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 유형원(磻溪 柳馨遠, 1622~1673)의 <동국여지지 東國與地誌>에는 서울 용산(龍山)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한다.

 

 용산(龍山) 도성 서남쪽 9리에 있다. 무악산의 남쪽 줄기가 서울을 감싸고 돌다가 강변에서 끝나는데 용산이라고 이름하였다. 그 아래가 용산포(龍山浦)가 된다. <대명일통지 大明一統志>에서 "용산은 도성의 한강 동쪽에 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p158)... 용산포(龍山浦) 도성 서남쪽 10리 용산(龍山) 아래에 있다. 한강 물이 여기에 이르러 두 줄기로 나뉘는데, 한 줄기는 용산포, 마포, 서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곧장 금천현(衿川縣) 경계에서부터 서쪽으로 흘러서 양화도(楊花渡)에 이르러 다시 합하여 하나가 된다. 고려 이인로(李仁老)의 <용산> 시에 "두 물이 넘실넘실 제비꼬리처럼 갈라지네.(二水溶溶分燕尾)"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바다의 조수와 통하여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경기 상류의 조운(漕運)이 모두 여기에 집합한다. _ 유형원, <동국여지지 1>, p162


 <동국여지지>의 내용을 보면, 용산과 용산포를 합쳐 봤을 때, 무악산의 줄기를 뒤로하고 한강변에 인접한 곳이며, 조선 사도(四道)의 물산이 모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明堂)임이 분명하다. 때마침 천시(天時)를 얻은 자가 지리(地利)를 살펴 옮겨가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다음 문장에 이어지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을까. 이와 관련한 기사를 정말 외람되지만, 아래에 링크해둔다.


관련기사 :  윤석렬 천시(天時)를 받들다  https://news.v.daum.net/v/20210311100015749


 이인로(李仁老)의 시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져 화(和)를 얻지 못한다면, '천시'와 '지리'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맹자왈(孟子曰) :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사방 3리의 내성 內城, 사방 7리의 외성 外城으로 둘러싸인 아주 조그만 성읍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에워싸 공격해도 이기지 못할 경우가 있다. 그러한 성을 에워싸 공격할 때 반드시 천기의 증후가 공격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지 못하다는 이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성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며, 해자가 깊지 않은 것도 아니며, 무기와 갑옷이 날카롭고 단단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군량미가 많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모든 조건을 구비한 견고한 성을 끝까지 지키지 않고 사람들이 도망가 버리는 것은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같지 못하다는 이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_p265<맹자(孟子)> <공손추(公孫醜하 > 2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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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2-03-16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용산에 대하여.. 참으로 시의적절한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3-16 21:33   좋아요 2 | URL
참 그렇지요... 시작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