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주인이 알바 면접을 보고 알바생에게 내일부터 출근을 하라고 말했다.

알바생이 출근 전 편의점을 둘러보고, 자신이 앉아서 업무를 볼 카운터에 수맥(水脈)이 흐른다(정확하게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주인 상의도 없이 일하기 전에 인테리어 업자에게 연락해서 내부 인테리어를 맡긴다고 했을 때 이를 잘했다고 할 편의점 주인이 있을까... 그 편의점 주인이 "Apprentice"의 트럼프라면 이같이 말했을 것이다. "you're fired!"


윤당. 그는 정녕 진보의 불안요소일 뿐 아니라, 보수의 불안요소이기도 한 것인가...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의 존재감이 확실하게 전달된다...


PS. 윤당의 '정신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에 그나마 가까운 것이 아래의 구절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의미인 것인지, 아니면 풍수(風水)가 중요하다는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 듯하다... 


 공간은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는 투쟁과 행동의 주요 쟁점이 된다. 공간은 자원의 장소이며, 전략이 실행되는 환경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공간은 무심한 극장이나 무대, 행위를 담는 틀 이상 가는 무엇이다. 공간은 천연자원에서부터 가장 세련되게 정제된 생산물에 이르기까지, 기업에서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사회-정치적 줄다리기의 다른 재료들과 자원들을 제거한 적이 없다. 공간은 이 모든 것을 집결시키고, 스스로가 별개로 떼어낸 이들 각각을 포함하면서 대체한다. 여기서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이 생겨나며, 그 움직임 속에서 공간은 스스로를 본질, 즉 '주체'에 있어서, 주체 앞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대상, 자율적인 논리의 지배를 받는 대상으로 간주할 수 없다. 공간은 스스로를 결과, 산물, 다시 말해서 과거, 역사, 사회가 경험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결과물로도 안주하지 못한다. 공간은 점점 덜 중성적이고, 점점 더 적극적이며, 도구인 동시에 목적이자 수단인 동시에 목표가 된다. _ 앙리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 p577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같다면 2022-03-20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두려운 것은 ‘5월 10일‘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것이죠

겨울호랑이 2022-03-20 11:11   좋아요 2 | URL
예방주사를 단단히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얼마나 맞아야할 지 감이 잘 안 오네요...

페넬로페 2022-03-20 10: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썩은 외나무 다리를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정말 불안합니다.
풋내기의 행동의 결과가 모든 국민들에게 되돌아 올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한가득입니다^^

겨울호랑이 2022-03-20 11:12   좋아요 3 | URL
모든 예상을 빗나가는 행동을 보면서 트럼프를 겪었던 당시 미국인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벌써요... ㅜㅜ

북다이제스터 2022-03-20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만화를 본적이 없어서
무식한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요. ㅠㅠ
강백호가 결국 잘 하지 않았는지요? ^^

겨울호랑이 2022-03-20 20:05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저도 <원피스> 같은 유명 작품도 다 못 읽은 걸요... ㅋ 강백호 성장이 작품의 큰 줄기다보니, 우승은 못했지만, 나름 행복하게 끝납니다 ^^:)
 

 역사적 자본주의는 구체적이며, 시간적/공간적으로 한정된 그리고 통합되어 있는 생산활동들의 장(場)인바, 그 안에서는 끝없는 자본축적이 기본적인 경제활동을 지배 또는 통제해온 경제적 목적 혹은 '법칙'이었다. 그것은 이런 규칙에 따라 움직여온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아주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됨으로써 그밖의 사람들도 그런 행동방식을 따라야지 그러지 않았다가는 여기에서 오는 불리한 결과를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을 조성해온 그런 사회체제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19


 이매뉴얼 월러스틴 (Immanuel Wallerstein, 1930~2019)의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Historical Capitalism, with Capitalist Civilization>은 그의 세계체제론 전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세계체제론에 주목해야 하는가.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시장(market)에서 이루어지는 상품(product)과 노동(lobour) 그리고 잉여가치(surplus value)의 발생과 귀속 관계 안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했다면, 월러스틴은 이러한 분석방법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윤의 문제 대부분이 '제품-완제품' 사이의 교환 단계에서 발생되고, 교환 시 발생하는 구조적인 불균형 문제가 월러스틴이 바라보는 세계체제의 핵심이다. 중심부와 주변부 문제가 그것이다.


