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겨울호랑이 > [마이리뷰] 이야기 폴란드사

요즘 우연히 집어든 책들이 몇 년전 같은 날에 리뷰가 올라온 것을 보면 ‘읽고 싶은 책의 계절적 변동‘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3년 전 쓴 리뷰를 다시 보니 알지 못했던 나라의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3년이 흐른 지나 다시 들여다본 책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

「이야기 폴란드사」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책은 쉽게 평이하게 서술한 폴란드 역사책이다. 때문에 역사적 교훈이나 시대적 의미를 찾아내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인 폴란드 역사 흐름 속에서 우리 역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6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 당시 후사리아 무장으로 용맹을 떨치며튜턴 기사단과 러시아를 제압하던 폴란드 기마대 모습에서, 만주 일대를 호령하던 고구려 개마무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국력이 쇠퇴하여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삼국분할로 패망했던 폴란드 역사에서는, 조선 말 청-일본-러시아 등의 치열한 다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중부 유럽의 강국에서 강제 병합된 약소국의 비극까지 흥망성쇠가 담긴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우리에게 와닿는 부분은 독립투쟁사가 아닐까 여겨진다. 제1차 삼국분할 이후 123년, 공산화 이후 30여년에 걸친 끊임없이 계속된 그들의 역사 속에서 진정한 강인함과 민족 자긍심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후세에 자랑스러운 역사를 남겨주어야 한디고. 자랑스러운 역사는 무엇일까. 광대한 영토, 거대한 건축물을 남기는 나라가 위대한 나라일까.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국가 구성원들이 사랑하며 지키고자 노력하는 나라, 역사가 진정으로 위대한 국가라 여겨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폴란드의 많은 시련과 이를 극복하려는 폴란드인들의 모습안에서 동병상련과도 같은 가슴 깊은 울림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멀리 떨어진 폴란드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임을 최초 독서일로부터 3년이 지나 깨닫게 된다...

야기에워 왕조의 마지막 두 왕인 지그문트 스타리와 지그문트 아우구스트가 다스리던 시대를 폴란드의 황금기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에 폴란드의 세력은 실로 막강했으며 내정은 매우 평화로웠습니다. 이 시기 폴란드는 경제가 발전하며, 눈부신 번영을 구가했습니다. 1569년의 폴란드 리투아니아공화국 또한 학문과 예술 그리고 문화도 대대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유럽에서 영토 면으로는 레시아 다음으로 가장 컸으며 세력 면으로도 가장 강성한 국가 중의 하나였습니다. 유럽에서 폴란드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p155)

1772년에 이 세 명의 통치자가 러시아의 수도인 페테르부르크에 모여 폴란드를 분할하는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러시아는 폴란드의 동쪽 지역을 합병했으며 프로이센은 포모줴 그다인스키에(Pomorze Gdańskie) 지역을 취했고 오스트리아는 폴란드 남쪽에서 커다란 지역을 획득해 갈리츠야(Galicja)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침략자 군대가 폴란드로 진군하나 이들에맞서 저항하기에는 폴란드의 군대가 너무나도 약했습니다.(p251)

체제 변화기의 혼란과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한 폴란드는 지금 착실한 성장 가도에 들어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 국민들은 자신들까지도 놀라게 하는 활발한 역동성을 전 세계에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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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8: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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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8: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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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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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와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다시 홀로 돌아가는 우리 삶. 우리 모두는 홀로 있으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 후 삶의 마지막을 조용히 정리하는 여정을 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지금이 모여 ‘영원‘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읽을 때마다 마치 가톨릭에서 피정을 온 듯한 느낌을 받는 스님의 책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고 살 만큼 살다가 떠날 때도 홀로 간다. 가까운 사람끼리 함께 어울려 살면서도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업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p55)

사람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 그리고 나무와 새와 짐승 등 수많은 생물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커다란 흐름이 곧 이 세상이다. 산업사회 이래 탐욕스런 인간들이 이러한 생명의 흐름, 즉 공생 공존의 원리를 무너뜨려 생명의 위기를 불러들였다. 부분에만 집착한 나머지 전체를 보지 못한 현대인들의 맹목이 자초한 함정이다.(p197)

