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 초보 농사꾼의 고군분투 영농기
김영화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삼년상을 치르는 마음으로 시작한 농사였습니다. 이제는 여리여리한 레이스 가득한 옷보다 고무줄 바지가 더 잘 어울리고, 흙이 묻어도, 벌레가 옷깃에 붙어도 별것 아니라는 듯 툭툭 털어냅니다. 진드기마저 익숙해졌습니다. 동물들이 싸고 간 똥을 봐도 찌푸리지 않고 거름 생겼다며 좋아하는 여유를 부립니다. 호미, 괭이, 삽 등 연장 보기를 백화점 명품 보듯 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저자 김영화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깊은 산골에 살고 있다. 감, 호두, 벼농사까지 하는 억척스런 아가씨 농사꾼인데 시골에서의 삶을 사랑하며 농사를 통해 얻게 되는 땅의 언어를 글로 옮기고 있다. <농민신문> 영농생활수기 공모에 당선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책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이라는 농사꾼의 사계절로 구성되어 소한 추위는 꿔다가라도 한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 입추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등의 소제목으로 계절별 농사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겨울 이야기를 첫 번째로 넣은 것은 겨울은 농사를 끝내고 쉬는 농한기農閑期가 아니라 오히려 농사를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벼농사를 짓는 논은 잘린 볏짚이 흙과 잘 섞이도록 갈아엎어 놓아야 하고, 과일을 맺는 나무들은 가지치기 작업을 마쳐야 한다.

바람과 햇빛과 물 등 환경을 잘 읽어야 하고, 꾸준히 보아야 모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아직 생계형 농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풀인지, 작물인지 조금씩 알게 되고 농사가 손에 익어 간다. 땅으로 맺은 인연으로 기쁘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가씨 농사꾼의 이야기를 들춰본다. 

겨울 

겨울은 추워야 한다. 이 표현은 내가 어린 딸자식을 훈육할 때 늘 사용하던 말이다. 물론 농사꾼과 일반인의 의미가 동일하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어린 딸 둘은 아빠를 지독한 꼰대로 보았을 것이다. 경상북도 한 시골에서 성장한 나는 추운 겨울철도 무척 좋아서 실컷 즐겼다. 농사는 머슴 형이 하는 일이라 그 시절의 난 편안한 시골생활의 연속이었다. 일보다는 노는 것에 푹 빠져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손을 호호불며 꽁꽁 얼어붙은 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렇게 탐닉하다 결국엔 손에 동상이 걸려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튼 농사꾼의 생각은 역시 다르다. 춥지 않으면 겨우내 죽어야 할 벌레들이 이듬해에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겨울은 농사일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계절이라서 봄이 다가오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살충, 살균해야 할 일들이 산적하다. 아가씨 몸으로 이많은 일들을 하느라 땀 흘리는 모습이 눈에 선한다. 

3월이 오기 전에 감나무, 호두나무에 기계유제를 살포한다. 기계유제의 기름 성분이 해충의 숨구멍을 막아 해충을 방제하는 효과가 있다. 나무의 새순과 꽃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4월 초순경 사용하게 되면 꽃이 피지 못하거나 수정이 되지 않고 세력이 약해지는 등의 약해藥害가 발생할 수 있어 반드시 3월이 오기 전에 방제를 마쳐야 한다.

커다란 물통에 500리터 물을 받아놓고 18리터 기계유제를 혼합한다. 그러고는 전기식 분무기를 꺼내와 약을 치려는데 기계가 너무 조용하다. 분무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호스가 들어가는 곳에 균열이 가 있다. 대안으로 텃밭에서 사용하는 밀차식 엔진분무기에 휘발유를 넣고 시동을 걸어 보는데 아무리 시동줄을 잡아당겨도 이것도 시동이 안 걸린다.
 
하필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농기계 수리센터가 쉬는지라 고칠 수도 없다. 기계유제는 물과 혼합해 놓으면 빨리 사용해야 하므로 정말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할 수 없이 손잡이가 있는 플라스틱물통에 기계유제를 담아서 작은 바가지로 퍼서 나무마다 다니며 뿌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계유제들이 흩날리며 골고루 뿌려진다. 물론 처녀 농사꾼도 기계유제를 뒤집어쓴다.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서야 살포작업은 끝이 났다. '다음부터는 기계 점검부터 먼저 하자'고 다짐해본다. 아무튼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이처럼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여름

농사꾼 아버지는 예초기보다는 낫으로 풀을 베었지만 날카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처녀 농사꾼은 낫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초기 사용법을 배워 틈틈이 예초 작업을 하였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와 진동, 휘발유 타는 메케한 냄새를 벗삼아 풀을 베었다. 

