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친구, 선후배에게 갑자기 전화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많은 분들도 알고 있지만,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반가움도 있지만, 동시에 부탁에 대한 부담감도 가져다 줍니다.  어제 오랫만에 걸려 온 후배의 전화도 안타깝지만, 부탁의 전화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많이 부끄럽지만, 힘든 부탁을 한다는 후배의 말로 오랫만의 통화는 이어졌습니다. 후배와 통화를 잘 마친 후 밤에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일부의 생각을 이번 페이퍼에 올려봅니다.

 

 孟子曰:惻隱之心,人皆有之;羞惡之心,人皆有之 ... 惻隱之心,仁也;羞惡之心,義也... 仁義禮智,非由外鑠我也,我固有之也,弗思耳矣 측은지심은 인간이라면 예외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요, 수오지심 또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요... 측은지심은 인의 발로이며, 수오지심은 의의 발로이며,,, 인/의/예/지라 하는 것은 밖으로부터 나에게 덮어씌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맹자 孟子> <고자장구 告子章句 상 上 6a-5> 中 (p620) 


  맹자(孟子, BC 372 ~ BC289) 는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은 각각 인 仁과 의 義의 단서이며,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제 경우에 비춰보면,후배의 딱한 처지를 들었을 때 저는 '측은지심'이, 후배 마음에는 '부끄러움(수오지심 ?)'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려운 처지에 있을수도 있기에 이것을 '부끄러움'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저를 포함한 누구나 후배처럼 어려운 처지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삶은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주고 받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사단'을 가지고 있어야겠지요.  '사단' 하면 우리에게는 '사단칠정논쟁 四端七情論爭'이 익숙합니다.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1527 ~ 1572)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 ~ 1571)에게 보낸 편지안에서 사단과 칠정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사단 四端 이라는 것이 있어 그것을 넓히고 채우고자 하는 것이라면, 사단이 이 理의 발현임은 확실합니다. 칠정 七情이란 것이 타올라 더욱 번져나가서 그것을 붙들어 묶어서 중도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라면, 칠정이 기의 발현임은 또한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칠정이 발현하여 절도에 맞는 것은 애초에 사단과 다르지 않습니다. 칠정이 비록 기에 속하긴 해도 이는 분명히 저절로 그 가운데 있습니다. 발현하여 절도에 맞는 것은 곧 하늘이 준 성이요, 본래부터 그러한 실체이니, 어찌 그것을 기의 발현이라 하여 사단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p479)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中


 기대승은 사단뿐 아니라 칠정 -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 - 모두 이 理의 발현이라 주장합니다. 이 理와 기 氣에 대한 논의는 조선시대 200여년 동안 계속된 논쟁이니만큼, 쉽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금 거칠게 말해서 '이'를'보편 법칙', '기'를 '보편법칙의 구체적 표현(또는 가능성)'으로 정리하면 너무 무리한 표현일까요. 

 

 '만물제동 萬物齊同'이란 만물을 기 氣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기라는 평등 위에서 만물의 차등이 성립합니다. 기라는 보편성 위에서 만물의 개별성들이 성립합니다. 기는 무이죠. 없음이 아니라 아무-것도-아님 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기의 이런 성격을 장자는 즐겨 '허 虛'로 표현합니다.(p726) <개념-뿌리들> 中


 제가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느꼈던 안타까움 역시 '기 氣'의 표현임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 경우 측은지심은 일종의 동감이겠지요. 이번에는 '동감(同感, sympathy)'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일반적으로 동감과 관련해서 널리 알려진 저작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타인에 대한 공감을 기반으로 자신의 경제학 이론을 전개합니다.

