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그린 '뉴 실크로드'란 중국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각각 러시아와 이란을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육로와 해상수송로, 그리고 나중에 추가된 극지방 항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떤 경로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땅과 바다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라는 방향성만은 확실하다... 창립 당시 57개국에 불과했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의 회원국 수는 오늘날 102개국으로 확대됐으며, 중국 자본이 약 1/3에 달하긴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자본도 총 20%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뉴 실크로드 전략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이는 실상 중국의 순수한 대외사업이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8>,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p1


 이병한은 <유라시아 견문>에서 21세기를 유라시아의 세기이며, 유럽과 아시아의 협력의 시대로 예상한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이 시진핑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이며, New Silk Road라 불린다.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는 이를 통해 유라시아 각국들이 새롭게 문명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달리 흘러간다.


 책임대국'을 표방하는 중국은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20세기형 '강대국'을 추구하지 않는다. 무력에 의존하여 패도를 행사하는 패권국이 아니라, '왕도의 근대화'를 도모한다. 20세기의 대장정이 21세기의 일대일로와 접속하는 연결고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1>, p407


 문제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순수하게 이웃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대일로를 위해 우선적으로 중국은 항만 등 대규모 설비투자를 위해 자금을 대출해 주었고, 각국은 이를 활용하여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중국 자금의 사용이 위안화의 결제 비중을 높이는데 활용되고, 인프라 구축이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은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통해 자금을 활용하면서 유휴설비 문제도 해결하고, 구축된 인프라의 이용권을 획득하지만, 정작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이용한 회원국들은 과거 중국이 서구 열강에게 당한 '99년의 조차권'을 강요받는 실정에서 반발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인프라 개발을 우선시 하는 것은 중국 개발 모델 자체가 인프라 구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 서부 농촌 지역의 낙후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택한 인프라 중심 개발 모델은 주변국 및 수혜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뉴 실크로드 전략의 중상주의 측면은 명백하다. 중국의 대형 기업들에게 즉각적인 판로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설, 토목, 철강 분야의 기업들은 심각한 공급과잉에 처해 있었다... 또한 새로운 통로가 마련되면 중국은 그만큼 안정적인 수출입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8>,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p14


 중국이 가는 길은 '가시밭길'에 가깝다. 부패문제는 물론 분별없는 차관에 대한 비판도 거세고, 사업계획 역시 무모할 정도로 방대할 뿐 아니라 수익성을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혜국인 개도국을 부채의 덫에 빠뜨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2018년 스리랑카는 못 갚은 빚 대신 중국의 다국적 기업 자오상쥐 그룹에 무려 '99년 임차'로 항만 운영권을 내주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중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유럽연합의 구조조정 및 긴축정책 상황을 이용해 그리스 피레우스 항을 접수한다. 스페인 발렌시아와 빌바오 항만 컨테이너 기지도 상황은 비슷했다.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8>,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p14


 이러한 현실을 생각한다면, <유라시아 견문>에서 말하는 '책임대국 중국'은 지나친 낙관이 아닐까. 설사 중국은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할지라도 이로 인해 많은 투자가 연기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것은 '21세기 패권국가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이웃 국가들에게 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의 싹이 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재편될 것이고, 새로운 중심국이 떠오를 것이고, 중국이 이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변화의 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운 가운데 변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 또는 비관을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는 21세기 유라시아로 가더라도, 단기적으로는 각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냉정한 국제 정치의 현실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시세와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서세동점의 말기이다. 서구적 근대의 말세이며, 미국적 세계화의 끝물이다. 그러나 탈근대도 아니요, 반세계화도 아니다. 구미적 근대에서 지구적 근대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적 세계화에서 세계적 세계화로 진입하고 있다. 지구적 근대화와 세계적 세계화의 최전선에 유라시아가 자리한다. 구 舊 제국들은 귀환하고, 옛 문명들은 복원된다. 동서고금이 사통팔달 회통한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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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8-26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을 대륙이라 부르는 그들의 국민의식은 경제가 발전하고 여유가 생기면 나아질 것같습니다. 그들의 마음대로 정치가 좀 바뀐다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려 언제 강제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항상 발목을 잡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6 11:05   좋아요 2 | URL
중국의 정치체제 문제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라 여겨집니다. 소수민족자치구를 포함한 현재 중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체제로 가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개인의 자유가 통제받기에 시민들의 불만은 높아지겠지요... ‘대국‘과 ‘개인의 자유‘ 라는 상충된 가치에서 중국 인민들의 선택이 중요하겠지요...