사실 난 예초기 작업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고등학생 때 추석을 앞두고 가족 산소에 벌초작업을 나갔다가 예초기를 돌리던 사촌 자형이 악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움켜 잡고 나뒹굴었다. 예초기에 돌이 튕겨 하필 눈을 강타했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서 도착했지만 이미 한쪽 눈은 복구 불능상태였다. 무척 나와 가깝게 지냈던 자형은 평생 한쪽 눈을 실명한 상태로 지내다가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손바닥과 손가락이 연결되는 관절 부위에 통증이 오고, 손가락은 뚱뚱하게 부었다. 손가락을 펴거나 구부리려고 할 때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손가락이 튕기듯 펴지곤 했다. 며칠 고민 끝에 찾은 병원에서 방아쇠수지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생전 처음 들어본 병명이다. 예초기나 드릴처럼 반복적으로 진동하는 기계를 만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발생하는 증상이란다. 이후 통증을 완화하려고 스키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더니 손등에 땀띠가 났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철에 스키장갑이라니.

가을

소牛처럼 일을 하는데도 수익이 일정하지 않아 계획성 있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게 농사꾼의 삶이다. 농사가 잘되어도 언제 어떻게 가격이 폭락할지 아무도 모른다. 자연재해와 기후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수요와 공급이 들쭉날쭉해서다.

이 대목에선 신혼 살림을 시작한 조카가 경남 말양에서 토마토 하우스 농장을 해보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호기롭게 억대 농부를 꿈꾸며 농사꾼이 되었던 일을 소개해 본다. 농촌진흥원에서 필수 교육도 이수하고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그 꿈은 결과적으로 이상에 그치고 말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생산량도 문제였고, 판로 또한 걱정거리였다.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된 토마토의 상등품만 조합에서 매수하므로 출하가 안되는 토마토의 판매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그해 여름 조카 농장에서 토마토를 구매해 입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농사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억대 농부의 노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리라.    

그럼에도 저자는 '농사가 묘한 매력이 있다'고 옹호한다. 즉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이 뛰고 설렌다는 것이다. 여성이라 그런지 감수성만큼은 갑이다. 제철 작물을 심고 가꾸며 수확하는 일을 이어가면 보이지 않는 많은 소비자들이 함께 동행해 주므로 비록 육체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농민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흘린 땀과 노력은 정직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이다. 

농사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농사란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을 김을 매고 가을에 추수를 하는 단순한 공식이 적용되는 게 아니다. 농사꾼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행복하게 사는 그런 형편도 아니다. 여름이면 태풍이 몰아쳐 과수 농사를 망치고, 겨울이면 폭설로 인해 비닐하우스 작물 재배가 엉망이 되기도 하는 불확실한 자영업이다. 나의 조카는 억대 농사꾼의 꿈을 중도에 접었지만 충청도 산골 처녀 농사꾼의 밝은 미래를 계속 응원하고 싶어진다.

#에세이 #시골에서는고기살돈만있으면된다면서요 #김영화 #초보농사꾼 #학이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랄프 왈도 에머슨이 저술한 자기신뢰를 읽고 있어요. 아직 이 도서 [초역 자기신뢰]가 등록 전인가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공허의 시대 - 치열하게 살았는데 왜 이토록 허무한가
조남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삶의 변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도대체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위해 여러 인문학, 철학 책들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이야기들은, 좋은 말이지만 ‘영감’ 정도로 끝났을 것입니다. 삶에 흡수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철학서이면서 실용서입니다. 당장 실천하게 만들어줄 책입니다. 실제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책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조남호는 라이프코드 대표로 지금까지 여러 콘텐츠와 강연을 통해 '목적주의 탈출, 충만주의 회복'이란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네이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가'란 주제에 대한 솔루션을 만들자는 목표로 퇴사했다.


