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서의 발견이 신학계에 일으킨 가장 커다란 파문은 뭐니뭐니 해도 Q복음서를 가설 아닌 실체로서 등장시킨 사건이다.... 마태, 누가 복음서 중에서 복음서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가자료를 제외한 부분 중에서, 마태와 누가에 공통된 부분을 그냥 자료(Quelle)라는 의미로 Q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 가설적 문헌을 치밀하게 연구해본 결과, 그것은 단지 어록(로기온 자료) 형식의 모음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즉 예수의 말씀(가라사대 파편)만으로 구성된 자료라는 것이다.(p349)... 도마복음서는 꿈에 그리던 어록복음서(saying gospel)이었던 것이다.(p350)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1> 中


 이 <숫타니파타>는 수많은 불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이다... 불교 경전은 원래 눈으로 읽는 문자로 쓰여지지 않고 부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이 그 내용을 함께 암송해오다가 후기에 문자로 정착된 것이다... 부처에게는 자기 자신이 어떤 종교의 창시자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 단지 눈 뜬 사람으로서 그 역할을 다했을 뿐이다.... <숫타니파타>를 보면 부처가 말한 그 가르침의 원형이 어떤 것인가를 자세히 알 수 있다.(p12) <숫타니파타 - 서문(법정)> 中 


[사진] 피할수 없는 죽음(출처 : http://aristeinhk.blogspot.com/2015/04/inevitable-death-sutta-nipata-574-581.html) 


 <숫타니파타>와 <도마복음>. 별로 관련없어 보이는 두 문헌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도 불교와 기독교 가르침의 원형(原形)을 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길(道)은 통해서일까. <숫타니파타>와 <도마복음>를 비교해서 읽다보면 다른 듯 같은, 같은 듯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도마복음한글역주>의 저자 도올 김용옥 교수는 그의 저서 여러 곳에서 <숫타니파타>를 통해 <도마복음>을 풀이하고 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숫타니파타>와 <도마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가르침의 원형을 거칠게나마 느껴보고자 한다.


[사진] 도마복음서( 출처 : https://www.alphawiki.org/w/%ED%86%A0%EB%A7%88%EC%8A%A4%20%EB%B3%B5%EC%9D%8C%EC%84%9C)

 

 <도마복음한글역주>의 저자는 복음서 속의 방랑하는 자의 모습 속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타>의 말씀을 떠올리고 있다. 모든 것에 미련을 갖지말고 나가라는 두 말씀 사이에서 우리는 '고독함'이라는 공통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버리고 떠나야 하는가? <숫타니파타>는 그 이유를 '집착'이라고 말한다.


제42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p104) <도마복음한글역주 3> 中

 

 52 추위와 더위, 굶주림, 갈증, 바람, 그리고 뜨거운 햇볕과 쇠파리와 뱀. 이러한 모든 것을 이겨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p30)... 16 우리들을 생존에 얽어매는 것은 집착이다. 그 집착을 조금도 갖지 않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p19) <숫타니파타> 中


 <숫타니파타>에서는 집착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정진한 것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도마복음>에서 방랑하는 자는 구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그치지말고, 나아갈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찾기 위해서 이처럼 나가야 하는가?


 61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함도 적고 괴로움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이구나.' 이와 같이 깨닫고, 지혜로운 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8 최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의 안일함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p33) <숫타니파타> 中 

 

 제2장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p133) <도마복음한글역주2> 中 


 <숫타니파타>에서는 '마음의 통일'이라는 경지를 얻기 위한 정진을, 그리고 <도마복음>에서는 '(아버지의)나라가 너희 안과 밖에 있음'을 발견할 것을 강조한다.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음'에서 '마음의 통일'의 의미를 찾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224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그 어떤 부라 할지라도, 천상의 뛰어난 보배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완전한 스승에게 견줄만한 것은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눈 뜬 사람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p86)... 225 마음의 통일을 얻은 스승은 번뇌와 욕망과 죽음이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 이치와 견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그 이치 속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p87) <숫타니파타> 中


 제3장 진실로,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 비로소 너희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너희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그리하면 너희 존재는 빈곤 그 자체이니라."(p157) <도마복음한글역주2> 中


 <숫타니파타>에서 '마음의 통일'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다음의 구절이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피아(彼我)의 구별이 없는 통일된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괴로움(苦)는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통일 상태에서 무상(無常), 무아(無我)임을 깨닫는다면, 일체개고(一切皆苦)에서 벗어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도마복음>에서의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음'도 이러한 의미는 아닐런지.

