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바이블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지음, 박정훈 옮김, 정태인 감수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협동조합(KPIA)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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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층 계급과 노동계급, 한마디로 민중의 자유를 향한 열망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감정은 자유라고 불리는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런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상황에서도 이들의 열망은 안타깝게도 실현될 수 없다. 지식에 불가결의 정보와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민중, 자기 권리를 인식하고 있는 민중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유를 행사할 줄 모른 채 언제나 미성년자처럼 살아간다면 자유를 보유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따라서 민중은 늘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맹과 무지의 길을 따라가면 오직 노예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우리가 아는 형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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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3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9-23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민중은 늘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가장 아깝지 않은 투자가 교육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9-23 13:43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동시에 아무리 해도 부족한, 끝없는 투자가 교육투자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농협 계통조직, 집권여당, 정부가 농정을 둘러싸고 맺은 삼위일체적 결탁구조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장기간에 걸쳐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저번에 농가조합원을 독점적으로 조직한 계통농협은 국정선거 등에서 자민당을 지지함으로써 안정적인 정권재생산에 기여했다. 집권당은 그 대가로 쌀값을 위시한 주요 농산물의 가격인상이나 각종 농업 보조금 배분 등을 통해 계통농협을 경유하여 농업/농촌부문으로 물질적 이익을 유도했다. 농정 당국도 여기에 공조하여 농업 관련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각종 인허가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영향력을 확대했다.(p12)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에서 저자 이향철은 '농헙 계통 조직 - 정부(농림수산성) - 자민당'의 철의 트라이앵글 구조를 통해 서로에게 이익을 주었는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일본 농촌사회와 정치권의 결탁은 인클로우저(Enclosure)를 통한 농업의 피폐화를 통한 도시화/산업화를 이룬 유럽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기져왔고, 일본 농촌은 급속한 붕괴를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 농촌사회가 보여준 양상이 유럽과 달랐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마을에서 인클로우저는 가능한 모든 것을 이용해서 겨우 먹고 살던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를 파괴하였다... 인클로우저는 재산소유자들과 법률가들의 의회가 제정한 재산에 관한 공정한 규칙과 법에 따라 행해진 계급적 강탈행위에 다름아닌 것이었다.(p301)... 실로, 인클로우저는 농업적 생산수단에 대한 인간의 관습적인 관례들을 파괴한 수백년에 걸친 긴 과정의 정점이었다. 그것은 그 앞 시대를 보거나 혹은 뒤의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잉글랜드 농민사회에 있는 전통적인 요소들의 파괴를 뜻하기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결과를 초래한 것이었다.(p303)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上> 中

 

17세기 말에서 시작되어 18세기까지 진행된 토지 통합은 중세 말의 통합과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도 농촌 인구의 감소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원인은 공통적이었다해도 사회적 양상은 매우 달랐다. 중세의 에피소드는 토지로의 황급한 후퇴를 동반했다. 근대의 에피소드는 토지로의 황급한 후퇴를 동반했다. 근대의 에피소드는 도시 귀족들의 행복한 상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들의 정복은 확고한 것이었다.(p397) <랑그도크의 농민들 Les Paysans de Languedoc 2> 中


  그것은 일본 농촌사회가 정치세력과 협상을 할만큼 협상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 전후 지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농촌조직은 세계 공황 직후에는 보다 조직화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후에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농회를 매개로 지주의 지역적 연합체인 '지주회'를 만들고, 그 지도하에 전통사회의 주민통제조적인 오인조(五人組)의 계보를 잇는 농가소조합(農家小組合)을 마을마다 조직하여 연대책임 아래 품종개량, 시비(施肥)/재배관리, 포장 개선 등을 상호 감시하에 추진하게 했다..(p36)... 세계공황이 일본농촌을 휩쓸고 지나간 뒤 농촌사회를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산업조합-농가소조합은 당시 '파시즘'으로 불렸던 농촌사회경제의 통제/재편을 위한 말단기관으로 자리매김되었다.(p87)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1947년 농업협동조합법의 제정으로 새로이 출범한 일본농업협동조합은 조직과 사업에서 세계 협동조합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00%에 가까운 농가조직률, 조합원의 생산활동 및 경제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에 관련된 사업의 종합적인 경영, 시정촌(市町村) - 현 - 전국 단계로 쌓아올린 정연한 피라미드형 계통조직, 그리고 체제 내 압력단체로서의 정치력 등과 같은 특징이 그러하다.(p88)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일찍이 카를 카우츠키(Karl Kautsky, 1854 ~ 1938)는 <농촌문제 Die Agrarfrage>에서 농촌에서 협동조합이 성장하기 어려움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협동조합(농협 農協)은 아래에서부터가 아닌 위로부터 만들어졌고, 결과로 정치협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협상력의 차이가 결과적으로 일본 농촌 사회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주는 힘의 원천이 된다.