총 3개의 파트에 걸쳐 12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조남호 저자의 강연 콘서트 <공허의 시대>를 책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이 강연 영상은 3시간이 넘는 재생에도 불구하고 누적 조회수 310만 회를 기록하며 청년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책은 충만한 삶을 위한 새로운 인생철학을 제안한다.


목적주의란 무엇인가?


누구든 자신의 삶에 대해 허무한 감정을 가질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직장생활에 지쳐 '과연 이렇게 살면 어떤 미래가 나를 반길까?'라는 불안한 의구심이 생겼었다. 그 시절 직장인은 누구나 마치 기계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오직 출세만을 목표로 삼았던 듯하다. 하지만 이 목표가 자신의 뜻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지기보다는 도중에 쓰라린 실패의 맛을 보게 만든다는 거다. 이 헛헛한 마음이 바로 허무감 아닐까 싶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밤,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 적이 있을 겁니다. '아. 이렇게 사는 게 의미 있는 삶인지 모르겠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쎄하게 퍼지는 거대한 허무함. 그런 감정이 간혹 좀 찝찝한 정도로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인생이 불행할 지경으로 극심한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마 조금씩 정도는 달라도 모두가 느낀 적 있을 겁니다." 


이처럼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다. 이를 저자는 '목적'이라고 명명한다. 하루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잠자리에 누워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큰 의미나 가치를 부여할 정도로 뿌듯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 목적에 많이 미달하다고 느껴서 그러하다. 이런 목적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목적주의'이며 이를 아래와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사진, 목적주의 도식)


그런데, 책은 '목표'와 '목적'은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살펴보자. 목표는 쉽게 말해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고 편한 것'으로 예컨대 '1년에 해외여행 다섯 번'이라고 계획했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이를 달성하지 못해 불만족스럽더라도 결코 내 인생이 비참하다고는 느끼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목표는 그저 단순 지표와 같다. 반면, 목적은 '내 삶의 이유'와 연결되므로 이를 성취하지 못하면 '헛 산 인생'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헛 산 인생'일까? 목적주의를 추구한다면 '제대로 산 인생'일까? 목적주의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나 뿐일까. 잘 세운 목적을 향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심지어 남들이 좋다는 방법으로 바꿔가면서 하루하루 온 힘을 다했지만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남는 건 자책감과 허무감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목적주의 도식은 애초에 인간의 삶에 맞는 공식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목적주의'라는 삶의 기준이 완전히 허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 철학자들은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의미, 절대적인 목적은 존재할까?'에 관해 질문을 가져왔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오랜 탐구 활동 결과, 하나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즉, 인간은 이러이러한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는 없다. 


또 진화를 연구해온 진화학의 가장 큰 오해는 '인간이 지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진화했다'는 명제이다. 인간이 마치 두 발로 서기 위한 '목적'을 위해 노력하고 진화해온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자, 생존의 결과일 뿐이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바로 '인생의 목적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인류가 수천 년간 탐구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계획이란 그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또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이 성취해보겠다는 의지 또한 허상일 뿐이다. 동기부여도 마찬가지다. 그때 뿐이다. 잠깐 불타오르다가 이내 불꽃이 사그러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앞서 살펴본 목적주의 도식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치 않은 허점투성이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목적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삶, 즉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 목적은 달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의 영향력은 겨우 최대 3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제불가능한 변수들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이런데도 목적주의에 집착한다면 이는 거의 도박과 마찬가지이다. 목적 달성 또한 허상이다. 


충만주의란 무엇일까?


이에 저자는 오류와 허점투성이인 목적주의에서 탈피해 충만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충만주의란 뭘까? 특별한 목적도 없이 어떤 일에 몰입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저 일에 깊게 빠져들었을 뿐인 상황인 것이다. 몸은 다소 피곤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득 찬 느낌이 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는 우리 모두 잘아는 유명한 격언이다. 목적주의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을 법한 말이다. 내일 사라질 판에도 불구하고 나무 심기에 올인하는 삶이라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목적 없이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낀 적이 있다. 이럴 때엔 이유 없이 충만했음을 느낀다. 삶을 100%로 살고자 하는 바람은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가장 근원적인 의지이다. 


(사진, 잘 살았음을 느끼는 원리) 


“내 삶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지금 내 삶부터 제대로 충만하자. 삶은 삶으로 채운다.” 이것이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을 때 대전환되는 공허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자 대응 방식이다. 목적주의와 충만주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를 아래 사진이 잘 보여준다. 