 

734 "모든 괴로움은 식별 작용으로 인해 일어난다. 식별 작용이 없어지면 괴로움은 생길 수 없다. 735 괴로움은 식별 작용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식별 작용을 고요히 가라앉힌 수행자는,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p255) <숫타니파타> 中


 그렇다면, 이러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숫타니파타>에서는 이를 윤회를 넘어선 자, '바라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하였고, <도마복음>에서는 이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순환적인 불교의 시간관과 직선적인 기독교의 시간관은 비록 다르지만, 끝까지 나아감을 통해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여겨진다.


 519 "사비야여, 모든 악을 물리치고 때묻지 않고, 마음을 잘 가라앉혀 스스로 안정시키며, 윤회를 넘어서 완전한 자가 되어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바라문'이라 합니다. 520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가 선과 악을 버리고 때묻지 않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고 생과 사를 초월한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사문'입니다.(p184) <숫타니파타> 中


 제70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만약 너희가 너희 내면에 있는 것을 끊임없이 산출해낸다면,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2 만약 너희가 그것을 너희 내면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너희가 너희 내면에 가지고 있지 못한 그 상태가 너희를 죽이리라."(p214) <도마복음한글역주 3> 中


 <숫타니파타>와 <도마복음> 속의 말씀을 이처럼 조합하다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별이 없는 상태에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중단없이 용맹정진하며, 미련을 가지지말고 혼자서 방랑하는 고독한 삶을 살아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분명 놓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비약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장 큰 종교의 가르침 속에서 공통 분모(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있다는 사실은, 종교간 대립이 심해지고 있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숫타니파타>와 <도마복음> 속에서 옛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확인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도마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비어있는 동이를 이고 간 여인'은 자신의 동이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제97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의 나라는 밀가루를 가득 채운 동이를 이고 가는 한 여인과도 같다. 2 그녀가 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이고 가는 동이의 손잡이가 깨져서, 밀가루가 새어나와 그녀가 가는 길가에 흩날려 뿌려졌다. 3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4 그 여인이 집에 당도했을 때, 그녀는 그 동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것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p302) <도마복음한글역주 3> 中


766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욕망을 이루면, 그는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한다. 767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욕망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그는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771 그래서 사람은 항상 바른 생각을 지키고 모든 욕망을 피해야 한다. 배에 스며든 물을 퍼내듯이, 욕망을 버리고 거센 강을 건너 피안에 도달한 사람이 되라.(p271) <숫타니파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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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9-16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천년 전의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 그리고 지금 읽어도 의미를 생각해야 할 내용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기보다 많이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들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일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9-16 21:28   좋아요 1 | URL
시간이 흘러 옛날과 많은 것이 바뀌어도 근원적인 것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서니데이님 남은 일요일 밤 잘 마무리 하세요!^^:)
 

저녁 무렵 아내 앞으로 3권의 아동 도서가 배달되었습니다. 연의 책인가 싶어 물어보니, 도서의 달을 맞아 유치원에서 읽을 책이라 합니다.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나의 자전거>, <이상한 손님>, <수영장 가는 날>은 어떤 책인지 아내와 함께 나눈 이야기를 이번 페이퍼에 정리해 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면 무엇을 가져가야할까? <나의 자전거>는  자신의 자전거를 가지고 세상여행을 떠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할 물건들이 이 자전거 여행에 함께 하게 됩니다. 잠깐 맛을 보자면...

 

 내 자전거에는 목장도 있어. 우유를 짜서 달콤하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만들 거야.

 

 <나의 자전거>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함께 그 언젠가 어른들도 한번은 상상해봤던 과거를 돌이킬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책은 7세 아이들과 함께 할 예정입니다.

 

 <이상한 손님>은 <구름빵>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의 작품입니다. <구름빵>은 2차원의 종이 인형을 3차원으로 표현해서 아이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기도 하지요. <이상한 손님> 역시 단순하게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점토인형으로 장면을 구성했기 때문에 마치 애니메이션북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시각적으로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아내와 저 모두 공통적으로 느꼈던 부분이지만, 이야기 구성의 치밀함은 뛰어난 시각 효과에 미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이랄까요. 다소 아쉬운 느낌이 들었던 이 책은 6세 아이들에게 돌아갈 예정이랍니다. 6세 아이들 중 남자 아이들이 다수 있는데, 도깨비, 달걀 귀신 등 신비아파트 시리즈를 좋아하는 아이들인만큼 나름 만족할 것이라 여겨지네요.

