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글 바로 쓰기 2 우리 글 바로 쓰기 2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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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문일치‘는 어디까지나 ‘글‘이 ‘말‘을 따라가는 것이며, 우리 말은 어린이가 쓰는 말이 가장 우리 말다운 말이다.-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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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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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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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16: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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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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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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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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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통령, 군인, 과학자로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반면 요즘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1위가 연예인, bj, 크리에이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업화 시대‘에서 ‘대중 문화 시대‘로 바뀌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 전 이웃분으로부터 딸아이 선물로「프리파라」책을 선물받았습니다. 저는 잘 몰랐지만, 이미 아이와 엄마에게는 유명한 캐릭터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이돌이 세계 각지에서 라이브 공연을 통해 ‘좋아요‘를 모으고,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제게는 낯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1인 방송과 sns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접하면서 성장하는 아이에게는 그렇게 낯설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은 그 외에도 「페어리루」가 있는데, 이 책 역시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보면 이제는 연예인이 대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어렸을 때 나온 만화영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도 여주인공 린 민메이가 있었습니다만, 극중 가수로 나온 이 인물의 극중 비중이 크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변화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민메이는 최후의 결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만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외에도 요즘 아이들의 세계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됨을 느끼게 됩니다. 선물을 보내주신 이웃님께 감사드리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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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08 0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에는 아이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가 많죠. 그렇다보니 아이돌 만화에 참여한 여성 성우가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는 일이 있어요. 아이돌 가수와 똑같이 팬들을 위한 공연도 하고요. 작년에 일본 만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일본 만화 시장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요, 지금도 그렇고 일본 만화 시장은 신세계입니다... ㅎㅎㅎㅎ 그 곳의 문화가 낯설어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도 있어요. ^^;;

겨울호랑이 2019-04-08 07:2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cyrus님 말씀을 들으니 일본 애니매이션 시장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네요. 애니메이션과 여기서 파생되는 다른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태인 2019-04-08 0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린 민메이 추억의 그 이름.작화가 굉장히 예뻤던 기억이 나네요...좀 옛날스러운 작화기는 했지만

겨울호랑이 2019-04-08 09:38   좋아요 1 | URL
^^:) 네 그렇습니다.SF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은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그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80년대 만화다보니 지금 보면 느낌이 예전만 못해도, 좋은 추억을 가져다 준 만화로 기억됩니다.^^:)

2019-04-11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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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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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5: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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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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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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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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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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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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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데트 드 크레시의 이미지가 그의 모든 몽상을 흡수해서는, 그 몽상이 그녀의 추억과 더 이상 분리되지만 않는다면 그때 그녀의 육체적인 결함이나 그녀 육체가 다른 여인보다 스완의 취향에 더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육체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육체이므로 이제부터는 오로지 그 육체만이 그에게 기쁨과 고뇌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p2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마르셀 프루스트(Valentin Louis Georges Eugene Marcel Proust, 1871 ~ 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Du Cote de chez Swann>는 2부 스완의 사랑과 3부 고장의 이름 -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속에서 우리는 음악으로 표현된 사교계의 명사인 스완과 화류계 여성인 오데트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우리가 듣는 음은 그 높이와 부피에 따라 우리 눈앞에 있는 다양한 차원의 표면을 감싸고 아라베스크 무늬를 그리며 우리에게 넓이, 미묘함, 안정감, 변화에 대한 감각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음은 뒤이어 또는 동시에 나타나는 음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이들 감각이 우리 마음속에 충분히 형성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절들의 복사본을 만들어 그것들을 다음에 오는 악절들과 대조하고 구별하게 하도록 해 주지 않는다면, 그 '액체성'과 '뒤섞임'으로 계속 모티프들을 감쌀 것이고 그리하여 모티프들은 거의 식별할 수 없는 상태로 이따금 솟아오르다가 이내 가라앉고 사라지면서 그것이 주는 특별한 기쁨에 의해서만 지각될 뿐 묘사할 수도 기억할 수도 명명할 수도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된다.(p4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음악은 스완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교의 공간인 살롱에서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는 밀려드는 바닷가의 파도처럼 스완의 귓가를 밀려들고, 스완의 감정은 이로인해 요동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에서 음악은 감정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데, 이러한 음악의 기능을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의 <헤겔미학 Vorlesungen uber die Asthetik>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회화의) 예술작품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객체로 머물며, 우리는 그것들을 관조하는 상태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음악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없어진다. 음악의 내용은 즉자적이며 주관적이고 또한 공간 속에서 지속되는 객관성으로 외화되지 않고 부단히 자유로이 진동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전달이 된다.... 따라서 음은 외적으로 외화되더라도 바로 그것이 외화되기 때문에 곧 다시 사라진다. 즉, 귀가 음을 포착하자마자 그 음은 다시 침묵하고 만다. 이때 생기는 인상은 곧 내면화된다. 음은 그 이념적인 주관성 속에서 포착되고 움직이는 가장 깊은 영혼 속에서만 여운을 남긴다.(p349) <헤겔미학 3> 中


