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Homo Deus>는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전망한 미래 전망서다. 전작인 <사피엔스 Sapiens>에서 종교, 제국주의, 자본주의가 과학과 결합하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역사의 중심에 섰다는 과거 분석을 했다면, <호모 데우스>에서는 이러한 과거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를 과감하게 예언 豫言한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그의 논리적인 예언을 살펴보자.


 1. 一神之下 萬物之上


 호모 사피엔스는 '총, 균, 쇠'로 대표되는 기아, 역병,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연약한 포유류에서  '일신지하 만물지상 一神之下 萬物之上' 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던 배경에는  바로 '인본주의 人本主義'와 '과학혁명 科學革命'이 있었다.


 '기아, 역병, 전쟁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낼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이제 무력한 인류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불가피한 비극이 아니다. 이 문제들은 관리할 수 있는 난제가 되었다.'(p37)


 '농업혁명이 유신론적 종교를 탄생시킨 반면, 과학혁명은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 유신론자들이 '테오스 Theos'를 경배하는 반면,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을 경배한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같은 인본주의 종교들의 창립이념은 호모 사피엔스는 특별하고 신성한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우주의 모든 의미와 권위가 거기서 나온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선 善 또는 악 惡이 된다.'(p142)


 가. 과학혁명


  과학혁명에 관해서는 전작인 <사피엔스>에서 많은 내용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사피엔스>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과학혁명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종교와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과학과 결탁한 사피엔스 최후, 최대 혁명이다. <호모 데우스>에서도 과학혁명은 강조된다. 


 '실제로는 과학도 종교도 진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둘은 쉽게 타협하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협력도 할 수 있다.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이 있다. 종교의 목표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있다. 과학의 목표는 연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을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과학자와 성직자 개인이 다른 무엇보다 진리를 우선시할 수는 있겠지만, 집단적인 제도로서 과학과 종교는 진리보다 질서와 힘을 우선시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의외로 잘 어울리는 짝이다.'(p275)


 '근대에 이르러 이 악순환이 마침내 깨졌다. 미래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그에 따라 신용거래라는 기적이 일어난 덕분이었다. 신용이란 신뢰를 경제적 수단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새로운 벤처기업들이 여기저기서 성공을 거두면,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증가하고 신용거래도 확대된다. 그러면 이자율이 떨어져 사업가들이 더 쉽게 돈을 조달할 수 있고 경제가 성장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미래에 더 큰 신뢰를 가지고,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그와 함께 과학도 발전한다.'(p283)


 나. 인본주의 


 과학혁명의 마지막 단계에서 종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기성 종교를 대신한 새로운 종교의 이름은 '인본주의'다. 인본주의는 기성 종교와는 달리 지식의 원천을 주관으로부터 찾았고, 인본주의 사상의 결과 우리는 '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듯 근대 계약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힘을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졌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뭘까? 근대 계약은 우리가 힘을 얻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기를 기대한다. 인간이 이 서늘한 욕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 요구를 따랐다면 아마 우리는 윤리, 미학, 동정이 없는 암흑세계에 살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근대사회를 붕괴에서 구했을까? 인류를 구원한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혁명적 종교인 인본주의였다.'(p305)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의 공식은 "지식 = 성경 * 논리"였다. 어떤 중요한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자신의 논리로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p326)... 과학혁명은 지식에 대한 사뭇 다른 공식을 제안했다. 그것은 "지식 = 경험적 데이터 * 수학"이다. 어떤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그 질문과 관련한 경험적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 그 데이터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p327)... 인본주의는 여기에 대안을 제시했다. 바로 "지식 = 경험 * 감수성"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윤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한다면, 내면의 경험을 꺼내 예리한 감수성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경험은 세 가지 주요 성분인 감각, 감정, 생각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현상이다.(p329)'


 '자유주의의 물결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진정한 쓰나미로 변해 막강한 소련제국을 쓸어내고, "역사의 종언"이 도래할 거라는 기대를 높혔다. 패배와 좌절의 몇십 년을 겪은 뒤 자유주의는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상처를 입긴 했어도 인본주의 종교전쟁에서 당당히 살아 돌아왔다.'(p368)


 다. 자유주의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의 등장


 인본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자유주의는 과학의 반격을 받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 <빈 서판>등에서 언급된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위치를 '선택된 피조물'에서 그냥 '개체 個體'로 전락시켰다. 자유의지를 잃게 된 사피엔스는 새로운 질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자유의지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단순한 철학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실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유기체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약물, 유전공학, 직접적인 뇌 자극을 통해 그 유기체의 욕망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통제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p393)


2. Homo Deus의 등장

 

'인간과 동물의 노동력을 기계 에너지가, 나중에는 핵 에너지가 대신하고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가 대신하기까지 산업의 발달은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무한한 생산과 아울러 소비의 도상에 있으며, 과학과 기술에 힘입어서 우리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리라는 확신 말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제2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막강한 존재, 즉 신(神)들이 되어가고 있었고, 자연이란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물을 지을 벽돌이나 공급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 에리히 프롬 Erich Seligmann Fromm (1900 ~ 1980)


 가. 한 손에는 '생명공학', 다른 손에는 '컴퓨터 알고리즘'


 자유의지를 잃은 사피엔스는 이제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새로운 종교를 창조하고, 스스로 신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신이 된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로, 새로운 종교는 '데이터교'가 된다.