 농민보다 협동조합적 조직의 전제조건이 약하게 발달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농민의 노동 및 생활 조건이 그를 고립시키고 좁은 지평에 한정하며, 협동조합적 자치가 요구하는 여가를 앗아간다.  무지와 아울러 정치적 부자유가 농민 복지의 사악한 침해 요인으로 나타난다. 농민이 협동조합을 결속하기 위해 움직이기에는, 가부장 체제의 전통이 아직 불식되지 않고 '권좌와 제단'의 버팀목이 아직 건재한 곳만큼 어려운 곳은 없다. <농촌문제> 中


 그리고, 이렇게 조직화된 조직은 미군정기와 연합국 지배가 끝날 때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같은 시기 본격적으로 진행된 일본의 공업화는 일본 농업의 생산성 증대에 기여했다. 농업에 필요한 비료와 농약을 공급받았던 농촌은 급속한 붕괴를 피하는 대신 도시지역에 주식인 쌀을 반대급부로 제공하는데, 이렇게 벼(쌀)농사로의 특화된 농촌의 모습 역시 유럽의 농촌 발전과는 사뭇 달랐다.


 1960년대 일본농업은 중화학공업화에 힘입어 화학비료와 농약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농업기계를 도입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등 명실 공히 '근대화'의 단계에 들어섰다.... 이 시기에 고도성장에 의한 생활수준 개선으로 쌀 소비량이 증가했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다른 농산물 생산에 비해 쌀 생산이 유리했던 탓도 있어 전국적으로 벼농사로의 특화와 집약화가 이루어졌다.(p242)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운송이 저렴해지고 무역정책적 장애가 폐지되면서 이미 16세기에서도 관찰될 수 있었던 유럽 내부의 지역적 분화가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농업적 분업으로 확장되었다... 유럽 대륙의 북서쪽 귀퉁이는 이제 '세계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이 '도시권역'의 주위에 집약적 농업지(가공 및 원예농업지)와 인전한 동부 유럽의 농업 권역이, 끝으로 더욱 조방적으로 경영되는 해외 농업지대의 띠가 둘러쳐지게 되었다. 마지막 두 지대 사이에 유럽의 주변적 농업지역이 놓여있었다... 집약적 농업지대는 공업중심지에 축산물과 원예작물을 공급했고, 조방적 농업지대는 공업지역에 대해서 곡물, 농업에서 산출되는 공업원료, 그리고 스텝농업의 생산물을 공급하게 되었다.(p564) <농업위기와 농업경기 Eine Geschichte der Land und Emahrungswirtschaft Mitteleuropas seit dem hohen Mittelalter> 中


 발달된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 농촌 지역의 업종분화가 이루어진 유럽과는 달리 일본 농촌은 벼농사로의 집중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작물의 집중화는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도시의 수요를 충족함과 동시에 정치권의 제도적 뒷받침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당시 집권세력인 일본 자민당(自民黨)은 이러한 필요와 자신의 요구를 잘 알고 있었다. 