 다른 예술 표현과 구분되는 음악(音樂)의 특징은 일회성의 예술 또는 순간 예술이라 하겠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을 저장할 수 있게된 지금은 또 달라졌지만, 헤겔이나 프루스트가 살던 시기의 음악은 연주되는 순간 휘발(揮發)성이 강한 예술이었다. 헤겔의 설명에 따르면 청자(聽者)에게 들리는 그 음은 바로 내면화되며, 이로서 음악은 청중의 감정에 보다 잘 접근하는 수단이 된다.  


 처음에 그는 악기에서 흘러 나오는 음의 물질적인 질감밖에 음미하지 못했다. 그러다 가느다랗고 끈질기고 조밀하며 곡을 끌어가는 바이올린의 가냘픈 선율 아래서, 갑자기 피아노의 거대한 물결이 출렁거리며 마치 달빛에 흘려 반음을 내린 연보랏빛 물결처럼, 다양한 형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잔잔하게 부딪치며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p45)... "사물이 밝아지는 것이 더 잘 보이도록 <월광> 소타나는 어둠 속에서 연주해야 합니다. 어떤 불빛도 없어야 합니다."(p17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작품 속에서 스완은 처음에 음악에 쉽게 동화되지 못했으나, 일단 음악이 마음으로 들어오자, 그는 음악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작품 속에서 스완과 오데트의 사랑은 음악을 매개로 표현되는데, 이는 스완의 오데트에 대한 사랑이 순간적이고 감정적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스완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오데트 자신이 아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예술픔으로 우리를 향하게 하는 이 막연한 공감은 이제 이드로 딸의 관능적인 원형을 알게 되자 욕망이 되었고, 오데트의 육체가 처음에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욕망을 대신했다. 그는 보티첼리의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그림보다 더 아름답게 여겨지는 자신의 보티첼리를 생각했고, 또 제포라의 사진을 몸 가까이로 끌어당기며 마치 오데트를 품에 안은 것처럼 생각했다.(p7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그는 이드로 딸의 복제화를 마치 오데트의 사진인 양 자신의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그는 커다란 눈이며 불완전한 피부를 짐작케 하는 섬세한 얼굴이며, 피로한 뺨을 따라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그 멋진 웨이브를 찬미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까지 미학적인 방식으로 아름답다고 여겨 오던 것을 한 살아있는 여인에게 적용해 육체적인 장점으로 변형했고, 그리하여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존재와 결합된 것을 보고는 기뻐했다.(p7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그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출처 : en.wikipedia.org/wiki/The_Birth_of_Venus]