페크pek0501 2020-08-26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일본의 아베가 물러나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정세도 변화할 것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있고 없음에 따라 역사가 달라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겨울호랑이 2020-08-26 19:05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역사를 이루는 힘은 시민, 민중, 다중으로 불리는 이들로부터 나오지만, 이러한 힘의 방향을 정하는 키 역할을 하는 것은 지도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도도자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점에서 지도자의 중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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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1937 ~ ) 작가를 매우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모은 그의 작품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특히 <로마인 이야기>는 작품이 나오는 매 해마다 화제가 되는 인기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이 인기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동양인의 관점에서 서양역사를 다룬 신선함 때문이 아닐까. 동양문명권에 속하는 일본인이 오랜 이탈리아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역사서는 사실감과 공감을 같이 주며 높은 인기를 끌었으리라. 시기적으로는 IMF 금융위기를 맞고 있던 시기에 나온 <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의 내용은 우리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도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을 접한 것은 1998년이었는데, 금방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에 매료되어 서점에 책 주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2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내게는 거의  잊혀진 작가가 되버렸지만 언젠가 그의 작품을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서 밀린 과제를 하는 마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정리해본다.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 세계는 두 남자가 중심에 자리한다.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 ~ 1507)와 율리우스 카이사르(Imperator Julius Caesar, BC 100 ~ BC 44)가 그들이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설 야망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각자 작품 세계의 초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초기 주로 르네상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쓴다.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 <신의 대리인>, <르네상스의 여인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이 이 시기에 씌여진 대표작이며, 이들 작품은 '체사레 보르지아'와 연결되는 구도를 갖는다. <신의 대리인> 의 4인 중 알렉산데르 6세는 체사레의 아버지이며, 율리우스 2세는 체사레를 몰락시킨 장본인이다. <르네상스의 여인들>에서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체사레의 여동생이며, 카테리나 스포르차는 체사레와 직접 대립하다 포로가 된 비운의 인물이다. 

 

 마키아벨리는 귀족세계에서 보자면 독립적인 인물이지만, 체사레의 언행을 기록하는 일종의 복음사가 역할을 작품에서 담당한다. 이러한 구도 안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한 시대의 천재도 지나가는 인물에 불과하다. 이같이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세계에서 중심은 '체사레 보르자'이며, 시대정신은 '인간해방' 이 아닌 '이탈리아 통일'로 표현된다. 짧은 시기를 불태우고 사라진 젊은 야심가에 대해 <군주론>에서 내린 체사레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는 분명하고 냉정하지만, 작가는 마키아벨리의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애도 행렬에 동참시킨다.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의 서두에서 우리는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기둥 카이사르와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머리말에는 체사레의 보검과 군기에 새겨진 'Aut Caesar, Aut Nihil' (카이사르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냐)라는 문구가 소개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의 다음 시선이 향하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시오노 나나미는 대작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성공한 야심가'에게 헌정한다. 전체 15권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 속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직접 할당된 분량은 낱권으로도 두꺼운 2권에 해당한다. 로마 1,000년의 역사에서 한 개인에게 이만한 분량이 할당된 것은 <삼국사기>에서 김유신이 차지하는 위상에 견줄만하다.


