으로 변화된 역사를 보여준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전쟁>에서는 전쟁의 의미가 무력에 의한 권리 중재로 축소되는 것은 중세(中世)의 봉건 질서 내에서 무력에 의한 내적 투쟁의 결과였음이 서술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전쟁의 목적은 이성과 신앙이 합일된 '신의 질서로의 회귀'였다면, 이에 대한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는 인간의 발명을 통해 피할 수 있는 모든 단점들과 온갖 불행의 뿌리는 말하자면 전쟁이라는, 무엇보다도 내전이라는 동일한 확신에서 출발하면서 그리고 보장된 절대적인 평화를 위한 조건들을 이론적으로 제시하겠다는 일념으로 가장 날카롭게 전통적인 독트린과 단절했다... 홉스의 경우에는 인간의 본능적인 사회성 socialitas을 거부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적 상태 status naturalis"와 관련하여 평화와 전쟁의 관계를 뒤집었다. 그에게는 평화 pax가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bellum omnium in omnes이 자연 상태를 특징짓는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 p36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리바이어던에게로 권력 이양. 그 결과 이전에는 전쟁의 성격이 '대내 對內'와 '대외 對外'로 나뉘어지게 되면서, 전쟁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사회의 안정을 지키는 합법적 행위. 이로부터 무력(武力)은 개인으로부터 국가로 넘어가고, 전쟁은 정치행위가 된다. 내부의 불안을 외부로 돌리려는 일련의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웰즈(Herbert George Wells, 1866~1946)의 <우주전쟁 War of the Words>에는 이러한 전쟁의 성격이 잘 표현된다.


 오로지 이런 외적인 전쟁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것은 어떤 혐의를 불러일으킨다. 즉 국가 간 전쟁을 찬양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발설되지는 않은 어떤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내전에 대한 공포, 즉 혁명에 대한 고백되지 않은 공포였다는 혐의 말이다. 이미 헤겔은 "행복한 전쟁은 내적인 불안을 막아주고 국가의 내적 힘을 확고하게 했다"고 확증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 p74




19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 국민 국가의 형성은 상비군의 조직과 함께 모든 국가 구성원을 공동 운명체로 묶었고, 그 결과 근대 국가에서의 전쟁은 총력전(總力戰)의 양상을 보인다. 그 결과 19세기 남북전쟁까지만 해도 전장(戰場) 옆에서 전쟁을 구경하던 이들의 모습도, 전투 후 패잔병을 약탈하던 농부들의 모습도 이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애국(愛國)'이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욕망이 강제로 통합된 하나의 예가 아닐까 생각된다...


 추상적인 전쟁은  단지 그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진 군사적인 영역 내에서만 절대적이었다... 총력전의 특징은 경계를 해체하고 전 국민을 직접 - 군대라는 수단으로뿐만 아니라 - 전쟁에 관여하도록 한다는 데 있다. 이 개념의 근본에는 현재의 전쟁에서는 "작은 정치적 목적이나 커다란 국민적 이해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 자체의 생존과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는 견해가 놓여 있다. 여기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은 국가 속에 근거하는 국민이 자신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거나 또는 확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총력전'은 단지 이데올로기적으로 합법화된 전쟁으로서 일종의 "이념 전쟁(이념의 유혈적 교체)"으로 생각할 수 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 p90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에서 우리는 '전쟁'이 '평화'로 가는 '과정'에서, '자기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바뀌어 온 것을 확인하게 된다. 전쟁이 수단으로 가장 극적으로 활용된 예가 '제국주의'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다음으로 읽어야 할 주제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다음 주제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3 : 제국주의>,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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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14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기 내부의 불안을 외부로 돌리려는 행위로서의 전쟁이라는 말이 콕 와닿네요.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전 우리 사회 내부에서 타자에 대한 증오나 혐오가 늘어나는 것을 볼때마다 좀 섬뜩해져요.

겨울호랑이 2021-04-15 07:1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전쟁을 원하는 이들의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기에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는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주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