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체제와 87년체제
김종엽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단체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북한 각각의 체제로 이루어진 한반도는 일정한 자기재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내재적으로 불안정한 하나의 체제이다. 이 체제는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존재하며, 지정학적 이유에서 동북아시아라는 중간 영역의 정치군사적/경제적 조건에 민감하게 의존한다. 분단체제는 그 아래 존재하는 남북한 각각의 체제의 지배자와 민중 사이의 대립을 주요모순으로 하는 사회이며, 남북한 각각의 지배층은 적대적이지만 동시에 상당 정도 상호의존적이다. 이런 분단체제가 그 안에 사는 민중에게 고통만 야기한 것은 아니다. 냉전체제의 경계면에 있던 남북한 사회는 한편으로는 냉전기 미소 양진영의 체제 경쟁 덕분에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내적 역동성에 힘입어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남북한 각 사회의 지배층 또한 자신들의 취약한 헤게모니로 인해 지속적으로 민중생활의 복지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만큼 분단체제의 유지는 냉전체제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그것의 형성 또한 냉전에 의한 것만도 아니다. 이런 체제에서 통일과 변혁(또는 개혁)은 우리가 떠안고 있는 두개의 과제가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하나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7/326


  김종엽의 <분단체제와 87년체제>는 백낙청이 제기한 '분단체제론'과 분단체제 상황 아래서 1987년 변곡점이후의 체제인 '87년체제'를 비교하고, 이들의 현대적 의미를 살펴보는 책이다. '세계체제-분단체제-남북측 사회'의 틀에서 분단상황을 바라보는 '분단체제'에서 1987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1987년 이전과 이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87년체제는 6월 민주화항쟁의 결과로만 해석될 수 없을 것이다. 


 87년체제라는 용어가 쓰이는 일차적인 이유는 우리 현재의 직접적 뿌리가 1987년 민주화 이행에 닿아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는 1987년이 우리 사회에서 전환점인 동시에 그 전환방식이 이후 우리 사회에 구조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전환점으로서의 1987년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확인된다. 정치적으로 1987년은 권위주의체제의 종식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의미하며, 나아가서 이런 수준의 민주화로부터의 정치적 후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합의와 의지로 자리잡았다.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는 박정희식의 발전체제에서 벗어났다... 사회문화적인 영역의 경우 정치나 경제 영역처럼 명확한 지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가지 사례를 통해 근본적인 전환을 확인할 수 있다. 1987년 이후 실질소득의 증가로 인한 대중소비사회로의 진입이 그런 예의 하나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86/326


 이렇게 탄생한 1987년 6공화국의 헌법. 저자는 87년체제를 분단체제에서 '변화된 형식'으로 파악한다. 87년 체제에서 바뀌어진 형식은 더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으나, 내용적인 변화까지 가져오지는 못했기에 분단체제의 수호세력들과 87년체제 수호세력들은 적대적 공생(共生)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87년체제를 절차적민주주의 또는 게임규칙을 확립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87년체제가 체제 수립 후 30년이 흐르면서 다원화된 사회의 요구를 수용했다 보기에는 내용적으로 부족함이 많았기에, 87년체제에 대한 개헌(改憲)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 


 87년체제는 모든 사회세력에게 경쟁할 기회를 제공하는 형식적 틀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체제의 고삐를 쥘지 미리 말할 수 없다. 오직 형식에 의해 열린 공간을 더 잘 활용하는 쪽에 손을 들어준다. 분단체제는 적과 동지를 구별한다. 그렇기 때문에 체제의 고삐를 누가 쥐어야 하는지 미리 정해져 있다. 그것은 분단체제의 이편에 선 자이며, 그렇게 이편에 선 자가 이편이 누구에 속하는지도 정한다. 그렇게 구성된 분단체제의 이편에 선 자들은 스스로에게 발부한 면책특권을 가지고 저편에 있는 사람에게 공격성을 풀어놓는다. 그러므로 87년체제가 제안하는 우정의 정치와 분단체제가 제기하는 적대의 정치는 비대칭적이다. 분단체제를 수호하는 행위가 87년체제의 수호자에게는 '점진쿠데타'이고, 87년체제를 지키는 행위가 분단체제의 수호자에게는 체제전복 행위이다. 그런데도 87년체제를 지키는 자는 자신을 적이라고 부르는 분단체제의 수호자를 친구라고 부르며 그를 우정의 정치로 초대해야 한다. 랑시에르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불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3/326


 87년체제의 틀은 분단체제와 87년체제 수호세력들의 적대적 공생의 장(場)이 되어버렸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구호는 진영결집의 이데올로기가 되버렸고, 이들 아래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은 묻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점에서 본다면, 87년체제는 분단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가 아닌 분단 상황하의 과점상태이며, 한계점을 노출한 체제라 할 것이다.   