 역사적 자본주의 아래서 시장터에서 이루어진 거래가 전체 거래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늘 낮았다. 대부분의 거래는 긴 상품연쇄 곳곳에 자리잡은 두 중간생산자들 사이의 교환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구매자는 자신의 생산과정을 위해서 어떤 '투입물'(input)을 구입했으며, 판매자는 '반제품'(semi-finished product)을 판매했는데, 이때 반제품이란 그것을 개인적으로 직접 소비하는 최종 사용자의 견지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중간시장들'에서 벌어지는 가격에 관한 투쟁은, 상품 연쇄의 전과정에 걸쳐 앞서의 모든 노동과정에서 실현된 이윤의 일부를 판매자측으로부터 짜내려는 구매자측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31


 핵심-주변의 관계다. 이를 부연하자면, 손해를 보는 지역을 '주변부'라 부를 수 있으며, 이익을 보는 지역을 '핵심부'라 부를 수 있다. 이런 명칭은 사실 경제적 흐름의 지리적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p34)... 핵심부의 생산자들은 기존 생산품의 생산경쟁에서 한층 더 유리해지고 더 나아가 더욱 새로운 희귀 생산품들을 계속 개발해냄으로써 같은 과정을 새로이 시작할 수가 있었다. 핵심부지역으로 자본이 집중됨으로써 상대적으로 강한 국가기구들이 창출될 재정적 기반과 정치적 동기가 만들어졌는데, 이런 국가기구들의 여러 능력들 가운데에는 주변부지역의 국가기구들을 상대적으로 더욱 약하게 만들거나 약한 채로 그냥 있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서 핵심부 국가들은 주변부 국가구조들에 압력을 가해서, 이들 주변부지역이 상품연쇄 계서제의 밑바닥 일에 한층 더 전문화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것을 촉진하도록 할 수 있었는데, 이런 과정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고 또 이러한 저임금 노동력의 생존을 가능케 해줄 만한 가계구조들을 창출(강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 자본주의는 세계체제 내의 여러 지역에 따라 그처럼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된 이른바 역사적 임금수준들을 실제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과정이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35


 핵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분업체계는 불평등하지만, 안정적인 체계다. '민족국가'라는 근대이데올로기의 산물로 국가권력은 정치적으로 체제를 안정화시키고, 경제적으로 '국가간 체제'는 이들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구조로 작동된다. 


 역사적 체제로서 자본주의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부등가교환을 은폐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같은 주요 메커니즘을 은폐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 자체에, 즉 (모든 통합된 생산과정들이 끊임없는 자본의 축적을 위해 작동하는 세계적 규모의 사회적 분업체계인) 경제의 장(場)과 (표면적으로는 각자의 관할영역 안에서 제각기 정치적 결정들에 대한 자율적 책임을 지고 있으며 자체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제각기 군사력을 행사하는 개별적 주권국가들로 이루어진) 정치의 장이 외견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체제 내부의 그같은 분리구조 속에 있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34


 상품연쇄는 지리적으로 아무 방향으로나 제멋대로 뻗어 나간 것은 아니었다. 모든 상품연쇄들은 지도 위에 그려 넣는다면, 그것들이 구심적인(centripeta)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출발지점은 여러 군데지만 그 목적지점은 한두 지역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주변부(periphery)에서 중심부(centre) 또는 핵심부(core)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여왔다.(p32)... 여러 생산과정의 구조 안에서 나타난 공간적 계서제(階序制, 계급서열제)화는 세계경제의 핵심지대와 주변 지대 사이의 양극화를 점점 더 심화시켜왔는데, 이러한 현상은 분배의 기준이라는 측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현상이 자본축적의 장소 안에서도 일어났다는 점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33


