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재의 K-조선 대전환 - 조선업의 태동부터 마스가 프로젝트까지
권효재 지음 / 동아시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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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 엔지니어로서 일하던 시절, 월요일 새벽 2시에 출근해 테스트를 하던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중략) 새벽 1시에 이미 현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작업자들을 보며 “이 사람들은 배에 진심이다”라고 느꼈습니다. 그날 마침내 테스트에 성공하고 며칠 후 조선소를 떠나는 배를 배웅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중략)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가 된 것은 단순히 기술이나 자본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람들의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권효재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 20년 넘게 한국, 중국, 미국 등지에서 중공업과 에너지 분야에 종사했다. 주요 관심사인 천연가스, 조선해양, 재생에너지, 산업정책과 관련된 LNG와 친환경 선박 연료에 대해 교재를 집필하고 논문과 칼럼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총 4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한국 조선업,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50년(파트1), 네 번의 혁신, LNG선 시장을 장악한 한국 조선업의 비밀(파트2), MASGA, 기회인가 위기인가(파트3), 기회와 위기 사이, 한국의 선택은?(파트4) 등을 통해 한국 조선업의 성장사를 얘기한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에 앞서 지난 직장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상고를 졸업하고 초급행원으로 은행에 첫발을 내딛었지만 학벌이 중요함을 깨닫고 뒤늦게 주경야독 끝에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시절이 어수선해 유신독재 반대 시위로 인해 상아탑은 최루탄 냄새 가득하고 툭하면 휴강에 공강이었다. 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 34개월 넘게 복무하고 1976년 6월 만기 전역을 했다. 


복학 후 학생들 시위는 여전했다. 반골 기질이 강한 나는 학우들과 어울리며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강하게 내비치곤 했다. 이후 학우들의 추천과 응원에 힘입어 경영대학 학생회장이 되었는데, 3학년 겨울방학 때 중앙정보부 요원의 인솔로 산업시찰에 동원되었다. 방학 때 데모 계획을 구상하는 걸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이때 울산 바닷가에 위치한 현대조선을 견학했었다. 박정희 정부의 중공업 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한 산업 현장이었다. 지금 난 이 책을 통해 걸음마 수준의 병아리가 공룡으로 변신한 한국 조선업의 실태를 마주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 50년 역사 


제2차 세계대전 후 조선업의 세계 최강국은 미국이었다. 전 세계 배의 절반 이상을 미국이 생산했다. 그랬던 미국의 조선업이 이후 쇠퇴의 길을 걷더니 1980년대 이후 군함을 제외한 선박 생산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반면 한국 조선업은 1980년대에 급성장해 1990년대엔 일본과 세계1위를 놓고 경쟁했다.

마침내 2000년대 중반엔 종합 지표에서 한국이 1위를 달성했다. 2017년 이후 저가 수주에 나선 중국에 양적 지표에서 밀려 1위 자리를 내놓기도 했지만 단위 설비당 생산성은 여전히 한국이 1위다. 더구나 기술 수준이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주로 생산하는 한국 조선업을 전체적인 통합 지표에서 압도적인 1위라고 세계 조선업계는 평가다. 

한국 조선업은 동일한 여건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배를 더 빠르고 잘 만든다. 우리는 마치 건물을 쌓듯 대형구조물을 하나하나 올리는 그런 공법으로 배를 건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레고 블록처럼 선박의 각 파트를 쪼개 만든 다음 도크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쌓아 올린다. 이 방식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와 고도화되었고, 이후 일본이 엔고와 설비 과잉으로 흔들릴 때 한국은 다시 발전시켰다. 즉 조선소 밖에서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을 만들고, 안에서 모듈화와 블록화로 빠르게 쌓아서 배를 완성한다. 이렇게 한국 조선소는 지난 30년 동안 공정 선행화를 치열하게 진행해 왔던 것이다.    

그 시절, 조선소에서 "할 수 없다"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낼 수 없었습니다. 변명을 금하고 방법을 찾는 태도였습니다. 생산성 목표와 인도 날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지상 과제였습니다. 지금 사회 전반에 그대로 이식되기는 어렵지만, 조선소 내부에는 아직 “할 수 있다”라는 기풍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한때 조선업 국가 순위 1위였고, 전 세계 상위 1~5위 조선소가 모두 한국 회사였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선박 설계는 우리 손으로 모두 직접하고, 배에 들어가는 자재의 90% 이상을 국내에서 생산합니다.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한국 조선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그에 대한 자부심이 큽니다.(056쪽)

후발주자로 LNG선 건조에 도전하다

이제 '지속적인 제품 혁신'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과거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칩의 개발을 압도적으로 앞서 나간 덕분에 초격차를 유지함으로써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한국 조선업은 누구나 만들 수있는 범용 제품이 아닌 새롭고 혁신적인 선박을 만들어 고부가가치 시장을 만들어 냈다. 인건비는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이에 반해 인건비가 훨씬 싼 중국은 저가 수주 전략으로 한국 조선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이젠 가장 비싸고 가장 어렵고 가장 돈이 많은 배를 제조해야 한다는 소명이 생긴 것이다. 바로 LNG 운반선이다. 천연가스를 섭씨 영하 163도로 냉각하면 그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들기에 대량 운송에 매우 유리해진다. 세계적으로 연간 4억 톤이 거래되는 LNG를 운송하는 특수 화물선인 LNG선은 2025년 현제 전 세계에서 약 750척이 운항 중인데, 3년 내로 1000척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 한국 조선이 4분의 3 이상을 건조했으니 절대 강자임에 분명하다. 

