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물 처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비교적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토대였던 가정 중 일부가 턱없이 부정확했음이 연구 결과 드러났다. 실제로 그간 핵폐기물 처리는 우리 지식이 그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속도를 훨씬 더 앞질러 이뤄졌다. 일단 처리하고 나중에 조사하자는 식이야말로 재앙을 부르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바다에 투기한 방사성 원소는 회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저지른 잘못은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7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 The Sea around us>를 읽던 중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후쿠시마 핵폐수 투기와 관련하여 1961년판 저자의 머리말을 옮겨본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60여년 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마치 일본의 투기와 미국의 방관을 그리고 우리 정부의 협조를 비판하는 듯한 내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울림이 크다.


 핵폐기물을 버리거나 혹은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허가하는 미국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의 한 관계자는 공식석상에서 "그 용기들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안 애초의 안전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실토했다. 이미 바다에 버린 온갖 용기, 그리고 원자과학의 실용성이 점차 커감에 따라 앞으로 버려질 용기에 담긴 내용물이 바다로 유출되는 것은 오로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이제는 핵폐기물의 쓰레기장 구실을 하는 강에서도 오염된 지표수가 바다로 흘러드는 데다 원자폭탄 실험으로 발생한 방사능 낙진도 대부분 광대한 바다 표층에 내려앉고 있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5


 누군가는 핵폐수가 안전하며, 이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것은 괴담 유포라고 비난한다. 그렇지만, 60여년 전에도 지금도 무단투기의 결과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인간의 한 세대보다 훨씬 더 긴 반감기를 갖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불확실성은 알 수 없기에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적으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결론이야말로 교조주의적인 주장이 아닐까.


  규제 당국이야 안전하다고 큰소리치지만, 이 모든 관행은 매우 불완전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해양학자들은 깊은 바다로 흘러든 방사능 원소가 결국에 가서는 어떻게 될지에 대해 "그저 막연하게 추측만 할 따름"이라고 말한다(p15)... 심해의 난류(亂流), 바닷속에서 여러 방향으로 겹겹이 흐르는 광대한 하류의 수평적 흐름, 해저 바닥의 광물질을 싣고 심층에서 위로 용승(湧昇)하는 물줄기, 그와 반대로 아래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표층수......  이 모든 과정이 어우러져 바닷물은 엄청난 규모로 뒤섞이며, 그 결과 방사능 오염물질이 바다 전체에 골고루 퍼진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6


 레이첼 카슨은 방사성 오염물질이 바다에 투기되었을 때 수산물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기준치 180배에 달하는 세슘우럭이 의미하는 바도, 그리고 그 세슘우럭이 가까운 일본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도 저자는 상세하게 설명한다. 해류에 의한 핵폐수의 위험이 닥치기 전에 수산물에 의한 우리 건강은 이미 위협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 미치는 위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해양 동물이 방사능 동위원소를 체내에 축적하고 분배하는 현상이 한층 더 심각한 문제다. 바닷속에 사는 동식물은 방사성 화학 물질을 섭취해 체내에 농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구체적 과정에 관한 정보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바다의 작은 생명체는 바닷물에 있는 무기물을 섭취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무기물이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방사능 동위원소가 주위에 있을 경우 이를 대신 사용한다. 그로 인해 바닷물 농도의 무려 100만 배에 달하는 방사능 동위원소를 체내에 축적하는 일도 더러 생긴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6


 앞서 말했듯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머릿말은 1960년대 초반에 쓰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이상 지난 시점에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은 주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바다의 시간은 인간의 기준으로 재어질 수 없다는 것과 우리는 바다로 인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 레이첼 카슨은 여러 곳에서 인류와 환경에 닥친 미래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개인적으로는 카슨의 예언이 트로이의 카산드라(Cassandra) 예언처럼 사람들에게 믿어지지 않는 그러나 반드시 실현되는 예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침묵의 봄>에서 보여준 저자의 통찰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의 불안도 커지게 될 것이라는 불안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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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8-30 14:1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오염수 투기에 어떻게 보수.진보가 나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해양 생물들이 처한 상황이 가장 가슴아프고 국가가 저지르는 불법을 무력하게 지켜봐야하는 개인들의 절망감, 불필요한 서로간의 다툼이 슬프네요.