행복의 기준이라니, 행복에 어떤 기준이 있단 말인가... 내 식대로 표현한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로 물어야 한다. 행복은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 에서 꽃향기처럼 들려오는 것을 행복이라고 한다면, 멀리 밖으로 찾아 나설 것 없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느끼면서 누릴 줄 알아야 한다.(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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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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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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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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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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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고지 - 30주년 기념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핵심 문제는 이것이다. 분열되고 불확실한 존재인 피억압자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해방을 위한 교육학 개발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은 하나뿐이다. 피억압자는 자신을 억압자의 '숙주'로 인식해야만 해방적인 교육학을 낳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의 이중성에 머무르는 한, 그리고 그 '되고 싶은 나'가 실은 '억압자로서의 나'인 한, 그러한 기여는 불가능하다. 피억압자의 교육학은 피억압자와 억압자 모두가 비인간화의 발현이라는 점을 피억압자가 비판적으로 발견하기 위한 도구이다.(p60) <페다고지> 中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 ~ 1997)는 <페다고지 Pedagogy of the Oppressed>를 통해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피억압자(또는 민중)의 교육학을 제시한다. 1970년대 선진국에 의해 수탈당하던 라틴 아메리가에서 그가 제시한 교육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인간화 人間化'였다.


 인간화와 비인간화 모두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인간화만이 민중의 소명이다. 이 소명은 끊임없이 부정되면서도 바로 그 부정에 의해 긍정된다. 인간화는 불의, 착취, 억압, 억압자의 폭력에 의해 저해되지만, 다른 한편 자유와 정의를 바라는 피억압자의 열망,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투쟁에 의해 긍정된다.(p54) <페다고지> 中


 그가 제시한 교육학이 '인간화'로 향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페다고지>를 통해 억압적인 현실, 억압자, 피억압자, 교육, 프락시스 등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였는데, 이번 리뷰에서는 <페다고지>의 결론인 '인간화'가 나오는 전체적인 과정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페다고지> 전체에서 다음 문장이 전체의 내용을 잘 요약한 문장이라 생각되는데, 이 문장에 나오는 핵심어들을 따라가면서 내용을 살펴보자.


 억압적인 현실은 인간을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구분한다. 후자는 진정한 연대감을 보이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투쟁의 프락시스를 통해 억압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한다.(p63) <페다고지> 中


1. 억압적인 현실 : 한계상황 속에 감춰진 주제


 억압적인 현실에서 피억압자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바로 알지 못한다. 자신 삶의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문제해결의 첫 걸음은 시작되지만, 현실의 문제는억압자에 의해 문제는 철저하게 감춰져 있다. 상황 속에 감춰진 문제, 그리고 문제 안에 숨겨진 상황을 억압자가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주제는 한계상황을 포함하는 동시에 한계상황 속에 포함된다. 그것에 포함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계행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주제가 한계상황으로 은폐되어 있는 탓에 명확히 인식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 따른 과제가 진정으로 실현될 수도, 비판적으로 실현될 수도 없다.(p131) <페다고지> 中 


 주제는 일반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 향하는 동심원적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넓은 시대적 단위는 다양한 범위의 단위들을 포함하며, 하위 단위들은 보편적 성격의 주제들을 담고 있다. 나는 우리 시대의 근본적 주제를 지배라고 본다. 여기에는 그 대립물인 해방의 주제가 달성해야 할 목표로서 내포되어 있다.(p132) <페다고지> 中


 자신의 삶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투쟁은 시작된다. 선전, 책략, 조작은 인간성 회복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유일한 도구는 인간화 교육이며, 이를 통해 혁명 지도부는 피억압자와 항구적인 대화 관계를 맺을 수 있다.(p87) <페다고지> 中


2. 억압자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안에 묶인 이들이 허상(虛像)을 보여 평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억압자는 피억압자들에게 거짓의 세계를 제시하며, 그들을 분열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을 통해 소수인 그들은 다수에 대한 지배를 이어가는데 이를 지속시키는 방편으로 활용되는 것이 바로 교육(敎育 education)이다. 