  역사적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중심부와 핵심부는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안정적 체제이며, 체제의 변화를 원치 않는다. 때문에, 역사 속에서 이러한 혁명(革命 revolution)을 제어하려는 움직임은 국가외부에서도 작동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반체제 운동의 힘은 전세계적인 연대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는 1848혁명과 1968혁명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자본주의의 구조는 이러한 기존 여건들을 일부 변화시켰다. 국가들이 국가간 체제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반란이나 봉기가 실제로 일어난 정치적 관할 영역의 경계 밖으로 그 영향이 종종 아주 급속하게 파급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른바 '외부' 세력들로서는 직접 공격받고 있는 국가기구를 돕겠다고 나올만한 강한 동기를 갖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반란은 더욱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p70)... 이같은 지나친 긴장관계로 말미암아 역사적 자본주의 안에서 발전된 반란의 방식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같은 혁신이란 바로 항구적인 조직체를 갖추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역사상 두 종류의 커다란 저항운동, 즉 노동-사회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에서 지속적이며 관료화된 구조가 형성됨을 보게 된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71


 이러한 세계적인 체제의 움직임과 그 밑의 구조에서 움직이는 작은 체제의 움직임 중 하나가 마르크스가 말한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갈등이 있을 것이며, 백낙청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관련하여 '분단체제'를 '세계체제-국가체제' 사이에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분단체제'는 '세계체제론'의 재해석으로 읽힌다. 이처럼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은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론의 전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대작 <근대세계체제>를 읽기 전 필독서라 생각된다. 이제, 전반을 훑어보았으니, <근대세계체제 1>부터 정리해보자...


 생산자의 목적이 자본축적이라고 하는 말은, 생산자가 특정 재화를 가능한 한 많이 생산해서 가장 큰 폭의 이윤이 돌아오도록 그것을 판매할 것이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러나 생산자는 이른바 '시장 내에' 존재하는 일련의 경제적 제약들 속에서 그렇게 할 것이다. 그의 총생산량은 원료의 투입량, 노동력, 고객 그리고 그의 투자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자금력 등과 같은 것들을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는가 그 정도에 따라 한정될 수밖에 없다. 생산해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양과 그가 요구할 수 있는 이윤 폭은 동일한 품목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내다팔 수 있는 경쟁자의 능력에 따라서도 한정된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21


 생산적(임금) 노동은 일차적으로 한 성인 남자, 즉 아버지의 몫이 되고, 이차적으로 가계 내의  다른 (좀더 젊은) 성인 남성들의 몫이 되었다. 비생산적 (생계) 노동은 일차적으로 한 성인 여성, 즉 어머니의 몫이 되고, 이차적으로 다른 여성들 및 어린이와 노인들의 몫이 되었다. 생산적 노동은 가계 밖의 '작업장'에서 행해졌고, 비생산적 노동은 가계 안에서 행해졌다.(p26)... 다른 체제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각기 특유한 (그러나 정상적으로는 평등한) 과업을 수행한 데 비해, 역사적 자본주의하에서는 성인 남성 임금소득자가 '빵을 벌어들이는 자'로 분류되었으며, 성인 여성 가사노동자는 '가정주부'로 분류되었다. 이래서 전국적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했을 때 빵을 벌어들이는 자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활동적인 노동력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었으나 가정주부는 그렇게 간주되지 않았다. 바로 이렇게 해서 성차별주의가 제도화되었던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리하여 우리는 소외에 대한 논의에 이르게 된다.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보수적 비판자들과 급진적 비판자들이 힘을 한데 모으는 것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외는 공식교육의 미덕이라고 주장된 잠재력의 실현에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소외는 우리 자신, 우리의 ‘참된 본성‘, 곧 우리의 진정한 잠재력으로부터 우리 스스로가 멀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 P143

자본주의 문명의 세계는 양극화된 그리고 양극화해나가는 세계다. 그런데도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바로 이 문제를 둘러싸고 득실표에 대한 공개토론이 시작된것이다. 이제까지 이 체제를 유지시켜주었던 것은 개혁이 증가되고 결국엔 격차가 메워지리라는 희망이었다. 논쟁 자체가 이런 희망을 이중으로 부추겨놓았다. 미덕들에 대한 주장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체제의 장기적인 이득을 믿도록 했다.  - P146

