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계 감시단체 ‘보도의 정확함과 공정함(Fairness and Accuracy in Reporting, 이하 FAIR)‘에 의하면 2021년 12월 6일과 2022년 1월 6일 사이 <뉴욕타임스〉에서 우크라이나를 언급한 228건의 기사 중 9건이 어떤 형태로든 ‘나치‘라는 단어를 포함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의수정주의에 대해 보도하거나 파시스트 집회 및 군대 내 존재하는 네오나치를 다룬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워싱턴포스트>의 경우에도 각각 우크라이나에 관한 기사 228건, ‘나치‘를 언급한 기사 6건,  실상을 보도한 기사 0건이었다. FAIR는 "대중에게 최소한 정보를 제공하기만 했더라도  미국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명분을 주고자 함이 아니라, 미국 언론은 자국 국민에게 자신들의 세금으로 무장하는 나라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 P26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 사립학교의 급격한 확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게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공산당 내의 페미니즘 조직인 아드와이 (Adwai)의 활동가인 브이브이 프리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가 돕고 있는 가난한 마을의 여성들에게는 퍼다를 입느냐 입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고등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만약 교육을 받으러 가기 위해서 니캅을  입어야만 한다면,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로이터 재단에 따르면 인도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들 중 하나인데, 니캅이 여성들을 보호하는 갑옷 역할을한다고 몇몇은 강조했다. - P70

이번 대선에 극명하게 표현된 ‘정글민주주의‘는 정치혐오를 더 부추길 테지만, 사실‘정글민주주의‘가  정치혐오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국내에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라는 책으로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증오자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지나치며, 올바른 민주주의 통치라는 민주적삶의 고유한 특성인 집단적 행동의 지나침과, 참여 부재로대표되는 과도한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이중의 과잉을 제어할 수 있는 정치형태이어야 한다.
즉 이들은 대중과 그들의 품행에 불만을 품고 정치 엘리트의 ‘정치‘ 행위를 수동적으로 승인하는 수준의 대중 정치‘를 요청한다. - P100

분노가 생각을 마비시킨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분노는 생각을 가로막는다. 생각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것이다. 대신 부당함과 불쾌감을 알리고 싶어 한다. 아무리 도의를 내세워도 도의가 생각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분노는 생각을 마비시키고 책임을 전가한다. 책임을 지울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나쁜 인간이 필요하며, 부당한 처사는 최대한 부당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가최대한 나쁜 인간이 된다. 친구에게 그 나쁜 인간은 그의 상사들이었다. 분노는 도의적인  감정이며 정치성을 띠지 않는다. 분노에 휩싸이면 문제를 정치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해결 방안도 고민하지 않는다. 친구는 분노에 휩싸이는 바람에 감정아아다.  - P93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공동성명에서 확인된 중국의 입장은 지난 40여 년에 걸친 중국의 대미 정책에서의 근본적인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중국 전문가들과 외교관들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중국의대외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국가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에 반해 러시아와의 협력은 금지된 분야가  없으며, 모든 분야에서 어떤 제약도 없이 추진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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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천하를 다스린다는 사람은 만국이 모두 그에게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는데, 어찌 기민한 술수를 가지고 속일 수 있겠습니까! 정성으로 밀어주고 바르게 대해주는 것만 같지 못하니, 비록 매일 그것을 계산해보면 부족하나 해를 단위로 그것을 계산한다면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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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계 유형원(磻溪 柳馨遠, 1622~1673)의 <동국여지지 東國與地誌>에는 서울 용산(龍山)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한다.

 

 용산(龍山) 도성 서남쪽 9리에 있다. 무악산의 남쪽 줄기가 서울을 감싸고 돌다가 강변에서 끝나는데 용산이라고 이름하였다. 그 아래가 용산포(龍山浦)가 된다. <대명일통지 大明一統志>에서 "용산은 도성의 한강 동쪽에 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p158)... 용산포(龍山浦) 도성 서남쪽 10리 용산(龍山) 아래에 있다. 한강 물이 여기에 이르러 두 줄기로 나뉘는데, 한 줄기는 용산포, 마포, 서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곧장 금천현(衿川縣) 경계에서부터 서쪽으로 흘러서 양화도(楊花渡)에 이르러 다시 합하여 하나가 된다. 고려 이인로(李仁老)의 <용산> 시에 "두 물이 넘실넘실 제비꼬리처럼 갈라지네.(二水溶溶分燕尾)"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바다의 조수와 통하여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경기 상류의 조운(漕運)이 모두 여기에 집합한다. _ 유형원, <동국여지지 1>, p162


 <동국여지지>의 내용을 보면, 용산과 용산포를 합쳐 봤을 때, 무악산의 줄기를 뒤로하고 한강변에 인접한 곳이며, 조선 사도(四道)의 물산이 모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明堂)임이 분명하다. 때마침 천시(天時)를 얻은 자가 지리(地利)를 살펴 옮겨가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다음 문장에 이어지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을까. 이와 관련한 기사를 정말 외람되지만, 아래에 링크해둔다.