 

 타인의 환희에 동감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그리고 시기심(猜忌心)이 환희에 대한 동감을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는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기꺼이 그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환희의 감정에 빠져든다. 그러나 비탄(悲歎)에 공감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며, 비록 우리가 공감하는 경우에도 항상 마지 못해서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비극 공연을 볼 때 우리는 그 연기가 주는 동감적 비애에 가능한 한 저항하다가, 더 이상 그 감정을 피할 수 없게 도어서야 비로소 동감한다. 그런 때에도 우리는 동석자(同席者)에게 우리의 관심을 숨기려고 애를 쓴다.(p83) <도덕감정론> 中


 그렇지만, 애덤 스미스의 동감은 '기쁨에 대한 동감'과 '슬픔에 대한 동감'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기쁨에 대한 동감은 자발적인것에 반해, 슬픔에 대한 동감은 수동적이며, 위선(僞善)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른 양상의 동감에 대해 독일 현상학자  막스 셸러(Max Scheler, 1874 ~ 1928)는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 혼자서는 결코 자기 자신의 체험과 의지 그리고 행동과 자기의 존재에 대한 윤리적 가치들을 직접적으로 이끌어낼 수 없다. 자기의 행동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관찰자의 판단과 태도 속에 자신을 대입해보고 결국 자기 자신을 편견 없는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그리고 동감을 통해서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의 증오, 분노, 흥분, 복수심에 직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안에서 자기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판단의 흐름이 생긴다는 것이다.(p37)...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양심에 대한 착각이며 사회적 암시 soziale Suggestion 때문에 스스로 느낀 가치를 은폐한 것이 아닌가?(p38)<동감의 본질과 형태들> 中


 막스 셸러는 <동감의 본질과 형태들 Wesen und Formen der Sympathie>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온전하게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기론 理氣論의 관점에서 본다면 셸러의 이론을 본다면, 칠정이 이의 발현이라고 본 기대승의 입장에 조금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종합하면, 우리의 감정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이성 理性의 표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내적 지각의 작용과 그의 본질로 볼 때, 그리고 내적 작용에서 현상하는 사실 영역과 연관해서 볼 때, 각자가 동료 인간의 체험을 자신의 것과 똑같이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p505)... 동일한 영혼 체험이 여러 개인들에게 주어질 수 있다 - 두 인간이 엄밀하게 동일한 고뇌를 느낄 수 있다.(p510) <동감의 본질과 형태들> 中


 다시 제 경우로 돌아와서, 제가 후배에게 느꼈던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은 어린 시절을 친하게 지냈기에 별다른 어려움없이 그의 감정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때문에, 스미스의 말처럼 후배의 기쁨을 슬픔보다 더 공감한다는 말보다는 셸러의 설명이 더 공감됩니다.(심한 경우, 후배가 로또에 당첨되었다면 배가 아팠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다른 생각을 해봅니다. 후배의 감정에 동감을 했다면, 그 이면에 사회적인 영향이 있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에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 490 ~ BC 415)는 인간이 사회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제우스로부터 염치와 정의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짐승들보다 약해서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전문기술적인 기술은 그들에게 양식을 위해서는 충분한 도움이 되었지만 짐승들과의 전쟁을 위해서는 부족했지요.(322b)... 인간은 시민적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서로에게 부정의하게 처신했고, 결국 다시 흩어져서는 죽임을 당했지요. 그래서 제우스는, 우리 종족 전체가 멸종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헤르메스를 보내어 인간에게 염치 aidos 와 정의 dike를 가져다 주게하였지요. 나라의 질서와 우정의 결속이 그들을 함께 모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322c)... 시민적 덕은 전부 정의와 분별을 거쳐서 나와야 하는 것인데요, 이 경우에는 모든 사람을 다 용인해 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고요. 이 덕에는 모두가 참여해야 하며, 안 그러면 나라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겁니다.(323a) <프로타고라스> 中 


 프로타고라스가 창작 신화를 통해 설명한 염치 aidos와 정의 dike는 사회를 구성하는 덕목입니다. 여기에서 염치는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오만 hybris의 반대말로서,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염치는 절제, 겸손 등의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조금 넓게 생각해보면 프로타코라스의 염치, 절제와 맹자의 측은지심, 수오지심에서 통하는 바를 발견게 되는데, 그것은 이들이 나라(국가) 또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덕목이라는 점입니다.


