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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음식의 역사- 27개 주제로 보는 음식 연구
제프리 M. 필처 엮음, 김병순 옮김, 주영하 감수.해제 / 따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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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지음, 유나영 옮김 / 소와당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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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먹거리의 역사 - 전2권
마귈론 투생-사마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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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의 역사 - 하
마귈론 투생-사마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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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경제는 농업활동, 노점, 수공업 작업장, 상점, 증권 거래소, 은행, 정기시장(定期市場), 그리고 물론 시장에 연결된 생산과 교환의 메커니즘들을 뜻한다.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명료한, 심지어 "투명한(transparent)"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활발히 움직여가고 또 그렇기 때문에 파악하기 쉬운 과정들에 대해서 먼저 연구하기 시작했다. 즉 경제학은 처음부터 다른 것들을 사상한 채 이런 특권적인 분야만 골라서 보았던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 p12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의 기본가정은 '물질문명', '시장경제' 그리고 '자본주의'로 구분된다. 경제학(Economics)가 관심을 갖는 정량화(定量化)된 경제영역이 '시장경제' 부분이라면, 그 아래로 GDP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사노동 등이 위치한 물밀문명 영역이, 상층부에는 계급화된 '자본주의' 영역이 위치한다. 


 불투명한 영역, 흔히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영역이 시장 밑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기본 활동의 영역이다. 지표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 폭넓은 영역을 나는, 더 알맞은 이름이 없어서, "물질생활(la vie materielle)" 혹은 "물질문명(la civilisation materielle)"이라고 명명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시장이라는 광범한 층의 밑이 아니라 그 위로 활동적인 사회적 위계가 높이 발달해있다. 이러한 위계조직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교환과정을 왜곡시키며 기존 질서를 교란시킨다. 원하든, 아니면 의식적으로 원하지 않든 간에, 그것은 비정상과 "소란스러움"을 만들어내며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시장경제의 투명성 위에 위치하면서 그 시장경제에 대해서 일종의 상방(上方) 한계를 이루는 이 두 번째의 불투명한 영역은 나에게는 특히 다름아닌 자본주의의 영역이었다. 시장경제 없이 자본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 자리잡고 그곳에서 번영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 p13


 이러한 구조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권의 책 <일상생활의 구조>, <교환의 세계>, <세계의 시간>이 각각 대응한다. 이하 각 권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리뷰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지만, 피라미드구조로 형성된 삼분법 구조 위에서 브로델이 끌어내려고 한 결론만 간략하게 확인하도록 하자...


 나는 다만 경제의 하층(下層)이 상당히 두텁게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 상관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여튼 그것이 존재하며 독립된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사회적인 것의 총화이며 우리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너무 성급하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삼분할(tripartition)" 체제, 여러 층을 가진 경제라는 개념은 과거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모델이며 타당한 관찰의 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지상층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는 불완전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상층에서 하층까지 모두 아우르는 자본주의 "체제(systeme)"라고 하는 관점은 여러 면에서 수정되어야만 한다.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67


PS. 물질문명을 다루는 1권에서는 마귈론 투생 사마의 <먹거리의 역사>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고,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는 3권 세계의 시간편과 함께 정리하면 좋을 듯하다. 이는 다음 페이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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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11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앞으로 올려주실 글들이 기대가 되네요*^^* 항상 지적 자극이 되는 글 올려주셔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4-11 16:18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솜씨로 대작의 전체 모습을 리뷰 안에 담아내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려 합니다. 거리의화가님께서 격려해주시니 미루지 말고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04-11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재독이신가 봅니다. ^^

겨울호랑이 2022-04-11 19:31   좋아요 1 | URL
네, 매번 정리한다 해놓고 계속 밀렸네요. 이번 기회에 리뷰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
 

결론적으로 우리는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기간 동안 세계의 차별화된 운명에 대한 일차적인 인식을 얻기 위해서 수를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커다란 덩어리들로 나뉘어 있었고, 이 각각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서로 다른 장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 사회 내부에서 보더라도 여러 집단의 일상생활이 서로 다른 것과 유사하다.  - P133

우리는 수천년에 걸쳐 늘 다시 출발하는, 그리고 답보하는 인간의 모험이 하나이며, 공시성과 통시성이 함께 만난다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이러한 이미지들을 더욱 많이 살펴볼 수도 있다. "농업혁명"은 기원전 8000 -기원전 7000년 전의 오리엔트에서와 같은 몇몇  특권적인 곳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퍼져가야 했으며 그 진보는 결코 단 한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의 경험들은 끝없이 긴 똑같은 여로를 따라가지만, 그것은 수세기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 P247

우리는 이 변화의 광기가 진정으로 형성되기까지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앙리 4세의 궁정에서 한 베네치아 대사는 이렇게 말한다 : 25-30벌의 의복을 가지고 날마다 옷을 바꾸어입지 않으면 부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유행이라는 것은 단지 양이  풍부하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필요한 순간에 방향을 잘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계절, 날, 시간의 문제이다. 이런 엄격한의미에서 유행이라고 하는 제국은 170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1700년경에 이 단어는 두번째 젊음을 되찾아서 새 뜻을 가지고 전세계를 휘저었다 : 그것은 시세(時勢)를  쫓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오늘날의 의미로 유행을 쫓아갔다. 그때까지 사물들은 그렇게 빨리변화하지 않았었다.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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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에서는 유주(幽州, 燕京, 북경시)를 남경(南京)으로 삼았다.