 1958년 농민조합은 전국조직인 전일본농민조합연합회(全日農)을 결성하고 농협 계통조직이 주도하는 농정운동으로부터 이탈했다. 이를 전후해 자민당은 미가심의회 자문안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추곡수매가 결정에서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나아가 농협 계통조직을 통해 각종 농업보조금을 배분함으로써 농업/농촌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입지를 굳혔다.(p270)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농업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전통적인 보수 지지기반을 급격히 붕괴시킬 것이라는 보수층의 일반적인 우려와는 달리, 농가 수가 그다지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들어 농협 계통조직은 "농가조합원의 강력한 집표력"을 바탕으로 집권보수당에 추곡수매가로 대표되는 농업보호/농협육성정책을 요구했다. 자민당도 여기에 호응하여 농산물 가격 지지를 통해 농가소득을 보장하고 각종 공공정책을 통해 농촌지역 선거구에 물질적 이익을 유도했다. 농협 계통조직과 집권자민당 사이에 이른바 이익교환관계가 형성된 것이다.(p283)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1960년대와 70년대의 농촌과 자민당의 밀월관계는 추곡수매권을 통한 농촌이익 보장과 농촌 유권자의 지지를 맞교환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었다. 일본이 내각제국가임과 자민당이 55년 독재정당임을 고려한다면, 저자가 말한 철의 트라이앵글의 주체는 농촌과 자민당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이들의 이러한 밀월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1980년대에 일본농정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단순히 통상마찰과 농산물 무역자유화 요구와 같은 외압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고도성장 파탄에 의한 일본 자본주의의 성격 변화, 도농/농공 간 인구대이동에 따른 농촌의 정치적 위상 저하, 농업이익의 분열 등 농업보호의 존립기반이 붕괴되었다는 사회구조적 문제도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자민당은 각종 이익유도정책의 대상을 기존의 농업/농촌 부문에서 공업/도시 부문으로 돌려 도시지역의 전문직/관리직/판매직 등 이른바 '신중간 대중계층'을 적극적으로 파고들면서 포괄정당(catch-all pay)으로 면모를 일신해갔다.(p308)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농협 계통조직과 집권보수당 모두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유력한 수단을 동시에 상실했다. 그에 따라 자민당은 추곡수매가 인상이나 각종 공공정책을 통해 농업/농촌 부문에 물질적 이익을 유도하기 어렵게 되었다. 농협 계통기관 역시 농가구성원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여 집권보수당을 지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익유도 내지 이익교환정치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하나로 결집시켜주던 추곡수매가 인상운동이 쌀 생산 과잉 및 재고 누적으로 기능부전에 빠졌기 때문이었다.(p324)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대외적으로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체제 아래에서 농업시장 개방에 관한 압력을 거세게 받고 있었으며, 집권 자민당은 과거와 같이 농촌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여기에, 소선거구제로의 제도 개편은 농촌 유권자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면서, 결국 농촌 유권자들과 자민당의 유대는 끝나게 된다. 이러한 정치연결의 파탄은 1993년 처음으로 자민당 정권이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렇지만, 몇 차례 다른 정당에게 정권을 넘겨줬지만, 대부분의 기간을 거대지배정당의 자리를 놓지 않은 자민당은 이미 전국정당으로 변신을 한 상태다. 최근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옥수수를 대량으로 수입해서 일본 농촌의 부담을 늘리는 일본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자민당의 농촌 우위는 옛날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들의 정치의식을 고려한다면......



 농가조합원의 이해 대립에 따른 자민당 농림의원의 이해 대립 및 분열, 선거구제 개편에 따른 자민당의 농협 의존도 감소, 그리고 정치원의 정책 주도에 따른 관료기구(농림수산성)의 발언권 약화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기존의 농업정치구조를 와해시키는 데 일조했다... 농헙 계통 조직 - 농림수산성 - 자민당의 농정 트라이앵글 구조가 급격한 사회변동에도 불구하고 장기에 걸쳐 유지되고 작동되어 온 것은 중선거구제라는 일본 특유의 선거구제에 힘입은 바가 컸다.. 중선거구제 하에서는 어떤 정당이든 집권당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선 각 선거구에 평균 2명 이상의 후보자를 옹립하여 의원정수의 과반수 당선자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p389)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은 이처럼 농촌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일본 농촌과 일본 보수정당인 자민당의 긴밀한 관계와 결별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안에서 일본인의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고 카이젠(改善)을 추구하는 일본사회의 특징이 그것이다. 농촌 사회의 급격한 붕괴 대신 지속 유지를 택한 일본의 모습은 전면적인 개편 대신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했던 그들의 산업 역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우리 경제발전사는 보다 극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BPR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본과의 경제전쟁 안에서 은 '카이젠 VS BPR'의 경영이론간 대리전 성격도 발견하게 된다.