 개인적으로 <로마인 이야기>에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포에니 전쟁을 다룬 <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과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평전이라 할 <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상)>과 <로마인 이야기 5: 율리우스 카이사르(하)>라 여겨진다. 재미와는 별도로 유익한 책을 고르자면,  <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 <로마인 이야기 10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시오노 나나미의 상상력이 상대적으로 적게 반영되어 건조하게 씌여진 작품들이지만, 그 덕분에 역사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라 여겨진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품 전체의 구성은 Pre- Caesar, Post- Caesar라고 할 정도로 카이사르의 존재는 분기점이 된다. 작가는 초기 로마인들이 융성할 수 있었던 원인을 주위 다른 민족들의 장점을 흡수하는 융통성과 로마의 실용성에서 찾는다. '로마인 정신'으로 표현되는 로마인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서술은 상대적으로 정복당한 민족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피해를 보는 민족이 그리스 민족이다. 이런 관점을 알고 나면, 나중에 나올 <그리스인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대충 짐작된다. 이는 다시 뒤에서 다루도록 하자. 

 

<로마인 이야기>는 15권이지만, 시리즈의 절정은 5권 카이사르편에서 일찍 끝난다.그래서, 작품이 6편이후로는 늘어지는 감을 받게 된다. 카이사르 시대를 지났지만, 작가는 이 천재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고 그를 자주 소환한다.  '카이사르라면 그러지 않았을테지만, ~', '카이스라의 의도와는 달리 ~ ' 라는 식으로 소환되는 카이사르는 후세 황제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한 작가의 감정에 따라 후세 황제들의 역사적 평가가 갈리는 위험이 눈에 거슬리지만, 이는 뒤에 나오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평가에 비하면 약과다. <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이후 본격 등장한 그리스도교는 시오노 나나미의 관점에서는 로마의 정신을 파괴한 '제국의 악(惡)'이다. 그리스도교에 비하면 이민족 게르만 민족은 오히려 로마의 정신을 받아들인 개종자로 그려진다는 점이 작가가 바라보는 로마사의 독특함이라 생각된다.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결국 로마를 멸망시킨 장본인은 '그리스도교'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초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두 인물인 체사레 보르자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들 사이에는 중세(中世) 1,000년의 시간이 놓여져 있다. 작가는 이 기간을 여백으로 두지 않고 작품으로 메운다. 이 시기를 다룬 작품으로는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바다의 도시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전쟁 3부작>이 있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싫어하는 교회사를 굳이언급하지 않고, 두 시대를 연결시키는 고리를 마련하지만, 덕분에 이 부분의 역사서는 주로 전쟁사에 머무르는 한계가 느껴진다. 다만,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예외다.  


  크게 통일성이 없어 보이는 작품둘이지만, 개인적으로 주목할 작품은 초기에 씌여진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 여겨진다.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작가의 세계관이 잘 드러났다는 점에서 대표작이라 생각된다. <로마인 이야기>에 비하면 대중에게 큰 인지도가 없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세계관의 다른 축이라는 면에서 가지는 의미는 각별한 작품이다.