 동서양 모두에서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 속에서 인간의  본성(本性)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문화유전자에 의해 매개된 것은 아닐런지. 이에 대해서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 )가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서 개념을 제시하고, <확장된 표현형 The Extended Phenotype>의 표현을 빌려봅니다.

 

새로이 등장한 수프는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에게도 이름이 필요한데, 그 이름으로는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명사가 적당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를 '밈 meme'으로 줄이고자 한다...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등이 있다.(p322) <이기적 유전자> 中


 밈은 일정한 구조를 지니며 정보를 저장하고자 뇌가 사용하는 물리적 매개체 어떤 것에든 실현된다. 뇌가 시냅스를 연결하는 유형으로 정보를 저장한다면, 원리상 밈은 시냅스 구조의 일정 유형으로서 현미경으로 확인 가능하다... 표현형 효과는 뇌에 있는 밈이 밖으로, 눈에 보이게 발현된 것이다. 표현형 효과는 다른 개체가 가진 감각기관으로 지각 가능하고, 이를 수용하는 개체의 뇌에 스스로를 각인해 수용하는 뇌에 원리 밈의 사본을 새겨넣는다. 그리하여 밈의 새로운 사본은 표현형 효과를 널리 전파할 수 있으며, 그 결과 해당 밈 자체의 더 많은 사본은 다른 뇌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p214) <확장된 표현형> 中


 도킨스의 표현이 맞다면, 우리는 왜 문화유전자(밈)을 통해서 이들을 전달하고 있을까요. 여기, 동감하지 못하는 경우와 동감하는 경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중 지혜서인 <욥기.에서는 욥이 결백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한마디로 동감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성토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자네들은 언제까지 나를 슬프게 하고 언제까지 나를 말로 짓부수려나? 자네들은 임미 열 번이나 나를 모욕하고 괴롭히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구려. 내가 참으로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 잘못은 내 잘못일세. 자네들은 참으로 내게 허세를 부리며 내 수치를 밝히려는가?(욥 19 : 2 ~ 5)


 동감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독자들이 친구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좋을 수 없습니다. 사실, <욥기> 전반에서 친구들이 하는 말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매몰차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반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의 <리어 왕 King Lear>에서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처지에 동감하는 코딜이어의 대사 속에서 독자 역시 진한 슬픔과 함께 다소의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운면의 불행에 우리 모두가 나약한 모습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기들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해도, 휘날리는 백발이 

그들의 동정심을 일으켰을 텐데, 이 얼굴로 

사나운 비바람을 마주하셨다는 말입니까? 

두려움을 일으키는 암울한 천둥소리에 맞서면서? 

가장 무시무시하고 빠르게 교차하는 번개가 

내리치는 속에서? 이렇게 몇 올 남지 않은 맨머리로 

불쌍한 척후병처럼 경계를 섰나요? 그런 험한 밤에는

나를 물었던 적의 개라 할지라도 따뜻한 난롯가에

두었을 겁니다. 불쌍한 아버지, 당신께서는 

돼지들과 부랑자들과 일행이 되어 썩은 지푸라기를 덮고

오두막에서 쓸쓸히 지내셨군요. 아, 슬프다 슬퍼! (p202) <리어왕 4막 7장> 中


Had you not been their father, these white flakes 

Did challenge pity of them. Was this a face

To be opposed against the warring winds?