2023-08-30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3-08-30 14: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사안들이야말로 더 장기적이고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죠.
오염수는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되는 것이다는 말이 있더군요. 한국이 그토록 우습게 여기는 중국조차 후대세대 생존의 문제라고 접근하는데, 우리는 당장의 수산물 소비에 모든 촛점이 맞춰지고 있네요.

겨울호랑이 2023-08-30 14:53   좋아요 6 | URL
정치가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정치적 사안에 대해 개인의 이익과 연관지어 판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개인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야 할 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는 분명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오염수 배출에 대한 대응이 미국-일본의 고립화 전략에 대한 반격으로 해석하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물론, 복잡한 국제 관계에 있어 여러 변수 중 하나겠습니다만, 적어도 현재 중국의 대처가 보다 대의명분과 상식에 부합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는 대의명분도 실리도 모두 놓치고 있다는 현실이 참담합니다...
 

지극히 세밀하고 순수한 질료로 구축된 자연세계와 이질적이고 분리된 지점에서 우주에 운동을 부여하는 지적인 힘이라는 개념, 즉 ‘지성nous’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생각이었다. 반면에 아낙사고라스가 지성의 특징으로 지목하는 신성한 요소들의 근거는 사실상 원형arche의 신성화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자연철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어떤 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으며 모든 것에 대해 논리logos를 추적하여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아울러 이러한 논리는 지적인 원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필연에 의해 일어났기 때문이다

건강과 병이 자연적인 사물의 질서에 속한다면 오감을 통해 이들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 히포크라테스의 생각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육체의 변화 현상을 주목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사의 관찰은 지적 행위인 동시에 선별 행위여야 한다. 그는 감각을 토대로 하는 정보들을 이성적 기준으로 분류하고, 신체적 변화의 징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그만이 알 수 있는 기호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후’는 히포크라테스 의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예후』는 이 개념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고대 비평가들이 히포크라테스가 직접 썼다고 간주해 온 이 저서는 병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그 경로를 추적하는 의사의 능력을 다룬다.

그렇다면 이 소피스트들은 과연 ‘무엇’이었나? 이들은 말 그대로 앎의 전문가들, 다시 말해 사고와 언변에 탁월한 능력과 기술을 가졌던 이들이며 오늘날의 문화 비평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위인들 가운데 최초로 못생긴 인물이었다는 말은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라는 용어가 상징하던 이상적인 결합, 즉 한 개인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보장하는 미美와 선善이라는 분리할 수 없는 요소들의 이상적인 결속력을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무너트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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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숲
레이첼 카슨 지음, 린다 리어 엮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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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을 맞으며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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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가장자리
레이첼 카슨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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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둘러싼 바다
레이첼 카슨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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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을 맞으며 레이첼 카슨 전집 1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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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가장자리에 서서 넓은 염습지 위를 움직이는 안개의 숨결을 느끼며, 수백만 년 동안 조용히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 모래톱 위를 나는 새들의 비행을 지켜보는 것은 이 지구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것은 인간이 바닷가에 나타나 경이에 가득한 눈으로 대양을 바라보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7


 레이첼 카슨 (Rachel Carson, 1907~1964)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Under the Sea-Wind>를 통해 바다와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생명을 말한다.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매 장면을 눈을 감고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에서 독자들은 영상에 제약되지 않은 바다 생명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겨울 동안 어린 거북은 남아 있는 노른자를 영양분 삼아 버텨냈을 것이다. 겨울이 길고 추위가 모래 속까지 스며들어 많은 새끼가 얼어 죽었다. 살아남은 새끼들은 약하고 무기력해서 태어날 때보다 줄어든 몸체를 알 속에서 잔뜩 웅크렸다. 그러다 알에서 깨어나면 부모 거북이 새로운 후손을 낳아 묻어놓은 모래 위를 힘없이 움직였다... 풀숲 끝자락에서 쥐가 거북의 보금자리를 노려보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왜가리가 크게 날갯짓을 하며 북쪽 해안으로 날아갔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41


 저자 레이첼 카슨은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바다라는 삶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상상하되, 인간이라는 척도의 기준을 버릴 것을.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 대신, 자연이 허락한 기준인 빛과 어둠, 밀물과 썰물, 거스를 수 없는 해류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수온 등. 우리에게 단어로 존재하는 조건들이 바다 생물들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상상력의 날개는 활짝 펴질 것이다.