 작가는 동지중해 해양 제국으로 융성 이후 상업으로, 다시 19세기 이후에는 관광을 통해 서서히 쇠락해간 베네치아 1,500년 역사를 그려낸다. 이 작품에는 대략적으로 훈 족의 침입을 피해 바닷가에서 형성된 어촌 도시 베네치아가 상업으로 커나가고, 제4차 십자군을 통해 동지중해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는 과정과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 속에서 키프로스, 크레타를 잃고 무너지는 역사를 담고 있다. 이후 베네치아는 수공업과 관광을 발전시키며 다른 의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다 나폴레용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작은(?) 도시 국가 베네치아의 역사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개인적으로 작가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한때 동아시아를 제패한 일본제국이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일본 정치관료들의 내각책임제를 통해 이루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베네치아 제국의 꿈이 무너졌을 때, 작가는 미국에 의해 대동아공영권이 무너져 내렸던 제2차 세계대전 패전순간을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이후 베네치아가 내륙의 수공업과 관광으로 부흥했다는 사실을 통해 식민지를 잃은 일본 제국의 갈길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작품 속에 표현된 작가의 정치철학은 이러한 생각에 다른 근거가 된다. 작가는 작품 안에서 외륜(外輪)과 내륜(內輪)으로 표현되는 베네치아의 귀족정을 이상체제로 그린다. 불과 수백 명의 귀족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결정이 되는 체제에서 오늘날 일본 내각책임제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 <로마인 이야기>에 나타난 1인 천제에 의한 제국을 이상체제로 생각하는 작가지만, 이러한 체제가 어려울 경우 플랜 B로 귀족정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마침 전후 일본이 걷는 체제의 길이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도 절묘하다. 이런 이유로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작가의 정치철학을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대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시오노 나나미를 정치적으로 플라톤주의자에 가깝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플라톤주의자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그리스인 이야기>를 통해 확인해보자. <로마인 이야기>와는 달리 이 작품은 선뜻 손이 가질 않았는데,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이제는 작가의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작품의 대강 전개가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혼란을 잠재운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Magnus, BC 356 ~ BC 323)가 카이사르 정도의 위치로 그려지고, 그 이전 역사는 영웅의 탄생을 위한 준비된 혼란(chaos)로 설정되지 않을까라는. 실제로, 이런 짐작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이 작품의 의의를 찾는다면, 카이사르 정신의 근원을 헬레니즘(Hellenism)으로 대표되는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제국의 정신에서 찾는다는 것이고, 이를 요약하면 민족을 초월한 포용과 혁신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시오노 나나미는 제국주의 세계관을 보다 앞선 시대로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 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 세계관에서 <아이네이스>와 같은 위상을 차지한다 여겨진다. 이는 <대망 大望>의 작가 야마오카 소하지(山岡莊八, 1907 ~ 1953)가 대동아공영권의 사상적 근거를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1534 ~ 1582)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 1537 ~ 1598)의 천하인(天下人)에서 찾았던 것을 연상시킨다. 그외 색채로망 3부작이 있지만, 역사철학이 담겨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으니 짚고 넘어가자.


 이제 길었던 페이퍼를 정리해보자. 시오노 나나미는 제국을 이룬 남자(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제국을 꿈꾼 남자(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로망을 갖는다. 이들의 야망을 사랑한 작가는 작품 안에서 이들의 야망을 미화(美化) 시키고, 그들의 약점을 필멸의 인간이 갖는 본연의 한계로, 그들의 비극을 시대적 한계로 그려낸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 뻗아나간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와 발칸반도의 베네치아를 경계로 갈리아의 카이사르와 로마냐 지방의 체사레가 양분하는 지중해. 그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지중해임을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즐겨본 만화 중 <은하철도 999>라는 작품이 있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의 마지막은 '안녕 은하철도 999... 안녕 소녕의 날이여..'라는 말로 끝난다. 청년 시절을 함께 했던 그의 작품들. 이 페이퍼를 마지막으로 뒤늦은 인사를 한다. 


 안녕, 시오노 나나미... 안녕, 나의 젊은 시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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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4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08-24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손절한 작가의 흥망성쇠를
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로마인 이야기>의 열혈 팬
으로 전권을 모두 읽었답니다.

읽으면서도 내내 유사 역사주의자
로 변신한 작가의 집필 의도가
영 내키지가 않더군요. 특히 카이사
르에 대한 열렬한 찬사 그리고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로마 멸망
의 원인이 그리스도교의 도입이라는
전제로 한 전개가 특히 그랬습니다.

오늘날 서양 문명의 두 기초가 로마
와 기독교 문명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아빠 찬스로 영웅 행세를 하던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소설은 정말...
아빠 찬스가 사라지자 결국 팽당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요.

<그리스인 이야기>는 패스했습니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책이지 않나 싶어
서요.