한국의 조선업은 현대, 대우, 삼성 등 3개사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새로운 시장 수요를 개척하고 있다. 초기에 현대조선이 건조했던 유조선의 경우 20년 전에 만든 배나 지금 만드는 배나 운항 장비나 내부 구성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이들 3사는 철저한 고객맞춤으로 선박을 건조할 뿐만 아니라 LNG선 또한 파생 상품들을 속속 등장시켰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셈이다.

LNG-RV~ LNG선이면서 동시에 해상 터미널로 사용
쇄빙 LNG선~ 두꺼운 얼음을 깨뜨리며 LNG 운송
FSRU~ 액체 상태의 LNG를 기화해서 육상에 공급하는 LNG선     

1980년대 후반 조선 불황의 고통이 이어지고, 준비도 부족했지만, 후발주자였던 우리가 국산 LNG선 건조에 도전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 결단이 1,000억 달러 이상의 시장을 열었습니다. 이런 도전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129쪽)

MASGA, 기회인가 위기인가

한국 조선업에 의지하려는 미국의 조선업 부활이 바로 MASGA이다. 그 주요 내용은 한국 조선사의 미국 현지 투자와 미국 조선소의 현대화 및 재건을 돕는 프로젝트이다. 이는 미국의 국방산업기반 전략과 맞물려 구체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첫째, 이게 돈이 되는 사업인가?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둘째, 트럼프만의 사업구상이 아닌가? 뒤집기를 밥 먹듯 하니까
셋째, 미국 해군력이 정말 위협을 받고 있나? 정치적인 과장 의혹  

그렇다. MASGA가 과연 사업적으로 타당한지, 돈이 되는지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다. 미국의 절박함을 감안하면 어쨌든 돈이 될 거라는 기대들이 높다. 그 이유는 미국 해군은 최신 함선들을 빨리 건조해야 하는데 반면 한국은 안 해도 되는 상황이므로 주도권은 한국에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하는 한국 조선사에겐 좋은 비즈니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기회와 위기 사이

항공기나 자동차 모두 실내 공장에서 조립 작업이 이뤄지므로 로봇 자동화로도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쇠퇴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보다 절대 생산 대수가 많다. 또한 인력 기반도 탄탄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미래 자동차 기술을 개발하면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조선은 결국 사람이 마무리해야 하므로 자동화와 기계화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자동차처럼 디자인 프리미엄과 브랜드 스토리로 선가를 현저하게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품질과 사양, 납기 신뢰도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225쪽) 

한국 조선업의 미래 

현재의 성공이 향후 50년을 보장해 줄까? MASGA 딜레마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그렇기에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과도한 미국의 요구와 중국의 보복 가능성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경제경영 #한국조선업 #K조선대전환 #권효재 #MASGA프로젝트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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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1-27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 때 집이 울산이라 조선소 공장 담 벼락을 따라 학교에 다녔어요. 아침에 출근하던 수 많은 자전거 행렬이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한 때 노동자 아저씨들과 전경 아저씨들이 보도블럭을 깨고 던지면 방패로 막고 하던 장면도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저의 등교길이 조선소 발전의 현장이었네요.
 
스테이블코인 실전 투자
이관헌 외 지음 / 성안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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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기존 금융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비트코인BTC입니다. 여기에 일종의 전자 계약인 스마트 컨트랙트를 추가한 것이 이더리움이고 이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블록체인 기축통화가 바로 '스테이블코인'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은 디지털 노마드이자 블록체인 투자자인 이관헌, 1세대 디파이 인플루언서인 파구정보, 암호화폐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관련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어정규, 유튜브 '세력' 채널과 콘텐츠 기업 '비욘드프리'를 운연하고 있는 강기태 등 4인의 공저자가 각각 해당 파트의 필자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1부(스테이블코인 시작하기), 2부(스테이블코인 전략), 3부(스테이블코인 투자로 수익 내기)에 걸쳐서 13개 장章의 글을 통해 비교적 안전한 투자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의 투자법과 새로운 금융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스테이블코인 시작하기


'돈의 역사'는 상호간에 형성된 믿음이 밑바탕이 되어 재화의 교환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류는 조개껍질부터 금속, 종이에 이르는 다양한 매개체를 그 수단으로 활용했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옴에 따라 기존의 화폐제도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믿음 네트워크가 출현했다. 바로 '블록체인'인데, 이는 금융산업의 혁명인 셈이다.


(사진, 금융산업의 혁명)


블록체인 기술이 '탈중앙화'라는 가능성이 매력적이었지만, 초기 암호화폐(비트코인, 이더리움)는 예측 불가능한 파도와 같았다. 이에 반해 안정적인 가치를 지닌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등 특정 국가의 법정화폐나 특정 실물 자산의 가치를 일대일로 추종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코인이다.


암호화폐의 치명적인 결함인 '가격 변동성'을 극복하고자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했다. 이제 '안정성'이란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디지털 화폐는 국경의 장벽을 허무는 송금 수단이자 가상 세계의 신경제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스테이블코인 종류


법정화폐 담보형(USDT, USDC)

암호 자산 담보형(DAI, sUSD)

알고리즘 기반(UST, Frax)

실물자산RWA 기반(USDY, USDF)

하이브리드 타입(USDe, USDf)


또 이자 지급 조건에 따라 '이자 지급형 스테이블코인'과 '비지급형 스테이블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으로 분류되는 암호화폐는 약 400여 종이나 된다. 단순히 가격의 안정성을 넘어 디지털 금융 인프라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미래 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안전하지만은 않으므로 리스크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인 안전장치이다. 현재 많이 사용되는 코인은 아래와 같다.


테더(USDT)~ 스테이블코인 시총 1위, 과연 테더가 달러 준비금을 가졌을까?