 

 일본에서 가이젠은 문화의 일부로 정착된 아주 오래된 개념이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이 용어는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 또는 향상을 의미한다. 경영의 관점에서 가이젠이란 일종의 철학에 가깝다. 가이젠 사고방식에 따르면, 기업은 지속적인 개선 과정을 통해 효율성을 증대하고자 노력해야 한다.(p304) <경영의 책> 中


 가이젠과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 BPR)'이 있다. BPR은 자주 있지는 않지만 상당한 거액이 소요되는 투자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생산성 제고, 단가 감소, 제품 품질 개선 등의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 실시된다. BPR을 택한 기업의 목표는 수시로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 5년 정도마다 전사적 생산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여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다.(p308) <경영의 책> 中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에서 짚고 있는 문제는 우리문제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우리 역시 일본의 농협과 같은 조직(이름마저 같은)을 가지고 있다. 일본 농협의 문제. 이것은 우리나라 농업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일본 농촌 문제는 남의 문제로 치부할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농업이 망하면 농협이 흥한다."는 냉소적 표현이 상징하듯이, 농촌협동조합은 1980년대까지 농업단체직원 연금제도 실현, 쌀값 인상 및 식량관리제도 유지, 비료수습 안정 및 식물방역법, 세금감면, 농업보조금 확충, 농산물시장개방저지 등 오로지 계통조직과 사업을 방어하는 과제에만 집중한 데서도 그대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농협 계통조직의 존재형태는 농가경제가 영세 규모의 소상품 생산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가운데 그대로 독과점기업이 지배하는 고도로 발달된 시장기구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의 반영이었다.(p253)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다른 한편으로 우리 보수 정치의 역사는 일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온듯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며 이상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PS. 근현대시기에 일본은 우리보다 산업화면에서 분명 앞서왔고, 현재도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강국(强國)임은 분명하다. 비록, 일본이 앞으로도 강국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서간 일본의 모습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따라붙는다. 우리에게 일본의 존재는 전위와 전초에 한정되어야 한다. 앞에 경계부대가 후속 주력부대에게 교훈을 주듯, 일본은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이어야 하지, 우리의 형님국가가 될 수는 없다. 우리의 주력은 우리 자신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군(軍)의 유일한 목적은 자기 보존이며 결국 군의 안전일 것이다. 따라서 군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하며 특별한 어려움 없이 하나의 통일체로 통합하여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전위와 전초는 전술과 전략의 실이 섞여 짜여진 방책의 범주에 속한다. 한편으로 전위와 전초는 전투를 구체화하고 전술적 계획의 실현을 보장하며 주력부대로부터 다소 먼 거리에 배치되어 있다.(p240)... 이 추진부대의 임무는 적을 관측하고 적 접근을 지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추진부대의 전방에서 적이 전체 전투력을 조기에 전개하도록 강요해야 하고 동시에 공격 계획을 보다 분명하게 노출시키도록 강요해야 할 것이다.(p241) <전쟁론 Vom Kriege>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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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학습법
신의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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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공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발육 부진에 학습 장애, 심지어 미숙아였던 그들은 지금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로 각각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들이 어린 시절 소위 말하는 지진아‘ 에 속했던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삶 속에 너무나 뚜렷한 공통점이 보인다. 어릴 때는 평범하다 못해 심지어 모자란 아이였다는 점, 때문에 그 누구도 이들에게 기대를 갖지 않았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 갑자기 그 능력을 꽃피웠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아주 과학적인 해답이 있다. 이들은 이른바 ‘Late Bloomer(늦게 꽃피는 아이)‘, 즉 뒤늦게서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하나의 인류군에 속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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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15: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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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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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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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2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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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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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2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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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9-22 0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력을 안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기 쉬운 변명이 자신을 ‘슬로우 스타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진짜 슬로우 스타터들이 게으르다고 오해를 받는 것 같아요. ^^;;

겨울호랑이 2019-09-21 21:3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고 요행만 기다리며, 자기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붙여주는 말이 ‘슬로우 스타터‘는 아닐 듯 합니다. 자신은 노력을 하는데, 세상은 알아주지 않거나 주위의 인정을 못받아 절망하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간 이들이 성공했을 때 비로소 불려질 수 있는 이름일 것입니다^^:)
 