관련기사 :  윤석렬 천시(天時)를 받들다  https://news.v.daum.net/v/20210311100015749


 이인로(李仁老)의 시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져 화(和)를 얻지 못한다면, '천시'와 '지리'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맹자왈(孟子曰) :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사방 3리의 내성 內城, 사방 7리의 외성 外城으로 둘러싸인 아주 조그만 성읍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에워싸 공격해도 이기지 못할 경우가 있다. 그러한 성을 에워싸 공격할 때 반드시 천기의 증후가 공격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지 못하다는 이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성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며, 해자가 깊지 않은 것도 아니며, 무기와 갑옷이 날카롭고 단단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군량미가 많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모든 조건을 구비한 견고한 성을 끝까지 지키지 않고 사람들이 도망가 버리는 것은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같지 못하다는 이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_p265<맹자(孟子)> <공손추(公孫醜하 > 2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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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2-03-16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용산에 대하여.. 참으로 시의적절한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3-16 21:33   좋아요 3 | URL
참 그렇지요... 시작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덕경』의 철학
한스-게오르크 묄러 지음, 김경희 옮김 / 이학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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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영원성과 세속적 시간성의 구분은 다른 구분과 병행한다. 영원성은 "영원한 지리"와 함께 한다. 영원한 진리는 무상하지 않다. 영원한 진리와 비교해서 세속적이고 시간적인 모든 것은 잠재적으로 "오류"이다. 영원성/시간성의 구분은 진리/오류의 구분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에 "오류"로부터 진리로 이르는 길은 시간성으로부터 영원성으로, 다시 말해 "시작"으로서의 하느님에게로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p167)... <노자>의 지속되는 시간은 시간 속에 통합되어 있는 데 반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성한 시작은 시간 너머에 있다. <노자>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차이는 영속성과 영원성의 차이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원성은 시간-초월적인 데 반해 도가의 영속성은 시간-내재적이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168/275

한스-게오르크 묄러 (Hans-Georg Moeller, 1964 ~ )의 <도덕경의 철학>이 다른 <도덕경 道德經> 안내서와 다른 점은 독자를 동양사상을 잘 알지 못하는 서양인을 염두에 두고 풀어간다는 점일 것이다. 도(道) 안에서 통합되는 음양(陰陽)과 영속(永續)의 시간 개념은 이원론(二元論, dualism)과 절대적인 신(神)의 시간개념인 '영원(永遠)'에 익숙한 서양인들에게 분명 낯선 개념일 것이다. 이런 차이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저자의 서술은 서양사상에 익숙한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한편, 동서양 철학을 개략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책이 가진 장점으로 느껴진다.

개략적으로 말해서 고대 중국철학은 참인 것과 단지 그렇게 보이기만 하는 것(또는 거짓인 것)을 구별하는 데 큰 관심이 없었다. 이것은 서양의 그리스철학자들과 크게 다른 점이다. 중국철학은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보다는 질서(治)와 혼란(亂)을 구별하는 데 관심이 컸으며, 특히 혼란이 아닌 질서를 세우는 방법에 큰 관심을 보였다. _ 한스-게오르크 뮐러, <도덕경의 철학> , p9/275

저자는 <도덕경>에서 서양철학이 풀지 못한 과제의 해법을 찾는다. 전면에 나서서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英雄 hero)의 모습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고 감추면서 모든 것을 감싸는 성인(聖人)의 모습. 스스로 낮추면서 높은 것을 얻어내고, 비우면서 채워가는 성인의 모습은 음(陰)에서 양(陽)이 생성됨을 일깨워준다.

<노자>에서 내가 철학적으로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측면은 이 텍스트가 인간적 행위주체성 human agency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주체성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근대 서양철학의 전통은 자아 ego와 그 자아의 힘들에 너무 집중해왔다. 이런 전통에서 <노자>의 입장은 다소 거북스러운 것으로 감지될지도 모른다. <노자>의 격률인 "행위하지 않음(無爲)"은 인간 사회를 포함해서 세계 전체를 개별적 활동들에 기초하고 있다기보다는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또는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에 기초하고 있는 하나의 매커니즘으로 보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기생산적 autopoietic" 대안이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12/275

골짜기의 효력은 생명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바로 이 효과, 즉 무궁무진한 유용성이라는 효과는 다양한 이미지와 구조 덕분에 확보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이 이미지들과 구조들이 단순히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것들은 동일한 교훈의 반복이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30/275


동일한 구조가 우주 전반에 적용된다. 하나는 텅비어 있고 없는 것이지만, 둘을 발생하게 한다. 하나(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없음)와 둘(있음, 음/양의 구분)이 합쳐져서 셋이 된다. 셋은 이처럼 하나와 둘의 통합이 "낳는" 것이다. 다수의 세계, 즉 만 가지 사물의 세계를 열어놓는 것은 바로 이 셋이다. 이 "적분의" 수학은 여기서 그려 보이고 잇는 것이 사실상 선형적 인과관계나 생성의 "역사적" 과정, 즉 통시적 발전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결합하여 하나의 공시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다수는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서로 함께 간다... 도의 하나는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도는 내적인 통일성인 동시에 외적인 통일성이다. 한편으로 하나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의 중심에 있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65/275