 스완이 사랑한 것은  현실의 오데트가 아닌 그가 이상(idea)으로 생각한 보티첼리 그림의 현현(顯現)으로서의 오데트였다. 스완은 오데트 보다 그녀의 복제화를 바라보기를 더 좋아했으며, 이를 소유했다는 사실에서 기쁨을 느꼈다. 이러한 스완의 사랑을 오데트에 대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스완의 철학은) 그들이 열망하는 대상을 객관화하는 대신, 흘러가 버린 세월로부터 어떤 습관이나 정열의 굳어 버린 잔재를 추출하여, 그 습관이나 정열을 그들 불변의 성격으로 간주하고는, 그들이 택하는 생활 방식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다른 무엇보다도 주의하는 철학이었다.(p16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이제까지 '내가 행복했던 시절' '내가 사랑받던 시절'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쓰면서도 별로 괴로워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지성이, 소위 과거의 본질이라고 부르면서도 실은 과거 그 어떤 것도 보존하지 않고 단지 요약된 부분만을 가두어 놓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이 잃어버린 행복의 특별하고도 증발하기 쉬운 본질을 영원히 고정해 놓은 것들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다.(p27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스완의 사랑은 오데트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상(像)에 대한 사랑이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깎여나가지 않는 것을 불변의 요소(elements)로 생각하고 이를 열망하는 스완의 모습에서 <헤겔미학> 속의 '회화(繪畵)'의 특성을 유추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고려할 점은 회화는 삼차원의 공간적 총체성을 축소시킨다는 점이다. 이 축소가 완전히 이루어질 때 서로 곁에 서 있는 것 같은 불안(Unruhe-in-sich)이 일 수도 있다. 이처럼 시종일관 부정(否定)되어 가면서 생기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그에 반해서 회화는 공간적인 것은 아직 존재하게 놓아두고 단지 삼차원 가운데 한 차원만을 제거하여 평면으로 축소하여 이를 표현요소로 삼는다. 이처럼 삼차원이 평면으로 축소되는 것은 내면화 원리(Prinzip des Innerlich-werdens) 안에 이미 들어 있다. 이는 공간 속에서 외면성을 외적인 총체성으로 존속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제약함으로써만 표현해낼 수 있다.(p249) <헤겔미학 3> 中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차원 축소를 한 예술이 회화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시간의 차원에서 물질의 특성을 깎아내고, 현실에서 이상의 요소를 끌어내려한 스완의 사랑을 연결짓는 것이 그리 무리한 작업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그의 사랑은 육체적인 욕망의 영역 너머까지 확산되어 갔다. 그곳에서는 오데트라는 인간마저도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p209)... 그녀는 그녀라는 이삼인칭 대명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사랑이나 죽음과도 흡사하지만 막연한 닮음이라기보다는, 그 실재가 우리로부터 빠져나갈까 두려워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하는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이 질문하게 하는 인격의 신비로움과도 같은 것이었다.(p2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2부 스완의 사랑에서는 스완의 사랑과 함께 스완의 철학적 물음도 접하게 된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의 방법론적 회의 전통을 따라 전기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의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와 동일한 결론 -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에 이른듯한 스완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철학적 고민도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 앞에 존재하는 어떤 실제적인 물건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듯, 예컨대 램프에 불이 켜져 방 안 물건이 완전히 변모하여 어둠의 기억마저 방에서 빠져나간다해도 우리가 그 불빛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듯이, 그 개념들을 알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p27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난 내가 이미 아는 것밖에는 말하지 않소.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안다오.(p29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언표될 수 없는 대답에 대해서는 물음도 언표될 수 없다. 수수께끼는 존재하지 않는다.(6.5)... 의심이란 오직 물음이 존립하는 곳에서만 존립할 수 있고, 물음이란 대답이 존립할 수 있는 곳에서만 존립할 수 있으며, 또 이 대답이란 어떤 것이 말해질 수 있는 곳에서만 존립할 수 잇기 때문이다.(6.51)... 삶의 문제의 해결은 이 문제의 소멸에서 발견된다.(6.521)...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6.522)...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7) (p117) <논리-철학 논고>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 3부는 고장의 이름 - 이름이다. 사실, 이 부분은 아직 정리가 미처 되지 않아 올리기 주저했으나 몇 가지 고민을 일단 던져보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3분에서는 '말-사물'의 관계와 '생명력'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와 관련하여 먼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의 <말과 사물 Les Mots et les Choses>를 먼저 살펴보자.