일찌감치 손절한 작가에 대한 페이퍼
훌륭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4 19:48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의 글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합니다.^^:) 한때 좋아하던 작가엿던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제 생각이 치우친 생각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레삭매냐님과 저와 같은 이들의 생각이 모여, 이제는 작가의 진면목을 보고 바르게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냥 2020-08-24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때 열광했으나 끝까지 읽어낼 동력을 잃어버린 작가,
더 이후에 보니 대망을 쓴 작가나 시오노나 결국은 일본 제일주의의 시각을 가진
극우주의자 들인게 점점 묻어나 보여 오만정이 떨어진데다 늙어가면서 점점 더 세계를 향한
시건방진 태도하며, 비전문인 이라는걸 코에 걸고 자기 입맛대로 역사를 요리한 망발이라 할까요.
그런걸 다 인지하면서도 이렇게 많은 분량을 읽어내신 님이 놀랍다고 할까요, 네, 대단하십니다.

2020-08-24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텔게우스 2020-08-24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십여년 전에 카이사르편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작가가 묘사한 카이사르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전체적인 작품세계도 꽤나 흥미롭군요. 그러나 세계관에 대해서 결코 동의하긴 어렵겠네요. .
정성껏 작성하신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4 23:15   좋아요 1 | URL
베텔게우스님 감사합니다. 다만, 제 페이퍼에 쓴 글은 주관적인 생각이라 작가의 세계관을 다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나 문제점도 보인다 정도로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항상 즐거운 독서되세요!^^-)

AgalmA 2020-08-27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세에 영웅이 나오기도 쉽다는데 요즘 보면 영웅은 눈을 씻고봐도 안 보이는... 영웅이 나오기도 어려운 난세일까요, 고전적 영웅이 재현되기 어려운 시대인 걸까요. 100년 뒤쯤이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영웅이 보이게 될까요ㅎ;
100년이 뭐야 10년도 못 넘기는 작가의 한계 생각하면 지금까지 남아 호평받는 책은 정말 아끼고 사랑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7 14:27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AglamA님 말씀에 매우 공감하는 게 이제는 시간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라 보다 검증된 책들에 손이 갑니다. 오랜 시간의 검증 속에서도 절판되지 않고 살아남는 책이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진정한 영웅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punster 2020-08-29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게의 추를 조금 옮겨놓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로마인이야기.
갈리아인을 바라보는 로마인의 시각이 마치 일본 식민지시대의 조선인을 바라보는 듯하여 불편하긴 하지만 서로마의 장대한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 필력은 경탄할 만하지요..
잘 정리하신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세계를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9 21:42   좋아요 1 | URL
네 punster님 말씀처럼 낯선 서양 고대사의 세계를 한결 가깝게 그려낸 것은 뛰어난 작가의 역량이라 생각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사상에는 동감할 수 없지만, 말씀하신 부분은 인정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바다숭어 2021-02-07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깊이 공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7 08: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다숭어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얼킁이 2021-07-12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오니 나나미의 저서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이 돋보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12 23:08   좋아요 0 | URL
얼킁이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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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가 이 도시의 통치와 방어를 정비한 성과는, 이 시기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한 그리스도교도 상인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중근동과 오랫동안 교역해온 이 베네치아 상인은 프리드리히가 통치하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분의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변한 것을 찾는다면, 첫째로 거리에 보이는 수비대 병사가 이슬람교도에서 그리스도교도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로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전보다 큰 소리로 종이 울려퍼지게 된 것이다.˝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405

<십자군 이야기 3 The story of the Crusades 3>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지막 권이며, 제3차 십자군(1188 ~ 1192)으로부터 제8차 십자군(1248 ~ 1254)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책이다. 시기적으로는 전체 200여년에 해당하는 십자군 역사에서 후반부 70년에 해당하기에 200년을 3분하여 분량을 할당한 작가의 구성은 큰 무리없어 보이지만, 성지 예루살렘을 잃어버린 후 이를 탈환하기 위한 원정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집중되기에 기계적 중립에 가까운 분량 배분이 이루어졌다.