To stand against the deep dread-bolted thunder

In the most terrible and nimble stroke

Of quick cross lightning? To watch - poor perdu! -

With this thin helm? Mine enemy's meanest dog,

Though hee had bit me, should have stood that night

Against my fire. And wast thou fain, poor father,

To hovel thee with swine and rogues forlorn

In short and musty straw? Alack, alack!(p260) <King Lear Act4, scene7 28 ~ 38>


 때문에,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살면서 '최소한 사람이라면~'이라고 생각하는 덕목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간의 작은 위로 속에서 힘을 내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필요했기 때문에 '동감'이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랫만에 걸려온 후배의 전화. 그리고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면서 느꼈던 동감(同感)이라는 문제에 대해 두서없이 생각해봤습니다. 덕분에, 페이퍼가 너무 길어졌네요.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PS. 하얗게 불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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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9-03-30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겨울 호랑이님, 존경스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3-30 23:37   좋아요 1 | URL
에고. 과찬이십니다. 생각난 것을 붙이다보니 글이 길어졌고 주제가 다소 산만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2019-03-31 1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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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1 15: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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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연의가 학교에서 교과서를 받아왔습니다. 예전 교과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국민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운 국어 교과서만은 기억이 또렷합니다.

˝철수야, 안녕!˝
˝영희야, 안녕!˝
˝바둑아, 안녕!˝ ˝멍멍!˝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어렸을 때는 학교 밖에서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지금 1학년 아이들은 벌써 학교에 들어가 바르게 앉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니, 공자가 제자 자로를 평가한 말이 떠오릅니다.

공자는 또 「논어」「선진」에서 (자로를)이같이 평했다. ˝유는 ‘승당‘한 사람이다. 단지 ‘입실‘하지 못했을 뿐이다.˝「사기열전1」「중니제자열전」중

아직 ‘입교‘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업을 시작한 제 경우에 비해, 벌써 ‘입실‘한 상태에서 수업을 시작하는 연의와 친구들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면서, 마음의 부담이 클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항상 학업이 쉽고 재밌지는 않겠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모든 어린이들이 자라길 바라 봅니다. 그리고, 부모로서 좋은 환경과 배려심을 가져야함을 다시 느끼면서 아침을 열어 봅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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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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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09: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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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09: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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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0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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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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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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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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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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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1 1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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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08: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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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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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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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2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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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2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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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3-30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교과서에는 철수, 영희 대신에 어떤 이름이 나오는지 궁금하군요. 지수, 지윤. 이런 이름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한때 ‘지‘자를 쓰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겨울호랑이 2019-03-30 20:40   좋아요 1 | URL
연의 교과서를 살펴보니 한글 읽기부터 시작되네요. 이름은 2학기 때 나올 것 같습니다.^^:)

2019-03-30 1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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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0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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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1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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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0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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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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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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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시골 마을의 작고 아름다운 집 이야기.

시골이 개발되어 도시가 되면서, 변화하는 주위에 적응하지 못한 작은 집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작은 집은 너무 슬프고 외로웠습니다. 칠이 벗고지고 더러워졌습니다... 유리창은 깨지고 덧창은 비뚜름히 떨어져 나갔습니다. 작은 집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작은 집 안은 변함 없이 훌륭했는데도요.(p35)

그런 작은 집은 집을 만든 사람의 손녀의 도움으로 다시 먼 시골로 옮겨가게 되고 행복을 찾습니다.

유리창이랑 덧창도 말끔하게 고치고 바깥 벽에는 옛날처럼 분홍색이 도는 색깔로 예쁘게 칠을 했습니다. 작은 집은 이 언덕 위로 옮아오고 나서부터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p42)

다행히 집이 행복을 찾는 이야기로 끝이 나서 아이도 다행으로 생각하며 책을 마무리 지었습니다만, 저는 조금은 엉뚱한 다른 생각을 해봅니다..

작은 집을 튼튼하게 지은 사람이 말했어요.
˝금과 은을 다 주어도 이 작은 집은 절대로 팔지 않겠어.이 작은 집은 우리 손자의 손자, 그리고 그 손자의 손자가 여기서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거야.˝(p5)

다리가 없어 움직일 수 없는 작은 집의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집을 만든 이의 완고한 마음으로 인해 작은 집은 변화하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은 채 외롭게 죽어갔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빠르게 도시화되고 있는 주변이 아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작은 집이 불행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훌륭한 집 안을 가지고 있는 작은 집이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의 의인화된 표현이라면, 이러한 점은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바쁘게 일에 쫓기고, 도시에서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자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현대인들. 그 비극을 작품속에서 깊이 느끼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작은 집은 도시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건물 용적률, 건폐율을 높이고 재개발을 해야겠지만요. 도시에 맞는 작은 빌딩으로서 변화했다면 나름의 행복이 있지 않았을까요.

