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자본주의는 구체적이며, 시간적/공간적으로 한정된 그리고 통합되어 있는 생산활동들의 장(場)인바, 그 안에서는 끝없는 자본축적이 기본적인 경제활동을 지배 또는 통제해온 경제적 목적 혹은 '법칙'이었다. 그것은 이런 규칙에 따라 움직여온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아주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됨으로써 그밖의 사람들도 그런 행동방식을 따라야지 그러지 않았다가는 여기에서 오는 불리한 결과를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을 조성해온 그런 사회체제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19


 이매뉴얼 월러스틴 (Immanuel Wallerstein, 1930~2019)의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Historical Capitalism, with Capitalist Civilization>은 그의 세계체제론 전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세계체제론에 주목해야 하는가.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시장(market)에서 이루어지는 상품(product)과 노동(lobour) 그리고 잉여가치(surplus value)의 발생과 귀속 관계 안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했다면, 월러스틴은 이러한 분석방법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윤의 문제 대부분이 '제품-완제품' 사이의 교환 단계에서 발생되고, 교환 시 발생하는 구조적인 불균형 문제가 월러스틴이 바라보는 세계체제의 핵심이다. 중심부와 주변부 문제가 그것이다.


 역사적 자본주의 아래서 시장터에서 이루어진 거래가 전체 거래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늘 낮았다. 대부분의 거래는 긴 상품연쇄 곳곳에 자리잡은 두 중간생산자들 사이의 교환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구매자는 자신의 생산과정을 위해서 어떤 '투입물'(input)을 구입했으며, 판매자는 '반제품'(semi-finished product)을 판매했는데, 이때 반제품이란 그것을 개인적으로 직접 소비하는 최종 사용자의 견지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중간시장들'에서 벌어지는 가격에 관한 투쟁은, 상품 연쇄의 전과정에 걸쳐 앞서의 모든 노동과정에서 실현된 이윤의 일부를 판매자측으로부터 짜내려는 구매자측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31


 핵심-주변의 관계다. 이를 부연하자면, 손해를 보는 지역을 '주변부'라 부를 수 있으며, 이익을 보는 지역을 '핵심부'라 부를 수 있다. 이런 명칭은 사실 경제적 흐름의 지리적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p34)... 핵심부의 생산자들은 기존 생산품의 생산경쟁에서 한층 더 유리해지고 더 나아가 더욱 새로운 희귀 생산품들을 계속 개발해냄으로써 같은 과정을 새로이 시작할 수가 있었다. 핵심부지역으로 자본이 집중됨으로써 상대적으로 강한 국가기구들이 창출될 재정적 기반과 정치적 동기가 만들어졌는데, 이런 국가기구들의 여러 능력들 가운데에는 주변부지역의 국가기구들을 상대적으로 더욱 약하게 만들거나 약한 채로 그냥 있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서 핵심부 국가들은 주변부 국가구조들에 압력을 가해서, 이들 주변부지역이 상품연쇄 계서제의 밑바닥 일에 한층 더 전문화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것을 촉진하도록 할 수 있었는데, 이런 과정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고 또 이러한 저임금 노동력의 생존을 가능케 해줄 만한 가계구조들을 창출(강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 자본주의는 세계체제 내의 여러 지역에 따라 그처럼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된 이른바 역사적 임금수준들을 실제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과정이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35


 핵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분업체계는 불평등하지만, 안정적인 체계다. '민족국가'라는 근대이데올로기의 산물로 국가권력은 정치적으로 체제를 안정화시키고, 경제적으로 '국가간 체제'는 이들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구조로 작동된다. 


