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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실크로드와 동아시아 고대국가
권오영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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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실크로드와 문명의 교류-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강희정 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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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실크로드 사전
정수일 엮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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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바다- 지중해 2만년의 문명사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13년 2월
48,000원 → 43,200원(10%할인) / 마일리지 2,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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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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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화’는 아포이키스모스(apoikismos)라는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 아포이키아(apoikia)에서 온 것으로, ‘집에서 떨어진 집(home away from home)’을 뜻한다.(Antonaccio, 220~223)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주민들이 해외로 나가 새로 지은 ‘작은집’은 원래의 ‘큰집’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지 않는 독립 공동체로,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영토 지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사실 이 시기는 ‘모국’ 자체도 형성 중인 때였기 때문에 먼 이역 땅으로 가서 ‘영토’를 확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고대 지중해 사람들이 확산해갈 때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하며, 개인적일 수도 있고 집단적일 수도 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은 상인, 장인, 용병 등 부류가 실로 다양했다. 어떻든 국가가 주도하여 의도적ㆍ계획적으로 주민들을 내보내 영토를 차지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정리하면, 지중해 세계는 지리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일한 구조가 아니며, 페니키아와 그리스 민족의 해상 활동을 두고 해양 식민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Antonaccio, 220~223) 그보다는 올리브기름, 포도주, 직물, 도자기, 철, 은 같은 상품이 이동하고, 건축, 문자, 시가 등 문화 자산들이 전달되는 해상 네트워크들의 중첩으로 그리는 게 타당하다. 지중해 해안 지역은 일종의 세포막(membrane)이다. 선박이 해안까지 오면 강들이 모세혈관 역할을 하여 상품과 문화 자산들을 내륙으로 흡수해간다. 이렇게 해서 물질문화, 관습, 이데올로기, 음식 그리고 사람의 유전자까지 전파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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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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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오파는 태평양 세계의 주민들은 작은 세상에 갇혀 사는 게 아니라 서로 왕래하고 교역하는 대양 공동체(oceanic community)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세계는 바다 때문에 고립된 게 아니라 바다를 통해 연결되었다... 이 세계는 '광대한 바다에 둘러싸인 섬들(islands in a far sea)'이 아니라 '섬들로 구성된 바다(a sea of islands)'다. 실제 과거에 태평양 주민들은 광대한 바다를 이용하며 살았다. _ 주경철, <바다 인류> , p24/717

주경철(朱京哲, 1960 ~ )의 <바다 인류>는 바다에 대한 문명사다. 수 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걸친 바다 이야기가 책 속에서 펼쳐진다. 인류는 어떻게 바다를 건넜고, 무엇으로 서로 연결되었으며, 어디까지 연결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서 전개된다. <바다 인류>는 독자들에게 최신 해양고고학의 성과와 함께 최신 이론도 함께 소개하며,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 리뷰에서 보다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바다 인류>는 지식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교양서적이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전환시킨다는 점이 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첫머리에 언급한 '바다에 의해 고립된 섬'이 아닌 '섬들로 연결된 바다'를 말하는 하우오파의 말은 바다 문명사를 읽기 전 관점의 전환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마치 과거 원태연의 시
<손 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과 함께 이분법적인 사고로 바라봤던 뱃사람과 이들이 이룬 문명에 대한 인식을 바꿨을 때에야 비로소 바다의 문명사가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단적으로 말해서 로마 해군 병사와 해적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당대 기록은 마치 해적이 별도로 존재하는 엄청난 집단인 듯 묘사하지만, 실제로 이들 중 다수는 농사짓다가 흉년이 들면 바다로 나가 도적질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역 상인들도 기회가 생기면 해적질에 동참했다. 결국 로마제국이 따로 있고 해적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으니, 해안 지역을 압박하고 통제해서 제국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순치하여 해적의 발호를 억제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_ 주경철, <바다 인류> , p10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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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2-05 1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섬˝ ˝지도 위 점 점 점˝ 등, 바다와 관련된 시각적 이미지 때문인지 ˝고립˝을 당연하게 먼저 생각하다가, 올려주신 리뷰를 보니 ˝바다로 인해 연결된 세계˝ 태평양의 섬세계, 관점 전환이 무슨 의미인지 감이 오네요^^ 많은 분들이 추천해주시는 책인데, 겨울호랑이님께 한 번 더 추천 받으니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병이 도졌어요^^