 억압자는 그 파괴를 완전히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를 신화화해야만 한다. 피억압자와 피정복자에게 위선의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소외와 수동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억압자는 세계를 문제로서 제시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 대신 고정된 실체로서, 주어진 것으로서 보여준다. 그리하여 민중은 단순한 구경꾼으로서 세계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p179) <페다고지> 中


 민중이 소외될수록 민중을 분할하고 그 분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한층 쉬워진다. 이러한 국부적인 행동 양식은 피억압자의 국부적인 생활양식을 더웃 김화시킴으로써 피억압자가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저해하고 다른 지역의 피억압자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고립시킨다.(p183) <페다고지> 中


 지배권의 행사로서 실시되는 교육은 억압적 세계에 적응하도록 가르치려는 이데올로기적 의도에서 학생들의 순진함을 더욱 장려한다... 이에 대한 비판은 해방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은행 저금식 교육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참된 휴머니스트들이 깨우치도록 하는 데 있다.(p99) <페다고지> 中


3. 교육의 두 유형 : 은행 저금식 교육과 문제제기식 교육(대화식 교육)


  <페다고지>에서 교육은 두 가지 모습으로 제시된다. 하나는 지배의 수단으로, 하나는 이러한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저자는 전자인 억압자의 교육을 은행 저금식 교육(banking education)이라 말하고, 후자인 피억압자의 교육은  문제제기식 교육(problem posing education)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행 저금식 교육을 통해 무비판적으로 사상을 주입하는 것으로 지배가 강화되었기에, 저자는 생각과 말을 통해 성찰할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반드시 실행이 뒤라라야 한다. 


 교육은 예금 행위처럼 된다. 학생은 보관소이고 교사는 예탁자다. 양측이 서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 교사가 성명을 발표하고 예탁금을 만들면, 학생은 참을성 있게 그것을 받아 저장하고, 암기하고, 반복한다. 이것이 바로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이다.(p90) <페다고지> 中


 인간의 삶은 의사소통을 통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교사는 학생들을 위해서 사고할 수도 없고,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참된 사고란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사고다. 따라서 그것은 고립된 상아탑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의사소통 속에서만 생겨난다.(p97) <페다고지> 中


4. 프락시스


 Be doer of the word and not hearers only, deluding yourselves. For if anyone is a hearer of the word and not a doer, he is like a man who looks at his own face in a mirror. He sees himself, then goes off and promptly forgets what he looked like.(Jas 1 : 22 ~24)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만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는지 곧 잊어버립니다.(야고 1 : 22 ~ 24)


 프레이리의 교육은 단순한 앎에만 그치지 않는다. 프락시스(praxis)를 통한 실천이 따라야만 피억압자는 자신을 둘러싼 억압관계를 청산할 수 있게 된다. 자신과 인식하는 이들과 함께 억압하는 현실을 극복해야 하지만, 그전에 그가 넘어야 할 장애가 있다.


 피억압자는 해방을 우연히 얻는 것이 아니라 해방을 추구하는 프락시스(praxis : 이는 실천으로 번역되는 practice와 동일한 어원의 말이지만, 실천이 이론 없는 행위로 협의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론적 실천의 의미를 갖는 프락시스라는 용어 그대로 사용한다)로써, 해방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함으로써 쟁취하는 것이다.(p56) <페다고지> 中


 "피억압자는 억압자의 정체를 알고 해방을 위한 조직적인 투쟁에 참여할 때에만 비로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얻기 시작한다. 이 깨달음은 순전히 지적인 것만이 아니라 행동에 참여힘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나아가 단순한 행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성찰을 병행해야만 참다운 의미의 프락시스가 될 수 있다.(p83) <페다고지> 中


 피억압자의 정치적 행동은 순수한 의미에서 교육적 행동, 즉 피억압자와 함께 하는 행동이어야 한다.(p84)... 해방적 행동은 그 종속성을 약점으로 인식하고, 성찰과 행동을 통해 그것을 자립심으로 바꿔야 한다.... 피억압자의 해방은 사물의 해방이 아니라 인간의 해방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의 도움으로 해방될 수도 없다.(p85) <페다고지> 中