 

  <수영장 가는 날>은 수영을 싫어하는 어느 아이의 성장기입니다. 새롭게 수영을 시작하는 아이가 처음 시작하는 수영에 두려움을 느끼다가 점차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 편안하게 진행됩니다. 표지에는 얼굴을 찡그리며 수영장 밖에서 서성이는 아이가 있지만, 이야기가 끝나는 뒷날개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수영을 즐기는 모습으로 마무리 됩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 책은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부모들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름이 끝나가는 요즘이라 인기가 덜 할 듯 하지만, 이 책은 5세 아이들과 읽어주실 부모님과 함께 할 예정입니다.

 

 독서의 달을 맞아 <나의 자전거>를 통해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이상한 손님>을 통해서 환상과 신비로운 세상을, <수영장 가는 날>을 통해서 성장하는 기쁨을 유치원 아이들 모두가 느끼길 바라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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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7 07: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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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7 0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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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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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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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 중에 음양사상이 있다. 음양사상은 만물이 음과 양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때 음과 양은 각각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음은 그늘을 뜻하고 양은 햇빛을 뜻한다. 마치 빛과 그림자가 따로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음양사상은 이 세상 만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p49)... 동양에서는 사람이라는 개념 속에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 즉 환경과 맥락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사람 man이 땅, 하늘과의 관계를 전제하지 않은 독립된 개별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과 대조적이다(p50)... 서양에서는 모든 사물이 독립된 물체들의 결합이라고 믿기 때문에 쪼개고 또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본질적인 물체에 도달한다 믿었고, 이것을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여겼다.(p51) <동과 서> 中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에서는 동양(東洋) 사상과 서양(西洋) 사상을 위와 같이 대조하고 있다. 관계 중심의 동양 사상과 본질 중심의 서양 사상은 의학(醫學)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며 발전해왔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서양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os, BC 460 ~ BC 370)의 전집에서 내용을 발췌하여 엮은 <의학이야기>와 고대 중국의 의학서인 <황제내경 黃帝內經> 발췌본을 통해 두 문명의 의학에 담긴 사상(思想)을 비교, 대조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의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은 서로 다른 경로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에 있어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의학 이야기>와 <황제 내경> 속의 내용을 살펴보면, 초기 의학 발전 단계에서 병(病)의 원인에 대한 생각은 큰 차이가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은 건강한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인간의 몸은 운동을 하고 있는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이 운동은 밖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호흡과 체온, 체액의 작용 등에 의하여 알맞게 조립되어진 것이다. 다만 태어날 때 혹은 유아 때 어떤 결함을 가졌다면 이것은 다른 문제이다.(p18) <의학이야기> 中


 올바른 생각으로 의학에 몸담을 의욕이 있는 사람은 먼저 사계절이 어떤 방법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계절은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같은 계절일지라도 환절기에는 온도차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는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면 먼저 바람은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고 해는 어느 쪽에서 뜨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런 점을 깊이 살핀 후 물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본다.(p21) <의학이야기> 中

 

 각 계절에 해당하지 않는 바르지 않은 기운을 때맞춰 피하고, 생각을 고요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면 바른 기운이 이를 따르고 정(精)과 신(神)이 몸 안에 충만한데, 어떻게 병이 들어올 수 있겠는가(p17)... 사계절 음양의 기를 거역하면, 근본을 해치게 되어 생명을 유지하는 기운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계절의 음양이라는 것은 만물의 시작이고 끝이며, 삶과 죽음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거역하면 재해가 생기고 이를 따르면 질병이 발생하지 않습니다.(p22) <황제내경> 中


 이처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 병의 원인을 공통적으로 환경으로부터 찾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서양 의학의 경우에는 자연 환경의 영향을 보다 큰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의학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동서양 의학의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체형/체질이 땅의 성질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과 이로부터 정체(政體)까지 결정되었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설명은 자연(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요소였음을 짐작케 한다. 인간에게 일방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자연으로부터 절대적인 신(神), 엄한 아버지의 느낌을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체형은 땅의 성질에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땅이 비옥하고 부드럽고 수분이 많으며, 물이 지표 가까이 있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순조로운 기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살이 찌기 쉽고, 관절이 굳어 벌어지지 않고, 게으름이 엿보인다.(p48) <의학이야기> 中

 

