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 노자,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아카이브 3
임건순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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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해석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본인의 해석이 온전하고 유일한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순간부터 근거가 충실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죽간본 노자의 존재를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인가?

전자면 공부 부족이고, 후자면 후안무치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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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인 무시죠 2020-10-09 0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마 김홍경의 『노자』관에 의존하고 있을 겁니다. 예전에 임건순이 김홍경의 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김홍경이 바로 초간본의 존재를 알면서도 『노자』가 진(秦)대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거든요. 그에 의하면 초간본은 『도덕경』이나 『덕도경』의 체제가 아니라 형성 중의 과도기적 자료이기 때문에 아직 완정한 『노자』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홍경 책 서문을 읽어보면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치면 『덕도경』도 『도덕경』에 이르기 전의 과도기적 자료라고 할 수 있고, 완정한 『노자』의 기준을 누가 정했고 어디서 합의했느냐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는 거거든요. 이 외로도 그의 설을 살펴보면 여기저기서 문제가 많이 노출됩니다. 여러 가지로 근거가 부족한 관점이죠.

아마 임건순은 자기가 좋아하는 병법(『손자』)을 띄우고 싶은 속내가 강한 탓에 그렇게 『노자』를 뒷 시대로 빼는 학설을 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문헌학적 문제에 대해 『노자』에 제기하는 딴지를 다른 문헌에는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고 ‘슬쩍‘ 지나쳐 버린다는 겁니다. 님이 캡쳐하신 글만 봐도, 『노자』에 적용하는 텍스트비평의 잣대를 『순자』에는 적용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죠. 오늘날 우리가 보는 체제의 『순자』가 과연 전국시대 말에 이루어졌을까요? 문헌고증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글을 가만히 보면, 주장에 근거를 뒷받침하고 논리를 일관되게 잡아 가는 기본적 자세가 안 되어 있어요. 그냥 일방적인 주장이 대부분인데, 이런 건 에세이집이라 할 수는 있어도 학술적인 저서로 쳐줄 수는 없죠. 저자는 이걸 ‘통찰력‘이라는 허울로 포장하겠지만, 조금이라도 학문을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챕니다. 근거를 갖추어서 논지를 전개할 형편이 못 되기 때문에 그렇게 포장한다는 것을. 무슨 불의를 참지 못한다 어쩐다 하기 전에 자기나 정직하게 글쓰는 자세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SNS상에 휘날리는 사회비판은 대체로 훌륭하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술의 문제점이 덮이는 건 아니죠.
 
병법 노자,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아카이브 3
임건순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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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없이 지금까지의 연구를 비난하며, 근거없이 자신의 주장이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곽점초묘죽간본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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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 잠재력을 깨우는 단 하나의 열쇠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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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우리말로 고요는 어떤 아수라장에서도 내면만 어지럽지 않으면 평정을 유지하고 집중할 수 있는 경지다.

수많은 철학과 종교에서 이러한 가르침이 존재한다. 불교 - 우뻬카, 이슬람 - 아슬라마, 히브리서 - 히쉬타부트, 바가바드 기타 - 사마트밤, 그리스에서는 에우티미아, 헤시키아, 아타락시아, 아파테이아, 기독교 - 아이콰니미타스 라고 지칭된다. 도 또는 로고스를 활용하여 흥분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며 반드시 들어야 할 것만 듣고 행동하는 것이다. 저자는 위에 언급된 종교나 철학은 모두 내면의 평화가 행복한 삶의 비결로써 숭상한다고 말한다.

>>> 개인적으로 저자가 말하는 고요는 범위가 매우 넓어 보인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모든 걸 불태웠다고 느끼는 것, 현명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몇 달 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는 경험을 한 것,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느끼는 만족감 등의 예시까지 고요로 봐야하나 싶었다.

본문은 정신, 영혼, 몸 세 영역을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정신에 관한 부분은 케네디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한 행동을 보여주면서 위기를 극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케네디가 위기를 극복했을 때 정신이 혼탁해지지 않고 청정하게 가라앉힘으로써 위기를 극복한 것은 도교나 스토아의 관념과 맞닿아 있다. 삶에서 위기를 맞이할 때 머리 속에 위기만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을 편하게 두면서 침착한 정신을 유지하여야 한다. 감정적이고 경솔한 반응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지금 현 순간에 집중하는 것, 일기나 메모를 쓰는 것, 정보를 제한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일기는 마음속에 짐을 덜기 위해, 떠도는 생각을 가라앉히고 정리하기 위해, 통찰력 있는 생각과 해로운 생각을 구분 짓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방법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그저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극단적인 자신감인 에고와 가면증후군보다 더 좋은 것, 오로지 자신감만 품고 있는 것은 노력, 이성, 객관성 그리고 고요이며 이것은 타인에게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증명하는 자유를 준다. 에고는 목적에 집착하게 만든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위기로 내몬다. 메이저리거 숀 그린은 최악의 슬럼프에 빠졌지만, 마음을 비우고 다른 생각 없이 치는 것만을 생각했다. 이러면서 그는 슬럼프를 극복했다고 한다. 자신감은 완전하지 않다. 흔들리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만,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며 자신감을 찾아내야 한다. 목적에 매몰되지 않고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고요를 얻을 것이다. 완벽하게 내려놓고, 추구하는 목적조차 생각하지 않게 돼야만 배울 수 있게 된다. "고집스러운 의지를 붙잡기보다 내려놓아야 한다."