다른 의미에서 작은 집의 불행은 선택할 수 없었던 것에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도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할 수도 없었고, 남에 의해 시골로 강제 이주(?)당한 작은 집. 그곳마저 도시로 변화한다면 그때까지 작은 집은 아마도 불행할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위안을 받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우리가 선택을 주저한다면 그것은 ‘욕심‘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도시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려는 마음, 시골에서 편리하게 지내려는 마음이 그런 종류의 것이겠지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큰 행복이 아닐까를 딸에게 「작은 집 이야기」를 읽어주고 난 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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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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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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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1 16: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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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0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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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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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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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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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즈볼스키 백작과 영국 대사 아서 니콜슨(Arthur Nicolson) 경 사이에 역사적인 영러 협상이 극비리에 체결되었다. 티베트와 관련하여 두 나라는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철도, 도로, 광산, 전신의 양보를 얻으려 하지 않으며, 대표를 보내지 않고 종주국인 청나라는 통해서만 라싸와 이야기를 한다는 데 합의했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이 영국의 세력권 안에 있으며, 자신들의 세력권 밖에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양국은 페르시아의 독립을 존중하고 다른 나라들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교역을 하도록 약속하면서도, 가운데 중립 지대를 두고 두 세력권으로 분할하기로 합의했다.(p656) <그레이트 게임> 中


 <그레이트 게임 The Great Game>은 19세기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과 러시아간 일어난 충돌을 배경으로 한다. 1907년 최종 협상에서 논의된 지역이 티베트,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이란)라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이들 두 제국의 대결이 주로 중앙아시아에서 집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러시아의 전략


  이미 18세기 시베리아로 진출하고 청나라와 네르친스크 조약(1689)을 체결하며 동진(東進)을 완료한 러시아는 풍부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영국과 같은 진정한 세계 제국(帝國)이 되기 위해서는 소비 시장(市場)이 필요했다. 서쪽으로는 스웨덴, 폴란드 등 유럽국가와 마주하고, 동으로는 청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가 내려갈 수 있는 곳은 남쪽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남쪽에는 팽창하는 러시아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영국이 있었다.


 러시아의 국내 시장은 너무 작고 가난해서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반면 경쟁자인 영국은 더 고급스러운 기계를 사용해 유럽과 아메리카 양쪽에 싼값으로 물건을 공급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신의 문간인 중앙아시아에 잠재력이 큰 거대한 시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시장은 워낙 외졌기 때문에 경쟁자와 마주치지 않았다. 영국이 중앙아시아에 들어오는 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했다.(p145) <그레이트 게임> 中


 히바를 손에 넣게 되면 러시아는 엄청난 부를 안겨주는 인도 무역의 영국 독점을 끝낼 수 있었다. 히바를 손에 쥐면 "인도의 교역을 포함한 아시아의 모든 교역"이 히바를 거쳐 카스피 해로 가고 거기서 다시 볼가 강을 거쳐 러시아와 유럽 시장으로 가능 경로로 재조정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영국의 인도 통치도 크게 흔들릴 것이고, 결국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p126) <그레이트 게임> 中


 중앙아시아와 유럽권 러시아를 연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카스피 해 동쪽 연안에 항구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람과 물자는 볼가 강을 따라 이동하다가 카스피 해를 가로질러 이 항구에 이를 수 있었다. 캅카스(코카서스)의 러시아 주둔지에서 그 항구까지 배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히바를 정복하고 골치 아픈 투르크멘 사람들을 진압하면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코칸트에 이르는 철도를 사막에 놓을 수 있었다.(p407) <그레이트 게임> 中



[그림] 우즈베키스탄 도시 히바와 중앙아시아(출처 : 구글지도)


2. 영국의 전략


 18세기 표트르 대제(Pyotr Velikiy, 1682 ~ 1725)이래 뒤늦게 유럽으로 편입한 러시아와 달리 19세기 이미 세계 최대 제국으로 자리잡은 영국은 이미 충분한 해외식민지(시장)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면, 그것은 인도(India)때문이었다.