 

 사물 자체가 언어처럼 수수께끼를 감추고 드러내기 때문에, 언어는 세계 속에 자리하고 세계의 일부분을 이룬다. 자연을 인식하기 위해 펼치고 한 자씩 더듬거리며 읽는 책이라는 주요한 은유는 언어를 세계 곁에, 가령 나무, 풀, 돌, 동물 사이에 존재하도록 속박하는 훨씬 더 심층적인 또 다른 전이(轉移 transfert)의 가시적 이면일 뿐이다.(p70) <말과 사물> 中


 그 장소들은 그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이름, 인명과도 같은 이름으로 지칭됨으로써 얼마나 많은 개별성을 획득했던가! 말은 사물에 대해  분명하고도 친숙한 이미지를 제시한다.(p34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말과 사물>에서 말은 사물을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푸코의 주장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다만, 아직까지 이름과 관련한 내용을 이후 쉽게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다음 편으로  일단 넘긴다.


 나무들은 계속해서 그 자체의 생명력만으로 살고 있어, 잎들이 이미 떨어지고 없어도 그 생명력은 나무줄기를 감싼 초록색 벨벳 나무껍질 위나, 포플러 나무 꼭대기 여기저기에 뿌려진 겨우살이의 구체(球體)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그려진 태양과 달처럼 동그란 -를 감싼 하얀 투명체 안에서 더욱 밝게 반짝였기 때문이다.(p40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3분에서는  사물(또는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다. 이에 대해서 베르그손(Henri-Louis Bergson, 1859 ~ 1941)의 엘란 비탈(Elan Vital))이 연상되지만. 명확하게 내용상으로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본문에서 인용하지는 않는다. 다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에서의 '나무'의 이미지가 <말과 사물>의 '지식의 체계화'와 '생명력' 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표시하고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16세기 말엽이나 그다음 세기의 초반 몇 년 사이에 출현하는 백과사전의 기획은 이로부터 유래하는데, 이는 알고 있는 것을 언어는 중립적 요소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 자체를 말의 연쇄와 그 공간적 배치로 재구성하려는 기획에 해당한다... 다수로 분기된 나무의 형태에 따라 지식을 공간화하기에 이르는 크리스토프 드 사비니에게서도 이러한 기획이 엿보이며...(p74) <말과 사물> 中


 나는 주변 사물들의 무감각과 고독, 그리고 폐허 한가운데에서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우리 우정의 생명력과 미래에 좀 더 많은 믿음을 품게 되었다.(p359)... 나는 이 새로운 기쁨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줄 몰랐다. 그 기쁨은 내가 사랑하는 소녀로부터 그 소녀에 지나지 않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질베르트에 대한 추억도 확고한 마음도 가지지 못한 '또 다른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p36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를 통해서 스완의 사랑은 음악을 통해 감각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오데트가 아닌 자신의 이상형이었으며, 그런 스완의 사랑은 회화적인 면이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말-사물' 속에서 언어와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 사이의 관계, 그리고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다음 권으로 넘어가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PS.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의 <월광(月光, Moonlight) 소나타>가 울리는 가운데, 진행된 스완의 사랑이지만 그의 사랑은 <月亮代表我的心> 같은 감미로움은 없는 듯하다.


?問我愛?有多深,我愛?有幾分。

당신은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我的情也?,我的愛也?, 月亮代表我的心。

나의 마음도 진짜입니다. 나의 사랑도 진짜입니다.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합니다.


?問我愛?有多深,我愛?有幾分。

당신이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我的情不移,我的愛不變,月亮代表我的心。

나의 마음은 떠나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은 떠나지 않습니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합니다.


輕輕的一個吻,已經打動我的心。

부드러운 입맞춤으로 이미 내 마음은 열렸습니다.


深深的一段情,叫我思念到如今。

깊고 깊은 마음에, 날 지금까지 그리워하게 만들었습니다.