USDC~ 미 금융권이 만들었음, 마찬가지로 준비금 투명성의 논란

USDe~ 실제 달러를 보유하지 않고 달러처럼 안정적인 가치 유지(합성 달러)

다이~ 코인 담보 스테이블코인, 이용자가 담보를 맡기고 발행(자율 통화)

USD1~ 트럼프 일가에서 만든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 전략


스테이블코인은 가진 장점으로 인해 빠르게 제도권 내로 편입되고 있다. 차세대 금융은 단순히 안정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파악하고 급변하는 거래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국은 새로운 금융 시스템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주요국들은 스테이블코인의 금융 안정성을 예의 주시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독자적인 규제 체계를 발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특히, 규제의 화살은 시장을 주도하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정조준하고 있다. 기축통화국은 디지털 자산을 통해 자국 통화의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는 전략을 취한다. 반면에 비기축통화국들은 자국의 통화 주권을 수호하려는 필사적인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고 있다.


미국~ 기축통화 지위의 유지와 국채의 수요처 전략 추구

유럽연합~ 암호자산 규제로 유로화 독립성과 시장 질서 확립

중국~ '본토 통제'와 '홍콩 실험'이라는 이원화 전략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각축전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즉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은 물론이고 금융업, 제조업,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군의 플레이어들이 '디지털 금융 패권 장악'이나 '통화 주권 확보'라는 거시적 목표 아래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초기엔 암호화폐 시장 안에서 기축통화 역할에 머물렀으나 이젠 실물 경제의 결제 수단으로까지 그 영역을 비약적으로 확장했다. 나아가 달러 패권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국경없는 글로벌 송금의 핵심 파이프라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단언컨대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는 곧 금융의 미래이다.


스테이블코인으로 수익내기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다양한 파생 금융 상품과 투자 모델이 개발되었다. 이재에 뛰어난 '얼리 어답터'들은 이미 이를 통해 새로운 부富를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금융 상품에 비해 진입 장벽이 있고 생소한 기술적 개념이 필요하다.


투자 방향성~ 성공적 투자를 위해선 기축통화인 달러의 거시적 흐름을 읽는 안목과 수익률 극대화 전략 접근법이 필수적이다.


투자 준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속담은 투자 공부에 있어서 불변의 진리인 셈이다. 본격적으로 실전에 뛰어들어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 돈이 투입될 때 비로소 시장을 보는 관점이 날카로워진다.


투자 전략(실전 초급)~ 고수익을 추구하면 반드시 고위험이 뒤따른다. 따라서 사용자 친화적인 서비스부터 차근차근 경험하며 충분한 워밍업 과정을 거치는 게 좋다. 확실한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해 원금 인출 가능성을 확보하고 분산 투자를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투자 전략(실전 중급)~ 달러 스테이블토인을 이용해 미국 나스닥 주식을 거래할 수 있고, 국경 없는 은행이라 불리는 '디파이'의 고효율 예금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한다. 나스닥 투자 플랫폼 로빈후드는 2024년 하반기부터 서클의 스테이블코인(USDC) 입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거래 수수료가 없는 구조로, 한국 거주자는 직접 미국 주식 매매가 불가능하며 미국 내 거주자(또는 법인)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다.


투자 전략(실전 고급)~ 디파이 프로토콜 펜들pendle은 이자 수익이 발생하는 자산을 '이자'와 '원금'으로 분리하여 거래할 수 있다. 즉 이자 토큰(YT)과 원금 토큰(PT)로 분리한다. 이 두 토큰은 자동화 시장 조성 메커니즘을 통해 유동성이 형성되어 서로 교환이 가능하며 각각의 가치가 시장 수요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경영 #스테이블코인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실전투자 #이관헌 #성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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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합격기 1 - 청년 가장 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합격기 1
김도희 지음 / 제이에스앤디(JS&D)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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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집 자제라고 하면 얼핏 음풍농월하며 책장이나 넘기고 살았을 것 같지만 실제 그의 삶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극한적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노상추는 다산 정약용이나 퇴계 이황 같은 역사적 스타는 아닐지 몰라도, 삶에 임하는 맹렬한 자세만큼은 이순신 장군 못지않은 것 같습니다. - '양반가 청년 선비의 일상을 들여다보다' 중에서


(사진, 책표지)


<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 합격기>(전 3권)을 쓴 작가 김도희는 대학에서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 어린이책 저자, 편집자로 유아,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TV 교양, 교육 프로그램을 다수 집필했다. 작가는 소장자 노용순의 '노상추일기'를 근간으로 노상추 가계의 삶을 통해 조선시대의 생활을 보여준다.


작품의 주인공 노상추는 영조 22년(1746)에 경상북도 선산의 양반 안강 노씨 집안에서 출생해 무과 시험에 급제하고 무관으로 활동했던 선비였다. 그는 17살 때부터 사망 이틀 전인 84살까지 무려 67년 동안 일기를 썼다. 이중 53년 간의 일기가 현재까지 전해져 그 원본은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되어 있다.


이제 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나이 열일곱에 집안 일을 책임져야 하는 청년 가장 노상추의 가계는 부모, 아내, 형수, 조카 둘, 남동생(완복), 여동생(효명)과 노비 식솔 열 등 총 19명이나 된다. 가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노비들과 함께 논밭 농사를 잘 경영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양반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과거에 급제해야 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인생 최대 미션이다. 오늘도 공자의 <논어論語>를 펼쳐 소리내어 읽는다. 제1편(학이學而)에 실린 글이다. 그런데, 안강 노씨 가문은 관직 금지령인 '금고禁錮' 처벌을 받고 있다.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관직을 제수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사진, 16쪽)


노상추 일기는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걸쳐 조선 사회의 생활, 풍속 등에 대해 상세하고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기록 속엔 당시 양반집 가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상, 향촌 사회의 모습, 중앙 및 지방 관료 조직 등에 대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노상추의 새벽 독서는 오늘도 이어진다. 그는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여종이 준비한 세숫물로 세수를 한 후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의관을 갖춰 입고 서안에 앉아 논어論語를 읽기 시작한다. 늘 그러하듯 이는 그의 일상 중 인시寅時(새벽 3~5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자왈 사부모 기간 견지부종 우경불위 노이불원'

