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그린 '뉴 실크로드'란 중국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각각 러시아와 이란을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육로와 해상수송로, 그리고 나중에 추가된 극지방 항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떤 경로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땅과 바다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라는 방향성만은 확실하다... 창립 당시 57개국에 불과했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의 회원국 수는 오늘날 102개국으로 확대됐으며, 중국 자본이 약 1/3에 달하긴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자본도 총 20%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뉴 실크로드 전략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이는 실상 중국의 순수한 대외사업이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8>,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p1


 이병한은 <유라시아 견문>에서 21세기를 유라시아의 세기이며, 유럽과 아시아의 협력의 시대로 예상한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이 시진핑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이며, New Silk Road라 불린다.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는 이를 통해 유라시아 각국들이 새롭게 문명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달리 흘러간다.


 책임대국'을 표방하는 중국은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20세기형 '강대국'을 추구하지 않는다. 무력에 의존하여 패도를 행사하는 패권국이 아니라, '왕도의 근대화'를 도모한다. 20세기의 대장정이 21세기의 일대일로와 접속하는 연결고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1>, p407


 문제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순수하게 이웃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대일로를 위해 우선적으로 중국은 항만 등 대규모 설비투자를 위해 자금을 대출해 주었고, 각국은 이를 활용하여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중국 자금의 사용이 위안화의 결제 비중을 높이는데 활용되고, 인프라 구축이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은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통해 자금을 활용하면서 유휴설비 문제도 해결하고, 구축된 인프라의 이용권을 획득하지만, 정작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이용한 회원국들은 과거 중국이 서구 열강에게 당한 '99년의 조차권'을 강요받는 실정에서 반발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인프라 개발을 우선시 하는 것은 중국 개발 모델 자체가 인프라 구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 서부 농촌 지역의 낙후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택한 인프라 중심 개발 모델은 주변국 및 수혜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뉴 실크로드 전략의 중상주의 측면은 명백하다. 중국의 대형 기업들에게 즉각적인 판로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설, 토목, 철강 분야의 기업들은 심각한 공급과잉에 처해 있었다... 또한 새로운 통로가 마련되면 중국은 그만큼 안정적인 수출입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8>,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p14


 중국이 가는 길은 '가시밭길'에 가깝다. 부패문제는 물론 분별없는 차관에 대한 비판도 거세고, 사업계획 역시 무모할 정도로 방대할 뿐 아니라 수익성을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혜국인 개도국을 부채의 덫에 빠뜨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2018년 스리랑카는 못 갚은 빚 대신 중국의 다국적 기업 자오상쥐 그룹에 무려 '99년 임차'로 항만 운영권을 내주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중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유럽연합의 구조조정 및 긴축정책 상황을 이용해 그리스 피레우스 항을 접수한다. 스페인 발렌시아와 빌바오 항만 컨테이너 기지도 상황은 비슷했다.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8>,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p14


 이러한 현실을 생각한다면, <유라시아 견문>에서 말하는 '책임대국 중국'은 지나친 낙관이 아닐까. 설사 중국은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할지라도 이로 인해 많은 투자가 연기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것은 '21세기 패권국가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이웃 국가들에게 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의 싹이 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재편될 것이고, 새로운 중심국이 떠오를 것이고, 중국이 이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변화의 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운 가운데 변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 또는 비관을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는 21세기 유라시아로 가더라도, 단기적으로는 각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냉정한 국제 정치의 현실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시세와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서세동점의 말기이다. 서구적 근대의 말세이며, 미국적 세계화의 끝물이다. 그러나 탈근대도 아니요, 반세계화도 아니다. 구미적 근대에서 지구적 근대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적 세계화에서 세계적 세계화로 진입하고 있다. 지구적 근대화와 세계적 세계화의 최전선에 유라시아가 자리한다. 구 舊 제국들은 귀환하고, 옛 문명들은 복원된다. 동서고금이 사통팔달 회통한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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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8-26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을 대륙이라 부르는 그들의 국민의식은 경제가 발전하고 여유가 생기면 나아질 것같습니다. 그들의 마음대로 정치가 좀 바뀐다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려 언제 강제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항상 발목을 잡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6 11:05   좋아요 2 | URL
중국의 정치체제 문제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라 여겨집니다. 소수민족자치구를 포함한 현재 중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체제로 가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개인의 자유가 통제받기에 시민들의 불만은 높아지겠지요... ‘대국‘과 ‘개인의 자유‘ 라는 상충된 가치에서 중국 인민들의 선택이 중요하겠지요...

페크pek0501 2020-08-26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일본의 아베가 물러나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정세도 변화할 것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있고 없음에 따라 역사가 달라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겨울호랑이 2020-08-26 19:05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역사를 이루는 힘은 시민, 민중, 다중으로 불리는 이들로부터 나오지만, 이러한 힘의 방향을 정하는 키 역할을 하는 것은 지도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도도자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점에서 지도자의 중요함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