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아파트 -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박철수 지음 / 마티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62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자 정부는 가용자원을 생산 부문에 집중시켰고, 주택건설은 필연적으로 민간 부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한국의 주택정책은 투기의존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고, 아파트 건설은 민간에게 맡기고 정부는 이를 정책과 제도로 지원하는 기조로 이어졌다. 이는 우리나라 아파트 탄생의 독특한 특징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_ 박철수, <아파트> , p12/227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표현은 공동주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모든 것이 개별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의 아파트에 대한 매우 적절한 지적이자 문제의 핵심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런 아파트 공간의 '자폐'와 '독점'은 사익의 확대와 공익의 무력화를 초래했다. 결국 경제적 효율성에만 주목한 아파트단지 개발은 온 국토를 "끝없는 직각과 직선의 세계이자 도시 속의 완벽한 요새"인 "아파트단지 공화국"으로 바꿔놓았다. _ 박철수, <아파트> , p10/227

박철수의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인 부동산, 그 중에서도 최대 상품인 아파트 문제를 다룬다. 5.16 쿠데타를 통해 군부가 집권하면서 효율적인 감시체제 유지를 위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아파트. 그렇지만, 저자는 아파트 문제를 '건물' 아파트가 아닌 아파트 '단지'에서 찾는다. 공동택지지구에 별도의 치외법권(治外法權, extraterritoriality)이 적용되는 이질적인 아파트 단지. 단지 내에서 모든 것은 입주민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조달되고 소비되기에 단지 내부와 외부는 단절된다.

우리나라의 주거 문제를 단순히 아파트가 많다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 아파트가 많은 것이 문제라면 전 국민의 87% 이상이 정부기관(HDB, Housing Development Board)이 공급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싱가포르가 우리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일 것이다. 문제는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이다. _ 박철수, <아파트> , p109/227

작은 필지로 구성된 도시조직은 도로 확장이나 지하철 노선 확장 등과 같은 도시계획적 차원의 공공사업이나 지역권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상황 변화에 대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율 조정 능력을 갖는다. 반면에 아파트단지에는 가역성(可逆性)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아파트단지면 영원히 아파트단지로 굳어, 도시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당한다. _ 박철수, <아파트> , p119/227

사회계층의 통합(social mix)이라는 공동선의 추구와는 달리, 대규모로 특정 지역에 영구임대주택을 밀집시켰기 때문에 고립문화와 빈곤문화가 집단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국공유지나 공공이 주도하는 대단위 택지개발지구 안에서 가급적 많은 주택을 공급해야 했기에 대규모의 고립공간이 생성되었으며, 이는 곧 빈곤 지역의 집중을 야기했다(p102)... 공간적 분리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분리를 야기한다. 아파트의 보편화, 일반화 현상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분양아파트단지와 공공재원으로 건설되는 임대아파트단지 사이의 반목과 배척이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낳았다. _ 박철수, <아파트> , p103/227

아파트에 들어올 수 있는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비슷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이들은 외벽으로 둘러쌓여 보호받으면서 그들의 욕망을 실현한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마저도 마치 맥도널드 햄버거와 같이 균일한 구조의 상품으로 표준화시켜 하나의 자산(資産)으로 인식한다. 자산으로 인식된 거주공간은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윤'을 내려는 기업가 정신에 따라 발코니를 확장하고, 공용구간을 침범하는 행태를 거리낌 없이 보인다. 결국, 대규모 단지안에 사는 우리의 모습은 '거대한 군중 속의 개별화된 고독'의 또 다른 모습임을 확인하게 된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되며, 주거단지 하나가 완결된 공동생활의 단위가 되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공적 재원의 투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아파트단지 입주자는 자신들의 돈으로 단지 내의 모든 생활 편의시설과 어린이놀이터, 운동시설 등 외부공간을 구입해야 한다. 모든 것을 입주자의 비용으로 마련했으니 이주자들이 단지를 사유화하고 적극적으로 방어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점이 아파트단지의 공간적 폐쇄성을 야기하는 주된 원인이다. 여기에 무리지음과 서열화가 겹쳐 작동함으로써 사회 공간적 통합이라는 원리와 가치가 훼손된다. _ 박철수, <아파트> , p21/227