 역사적 체제로서 자본주의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부등가교환을 은폐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같은 주요 메커니즘을 은폐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 자체에, 즉 (모든 통합된 생산과정들이 끊임없는 자본의 축적을 위해 작동하는 세계적 규모의 사회적 분업체계인) 경제의 장(場)과 (표면적으로는 각자의 관할영역 안에서 제각기 정치적 결정들에 대한 자율적 책임을 지고 있으며 자체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제각기 군사력을 행사하는 개별적 주권국가들로 이루어진) 정치의 장이 외견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체제 내부의 그같은 분리구조 속에 있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34


 상품연쇄는 지리적으로 아무 방향으로나 제멋대로 뻗어 나간 것은 아니었다. 모든 상품연쇄들은 지도 위에 그려 넣는다면, 그것들이 구심적인(centripeta)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출발지점은 여러 군데지만 그 목적지점은 한두 지역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주변부(periphery)에서 중심부(centre) 또는 핵심부(core)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여왔다.(p32)... 여러 생산과정의 구조 안에서 나타난 공간적 계서제(階序制, 계급서열제)화는 세계경제의 핵심지대와 주변 지대 사이의 양극화를 점점 더 심화시켜왔는데, 이러한 현상은 분배의 기준이라는 측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현상이 자본축적의 장소 안에서도 일어났다는 점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33


  역사적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중심부와 핵심부는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안정적 체제이며, 체제의 변화를 원치 않는다. 때문에, 역사 속에서 이러한 혁명(革命 revolution)을 제어하려는 움직임은 국가외부에서도 작동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반체제 운동의 힘은 전세계적인 연대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는 1848혁명과 1968혁명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자본주의의 구조는 이러한 기존 여건들을 일부 변화시켰다. 국가들이 국가간 체제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반란이나 봉기가 실제로 일어난 정치적 관할 영역의 경계 밖으로 그 영향이 종종 아주 급속하게 파급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른바 '외부' 세력들로서는 직접 공격받고 있는 국가기구를 돕겠다고 나올만한 강한 동기를 갖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반란은 더욱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p70)... 이같은 지나친 긴장관계로 말미암아 역사적 자본주의 안에서 발전된 반란의 방식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같은 혁신이란 바로 항구적인 조직체를 갖추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역사상 두 종류의 커다란 저항운동, 즉 노동-사회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에서 지속적이며 관료화된 구조가 형성됨을 보게 된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71


 이러한 세계적인 체제의 움직임과 그 밑의 구조에서 움직이는 작은 체제의 움직임 중 하나가 마르크스가 말한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갈등이 있을 것이며, 백낙청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관련하여 '분단체제'를 '세계체제-국가체제' 사이에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분단체제'는 '세계체제론'의 재해석으로 읽힌다. 이처럼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은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론의 전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대작 <근대세계체제>를 읽기 전 필독서라 생각된다. 이제, 전반을 훑어보았으니, <근대세계체제 1>부터 정리해보자...


 생산자의 목적이 자본축적이라고 하는 말은, 생산자가 특정 재화를 가능한 한 많이 생산해서 가장 큰 폭의 이윤이 돌아오도록 그것을 판매할 것이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러나 생산자는 이른바 '시장 내에' 존재하는 일련의 경제적 제약들 속에서 그렇게 할 것이다. 그의 총생산량은 원료의 투입량, 노동력, 고객 그리고 그의 투자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자금력 등과 같은 것들을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는가 그 정도에 따라 한정될 수밖에 없다. 생산해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양과 그가 요구할 수 있는 이윤 폭은 동일한 품목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내다팔 수 있는 경쟁자의 능력에 따라서도 한정된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21


 생산적(임금) 노동은 일차적으로 한 성인 남자, 즉 아버지의 몫이 되고, 이차적으로 가계 내의  다른 (좀더 젊은) 성인 남성들의 몫이 되었다. 비생산적 (생계) 노동은 일차적으로 한 성인 여성, 즉 어머니의 몫이 되고, 이차적으로 다른 여성들 및 어린이와 노인들의 몫이 되었다. 생산적 노동은 가계 밖의 '작업장'에서 행해졌고, 비생산적 노동은 가계 안에서 행해졌다.(p26)... 다른 체제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각기 특유한 (그러나 정상적으로는 평등한) 과업을 수행한 데 비해, 역사적 자본주의하에서는 성인 남성 임금소득자가 '빵을 벌어들이는 자'로 분류되었으며, 성인 여성 가사노동자는 '가정주부'로 분류되었다. 이래서 전국적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했을 때 빵을 벌어들이는 자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활동적인 노동력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었으나 가정주부는 그렇게 간주되지 않았다. 바로 이렇게 해서 성차별주의가 제도화되었던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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