조공시스템과 근대 아시아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해역인문학 번역총서 1
하마시타 다케시 지음, 서광덕.권기수 옮김 / 소명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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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관계를 중국과 주변국의 정치질서라 한다면, 조공관계는 경제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명•청시대 아시아의 ‘은블록‘경제권에서 속국이지만, 자주권을 가졌던 조선이 청일전쟁 후 독립국이 되면서 자주권을 잃는 아이러니를 확인하게 된다...

ps. 조선시대 화폐경제의 발전이 더뎠던 이유 중 하나는 은을 중심으로 한 중국경제권에 편입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조선 지배층의 한 방편은 아니었을까...

조공관계는 명조•청조기의 중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경제적 역량을 배경으로 주변 여러 나라에 대하여 경제적 영향을 발휘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p78)... 역사적으로 보아 조공국 측도 중화이념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화의 정통성에 관해서는 계승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베트남•조선•일본이 자국 왕조에 대한 중국의 간섭, 이민족왕조에 대한 자기 정통성 주장, 소중화주장 등과 같은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런 표현이었다. 중화를 공유하면서 내셔널리즘을 형성한다는 관계는 간단하게 중화의 대체•탈취라는 논리로 이행되고, 조공체제 내부의 불안정한 요인을 촉진했다. 그리고 일본은 서양화 = 근대화를 내세워 ‘신중화‘임을 기도하려고 하며, 이후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커다란 변동요인을 초래했다.(p61)

조공관계를 요약해서 정리하면, 중국의 대외인식은 역사적으로는 화이인식으로 존재했다. 이것은 ‘화‘와 ‘이‘를 구별함으로써 화의 권위를 대외적으로도 높이려고 한 것이다... 중국의 통치는 한편으로는 중앙에서의 통치의 친소 단계로서 외연적으로 동심원적 구조를 가짐과 동시에, 각각의 통치관계는 지역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p92)

조공무역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우선 공물에 대한 답례의 관계가 실질적으로는 대가의 지불에 있었다는 점이다... 대가의 기준은 중국 국내시장의 가격에 맞추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대가의 지불수단으로는 동전이나 지폐도 사용되었다. 이 거래는 조공관계 전체를 작동시키는 기초가 중국의 가격체계에 의해 조정되었음을 의미하고, 조공무역권이 통일적 은결제권의 형성으로 연결되었음을 의미했다.(p152)

동남아 각지에서는 일본에 금을 수출해서 은을 구입하고, 중국에는 은을 수출해서 금을 구입하여 이중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조공권은 교역권임과 동시에 통화권이기도 했다.(p154)

조공하는 나라이지만 청국의 입장에서는 조선에는 자주가 존재한다. 즉 속국의 테두리 안에서의 자주가 인정된다고 한다.(p176)

지금까지 조공무역으로 이익을 얻어 온 조선 측은 청조 측의 재정부담 삭감정책에 의해 종래와 같은 이익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자 중국에 대해서 몇 가지 비판을 제출했다.(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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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 감각을 되찾고, 시간과 공간에 대해 좀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도구들을 이용하다보면 주변 세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좀 더 생생하게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기는 것이다.(p42)... 두 발로 걸을 때, 우리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느낀다.(p45) <걷다> 中


 얼마전 알라딘에서 '독보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루 1권의 책을 읽고, 하루 5,000 걸음을 걸으면 하루 미션이 수행되는 이벤트를 통해 '걷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걷기'와 관련된 오래된 두 권의 책을 꺼내 읽어본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 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p9) <걷기예찬> 中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 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p13) <걷다> 中


<걷기예찬 Eloge de la Marche>와 <걷다 Marcher>의 저자는 '걷기'의 의미를 관계에서 찾는다. 나와 나 밖의 세계, 가진 것과 현재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이들과의 관계를 걷기를 통해 우리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걷기'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루 5,000 걸음이 많게 여겨지지만, 출/퇴근, 식사시간, 청소 등 일상 업무를 보다보면 생각보다 5,000 걸음이 많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별도의 운동시간을 내려한다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걸음량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움직임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걸음을 재면서 느낀다. 문제는 5,000걸음을 측정하기 위해서 나는 핸드폰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서비스가 구글 피트니스 서비스와 연동되기 때문에, 전자파가 나오는 핸드폰을 계속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솔직히 많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벅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p10) <1984> 中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 1950)의 <1984>에서 묘사된 빅 브라더(Big Brother)와 같이 내 자신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핸드폰의 위치 정보 서비스에서 정보 제공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실이 내게는 크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구글 위치 정보 제공에 동의해도 정보는 수집된다는 다음의 기사 때문이기도 하다.