아파트를 갖는다는 것은 곧 욕망하는 재화인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해 "자신감의 반쪽을, 자존심의 반쪽을, 심지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반쪽까지도 포기한 채" 살아야하는 과정의 결과물이 되었다. "신분과 지위가 새로운 아파트 문화를 통해 발현"되고 재현되며 재생산된다. 중산층으로 불리는 경제 계층과 주거 형식으로서의 아파트가 완벽하게 화학적으로 결합하고 생활문화의 완전체로서 힘을 맘껏 휘두르는 사회가 곧 우리가 사는 사회,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_ 박철수, <아파트> , p90/227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경기 부양을 위한 개발사업의 1순위가 아파트개발사업이며, 한국 금융삽업의 주력상품이 아파트 담보대출이라는 현실과 최근 치뤄진 제20대 대통령선거의 표심(標心) 중 큰 부분이 부동산에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은 부동산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케 한다. 이런 아파트(단지) 문제의 인식과 해결을 위한 방향성 제시가 이 책의 장점이라 여겨진다.

"현대도시의 일상생활이 생산성의 논리에 지배되면서 인간의 잠재력이 평균화되고 경험이 동질화되는 현상을 초래했으며, 이런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적 관계는 퇴보하고 인간성의 소외가 야기된다"는 지적은 벌써부터 있었다. 바로 이 부분이 1960년대의 유럽이 생산성과 경제적 효율에 몰두한 근대 도시계획에 던진 진지한 반성의 핵심이었다. _ 박철수, <아파트> , p10/227

우리 모두는 "공중에 떠다니는 포자들"이며, 살아온 세월과 시간은 추억과 기억을 애써 지우며 걸어온 길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모여 공간을 인간화하고 사회화한 곳이 장소라는 점에서, '장소 만들기'는 곧 사람이 주인 되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선결조건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꾼 것이 '커뮤니티 재생'이다. 사람과 장소가 결합하는 커뮤니티 재생은 결국 장소에 대한 감수성을 동력으로 개인의 시선이 이웃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진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동력이기도 하다. 장소는 한 곳에 오래 뿌리내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_ 박철수, <아파트> , p212/227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4-19 1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e북은 페이지 이렇게 표시하면 되겠네요!^^

겨울호랑이 2022-04-19 13:07   좋아요 2 | URL
네. 이렇게 표시하면 종이책 페이지와도 대략 호완이 될 것 같아요. 어느 이웃분께서 먼저 전자책 페이지 표시하시는 방식을 보고 저도 배웠습니다.^^:)

페넬로페 2022-04-19 2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지 표시,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앞, 뒤 숫자가 의미하는게 무엇인가요?

겨울호랑이 2022-04-19 23:01   좋아요 2 | URL
네, 종이책은 페이지가 고정되어 있어 책에 있는 페이지를 그대로 기재하면 되지만, 전자책은 모니터 또는 리더기에 따라 페이지가 다르게 될 수 있어 페이지를 표시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분수로 표시하면 어느 정도는 인용확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분수로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p30/360‘ 은 ‘전체 전자책의 페이지 수 360 중 30‘을 의미합니다. 이같이 표시하면 종이책으로 환산할 때에도 대략 위치 확인에 유리해 보입니다. 예시에서 종이책이 420페이지라 할 경우에는 420*30/360=35 페이지 근처에 해당 내용이 있다고 추정 가능합니다.(실제로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앞 뒤 내용을 확인할 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표시하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ㅋ

페넬로페 2022-04-19 23:07   좋아요 2 | URL
분수로 표시한 거군요.
저도 전자책 읽을 때 페이지 표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는데~~
겨울호랑이님, 잘 배웠습니다.
친절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4-19 23:14   좋아요 2 | URL
아닙니다, 저도 좋은 아이디어 다른 분께 배운 걸요. 페넬로페님께서 유용하게 사용하시면 좋겠습니다. 편한 밤 되세요! ^^:)

독서괭 2022-04-21 09:33   좋아요 2 | URL
ㅎㅎ 저도 이렇게 표시하고 있어요!