 '21세기 초, 진보의 열차가 다시 정거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열차는 아마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정거장을 떠나는 막차가 될 것이다. 이 기차를 놓친 사람드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다. 좌석을 얻기 위해 당신은 21세기의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의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p378)


나. 컴퓨터 알고리즘


  개인 차원에서는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의사 결정을 해나가듯, 사회 차원에서는 '전자 알고리즘'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발전해 간다. 컴퓨터 알고리즘은 AI (artificial intelligence)를 통해 스스로 학습해가면서 진화하기 때문에, 잉여 인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경험하는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참조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야기를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매우 다른 실체인 "이야기하는 자아"의 독단이다.(p405)... 사실을 말하면, 경헌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경험을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재료로 이용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다시 경험하는 자아가 실제로 느끼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p410)


 '21세기 기술로는 "인류를 해킹해" 나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아는 외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은 붕괴할 것이고, 권한은 개인들에서 그물망처럼 얽힌 알고리즘들로 옮겨갈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소망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네트워크로 얽힌 전자 알고리즘들의 관리와 인도를 받는 생화학적 기제들의 집합으로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p451)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그 모든 잉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을 더 잘할 수 있는 높은 지능의 비의식적 알고리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가진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p435)


 다. 생명공학


  그 중에서도 소수의 선택된 인간들은 발달된 과학의 힘을 활용하여 스스로 신 神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스스로 신이 된 이들과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세상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의 종교는 '데이터 교 Data 敎'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직면한 세 가지 실질적 위협을 살펴보았다. 첫째는 인간이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이 집단으로서의 가치는 유지하더라도 개인은 권위를 잃고 외부 알고리즘의 관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위협은, 일부 사람들은 업그레이드되어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존재로 남아 소규모 특권집단을 이룰 거라는 점이다. 이런 초인간들은 전대미문의 능력과 전례 없는 창의성을 지닐 것이고, 그런 힘을 이용해 세계적으로 중요한 대다수의 결정들을 계속 내일 수 있을 것이다.'(p474)


 '지금까지 우리는 점점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 고대의 신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고대의 신들을 능가하는 초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성(神性)은 사이버 공간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 되어 그 경이롭고 경이로운 발명품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p76)... 건강, 행복, 힘을 추구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때까지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에 하나씩 점진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p77)


3. 데이터교의 탄생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p503)... 데이터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종은 단일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고, 개인은 시스템을 이루는 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 전체를 이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p517)


 <호모 데우스>에서 저자가 그린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인류의 멸망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언한 그의 책 결론 부분을 읽으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유명한  맬서스 (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의 <인구론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의 글도 우리에겐 오히려 희망적으로 비춰진다.


 '비록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은 자연과학의 발전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것이며, 또한 역으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과학의 성공에 일익을 담당하리라는 확신에 찬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p550)


  앞 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의 모습을 비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비관적인 관점이 파격적으로 비춰지지 않은 것은 어린 시절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은하철도 999>에서 과학과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지금보다 이른 1970년대에 이미 접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 은하철도 999


[그림2] 은하철도 999 : 메텔.


 <인구론>과 마찬가지로 <호모 데우스>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은 밝지 않기 때문에 여러 논란이 있다. 모든 이들의 생각이 같을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너무 어둡게 볼 문제는 아니라 생각된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의견이 나와 같다면, 생각을 함께 하는 이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의 비관적인 미래를 스스로 바꾸어 가면 조금은 나은 미래가 되지 않을까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큰 관계는 없지만, <호모 데우스>를 읽고 난 후 떠올랐던 조주 趙州 선사 (778 ~897)의 예화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어느 날, 조주가 선원에서 신참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조주가 한 승려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에 여기 온 적이 있는가?"

 승려가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차 한 잔 들게나."


 그 다음에 조주는 다른 승려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승려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 차 한잔 들게나."


 원주 院主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전에 여기 온 적이 있는 사람에게 차 한잔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여기 온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차 한잔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조주가 큰 소리로 불렀다. "원주!" "예?"

"차 한잔 들게나."