5. 피억압자 


 피억압자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지만, 허상 속에 갖힌 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유는 그에게 부담이 된다. 영화 <Matrix>에서 네오가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선택하는 상황에 놓인 것처럼,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피억압자에게는 오히려 노예와 같은 상태가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피억압자는 선택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찰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교육은 개인의 성찰을 돕고, 연대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피억압자는 억압자의 이미지를 내면화하고 그 지침을 채택하고 있으므로 자유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자유는 피억압자에게 그 이미지를 거부하고 자율성과 책임성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유란 정복으로써 쟁취하는 것이지 선물로 받는 게 아니다. 자유는 항구적으로, 또 책임감을 가지고 추구해야만 한다... 자유는 인간의 완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조건이다.(p58) <페다고지> 中

[사진] Beyond the Red Pill and the Blue Pill(출처 : https://medium.com/@andrewpgsweeny/beyond-the-red-pill-and-the-blue-pill-9ef953d6e133)


 피억압자는 자신의 내부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중성으로 고통을 겪는다. 그들은 자유가 없으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진정한 존재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인 동시에 자신이 내면화한 의식의 소유자인 억압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기에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피억압자는 선택해야 한다.(p59) <페다고지> 中


6. 의사소통과 교육


 프레이리가 바라본 세계는 상호 의존적이다. 주제와 한계상황, 아(我)와 비아(非我)의 혼재된 상황 속에서 변화(變化)되기 위한 수단이 문제해결식 교육(대화식 교육)이다. 피억압자는 이러한 교육을 통해 현실을 깨닫고 모순을 극복하는 첫 걸음을 딛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해결식 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我)는 비아(非我)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반대로 비아는 아의 존재에 의존한다. 의식을 존재하게 하는 세계는 의식의 세계가 된다. 자신을 성찰하는 동시에 세계를 성찰하는 존재인 인간은 점차 인식의 범위를 넓혀가다가 이윽고 전에는 주목하지 못했던 현상까지 관찰하기 시작한다.(p104)... 객관적으로 존재해 왔지만 심층적 의미에서는 지각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의 특성과 그것에 의한 자극의 특성을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두드러져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배경 의식'으로부터 요소들을 분리해내서 성찰할 수 있다. 이 요소들이 바로 사고의 대상이며, 동시에 인간이 행동하고 인식하는 대상이 된다.(p106) <페다고지> 中 


 인간존재는 침묵할 수 없고, 거짓된 말로 살아갈 수도 없다. 오직 참된 말로만 인간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인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름짓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지어진 세계는 다시 인간에게 문제로서 나타나며, 새로운 이름짓기를 요구한다. 인간존재는 침묵 속에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 말과 일과 행동-성찰 속에서 성장한다.(p112) <페다고지> 中 



[그림] Pedagogy of the Oppressed by Paulo Freire - An Analysis(출처 : http://www.comminit.com/democracy-governance/content/pedagogy-oppressed-paulo-freire-analysis)


 7. 모순의 해법


 프레이리는 최종적으로 피억압자의 교육의 목표가 결국은 인간화, 그리고 '노동 해방'에 있음을 밝힌다. '억압자 - 피억압자' 구조 해체를 통해 궁극적인 자유를 모든 이가 누리고, 자신의 노동을 자신이 소유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인간 해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페다고지>의 결론이다.


 순의 해법은 이 새로운 존재를 세계 속에 가져오는 노동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억압자도 피억압자도 사라지고, 모든 이가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 속에 있게 될 것이다. 관념론적인 관점에서는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p61)...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앎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p62) <페다고지> 中


 해결책은 통합에 있다.(p236)...누구나 '자기 노동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노동은 '인간 인격의 일부분이다', '인간은 팔거나 팔릴 수 없는 존재다' 등의 사실을 비판적으로 의식할 수 있다면, 미봉책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을 인간화 하는 길을은 현실을 인간화함으로써 현실을 올바르게 변혁하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p237) <페다고지> 中