 메이오 경은 인도를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은 전진 정책이나 군사적 모험이 아니라, 경비가 소홀할 수밖에 없는 광대한 국경 지대 둘레를 영국에 우호적인 완충 국가들로 사슬처럼 둘러싸는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p431) <그레이트 게임> 中


 새로운 시장 확보를 위해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의 확보를 노리는 러시아, 대영제국의 한 축인 인도를 지키기 위한 영국의 대결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리는 1세기 동안 벌어진 두 제국의 충돌은 주로 아프가니스탄(Afganistan)을 중심으로 발생하게 된다.


 3. 두 제국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


[그림] 제1차 영-아프간 전쟁(출처 : https://about-history.com/first-anglo-afghan-war-1839-1842-part-the-great-game/)


 영국과 러시아, 여기에 페르시아까지 가세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침공을 했지만, 많은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은 침략을 허용하지 않았고, 영국과 러시아는 2차례에 걸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심각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레이트 게임은 이후에도 약 50년에 걸쳐 계속되는데, 이는 두 제국이 거둔 다른 지역에서의 승리때문이었다. 동지중해에서의 영국 승리와 시베리아 지역에서의 러시아 승리는 각자에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아픈 기억을 지우는 작은 위로가 되었다.


 페르시아는 앞서 보았듯이 자신들이 한때 소유했던 동부 지방을 되찾으려 했다.(p227)...  러시아의 침식에 맞서 아프가니스탄에 인도를 보호해줄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기는 커녕 영국군이 겪은 사상최악의 참사로 꼽을 만한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교도 야만인 무리에 불과한 존재들이 집에서 만든 무기로 무장을 하고 지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군대를 궤멸시켰다. 이것은 영국의 자존과 위엄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일이었다.(p352) <그레이트 게임> 中


 이제 아프가니스탄 국격합동위원회가 일을 시작했다. 위원회는 여러 번 의견이 충돌하여 시간을 질질 끌다가 마침내 1887년 여름에 동부를 제외한 국경의 모든 부분에 합의하는 의정서에 조인했다. 어쨌든 전쟁은 피했다.(p547)... 그러나 동쪽으로 더 나아간 파미르 고원에서는 국경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제 그레이트 게임의 초점은 이 황량한 지역, 오늘날에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에 맞추어졌다.(p548) <그레이트 게임> 中


4. 영국의 승리 : 크림전쟁


 간호사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 ~ 1910)이 활약한 것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크림전쟁(Guerre de Crimee,1853 ~ 1856)을 통해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를 노리던 러시아의 야심을 분쇄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영국은 이집트 - 시리아 - 이라크 - 인도로 이어지는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여기에 수에즈 운하 주식 매입, 해저 케이블 매설, 키프로스 지배(1878) 등을 통해 동지중해의 지배권을 확보하면서 영국은 지브롤터에서 인도에 이르는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다.