 진짜 바다의 시작은 해안으로부터의 거리가 아니라 깊이로 판단한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107


 바다의 생명체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면 상상력을 적극 발휘해야 한다. 또 인간이 지닌 많은 특징과 인간 중심의 척도를 잠시라도 포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계나 달력으로 재는 시간과 세월은 해안의 새나 물고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바다에서의 삶이 지닌 특징을 알 수 없고, 우리 자신을 그 속에 투영할 수도 없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9


 그러면서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들을 의인화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안의 동물들은 열망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그들을 이해하는데 춥고 배고픈 것을 피하려는 생명의 본능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 욕망이라는 요소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생명의 삶이 영위될 수 있다면, 인간의 욕망이란 불필요한 사족(蛇足)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숨쉬기 위한 고등어의 열망이 자신의 명예를 구하려는 아킬레우스의 열망보다 결코 못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다른 한편 물기기와 새우, 해파리, 새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그들을 실제 있는 그대로의 생명체로 이해하려면 인간의 행동에 대한 비유에서 지나치게 멀리 벗어나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물고기는 물리적으로, 인간은 심리적으로 반응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물고기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9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고등어 떼는 항구 입구의 바위를 지나 물살이 급하게 몰아치는 곳으로 향했다. 바닷물은 염분으로 인해 짜고 깨끗하고 차가웠다. 바위와 물고기가 뒤섞이다 보니 수면이 온통 여기저기 갈라져 산소를 구하는 움직임으로 들썩였다. 고등어는 주둥이로부터 꼬리지느러미까지 온몸을 흔들어대며 흥분에 겨워 돌진했다. 자신을 기다리는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며 또 강렬히 열망했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144


 바다 생명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담긴 <바닷바람을 맞으며>속에서 대부분 인간의 모습은 풍경화 속의 배경처럼 주변에 머무른다. 그렇지만, 이따금 미래 닥칠 재앙에 대한 예언과도 같은 다음 구절은 지나가듯 나타나지만, <침묵의 봄>에서와 같은 저자의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모든 만과 강에서 몰려나온 물고기들이 대륙붕을 가로지르고 고깃배들은 남쪽으로 향했다. 온갖 낚싯줄과 그물을 매단 배들이 겨울 바다 곳곳에 웅크리고 자리를 잡았다. 겨울 휴식처를 찾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북쪽 항구 곳곳에서 몰려온 저인망 트롤선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송어와 넙치, 도미와 민어는 만과 해협을 벗어나면 어부의 그물로부터 안전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선박들이 오더니 긴 자루 같은 그물을 드리웠다가 끌어당겼다... 트롤망 어선은 매년 연안 어류의 겨울철 서식지에서 수백만 킬로그램의 물고기를 잡아들였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11


 <바닷 바람을 맞으며>는 제목 그대로 평안한 바닷가에서 보다 깊은 바다로 시선을 옮기며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바다지만 삶의 터전으로 그곳 또한 치열한 생명의 약동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결코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생동감있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평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글의 마지막은 <바닷바람을 맞으며>를 잘 설명한 서문의 글 일부를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며 끝맺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의 구성은 살아남고 번식하기 위해 분투하는 각각의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격렬한 투쟁에 입각한 다윈주의적 결정론이 아니라 기회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던 생명체가 살아남는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 바다 생명체에 대한 카슨의 이야기는 고요한 느낌을 전해준다. 카슨의 글이 특별한 것은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반응하는 자연의 냉철한 위력을 과학적으로 서술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적인 것은 물론 물리적으로 관련있는 개별적인 생명체와 공감하는 동일시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문, p17

제비갈매기는 수면에 거의 붙은 채 강 상류로 1.5킬로미터 정도를 날아가 늪지 위를 크게 빙빙 돈 다음 다시 강어귀로 내려왔다. 아침 안개를 뚫고 물고기와 해초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어부들이 목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들은 그물에 매달린 고기를 떼어내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물을 배의 평평한 바닥에 쌓으며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 P48

고래 사체는 몇 달 전 해안가로 떠밀려 왔는데, 겨울 내내 만 근처에 사는 까마귀와 그 친구들의 먹이가 되어주었다. 폭풍으로 인해 얼음 덩어리가 움직이며 고래의 사체를 밀어 보낸 것이다. 먹이를 보고 지른 툴루각의 환호성에 다른 세 마리 까마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툴루각의 뒤를 따라 순록 뼈에 붙어 있는 살점 몇 조각을 먹기 위해 툰드라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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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29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때, 레이철 카슨의 책을
사모았는데... 읽지는 못했네요.