 이처럼,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에서 교육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새롭게 성찰하고, 주변과 대화를 통해 이를 공유하며, 억압받는 자들이 조직과 연대를 통해 억압-피억압자의 관계를 바꾸는 혁명 사상에 대해 말한다. 아마도 저자의 이러한 급진적인 사상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살았던 라틴 아메리카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생각한다면, 그의 사상에 대해 어느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절박한 시대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프레이리가 <페다고지>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50년이 다 되어간다. 그렇지만, <페다고지>에서 문제로 지적한 많은 내용이 현재도 유효한 것을 보면서 저자의 통찰에 감탄해야 할 지, 암울한 현실에 탄식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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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3-21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락시스 = 프랙틱스 ^^

겨울호랑이 2019-03-21 23:06   좋아요 1 | URL
네 아마도 포르투갈어인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3-21 23:14   좋아요 1 | URL
제가 잘못 알지 않았다면 그리스어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9-03-21 23:1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프레이리가 브라질 사람이라 포르투갈어라 넘겨짚어 생각했습니다 ㅋ

cyrus 2019-03-22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부터 읽어야 할 페미니즘 책이 <페다고지>를 많이 인용했어요. 책 제목만 들어봤는데 시간이 있으면 읽어봐야겠어요. ^^

겨울호랑이 2019-03-22 13:03   좋아요 0 | URL
네 cyrus님께서 시간을 내어 읽으신다면,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2020-02-26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잘 정리되어있네요. 감사합니다.

2020-02-26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진]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하는 자유한국당 플래카드


 오전에 지나가던 길에 "비례대표제 폐지, 연동형비레대표제 반대" 플래카드를 내 건 자유한국당 플래카드를 보면서 "과연 국회의원 수 늘이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가볍게 짚어보도록 하자. 현행 기준에서 국회의원 수는 몇 명까지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41조 2항에 의거 국회의원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되어 있는 현행 기준과 제 20대 국회의원 정원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해 보자.(상한은 없다.)


공리. 다음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자.


1. 모든 점에서 다른 모든 점으로 직선을 그을 수 있다.

2. 유한한 직선이 있으면, 그것을 얼마든지 길게 늘일 수 있다. <기하학 원론> 中


 유클리드(Euclid, ? ~ BC 300 ?)의 <기하학원론 Euclid's Elements>의 증명에 사용되는 공리를 사용하여 우리는 현행 국회의원 정수 300명이라는 한 점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으로 부터 최소 1명으로부터 최대 유권자 수에 이르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수직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림] 국회의원 수 도출


 위의 그림에서 우리는 국회의원 수를 극소(極小)로 했을 때 1명이 되는 점과 모든 유권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극대(極大)점을 정할 수 있는데,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원 수는 이 사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국회해산의 경우 0명이 될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는 논외로 하자.) 최소점 - 최대점 대조를 통해 우리는 국회의원 수가 많은 경우와 적은 경우의 효과를 보다 극명하게 볼 수 있는데, 각 점에서 얻는 사회적 효용은 경제학자 애로우(K.Arrow)기 불가능성정리(不可能性定理, impossibility theorem)를 통해 제시한 네 가지 공리(axiom) 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애로우가 말한 네 가지 공리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완비성(完備性, completeness)과 이행성(移行性, transitivity) : 모든 사회적 상태를 비교,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a / b / c 라는 세 사회적 상태에 대해 a를 b보다 더 선호하고 b를 c보다 더 선호한다면 a를 c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2) 파레토원칙(Pareto principle) :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a를 b보다 더 선호한다면 사회도 a를 b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3) 비독재성(non-dictatorship) : 이 사회의 어느 한 구성원의 선호가 전체 사회의 선호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4) 제3의 선택 가능성으로부터의 독립(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 a와 b의 두 사회적 상태를 비교한다고 할 때, 이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3의 선택 가능성 c의 존재는 이들 사이의 선호 순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p571)  <미시경제학>