 1854년 9월 영국과 프랑스는 흑해에 있는 러시아의 중요한 해군 요새 세바스토폴을 포위했다. 이 요새를 차지해 파괴하는 것이 터키의 독립 유지에 긴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 349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양쪽에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p371)... 승전국들의 주요한 목적은 러시아가 근동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패전국들은 흑해 지역과 관련하여 가혹한 조항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흑해와 그 연안에 전함을 띄우지도 못하고, 해군 기지를 비롯한 기타 요새를 건설하지도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또 다뉴브 강 어귀, 그리고 그들이 점령했던 터키의 도시 바툼과 카르스와 더불어 발칸 북부 영통를 내주었으며, 술탄의 영토에 사는 기독교인을 종교적으로 보호할 권리를 포기했다.(p372) <그레이트 게임> 中


5. 러시아의 승리 : 극동지역


 반면, 러시아는 아이훈 조약(愛琿條約, 1858) 등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를 확보하면서 극동지역에서 남하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영국은 인도에서 세포이 항쟁(Sepoy Mutiny, 1857 ~ 1858)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기에,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로 진출할 기회를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시베리아 주둔군이 그 전 3~4년동안 청나라를 제압하며 얻어낸 영토였다. 그동안 러시아 지휘관들은 영국이 인도처럼 중국도 손에 넣을까 봐 걱정이 되어 한편으로는 아무르 강을 따라 동진했고, 또 한편으로는 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하여 태평양 연안으로 남진했다... 러시아는 거의 아무런 희생 없이 청나라 영토 가운데 약 100만 제곱킬로미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영토는 영국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p384) <그레이트 게임> 中


 육군의 젊은 장교들도 대부분 아시아에서의 전진 정책을 지지했으며, 그곳에서 영국의 의도를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사실 밀류틴이 근본적으로 재조직하고 있던 육군 전체가 극동에서 거둔 성공을 발판으로 새로운 정복을 갈망했다. 크림에서 당한 패배의 기억을 씻어낼 기회를 노리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p388)... 다른 문제들에서 벗어난 알렉산드르는 영국보다 먼저 중앙아시아에 진입해야 한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그나티예프는 영국이 아프가니스탄과 러시아, 페르시아, 중국과 잇따라 큰 대가를 치르며 전쟁을 벌였고 인도에서 유혈 봉기까지 일어났기 때문에 소극적인 태도로 바뀌어 분쟁에 더 얽히는 것을 피하는 징후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p389)... 바야흐로 중앙아시아를 향한 러시아의 대남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p392) <그레이트 게임> 中

 

 그렇지만,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과 러시아는 다시 한 번 처참한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서 이들 제국의 중앙아시아 전략은 커뮤니케이션 수단 확보로 전환되었다. 군대와 포를 나를 수 있는 철도를 중앙아시아에 건설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는 동시에 제국 유지를 위한 SOC를 확보하려는 영국간의 첩보전이 그레이트 게임의 후반부를 장식하게 된다.


 트란스카스피아 철도는 이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 인도를 향해 전진하던 러시아군은 아주 먼 거리와 악몽 같은 땅을 가로질러 병력, 포, 다른 중장비를 대량 운송해야 한다는 거의 대책 없는 과제에 부딪혔다. 그러나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를 잇는 마지막 300킬로미터 거리의 철도가 완공되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무려 10만 병력을 페르시아나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집결시킬 수 있었다.(p564) <그레이트 게임> 中


 6. 그리고 엔드 게임(End Game)


 지지부진했던 1세기에 걸친 영국-러시아의 대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러일전쟁(1904 ~ 1905)이었다. 시베리아 진출로 얻은 자신감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급부상한 러시아였기에 극동 지역에서 신흥국 일본에게 당한 패배는 충격적이었다. 여기에, 대한해협에서 발트 함대를 잃으면서 군사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게 된 러시아는 결국 1907년 영러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그레이트 게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러시아가 극동에서 군사력과 해군 기지를 강화하는 것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가 가차 없이 조선으로 침투하는 데 긴장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과도 거리가 매우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1904년 2월 8일 일본은 예고 없이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물은 포트아서에 있는 러시아의 커다란 해군 기지였다. 러일전쟁이 시작된 것이다.(p642)... 일본은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마지막 전진 행동을 막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티베트는 자신의 땅에서 영국을 막지 못했다.(p652) <그레이트 게임> 中


 <그레이트 게임>은 <중국의 서진> 이후의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리고 있다. 19세기 세계의 1/4을 지배하면서 점차 해가 지고 있던 노제국 영국과 새롭게 떠오른 신흥국 러시아의 대립은 중앙아시아에서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다 결국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의 몰락으로 마무리 되었다는 것이 그레이트 게임의 시작과 종결이다. 