상유한이 황제에게 권고하기를, ‘정성을 다하여 원한을 버리고서 번진을 어루만져주고, 말씀을 낮추고 예의를 두텁게 하여서 거란을 받들며, 사졸을 훈련시키고 병장기를 수선하고서 무예를 닦아 대비하고, 농업과 양잠에 힘써서 창고를 채우며, 상고(商賈)를 유통하게 하여서 재화(財貨)를 풍요롭게 해야 합니다. 몇 년 사이에 중원은 점차 안정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애초에, 거란주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강성하니, 실위(室韋, 내몽고 동북부)·해(奚, 낙하 상류)·습(?, 요하 이북)이 모두 역속(役屬)되었다. 해왕(奚王) 거제(去諸)는 거란의 탐욕과 포학함에 괴로워하다가 그의 무리를 인솔하고 서쪽으로 가서 규주(?州, 하북현 회래현)로 옮겨서 유인공(劉仁恭) 부자에게 의탁하고 서해(西奚)라 불렀다. 거제가 죽자 아들인 소랄(掃刺)이 섰다.

"듣건대 유사에서 관직에 제수하면서 모두 뇌물을 받는다는데 그런 일이 있소?" 대답하였다.
"떠도는 말이라서 믿을 만하지 않습니다."
민주가 말하였다. "짐이 이를 안 지가 오래되었고, 지금 경에게 위임하니, 현명한 사람을 뽑아서 제수하되 불초하고 기망하는 사람이라도 관직을 요구하는 사람은 거절하지 말고 차례로 뇌물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장부에 적어서 그것을 바치시오."

2월 경진일(3일)에 좌산기상시 장윤(張允)이 <박사론(?赦論)>을 올렸다.
"제왕(帝王)이 천재(天災)를 만나면 대부분 사면하는데 이를 수덕(修德)이라 합니다. 가령 두 사람이 감옥에 앉아 있다가 사면을 만난 사람이 있다면 굽은 사람은 면제받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이나 곧은 사람은 원통함을 품을 것이고 억울한 기운이 승문(升聞, 제왕에게 보고를 올리는 것)하게 되니 이는 재난에 이르게 하는 것이지 재난을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서를 내려서 그를 칭찬하였다.

병술일(11일)에 좌간의대부인 설융(薛融)이 간하였다.
"지금 궁실이 비록 불에 타서 훼손되는 일을 겪었지만 오히려 제요(帝堯)의 띳집보다도 사치스럽습니다. 사용한 비용은 비록 적었으나 오히려 한 문제(文帝)의 노대(露臺)보다는 많았습니다. 하물며 위성(魏城, 하북성 대명현)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으며 공사 간에 어렵고 군색(窘塞)하니 진실로 폐하께서 궁관(宮館)을 수축하는 날이 아니고 해내가 평정되고 안녕하기를 기다려서 그것을 조영해도 아직 늦지 않을 것입니다."
황상이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이어서 조서를 내려 그를 칭찬하였다.

황제가 거란을 섬기는 것이 심히 근엄하였고 표문을 받들어 신하라고 호칭하였으며, 거란주를 일컬어 ‘부황제(父皇帝)’라고 하였으며, 매번 거란의 사신이 도착할 때마다 황제는 별전(別殿)에서 배례하고 조칙(詔?)을 받았다. 해마다 황금과 비단 30만을 보내는 것 이외에도 길흉(吉凶)의 경사(慶事)와 조문하고 세시(歲時)에 선물을 보냈는데 진기한 노리개나 희귀한 것도 길가에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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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수난받으실 수 없고 변화될 수도 없는 신성을 낮추셨지만 능력 면에서는 그분 고유의 본성을 잃지 않으셨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 우리 본성을 취하셨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두 가지 본성은 한위격을 이룹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한 주님으로서 종의 조건을 받아들이신 것은 어떤 필연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자애심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수난을 받으시고 죽으실 수 있는 분이 되신 것은 그분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죄와 죽음의 권세를 멸하기 위해서는 수난을 받을 수 있는 나약한 본체가 있어야 하지만, 그분의 영광에서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으신 것은 능력의 본성 때문이었습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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