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해방 후 최초의 아파트를 우리 자본과 기술에 의해 건설된 공동주택의 형태와 공간점유 방식 등으로 한정한다면 완공시기가 1957년 9월부터 1958년 7월 사이로 추정되는 종암아파트를 최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또 다른 자료에서는 완공시기를 1957년 11월로 적시한 기록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의 치사에 따르면, 봉건적 생활양식을 버리고 현대적 집단공동생활양식으로 전환함으로써 5.16 군사혁명을 생활혁명으로 바꾸고 궁극적으로 혁명 한국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수단이 고층아파트단지이며 이곳에 입주하는 주민들은 문화시민이고 앞으로도 이 유시(諭示)와 이념에 따라 고층아파트를 적극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쿠데타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발표한 ‘혁명공약’3과 맞닿아 있다. 현대적 시설을 수단으로 불합리한 구악(舊惡)의 일소, 생활혁명을 통한 청신한 기풍의 진작, ‘집단공동생활양식으로 표상되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공태세 강화’4 등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도구가 혁명 한국의 상징인 고층아파트이다. 또 그곳에 사는 입주자들이야말로 선진국의 국민들과 동등한 자격을 갖춘 문화시민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남서울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반포주공아파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례이다. 마포아파트 건설 이후 여의도시범아파트, 한강맨션아파트와 더불어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 대량 공급이라는 점, 한국적 공간 구성의 규범을 가지지 못했던 당시 아파트의 다채로운 평면구성 방식을 온전히 드러낸 대표적 사례라는 점, 아파트지구 지정 확대와 강남개발을 이해할 수 있는 교두보로써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포주공아파트를 기점으로 아파트와 중산층의 친근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주택을 소유하고자 하는 중산 계급들은 융자를 받았다. 주택 융자는 사무직 종사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로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많은 혜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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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이 된다는 말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희망이 없는 캄캄절벽, 어디서 빛줄이 새어들어 한을 풀 새날을 기다려본단 말인가. 삶의 의지를 잃은 사람은 비단 성환할매나 박서방뿐만은 아니었다. 최서희도 지금 평사리에 내려와 있었다. 날개 찢긴 나비같이, 거미줄에 걸린 나비같이, 파닥거리지도 않았고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조용하게 사람을 바라보았다. 만석꾼 살림의 최서희나 나룻배 뱃삯을 선뜻 내놓을 수 없는 박서방이나 눈이 멀어버린 성환할매, 살아보고 싶은 뜻을 잃은 상태는 매일반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평등했다. _ 박경리, <토지 19> , p286/532


  작년 7월부터 올렸던 <토지> 독서챌린지도 어느새 2주 후면 마무리된다. <토지 20> 마지막 권을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독서 여정을 살펴본다. 초반부에 사라진 인물도 있었고, 도중에 등장한 인물도 많았다. 오늘의 미션인 '첫인상과 현재의 인상이 가장 많이 달라진 인물' 을 수행하려다 보니 필요한 작업이기도 했지만. 


 1권에서 철부지 어린애가 19권에서는 노인이 되어버린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지나갔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미션의 TOP3는 봉선(기화), 명희, 병수로 선정했다. 그 이유를 서술하기 전 <토지 인물 사전>에서 이들의 삶을 옮겨본다.


 봉순 기화(紀花) : 두 살 아래인 서희와 친동기처럼 지낸다. 길상을 사모하나 길상의 내심을 간파하고 간도에 동행하지 않는다. 타고난 재질을 살려 소리를 배우며, 명기 기화로 다시 태어난다... 서희를 만나기 위해 혜관과 용정을 방문한 후 변해버린 길상과의 관계에 절망한다. 이후, 서희로부터 외면당하고 돌아온 상현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껴 그와 함께 생활한다. 상현이 떠나고 난 후 군산에서 홀로 상현의 아이 양현을 낳지만, 허무감을 달래지 못해 아편 중독자가 되어 평양을 떠돈다. 서희의 도움으로 평사리로 돌아와 요양하며 살아가지만 타락한 자신의 모습에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며, 정 석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정리하듯 섬진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 p88/216