PS. 늦었지만, <호모 데우스>를 선물해 주신 알라딘 이웃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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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7-02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라리, 그대 쓸데없는 얘기 말고 차나 들게나...ㅋ
그런 말씀이세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7-07-02 20:35   좋아요 1 | URL
뭐 그냥 이런 말도 있다는 것이지요...ㅋㅋ

북다이제스터 2017-07-02 22:33   좋아요 2 | URL
하라리 책은 미래를 묘사하지만, 현재에 촛점 맞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문제 없거나 문제 있더라도 미래는 좋아질거라 생각하면 그냥 쿨하게 오케이 하면 그만이지만, 아니라면 진정 미래를 고민할 필요 있는 거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2 22:42   좋아요 2 | URL
^^: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대로 하나의 가능성 측면에서 바라보면 될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02 22:45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가능성을 어찌 보는지 다들 나름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거 같습니다. ^^

oren 2017-07-02 21: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하라리가 너무 혹세무민하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인용문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아무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 지나친 과장과 비약이 난무하는 말들을 너무 쏟아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마치 지지난 세기말의 <서구의 몰락> 같은 분위기도 좀 느껴지고요..맬서스의 인구론도 ‘과학기술의 발전과 농업기술 혁명‘을 간과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뻥‘을 친 책으로 조롱받은 바가 있었고요.. ‘인간이 알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는 모든 이론들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니체가 ‘새로운 신이 다시 나타난다‘고 외치는 하라리를 보면 과연 뭐라고 말할런지, 그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2 21:31   좋아요 2 | URL
네... 저 역시 한편으로 점술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예언이 맞는다면 자신의 점괘가 심통해서이고, 안 맞는다면 자신의 말을 들어 조심했기 때문이라는... 그저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하라리가 강조하는 분야가 이스라엘 자본이 장악하는 분야(생명공학, IT부문)라 다소 약장수(?)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일관된 논리가 있어 생각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02 22:42   좋아요 3 | URL
니체 생각이 옳지 않거나 생각이 짧았다면, 하라리 생각이 옳은 건가요? 넘 위험한 표현 아니신가 궁금합니다. 어차피 누구의 주장도 단지 이론 아닌가 생각되어서요. 잘 몰라 여쭙니다.

oren 2017-07-03 00:26   좋아요 5 | URL
니체의 생각에 대해서도 여러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니체의 생각이 짧았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그 철학자만큼 ‘신‘에 대해 ‘길게‘ 생각한 사람도 드물 테니까요. 단지 생각을 길게만 한 게 아니라 철저하고도 깊게, ‘신의 뿌리 그 자체‘를 강타한 사람이라고 봐야 맞겠지요. 그가 쓴 대부분의 저작들이 ‘신‘이라는 ‘우상‘에 대한 ‘파괴‘와 ‘전복‘에 촛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유발 하라리가 워낙 도발적으로 ‘신의 등장‘을 주창하니, 2,0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신의 지배‘를 마침내 자신이 무너뜨렸다고 생각한 니체가 느닷없이 생각나서 ‘제 짧은 생각으로‘ 그런 댓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마침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었는데, ‘니체‘나 ‘신‘이나 하리리로부터 ‘아주 별 소리를 다 듣는구나‘ 싶었겠다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말이지요...

개인기록용 2017-07-02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타 있어요. 한자는 만물지상인데 만인지상으로 적혀있네요

겨울호랑이 2017-07-03 08:16   좋아요 0 | URL
^^: 개인기록용님 감사합니다. 개인기록용님 덕분에 오타를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2017-07-02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3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7-02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가 어흥할 정도의 페이퍼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3 00: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이지요? ㅋ

cyrus 2017-07-03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중앙일보에 제4차 산업혁명 관련 기사를 봤어요. 글쓴이가 로봇을 만드는 공장에 직접 방문한 것을 보고 기록한 글이었습니다. 글쓴이는 사람의 움직임이 연상되는 로봇 기술을 소개하면서도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사람 뇌와 흡사한 인공지능 기술이 당장 나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3 16:59   좋아요 1 | URL
^^: cyrus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러한 현실에 추가적인 요인으로 AI혁명이 가시화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경기 침체, 중산층 몰락 등의 이유로도 자본의 집중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기술 혁신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AgalmA 2017-07-03 19:34   좋아요 1 | URL
<지능의 탄생> 이대열 저자도 그렇게 말했죠. 가능하려면 멀어도 넘 멀었다면서ㅎ
그러니 더 차나 한 잔 마시게나^^? ㅎㅎ

겨울호랑이 2017-07-03 18:04   좋아요 1 | URL
^^: 날도 습한데 우리 다같이 커피 한 잔 할까요?

cyrus 2017-07-04 11:58   좋아요 1 | URL
아아가 최고죠. ‘아아‘ 모르면 아재 인증입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7-04 12:01   좋아요 1 | URL
아이스 아메리카노? ㅋㅋ 맛있는 점심 드시고 한 잔들 하시지요. ^^:

나와같다면 2017-07-03 21: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즈음 ‘감수성‘과 ‘예민함‘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서 그런지,
제2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중에서 ‘감수성‘ 부분은 좀더 깊게 읽게 되더라구요..