?問我愛?有多深,我愛?有幾分。

당신은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去想一想,?去看一看,月亮代表我的心。

저 달빛을 보며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달이 내 마음을 보여줍니다.


輕輕的一個吻,已經打動我的心。

부드러운 입맞춤으로 이미 내 마음은 열렸습니다.


深深的一段情,叫我思念到如今。

깊고 깊은 마음에, 날 지금까지 그리워하게 만들었습니다.


?問我愛?有多深,我愛?有幾分。

당신은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去想一想,?去看一看,月亮代表我的心。

저 달빛을 보며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달이 내 마음을 보여줍니다.


?去想一想,?去看一看,月亮代表我的心。

저 달빛을 보며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달이 내 마음을 보여줍니다. [가사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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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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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되는 순간 사라지는 피아노곡과 사랑. 스완의 에바 페론 오데트. 시각, 청각, 촉각으로 돌아보는 과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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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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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을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p487) <파시즘> 中


 로버트 O. 팩스턴(Robert O. Paxton, 1932 ~ )의 <파시즘 Fascism>은 역사 속에 나타난 히틀러(Adolf Hitler,1889 ~ 1945)와 무솔리니(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1883 ~ 1945)의 사례를 중심으로 파시즘을 정의한 책이다. <파시즘>이 대상으로 하는 전후 독일/이탈리아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이번 리뷰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보고, 파시즘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1. 외부로부터의 위협


 저자는 파시즘 등장의 배경으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지적한다.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불안한 사회구조.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내외 조건이 갖춰졌을 때 파시즘이 싹트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1917년 2월과 10월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917년 이후 좌파는 1914년 이전에 했던 것처럼 세력을 모으면서 때를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으로 보였던 볼셰비키 혁명의 선두에 서서 전 세계를 향해 전진해나가는 것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볼셰비즘이 울린 화재경보는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자유주의적 가치와 제도가 맞닥뜨린 곤경을 한층 더 가중시켜 비상 사태로 몰아넣었다. 의회, 시장, 학교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자유주의적 제도들은 이 비상 사태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p114) <파시즘> 中


[사진] 무솔리니와 히틀러(출처 :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how-journalists-covered-rise-mussolini-hitler-180961407/)


2. 위기에 취약한 사회시스템


 일반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다진 모든 종류의 보수주의 체제는 파시즘이 권력을 획득하기에 좋은 환경이 못 되었다. 이들은 파시스트들을 무질서를 선동하는 세력으로 간주해 궤멸시키거나 파시스트들이 내세우는 이슈와 지지 세력을 선점해버렸다. 보수파들은 단독 통치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파시스트들과 연합하지 않았다.(p255) <파시즘> 中


  제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에서도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 ~ 1919)와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 1850 ~ 1932)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자들의 대두는 전후 독일 사회에 새로운 충격을 가져왔지만, 기존 시스템들은 이러한 충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회의 위기 상황에서 기득권들의 선택은 '파시즘과의 연대'였다. 


 빌헬름 시대 독일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근대성'에 반대하는 강력한 반유대주의 세력과 폭도가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위기에서 독일의 군대와 관료 사회에 대한 사법적/정치적 지배가 다른 유럽 국가들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p184) <파시즘> 中


 위기에 처한 것은 통치의 기술이었다. 좋은 집안 출신의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사회적 명성과 존경에 의지해서 선거에 계속 재당선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명망가의 지배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 명망가의 지배가 '대중의 국민화'로 인해 거센 압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p186) <파시즘> 中 


 보수파 지도자들은 파시즘이라는 대안을 선택했다.(p236)... 보수 세력은 한갓 오스트리아계 상병 출신인 히틀러나 풋내기 사회주의자 선동가인 무솔리니는 높은 자리에 앉는다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었다. 교양있고 경험도 풍부한 보수 진영 지도자들의 기지가 없으면 정치를 이끌어갈 수 없으리라고 예상했던 것이다.(p241) <파시즘> 中


3. 그렇다면 왜 파시즘이었는가?