겨울호랑이 2022-04-21 10:03   좋아요 1 | URL
제가 배운 이웃분이 독서괭님이셨군요! ^^:)
 

경제생활과 함께 우리는 일상사, 또는 무의식적인 일상성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경제생활은 아직 규칙성을 띠고 있다. 먼 과거에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발달해온 분업은 매일매일의 활동적이고 의식적인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분리와 만남을 가져온다. 일상적인 노동과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삶은 약소한 이익을 누리는 미시 - 자본주의로서, 그것은 그렇게 밉살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일 꼭대기층에는 자본주의와 그것이 사방에 펼쳐놓은 광대한 그물망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미 악마적인 놀음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 정교한 기구는 제일 아래 수준에 있는 소박한  사람들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아마도 모든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자기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제1장에서  불평등한 세계의 수준 차이를 강조하면서 이 점을 말하려고 했다. 이 세계를 활성화시키고 상층의 구조를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것은 크든 작든 이 불평등, 이 부정의, 그리고 이 모순이다. 이 상층의 구조만이 진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자본주의만이 상대적으로 운동의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 P822

 물질생활이나 일상적인 경제생활이라는 유연성 없는 경제구조 앞에서 자본주의는 원하는 대로, 또 가능한 대로 간섭해 들어갈 수 있는 영역, 또는 반대로 포기할 수 있는 영역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요소들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신의 구조를  다시  만들며,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다른 구조들을  변형시킨다. 이것이 전(前)자본주의가 세계 경제의  모습을 창출하도록 만드는 효소이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물질적 진보인 동시에 인간에 의한 인간의 가혹한  착취를 가져온 원인이며 그 표시이다. 그것은 반드시 인간의 노동인 "잉여가치"의 수취에 의한 것만은 아니며, 힘과 상황의 불균형에서도 기인된다. 그러한 불균형 때문에 한 국가의 사원이든 전세계의 차원이든 상황에 따라 언제나 정복할 곳이 생기고, 다른 것보다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착취 분야가 생기는 것이다. 선택한다는 것, 선택할 수있다는 것, 비록 그 선택이 아주 제한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 P8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1219 끝이 시작이다
문재인 지음 / 바다출판사 / 2013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22년 04월 18일에 저장
절판

문재인 - 새로운 대한민국과 사람 문재인
김범 지음 / 푸른솔 / 2017년 3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2년 04월 18일에 저장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문재인 지음, 문형렬 엮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2년 04월 18일에 저장

문재인 대통령 말글집 :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 제2권
대통령비서실 엮음 / 문화체육관광부 / 2019년 6월
7,000원 → 7,000원(0%할인) / 마일리지 70원(1% 적립)
2022년 04월 18일에 저장
품절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 한 권에 담은 문재인 대통령 주요 연설문집
문재인 지음, 대통령 비서실 엮음 / 김영사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조산하(再造山河).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표현으로 많이 회자된 용어다. 이제 며칠 후면 문재인 정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는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긴 여러 공과(功過) 역시 지나간 역사에 새겨질 것이며,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은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시간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행의 시간으로 기억되겠지. 분노의 감정이 조금 더 컸기에 정권은 재창출되지 못했고, 지난 시간은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들을 각각 절반의 사람들에게 심어준 듯하다.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 부족했던 부분들을 깊이 성찰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 여겨진다. 책을 읽은 시점이 때마침 예수 부활을 축하하는 부활절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사순시기가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다음에는 연설문에 담긴 희망이 모든 이들의 일상에 뿌리내리길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晉主)는 중도교(中度橋, 하북성 정정현 동남쪽 호타하교)에 도착하여 두중위(杜重威)의 영채를 보자, 탄식하며 말하였다.
"하늘이시여! 우리 가문이 무슨 죄를 져서 이 도적놈에게 파괴되었습니까!" 통곡하다가 떠나갔다.