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음력 정월 스무아흐렛날 새벽이니 밖은 어두워 캄캄하고 추운 날씨다. 게으름을 피우기 쉬울 17살 나이임에도 아내까지 둔 어였한 성인인지라 이처럼 대견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으로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 부드럽게 간해야 하니 자기 뜻이 부모를 따르지 않음을 드러내면서도 부모를 공경하여 어기지 않고 힘들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상추는 이 뜻을 새기며 마땅히 실천하는 군자가 되리라 다짐한다. 사실 상추는 셋째 아들임에도 집안 가장 노릇을 한다. 왜냐하면 위로 두 형들은 모두 죽어서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맏이였던 큰형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기에 소상小祥(첫 기일 제사)을 며칠 앞두고 노비를 대동하고 삼척으로 가셨다. 장례식 때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분이니 제사상을 보고 싶겠는가.


기일이 지나고 열흘째 되는 날 귀가했다. 사랑채로 들며 모두 따라오라고 했다. 소상 때 하루종일 비가 내려 가족들 모두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아직 감기가 떨어지지 않은 상추는 콧물을 훌쩍이며 사랑채에 들었다. 운곡으로 이사하자는 제안이었다. 풍양 조씨 집성촌인 운곡은 어머니 친정집이 있는 곳이다.


(사진, 노상추와 친인척 반경 지도)


이사 갈 집은 사돈어른이 사용하다 지금은 비어 있는 27 칸 기와집이라고 했다. 비어 있다곤 하나 수리해야 할 곳도 많을 것 같고 이 많은 살림을 몽땅 운곡으로 옮긴다는 게 영 마음 내키지 않았다. 심지어 친정이 있어 좋아할 법한 어머니조차 별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다.


허나 상추는 아버지가 갑자기 이사를 제안한 이유를 헤아릴 수 있었다. 현재의 선산 집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을 잊고 싶은 거다. 큰형과 둘째형의 죽음, 아버지의 첫 아내이자 큰형의 생모인 큰어머니도 이곳에서 죽었으니 모두 잊고 새로 태어나고 싶은 거다. 이에 젊은 가장인 상추는 아버지 제안을 동의했다. 새벽에 읽은 논어 귀절도 떠오르고 말이다.


더구나, 지금 당장 이사 준비를 하라는 아버지의 영이 떨어지자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먼저 출발하겠다며 동생 완복과 조카 술증에게 짐을 싸라고 하자 놀란 어머니도 뒤따라 이를 지시했다. 이에 형수는 얼굴이 하예지며 허둥지둥 옷가지와 먹거리를 챙겨 노비를 시켜 말에 싣도록 했다. 동지섣달에 이사란 날벼락을 맞은 노비들 모두 한 마디씩 투덜대자 상추는 불호령을 내렸다.


노상추 식구의 이사 소식에 외가 친척들이 많이 와 하루 종일 시끌벅적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이 좋은날에 고모가 크고 높은 사랑방의 큰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구경하려다가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다쳐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죽고 말았다. 빈소를 차리고 초상을 치르게 되었다.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이 변고는 모두 자신 탓이라며 다시 선산으로 가자고 해서 다시 이삿짐을 쌌다.


완연한 봄, 집의 소가 연이어 두 마리가 죽자 농사에 큰 차질이 발생했다. 소가 쟁기를 끌어야 논밭의 땅갈기가 쉬울텐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운곡의 충격적인 사고 탓인지 아버지는 몸져 누웠다. 선산 부사의 요청을 받아 상추는 금오산에서 거행되는 기우제 헌관으로 참여했다. 6월 첫날, 드디어 비가 왔다. 6일 동안 연속 비가 내려서 이젠 논이 물에 잠길까 걱정될 정도다. 결국 산사인 미봉사로 피난을 갔다.


행여여력 즉이학문

行有餘力 則以學文


9월 새벽, 노상추는 여느 때처럼 인시에 기상해서 의관을 갖추고 공부를 시작했다. 집에서 효孝를 실천하고 밖에 나가면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 학문을 닦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이었다. 이또한 공자의 가르침으로 논어 학이편에 실린 글이다. 즉 자제子弟된 자는 맡은 소임을 다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사진, 50쪽)


우리들은 뭐든 '나중에'라는 말을 자주한다. 또 공부하는 게 무슨 벼슬이라도 받은 양 공부 외의 다른 일은 뒷전이다. 이는 인생 말년에 큰 후회감이 밀려올 수도 있음을 빨리 깨닫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내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것인데 나이 들어 다리가 흔들거릴 때 하면 되겠는가. '금' 중에서 최고의 금이 뭔지 아는가? 황금, 소금 등 좋다지만 사실 '지금'이 최고다. 이 순간이 최고임을 깨달은 사람은 '나중에'를 외치지 않는다. 공부를 한답시고 정말 행해야 할 도리를 뒷전에 돌린다면 부모님 사망한 후 어떻게 효孝를 행할까?


어머니(44세)가 상추의 동생을 가졌다. 상추(18세)의 아내도 임신을 했다. 한 집에 임산부가 둘이라니. 허리가 아파 미봉사에 계신 아버지에게 새해 인사차 들러 이 사실을 알렸다. 뜻밖의 어머니 임신에 놀라더니 며느리의 손주 잉태 소식엔 파안대소했다. 선산 노상추 집안에 부자가 함께 자식을 보게 될 것이다. 