따라서 국가의 행위가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득이될 것인가 아니면 해가 될 것인가 하는 가능성에 따라서, 자국에대한 생산자집단들의 태도 역시 항상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언제나 변함없는 것은 강력한 생산자들  중 일부는 국가를 통해 자신들의 시장에서의 지위를 높이려고 하며, 국가는 이러한 요구에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불변요인이 아니었다면, 자본주의 문명은 결코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 P152

그러나 개인주의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지구문화적 과제들의 딜레마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개인주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을 아주 악랄한 방식으로 부추기는데,  이는 개인주의가 단지 소수 엘리뜨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해서 이런 경쟁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경쟁은 논리적으로 어떠한 한계도 없는것이다. 실제로 근대의 수많은 철학적 ·사회과학적 담론들은 철저한 이기주의가 이처럼 사회적으로 그대로 방치될 경우에 따르는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위험들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 P1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풍연이 말하였다. "무기란 흉한 그릇이어서 백성을 해롭게 하고 재물을 소모시키는 것이니, 끝까지 다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양(梁, 주전충)과 진(晉, 이극용)의 호랑이들이 싸우니 세력이 양립할 수 없는데, 만약 합병하여 하나가 되어서 군사를 일으켜 촉(蜀)으로 향한다면 비록 제갈량(諸葛亮)이 다시 태어난다 하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갑오일(9일)에 소해는 같은 서열에 있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말씀을 올렸다. "시호(諡號)의 좋고 나쁜 것은 신하들이 사사로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황제의 시호는 대부분이 지나치게 아름답게 한 것을 찬미한 것이니, 빌건대 다시 상세히 의논하게 해주십시오."

애초에, 전승사(田承嗣)는 위박(魏博, 치소는 위주, 하북성 대명현)을 진수하면서 6개 주(州)의 날래고 용감한 장사 5천 명을 가려서 모집하여 아군(牙軍)으로 삼았고, 그들에게 공급하는 것과 하사품을 두텁게 주면서 자기를 지키게 하는 심복으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부자간에 서로 계승되어 친한 무리들이 아교로 붙인 것처럼 견고해져서, 세월이 오래되면서 더욱 교만해지고 전횡하였으며, 조금이라도 뜻과 같지 않으면 번번이 이전의 통수를 족멸하고 이를 바꿨는데 사헌성(史憲誠) 이래로부터 모두 그들의 손에 의해 옹립되었다.

무릇 천하를 위하는 자는 작은 원망(怨望)을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또 저들이 일찍이 우리들을 곤란하게 하였지만 우리들이 그들의 위급함을 구원해 주는 것은 덕(德)으로 그들을 품에 안는 것이어서 마침내 한 번의 거동으로 명분과 실리에 부합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시 떨쳐 일어나게 될 시기이니 잃을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단체제와 87년체제
김종엽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단체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북한 각각의 체제로 이루어진 한반도는 일정한 자기재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내재적으로 불안정한 하나의 체제이다. 이 체제는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존재하며, 지정학적 이유에서 동북아시아라는 중간 영역의 정치군사적/경제적 조건에 민감하게 의존한다. 분단체제는 그 아래 존재하는 남북한 각각의 체제의 지배자와 민중 사이의 대립을 주요모순으로 하는 사회이며, 남북한 각각의 지배층은 적대적이지만 동시에 상당 정도 상호의존적이다. 이런 분단체제가 그 안에 사는 민중에게 고통만 야기한 것은 아니다. 냉전체제의 경계면에 있던 남북한 사회는 한편으로는 냉전기 미소 양진영의 체제 경쟁 덕분에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내적 역동성에 힘입어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남북한 각 사회의 지배층 또한 자신들의 취약한 헤게모니로 인해 지속적으로 민중생활의 복지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만큼 분단체제의 유지는 냉전체제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그것의 형성 또한 냉전에 의한 것만도 아니다. 이런 체제에서 통일과 변혁(또는 개혁)은 우리가 떠안고 있는 두개의 과제가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하나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7/326


  김종엽의 <분단체제와 87년체제>는 백낙청이 제기한 '분단체제론'과 분단체제 상황 아래서 1987년 변곡점이후의 체제인 '87년체제'를 비교하고, 이들의 현대적 의미를 살펴보는 책이다. '세계체제-분단체제-남북측 사회'의 틀에서 분단상황을 바라보는 '분단체제'에서 1987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1987년 이전과 이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87년체제는 6월 민주화항쟁의 결과로만 해석될 수 없을 것이다. 