 이번에는 아시아와 유럽의 차이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체질은 많이 다르다. 아시아의 땅에서 자라나는 초목과 인간은 유럽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시아는 땅이 비옥하여 모든 것이 아름답고 크게 성장하고, 기후도 온화하여 인간의 기질을 보다 부드럽고 온건하게 만든다.(p35)... 아시아 사람들은 유럽 사람보다 전투적이 아니고 기질이 온화하여 무기력하고 용기가 없어 보인다. 그 주요 원인은 계절에 따라 더위와 추위의 변화가 심하지 않는 온화한 날씨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왕이 통치하고 있다. 전제 군주 밑에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치하거나 독립하지 못한다.(p39) <의학이야기> 中


 사실, 이러한 설명은 히포크라테스만의 독창적인 인식은 아니다. 거의 동시대를 살다간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5 ~ ?)의 <역사 Histories Apodexis>안에도 기후가 기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언급된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식이 이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아이귑토스[이집트]의 기후가 특이하고 그곳의 강이 다른 강과 다르듯이, 아이귑토스들의 관습과 풍속도 거의 모든 점에서 다른 민족의 그것과 정반대다.(제2권 35)p181... 아이귑토스인들은 리뷔에인들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민족이다. 그것은 기후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말하자면 계절의 변화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것은 대개 변화 때문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계절의 변화 때문이다.(제2권 77) p206 <역사> 中


 다만, 이들 문헌에서는 고대 인간의 힘이 미약해서인지는 몰라도, 자연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데, 이에 반해 동양 문헌인 <황제 내경>에서는 자연 법칙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도(道)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맛의 경우 동양에서 다섯 가지의 맛 안에는 변화의 질서가 담겨 있는 반면, 서양에서는 강한 자극은 제거할 대상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여겨진다.


 동방(東方)은 바람을 낳고 바람은 나무를 낳으며, 나무는 신맛을 낳고 신맛은 간을 낳으며, 간은 힘줄(筋)을 낳고 힘즐은 심장을 낳으며, 간은 눈을 주관합니다. 그 음양은 하늘에서는 현(玄)이 되고 사람에게는 도(道)가 되며 땅에서는 변화(化)가 되는데, 이 변화로부터 다섯 가지 맛이 생겨나고 도는 지혜를 낳으며 현은 신(神)을 낳습니다.(p24) <황제내경> 中


 그들은 또한 건습열한(乾濕熱寒) 이외의 것들은 인체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또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들 각각이 갖는 강한 자극, 즉 인체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강한 것이 해를 준다고 생각하여 이를 제거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단 것 중에서도 더 단 것, 쓴 것 중에서도 더 쓴 것, 신 것 중에서도 더 신 것이 있어 각각에 함유된 모든 성질의 가장 강한 것들이 몸 속에 있어 인체를 해롭게 함을 발견하였다.(p81) <의학이야기> 中


[그림] 4원소와 오행(출처 : http://energy75.blogspot.com/2017/02/2.html?m=0)


 <의학이야기>와 <황제내경> 속에 담긴 내용을 통해 우리는 자연(自然)을 인식하는 구조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로 소통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동양과는 달리, 일방의 영향을 주는 절대적 존재로 바라본 서양. 이러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이후 동양과 서양 의학의 다른 발전을 가져오는 요인 중 하나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순수한 형식인 공간/시간 표상에서만 한 대상은 우리에게 직관될 수 있다. 일정한 공간/시간 관계에서만 한 대상은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에게는 이 형식에서만 한 사물이 존재한다.... 현상들을 주관적인 형식적 조건 아래서만 성립한다. 그러나 주관적인 현상만으로써 현상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사물들은 사물 자체가 우리 감성을 촉발하는 것을 계기로 우리 의식 안에 생기는 감각을 매개로 해서만 현상한다.(p44)... 요컨대, 객관으로서의 사물 그 자체와 주관이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두 근거이다. 이 관계에서 전자를 초월적 객관이라고 일컫고, 후자를 초월적 주관이라 일컫는다.(p45) <순수이성비판 1 : 해제> 中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는 <순수이성비판 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reinen Vernunft>을 통해 사물(자연 현상)이 우리의 주관을 통해 인식되었을 때 현상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칸트가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 이후 과학(科學, science)의 발전으로 인간의 힘이 자연과 대등하거나 우위에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연의 영향을 받았던 고대에서 문명(文明)의 발달로 인해 자연을 정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연은 신(神)의 위치에서 내려와 이제는 사물(事物)로 존재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근대 철학은 출발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소위 운명 비극이다. 비극적 효과는 신들의 절대적 의지와 파멸에 직면한 인간들의 헛된 반항 사이의 대립에 근거하고 있다.(p319)... 오이디푸스처럼 우리도 자연이 우리에게 강요한 소원, 도덕을 모욕하는 소원의 존재를 모르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소원이 폭로되면, 우리는 모두 유년시절의 사건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p320) <꿈의 해석> 中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라는 개념을 통해 강한 아버지와 이로부터 초래되는 거세 불안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갈등구조가 현실적인 자아를 만들면서 극복된다고 해석한 바있다. 이처럼, 서양 문명은 강한 자연의 힘 앞에서 불안감을 느끼다가, 이러한 공포를 과학이라는 힘을 통해 극복하고, 이에 대한 복수를 자연과 주변 문명에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복수의 구체적 모습은 유발 하라리가 <호모 사피엔스>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資本主義), 제국주의(帝國主義), 과학(科學), 기독교(基督敎)의 형태로 표현된 것은 아니었을까.