 저자는 파시즘이 '대중에 의한 정치'의 토대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중(demos)에 의해 지배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발생하는 정치 혼란은 파시즘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된다. 파시즘이 초기에 보여준 관대한 모습은 보수파들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고, 그 결과 기득권인 보수주의자들은 파시즘과 손을 잡게 되었다.


 파시즘(fascism)은 좌파의 계급 투쟁과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및 입헌주의에 맞서기 위해 각 나라의 민족 문화에서 부흥, 통합, 정화와 같이 대중을 동원하기에 가장 용이한 주제를 찾아내려 했다... 파시즘은 자신들과 본질적으로 성향이 다른 지식인 식객들까지도 넓은 마음으로 환대했다.(p106) <파시즘> 中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는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였다. 파시즘이 암실에서 나와 공적인 무대로 가장 쉽게 진출했던 곳은 기존 정부의 기능이 형편없거나 아예 전무했던 곳이었다. 파시즘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파시즘이 자유주의의 위기를 기반으로 삼아 번성했다는 사실이다.(p185) <파시즘> 中


 파시즘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대중 정치(mass politics)'다. 좌파에 대항하는 대중 운동으로서 파시즘은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기 이전에는 아예 존재할 수 없었다.(p110)... 보수주의자들이나 신중한 자유주의자들과는 달리 파시스트들은 결코 대중을 정치 밖으로 몰아내려 하지 않았다.(p112) <파시즘> 中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집권 과정에서 필연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유주의 전통의 척박함, 뒤늦은 산업화, 민주주의를 용인하지 않는 엘리트층의 잔존, 혁명의 물결이 지닌 위력, 국가적 굴욕에 대항한 발작적 봉기 등 다양한 요소들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선택의 폭을 좁히는 데 기여했을지도 모른다.(p236) <파시즘> 中


4. 파시즘의 변모와 집권


 유권자 단체나 압력 단체가 중심이던 정치에 성공적으로 참여하게 된 초기 파시즘 운동들은 말과 행동에 더욱 정확히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파시스트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무차별적인 저항이라는 비조직적 영역을 포기하고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확실할 정치 공간을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p140)... 그러나 파시스트당이 구체적인 정치 활동에 뿌리를 내리자마자, 파시스트들이 사용하던 반부르주아적 수사의 선택적 본성이 뚜렷이 드러났다. 실제로 파시스트들의 반자본주의는 지극히 선택적인 것으로 드러났다.(p141) <파시즘> 中


 기존 기득권과의 연합을 통해 힘을 갖게 된 파시스트들은 초기에는 다른 세력과 연대를 위해 온건한 형태를 유지했지만, 본질적으로는 '폭력', 폭력이 낳은 '혼란', 혼란이 불러오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파시스트들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국민과 거칠게 다루어야 할 국외자들의 차별을 부추겼다.(p198)... 위기를 심화시킬 목적으로, 나치당은 대상을 신중하게 선택해서 의도적인 폭력 사태를 더 많이 일으켰다.(p222) <파시즘> 中


 그렇지만, 자신들이 일으킨 폭력이 그들에게 권력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1923년 뮌헨 폭동(Munchen Putsch)을 통해 집권하려던 히틀러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 그를 감옥으로 보냈지만, 공산주의자가 일으킨 방화사건은 그에게 대중의 이름으로 권력을 건네주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아직도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의 유권자들은 나치당에게 과반수의 표를 준 적이 없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어 전 독일을 지배하던 1933년 3월 6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지지율은 상당히 올랐지만 아직은 미흡한 43.9퍼센트에 그쳤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어느 누구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지 않았다. 집권 전에 무력으로 기존 정권을 위협하거나 집권 후에 무력을 동원해 정부를 독재 체제로 변환시키기는 했지만, 어느 쪽도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p225) <파시즘> 中


  하지만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운 좋은 사건이 일어나 우파나 중도파 중 어느 쪽의 반대도 없이 사실상 내부로부터 쿠데타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운 좋은 사건이란 바로 1933년 2월 27일에 발생한 베를린의 독일제국 의회 의사당 방화 사건이었다.(p245)... 수많은 독일인들이 그러한 공포에 공감하여 나치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내준 셈이다.(p246) <파시즘> 中


