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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을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p487) <파시즘> 中
로버트 O. 팩스턴(Robert O. Paxton, 1932 ~ )의 <파시즘 Fascism>은 역사 속에 나타난 히틀러(Adolf Hitler,1889 ~ 1945)와 무솔리니(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1883 ~ 1945)의 사례를 중심으로 파시즘을 정의한 책이다. <파시즘>이 대상으로 하는 전후 독일/이탈리아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이번 리뷰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보고, 파시즘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1. 외부로부터의 위협
저자는 파시즘 등장의 배경으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지적한다.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불안한 사회구조.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내외 조건이 갖춰졌을 때 파시즘이 싹트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1917년 2월과 10월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917년 이후 좌파는 1914년 이전에 했던 것처럼 세력을 모으면서 때를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으로 보였던 볼셰비키 혁명의 선두에 서서 전 세계를 향해 전진해나가는 것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볼셰비즘이 울린 화재경보는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자유주의적 가치와 제도가 맞닥뜨린 곤경을 한층 더 가중시켜 비상 사태로 몰아넣었다. 의회, 시장, 학교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자유주의적 제도들은 이 비상 사태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p114) <파시즘> 中
[사진] 무솔리니와 히틀러(출처 :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how-journalists-covered-rise-mussolini-hitler-180961407/)
2. 위기에 취약한 사회시스템
일반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다진 모든 종류의 보수주의 체제는 파시즘이 권력을 획득하기에 좋은 환경이 못 되었다. 이들은 파시스트들을 무질서를 선동하는 세력으로 간주해 궤멸시키거나 파시스트들이 내세우는 이슈와 지지 세력을 선점해버렸다. 보수파들은 단독 통치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파시스트들과 연합하지 않았다.(p255) <파시즘> 中
제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에서도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 ~ 1919)와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 1850 ~ 1932)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자들의 대두는 전후 독일 사회에 새로운 충격을 가져왔지만, 기존 시스템들은 이러한 충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회의 위기 상황에서 기득권들의 선택은 '파시즘과의 연대'였다.
빌헬름 시대 독일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근대성'에 반대하는 강력한 반유대주의 세력과 폭도가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위기에서 독일의 군대와 관료 사회에 대한 사법적/정치적 지배가 다른 유럽 국가들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p184) <파시즘> 中
위기에 처한 것은 통치의 기술이었다. 좋은 집안 출신의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사회적 명성과 존경에 의지해서 선거에 계속 재당선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명망가의 지배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 명망가의 지배가 '대중의 국민화'로 인해 거센 압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p186) <파시즘> 中
보수파 지도자들은 파시즘이라는 대안을 선택했다.(p236)... 보수 세력은 한갓 오스트리아계 상병 출신인 히틀러나 풋내기 사회주의자 선동가인 무솔리니는 높은 자리에 앉는다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었다. 교양있고 경험도 풍부한 보수 진영 지도자들의 기지가 없으면 정치를 이끌어갈 수 없으리라고 예상했던 것이다.(p241) <파시즘> 中
3. 그렇다면 왜 파시즘이었는가?
저자는 파시즘이 '대중에 의한 정치'의 토대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중(demos)에 의해 지배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발생하는 정치 혼란은 파시즘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된다. 파시즘이 초기에 보여준 관대한 모습은 보수파들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고, 그 결과 기득권인 보수주의자들은 파시즘과 손을 잡게 되었다.
파시즘(fascism)은 좌파의 계급 투쟁과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및 입헌주의에 맞서기 위해 각 나라의 민족 문화에서 부흥, 통합, 정화와 같이 대중을 동원하기에 가장 용이한 주제를 찾아내려 했다... 파시즘은 자신들과 본질적으로 성향이 다른 지식인 식객들까지도 넓은 마음으로 환대했다.(p106) <파시즘> 中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는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였다. 파시즘이 암실에서 나와 공적인 무대로 가장 쉽게 진출했던 곳은 기존 정부의 기능이 형편없거나 아예 전무했던 곳이었다. 파시즘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파시즘이 자유주의의 위기를 기반으로 삼아 번성했다는 사실이다.(p185) <파시즘> 中
파시즘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대중 정치(mass politics)'다. 좌파에 대항하는 대중 운동으로서 파시즘은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기 이전에는 아예 존재할 수 없었다.(p110)... 보수주의자들이나 신중한 자유주의자들과는 달리 파시스트들은 결코 대중을 정치 밖으로 몰아내려 하지 않았다.(p112) <파시즘> 中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집권 과정에서 필연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유주의 전통의 척박함, 뒤늦은 산업화, 민주주의를 용인하지 않는 엘리트층의 잔존, 혁명의 물결이 지닌 위력, 국가적 굴욕에 대항한 발작적 봉기 등 다양한 요소들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선택의 폭을 좁히는 데 기여했을지도 모른다.(p236) <파시즘> 中
4. 파시즘의 변모와 집권