(사진, 목적주의 vs 충만주의)


지금껏 우리들은 거창한 뭔가가 있어야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예를 들면 일에서의 거창한 성공, 공부에서의 압도적인 성취, 꿈의 실현 등등. 그래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게 쉽지 않을 거라고 비관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충만주의는 그런 우리를 혁신적으로 구원해줄 수 있다. 거창한 것만이 아닌, 그 어떤 경험에서도 내 삶의 의미와 가치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적 증명이니까. 심지어 우리가 사소하게 여겼던 일상 경험으로부터 이를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아주 가까이, 늘 곁에 있었던 일상으로부터 의미와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이젠 거창한 뭔가를 찾아 헤매는 걸 멈추자.


놀라울 뿐이다. 충만주의는 여태 꿈꾸지도 못했던 의미와 만족으로 가득한 삶을 내 현실에서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반면에 목적주의는 아무리 자기계발하고 성장하고 성취해도, 결국 공허하고 무너지는 삶을 반복하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인생관을 바꾸는 것 하나로 내 삶은 크게 달라진다. 가히 인생 혁명인 셈이다.


내 삶의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정리하자면 목적주의 인생관대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결국 다수가 행복하지 않은 ‘공허의 시대’에, 내 인생을 위해 기꺼이 ‘충만한 소수’가 되자. 비록 충만주의는 학문적인 철학 이론이 아닐지라도 현실적인 인생철학이다. 이제 내 삶의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공허의시대 #조남호 #라이프코드 #웅진지식하우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의식의 뇌과학 -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설명하는 뇌의 숨겨진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조성숙 옮김, 박문호 감수 / 다산초당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뇌에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이끄는 ‘신경 논리(neuro-logic)’가 존재한다. 이 신경 논리를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논리 시스템의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력과 출력을 관찰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논리 시스템을 만드는 뇌의 시스템이 무엇인지도 찾아보아야 한다. 우리 내부에 있는 소프트웨어의 암호를 해독하는 것은 신경학과 정신의학 연구에, 인간관계와 상호작용 연구에,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 '서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엘리에저 J. 스턴버그는 신경의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이며, 과학 전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뇌 연구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인간의 인지과정을 탐구한다.  젊은 과학저술가로 선정되기도 했고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리뷰>, <월스트리트저널> 등 다수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다. 

총 여덟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무의식이 지각을 만들어내는 방식, 의식 없이 작동하는 무의식의 루틴, 운동과 감정을 연결하는 뇌의 시뮬레이션, 기억과 감정 및 자아를 만드는 뇌의 서사, 초자연적 믿음고 환각이 생겨나는 이유, 조현병 환자에게 환청이 들리는 이유, 최면 살인은 가능한가?,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둘러싼 무의식의 전략 등을 차례로 설명한다. 

잠재의식 깊은 곳에는 보고 듣고 느끼고 기억하는 모든 것을 조용히 처리하는 시스템이 있다. 우리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동안 감각정보는 수없이 뇌로 쏟아져 들어가며 융단폭격을 한다. 영화 편집자가 영상과 녹음 기록을 모으고 정리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민들어내듯이 뇌의 기본 논리 시스템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지각을 조합해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인생 경험과 자의식으로 발전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

꿈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존 앨런 홉슨은 뇌줄기가 신경세포를 무작위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것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즉 뇌줄기에서 내보낸 신호는 시상으로 전해지고 시상은 이 신호를 여느 시각 신호와 똑같이 처리한다. 시상은 단지 신호를 시각겉질로 보내는 역할만 할 뿐이다. 

시각겉질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시상에서 보낸 신호가 무더기로 도착한다. 질서도, 체계도 없이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시각겉질은 시상이 보낸 정보는 전부 눈을 통해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각겉질은 저장된 지식과 기억을 이용해 서로 다른 신호 조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통일된 시각적 장면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 시각적 장면은 우리가 경험하는 꿈이다.  