5. 파시즘의 붕괴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한 파시즘 체제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1940년 대 이래, 파시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파시즘 정권들이 당과 강력한 보수 세력 사이에 맺어진 모종의 협약이나 동맹관계에 의지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왔다.(p274)... 파시즘 지배는 여러 세력이 연합을 이룬 가운데 벌어진 끝없는 주도권 쟁탈전이었다. 이 투쟁은 헌법상의 규제와 법에 의한 통치가 무너지고 사회진화론이 대세를 장악하면서 더욱 격렬해졌다.(p277) <파시즘> 中


 저자는 <파시즘>을 통해 파시즘을 정의해 나가지만 이것이 쉽지 않음을 말한다. 그 이유는 파시즘이 나타난 양태가 국가마다 다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파시즘이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모든 세력들의 연합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A의 여집합'이 집합 'A'의 부정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듯, 파시즘은 부정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 정치행동이었다.


 파시즘 정권들은 마치 하나의 분자구조물과도 같았다. 다시 말해, 파시즘 세력과 보수적 질서라는 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물질이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두 가지 공통점을 매개로 하여 결합하여 탄생한 합성물이 바로 파시즘 정권이었던 것이다.(p333) <파시즘> 中

 

 문제는 이러한 서로 다른 세력들의 결합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불안한 구조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파시스트 정권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전쟁은 파시즘의 안정화를 위해 가야할 수순이었고, 파시즘의 종말도 함께 할 친구가 되었다.


 급진화 단계는 파시즘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어떤 정권도 급진화될 수는 있지만, 자기 파괴에 이를 정도로 격렬한 폭력을 분출하는 파시즘적 충동의 깊이와 위력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급진화의 핵심은 팽창주의 전쟁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체제의 적들, 다음으로는 파시즘의 보수파 동맹 세력, 마침내는 독일 국민들까지 상대로 하여 이성을 잃고 완전 몰살을 기도하며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p384)... 나아가 급진화는 파시즘의 핵심으로 간주되었던 민족과 국가마저 거부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최종적 분석에 따르면 파시즘은 타고난 성격 자체가 불안정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파시즘은 겁에 질린 보수파나 자유주의자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참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p386) <파시즘> 中


[사진] 폐허가 된 프랑스 시가지를 통과하는 독일군 오토바이(출처 : http://world-war-2.wikia.com/wiki/File:German_motorcycle_driving_through_ruined_French_town,_France_1940.jpg)


 <파시즘>은 이와 같이 역사 속에 나타난 파시즘의 여러 모습을 통해 최종적으로 파시즘을 정의한 책이다. 과거와 현재,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등장한 파시즘의 모습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 결과 저자는 리뷰 서두에서 인용한 긴 정의를 내리게 된다. 비록, 저자의 정의는 길고 어렵지만 파시즘의 모순을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불안한 사회상황에서 타인을 부정하는 욕망들의 결합체'를 파시즘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축약일까. 개인적으로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이와 같이 정리해본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분단을 동시에 가져다 준 제2차 세계대전. 21세기에도 냉전(冷戰)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파시즘'이 주는 역사적 의미는 작지 않다고 여겨진다. 또한, <파시즘>에서 분석하고 있는 전후(1920~ 30년대) 독일의 정치 상황이 주는 교훈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파시즘>은 일독할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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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4-04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래 파시즘 책 더 읽어 보고 싶었는데,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9-04-04 19:46   좋아요 1 | URL
네. 책 분량이 제법 있지만, 내용적으로도 잘 정리되어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19-04-04 20:42   좋아요 1 | URL
네, 파시즘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파시즘을 정의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이데올로기가 없는 생각도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글 보며 순간 생각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4-04 21:25   좋아요 1 | URL
^^:)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파시즘의 정의가 모호해서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 같습니다.

2019-04-05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8: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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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16: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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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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