>>> 숀 그린의 예시는 환원주의스러웠다. 운동선수 개인의 슬럼프 극복은 그 자신이 이미 경지를 이룬 선수였다는 점이 배제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생각을 비우고 치는 것만을 생각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선수였다면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숀 그린의 슬럼프는 2000 시즌이었고 책에서 나온 6타수 6안타 4홈런의 대기록은 2002 시즌이다. 그가 불교에 관심 있었던 것은 맞지만 2001 시즌에 이미 슬럼프를 극복한 성적을 보였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은 상당히 불순한 의도가 담겼다. 자신의 의견을 강화하기 위해서 사실을 조작한 것이다. 다른 예시들도 의심스러워지는 최악의 행위며, 독자를 우롱하는 행위다. 솔직히 이 부분을 발견하고 나서는 이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저자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에 설렁설렁 읽게 됐다.

두 번째 영혼 부분은 정직, 청렴, 덕 등을 말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한 나쁜 습관과 트라우마는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주범이다. 타이거 우즈, 케네디 등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서 거짓을 일삼거나 방탕한 생활을 했다. 욕망을 거리낌 없이 채우려다가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저자는 가장 잘못된 욕망의 가장 흔한 형태는 시기라고 한다. 질시에 흔들리는 사람은 또렷한 사고와 평화로운 삶을 얻을 기회조차 없다. 대부분의 욕망은 비합리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이것을 분석하려면 고요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욕망에 대한 절제를 말한다. 외적인 욕망에 집중해 정신적 빈곤, 불안정한 길에서 흔들린다. 성공만을 바라보고 달릴 것만이 성공의 길이 아니다. 저자는 가족과 건강을 챙기면서 성공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장은 스토아적이고 에피쿠로스적이다. 노자적이기도 하다.

>>> p.134에서 도덕경의 제목이 덕의 길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이걸 덕의 길이라고 번역을 하는지 궁금하다. 도경과 덕경으로 구성되어있는 책이 어떻게 덕의 길이 되는지... 저자의 생각인지 역자의 실수인지 궁금하다. 설마 도를 길로 번역한 걸까?
니힐리즘은 무력한 사상이라고 하는데, 무주의에 대한 흔한 오해가 아닌가... 사상적으로 발전된 니힐리즘은 어디로 가고 수동적 니힐리즘만 논하고 있는지. 이 책에서 언급되는 도가도 불교도 이런 허무주의로 오해되는 대표적인 사상인데 공부 부족이 아닌가 싶다. 능동적 니힐리즘은 이 책의 정적인 사상들에 비해서 매우 능동적인 사상이기도 한데 말이다.

세 번째 몸 부분은 처칠로 시작한다. 처칠은 매우 추진력 넘치는 정력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처칠도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는 창의적이고 회복성 있는 여가 시간을 가지며 삶의 균형을 유지했다. 정신과 육체의 힘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 영혼 장에서도 말했듯이 쉼 없이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오히려 몸을 망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길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그는 그림 그리기와 육체노동으로 우울증적인 기질을 해소했다. 그는 나치와의 전쟁 중에서도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몸을 회복시켰다. 정신 장에서의 케네디도 마찬가지다. 신체에는 한계가 있고 몸이 피곤하면 잘못된 판단을 가지기 쉽다. 피로는 해소 돼야 한다. 산책은 좋은 수단이다. 키르케고르는 그 자신의 병적인 상태가 한 시간 반 가까이의 산책으로 해소되어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경험을 했다. 저자는 일과를 짜고 루틴으로 만든다면 평화와 고요를 느낄 여유가 생기며 좋은 일과 좋은 생각이 우리에게 들어온다고 말한다. 스스로 통제할 줄 알아야 하며, 스스로의 체계를 구축해야한다. 이것들은 평범한 것들이 신성한 것이 되게 한다.

>>> 1,2 장의 내용이 종합되는 장이다. 제일 중요한 장이라고 생각된다. 책 내용처럼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정신도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 서문에 노자 인용이 있는데 어디서 가져온 지 모르겠다. 게다가 '너는 황소를 타고 있으면서 황소를 찾고 있구나.'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런 문장 또한 본 기억이 없어 찾아보니 나오는 것은 선불교의 용어와 서산대사의 "청허집"의 '법장대사'란 시 뿐이었다. 도덕경 인용은 따로 인용하는 것을 보아서 인용들은 장자나 열자, 문자에서 인용한 듯싶다.

>>> p.69에서 장자를 인용하면서 마음 단식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뭔 소린가 싶어서 찾아보니 심재를 이렇게 번역해 놨다. 인용한 문장의 원문은 唯道集虛. 虛者, 心齋也. 이 문장을 '도란 비우는 것이다. 비우는 것이란 마음 단식을 하는 것이다.'로 번역했는데, 대강 원문대로 번역하면 '오직 도는 비움에 모인다. 비움이란 심재다' 보통 심재는 '마음을 재계(심신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것을 가까이하지 않음)한다'란 의미로 해석한다. '마음 단식'이란 표현은 명상 관련 용어로 보인다.

>>> 순자 인용도 번역문만 보고는 어느 문장인지 알기가 힘들다. 권학 편에 비슷한 문장이 있긴 한데 딱 들어맞는 문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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