해지기 전에 선산 집에 도착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노비 덕돌이가 절에서 스님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며 '문경새재를 다녀오던 스님이 산에서 커다란 호랑이 발자국을 보았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후 새끼를 죽인 복수를 위해 민가로 내려와 그 당사자 집을 급습하여 모두 죽이고 호랑이 자신도 포수의 총에 사살되는 사건이 정말로 발생했다.


친정에서 몸조리하라고 보냈던 아내가 4월이 되어 선산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배는 불러오는 중이다. 기력이 부족해 숨이 차 하고 손발이 부었다. 집안에 임산부가 두 명이라 조심 또 조심을 해야 한다. 여동생과 아내는 곧 태어날 신생아를 위한 옷, 이불, 기저귀까지 준비한다고 바빴다.


상추는 효득 형이 구해온 과거 시험 기출 문제를 놓고 사랑채에서 본격적으로 과거 준비를 시작했다. 생원 시험에 출제된 네 문제 중 한 문제 정도는 답안을 작성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나머지 세 문제들은 도무지 깜깜했다. 생원시나 진사시에 합격하면 그 다음 대과 시험을 치르게 된다. 효득 형은 8일 정도 사랑채에 머물며 노상추의 문과 급제를 위한 공부를 도왔다.


올해도 날이 가물어 금오산에서 기우제를 위해 야단법석이었다. 유월이 되자 관아에서 여헌 선생(장현광)의 사적事迹을 정리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이에 노상추도 회의에 참석해 여러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며 일을 도왔다. 작업을 마친 글과 책을 관아에 제출하는 일을 상추가 맡게 되었다. 선산부 읍성에 두창(천연두)가 돌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동헌에 들러 관련 서류를 전하고 서둘러 관아를 빠져 나왔다. 상추는 귀가하지 않고 노비 덕돌이와 함께 미봉사에 들러 이틀 머물다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상추는 모 이앙을 마친 논을 둘러보고 귀가하는 길에 산파와 산바라지를 할 동네의 간난네와 안동댁 집에 들러 부탁 인사를 했다. 저녁 식사 후 안방으로 건너 가 어머님 상태를 살폈다. 이제 출산이 며칠 남지 않았다. 설사기가 멈추지 않고 토하고 열까지 있었다. 태아에 좋지 않다며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 출산이 시작되었다. 딸을 낳았다. 피를 많이 흘리셨다. 이 일로 어머니가 사망할 줄이야.


(사진, 130쪽)


10월, 마침내 상추도 득남을 맞았다. 아내는 출산후 狂症을 보였다. 소식을 들은 장인이 방문해 아내는 회복 중에 있다. 상태가 호전되어 장인은 돌아갔다. 이후 아내는 발작증을 보이며 피가 나도록 긁어댔다. 옆에서 간호하던 여동생 효명도 옷매무새가 흐트려져 있었다. 증세가 점점 더 심해졌다. 11월 26일 눈이 펑펑 내렸다. 이틀 후인 28일 아내는 사망했다. 


그런데, 아내의 상태가 이토록 악화되었는데도 몹쓸 말을 아내로부터 들어 화가 난 형수는 이 집에선 더 이상 못살겠다며 눈이 내리는 오후에 만류를 뿌리치고 떠나버렸다. 야속하고 또 야속했다. 초상을 치른 지 넉달 만에 또 빈소를 차렸다. 땅이 돌처럼 얼어붙어 며칠간 동네 장정들이 도끼로 파낸 끝에 12월 20일 겨우 아내를 매장했다. 이토록 무서운 한 해가 저물어갔다. 


(사진, 뒷표지)


#책추천 #조선시대생활사추천 #역사 #조선시대생활사 #노상추일기 #맹렬서생노상추의눈물나는과거합격기 #제1권 #청년가장 #김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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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22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노상추예요?
한자어겠죠?
내용이 흥미있네요.
생활사를 알수 있기도 하구요

호시우행 2026-01-22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먹는 상추가 아니라 성은 노씨, 이름은 상추입니다.ㅎㅎ

yamoo 2026-01-22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상추...ㅋㅋ 와~~ 이름 대박이네요..^^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 청빈과 이익 사이, 조선 선비들의 머니 스토리
곽재식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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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일곱 명의 선비들의 이야기 속에서 경제와 돈에 관한 여러 주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해서 조금 더 가깝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한국의 옛 사연을 통해, 오래 고민되어 온 경제와 현실의 문제들을 각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곽재식은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이자 SF 소설가로 여러 신문과 방송에서 과학 지식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필진과 패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다수의 저서들과 소설들을 출간, 발표했다. 


총 일곱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혁신의 설계자 정도전, 유동성 개혁론자 하륜, 인간 심리로 부를 해석한 철학자 이지함, 노비해방 사상의 선구자 유형원, 경제 규모혁신의 설계자 유수원, 실용주의 추구한 개혁 이런가 박제가, 과학기술의 거인 정약용 등을 통해 그들의 고민을 살펴볼 수 있다. 


정도전


정도전은 고려 말 조정에서 정치가로 활동하다 귀양살이를 거쳐 후학을 양성하다가 조선 창업에 올인했던 실질적인 조선 설계자였다. 그는 해박한 지식을 활용해 조선 건국 무렵에 <경제문감經濟文鑑>, <경국전經國典>이란 책을 썼다. 당시 경제라는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로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한다는 뜻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책'이란 뜻을 지닌 <경국전>에 경제와 돈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많이 실려 있었다.       


즉, 그는 <경국전>의 ‘경리經理’ 항목에서 고려 말의 겸병兼倂 문제를 다루었다. 겸병이란 남의 땅을 합쳐 가지는 것이다. 즉 세력이 강한 사람이 땅을 겸병해 차지하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다 보니, 땅 부자는 땅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더 많은 땅을 사들여 더욱 부유해지고 부자에게 땅을 조금씩 팔아 치우는 빈자貧者는 더욱 가난해지는 이를테면 고려 말의 '부익부 빈인빈' 현상을 지적했다. 