 봉순과 명희에게서 받은 인상의 변화는 외부 요인에서 온 것으로, 이들의 굴곡진 삶이 큰 영향을 미쳤다. 어릴 때는 동생 서희를 감싸고 보호해주는 언니였지만, 길상이 서희의 남편이 되면서 서희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아편에 중독된 채 쓸쓸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봉선. 듬직한 언니에서 마약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나약함으로 봉선에 대한 인상이 크게 바뀌었다면, 명희에 대한 인상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돈을 보고 선택한 인물이라는 명희에 대한 인상은 용하와의 이혼 후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에서 '박제된 학'에서 '창공을 나는 학'으로의 이미지 변화를 느낀다.


 임명희(任明姬) : 임명빈의 동생. 빼어난 용모에 지적인 세련미, 독특한 분위기와 품격을 가지고 있다. 동경에서 알게 된 상현을 사모하나, 거절당한다. 명희를 차지하기 위해 이혼한 조용하와 결혼하여 '박제한 학'처럼 살아간다. 조씨 가문에 대한 죄의식과 강박감, 그리고 조용하의 끝없는 질투와 가학에 시달리다가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친구 여옥의 도움으로 통영의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시동생 조찬하에 대한 감정을 냉정하게 정리한다. 조용하가 죽은 후 상당한 유산을 분배받는다. 서울로 돌아와 유치원을 하며 말년을 보내며, 도솔암의 젋은이를 위해 거금 5천 원을 희사한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 p166/216


 반면, 병수는 다른 이유로 선정했다. 봉순과 명희와는 달리 그에 대한 인상은 <토지>의 강력한 악인(惡人) 조병수에 의해 가리워진 그림자로 인식되었다. 아버지의 위세에 기대어 서희와 최씨네 재산을 탐하는 인물이라는 편견이 있었으나, 길상과의 대화 이후 아버지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오해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조병수 : 조준구의 외아들. 꼽추의 몸이나 '해맑은 눈동자'에 '천상의 동가잩이 깨끗한 얼굴'을 가졌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빠르고 정확한 직감을 가졌다. 또한 탐미적인 감각과 인간의 존업성을 헤아리는 의지를 가졌다. 평사리에 올겨 온 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삼수에게 매질 당하는 삼월을 동정과 연민으로 바라보기도 하며, 서희에 대한 호감을 길상에게 들킨 후 절망하기도 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조준구가 영락하고 쇠장한 몰골로 찾아오자, 갖은 학대를 받으며 3년간 그의 병수발을 들고 임종을 지킬 정도로 효자이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 p178/216


 그러고는 말이 뚝 끊어졌다. 환국이와 시우는 그런 침묵이 견디기 힘들었다. 보이지 않느 어떤 것이 자신을 꽁꽁 묶어놓은 듯, 입이 붙어버린 듯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옛날의 그 도도했던 위엄은 사라졌으나 그와는 또 다른, 그것은 다만 침묵이었는데 매우 이상한 힘으로 압도해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타나지 않는 눈물이었는지 모른다. 나타나지 않는 절망 비통이었는지 모른다. _ 박경리, <토지 19> , p293/532 


 서희는 이러한 주면 인물들과의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토지> 후반부로 가며 자신과 갈등관계에 있던 인물들과 해원(解怨)한다. 이 같은 서희의 모습 속에서 모든 갈등이 '서희'라는 하나의 용광로에서 융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작품의 주인공이기에 작품 전체에서 가장 입체적으로 그려진 서희지만, 그 원인은 찾아본다면 봉순, 명희, 병수와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어느덧 서희는 노년이 되었다.


 인생의 주로(走路)는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 번만 가게 되어 있네. 그리고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 p44


 인간에게 있어서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시간화하는 것이다. 현재 속에서 과거를 넘어서는 계획들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겨냥한다. 우리의 활동들은 무기력한 요구들로 가득 찬 채 응고되어 과거로 되돌아간다. 나이는 우리 자신과 시간과의 관계를 바꾸어놓는다. 해가 바뀜에 따라 우리의 과거는 점점 더 육중해지고, 반면 우리의 미래는 점점 짧아진다. 노인이란 "살아온 긴 생을 뒤에 갖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희망이 매우 한정된 인간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_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 p505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게 남은, 이제는 죽음을 바라보는 노인 서희. 그런 서희를 주변에서는 안타깝게 바라보고, 서희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지난 시절 할머니가 호열자에 걸려 돌아가시기 전 함께 돌아본 최참판의 가세(家勢)를 살펴보던 어린 서희와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서희가 <토지 19>에서 그려진다. 서희가 돌이켜 본 자신의 삶은 어떤 색이었을까.