겨울호랑이 2022-02-05 13:05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바다 인류>는 분량이 적지 않지만, 내용이 흥미로워 손에 잡으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북사랑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

바람돌이 2022-02-05 1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야 하는데....ㅠㅠ 먼저 시작하신 겨울호랑이님 글보면서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2-02-05 13:52   좋아요 3 | URL
저도 정리할 책이 밀려서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ㅜㅜ 빠른 시간 내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

하이드 2022-02-05 15: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는 책에 대항해시대 나와서 엊그제 중고로 대항해 시대 구매했어요. 대항해 시대 읽고 바다 인류 따라가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2-05 16:0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대항해시대》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바다 인류》는 그보다 대중적인 《문명과 바다》의 확장판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이드님 즐거운 독서되세요! 감사합니다 ^^:)

mini74 2022-02-05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항해시대의 확장판에 앞으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아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겨울호랑이님 원태연 시 인용 빵 터졌어요 ㅎㅎ 넘 찰떡같이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2-02-05 20:42   좋아요 1 | URL
미니님께서도 <바다 인류>를 읽고 계시군요! 반갑습니다. 바다 문명사는 일반적인 문명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사고의 접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예전에 인상깊었던 원태연시가 떠올랐습니다 ㅋ 미니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토요일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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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금사 세트 - 전4권
이성규 외 지음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16년 2월
260,000원 → 247,000원(5%할인) / 마일리지 13,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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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국역 요사 - 전3권
김위현 외 지음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12년 12월
180,000원 → 171,000원(5%할인) / 마일리지 9,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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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요사 - 하
김위현 외 지음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12년 12월
60,000원 → 57,000원(5%할인) / 마일리지 3,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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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요사 - 중
김위현 외 지음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12년 12월
60,000원 → 57,000원(5%할인) / 마일리지 3,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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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5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5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원에 기근을 발생시킨 자연재해는 유목 생산 양식 자체의 태생적 약점과 무관하지 않았다. 유목 사회는 정주 농경 지역에 비해 자연환경의 변화가 생존을 결정할 정도로 큰 영향을 받는 열악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정주 지역에 비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힘이 미약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거나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한 번 초원이 파괴되면 회복시킬 수 있는 힘이 거의 없었고, 다시 복구된다고 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_ 정재훈, <위구르 유목 제국사 : 744~840>, p331


 이번 페이퍼에서는 <돌궐 유목 제국사 552~745>, <위구르 유목 제국사 : 744~840>를 통해 약 3세기에 걸친 유목제국의 역사를 정리해보려 한다. 돌궐 제국과 위구르 제국은 시대를 달리해 서역(西域)을 지배한 유목제국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같은 지리환경을 공유한 나라였기에 이들은 공통의 문제에 직면해 있었고,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자연재해에 취약하고, 척박한 토지의 적은 인구를 가질 수 밖에 없던 이들이 선택한 부국(富國)의 방식은 바로 무역이었다. 이들은 동서무역을 중개(仲介)하며 제국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돌궐 유목 제국사 552~745>와 <위구르 유목 제국사 : 744~840>는 소그드 상인과 마니교도를 활용하고, 불교와 마니교를 통해 정신적 일체감을 가지고자 했던 이들 유목민족의 역사를 잘 설명한다.


 이렇게 돌궐이 중국에서 비잔티움을 바로 연결하는 동서 교류의 매개로서 그 사이의 세계를 하나로 묶어내자 이제까지 한 번도 통합된 적 없이 개별 세력들이 분절되어 갈등을 벌이던 유라시아 초원과 오아시스 세계에는 일시적으로 '투르크가 만들어낸 평화'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것은 비록 오래가지 못하고 분열의 길을 걷지만, 초원과 오아시스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킨 결과는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초원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자유무역지대(FTA)'였다. _ 정재훈, <돌궐 유목 제국사 552~745>, p222


 두 거대 제국을 잇는 동서무역의 발전 속에 그 통로의 일부를 차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위구르는 과거와 달리 보다 많은 경제적 이익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위구르 내부에 도시, 즉 정주민을 위한 취락 건설이 활성화되었다. 또한 위구르가 서방의 오아시스 지역을 지배하고 경영하고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그 이전에 받았던 통행세 성격의 공납과는 달랐다. 이렇게 확보된 이익은 유목 사회 내부의 분배 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유목 군주의 권위를 강화할 수 있는 기제였다. _ 정재훈, <위구르 유목 제국사 : 744~840>, p281