유권자 단체나 압력 단체가 중심이던 정치에 성공적으로 참여하게 된 초기 파시즘 운동들은 말과 행동에 더욱 정확히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파시스트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무차별적인 저항이라는 비조직적 영역을 포기하고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확실할 정치 공간을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p140)... 그러나 파시스트당이 구체적인 정치 활동에 뿌리를 내리자마자, 파시스트들이 사용하던 반부르주아적 수사의 선택적 본성이 뚜렷이 드러났다. 실제로 파시스트들의 반자본주의는 지극히 선택적인 것으로 드러났다.(p141) <파시즘> 中
기존 기득권과의 연합을 통해 힘을 갖게 된 파시스트들은 초기에는 다른 세력과 연대를 위해 온건한 형태를 유지했지만, 본질적으로는 '폭력', 폭력이 낳은 '혼란', 혼란이 불러오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파시스트들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국민과 거칠게 다루어야 할 국외자들의 차별을 부추겼다.(p198)... 위기를 심화시킬 목적으로, 나치당은 대상을 신중하게 선택해서 의도적인 폭력 사태를 더 많이 일으켰다.(p222) <파시즘> 中
그렇지만, 자신들이 일으킨 폭력이 그들에게 권력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1923년 뮌헨 폭동(Munchen Putsch)을 통해 집권하려던 히틀러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 그를 감옥으로 보냈지만, 공산주의자가 일으킨 방화사건은 그에게 대중의 이름으로 권력을 건네주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아직도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의 유권자들은 나치당에게 과반수의 표를 준 적이 없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어 전 독일을 지배하던 1933년 3월 6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지지율은 상당히 올랐지만 아직은 미흡한 43.9퍼센트에 그쳤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어느 누구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지 않았다. 집권 전에 무력으로 기존 정권을 위협하거나 집권 후에 무력을 동원해 정부를 독재 체제로 변환시키기는 했지만, 어느 쪽도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p225) <파시즘> 中
하지만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운 좋은 사건이 일어나 우파나 중도파 중 어느 쪽의 반대도 없이 사실상 내부로부터 쿠데타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운 좋은 사건이란 바로 1933년 2월 27일에 발생한 베를린의 독일제국 의회 의사당 방화 사건이었다.(p245)... 수많은 독일인들이 그러한 공포에 공감하여 나치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내준 셈이다.(p246) <파시즘> 中
5. 파시즘의 붕괴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한 파시즘 체제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1940년 대 이래, 파시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파시즘 정권들이 당과 강력한 보수 세력 사이에 맺어진 모종의 협약이나 동맹관계에 의지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왔다.(p274)... 파시즘 지배는 여러 세력이 연합을 이룬 가운데 벌어진 끝없는 주도권 쟁탈전이었다. 이 투쟁은 헌법상의 규제와 법에 의한 통치가 무너지고 사회진화론이 대세를 장악하면서 더욱 격렬해졌다.(p277) <파시즘> 中
저자는 <파시즘>을 통해 파시즘을 정의해 나가지만 이것이 쉽지 않음을 말한다. 그 이유는 파시즘이 나타난 양태가 국가마다 다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파시즘이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모든 세력들의 연합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A의 여집합'이 집합 'A'의 부정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듯, 파시즘은 부정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 정치행동이었다.
파시즘 정권들은 마치 하나의 분자구조물과도 같았다. 다시 말해, 파시즘 세력과 보수적 질서라는 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물질이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두 가지 공통점을 매개로 하여 결합하여 탄생한 합성물이 바로 파시즘 정권이었던 것이다.(p333) <파시즘> 中
문제는 이러한 서로 다른 세력들의 결합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불안한 구조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파시스트 정권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전쟁은 파시즘의 안정화를 위해 가야할 수순이었고, 파시즘의 종말도 함께 할 친구가 되었다.
급진화 단계는 파시즘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어떤 정권도 급진화될 수는 있지만, 자기 파괴에 이를 정도로 격렬한 폭력을 분출하는 파시즘적 충동의 깊이와 위력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급진화의 핵심은 팽창주의 전쟁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체제의 적들, 다음으로는 파시즘의 보수파 동맹 세력, 마침내는 독일 국민들까지 상대로 하여 이성을 잃고 완전 몰살을 기도하며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p384)... 나아가 급진화는 파시즘의 핵심으로 간주되었던 민족과 국가마저 거부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최종적 분석에 따르면 파시즘은 타고난 성격 자체가 불안정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파시즘은 겁에 질린 보수파나 자유주의자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참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p386) <파시즘> 中
[사진] 폐허가 된 프랑스 시가지를 통과하는 독일군 오토바이(출처 : http://world-war-2.wikia.com/wiki/File:German_motorcycle_driving_through_ruined_French_town,_France_1940.jpg)
<파시즘>은 이와 같이 역사 속에 나타난 파시즘의 여러 모습을 통해 최종적으로 파시즘을 정의한 책이다. 과거와 현재,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등장한 파시즘의 모습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 결과 저자는 리뷰 서두에서 인용한 긴 정의를 내리게 된다. 비록, 저자의 정의는 길고 어렵지만 파시즘의 모순을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불안한 사회상황에서 타인을 부정하는 욕망들의 결합체'를 파시즘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축약일까. 개인적으로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이와 같이 정리해본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분단을 동시에 가져다 준 제2차 세계대전. 21세기에도 냉전(冷戰)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파시즘'이 주는 역사적 의미는 작지 않다고 여겨진다. 또한, <파시즘>에서 분석하고 있는 전후(1920~ 30년대) 독일의 정치 상황이 주는 교훈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파시즘>은 일독할만한 책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