 서희는 지난 그때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어린 옛날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가마를 타고 갔을 때였다. 논에서 밭에서 일하던 남정네 아낙들, 길가에 서 있던 노인, 그들은 모두 가마를 향해 절을 했다. 바람이 이랑을 만들며 벼를 쓸고 지나가고 있었다. 엉덩이에 쇠똥이 잔뜩 묻은 어미소와 송아지가 물이 말라서 바닥이 드러난 개울가에 앉아 있었다. 물이 괴어 있는 개울가에서 아닥 한 사람과 아이들이 낯을 씻고 있었는데 가마를 본 그들은 기겁을 했다. 마치 메뚜기처럼 개울 건너 메밀밭으로 뛰어가서 숨는 것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9> , p307/532 


  봄은 청춘의 계절이고 다가올 결실을 약속하지만 다른 계절들은 그 결실을 베어 거둬들이기에 적합하기 때문일세. 한데 노년의 결실이란, 앞서도 거듭 말했듯이, 전에 이룩한 선(善)에 대해 회상할 일이 많다는 것이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무엇이든 선으로 간주되어야 하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 p80


제1권 328e  어르신께서는 시인들이 "노년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말하는 바로 그런 춘추에 이미 들어서셨기에 여쭙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그것이 어려운 고비인지, 아니면 어르신께서 어떻게 알려 주실 것인지 듣고 싶군요." 

329a "소크라테스 선생! 멩세코, 선생께 내 말씀드리리다. 내가 보기에 그게 실로 어떤 것인지를. 실은 우리 엇비슷한 연배 몇 사람이 자주 한데 모이고 있어서, 옛 속담을 따르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게 해서, 우리 중에서 대부분은, 모였다 하면, 젊은 시절의 즐거움을 아쉬워하며, 성적인 쾌락과 관련해서, 그리고 술잔치나 경축 행사, 또는 이런 등속의 것에 속하는 다른 여러 가지 것과 관련해서 회상을 하며 한탄을 하죠. 그러면서 그들은 마치 굉장한 무엇인가를 앗기기라도 한 듯이, 그래서 한때는 잘 살았으나, 이제는 사는 것도 아닌 듯이, 화를 내지요. _ 플라톤, <국가>, p57


 서희의 삶에서 사람들이 차례로 떠났듯, 이제 <토지 20>에서 서희의 인생은 양현과 함께 해방을 맞이하며 영원한 쉼표로 마무리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쉼표를 향해 밖으로 확장되었던 서희는 이제 다시 어린 시절로 회상하며 움츠러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블랙홀의 죽음과도 같이.. <토지 19>에서 노인이 된 서희를 보며 이제 <토지>를 마무리해야 할 때를 실감하는 한 주의 독서였다...


 적막강산, 고립무원, 한 사람 한 사람 떠나가는 것을 이제는 더이상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 곁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떠나갔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위엄에 차 있던 어머니가, 찬 이슬에 날개를 접은 나비같이 숨만 쉬고 있는 것 같은 안방의 어머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9> , p298/532 

 

 노년은 제2의 어린 시절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달리 표현하면 생애 과정이 완전히 순환한 것이다. 그런 표현의 이면에 있는 논리는, 만약 저변의 어떤 논리든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많은 개별 노인이 경험한 신체적/정신적 쇠퇴와 그로 인한 타인에의 의존을 관찰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시간을 초월한 이미지이다. _ 팻 테인 외, <노년의 역사>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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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적 형태의 죽음 의례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죽어가는 신자들의 마음속에 불어넣는다. 이것이야말로 그 의례의 실제적 기능이다. 이와 별도로 현재 죽어간다는 것은 상당히 무정형적 상황에 놓여 있으며 사회적 지형도에서 빈자리로 표시된다. _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죽어가는 자의 고독>, P36