 이제 각 점을 살표보자. 국회의원이 1명일 경우에는 '완비성과 이행성' 측면에서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신속하게 사안을 판단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1번 공리를 만족하지만, 3번 공리는 만족시키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반면, 모든 유권자가 국회의원일 경우에는 반대가 될 것이다. 애로우의 불가능성정리에 따르면 이들 공리 중 1), 2), 4)를 모두 만족시키는 사회적 선호체계는 반드시 공리 3)을 위배하게 된다. 애로우가 말한 것 처럼 비독재성의 문제가 다른 공리와 부딪히게 된다면, 결국 우리의 논의는 소수 국회의원에 의한 입법권 독점(또는 과점)체제의 신속성과 다수 유권자의 민의 반영이라는 효과성에 대한 선택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호배타적인 두 안(案)이 있을 경우에 우리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의회는 왜 생겼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의 <법철학 philosophie des Recbts>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의회의 사명은 공동체의 업무를 단지 잠재적으로 인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의식적으로 표면에 드러나도록 하는 데 있다. 즉 주관적, 형식적인 자유의 요소인 공공의식을 다수인의 의견 또는 사상이라는 경험적인 공동성으로 현현되도록 하는 데 있다.(p535) <법철학s> 中


 입법권은 연이어 새로운 규정을 필요로 하는 법률 그 자체와 내용 면에서 전적으로 일반적인 국회의 안건을 책정하는 일을 관장한다. 입법권은 정치체제 또는 헌법을 전제로 하고, 그 자체가 정치체제 또는 헌법의 일부를 이룬다.(p530)... 정치제제 또는 헌법은 문화와 더불어 함께 진전되어 가는 것이다... 옛날에는 황제가 영내를 돌면서 판결을 내렸지만 외견상으로는 문화가 점점 향상됨에 따라 황제가 이 재판관 직을 타인에게 이양하는 것이 외면상 더욱 필요해짐으로써 마침내 재판권이 군주개인으로부터 합의부(合議府)로 넘겨지는 일이 벌어졌다.(p531) <법철학> 中


  헤겔에 따르면 의회의 사명은 다수인의 의견을 나타내는 것에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 의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국회의원 정원 확대가 보다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입법자의 수는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늘어나왔다는 것이 헤겔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국회의원 수를 줄인다면 보다 효율적인 입법처리가 가능하겠지만, 반면 독재의 우려가 생기게 된다. 국회의원 수를 늘인다면 이와는 반대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이러한 일장일단(一長一短)의 특징 속에서 의회의 사명과 법역사 발전을 생각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조심스럽게 국회의원 수를 늘이는 쪽에 손을 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는 다른 근거는 의원 1인당 인구수가 OECD 평균을 훨씬 넘는다는 통계다.


[관련기사]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11051379055791


  만약, 국회의원 수를 늘린다면 몇 명이 적정할까?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적정 국회의원 수는 약 1,000명 정도라 생각한다.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 시 95% 신뢰구간과 표본오차범위 3.1%P에서 국민 약 1,000명을 표본으로 선정하며 신뢰도를 강조하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1,000명보다 적은 표본은 일반 국민에 대한 대표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회성의 지지도보다 중요한 우리 삶을 결정하는 입법권의 대표 수가 여론조사 표본 수보다 적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렇게 된다면 국민 세금이 낭비된다고도 이러한 의견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의원300명에게 지급되는 의원 세비를 증액 없이 1,000명에게 나누어 준다면 세금 낭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낮은 비용으로 인해 현 국회의원이 모두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도 최저임금보다는 높은 수준이기에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지원자가 모자라는 상황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될 경우 능력 부족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를 걱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알바가 국회의원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국회를 보이콧하면서 민생법안을 외면하는 이들보다는 분명 더 많은 일을 할 것이기에 이 역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여러모로, 국회 세비는 동결시키고, 인원을 늘려서 경쟁체제를 강조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념에도 부합된다 여겨진다. 국민의 국회불신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서 21대 총선을 더 기다리게 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본 비례대표제 폐지와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하는 자유한국당 플래카드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약간의 장난과 함께 정리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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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17 15: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의원수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하게 자질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하는 일에 비해 특권이 지나치게 많은 게 문제입니다. 스웨덴 의원들처럼 특권을 대폭 줄이면 천 명이라도 대환영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3-17 17:16   좋아요 3 | URL
레삭매냐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특권을 줄이게 되면 이권을 노리고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출마하지 않겠지요. 반면, 국회의원을 명예봉사직으로 여기는 이들의 참여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상식적인 이들의 국회진출로 현재의 문제가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9-03-17 2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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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2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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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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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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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9-03-18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것들 호랭이밥으로 만들어야할듯요! 어흥

