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감각을 되찾고, 시간과 공간에 대해 좀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도구들을 이용하다보면 주변 세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좀 더 생생하게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기는 것이다.(p42)... 두 발로 걸을 때, 우리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느낀다.(p45) <걷다> 中


 얼마전 알라딘에서 '독보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루 1권의 책을 읽고, 하루 5,000 걸음을 걸으면 하루 미션이 수행되는 이벤트를 통해 '걷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걷기'와 관련된 오래된 두 권의 책을 꺼내 읽어본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 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p9) <걷기예찬> 中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 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p13) <걷다> 中


<걷기예찬 Eloge de la Marche>와 <걷다 Marcher>의 저자는 '걷기'의 의미를 관계에서 찾는다. 나와 나 밖의 세계, 가진 것과 현재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이들과의 관계를 걷기를 통해 우리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걷기'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루 5,000 걸음이 많게 여겨지지만, 출/퇴근, 식사시간, 청소 등 일상 업무를 보다보면 생각보다 5,000 걸음이 많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별도의 운동시간을 내려한다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걸음량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움직임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걸음을 재면서 느낀다. 문제는 5,000걸음을 측정하기 위해서 나는 핸드폰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서비스가 구글 피트니스 서비스와 연동되기 때문에, 전자파가 나오는 핸드폰을 계속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솔직히 많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벅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p10) <1984> 中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 1950)의 <1984>에서 묘사된 빅 브라더(Big Brother)와 같이 내 자신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핸드폰의 위치 정보 서비스에서 정보 제공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실이 내게는 크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구글 위치 정보 제공에 동의해도 정보는 수집된다는 다음의 기사 때문이기도 하다.


 구글 위치정보 기사 : http://www.tech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9


[사진] 구글 위치 정보 서비스(출처 : 테크데일리)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더욱이 그가 이 금속판의 시계(視界) 안에 들어 있는 한, 그의 일거일동은 다 보이고 들린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p11) <1984> 中


 개인적으로 핸드폰을 통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다. 수집된 개인 정보가 내 자신을 편리하게 해준다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모두는 5G로 연결되어 AI(인공지능)에게 감시당하며, 배달앱을 통해 모든 것을 배달하면서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갈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현실화된 이러한 세상이라면, 벤담의 판옵티콘은 오히려 낭만적인 근대감옥이 될 지도 모르겠다.

 

폐쇄되고, 세분되고, 모든 면에서 감시받는 이 공간에서 개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꼼짝 못하고,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통제되며, 모든 사건들은 기록되고, 끊임없는 기록 작업은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시키고, 권력은 끊임없는 위계질서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행사되고, 개인은 줄곧 기록되고 검사되면서, 생존자, 병자, 사망자로 구별된다.(p306)... 벤담(Bentham)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이러한 조합의 건축적 형태이다.(p309)... 수감자에게는 권력의 자동적인 기능을 보장해 주는 가시성의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상태가 만들어진다. 감시작용에 중단이 있더라도 그 효과는 계속되도록 하고, 권력의 완벽한 상태는 권력행사의 현실성이 점차 약화되도록하고, 건축의 장치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권력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기계장치가 되도록 한다.(p311) <감시와 처벌> 中


 얼마 전 모처럼 아이와 함께 가족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간이 남아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주변상가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 상가에 사람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극장 주변이면 보통 중심상권으로 봐야하는데, 그곳에서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영화는 네플릭스로, 식사는 배달의 민족으로, 옷은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행태가 우리를 세상과 격리시키고, 경기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은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걷기'의 의미는 세상과 연결이고, 소통이라는 저자들의 통찰은 적극 공감하게 된다.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세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 다시 말해서 그 세계를 명명하는 것이다. 도보 여행자가 왜 그토록 이름을 알아내고자 하는지 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p98) <걷기예찬> 中 


 알라딘의 '독보적(獨步的)' 서비스를 통해 걷기의 의미와 현대 과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최근 놀랍게 발달하는 과학기술 속에서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이 슬퍼지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 1954 ~ )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ow The Mind Works>를 통해 위로받는다. 

 

 이 사실들을 종합하면, 영혼은 우리가 잠을 잘 때 돌아다니고, 그림자 속에 몰래 존재하고, 연못의 수면을 통해 우리를 훔쳐보고, 우리가 죽을 때 육체를 떠난다는 이론이 나온다. 현대과학은 그림자와 환영을 설명하는 더 훌륭한 이론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꿈을 꾸고, 상상하고, 신체를 조종하는 감각력을 가진 자아를 얼마나 잘 설명할지는 미지수다.(p863)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中


 실재란 어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네. 그것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곧 사라져버릴 개인의 마음속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불멸하는 당의 마음속에 있지.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무엇이든 다 진실일세. 당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는 실재를 볼 수 없네.(p347) <1984> 中


  이제는 세상과 자신과의 연결, 그리고 자신의 발견을 생각해볼 시간이 된 듯하다. 여기에 현대과학까지 들어올 필요는 사실 없다고 여겨지지만,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이상 바람직한 활용을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른다. 첫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 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 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p34) <걷다> 中


PS. 스탬프 하나에 열심히 미션을 채워가는 자신을 보면 좋게 말해 동심(童心)이 살아 있는 것도 같지만, 어린 시절 '참 잘했어요'의 세뇌 효과가 강했다는 느낌도 함께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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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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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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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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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2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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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09-2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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