묄러는 <도덕경>에서 성(聖)과 속(俗)이 통합된 정치철학을 설명한다. 군주가 도(道)에 따라 물 흐르 듯 치세(治世)를 했을 때, 그는 '덕(德)'을 획득할 수 있다. 스스로 낮은 곳에 처함으로 군주는 권위를 획득할 것이며, 권위는 그의 자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얻어지는 '덕'이 '강(强)하게 만든다는 것'이 <도덕경>전체 맥락에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고, 덕을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행해지는 도(道)의 모습이 바람직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미두도록 하자. 다만, <도덕경의 철학>에서 이처럼 도(道)와 덕(德)의 관계를 보다 명쾌하게 설명되기에, 노자(老子, Bc571 ?~ ?)의 사상에서 제국주의의 위험함을 지적한 다른 글들을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이 책이 갖는 장점 중 하나라 여겨진다.

도를 따름으로써 성인-군주는 이원성의 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뚜렷이 구분되는 측면들과 계기들은 서로를 해치려고 싸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호 주고받음을 통해 협력한다. 이것은 유익한(그리고 리드미컬한) 효력의 교환으로 이어진다. 이 효력(德)은 군주에 의해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에서 펼쳐지고 공동체에 결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점점 커지는 "위신(德)"의 형태로 "그에게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조차도 그가 주었던 것을 얻는 것이다. 도와 그것의 효력인 덕은 가장 넓은 차원에서는 세상 전체에 "작용하고" 있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70/275

도덕은 위험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쉽게 사회적 병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지나친 오만함과 개인적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집단적 차원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고도로 "도덕적인" 사회는 타자들을 자기들보다 도덕성이 떨어지고 가치가 떨어지며, 그렇기 때문에 적(敵)일지도 모른다고 보기가 쉽다. 도덕적 언어와 도덕적 자기 찬사가 전쟁과 분쟁의 시대에 특별히 인기가 높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157/275


묄러의 <도덕경의 철학>은 <도덕경>의 81장 전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신, <도덕경>이 쓰여진 당대의 언어와 사상을 낯선 현대의 서양인들에게 보다 쉽게 풀이한 책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방식은 노자 사상이 낯설지 않은 우리에게도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서양인들이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노자를 통해 해결하려는 의도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좋은 입문서적이라 여겨진다.

<노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터넷의 소위 하이퍼텍스트 hypertext 같은 비전통적이고 비선형적인 텍스트들에 견주는 것이 더 용이할 수도 있다(p17)... 그 역사의 초창기에, 특히 기원전 5세기나 4세기에 <노자>는 한 권의 책으로 기능했다기보다는 일종의 고대의 하이퍼텍스트로, 또는 구성과 해체, 확대와 축소의 지속적 과정 속에 놓여 있었던 텍스트적 게슈탈트 gestalt로 기능했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19/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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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22-03-16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찌보면 인문학적 소향은 있되 동양 철학은 부족한 독자분이나, 도덕경을 읽었더라도 서양인이 설명하는 동양 철학적 개념으로 접하고 싶으신 분께 도움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3-16 17:39   좋아요 2 | URL
캐모마일님 말씀처럼 <도덕경의 철학>은 일반적으로 접한 <도덕경> 입문서와는 조금은 다른 관점을 보여줘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캐모마일 2022-03-16 17:42   좋아요 1 | URL
서양철학적 기반 위에서 도덕경을 설명하는 내용이 신선하네요. 뭔가 도덕경 해석,과 함께 도덕경으로 동서양 철학을 비교하고 통섭해보는 책 같아서 흥미롭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3-16 17:45   좋아요 1 | URL
캐모마일님께서 말씀하신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흥미롭게 읽힐 책이라 여겨집니다. 즐거운 독서 되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2-03-16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독특하네요. 동양철학을 서양인의 관점에서 독해한 책이군요. 저도 이상하게 서양철학보다 동양철학이 어럽습니다. 동양철학이 보다 고차원적인 것 같기도 하고... 서양철학은 혼자서 계보학 따지고 들며 공부하면 대충 알겠는데 동양철학은 혼자서는 잘 이해를 못하겠더군요..

겨울호랑이 2022-03-16 18:22   좋아요 0 | URL
^^:) 곰곰발님 뿐 아니라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번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번역에 사용된 언어 자체가 일본학자들에 의해 변용된 단어가 대부분이라 동양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도덕경>의 큰 흐름을 잡을 때에도 유용한 책으로 느껴졌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03-16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신선한 📖 책입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3-16 19: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좋은 독서 되세요! ^^:)

라파엘 2022-03-16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석학적 전통 때문인지, 확실히 독일 출신 학자들이 서양인임에도 동양 경전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좋은 편이네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2-03-16 21:03   좋아요 1 | URL
^^:) 라파엘님 말씀을 듣고 보니 학문의 전통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