(사진, 경국전)


또한 경작할 땅이 없어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땅 주인에게 추수한 곡식의 절반을 줘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굉장히 심각한 수준임을 서술했다. 그 외에도 정도전은 땅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일으키는 두 가지 문제를 추가로 지적했다. 


첫째로 당시의 토지 제도가 복잡했기 때문에 땅에 대한 여러 복잡한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조선 초 토지 제도는 '수조권을 나눠준다'라고 명시했기에 말하자면 땅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곡식을 추수했을 때 누구에게 얼마씩 분배해야 하는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경국전>에서 정도전은 땅 하나에 주인이 7~8명이나 되어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둘째로 고관대작高官大爵의 권력자들이 땅을 독점하면 이로써 더 큰 이익을 억으려 부당한 압박을 가하고 나라의 제도를 좌지우지하며 정부와 결탁해서 판결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종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코자 정도전은 '땅의 국유화'라는 승부수를 던졌던 것이다. 


나라가 주인들로부터 땅을 거두어 새 법령에 따라 농사지을 땅을 백성들에게 다시 나눠준다는 발상은 성공했을까? 피 튀기는 혁명은 부메랑을 맞기 쉽다. 정도전이 말년에 남긴 시 한편(제목 '스스로를 비웃다')을 소개한다. 


(사진, 정도전 시)      


하륜


이성계의 조선 창업 최측근이 정도전이었다면 이방원의 최측근은 하륜이었다. 정도전과는 동문수학 친구였기에 조선 창업에도 참여했지만 나중에 원수 사이가 되고 만다. 관상에 관심이 많았던 하륜은 고려 말의 '영흥군 사건'(1389년)에 얽혀들었다. 영흥군 왕환은 고려 임금의 팔촌쯤 되는 인물로 어느 정도의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신돈과 관련된 사건에 휘말려 무릉도로 추방되어 귀양살이하던 그는 한동안 실종된 인물로 여겨졌다. 

이후 19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본인이 왕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말로는 어쩌다 보니 일본에 건너가게 되었다며 세월이 흐르는 사이 한국말도 잘하지 못하게 되었고 과거의 기억도 많이 잊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그의 외모가 달라져서 다른 사람으로 보였기에 진위 여부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관상에 특기를 지닌 하륜과 동료들은 '가짜 왕환'이라고 주장했으나 반면 왕환의 부인은 진짜라고 주장함에 따라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이자 이성계가 나서서 도와주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이성계 인맥에 포함될 수 있었던 셈이다. 

정도전이 불도저 스타일의 개혁가였다면 하륜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꾀돌이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방원에 줄을 대기 위해 장인인 민제 대감에게 사위인 방원이 왕이 될 관상을 지녔다고 넌짓이 말하자 이 말이 방원에 귀에 들어가게 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이후 이방원이 국가 운영을 장악하자 하륜은 고려 때부터 내려오던 최고의사 결정 조직인 '도평의사사'를 폐지하고, 대신 '의정부'를 만들었다. 이처럼 정도전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조선 제도들 중엔 하륜의 수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경우가 많았다.      

1401년 '종이로 돈을 만들어 통용하자'는 하륜의 의견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어 지폐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에서 사용하던 용어는 ‘저화楮貨’로, 중국에서 사용했던 교초와는 조금 다르다. 저화에서 ‘저’는 닥나무를 뜻하는데, 조선에서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쓰던 나무다. 그러므로 저화는 지금 쓰는 ‘지폐’라는 말과 거의 동일한 느낌을 준다.


(사진, 조지서 터)

<조선왕조실록> 1415년 음력 7월 25일의 기록을 보면, 지폐를 만드는 기관은 ‘조지서造紙署’였다. 서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에 가 보면 조지서 터 비석이 있다. 그 근처가 한국 역사상 최초로 돈을 찍어 낸 곳일 가능성이 높다.

이지함

우리들 대부분은 이지함을 대하면 맨 먼저 '토정비결'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를 만든 이는 이지함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이지함의 인생은 불운과 고난, 빈곤과 실패로 가득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그는 좋은 집안의 차남으로 출생(1517년)한 충청도 사람이며, 좋은 가문으로 장가갔지만 말이다. 

이지함은 상업의 장점을 깨달았다. 그것도 먹고살고자 온몸으로 바닥부터 굴러가며 알아냈다. 그는 노 젓는 일부터 시작해 품삯을 벌고자 땀을 흘리는 와중에 밀물과 썰물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게 절박하게 고민한 덕택에 그는 항해와 상업의 달인이 될 수 있었고, 큰 장사로 많은 재물을 벌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의 부모님 묘지가 바닷가에 있어서 여차하면 물에 잠길 것 같아 둑을 쌓아 바닷물을 막으려고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비록 바닷물로부터 부모님의 무덤을 완전히 지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효성에 감동해 하늘이 이지함에게 평생 소중하게 활용할 지식인 밀물과 썰물에 대한 깨달음을 안겨줬다고 짐작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한 조선 선비들

이밖에도 유형원의 <반계수록>, 유수원의 <우서迂書>, 박제가의 <북학의>, 정약용의 <경세유표> 등에 실린 이야기를 통해 학자들의 고민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수원은 스스로의 탐구와 직관으로 중상주의 상업이론을 책에 담고 있다. 특히, 같은 중상주의 실학자인 박제가의 '이사이망以奢而亡 이검이쇠以儉而衰'(사치로써 망하고, 검소로써 쇠약해진다)는 주장은 마치 과거 미국 경제가 '소비는 미덕이다'란 캠페인을 벌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 이슈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역사 #한국사 #조선시대 #경제이야기 #경제를궁리한조선의선비들 #곽재식 #믹스커피 #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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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자본주의
김창익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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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는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만들려면 일단 제도권의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다. 비록 이자 지급 등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는 못했지만, 기득권이 일단 굳게 닫힌 문을 열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자는 아니더라도 사용자에게 부가적인 이익을 줄 수 있는 우회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일단 평화의 메시지로 포장된 트로이 목마인 셈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김창익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25년 동안 <서울경제>를 비롯한 경제 전문지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실물경제와 화폐 시스템을 연구해 왔다. 거대한 부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얻었으며 이를 통해 거시경제가 수요와 공급의 원칙보다 정치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트코인이 달러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연구 중이다. 