 페이퍼가 길어졌지만, 이처럼 <의학이야기>와 <황제내경> 속에는 의학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고대인들의 인식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 모습은 이러한 과거의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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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05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복수’... 곰곰 생각해 볼만큼 새롭고 흥미있는 말씀이세요. ^^

겨울호랑이 2018-09-05 20:28   좋아요 3 | URL
관련한 책들을 읽다 보니, 그쪽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편협한 제 생각이겠지만요. ㅋ 또 동시에, 자연으로부터 ‘환경의 역습‘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지금의 현실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오늘 북다이제스터님 글을 읽으면서 또 여러 생각할 거리를 받아갑니다. 감사합니다.^^:)

AgalmA 2018-09-06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자본주의 기타 등등에 벌벌 떠는 지금 생각하면 이게 다 무슨 코미딘가 싶어요...으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했다는 말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그 짝인 걸까요.
바람만 살짝 바뀌어도 이리 살만한데 우리의 욕심은 끝도 없지요.

겨울호랑이 2018-09-06 09:42   좋아요 1 | URL
사실 우리가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발달시킨 자본주의, 과학, 종교가 이제는 인간의 삶을 옭아매는 것을 보면, AgalmA님의 말씀처럼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초심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2018-09-06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6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0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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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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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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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는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 ~ )에 따르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세계화 때문이다. 그는 근대성이 정부와 개인들이 기후변화 같은 세계적 위험에 직면하는 '질주하는 세계'를 낳았다고 믿는다... 근대성의 세계화와 그 결과는 인류 문명의 새로운 단계를 나타내는데, 기든스는 이를 '후기근대(late modernity)'라고 부른다. 후기근대의 생활이 때론 유익하고 신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개개인은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해야 하고, 추상적인 체제를 신뢰해야 하며, 새로운 문제와 위험을 헤쳐나가야만 한다.(p148)... 기든스는 심각한 기후변화의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전 세계가 지금부터 즉시 과격할 정도의 획기적인 온난화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기든스는 미래를 낙관한다. 그는 첨단기술 사회를 낳은 바로 그 인간 독창성이 탄소 방출 절감을 위한 혁신적 해결책을 찾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믿는다.(p149) <사회학의 책> 中


 앤서니 기든스는 근대의 결과로 세계화가 진행되었고, 이의 부산물로서 기후변화라는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급진적인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기후 변화로 초래된 위기는 인간의 독창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펼친다. 이러한 생태 문제에 대한 기든스의 입장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일관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이번 페이퍼에서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Beyond Left and Right>와 <제3의 길 The Third Way>을 통해 기든스의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생태학적 위기는 이 책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비정통적인 방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생태학적 위기 및 그와 관련하여 발생한 여러 철학과 운동은 근대성의 표현이다. 근대성은 전 지구화 추세에 따라 그리고 스스로 자신에게 등을 돌리게 됨에 따라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당연히 새로운 전략들과 계획들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그에 따라 제시될 대부분의 실천적, 윤리적 고찰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p23)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기든스는 1994년 출간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를 통해 현재 사회의 인위적 불확실성(manufactured uncertainty)이라 칭하면서, 전 지구화, 탈전통화, 사회적 성찰(social reflexivity) 등이 불확실성을 가속화 시킨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일까?