뇌는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만든다. 뇌의 무의식계는 패턴을 찾아내고, 다음 패턴을 예측하며, 맥락의 실마리를 이용해 불완전한 그림의 빈틈을 메우는 뛰어난 재주가 있다. 어쩌면 이런 활동이 총체적으로 작용해 무의식이 수신한 누더기 신호를 바느질해 꿈속 풍경으로 엮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사고, 기억, 두려움, 바람으로 맞춰 이은 조각보가 우리의 정신을 차지하고 가끔은 은유적인 이야기까지 탄생하게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의 꿈은 대체적으로 꽤 기괴한 편이다. 

무의식에 운전석을 맡길 때

딴생각에 깊게 빠진 운전자는 운전을 했다는 의식적 경험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빨간색 신호에서는 멈추었고 신호를 받아 좌회전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자동조종장치 상태에서 운전한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에서는 깜짝 놀라 얼른 정신을 차리고 브레이크를 세게 밟는다. 그는 우편트럭을 불과 몇 센티미터 앞에 두고 끼이익 소리를 내며 급정차한다. 

운전자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잠시 부주의했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잠깐이 아니라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멍하니 운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는 운전하는 내내 자신이 완전히 다른 데 정신을 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멍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은 앞을 보지 않고 운전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연구도 이런 부주의 운전자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이어폰을 끼고 통화를 하면서 시뮬레이션 운전을 했다. 시뮬레이션 상의 지도 프로그램으로 잠시 연습한 후 도로교통법을 준수하며 미리 정해진 경로를 운전했다. 운전하는 내내 이어폰을 끼고 통화를 게속했다. 피험자들은 도중에 보았던 옥외광고판을 찾아내는 다지선답형 문제를 풀었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정신이 팔렸던 피험자들은 운전에만 집중한 피험자에 비해 정답률이 형편없이 낮았다.

뇌는 기억을 편집한다

기억은 상호연결되어 있는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변할 여지가 있다. 뇌는 특징이 비슷한 기억을 연결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뇌는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그 사건들을 재구성할 수 있다. 기억은 촘촘하게 얽힌 이야기처럼 나름의 방향과 관점을 갖고 잇으며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

우리의 개인사는 우리의 자아상을 만들고 저장된 지식을 모은다. 무의식계는 기억을 암호화하면서 우리의 인격도 형성한다. 무의식은 비디오카메라처럼 경험을 있는 그대로 담지 않는다. 대신 무의식은 그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이 맡은 역할에,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에 집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오면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그 순간의 감정은 무엇인지, 무엇을 기대하고 두려워하는지, 그 순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맥락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맥락을 바탕으로 뇌는 초고를 쓰기 시작한다.

수면과 각성의 틈

신경학자들이 수면마비(가위눌림)라는 신비한 현상에 대해 알게 된지 한 세기가 지났다. 램수면 동안 근육이 마비되고 가장 생생하게 꿈에 빠져든다. 잠에서 깬 순간 중요한 두 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다. 둘째, 마비된 상태에서 벗어나 근육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학계에서는 수면마비를 겪는 사람이 인구의 8퍼센트 정도라고 추산한다. 미국만 해도 2000여만 명이 평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수면마비를 경험한다. 증상의 심각성은 사람마다 다른데, 대다수는 수면마비 시간이 고작 몇 초이고 더 이상 길어지지 않아 환각까지는 경험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불안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수면마비 동안 낯선 존재가 옆에 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수면까지 그대로 이어진 스트레스는 쉽게 잊히지 않을 환각을 더 무서운 것으로 바꾼다. 약한 형태의 사회 공포증인 사회적 이미지 기능장애가 있는 사람도 수면마비가 오면 환각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다. 사회적 이미지 기능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항상 자신을 주목하고 재단한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은 수면마비가 찾아오면 외계인이 자신을 실험하고 몸에 무언가를 찔러 넣는 것 같은 환각을 더 심하게 느낀다.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최근 저자 부부는 코네티컷주 미스틱 시포트에 여행을 갔다가 한적한 거리 끝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했다. 창문에는 딸기가 토핑된 와플콘 사진이 붙어 있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가게 간판은 바람에 앞뒤로 흔들렸다. 가게를 보는데 익숙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느낌이 굉장히 강했던 탓에 저자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여행하면서 이 가게에 온 적이 있었다고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주 주말에 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코네티컷에는 가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지만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에서 굉장히 낯익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무의식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최면이 할 수 있는 일

무대 최면술사는 관객 가운데 자원자를 뽑아 그에게 최면을 걸어 당혹스럽고 희한하고 웃기기까지 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저자의 친구가 자원해서 성공적으로 최면에 걸렸다. 어느 순간 최면술사는 그 친구에게 매가 방금 공연장으로 들어와 우아한 포즈로 날개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친구는 보이지 않는 새를 눈으로 좇으며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면술사의 말이 이어졌다.