총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빅테크 제국의 침략(1장), 월가와의 전쟁(2장), 규제와의 전쟁(3장), 권력과의 전쟁(4장), 중국과의 전쟁(5장), 빅테크 이후의 세계(6장) 등을 통해 월가가 설계한 경제 체제는 우리들이 선택한 시스템이 아니라서 이를 대체할 대안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들이 지금 정글을 탐험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수십 미터 떨어진 덤불에서 바스락거림이 있을 경우 이를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할까? 호랑이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없다고 결론짓는 것이 과연 영리한 판단일까? 특히 생존과 관련된 판단을 할 경우엔 최대한 보수적으로 하는 게 유리하다. 그렇다. 우리들이 살고 잇는 경제하는 세계는 바로 정글이기 때문이다. 

빅테크 제국의 침략(스테이블 코인) 

세계경제를 장악한 빅테크 기업들의 다음 목표는 '금융'이다. 애플, 구글, 아마존, 테슬라 등의 기업은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빅테크 기업들은 이용자의 높은 충성도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기들 생태계 내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구축하려 한다. 즉 그들만의 리그에서 사용되는 새로운 개념의 기축통화인 셈이다. 

메타~ 리브라(스테이블코인)
애플~ 애플페이, 애플카드 
아마존~ 아마존코인 
테슬라~ 비트코인(도지코인)으로 결제 
구글~ 구글페이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결제 앱은 돈의 흐름을 넘어서, 행동 데이터와 연결된 AI 기반의 개인화 금융시스템으로 진화 중이다. 이는 빅테크가 금융 소비자의 뇌와 지갑을 동시에 장악하려는 시도이므로 단순한 테크 기업이 아니라 데이터, 사용자,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심지어 화폐까지 장악하려는 거대한 플랫폼 제국이다. 금융은 그 제국의 마지막 퍼즐이다. 비록 리브라가 실패했을지라도 이는 일시적인 좌절일 뿐이다. 지금 그들은 AI를 무기로 새로운 형태의 통화 권력을 구축하는 중이다.

빅테크와 월가와의 전쟁

트럼프는 월가의 논리로 만들어진 자유시장 경제 프레임을 유지하되 그 내용물은 이전과 전혀 다른 것으로 채우겠다는 대안이 바로 '빅테크 자본주의'이다. 즉 월가는 반反세계화란 족쇄를 채워 보호무역주의라는 우리 안에 가두고, 성장 일로를 걷고 있는 매그니피센트 7의 비교우위를 앞세워 자본주의 이후의 자본주의(자본주의 2.0) 체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월가는 빅테크가 가려는 길목을 선점하고 규제란 장벽으로 그들을 가로막는 낡고 비효율적인 구체제의 상징이다. 빅테크는 혁신의 마지막 단계에서 궁극적으로 금융이란 영역을 통과해야 한다. 선점 후 독점이란 빅테크의 성공 루트를 그대로 가다 보면, 지불과 신용 창출이란 금융의 역할을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빅테크의 인공지능 기술이 향하는 종착역은 군수산업이다. 이는 냉전시대를 거쳐 닉슨 쇼크 이후 월가가 지배해온 미국의 패권 산업이다. 빅테크와 월가는 자본주의가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숙명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일종의 패권 전쟁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 없다.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는 빅테크가 언제 금융의 핵심 기능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 기능은 지불에서 신용 창출로의 확장이다. 신용 창출이란 '대출을 통한 화폐 발행'을 의미한다. 미국 국방부 예산의 무개 중심이 F-35에서 드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기서 F-35란 월가가 투자한 군산복합체의 무기를, 드론은 빅테크 AI 기술로 만들어진 무기를 의미한다. 

규제와의 전쟁(EU의 빅테크 규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국은 아마존,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플랫폼 빅5'를 중심으로 데이터, 에너지, 결제, 소프트웨어를 모두 통합한 복합 인프라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이같은 흐름에서 기술, 자본, 통화 주권 모두를 점점 잃어가고 잇는 중이다. 유럽의 빅테크 부재는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문화, 자본 흐름, 정책 방향 등 총체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다.    

유럽은 미국 빅테크의 정보 독점과 시장 지배가 자국의 민주주의, 주권,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판단하면서, 규제를 더 이상 ‘제약’이 아닌 ‘방패’이자 ‘창’으로 삼게 됐다. 기술 그 자체는 미국이 만들지만, 기술이 작동할 ‘질서’는 유럽이 정한다는 이 새로운 질서는, 단순한 법적 프레임이 아니라 국제 정치경제의 규칙을 새롭게 쓰는 방식이다. 규제는 이제 통행세이자 주권 선언의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유럽은 ‘기준을 만드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원칙 아래, 기술 패권 경쟁에서 법과 윤리를 무기로 내세운 새로운 권력 행사를 시작한 것이다.

권력과의 전쟁(트럼프와 손잡은 빅테크)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캠페인 초부터 '반월가, 반엘리트, 반중국'을 기치로 내세워 반세계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이런 기조는 월가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금융권은 트럼프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도 월가의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카멀라 해리스) 캠프는 여전히 금융권의 신뢰를 얻고 있었으며, 트럼프는 월가의 주류 네트워크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고 있었다. 