 삶의 정치문제는 전 지구화(globalization)와 탈전통화(post- traditional)가 결합된 영향력의 결과로서 중요성을 띠게 된다. 전 지구화와 탈전통화 과정은 서구적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으나 전 세계 국가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괄적으로 볼 때 급진적 정치틀은 유토피아적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 가지 근대성 범주와의 연관 속에서 발전된다. 절대적/상대적인 빈곤과의 전쟁, 환경 파괴의 구제, 전제권력에 대한 대립, 사회적 삶에서의 강제력과 폭력의 역할 감소 이것들이 유토피아적 현실주의의 지향점이다.(p272)... 내가 해석한 생태학적 위기는 전 지구화 되어가는 세계에서 본질적으로 도덕적 의미의 위기를 의미한다.(p273)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에서 제기한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해 기든스는 자율성과 의존성의 결합, 연대성 증진, 삶의 정치 확대 등을 대화민주주의(dialigic democracy)의 방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환경 문제를 인간의 독창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그의 낙관적인 전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사회적 연대성의 재건은 경제영역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조화로운 자율성과 상호 의존성을 결합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탈전통사회에서 연대성 증진은 능동적 신뢰(active trust)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에 달려 있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책임의 회복과 연결된다.(p26)... 삶의 정치(life politics)는 삶의 기회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스타일의 정치이다... 능동적 신뢰는 발생적 정치(generative politics)의 개념을 포함한다. 발생적 정치는 사회의 전반적 관심과 목표라는 맥락에서 개인과 집단이 무슨 일인가를 발생시키도록 하는 정치이다.(p28)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그렇지만, 이러한 인류적 과제 앞에 기존의 정치사상들은 과거와 달리 변화되고 있다. 보수주의는 급진화되고, 사회주의는 보수화되면서, 신자유주의는 그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기든스의 진단이다. 그리고, 저자는  1998년 출간된 <제3의 길>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제3의 길>을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체제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전에 그가 추구하는 방향을 먼저 살펴보자.


 보수주의는 경쟁자본주의와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경향인 극적이고 원대한 변동과정이라는, 이전 같았으면 거부했을 면들을 다소 갖고 있다... 보수주의가 급진화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주의는 보수화되었다.(p14)... 좌파 급진주의자들은 또 다른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페미니즘, 생태학, 평화와 인권에 관련된 새로운 사회운동이 그것이다.(p15)... 우파는 급진적으로 전환된 반면 좌파는 보수적 기질을 보인다. 복지국가적 특성들을 보존하려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는 내적으로 모순적이고 이 모순은 점점 더 흔하게 발견된다.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는 전통에 대해 적대적이고 곳곳의 전통을 소멸시키는 주요 동인의 하나이며 시장과 공격적인 개인주의 증진의 결과이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는 정당성을 위해 그리고 보수주의와의 유착을 위해 국가, 종교, 성, 가족의 영역에서 전통의 보존에 의존한다.(p22)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기든스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를 통해 생산성주의를 자본주의와 연계시키고 이를 비판한다.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이 생산성주의라고 했을 때, 내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사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급진화된 보수주의나 보수화된 급진주의 역시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든스가 제시한 개념이 '제3의 길'이다.


 이상적 지향으로서의 탈결핍사회 개념과 생산성주의 비판은 이러한 관점에서부터 도출된다. 간단히 말해서 탈결핍사회는 더 이상 생산성주의를 지배적 규칙으로 삼지 않는 사회이다. 나는 생산성주의를 노동이 자율적인 사회, 경제발전 기제가 개인의 성장과 타인의 조화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목표를 대체하는 사회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생산성주의는 자본주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생산성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사상과는 아주 다른 정책을 취해야 한다.(p274)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기든스는 <제3의 길>을 통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조화로운 협력을 강조하면서, '신혼합경제'체제를 주장하고 있다. '규제완화'와 '작은 정부'를 말하는 우파와 '복지 사회'를 주장하는 좌파를 넘어선 새로운 길이 기든스가 주장하는 제3의 길이다. 


 국가와 정부의 개혁은 제3의 길 정치의 근본 방향을 설정하는 원칙이어야 한다. 즉 국가와 정부의 개혁은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확장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정부는 공동체의 복원과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시민사회의 행위 주체들과 동반자로서 활동해야 한다. 이 동반자 관계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내가 신혼합경제(new mixed economy)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p125)... 제3의 길은 '정부를 적이라 말하는' 우파와 '정부가 해답이라고 말하는' 좌파를 넘어서서 국가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p127) <제3의 길> 中


  기든스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와 <제3의 길>을 통해 새로운 정치방향을 제시한 지도 벌써 20여년이 넘었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이를 둘러싼 문제를 돌아본다면 기든스의 이론을 낡았다고 비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 새정부 경제정책 기본 방향 (출처 : 경북일보)