사자심왕 리처드(Richard the Lionheart, 1157 ~ 1199)와 살라딘(Saladin, 1138 ~ 1193)의 대결로 압축되는 제3차 십자군과 베네치아 상인에게 농락당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함락시킨 제4차 십자군이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작가도 여기에 집중한다. 때문에 4차 이후 십자군 전쟁은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시선이 가는 곳은 오히려 제6차 십자군전쟁이다.

제6차 십자군은 처음부터 외교협상이 이루어진 전쟁이라는 점에서 다른 전쟁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1194 ~ 1250)와 알카밀(al-Malik al-Kamel Naser al-Din Abu al-Ma‘ali Muhammed,1180 ~ 1238) 사이에 이루어진 협상은 평화롭게 끝났고 이를 통해 성도(聖都)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 유대교도가 공유하게 된다.

프리드리히는 아코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알 카밀에게 교섭 재개를 요청하는 밀사를 보냈다. 중근동에서 오래 살아온 봉건제후 출신으로 아랍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던 두 밀사는 당시 알 카밀이 머무르고 있던 나블루스로 향했다. 프리드리히는 대환영을 받으며 아코에 도착하자마자 일찌감치 외교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p377)... 이집트에 세력 기반을 둔 알 카밀로서는 프리드리히가 이끌고 온 군사력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p379)... 알 카밀이 시간 벌기로 시작한 교섭은 이렇게 조금씩 진지하게 이교도간의 공생관계 수립을 지향하는 교섭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프리드리히는 중근동 그리스도교 세력의 안전을 보장할 수단을 강화해가고 있었다.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385

물론, 이러한 결과는 이들이 평화를 사랑했다라고 보기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더 크게 자리했을 것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하자마자, 황제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밀린 프리드리히 2세와 다마스쿠스에서 반기를 든 동생과의 갈등 관계에 있던 알 카밀. 이들은 모두 싸움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협상에 임했고, 결과적으로 평화협정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역사가들은 이러한 결과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모두의 반발을 가져왔다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이같은 상황에서 협상의 결과에 반대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이 아니었을까. 평화로 인해 손해보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테니.

프리드리히와 호노리우스의 서신 교환은 그후 한동안 두절된다. 그리고 1218년 말 둘의 교류가 다시 시작된다. 이번에는 교황이 먼저 프리드리히에게 서신을 보낸다. 제5차 십자군이 이집트 다미에타에서 고전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번에는 넌지시 비추는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용건을 밝혔다. 요컨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고 싶으면 원정을 가라는 것이었다.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345

1192년 봄, 재상 윌리엄 롱샹은 리처드에게 하루빨리 귀국할 것을 요청했다. 서신에는 리처드의 막내동생 존을 전면에 내세운 프랑스 왕의 군대가 노르망디 지방을 넘어 영국까지 침공하고 있으며, 유럽에 남아 있는 리처드파의 군대는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며 리처드의 귀국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고 씌여 있었다. 제1차 십자군 당초부터 유럽의 모든 황제와 왕, 제후들은 로마 교황이 제창한 ‘신 앞에서의 평화‘를 지키는 데 동의했다. 십자군 원정중에는 누구든 원정에 나선 이의 영토를 결코 침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왕 필리프 2세가 그것을 처음으로 깨버렸다.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177

구체적으로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교황, 제후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던 유럽의 여러 왕들. 이들이 종교(宗敎)를 앞세우고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평화의 길을 반대하고 여론을 조성한 것은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앞으로 종교를 앞세우고 뒤로는실속을 채우려믄 이들은 평화협상을 실패라고 비난했고, 프리드리히를 파문에 처하기까지 한다. 역사는 이러한 기록을 남기지만, 실제로도 그랬을까.