 87년체제라는 용어가 쓰이는 일차적인 이유는 우리 현재의 직접적 뿌리가 1987년 민주화 이행에 닿아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는 1987년이 우리 사회에서 전환점인 동시에 그 전환방식이 이후 우리 사회에 구조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전환점으로서의 1987년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확인된다. 정치적으로 1987년은 권위주의체제의 종식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의미하며, 나아가서 이런 수준의 민주화로부터의 정치적 후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합의와 의지로 자리잡았다.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는 박정희식의 발전체제에서 벗어났다... 사회문화적인 영역의 경우 정치나 경제 영역처럼 명확한 지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가지 사례를 통해 근본적인 전환을 확인할 수 있다. 1987년 이후 실질소득의 증가로 인한 대중소비사회로의 진입이 그런 예의 하나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86/326


 이렇게 탄생한 1987년 6공화국의 헌법. 저자는 87년체제를 분단체제에서 '변화된 형식'으로 파악한다. 87년 체제에서 바뀌어진 형식은 더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으나, 내용적인 변화까지 가져오지는 못했기에 분단체제의 수호세력들과 87년체제 수호세력들은 적대적 공생(共生)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87년체제를 절차적민주주의 또는 게임규칙을 확립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87년체제가 체제 수립 후 30년이 흐르면서 다원화된 사회의 요구를 수용했다 보기에는 내용적으로 부족함이 많았기에, 87년체제에 대한 개헌(改憲)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 


 87년체제는 모든 사회세력에게 경쟁할 기회를 제공하는 형식적 틀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체제의 고삐를 쥘지 미리 말할 수 없다. 오직 형식에 의해 열린 공간을 더 잘 활용하는 쪽에 손을 들어준다. 분단체제는 적과 동지를 구별한다. 그렇기 때문에 체제의 고삐를 누가 쥐어야 하는지 미리 정해져 있다. 그것은 분단체제의 이편에 선 자이며, 그렇게 이편에 선 자가 이편이 누구에 속하는지도 정한다. 그렇게 구성된 분단체제의 이편에 선 자들은 스스로에게 발부한 면책특권을 가지고 저편에 있는 사람에게 공격성을 풀어놓는다. 그러므로 87년체제가 제안하는 우정의 정치와 분단체제가 제기하는 적대의 정치는 비대칭적이다. 분단체제를 수호하는 행위가 87년체제의 수호자에게는 '점진쿠데타'이고, 87년체제를 지키는 행위가 분단체제의 수호자에게는 체제전복 행위이다. 그런데도 87년체제를 지키는 자는 자신을 적이라고 부르는 분단체제의 수호자를 친구라고 부르며 그를 우정의 정치로 초대해야 한다. 랑시에르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불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3/326


 87년체제의 틀은 분단체제와 87년체제 수호세력들의 적대적 공생의 장(場)이 되어버렸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구호는 진영결집의 이데올로기가 되버렸고, 이들 아래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은 묻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점에서 본다면, 87년체제는 분단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가 아닌 분단 상황하의 과점상태이며, 한계점을 노출한 체제라 할 것이다.   


 민주화와 87년체제의 수립이 분단체제를 지양한 것은 아니었다. 87년체제는 다만 분단체제로부터 발원하는 보수파와 민주파의 대립을 민주적으로 제정된 절차안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그들은 내용의 힘으로 형식을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이 그렇게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표는 기의를 능가하낟. 즉 형식이 내용을 제어하고 전치할 수 있는 것이다. 분단체제를 재안정화하려는 시도는 분단체제가 더 깊게 동요하고 있음을 방증할 뿐이며, 87년 체제에서 제정된 절차의 힘을 폐기할 수 없을 것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43/326