 경제 문제에 있어 소득주도 성장인가, 혁신주도 성장인가 하는 문제를 양자택일(兩者擇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부의 문제 인식과 정치 성향을 '진보', '보수'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기든스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다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제3의 길'의 여섯 가지 중심 과제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저는 특히 제3의 길을 이루는 여섯 가지 중심 과제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정부의 재창조입니다. 둘째는 시민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며, 셋째는 정부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등을 통하여 시장 중심적인 신혼합경제를 이끄는 과제입니다. 넷째는 인적 자원의 개발과 위험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처방으로 복지체제를 개편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생태환경적 현대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세계적 민주주의를 관철할 수 있는 세계적 관리운영 체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p274) <제3의 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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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2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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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2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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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1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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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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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며 어떤 일에서든 베팅하는 마음가짐으로 생각하면 의사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결과의 좋고 나쁨이 의사결정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른 직접적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확실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알아낼 수 있다. 미래를 그려내는 전략을 배우고, 뒤늦게 반응하는 식으로 다급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줄이며, 비슷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과 인맥을 쌓고 유지해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을 개선시키게 된다. 마지막으로 과거와 미래의 나 자신을 동원해 감정적 의사결정의 수를 줄일 수 있다.(p12)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中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Making Smarter Decisions when you don't have all the facts>는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책의 많은 내용이 포커(Poker)를 통해 얻은 저자 애니 듀크(Annie Duke)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행동경제학의 원리를 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페이퍼에서는 보다 학술적으로 행동경제학을 다루고 있는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 추단과 편향 Judgment under Uncertainty : Heuristics and Biases>과 함께 책의 대강을 살펴보고자 한다.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먼저 의사결정자들은 지난 결정에 대해 돌이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 내린 결정이라는 경험을 통해 의사결정자들은 한 단계 나아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에는 우리가 빠지기 쉬운  두 함정이 있는데, 그 중에서 사후확증편향을 먼저 살펴보자.


 사후확증편향 hindsight bias이란 어떤 결과가 나온 후에 그 결과가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럴 줄 알았어' 라든가 '그렇게 될 걸 알았어야 했는데' 같은 말을 할 때 그 사람은 사후확증편향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결과와 의사결정 사이의 과도하게 밀접한 관계로부터 만들어진다. 그것이 우리가 과거의 의사결정을 평가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p23)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中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의 한 주요 측면은 경험으로부터의 학습이다. 어떤 일의 결과를 알게 되면, 그 일이 발생한 까닭을 이해하려고 하고 우리나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위해 얼마나 준비를 잘 했는지 평가하려고 한다. 이러한 성과 지식이 우리 자신의 판단에 후견지명 hindsight의 지혜를 베풀지만, 그 장점은 실제보다 높이 평가 된다.(p597)... 사람들은 선견지명으로 알았던 것을 후견지명에서 과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예언을 잘못 기억하기까지 한다.(Fischhoff, 1975)(p598)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中 


 과거의 결과로부터 의사결정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위험을 말하는 사후확증편향 이외에도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요소는 결과 안에도 내재되어 있다. 결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기술'과 통제할 수 없는 '운'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기술과 운은 구별하지 못한다. 이는 이 두 요소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지만, 우리 속담에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처럼 결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로부터 배울 수 없게 된다.


 어떤 결과가 실력 때문이라고 여기면 우리는 스스로 공을 차지한다. 결과가 운 때문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떤 결과물이 나타나든 우리는 이 일차적인 분류를 해야하는 의사 결정에 직면한다. 그 의사결정은 해당 결과물을 '운' 바구니에 넣어야 하는지, '실력' 바구니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베팅이다.(p138)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中


 많은 사람들이 기술 skill과 운 luck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 동의하겠지만, 이 둘이 묶이는 방식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원칙적으로 이 둘은 분명히 구분된다. 기술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행동과 그 결과 사이에 인과적 연결이 있다. 따라서 기술 관련 과제에서는 성공을 제어할 수 있다. 반면, 운은 우연히 발생한다. 운이나 우연한 활동으로는 성공을 제어할 수 없다.(p319)... 기술과 우연 요인들이 사람들의 경험과 너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모든 기술 상황에는 우연의 요소가 들어 있고 거의 모든 우연 상황에는 기술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p330)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中


[그림] 포트톨리오 위험(by 겨울호랑이)