리뷰의 서두에 언급된 베네치아 상인의 증언은 평화협상의 결과로 세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이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상인인 그의 입장에서는 평화가 자신에게 유리했음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고, 이는 예루살렘과 일대에 거주하는 이들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그들이 결코 원치 않았던 전쟁을 피한 제6차 십자군을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십자군 전쟁의 목적이 성지 회복이라면, 피흘리지 않고 예루살렘을 소유(所有)하지는 못했지만 공유(共有)할 수 있었던 이 전쟁을 실패라고 볼 수 있을까. 만약, 제6차 십자군이 실패라면,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지 못한 이들의 관점에서 실패가 아니었을까. 세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살피고, 평화의 길을 세워 오늘날 중동평화를 가져울 수도 있었던 협상이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가장 역사적 의미를 갖는 십자군 전쟁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특히,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시대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역사 소설인 <십자군 이야기 3>에서 이런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 <십자군 이야기 3>에서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가장 공들이고 쓴 부분은 제3차 십자군과 제4차 십자군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과 긴장감을 고조하는 특유의 서술을 좋아하는 이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도록 ‘맛있게‘ 씌여졌다. 다만, 흥미진진한 다른 십자군 원정과는 달리, 별다른 화제거리가 없는 제6차 십자군에 대해서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예를 들어, 제3차 십자군에 참전했던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 1122 ~ 1190)가 수영하던 중 물에 빠져 죽은 사건을 보자. 이에 대해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서술한다. 정확한 사인(死因)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공식기록이지만, <십자군 이야기 3>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는 프리드리히 1세가 ‘철없는 늙은이‘ 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질 뿐이다. 그렇지만, ‘붉은 수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중세 유럽에서 10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동원할 능력있는 자를 평면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내 머리에는 ‘늙은이의 냉수(노인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위험한 짓이나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을 일컫는 일본어 관용구)‘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황제 ‘붉은 수염‘은 자기도 질 수 없다 생각하고 뛰어든 게 아닐까.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예순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병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가 병상에 드러누웠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그런 만큼 체력에 자신이 있었을 테고, 그 탓에 나이도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부하들과 함께 반나체로 뛰어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대로 가라앉아버렸고, 끌어냈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현대의 연구자들도 대부분 심장마비로 인한 익사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다. 익사한 날은 1190년 6월 10일, 독일을 떠나온 지 1년 1개월이 지나 있었다. 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68

실제로, 공식 기록에 남겨진 황제에 대한 기록은 이와 다르다. <프리드리히 황제의 업적 Gesta Friderici I imperatoris>에는 당당하면서도 인격자인 황제의 모습이 버젓이 기록되어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 앞에 진실은 구석으로 치워진다. 이런 편향된 기술이 과연 한 인물에 한정되었을까. 이런 점을 고려해본다면,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십자군 이야기> 이야기는 야사를 접했다는 정도로 읽길 권한다.

그의 인격은 그의 힘을 시기하는 자조차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균형잡힌 사람이다. 그는 매우 큰 사람보다는 작으나 보통 신장의 사람보다는 더 크고 고귀하다. 그는 금발이고 이마에서 웨이브가 있다. 그의 눈은 날카롭고, 그의 수염은 붉고, 그의 입술은 곱다... 그의 모습은 밝고 기운차다. 그의 이빨은 눈같이 희다... 분노대신 겸손으로 그는 얼굴을 붉힌다. 그의 어깨는 넓은편이고, 강한 체격이다.(출처 : 위키백과)

<십자군 이야기 3>를 읽으면서 느꼈던 두 가지 생각. 역사에 대한 재해석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며,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사실에 기반한 소설이 아닌 정식 기록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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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8-23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씨의 글들을 한 때는 사랑해서
열심으로 읽었으나, 이모 작가의 경우
처럼 본색이 드러나 손절하게 되었네요.

그렇게 칭송해 마지 않던 평론가들이
지금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네요.
수오지심은 있는지 과연.

겨울호랑이 2020-08-23 23:43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저 또한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좋아했으나, 이제는 더 손이 가질 않네요.. 그렇지 않아도,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과 관련한 이별 페이퍼를 작성 중에 있습니다. 레삭매냐님 눈 높이에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시간되신다면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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