겨울호랑이 2019-03-18 19:56   좋아요 1 | URL
선거 때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만화애니비평님 말씀처럼 제대로 심판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호랭이 밥은 좀 ㅋㅋ

2019-03-19 14: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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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15: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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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18: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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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1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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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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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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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4: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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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5: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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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3: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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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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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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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도 역시 해석이라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때 중요한 것과 우연한 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중요성에 관한 나름대로의 기준이 필요하며, 그 기준은 또한 그의 객관성의 기준이기도 하다 : 따라서 역사가도 당면한 목적과의 연관 속에서만 그 기준을 찾아낼 수 있다.(p182) <역사란 무엇인가> 中


 E.H.카(Edward Hallett Ted Carr,1892 ~ 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에서 역사(歷史 history)란 단순한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닌, 역사가의 해석에 의해 재구성되었음을 강조했다. 카 이후 역사가들의 주관적 해석이 역사적 사실 못지 않게 중요함을 인정받았지만, 역사가들 사이의 서로 다른 역사 해석이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부작용이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2019년 초 다시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5.18 민주화 운동'과 비극적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역사책들을 통해 역사가의 해석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광주, 5월 18일 ~ 5월 26일 : 누가 먼저 폭력을 불렀는가?

 

커밍스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 이하 한국현대사 - >에서는 시위대의 계엄 철폐 요구에 대해 공수부대의 무차별 학살로 대응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바라본다. 이에 반해, 이영훈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사전에 광주 지역에 유언비어가 퍼졌고, 시위대의 폭력시위로 인해 공수부대의 실탄 사격이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한다. 정리하면, 커밍스는 공수부대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석하는 반면, 이영훈은 시위대의 폭력이 먼저 였음을 강조한다. 수많은 사람이 죽은 사실은 변함없지만, 역사가들의 해석에 따라 이들은 때론 피해자가, 때론 가해자가 되버리는 것이다.


 5월 18일 광주 거리에 약 500명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계엄령 철폐를 요구했다. 약물을 복용했다고 여겨지는 정예 공수부대가 이 도시에 도착하여 학생, 여성, 어린이 가릴 것 없이 길을 막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차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p540)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5월 18일 광주 시내에는 악성의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광주 시민의 감정을 자극하였다. 19일, 분노한 학생과 시민의 시위대는 공수부대에 화염병, 돌, 보도블럭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기름통에 불을 붙여 경찰 저지선으로 굴러 보냈다. 시위대는 공수부대의 장갑차를 탈취하려 했으며, 그에 맞서 공수부대 장교가 위협사격을 하였다.(p398)... 전남도청, 조선대, 전남대를 제외한 광주시 일원이 군경의 통제를 벗어나 시위대에 점거되었으며, 광주세무서 예비군 무기고에서 칼빈 소총이 시위대에 탈취되었다. 공수부대는 시위의 진압을 포기하고 전남도청과 조선대로 집결하여 시위대와 대치하였다. 경찰관과 부대원의 사망에 자극을 받은 공수부대의 장교들은 실탄 지급을 요청하여 분배 받았다.(p399) <대한민국 역사> 中


2. 5.18 민주화 운동에서의 미국 역할


 5.18 민주화 운동에 있어 논란이 많은 부분은 미국의 개입 여부다. 이에 대해 커밍스는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이 미국 장성이 사령관으로 있는 한미연합사에 있는 만큼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해 미국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해석한다. 반면, 이영훈은 <대한민국역사>에서 해당 부대의 작전권은 한국군에 있었다는 미국정부의 성명서를 이례적으로 상세히 소개하며, 미군은 관련 없음을 강조한다. 역사적 사건은 하나이지만, 역사가는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독자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의 의도와는 관련없이.