 이처럼 유목제국은 상업(商業)을 통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들의 역사는 또한 이들 제국의 한계도 보여준다. 유목제국이 위치한 초원이라는 자연 특성상 생산품이 축산품이나 농산품 등 한정된 품목에 불과했기에, 식량과 생필품의 조달을 외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과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활동의 큰 부분을 소그드(Sogd) 상인 등 외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분명 이들 제국의 한계였으며, 그들의 문명이 영속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유목민들이 처한 자연지리적 및 사회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그들이 창조한 유목문명에서는 다른 문명들과 구별되는 일련의 특이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특이성은 첫째로, 순수성이 결여된 혼성문명(混成文明)이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유목문명은 항시 불완정성(不完整性)을 면치 못한다... 또한 유목민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주변 농민이나 도시민들로부터 생필품이나 무기를 얻어야 하는 의존성(依存性)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유라시아 유목기마민족들은 나름대로 문명을 창조하고 문명권을 형성하였지만, 이러한 문명의 혼성과 불완전성, 의존성 때문에 그들이 창조한 문명은 궁극적으로 순수한 유목문명으로 완결(完結)될 수는 없었다. _ 정수일, <실크로드 도록 - 초원로편>, p17


 축산물을 제외한 별다른 특산품이 없고 상업에 의존해야 했던 것이 유목제국의 경제활동이었다면, 또다른 유목민족의 중심지 요동(遼東)지역을 돌아보자. 김한규의 <요동사>는 홍산문명(紅山文明) 이후 요동지역의 역사를 중국(漢)과 한국(韓)과 분리된 별도의 역사공간으로 서술된다. 저자는 '요동'이라는 공간을 예맥(濊貊)- 동호(東胡) - 숙신(肅愼) 등의 역사공동체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력교체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이와 함께 각 왕조 안에서 이들 세력이 또다른 역사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고 있음도 함께 보여준다.


 요동은 조선, 부여, 고구려 등 예맥계, 선비(鮮卑), 거란, 몽고 등 동호계, 말갈, 여진, 만주 등 숙신계 등 요동에서 거주한 여러 군소 역사공동체들이 고조선, 부여, 고구려, 연, 북위, 발해, 요, 금, 원, 청, 만주국 등을 차례로 건립한 터전이었다. 그것은 중원, 즉 중국이라는 터전에서 연, 진(秦), 한, 진(晉), 당, 송, 명 등 일련의 국가들이 성립한 것과 현저히 대비된다. _ 김한규, <요동사>, p68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 즉 예맥계와 말갈 즉 숙신계가 함께 힘을 모아 건립한 전형적인 요동 국가였다. 그러나 발해는 예맥계가 참여해 건립한 마지막 국가가 되었다. 그 까닭은 발해를 건립, 운영한 주도적 힘은 예맥계가 아니라 숙신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발해라는 국가를 통해 융합함으로써, 발해 시대는 예맥계가 그 역사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간 시기가 되었고, 동시에 숙신계가 그 역사공동체적 정체성을 강화해간 시기가 되었다. _ 김한규, <요동사>, p348


 거란이 요(遼)를 세워 요동과 중국의 일부를 통합, 지배한 시기의 요동은 동호계가 장악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요동에는 동호계 인구만 존속했던 것은 아니다. 예맥계와 숙신계의 융합으로 형성된 '발해인(渤海人)'이 발해의 멸망 뒤까지 여전히 존속했고, 발해에 예속되지 않았던 흑수말갈(黑水靺鞨)을 중심으로 여진(女眞)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역사공동체가 출현해 숙신계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요동은 거란과 함께 발해와 여진이 공존하면서 '요'라는 국가에 통합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_ 김한규, <요동사>, p424


 요서의 몽고, 혹은 몽고화한 거란과 요동 동부의 여진은 고유한 문화 양식이 근사해서, 서로 용이하게 융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명의 요동도사가 요동에서 완전히 퇴각하고 여진이 요동 전역을 완전하게 장악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동호계와 숙신계의 융합뿐만 아니라 숙신계와 중국계의 융합도 신속하고 광범하게 이루어질 정치적 조건이 갖추어지게 된다. _ 김한규, <요동사>, p556