  연의의 첫영성체 교리를 계기로 성(聖) 금요일 미사를 다녀왔다. 가톨릭 전례에서는 부활절(Easter Sunday) 직전 3일을 각각 성목요일(Maundy Thursday), 성금요일(Good Friday), 성토요일(Holy Saturday)로 보내고 있으며, 각각의 요일과 요일 사이는 '수난', '죽음' ,' 부활'이라는 사건에 대응한다. 그 중에서도 금요일은 수난의 정점, 죽음의 요일에 해당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 ~ 1990)의 말처럼 미사 전례를 통해 신자들은 수난과 죽음을 재현하고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성금요일 미사 복음 중 절정은 예수의 죽음이다. 4대 복음서에 기술된 예수가 남긴 마지막 말은 서로 다르다. 때문에, 복음서마다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은 조금은 원망하는 듯한 분위기가 든다면, -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마르 15:35) - 루카 복음에서는 죽음 너머의 생명의 분위기가 -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 요한 복음에서는 죽음 자체로 완성이라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게된다 -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 


 세월호 8주기를 앞두고 맞이한 성금요일에 개인적으로 <요한복음>의 내용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죽음의 순간 아버지에게 호소하는 공관복음과는 달리, 죽음이라는 사건을 직시하는 모습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잊을 수 없다는 개인적인 생각때문일까. 잘 모르겠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싶다. 해결되지 않았기에 그들을 잊어서는 안되며, 그들의 빈자리를 아직 채울 수 없다는 생각도 함께 한다.


. 2014년 세월호가 침몰 후 2016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며 촛불을 들었건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나도록 선체 인양 이외에 달라진 것은 없는 상황. 이제 다시 깊은 밤이 시작되기에 8주기를 맞이해서 더 깊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제 시작될 밤이 얼마나 깊은 어둠이며, 얼마나 길게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잠들지 않고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남은 유족들이 온전하게 그들에게 남겨진 상처를 치유받을 때까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세월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2) 


 죽음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기나긴 꿈 속으로 떠나가고 세상은 사라진다. 두려운 것은 죽어가는 고통이며, 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산자의 상실감이다... 죽음은 한 인간의 종말이다. 남는 것은 그 혹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던 것, 즉 산 자가 가진 기억들이다. _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죽어가는 자의 고독>,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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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6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6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4-16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도하는 마음 미안한 마음 ㅠ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ㅠㅠ 기억하기 잊지 않기 깨어있기. 기억하겠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2-04-16 08:52   좋아요 2 | URL
세월호는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던 배가 눈앞에서 침몰했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가 있더 여겨집니다. 큰 재난 상황에서 사건 당시 사실보도도 원인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제대로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현대사의 모든 문제가 응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로마 제국 쇠퇴의 첫 번째 징후이자 원인으로 꼽히는 오만방자한 근위병의 수도 앞서 언급한 1만 5000명을 넘지 않았다. 근위대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창설되었는데, 이 영리한 황제는 자신이 찬탈한 통치권을 그럴듯하게 채색해 주는 것은 법률이지만, 그것을 유지해 주는 것은 군사력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고 원로원을 위협하고 반란을 방지하거나 초기에 진압할 목적으로 강력한 근위대를 주도면밀하게 형성해 나갔다. _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1> , p118


 약 50년의 기간 동안 25명의 황제가 옹립된 군인 황제 시대(軍人皇帝時代, Military Anarchy, CE 235~284). <로마제국 쇠망사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 1794)은 로마제국의 쇠퇴 원인의 처음을 근위대에서 찾는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황제의 권위를 보호하는 근위대. 황제는 근위대의 보호 아래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근위대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하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으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황제-근위대'의 밀월관계는 끝나게 되었고, 3세기의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Marcus Aurelius Severus Alexander Augustus, 207~235)에 이르러서는 근위대 뿐 아니라 지방군단마저 권력에 도취되기에 이른다. 군단의 추대없이는 황제가 될 수 없는 상황. 이는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명분없는 황제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군대에게 전적으로 의지했을 때 어떠한 혼란이 오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전제 군주에게 봉사하는 막강한 근위대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만, 종종 왕좌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황제들은 이런 방식으로 근위대를 궁정과 원로원까지 진출시킴으로써 그들이 황제의 힘과 시민 정부의 허약성을 깨닫게 만들었다. 근위대는 황제의 약점과 악행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경멸하게 됨으로써, 명확한 실체가 없이 가상적으로 형성되는 권력에 대해 적당한 거리감과 신비감이 있을 때만 유지되는 존경심과 경외심을 잃었다. _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1> , p119