“매가 다시 날아올라 방금 당신 머리에 앉았어요.” 

친구는 공포에 얼어붙었다. 그의 눈은 관중을 향했다가 자기 이마로 향하기를 반복했고, 그 상상의 동물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있는 모습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관객은 웃었지만 친구는 신경쓰지 않았다. 최면술사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매가 다시 날아올라 당신 셔츠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친구는 얼굴이 시뻘게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공격자를 물리치려고 난리를 피웠다. 그러다 그의 셔츠가 절반 정도 찢어졌다. 마침내 최면술사는 매가 멀리 날아갔다고 말해주었다. 최면이 끝난 후 친구는 자신의 눈에는 관객도, 새도 모두 뚜렷하게 보였으며 정말로 매와 벌인 싸움을 믿는다고 맹세하듯이 말했다. 어쨌든 최면 상태는 그로 하여금 공연장에 있지도 않았던 생물체를 인식하고 사투까지 벌이게 만들었다.

무의식계의 역할

무의식계는 단편으로 끊어진 경험 조각들을 끌어와 필요하면 빈틈을 메우고 우리의 인생사를 순서대로 배열한다. 무의식계는 우리의 자아의식을 구축한다. 또한 자아의식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심지어는 분열까지 이용해 나쁜 생각과 기억을 몰아낸다.

진화적 관점에서 말하면 자기숙고를 하는 유기체일수록 생존 확률이 높다. 우리는 생존을 중요시하며, 자신과 후손을 보호한하는 데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뇌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온전히 유지해 주기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통찰할 수 있다. 뇌의 도움으로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고 곰곰이 추론하고, 결정을 심사숙고하고, 목표와 욕구에 딱 들어맞는 행동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뇌가 건강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유지하는 일에 특히 중점을 두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뇌의 바탕에 깔린 논리 회로는 우리가 깨어 있는 매 순간 쌓은 경험을 흡수하고 빈틈없이 조사한다. 인간의 정체성을 성숙하게 만들고 개선하기 위해서다. 깨어 있는 시간뿐만 아니라 매일 밤 꿈을 꾸는 동안에도 무의식이 골몰하는 목표는 같을 수 있다.

과학의 역사에는 블랙박스 취급을 하며 미스터리라고 선포하는 것들이 종종 있다. 연구자들이 알맞은 연구 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 발견으로 향하는 길은 무엇을 찾아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뇌가 의식계와 무의식계로 되어 있다는 생각은 의식의 신비를 밝히는 답이 되지 못한다. 

단지 여정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누군가가 이미 알려진 지식의 연장선을 연구하는 데 매진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블랙박스를 열어보려 애를 쓸 수도 있다. 그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 생각하고 언뜻 듣기에는 괴상한 질문도 서슴없이 할 것이다. 뇌 연구가 발전할수록 블랙박스를 파헤치는 여정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제 빈틈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뇌과학 #무의식의뇌과학 #엘리에저J스턴버그 #뇌의숨겨진작동원리 #다산초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주의자 선언 - 99%의 풍요를 위한 자본주의 경제를 열다
요한 노르베리 지음, 김종현 옮김 / 유노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를 연구하면서 오히려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엘리트만이 시민으로서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호받으며 가장 강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야말로 권력층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자유 시장과 사유 재산에 기반한 자발적 계약이 바로 그 핵심이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유는 자본가들이 항상 선하게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때 자유 경쟁과 선택의 기회가 그들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 '시작하며'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요한 노르베리는 경제역사학자로 <월스트리트저널>, <리즌>, <스펙데이터> 등 당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스웨덴, 영국, 미국 등에서 자본주의를 주제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국제경제, 세계화, 자본주의 등을 주제로 다룬 다수의 책들을 집필했다. 