 <요동사>는 하나의 독자적인 역사공간으로 '요동'은 산정한다. 북중국과 한반도 남부의 문명과 또다른 별도의 문명권으로 '요동'을 설정하고, 이를 지배한 민족들의 흥망성쇠를 서술한다. 이같은 역사적 공간으로서 요동은 앞선 유목제국들과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갖는다. 요동 지역과 서역의 공통점은 이들이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富)를 축적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지라는 점이다. 북부 초원 지대와 황하 유역 또는 환동해 문명권과의 중간 지대에서 소금, 철, 모피 등의 중개 무역의 독점은 여기에 위치했던 고조선과 고구려 강성함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한은 먼저 중국계 왕권과 토착 월계(越系) 상권(相權)의 타협적 결합 체제가 파괴되어 심각한 모순을 드러낸 남월을 군사적으로 침공해 멸망시킨 뒤, 바로 그 침공군을 되돌려 이듬해인 무제 원봉(元封) 2년(BCE 109)에 조선을 침공케 했다. 조선 침공은 흉노의 오른팔을 잘라내어 흉노와의 남북 대결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무제의 적극적 세계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다. _ 김한규, <요동사>, p138


 <위략>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사실은 한대의 한국은 중국과 직접 교섭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수립된 국가가 요동에 설치한 변군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섭했다는 것이다. 즉 이 시기의 요동은 중국과 한국이라는 두 개의 역사공동체를 이어주는 환절, 혹은 매체의 역할을 수행했다(p230)... 요동의 군현을 매개로 한 한중 간의 정치 외교적 관계는 대체로 평화적 관계로 유지되었다. 양자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책봉과 조공이라는 정치적 제도로서 꾸며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문화적 의미가 강해, 정치적 이해가 충돌할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 간의 책봉조공 관계가 정치적 의미를 회복하게 되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아지게 된다. _ 김한규, <요동사>, p233


 북방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고고학적인 자료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생계경제)과 역사 기록을 종합하면 이들은 크게 예맥계, 흉노계, 말갈계 등으로 나뉜다. 쉽게 설명하면 밭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을 이루던 농경민(예맥계), 몽골에서 시작해서 호룬뻘 초원 등 만주의 서북쪽에 발달한 초원지대에서 주로 목축을 하던 유목계(선비계), 그리고 수렵/어로/채집을 중심으로 산악 지역과 동해안 일대에 살았던 수렵채집민(말갈계)이다.(p24)... 수렵과 채집에 주로 종사하던 읍루계는 숙신/물길/말갈/여진으로 이어졌고 청나라 때의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연해주와 송화강 일대에 사는 나나이, 니브흐, 울치 등은 바로 이 읍루계 주민들의 후예이다. 한편 밭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예맥계는 한국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이 이에 해당한다. _ 강인욱, <옥저와 읍루>, p26/290


 그렇지만, 요동에 위치한 제국들은 단순히 중개무역에 그치지 않았다. 농경의 중심지였던 환동해 문명권이나 삼한 지역 또는 중국지역으로의 진출을 통해 이들은 3차 산업인 서비스 산업 뿐 아니라 1차와 2차산업의 역량도 보유할 수 있었기에 하나의 독립된 천하관(天下觀)을 가진 독립된 세계를 수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날의 관점에서 고대사를 바라본다면 고구려가 작은 왕국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신장위구르, 티벳지역, 내몽골 자치구가 중국에 편입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임을 생각해본다면 중국과 독립된 독자문명으로서 요동문명을 산정하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북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구려의 천장석 벽화에 등장한 북극삼성은 고구려가 중국과는 다른 갈래의 천문 전통을 수립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더욱이 그것이 고려시대 왕릉과 귀족 벽화 무덤으로 온전히 계승되었다는 점에서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적 동질성은 한층 분명해진다... 고구려는 또한 후기 벽화 시대에 이르러 중국의 한당대 벽화묘에서 발견되지 않은 오신도 벽화 양식을 새롭게 개진하고 있었다. 천문으 ㅣ중심인 북극삼성과 더불어 묘실 천장석 중심부에 제왕의 신수인 제5황룡도를 안치함으로써, 사신도 벽화의 단계를 넘어선 오신도 우주론을 표명한 것이다. _ 김일권 ,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 p113