경험과 감수성은 끝없는 고리로 이어져 서로를 강화한다. 감수성 없이는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다.

우리는 양심을 완비하고 태어나지 않는다. 인생을 살면서 상처를 주고받고, 동정을 베풀고 받는다. 주의를 기울이면 도덕적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축적된 경험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옳고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가치 있는 윤리적 지식의 원천이 된다.
p329~330

겨울호랑이 2017-07-03 21:41   좋아요 3 | URL
하라리는 경험과 감수성은 사피엔스 개인 차원에서는 자유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호모 데우스 세계에서는 인공지능 학습 프로그램의 근간을 이루는 것 으로 파악한 듯 하네요..마치 DNA의 이중나선 구조처럼 얽힌 이들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무엇인가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AgalmA 2017-07-04 14:21   좋아요 4 | URL
저는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둘다 인간의 윤리, 도덕적 수양이 더 중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라리가 많은 외연을 가지고 와서 말했지만 핵심은 그거 였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거죠. 기술, 권력, 이념의 추동으로는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4 14:20   좋아요 2 | URL
하라리의 핵심이 인간 윤리와 도덕적 수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결론에는 동의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06 20:40   좋아요 3 | URL
저도 AgalmA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ㅎ
그래서 하라리의 다음 책은 인간 윤리 혹은 도덕적 수양인 책을 낼 것 같습니다. 그건 우리가 행복을 어떻게 다르게 보고 느낄 것인가의 책일 것 같습니다. 500원 걸고 장담합니다. ㅋ
믿는 구석은 하라리 전공이 ‘행복‘이더라구요. ㅎ

겨울호랑이 2017-07-06 21:04   좋아요 3 | URL
^^: 호모 데우스가 인류 역사의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기에 독자에 따라 다르게 비춰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라리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나와같다면님, AgalmA님, 북다이제스터님과 같이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되네요...^^:.이젠 하라리의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바꾸기위한 노력을 각자의 자리에서 기울일 때라 생각합니다 ㅋ 날도 더우니 수박 한 조각하실까요?ㅋㅋ 편한 밤 보내세요.

북다이제스터 2017-07-06 21:23   좋아요 2 | URL
그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생각처럼 실천하는 삶이요. 역사와 구조의 무게가 너무 커 개인이 할게 없다는 잘못된 생각이 짓누릅니다. ㅠ

겨울호랑이 2017-07-06 21:30   좋아요 2 | URL
^^: 왜 그러세요.. 박덕여왕을 503으로 만들어 정권 교체도 하신 분들인데...^^: 힘이 들겠지만, 저는 독서의 완성은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들 할 수 있구요.
(사실, 그렇게 본다면 저는 읽은 책이 거의 없긴 합니다만...ㅋㅋ)

북다이제스터 2017-07-06 21:34   좋아요 2 | URL
매일매일 인생과 타협하며 사는 제 삶이 한스러워서요. ㅠ 오늘 댓글은 넋두리가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

겨울호랑이 2017-07-06 22:24   좋아요 1 | URL
^^: 우리 모두는 the negotiator of my life 잖아요.ㅋㅋ 문대통령만 그런 것이 아니라. ㅋㅋ 기운내세요. 북다이제스터님 아무래도비가 많이 온다니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화이링 입니다!

AgalmA 2017-07-06 2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왜 그러세요. 님이 읽은 책이 거의 없다 하심 전 뭐라고 해야 하나요ㅋㅎ;;
독서는 아무리 해도 완성되지 않으니 그래서 우리의 행동은 늘 어느 정도는 어리석고 모자르게 보이는 걸까요ㅎ?
장 뤽 낭시는 책이 열림과 닫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행보이기에 ‘저장용기‘로도 ‘저장내용‘으로도 못 박을 수 없다고 얘기하죠. 저는 책이 지식을 쌓게 해주는 거보다 자신을 더 잘 바라보게 해주고 계속 반성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행동할 용기도 주는지 몰라요. 틀려도 사람과 달리 책은 반성할 기회도 많이 주니까^^

겨울호랑이 2017-07-06 22:23   좋아요 1 | URL
^^: 읽은 책도 사실 많지 않지만, 제 머리는 휘발성이 강해서요 ㅋ 말씀하신 장 뤽 낭시의 말이 와 닿네요... 저 역시 많은 것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콩나물을 키우는 심정으로 제 자신을 키워 갑니다. 물은 쫙쫙 빠져도 콩나물은 자란다지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