 구글 위치정보 기사 : http://www.tech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9


[사진] 구글 위치 정보 서비스(출처 : 테크데일리)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더욱이 그가 이 금속판의 시계(視界) 안에 들어 있는 한, 그의 일거일동은 다 보이고 들린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p11) <1984> 中


 개인적으로 핸드폰을 통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다. 수집된 개인 정보가 내 자신을 편리하게 해준다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모두는 5G로 연결되어 AI(인공지능)에게 감시당하며, 배달앱을 통해 모든 것을 배달하면서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갈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현실화된 이러한 세상이라면, 벤담의 판옵티콘은 오히려 낭만적인 근대감옥이 될 지도 모르겠다.

 

폐쇄되고, 세분되고, 모든 면에서 감시받는 이 공간에서 개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꼼짝 못하고,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통제되며, 모든 사건들은 기록되고, 끊임없는 기록 작업은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시키고, 권력은 끊임없는 위계질서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행사되고, 개인은 줄곧 기록되고 검사되면서, 생존자, 병자, 사망자로 구별된다.(p306)... 벤담(Bentham)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이러한 조합의 건축적 형태이다.(p309)... 수감자에게는 권력의 자동적인 기능을 보장해 주는 가시성의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상태가 만들어진다. 감시작용에 중단이 있더라도 그 효과는 계속되도록 하고, 권력의 완벽한 상태는 권력행사의 현실성이 점차 약화되도록하고, 건축의 장치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권력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기계장치가 되도록 한다.(p311) <감시와 처벌> 中


 얼마 전 모처럼 아이와 함께 가족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간이 남아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주변상가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 상가에 사람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극장 주변이면 보통 중심상권으로 봐야하는데, 그곳에서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영화는 네플릭스로, 식사는 배달의 민족으로, 옷은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행태가 우리를 세상과 격리시키고, 경기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은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걷기'의 의미는 세상과 연결이고, 소통이라는 저자들의 통찰은 적극 공감하게 된다.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세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 다시 말해서 그 세계를 명명하는 것이다. 도보 여행자가 왜 그토록 이름을 알아내고자 하는지 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p98) <걷기예찬> 中 


 알라딘의 '독보적(獨步的)' 서비스를 통해 걷기의 의미와 현대 과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최근 놀랍게 발달하는 과학기술 속에서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이 슬퍼지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 1954 ~ )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ow The Mind Works>를 통해 위로받는다. 

 

 이 사실들을 종합하면, 영혼은 우리가 잠을 잘 때 돌아다니고, 그림자 속에 몰래 존재하고, 연못의 수면을 통해 우리를 훔쳐보고, 우리가 죽을 때 육체를 떠난다는 이론이 나온다. 현대과학은 그림자와 환영을 설명하는 더 훌륭한 이론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꿈을 꾸고, 상상하고, 신체를 조종하는 감각력을 가진 자아를 얼마나 잘 설명할지는 미지수다.(p863)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中


 실재란 어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네. 그것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곧 사라져버릴 개인의 마음속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불멸하는 당의 마음속에 있지.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무엇이든 다 진실일세. 당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는 실재를 볼 수 없네.(p347) <1984> 中


  이제는 세상과 자신과의 연결, 그리고 자신의 발견을 생각해볼 시간이 된 듯하다. 여기에 현대과학까지 들어올 필요는 사실 없다고 여겨지지만,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이상 바람직한 활용을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른다. 첫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 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 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p34) <걷다> 中


PS. 스탬프 하나에 열심히 미션을 채워가는 자신을 보면 좋게 말해 동심(童心)이 살아 있는 것도 같지만, 어린 시절 '참 잘했어요'의 세뇌 효과가 강했다는 느낌도 함께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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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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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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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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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2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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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09-2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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