거란주는 유지원이 관망하여 오지 않는 것을 알고 백문가가 돌아오기에 이르자 유지원에게 말하게 하였다. "너는 남조(南朝, 진)를 섬기지 않고 또한 북조(北朝, 요)도 섬기지 않으니 속으로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가?" 번한공목관(蕃漢孔目官)인 곽위(郭威)가 유지원에게 말하였다. "야만인이 우리를 원망하는 것이 깊습니다. 왕준(王峻)은 거란이 탐욕하고 잔인하여 인심을 잃어 반드시 오랫동안 중국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지원에게 권고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나아가 탈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유지원이 말하였다.
"군사를 부리는 데에는 느슨하게 해야 할 때도 있고 급하게 해야 할 때도 있어서 마땅히 때에 따라 적당하게 통제해야 하오. 지금 거란은 새로이 진의 군사 10만을 항복시켜 호랑이같이 경읍(京邑, 진의 도읍인 ?州)을 점거하였는데도 아직은 다른 변화가 없으니 어찌 경거망동할 수 있겠소? 또 그들이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재화(財貨)에 그치고 있으니 재화가 이미 만족하게 되면 반드시 장차 북쪽으로 돌아갈 것이오. 하물며 얼음과 눈이 이미 녹고 있으므로 형세로 보아 오래 머무르기 어려운 것이니, 의당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고 그런 다음에 그곳을 빼앗는 것이 만 가지로 온전할 수 있을 것이오."

"지금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의를 하지 않아도 같으니 이는 하늘의 뜻입니다. 왕께서 이 기회를 틈타서 이를 빼앗지 못하고 겸손하고 양보하여 자리 잡지 아니하게 되면 인심도 또 옮겨질까 두려우며 옮겨지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유지원이 이를 좇았다.

백성들의 재물을 거두어서 장수와 사졸들에게 상으로 내리는 것을 논의하는데, 부인(夫人) 이씨(李氏)가 간하였다. "폐하께서는 하동을 이용하여 대업(大業)을 창업하셨는데, 아직 그 백성들에게 은택(恩澤)을 주지 않고 먼저 그들이 살아가는 자산을 빼앗는다면 거의 새로이 된 천자는 백성들을 구제할 생각을 갖지 않은 것이 됩니다. 지금 궁중에서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꺼내어서 군사들을 위로한다면 비록 다시 넉넉하지는 않을지라도 사람들은 원망하는 말이 없을 것입니다."

풍연로(馮延魯)가 말하였다.
"성에서 항복하지 않는 까닭은 이들이 구원할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로 대치만 하고 싸우지 않으면 다만 우리 군사들을 지치게 할 뿐이어서 그들을 풀어놓아 언덕으로 올라가서 그들을 모조리 죽이게 하는 것만 못한 것이니, 성은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항복할 것입니다." 비장(裨將)인 맹견(孟堅)이 말하였다. "절(浙, 오월)의 군사가 이곳에 도착하여서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으니 한 번 싸워서 죽으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풀어놓아 그들이 언덕에 오르게 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우리들에게 죽음을 다하려 할 것이며 그 날카로움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어찌 모조리 다 죽일 수 있겠습니까?"

거란주가 하양이 혼란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세 번이나 실수하였으니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반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러 도(道)에서 전(錢)을 긁어모은 것이 한 가지 실수이고, 상국(上國, 요)의 사람들로 하여금 풀과 곡식을 약탈하게 한 것이 두 번째 실수이며, 일찍이 절도사들을 파견하여 진(鎭)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게 한 것이 세 번째 실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