바이든의 반대편엔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일런 머스크, 피터 틸 등 '반세계화 빅테크 진영'이 도널드 트럼프의 손을 잡았다. 이들은 기존의 월가-정부-관료-노조로 이어지는 체계가 미국을 비효율과 불균형, 규제 과잉의 늪에 빠뜨렸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반세계화 진영은 트럼프 재선 캠프와 전략적 동맹을 맺고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그 상징이 바로 '정부효율부DOGE' 프로젝트였다.     

바이든에게 ‘과두寡頭’는 머스크와 실리콘밸리였고, 머스크에게 ‘과두’는 월가와 워싱턴이었다. 이 대립은 단순히 개인 간의 불화나 정당 간 경쟁이 아니라, 세계화 이후의 국가 정체성과 기술 권력의 지위를 두고 벌어지는 구조적 전쟁이었다. 

바이든은 기술 재벌의 정치 개입을 민주주의의 파괴로 규정했다. 머스크는 기존 세계화 엘리트를 미국 경제 몰락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두 세계관은 양립 불가능했고, 이념과 이해관계, 권력구조를 둘러싼 거대한 균열 속에서 미국 정치는 새로운 시대의 대립 구도로 재편되고 있었다.

중국과의 전쟁(중국의 AI 기술 굴기)

2025년을 기점으로 중국은 인공지능을 중심에 둔 대전환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AI를 '문명사적 도약의 계기'이자 '제2의 문화대혁명'으로 규정하며 이를 국가의 핵심 전략 자산으로 선언했다. 이에 인해전술을 앞세워 AI 중심 산업 국가로의 구조 재편에 착수했다. 말하자면 계란을 한바구니에 모두 담고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감내하겠다는 투자 전략인 셈이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다. 기술 패권의 중심으로 부상한 인공지능을 놓고서 세계 각국이 경쟁을 펼치는 지금, 구조적으로 민주주의는 AI 패권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력 분산과 사회적 가치라는 민주주의 고유의 체계가 AI 개발과 확산에 어떤 제약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첫째,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이 느리다 
둘째, 민주주의는 윤리와 공공성을 우선시한다
셋째, 데이터 접근성과 수집에서 민주주의는 불리하다
넷째, 분권 체제는 중앙집중 추진력을 약화시킨다
다섯째, 민주주의 기업문화가 장애물로 작용한다 

기술 사상가들이 보기에, 민주주의는 속도, 집중력, 예측 가능성이라는 AI 시대의 주요 가치들과 충돌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권위주의는 AI를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강화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이 기술을 어떻게든 길들이고 제한하려 한다. 그러나 이 기술의 제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AI는 점차 민주주의의 외곽부터 잠식해 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피터 틸이 “기술은 설득이 아닌 실행으로 세상을 바꾼다”라고 말한 것이나, 일론 머스크가 전통적인 정부를 ‘비효율적 유물’이라 평하며 기술 기반의 직접 민주주의 시스템을 상상하는 것도 결코 공상이나 과장이 아니다. 그들은 기술이 체제를 대체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찍부터 감지하고 있던 것이다.

빅테크 이후의 세계

"악마의 적은 천사가 아니라 또 다른 악마다"

스테이블코인의 세계화는 결국 브레턴우즈 체제의 디지털 확장판이며, 주체만 달라졌을 뿐 권력구조는 그대로인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푸코가 말한 생체 권력, 즉 권력은 더 이상 폭력적 통치가 아니라 일상적 삶의 관리와 규칙 설정을 통해 행사된다는 개념과도 맞닿는다. 

빅테크는 플랫폼을 통해 금융, 소비, 노동, 인간관계까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하고 연결하거나 단절할 수 있는 권력을 쥐게 되고, 이는 과거 어느 국가나 은행도 갖지 못했던 초월적 통제력이다. 

권력은 언제나 소수에게 집중되어 왔으며, 달라지는 것은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의 형태일 뿐이다. 과거에는 국가였고, 그다음은 월가였으며, 이제는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조정자가 되고 있다. 악마의 적은 천사가 아니라 또 다른 악마다. 탈중앙脫中央이 불러온 기술적 혁신은 그 본래의 이상과는 다르게, 다시 새로운 중앙집권의 얼굴을 하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부의 패권을 둘러싼 작용과 반작용
 

빅테크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조용히 화폐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과거 중앙은행과 정부만이 누리던 주조 이익은 이제 플랫폼 기업이 일부 가져가려는 것이다. 이용자는 그저 편리한 결제 수단을 사용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이면에선 특정 기업이 발행한 토큰이 사실상 새로운 종류의 화폐처럼 기능하며 독자권 경제권을 넓혀간다. 월가는 스테이블코인을 떠받치는 안전자산을 장악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월가는 자신들이 익숙한 게임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의 심장을 붙집으려 한다. 

#경제경영 #빅테크자본주의 #김창익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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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1-17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론 머스크, 피터 틸등은 빅테크가 기존의 ‘금융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팔란티어의 두 인물인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는 모두 法과 哲學을 전공한 자들로서 미국의 다양성이 남북전쟁이라는 잘못된 단추로부터 출발한다는 사고를 가진 위험한 사람들로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은 파시스트라고 알고 있는데 빅테크의 파시스트를 경험하는 원년이 바로 26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1인 입니다.
이런 점에서 언급해주신 일론 머스크, 피터틸과 알렉스 카프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ㅠ

언젠가는 알렉스 카프나 피터 틸에 대한 글을 저도 쓰게 될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들을 ‘위험한 인물들‘로 바라보며 그들의 발언을 늘 주시하는 편입니다 ㅠ

공감이 가는 글이라 주절거리게 되는군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