 제20대 대선과정에서 선거제 개혁이 주요 논점이 되었던 점도 87년 체제의 한계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공화국에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의 상당 부분을 6공화국에서는 의회로 넘겼지만, 이는 권력의 독점(獨占)을 과점(寡占)상태로 바꾸는 것에 불과했고, 그나마 1990년 삼당 합당(三黨 合黨)으로 인해 과점 상태는 양분상태로 변화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과거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실제 형식의 틀은 87년체제보다 더 악화된 90년체제에서 크게 바뀌지 못한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대 대선 결과는 앞으로의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보수파와 자유파 간의 타협에 의해 제정된 1987년 헌법 또한 상황을 악화시켰다. 개헌에 참여한 두 세력은 어느 쪽 후보가 당선될지 불확실한 대통령의 권한은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일정한 지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의회권력은 강화했다. 민주화 이후 의회권력은 시민사회를 지역주의적으로 분할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각 세력이 분점하는 것이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을 손에 쥔 집단은 언제나 규율하기 어려운 사회세력, 그리고 다루기 어렵거나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정도 무력화할 수 있는 의회권력에 직면했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106/326


 모두가 알 듯이 87년체제하에서 선거법의 근간은 단순다수제에 의한 소선구제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그렇게 선출된다. 이런 식의 선거에서는 불가피하게 승자독식이 일어나고 낙선자들이 받은 표는 무가치해진다. 승자독식이나 표의 부등가성 같은 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대통령제는 승자독식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대통령제를 버리지 않는 한 이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p227)... 하지만 국회의원을 단순다수제 소선구제에 의해 선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그것이 지역패권주의의 제도적 토대이며, 표의 등가성이나 사표 방지 같은 규범적 요구에서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법개정은 개헌처럼 의회의 3분의 2나 국민의 과반수라는 높은 문턱을 넘을 필요도 없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28/326


 이처럼 <분단체제와 87년체제>는 분단체제와 87년체제의 관계를 다룬다. 세계체제의 하위구조로서 분단체제안에서 87년체제는 남한사회의 체제를 말한다는 점에서 87년체제는 분단체제의 하위구조다. 동시에, 분단체제로 회귀하려는 세력과 87년체제의 수호하려는 세결들의 대결장이기도 하며, 87년 이후 사회과제를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는 한계로 인해 이제는 극복해야 할 형식적 틀이기도 하다. 


 저자는 글의 마지막에 촛불혁명을 말한다. 이것은 아마도 87년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서 촛불혁명과 정신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5년 동안 촛불은 그 갈 길을 찾지 못했고, 이제 다시 분단체제 회귀세력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과거의 질서로 회귀하려하고, 아직 분단체제 수호세력과 87년체제 수호세력이 있는 상황에서 촛불정신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일단 항쟁 레퍼토리에 편입되자 촛불이 가진 레퍼토리로서의 자질은 탁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촛불은 아름다움, 고요함, 밝음, 빛으로 전환되며 소멸해가는 물질의 '희생', 바람에 일렁이지만 쉽게 꺼지지 않는 힘, 작은 것의 아름다움, 작고 힘없는 것들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빛의 일렁임 같은 풍부한 의미와 물질적 상상력을 유도하며, 그런 의미에서 고유한 미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런 미학은 정서적 정화를 경유해서 어떤 행동 규율 내지 윤리학에까지 이른다. 촛불이라는 집회 도구 자체가 참여자는 물론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려는 이들에게까지 행동을 평화화(pacification)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304/382


이렇게 집권세력의 도덕적 위기와 민주화 이전 체제로부터 연원하는 구습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문화의 위협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사회가 심층적인 도덕적 퇴행을 겪을 위험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어쩌면 현재 일어난 공적 문화의 퇴락은 부분일식에 그치지 않고 개기일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_ p141/326 - P141

87년체제를 통해서 이 세 정파 간의 갈등은 지속되었고 때로 격렬하기도 했지만, 관찰자 시점에서 보면 상당한 수렴이 발생했다. 앞서 지적한 세 차원 가운데 사태 차원에서는 이견이 지속되었어도 사회 차원에서는 대중정당론이 지배성을 획득했으며, 혁명적 정세가 세계사적으로 소멸함에 따라 시간 차원에서도 ‘임박한 과제‘ 대신 ‘선거 주기‘가 들어섰다. 하지만 오래된 습속으로 인해 그렇게 수립된 대중정당 자체를 ‘패권주의적‘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으며, 그런 시도는 진리의 정치에서 발원하는 독단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_ p226/326 - P2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