그 때 사지 못한 책이라 더 애잔
하다는 느낌이...

바다를 오염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대멸종의 시대에 쉽지 않은 미션
입니다.

겨울호랑이 2023-08-29 21:21   좋아요 1 | URL
생명이 넘치는 바다에 독을 푸는 행위는 정말 인류에 씻지못할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다잡고 폭주를 막아야겠지요...

베이글 2023-08-30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줄곧 내면의 바다에 침잠해 있었는데, 너른 자연의 바다로 시선을 돌려주는 책이네요.

서문의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던 생명체가 살아남는다‘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제가 머물 적절한 곳은 어딘지 지금 이 시기에 여기에 머물고 있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3-08-30 12:35   좋아요 2 | URL
가끔은 확신에 차서 걸어가고 있는 길이 사실은 잘못가는 길이기도, 불확실하게 고민했던 길이 좋은 선택이었던 경험을 해봅니다. 아무래도 현실이라는 벽에서 넓게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다른 면에서 지금 어두운 현실에서 많이 힘이 들지만, 훗날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보면 좋은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베이글님 말씀처럼 저도 바닷가에서 육지 쪽이 아닌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 건너에 있는 희망을 상상하게 됩니다. 베이글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호시우행 2023-09-02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십년 전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을 읽다가 치명적인 고발내용에 빨려들어 밤을 꼬박 지새웠던 기억이 소환되게 하네요.

겨울호랑이 2023-09-02 17:22   좋아요 0 | URL
저도 <침묵의 봄>을 읽은 후 바다 3부작을 접하는데, <침묵의 봄>과는 다른 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작가의 다른 면을 보게되었습니다 호시우행님 좋은 하루 되세요! ^^:)
 

한 인간이 살아온 기간을 가리키며 ‘지나간 시간’을 의미하는 ‘아이온’은 ‘크로노스chronos’, 즉 ‘측량된’ 시간, 예를 들어 날이나 계절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었다. ‘아이온’은 생명력으로서의 시간이고 ‘크로노스’는 계산된 시간이다. 시간에는 ‘아이온’과 ‘크로노스’ 외에도 ‘카이로스kairos’, 즉 순간이 있다. ‘카이로스’는 예기치 않은 순간, 놓치지 말아야 할 절호의 기회("카이로스는 모든 것의 으뜸이다." 헤시오도스, 『일과 날』, 694),

이러한 시계들의 사용을 뒷받침하는 고대인들의 ‘주기적인’ 시간 개념 옆에는 동시에 ‘직선적인’ 시간 개념이 존재했다. 이는 훨씬 방대한 시간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이른바 ‘기준시’를 정립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간 개념이다.

소리가 자연적 원리를 내포한다는 사실이 피타고라스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이를 토대로 산술학적, 기하학적, 화성학적 비율에 대한 수학적 탐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렇게 디오니소스 살해라는 오점을 등에 지고 세상에 태어났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디오니소스 의례는 여신 페르세포네에게 인류가 속죄를 구하고 이 오점으로부터 정화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르페우스 의례에서 정화 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주제는 ‘환생metempsicosi’, 즉 사망 후에 영혼이 새로운 육신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이었다

파르메니데스와 엠페도클레스는 헤시오도스와 같은 선상에 위치시켜야 한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영감의 원천인 신들에게 일정한 역할을 맡긴다는 점, 다름 아닌 지혜가 신들에게서 온다고 믿는다는 점, 그리고 ‘장르’의 차원에서 6행시를 선호한다는 점 등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파르메니데스가 변화와 탄생과 죽음이라는 특징에서 벗어나 있는 단일한 실재(동시에 물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실재)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실재에 대한 탐구, 마찬가지로 감각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는 실재들, 예를 들어 수학적인 실재들에 대한 탐구를 제안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이 전하려는 내용을 하나의 로고스, 즉 사람이 손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변화의 ‘규칙’이나 ‘이성’으로 상정한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해력이 부족한’ 인간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 ‘axynetoi’가 신비주의 문헌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이해력이 부족한’ 독자는 바로 신비주의에 ‘입문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는 유동성이 안정성만큼이나 중요했고 상반된 것들의 대립이 이들의 통일성 못지않게 중요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헤라클레이토스는 극단적인 유동성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완벽한 영속성의 상징이기도 한 ‘불’에 사물의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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