 세베루스 황제는 감사의 뜻에서, 혹은 잘못된 정책 탓에, 혹은 필요에 의해서 군대의 규율을 느슨하게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의 허영심은 금반지를 끼는 영예를 받게 되자 더 높아졌고, 할 일 없는 병영에서 처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용되자 더욱 안일한 생활로 빠져들었다... 그들은 곧 힘든 군대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응당 해야 할 복종도 견딜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국가에 압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변질되었다. _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1> , p141


 윤석열 당선인이 자신의 측근 한동훈 검사장을 초대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비판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로마 제국의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와 그 배경을 떠올리게 된다. '로마법'이 유명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지배는 군사력으로 해야 했던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 BCE 63~ CE 14)도 할 수 없었던 '법 기술자'에 의존하는 권력의 시대. 검찰 권력이 태동된 6공화국에서 검찰은 돌격대장이었다면, 이제 그 돌격대장이 정권 그 자체가 되었다는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율리아누스)가 두려워할 이유는 충분했다. 세계의 황제 자리에 앉았지만 그에게는 친구는 고사하고 아첨꾼도 한 명 없었다. 근위대조차도 자신들이 손수 추대한 황제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시민들은 모두 그의 즉위를 재앙이자 로마라는 이름에 먹칠을 한 사건으로 생각했다.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아 몸을 사려야 했던 귀족들은 속마음을 숨기고 황제의 꾸며낸 정중함에 만족과 의무가 혼합된 거짓 미소로 응답했다. _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1> , p122


 노태우 정권 시절은 검찰 출신들의 전성기였다. 5공 시절부터 정치검사와 정치군인들이 서로 어울리는 것을 '육법당'이라고 비꼬았는데, 6월항쟁 이후 군 출신들이 누리던 권력을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안기부장 서동권, 청와대 비서실장 정해창 등 경북고를 나온 검찰 출신들이 차지했다. 검찰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할 1991년의 유서대필 사건은 바로 이런 구도에서 발생했다. 과거에는 정권 핵심이나 안기부가 기획한 사건을 검찰이 법률적으로 뒤치다꺼리를 해주었다면 이제는 검찰이 전면에 나서서 정권의 위기를 돌파했다. _ 한홍구, <사법부> , p412/454


 

관련기사 : [사설]법무에 논란 많은 한동훈 지명… ‘檢공화국’ 비판 왜 자초하나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0413/112869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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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4-15 1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깊이 공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4-15 12:11   좋아요 2 | URL
transient-guest님, 공감에 감사합니다...

초란공 2022-04-15 1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돌격대장이 권력 그 자체‘란 말씀이 앞으로의 5년을 특징짓는 말인듯 싶습니다. 안철수측은 (이미 예견되는 일이었지만) 본인이 팽당할 것이라는 걸 본인만 몰랐을 것 같구요.

겨울호랑이 2022-04-15 12:40   좋아요 3 | URL
네... 제 생각이 틀리길 바라봅니다만... 오늘 오전에 안철수와 당선인 긴급 회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뭔가 단단히 잡힌 듯 합니다...

레삭매냐 2022-04-15 13: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해도 항상 상상초월
이라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
네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죠.

자신들이 캠코더라는 말로
비판하던 시절은 깡그리 잊어
버렸나 봅니다.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그냥 그런가 보다 싶네
요.

겨울호랑이 2022-04-15 13:19   좋아요 3 | URL
정말 취임도 하기 전인데, 벌써 임기 중후반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하는 일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런 일이 계속 되다보면 둔감해지는 것이 더 걱정이 됩니다.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고 하지만, 이런 점에 있어서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