 흉노와 한이라는 제국의 격돌에 배후 안정을 위해 한-고조선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청(淸)의 대규모 서역 원정 직전에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을 통해 조선을 굴복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 역사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일깨운다.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병자호란의 원인을 인조(仁祖, 1595~1649)의 무능이나 사대부들의 명(明)에 대한 사대의식 때문에 일어났다는 단순한 분석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1621년의 랴오둥(遼東) 정복으로 사실상 만주족과 한인(漢人) 사이의 갈등이 더 극심해지고, 더 심각한 생존 위기로 이어졌다. 불평등한 대우에 항거한 한인들의 반란도 식량 공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p164)... 팽창하던 국가는 새로운 노역과 곡물세를 한인들에게 더 광범위하게 부과함으로써 보급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랴오둥에서 새로운 빈 땅은 드물었고 서쪽 랴오시(遼西)에서 전쟁을 피해 한인들이 몰려들자 더욱 귀해졌다. 피난민들은 자신이 '먹을 양식과 소금이 충분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아민처럼 한인 자문역에 대한 국가의 편애에 저항하던 사람들은 약탈하고 습격하던 옛날의 호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아민은 1627년 칸의 명령을 거스르고 조선을 침략하여 영토를 약탈했다(p165)... 1635년과 1637년에 또 식량 위기가 닥쳤다. 군대의 보급 부족은 만주의 군사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말은 너무 지치고 약해져 적을 추격하지 못했다. 랴오시에서 농업 생산을 늘리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부유한 지주들에게 가난한 이웃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라고 권고해도 대체로 우이독경이었으며, 만주족은 그들이 떨어져 나갈까 봐 저가에 곡식을 팔라고 강제할 수도 없었다. 조선은 다시 한 번 매력적인 목표가 되었다. 만주족은 군사적 침략 위협으로 조선에 곡물을 제공할 것을 강요하고, 이윤이 나던 조선과 중국 간의 조공 무역을 금해서 그것을 자신이 독점하려 했다. _ 피터 C. 퍼듀, <중국의 서진> , p167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Empires of the Silk Road: A History of Central Eur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Present>의 저자 크리스토퍼 벡위드(Christopher Beckwith)는 이런 관점에서 고구려를 실크로드의 끝단으로 설정하고, 실크로드의 종점으로 산정한다. 중앙유라시아의 제국으로서 고구려의 대외관계는 '고구려, 백제 vs 당나라, 신라'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실크로드를 사이에 두고 유목제국과 정주제국간의 치열한 다툼은 서쪽 이베리아 반도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해에 이르기까지 팽팽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고, 마치 장마철의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국사를 바라보는 것은 지역사를 보는 것과는 또다른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


 돌궐과 위구르 유목제국사 페이퍼는 이상으로 줄이지만, 유목제국사는 대략 다음의 책들을 함께 정리해야 거칠게나마 훑어봤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리스트를 올려본다. 지금 개최된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보이콧 원인이 된 신장위구르 지역의 역사와 최대의 유목제국인 몽골제국의 역사, 우리와 관련된 유목제국인 금나라와 요나라 역사는 시간을 두고 정리하는 것으로 하고 글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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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2-04 2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동의 지리학적 위치가 저렇게 유리할 줄 몰랐어요.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한번 검색해보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천문에 약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자료가 있었군요!!!

겨울호랑이 2022-02-04 23:34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지도상으로만 보면 단순히 ‘요하의 동쪽‘이지만, 역사 안에 담긴 의미는 그보다 크다는 것을 <요동사>를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는 ‘고구려-고려‘로 이어지는 우리나라만의 세계관을 주로 담고 있고, 조선편에서는 이러한 세계관의 변경과 민속신앙에 자리한 세계관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억의집님의 마음에 들 내용이 담겼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2-02-05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크로드 동쪽 끝이 중국 서안이 아니라 신라였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그렇다면 요동 반도가 무역 중간지로 핵심이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2-05 20: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우리 조상들은 세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근대 국가 체계의 국경선과 민족 문화라는 우리 인식의 한계가 과거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행복한 토요일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