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쇠퇴의 첫 번째 징후이자 원인으로 꼽히는 오만방자한 근위병의 수도 앞서 언급한 1만 5000명을 넘지 않았다. 근위대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창설되었는데, 이 영리한 황제는 자신이 찬탈한 통치권을 그럴듯하게 채색해 주는 것은 법률이지만, 그것을 유지해 주는 것은 군사력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고 원로원을 위협하고 반란을 방지하거나 초기에 진압할 목적으로 강력한 근위대를 주도면밀하게 형성해 나갔다. _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1> , p118


 약 50년의 기간 동안 25명의 황제가 옹립된 군인 황제 시대(軍人皇帝時代, Military Anarchy, CE 235~284). <로마제국 쇠망사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 1794)은 로마제국의 쇠퇴 원인의 처음을 근위대에서 찾는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황제의 권위를 보호하는 근위대. 황제는 근위대의 보호 아래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근위대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하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으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황제-근위대'의 밀월관계는 끝나게 되었고, 3세기의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Marcus Aurelius Severus Alexander Augustus, 207~235)에 이르러서는 근위대 뿐 아니라 지방군단마저 권력에 도취되기에 이른다. 군단의 추대없이는 황제가 될 수 없는 상황. 이는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명분없는 황제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군대에게 전적으로 의지했을 때 어떠한 혼란이 오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전제 군주에게 봉사하는 막강한 근위대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만, 종종 왕좌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황제들은 이런 방식으로 근위대를 궁정과 원로원까지 진출시킴으로써 그들이 황제의 힘과 시민 정부의 허약성을 깨닫게 만들었다. 근위대는 황제의 약점과 악행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경멸하게 됨으로써, 명확한 실체가 없이 가상적으로 형성되는 권력에 대해 적당한 거리감과 신비감이 있을 때만 유지되는 존경심과 경외심을 잃었다. _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1> , p119


 세베루스 황제는 감사의 뜻에서, 혹은 잘못된 정책 탓에, 혹은 필요에 의해서 군대의 규율을 느슨하게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의 허영심은 금반지를 끼는 영예를 받게 되자 더 높아졌고, 할 일 없는 병영에서 처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용되자 더욱 안일한 생활로 빠져들었다... 그들은 곧 힘든 군대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응당 해야 할 복종도 견딜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국가에 압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변질되었다. _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1> , p141


 윤석열 당선인이 자신의 측근 한동훈 검사장을 초대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비판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로마 제국의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와 그 배경을 떠올리게 된다. '로마법'이 유명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지배는 군사력으로 해야 했던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 BCE 63~ CE 14)도 할 수 없었던 '법 기술자'에 의존하는 권력의 시대. 검찰 권력이 태동된 6공화국에서 검찰은 돌격대장이었다면, 이제 그 돌격대장이 정권 그 자체가 되었다는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율리아누스)가 두려워할 이유는 충분했다. 세계의 황제 자리에 앉았지만 그에게는 친구는 고사하고 아첨꾼도 한 명 없었다. 근위대조차도 자신들이 손수 추대한 황제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시민들은 모두 그의 즉위를 재앙이자 로마라는 이름에 먹칠을 한 사건으로 생각했다.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아 몸을 사려야 했던 귀족들은 속마음을 숨기고 황제의 꾸며낸 정중함에 만족과 의무가 혼합된 거짓 미소로 응답했다. _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1> , p122


 노태우 정권 시절은 검찰 출신들의 전성기였다. 5공 시절부터 정치검사와 정치군인들이 서로 어울리는 것을 '육법당'이라고 비꼬았는데, 6월항쟁 이후 군 출신들이 누리던 권력을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안기부장 서동권, 청와대 비서실장 정해창 등 경북고를 나온 검찰 출신들이 차지했다. 검찰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할 1991년의 유서대필 사건은 바로 이런 구도에서 발생했다. 과거에는 정권 핵심이나 안기부가 기획한 사건을 검찰이 법률적으로 뒤치다꺼리를 해주었다면 이제는 검찰이 전면에 나서서 정권의 위기를 돌파했다. _ 한홍구, <사법부> , p412/454


 

관련기사 : [사설]법무에 논란 많은 한동훈 지명… ‘檢공화국’ 비판 왜 자초하나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0413/112869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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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4-15 1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깊이 공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4-15 12:11   좋아요 2 | URL
transient-guest님, 공감에 감사합니다...

초란공 2022-04-15 1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돌격대장이 권력 그 자체‘란 말씀이 앞으로의 5년을 특징짓는 말인듯 싶습니다. 안철수측은 (이미 예견되는 일이었지만) 본인이 팽당할 것이라는 걸 본인만 몰랐을 것 같구요.

겨울호랑이 2022-04-15 12:40   좋아요 3 | URL
네... 제 생각이 틀리길 바라봅니다만... 오늘 오전에 안철수와 당선인 긴급 회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뭔가 단단히 잡힌 듯 합니다...

레삭매냐 2022-04-15 13: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해도 항상 상상초월
이라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
네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죠.

자신들이 캠코더라는 말로
비판하던 시절은 깡그리 잊어
버렸나 봅니다.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그냥 그런가 보다 싶네
요.

겨울호랑이 2022-04-15 13:19   좋아요 3 | URL
정말 취임도 하기 전인데, 벌써 임기 중후반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하는 일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런 일이 계속 되다보면 둔감해지는 것이 더 걱정이 됩니다.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고 하지만, 이런 점에 있어서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