 시민 수습대책위원들이 미국대사관에 개입을 호소했으나 오히려 위컴 장군에게는 5월 22일 한국군 20사단을 DMZ의 임무에서 면제하도록 허용하는 일이 맡겨졌을 뿐이다... 미국의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책임은 면할 수 없었고 전선부대 이탈을 허용함으로써 카터의 인권정책은 난자당한 꼴이었다.(p541)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는 광주에서 사태가 전개된 당시부터 미국의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그에 대해 1989년 6월 미국정부는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미국정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 성명서에서 미국정부는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처음부터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 한미연합군 사령부 설치를 위한 1978년의 협정은 미국과 대한민국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언제든지 자국의 부대에 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권을 보장하였다는 사실, 그에 따라 한국군은 이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후 발포된 계엄 업무의 수행을 위해 20사단의 작전통제권을 회수한 적이 있다는 사실, 이후 동 사단의 3개 연대 중 1개 연대의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령부에 반납되었지만 나머지 2개 연대의 작전통제권은 반납되지 않았다는 사실, 1980년 5월 20일 한국군은 20사단 1개 연대의 작전통제권을 다시 회수하였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미국 책임론을 부정하였다. 이처럼 광주 유혈참극에 대한 미국 책임론은 그 근거가 확실하지 않지만...(p402) <대한민국 역사> 中


 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위를 논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으므로, 사실에 대한 판단은 넘기도록 하자. 대신,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이처럼 동일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함에도 불구하고 역사가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E.H카는 그것은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인과(因果) 관계, 상관(相關) 관계 설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앞에서 우리는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여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에서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사실이 역사적 사실인 것은 아니다... 역사가와 그의 원인의 관계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관계와 똑같이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성격을 가진다. 원인은 역사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며, 그의 해석은 원인에 대한 그의 선택과 배열을 결정한다. 원인의 등급화, 즉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어느 일련의 원인들 혹은 또 다른 일련의 원인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려내는 것이 그의 해석의 핵심이다.(p156) <역사란 무엇인가> 中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중요한 사건을 골라내어, 이들을 대상으로 의미(意味)를 부여하는 것이 역사가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역사가가 자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서 결과적으로 왜곡한다면 유지기(劉知幾·661∼721)로부터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여 문서를 농락하고 비행이나 과오를 미화하는 일도 있었으니, 왕은 王隱과 우예 虞預는 헐뜯고 서로 모욕했으며 배자야 裵子野와 심약 沈約은 분란을 매듭짓고 사과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판단으로만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다른 이의 화복을 자신의 붓끝으로 좌우했으니 이야말로 편찬자의 추악한 행태이며 사람이라면 함께 미워해야 할 짓이라고 하겠다.(p429)... 무릇 역사서의 곡필과 무함이 한두 가지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 죄를 논하자면 잘못이 이미 크다고 할 수 있다.(p434) <사통> 中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역사가가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가를 한국 현대사를 통해 깊이 느끼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다소 관련성은 떨어지나, 개인적으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인물은 로메로 대주교다. 산살바도르 대주교로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다 반대파의 피습으로 세상을 떠난 로메로 대주교의 삶과 군부통치 하의 산살바도르의 배경이 80년대 한국사회를 떠올리게 해서일까.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살바도르>와 로메로 대주교의 삶을 다룬 <로메로>는 로메로 대주교의 총격 장면에서 사건이 교차하는데, 관객들은 이 영화들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모습과 함께 우리의 가슴아픈 현대사도 함께 바라보게 된다...

 

 농지개혁과 더불어 자행된 테러의 가장 두드러진 희생자는 산살바도르의 대주교인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Oscar Arnulfo Romero)였다. 수년간에 걸쳐 군부와 치안부대의 인권유린을 공격한 오스카르 로메로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1980년 2월 2일의 설교에서 그는 "모든 평화적 수단이 고갈되었을 때, 교회는 봉기를 도덕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고 선언했다. 3월 23일 토지개혁에 따른 탄압에 대응하여, 그는 병사들에게 비무장 민간인들에게 총을 겨누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산살바도르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군 장교로 추정되는 사람의 총격으로 사망했다.(p411) <라틴아메리카의 역사(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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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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