 '기술'과 '운'과 관련하여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재무관리, 보다 정확하게는 주식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구성자산을 다각화해서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위의 포트폴리오 위험은 이러한 구성의 한계를 보여준다. 위의 그림에서 재무관리에서 포트폴리오 위험은 크게 체계적 위험과 비체계적 위험으로 나눌 수 있는데, 비체계적위험은 구성자산 수를 늘리면 점차 감소하지만, 시장 위험인 체계적 위험은 구성자산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통제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기업상황이 좋지 않을 때 우리는 이 회사 주식을 사지 않음으로써  기업 고유위험을 회피할 수 있지만, 1998년 외환위기(IMF)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시장 구성원들은 시장에 존재하는 한 이 위험을 회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위험은 '통제 가능성'에 따라 체계적 위험과 비체계적 위험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결과 분석 시 우리의 통제가능성에 따라 기술 skill과 운 luck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잠시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다시 결정 문제로 돌아오자.


 이처럼 우리는 과거 결과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편향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주관적인 결과 분석과 주관적인 확률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결정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실제의 삶에서 가용성을 가장 분명하게 예시하는 것은 사건이나 시나리오의 우발적 가용성의 영향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생생한 핵전쟁의 묘사를 본 후, 어떤 우발적 사고나 고장이 그러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관적 확률의 증가를 알아챘을 것이다. 어떤 결과에 대한 지속적 몰두가 그 가용성과 그의 지각된 우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p244)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中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에서는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보다 열린 마음으로 주위의 의견을 경청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본다면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푹 빠져 있어서는 내기에서 이길 수 없다. 내기에서 이기려면 미래에 대한 믿음과 예측이 더욱 정확히 세상을 그려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그것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객관적인 사람이 편향된 사람을 이긴다... 자신의 믿음을 세부적으로 수정하려면 다양한 시각과 대안적인 가설들을 열린 마음으로 고려해야 한다.(p207)...  과거, 현재, 미래의 자신이 함께 어울릴 때 우리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런 의사결정에 대해 흡족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p342)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中


 대부분은 아니지만, 여러 경우에 효과적인 위험 관리는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협동을 요구한다... 여기서 논의된 발견들은 비전문가들에게는 중요한 도전이 된다. 더 잘 알고, 검토되지 않거나 지지되지 않은 판단에 덜 의존하고, 위험한 판단으로 편향시키는 요인들을 인식하고, 새로운 증거에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 요컨대, 교육받을 수 있는 잠재력을 깨달아야 한다.(p683)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中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는 위와 같은 내용으로 독자들이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책 본문에서는 포커 게임과 스포츠 게임 등의 예시를 통해 독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어 독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의 가장 큰 장점을 든다면, 행동경제학을 알기 쉽게 풀이했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이번 페이퍼에서 함께 비교한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은 행동경제학과 관련한 30여편의 논문으로 구성된 책으로 재미와는 거리가 있는 책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통계 용어로 어렵게 씌어진 이 논문들에서 도출된 유의미한 결론들을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에서는 일상 생활에 잘 접목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장점이라 여겨진다.


 반면, 많은 통계용어들을 걷어내고 일반 독자들을 위해 쉽게 쓰다보니, 독자들이 새로움을 느낄 여지는 많이 줄어든다. 자기계발서에 관심있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한 번쯤은 들어봤거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의 제시는 비록 그 구성과 절차가 체계적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부족함을 채우고 즐겁게 읽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이버 페이퍼를 마무리 한다.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를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책들과 함께 읽는다면 보다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의 공저자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 1934 ~ )이 일반인들을 위해 쓴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는다면, 행동경제학의 이론과 실제의 조합을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정부의 정책부문까지 알고 싶다면 <넛지>를 곁들여도 좋을 듯하다...


* 이 페이퍼는 출판사의 제공한 책으로 작성된 페이퍼 입니다. * 


 1. 기저율(base rate) : 판단 및 의사결정에 필요한 사건들의 상대적 빈도


 2. 통계학에서, 가능도(可能度, 영어: likelihood) 또는 우도(尤度)는 확률 분포의 모수가, 어떤 확률변수의 표집값과 일관되는 정도를 나타내는 값이다. 구체적으로, 주어진 표집값에 대한 모수의 가능도는 이 모수를 따르는 분포가 주어진 관측값에 대하여 부여하는 확률이다. 가능도 함수는 확률 분포가 아니며, 합하여 1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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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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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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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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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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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0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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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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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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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9-01 23:36   좋아요 1 | URL
한국사회에서 외부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정도는 떨쳐버려야겠지요...

2018-09-02 0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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