 그레이트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중국의 서진>때와는 달라진 제국(帝國)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시대의 제국이 영토를 점령하고 병합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영토 중심의 제국 모습이었다면, 그레이트 게임에서 제국이 중점을 둔 것은 교통, 통신 수단, 자본을 통한 지배였다. 이는 지난 시대의 제국이 면(面)의 지배라면, 제국주의 시대의 지배는 선(線)의 지배라는 점으로도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제국들의 지배 형태 변화를 우리는 <그레이트 게임>에서 일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나가면 우리는 제국주의 일본의 패배원인 또한 여기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무렵 영국이 취한 두 가지 조치 덕분에 인도에서 영국의 힘이 크게  강화되었다. 하나는 극도의 비밀을 유지하며 이집트의 총독으로부터 새로 개통한 수에즈 운하의 주식 40퍼센트를 매입한 것이다. 이 수로 덕분에 영국과 인도 사이의 해로가 약 7,000킬로미터 줄었다... 인도와 영국 사이의 연락선에 이루어진 두 번째 중요한 개선은 1870년의 직통 해저 케이블 설치였다. 오 년 전에 육상 전신선을 완공하기는 했지만 테헤란을 거쳤기 때문에 전시에는 간섭이나 절단에 취약했다. 새로운 해저 케이블은 그보다 훨씬 나았다(p458)... 새로운 통신이 시작되면서 화이트홀은 인도 일을 그 전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p459) <그레이트 게임> 中


 19세기에 이미 제국의 지배형태가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지배로 변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팽창은 영토 중심의 침략활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변화된 제국의 패러다임을 충분히인식하지 못했기에 , 일본은 초기 무력침공으로 자신의 세력을 뻗쳐 나간 것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중일전쟁(中日戰爭)에서 일본군은 광대한 중국의 영토를 침략했지만, 일본의 지배는 철도, 도로를 중심으로 한 선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길게 늘어선 선들은 결국 끊어지고, 고립되어 자멸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 출처 : 위키백과)


 과거 산업화 시대의 지배가 선(線)에 의한 지배라면, 21세기 제국의 지배형태는 '문화(文化 culture)'라는 점(點)의 형태로 다시 변화했다. 그런 면에서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제국주의(문화 제국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잘 활용하고있는 미국이 현재까지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반면, 이러한 미국에 대항해 SOC를 기반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새롭게 G2로 도약하는 중국의 모습안에서 지난 20세기 제국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너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어쨌든 비록 1세기 전의 이야기지만, 지금 세계정세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그레이트 게임'의 시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역사적 의미는 적지 않다 생각한다.


 다만, 책 <그레이트 게임>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두 제국의 갈등을 그리면서도, 전체적인 그림보다는 첩보전에 활약한 개인의 모습에 초점을 두었기에 첩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점이 전체적인 조망을 제시한 <중국의 서진>보다는 아쉬웠다. 물론,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도 분명 있겠지만. 책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을 느끼며 길었던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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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9-03-28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대로 첩보 부문을 빼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
최근 근대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전후 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작년에 대강 훓었던 러시아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고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3-28 11:31   좋아요 2 | URL
우향님께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19-03-28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8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8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1-09-10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트 게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미 책도 있고, 관련 정리를 잘 해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9-10 14: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창 중앙아시아 역사에 관심있어 내용을 정리하던 중 올린 페이퍼였습니다. 작은 도움이 되어서 저도 기쁩니다. 초란공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이번 달 르몽드 리플로마티크에서는 맑스의 「자본」 중 1권 생산의 주요 내용이 그림으로 잘 요약되어 있어 올려 봅니다. 조만간 「자본」을 정리할 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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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7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