총 아홉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자본주의자 vs 비자본주의자, 성장 vs 재분배, 파이 키우기 vs 제로섬, 억만장자 vs 우리, 거인들 vs 도전자들, 정부 주도 vs 시장 주도, 중국 vs 세계, 환경 vs 성장, 자본주의 vs 인간성 등을 주제로 풍요와 성장을 위한 미래를 제안한다. 


자본주의로 인해 나타나는 병폐로 흔히 부의 독점과 빈부 격차의 심화, 그리고 지구촌 환경 오염 등 여러 문제점들이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런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시스템들이 대두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추세다.      


자본주의자를 선언한 이유


실패한 자본주의라는 기억이 잊혀질 즈음,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들은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이들은 보호주의,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 경직된 규제, 과도한 세금 같은 비합리적인 정책들을 시도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이는 경제 성장의 동력을 짓누를 뿐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장 취약한 계층이 떠안게 되고, 세계 경제 자체를 위협한다. 현재 자행되고 있는 무식한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20년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지구촌은 충격적인 팬데믹과 전쟁을 겪어야 했다. 아이로니하게도 이 20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대였다. 극빈층은 70% 감소, 즉 매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13만 8,000명이 빈곤에서 탈출했기에 압도적인 성과임에 분명하다. 이같은 발전은 확산되어야 한다. 바로 저자가 자본주의자를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이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가능케 했나?


경제가 급성장한 시기와 장소를 확인해보면, 1,800년 동안 전 세계 평균 소득의 변화가 거의 없다가 200년 전 경제가 가장 자유로운 국가였던 영국에서 변화가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산업 혁명의 시작으로 영국의 극심한 빈곤률이 절반으로 감소했던 것이다. 그 뒤를 서유럽과 미국이 뒤따라 자유로운 경제 체제를 갖추었다. 이후 세계는 산업화된 국가와 개발 도상국,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나뉘었다.


이후 곧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이 기존의 세계관을 뒤흔들면서 자본주의의 성공 사례가 서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그러자 “몇몇 개발 도상국이 세계 시장에 진입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이들이 너무 작아서 무시할 만한 수준이기 때문이다.”라는 내러티브가 등장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반대의 주장을 듣는다.


“개발 도상국이 성공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들이 너무 커서 가능했을 뿐이다.”


한 개인이 한 국가를 망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넬슨 만델라의 민주화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후임 음베키 정부하에서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정부부채가 절반으로 줄었으며, 경제 성장률은 5%에 도달했었다. 그러나, 이후 좌파 세력을 이끌던 주마가 권력을 잡고 '신자유주의' 모델을 반대하며,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는 변화를 초래했다. 투자보다는 소비와 부패에 공공지출을 쏟아부었다. 주마와 그 측근들은 국내 총생산의 약 20%를 빼돌렸던 것이다. 


계속되는 정전 사태와 기반 시설의 붕괴로 인해 경제는 결국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경제 성장이 너무 더디다고 불평하는 독재자는 마치 수확을 기다릴 인내심이 없는 농부와 같다. 그는 사람들에게 씨앗을 배불리 먹도록 허용하며 인기를 얻지만, 결국 남은 씨앗이 줄어들어 다음 계절에는 먹을 것이 더욱 부족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수확이 바닥날 때까지 소비하는 것이다. 마거릿 대처가 말했듯이 남의 것을 모두 써 버리면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된다. 포퓰리스트들이 나라를 망치는 스타일은 대체로 이러하다. 나라 곳간을 물쓰듯 마구 무지몽매한 국민들에게 뿌리면서 오직 유권자의 득표에만 올인하는 동안 나라 기둥은 썩어 무너지게 된다. 

시장 경제를 계획할 수 있는가?


경제 성장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다. 유럽의 식민 지배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 독재자들이 농민들에게 강제로 현대적 생산 방식을 도입시켰을 때도 경제는 성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성장이 아니다. 경제 성장은 사람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창출함으로써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일반적인 규칙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일반적인 규칙은 간단하다. 한 나라가 부유할수록 사람들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며, 거의 모든 삶의 질 지표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인다. 물론 경제 성장은 자연을 착취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부유한 나라일수록 환경을 보호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그 나라가 이를 우선순위로 삼기로 결정하는 순간 문제 해결 능력 또한 강해진다.