 민주화와 87년체제의 수립이 분단체제를 지양한 것은 아니었다. 87년체제는 다만 분단체제로부터 발원하는 보수파와 민주파의 대립을 민주적으로 제정된 절차안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그들은 내용의 힘으로 형식을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이 그렇게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표는 기의를 능가하낟. 즉 형식이 내용을 제어하고 전치할 수 있는 것이다. 분단체제를 재안정화하려는 시도는 분단체제가 더 깊게 동요하고 있음을 방증할 뿐이며, 87년 체제에서 제정된 절차의 힘을 폐기할 수 없을 것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43/326


 제20대 대선과정에서 선거제 개혁이 주요 논점이 되었던 점도 87년 체제의 한계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공화국에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의 상당 부분을 6공화국에서는 의회로 넘겼지만, 이는 권력의 독점(獨占)을 과점(寡占)상태로 바꾸는 것에 불과했고, 그나마 1990년 삼당 합당(三黨 合黨)으로 인해 과점 상태는 양분상태로 변화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과거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실제 형식의 틀은 87년체제보다 더 악화된 90년체제에서 크게 바뀌지 못한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대 대선 결과는 앞으로의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보수파와 자유파 간의 타협에 의해 제정된 1987년 헌법 또한 상황을 악화시켰다. 개헌에 참여한 두 세력은 어느 쪽 후보가 당선될지 불확실한 대통령의 권한은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일정한 지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의회권력은 강화했다. 민주화 이후 의회권력은 시민사회를 지역주의적으로 분할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각 세력이 분점하는 것이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을 손에 쥔 집단은 언제나 규율하기 어려운 사회세력, 그리고 다루기 어렵거나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정도 무력화할 수 있는 의회권력에 직면했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106/326


 모두가 알 듯이 87년체제하에서 선거법의 근간은 단순다수제에 의한 소선구제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그렇게 선출된다. 이런 식의 선거에서는 불가피하게 승자독식이 일어나고 낙선자들이 받은 표는 무가치해진다. 승자독식이나 표의 부등가성 같은 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대통령제는 승자독식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대통령제를 버리지 않는 한 이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p227)... 하지만 국회의원을 단순다수제 소선구제에 의해 선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그것이 지역패권주의의 제도적 토대이며, 표의 등가성이나 사표 방지 같은 규범적 요구에서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법개정은 개헌처럼 의회의 3분의 2나 국민의 과반수라는 높은 문턱을 넘을 필요도 없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28/326


 이처럼 <분단체제와 87년체제>는 분단체제와 87년체제의 관계를 다룬다. 세계체제의 하위구조로서 분단체제안에서 87년체제는 남한사회의 체제를 말한다는 점에서 87년체제는 분단체제의 하위구조다. 동시에, 분단체제로 회귀하려는 세력과 87년체제의 수호하려는 세결들의 대결장이기도 하며, 87년 이후 사회과제를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는 한계로 인해 이제는 극복해야 할 형식적 틀이기도 하다. 


 저자는 글의 마지막에 촛불혁명을 말한다. 이것은 아마도 87년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서 촛불혁명과 정신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5년 동안 촛불은 그 갈 길을 찾지 못했고, 이제 다시 분단체제 회귀세력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과거의 질서로 회귀하려하고, 아직 분단체제 수호세력과 87년체제 수호세력이 있는 상황에서 촛불정신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일단 항쟁 레퍼토리에 편입되자 촛불이 가진 레퍼토리로서의 자질은 탁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촛불은 아름다움, 고요함, 밝음, 빛으로 전환되며 소멸해가는 물질의 '희생', 바람에 일렁이지만 쉽게 꺼지지 않는 힘, 작은 것의 아름다움, 작고 힘없는 것들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빛의 일렁임 같은 풍부한 의미와 물질적 상상력을 유도하며, 그런 의미에서 고유한 미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런 미학은 정서적 정화를 경유해서 어떤 행동 규율 내지 윤리학에까지 이른다. 촛불이라는 집회 도구 자체가 참여자는 물론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려는 이들에게까지 행동을 평화화(pacification)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304/382


이렇게 집권세력의 도덕적 위기와 민주화 이전 체제로부터 연원하는 구습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문화의 위협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사회가 심층적인 도덕적 퇴행을 겪을 위험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어쩌면 현재 일어난 공적 문화의 퇴락은 부분일식에 그치지 않고 개기일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_ p141/326 - P141

87년체제를 통해서 이 세 정파 간의 갈등은 지속되었고 때로 격렬하기도 했지만, 관찰자 시점에서 보면 상당한 수렴이 발생했다. 앞서 지적한 세 차원 가운데 사태 차원에서는 이견이 지속되었어도 사회 차원에서는 대중정당론이 지배성을 획득했으며, 혁명적 정세가 세계사적으로 소멸함에 따라 시간 차원에서도 ‘임박한 과제‘ 대신 ‘선거 주기‘가 들어섰다. 하지만 오래된 습속으로 인해 그렇게 수립된 대중정당 자체를 ‘패권주의적‘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으며, 그런 시도는 진리의 정치에서 발원하는 독단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_ p226/326 - P2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