이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든 경제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를 선호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미래에 어떤 위기나 재난이 닥치든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식, 더 발전된 기술력을 갖춘 상태에서 이를 맞이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이전에 해결한 문제들이 또 다른 예기치 못한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에게 일자리를 뺏겼는가?


2000년대 첫 10년 동안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560만 개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는 생산량 감소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생산량은 증가했다. 즉 일자리가 감소한 이유는 공장이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빼앗긴 것은 중국이나 멕시코가 아니라 작업 현장에 투입된 산업용 로봇에 의한 것이다. 


만약 1950~1960년대가 서구 노동 시장의 황금기였다면, 왜 그 시대에 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때의 경험을 ‘더러움, 피로, 지루함, 망가진 몸, 탈진한 정신’으로 기억할까? 노동자들이 그렇게까지 자녀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려고 애쓴 이유는 그들이 다른 종류의 직업을 갖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의 한 철강 노동자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이곳에 들어오면 나갈 수 있을지조차 모른다. 설령 나간다고 해도 팔 하나나 눈, 다리를 잃을 수도 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133쪽) 


심지어 러스트 벨트의 삶을 묘사한 <힐빌리의 노래>에서도 2025년 미국 부통령으로 취임한 J.D. 밴스는 자신과 친구들이 성장하면서 한 가지 공통적으로 동의했던 점을 이렇게 언급했다. "그 누구도 블루칼라 직업을 갖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물론 예외도 있다. 1950년대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는 마치 꿈의 직업을 가졌던 것처럼 보인다.


부자는 노동자를 착취해서 돈을 버는 도둑인가?


자본주의에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부가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몇 십년 동안 상위 1%가 대부분의 부를 차지하며 나머지 사람들은 뒤쳐졌다. 왜 자본가들은 그렇게 많은 부를 가져야 하는가? 그들은 직접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유시장에서 이윤이 발생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원인 버니 샌더스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인정했다. 그의 발언이다.


"그렇다. 나는 백만장자다. 나는 베스트셀러를 썼다. 당신도 베스트셀러를 쓰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놀랍도록 유리한 시스템이다. 기업가는 빚을 지고, 집을 담보로 잡고, 친구와 가족을 등한시하며 밤낮없이 노력한다. 그리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고 성공한다 해도 그가 가져가는 것은 고작 2.2%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는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보면서도 나머지 98%를 가져간다. 더 낮은 가격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그만큼 구매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형태의 불평등이다. 기업가들이 더 큰 이윤을 창출할수록 우리가 가져가는 98%의 가치도 커진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윤 중 2.2%만 차지하더라도 새로운 잉그바르 캄프라드,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희망은 수많은 사람에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환경이 먼저인가, 성장이 먼저인가?


어느 것이 먼저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성장을 멈추면 과연 환경 문제도 해결되는가'를 고심해봐야 할 것이다. 성장이 지속될수록 산업현장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의 증가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가속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결과를 줄이려면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만약 탈성장을 선택한다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아니다. 이는 기후를 인간에게 더 위험하게 바꿀 수 있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려면 또다른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자 나라는 가난한 나라에 비해 건강에 미치는 피해를 훨씬 효과적으로 줄인다. 


국제재난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기후 관련 재해(가뭄, 홍수, 산불, 폭풍 등)로 사망할 확률은 1950년대 이후 90% 이상 감소했다. 이는 자연재해의 빈도가 감소해서가 아니라 물질적 풍요와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이후 성장률을 0%로 유지했다면 이산화탄소는 덜 증가했겠지만, 매년 약 50만 명이 기후 재해로 목숨을 더 잃었을 것이다.


부유해질수록 환경을 더 잘 지킬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돈 이외의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번영은 우리의 선호를 바꾼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지역 환경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게 되고, 상품이 어떻게 생산됐는지를 고민하게 되며, 또 서해안의 환경을 보호할 정치인을 선택한다. 부유한 경제는 친환경 기술의 연구개발에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쪽은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국가다


이밖에도 저자는 자본주의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독점 시장을 파고들 시장이 남아 있는가?, 혁신과 성장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패권 경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등을 화두로 삼아 이에 대한 해답을 재미나게 펼쳐나간다. 총 쉰 일곱 개의 이야기 모두를 만나보길 권한다.


#경제 #자본주의자선언 #요한노르베리 #유노북스 #교보문고 #이주의북모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